이병도란 자는 황해도 대방군설을 주장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저질렀다

2021.10.04 | 조회 30

이병도란 자는 황해도 대방군설을 주장하여 한국사매국노짓을 저질렀다.

 

건안(建安)연간(AD 196-220) 중에 공손강은 둔유현 이남 황폐한 땅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와 장창 등을 보내어 유민을 수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정벌하니 옛 주민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이후 왜와 한에 관한 일들을 대방군에 속하게 하였다.”

(建安中 公孫康 分屯有縣 以南 荒地 爲帶方郡 遣公孫模 張敞等 收集遺民 與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 遂屬帶方)

 

공손강이 새로 만든 대방군에는 열구(列口), 남신(南新), 장잠(長岑), 제해(提奚), 함자(含資), 해명(海冥) 7개 군현을 포함하여 관할하면서 치소를 대방현에 두었다.

 

이병도란 자는 열구(列口)를 황해도 은율, 잠잠(長岑)을 황해도 풍천, 함자(含資)를 황해도 서흥, 해명(海冥)을 황해도 해주라고 비정하여 대방이 황해도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또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 당토성(唐土城)을 대방군(帶方郡)의 유지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병도란 자가 얼마나 한국사를 왜곡하고 한국사매국노 짓을 했는지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역사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황해도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 기타 제해(提奚) 등이 모두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고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지고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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