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란 자는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이라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았다

2021.09.30 | 조회 35

이병도란 자는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이라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았다.

 

이병도가 <한국고대사연구>에 쓴 글

수성현(遂成縣)···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 수안에는 승람산천조에 요동산이란 산명이 보이고, 관방조에 후대 소축의 성이지만, 방원진의 동서행성의 석성(고산자의 대동지지에는 이를 패강장성의 유지라고 하였다)이 있고, 또 진지의 이 수성현조에는 --- 맹랑한 설이지만 ---진축장성지소기(秦築長城之所起)라는 기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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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란 자는 일본의 와세다대학 졸업 시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 침략시에

 

수양제의 113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드시 탁군태수 최홍승이 수나라를 출발하여 수성도(遂成道)를 지나 압록수(鴨淥水)에 집결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수성현(遂成縣)을 황해도 수안(遂安)이라는 한국사 매국노적 주장을 하여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황해도 수안까지 끌어들이는 황당한 매국조적 주장을 강변하였다.

 

이병도란 자는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란 주장으로 한국사 매국노짓을 서슴치 않았다.

 

진서(晉書)에 나타난 한사군은

낙랑군에 속한 1) 朝鮮조선, 2) 屯有둔유, 3) 渾彌혼미, 4) 遂城수성, 5)鏤方누방, 6) 駟望사망의 6개 현이 있었고

 

1) 帶方대방군 소속의 현에는 2)列口열구, 3) 長岑장잠, 4) 提奚제해, 5) 含資함자. 6) 冥海명해, 7)呑列탄열 6개 현이 있었다.

 

이병도란 자는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 침략시에 수양제 침략 전격로에 진서(晉書)에 기록된 치소인 대방군(帶方郡: 12군의 11번째)을 비롯하여 장잠(122번째), 제해(126번째), 함자(122번째), 명해(123번째) 군현들이 모두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고구려 땅에 있었다. 수양제 진격로에 표시되지 않은 7) 탄열(呑列)도 부근 지역일 것이므로 모두 대륙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병도란 자는 이같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역사적 기록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로서 어찌하여 수나라가 평양을 향해 침략하는 경로에 위치해 있었던 대방(帶方郡: 12군의 11번째)을 비롯하여 장잠(122번째), 제해(126번째), 함자(122번째), 명해(123번째) 군현들이 모두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고구려 땅에 있었음을 전혀 무시하고 대방과 그 속현들을 황해도와 경기도라고 주장하는 한국사 매국노짓을 서슴치 않았단 말인가?

 

이병도란 자는 은율군은 고구려 시대의 율구(栗口)’ 혹은 율천(栗川)’이니 율구(栗口)는 열구(列口)와 음이 거의 같고 율천(栗川)도 열수(列水)의 이사(異寫)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구현이 오늘의 은율 부근이라 함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1) 帶方대방군 소속의 현에는 2)列口열구, 3) 長岑장잠, 4) 提奚제해, 5) 含資함자. 6) 冥海명해, 7)呑列탄열 6개 현은 전술한 바와 같이 모두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에 있었고, 대륙에 있었으며, 황해도가 아니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

 

이병도란 자는 대방군의 7현이 모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었으므로 학자적 양심에서 대방군의 이 지역을 대륙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어야 마땅함에도 이를 숨기고,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하면서 대방을 황해도로 끌어들여 한사군 한반도내 존치설을 합리화 시키고 한국사 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고 행한 놈이다.

 

이병도같은 한국사매국노나 왜놈 역사왜곡자들 그리고 이병도같은 역사매국노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자들은 아직도 대방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맹렬히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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