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태조대왕은 유주자사, 요동 및 현도태수와 싸워 이겼고,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2021.08.31 | 조회 25

고구려 태조대왕은 유주사자, 요동 및 현도태수와 싸워 이겼고,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구구려 6대 태조대왕(AD 53-146) 때 이미 요서에 10개성을 쌓았다.

태조왕 3(AD 55) 2월에 요서에 10개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漢兵)에 대비하였다(太祖大王 三年 春三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여기서 고구려 태조대왕이 한나라 병사를 대비하여 쌓은 10개의 성은 요서(遼西)에 있어서 이미 고구려는 즙안 부근이 아니라 요수(遼水)의 서쪽까지 진출해 있었음이 확실하다.>

 

동옥저 정벌 창해에 이르렀다

태조대왕 4년 추7월에 동옥저를 정벌하여 그 땅을 빼앗고 고구려의 성읍으로 만들었으며, 국경을 개척하여 동쪽은 창해(滄海)에 이르렀으며, 남쪽은 살수(薩水)에 이르렀다.(四年 秋七月 伐東沃沮 取其土地 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여기서 옥저를 정벌해서 그 땅을 고구려 성읍으로 삼았는데, 개척한 국경이 창해에 이르렀다고 했다. “창해는 장량은 회양(淮陽)에서 동쪽으로 가 '창해군'이란 인물을 만났으며("東見倉海君"), 그에게 역사(力士)를 소개받았는데 그가 곧 창해 역사라 불리는 인물이다. 장량은 창해 역사를 위해 120근이나 되는 철추를 만들어줘서 진시황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자[1] 하비성으로 도망쳤다고 한다.”는 위키페디아의 설명과 같이 진시황을 죽이려던 인물로 장자방(장량)이란 인물이 만난 지역이므로 발해만 부근일 것이다. 장량이 미쳤다고 강원도 강릉군까지 와서 창해역사를 만날 필요는 없었다.

 

진시황 때 이미 알려진 창해는 발해만이 분명하며 동해는 아니다. 태조대왕은 영토를 넓혀서 발해만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왜색식민사관을 가진 자들이 동옥저를 함경도라 주장하고, 특히 이병도는 왜놈에게 아첨한 자는 동옥저를 함흥과 함경남도 지역, 북옥저를 간도지방이라고 하였는데, 태조대왕이 정복한 옥저는 결코 이병도의 함경남도나 간도지방이 아니다.

 

옥저는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로 수양제가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등의 길()로 나아갔는데, 11번째 침략경로가 옥저(沃沮)인 것이다.

 

한의 요동을 정벌하여 6개 현을 약탈하다

태조대왕 53년 왕이 장수들을 한나라 요동에 칩입시켜서 요동에 속한 6개 현을 탈취하고 약탈하였다. 한나라 요동태수 경기(耿蘷)가 군사를 동원하여 대항하였는데 왕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五十三年 王遣將入 漢遼東 奪掠六縣 太守耿蘷 出兵拒之 王軍大敗)

 

<*여기서 한의 요동(遼東) 육현(六縣)은 요수(遼水) 부근의 요동 6현이며, 왜놈들이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당시 즙안 부근의 땅이 아니다. 요동 6현은 중국의 현이기 때문에 매우 넓은 땅이며,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생각하는 좁은 땅이 아니다.>

 

태조왕 66년 한나라 현도를 공격하여 화려성을 쳤다.

태조왕 66년 여름 6월에 왕이 예맥과 더불어 한나라 현도의 화려성을 공격하였다. (六十六年 夏六月 王與 穢貊 襲漢玄菟 攻華麗城)

 

<*위의 기록을 보면 태조왕 66년 한나라 현토의 화려성을 공격하였다고 했는데, 현도는 삼국사기 보장왕조에 나오듯이 요수(遼水)를 건너 바로 위치해 있었고, 요동성과 요수의 중간에 위치한 지점이다. 태조대왕이 한나라와 싸운 지점은 요수 부근의 현도군 화려성이었다. 결코 고구려 초기 왜놈들이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평북산악지방에 현도가 위치될 수 없다. 왜놈식민사학자들은 하루 속히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폐기하고 태조대왕이 요수 부근의 현도를 침략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태조왕 69년 현도와 요동을 공격하여 2천여명을 사로잡았다.

태조왕 69년 한()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풍환, 현도 태수 요광, 요동 태수 채풍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예맥(穢貊)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병기와 마필과 재물을 모두 약탈하였다. 왕이 아우 수성에게 군사 2천을 주어 풍환, 요광 등과 싸우게 하였다.

 

수성이 한나라 군영에 사자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말했다. 풍환은 이 말을 믿었다. 수성이 곧 험한 곳에 의지하여 대군을 막는 한 편 비밀리에 군사 3천명을 보내 <현도>, <요동> 2군을 공격하여 그 성곽을 불사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여기에 나오는 유주자사, 요동태수, 현도태수 등은 모두 대륙에 있던 유주, 요동, 현도이다. 왜놈들이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내 지역이 아니다. 요동성은 요수 가까운 지역이고, 현도군은 요수와 요동성 사이에 있었다.>

 

요동태수를 죽이고,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여름 4월에 왕이 <선비(鮮卑)>의 군사 8천명과 함께 요대현을 공격하였다. 요동태수 채풍은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에 나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공조연 용단과 병마연 공손포가 자신의 몸으로 요동태수 채풍을 엄호하다가 채풍과 함께 죽었다. 이때 사망자가 백여명이었다.

 

태조왕 6612월 왕이 마한(馬韓)과 예맥(穢貊)의 기병 1만을 거느리고 <현도성(玄菟城)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를 시켜 2만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대항케 하였다. 이에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태조대왕 94년 추 팔월에 왕이 군대를 보내 한나라 요동의 서쪽 안평현을 습격하여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와 그 처자들을 사로잡아 돌아 왔다.

 

<* 태조대왕이 마한 및 예맥과 공격한 현도성은 요수 부근에 있던 성이고, 태조대왕이 빼앗은 요동의 서쪽 안평현은 서안평(西安平)이라고도 하는데, 왜놈들이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단동지역이 아니고 요동성의 서쪽에 안평현이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왜놈들이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내 한사군설은 반드시 폐기하고 한사군 대륙존치설로 바뀌어야 한다.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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