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는 낙랑군을 평양, 패수를 청천강이라 왜곡하여 한국고대사를 말아먹었다

2022.01.11 | 조회 22

이병도는 낙랑군을 평양, 패수를 청천강이라 왜곡하여 한국고대사를 말아먹었다.

 

이병도는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이 평양이어서 낙랑군과 조선현은 평양이라고 주장했다.

또 패수=청천강북지류, 열수=대동강, 대수=재령강이란 주장을하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는 사실상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 일본제국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라고 하면서 이병도의 주장은 조선시대 학설의 연장이며,이병도보다 앞선 왜놈들의 주장이나 왜놈들의 주장을 추종한 이병도란 한국사매국노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주장이며, 틀림없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왜놈들의 주장이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주장은 만고불변,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백겸
1552
-1615

홍여하
1620
-1674

한진서
1777
-?

증보문헌비고
1908

정약용
1762
-1836

이병도
1986
-1989

패수

청천강

청천강

대동강


대동강

청천강
북지류

열수

한강

한강

한강

한강

한강

대동강

대수

대동강


임진강

임진강

임진강

재령강

낙랑군
(조선현)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그러나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12(左十二軍)1) 누방, 2)장잠, 3)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낙랑(樂浪)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11)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가 평양이라고 주장한 낙랑은 평양에 있지 않고 수양제 좌1212번째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병도라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주장했던 조선현의 위치는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들은 수양제가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를 건너 압록수(鴨淥水:지금의 요하)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 수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고구려의 국경지대 땅이고, 대륙에 있었던 땅이다.

 

곂코 한국사매국노 이병도가 주장하는 평양이나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치소(治所)의 위치는 바뀌는 것이지만 지명은 한국사매국노들의 주장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수양제 침략군이 평양에 있다는 조선현이나 황해도에 있다는 대방,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패수(浿水)는 태자하(太子河)를 가르키며, 결코 청천강이 아니다.

이병도는 패수(浿水)를 청천강이라고 궤변하였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수경’(水經)은 패수에 대해서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東入于海)라고 말했다. 압록·청천·대동강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 구절에 대해서 이병도 박사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는 구절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西入於海)고 바꿔 써야 한다면서 패수는 청천강이라고 우겼다. ‘동북아역사지도도 이를 따라 패수를 청천강으로 그려 놨다.

 

원 사료의 동()자를 마음대로 서(西)자로 바꾸어 우긴 것이 이른바 정설이 되어, 나라 강역 넘기는 데 국고가 투입되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위만이 건너온 패수를 태자하로 추정하고, 왕검성의 위치를 요령성 반금시 지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기 조선전(史記朝鮮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 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 전성기에 진번조선을 공격해 정복하고 관리를 두었으며, 장새를 쌓았다. ()나라라 연()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에 속하던 땅은 경계 밖의 땅이 되었다.

 

()나라가 일어나자 그 땅(조선)은 너무 멀고 지키기 어려웠다.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개축하여 패수까지를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소속시켰다(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연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도망치자, 위만이 법령을 업신여기어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머리에 상투를 틀고 만이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벗어나 패수를 건너(滿亡命 聚黨千餘人髮結蠻夷服而東走 出塞渡浿水) 진나라의 옛땅이던 공지인 상하장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위만은 점차 진번조선의 만이들과 옛날 연나라 및 제나라 망명자들을 부하로 만들어 왕이 되었고, 왕험에 도읍하였다.

 

집해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위소가 말하기를 옛 고을의 이름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는데, 응소가 주를 달기를 지리지의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 신찬이 말하기를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현의 동쪽에 있다.

 

(集解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索隱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凟縣 廣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儉城在樂浪君浿水之東).

 

위만조선의 수도가 요동군 험독현에 설치되었다고 했는데,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의 험독현(險瀆縣) 조에는 당시 광령현(廣寜縣) 동남쪽의 바다 가까운 곳이라고 하였다(險瀆故城 在今廣寜縣東南.....濱海之地).

 

이곳은 지금의 쌍태자하 하류인 요령성 반금시(盤錦市, 盤山縣) 부근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https://blog.naver.com/hsg8689

 

임찬경 박사의 “612년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수, 요동성, 압록수, 살수, 평양의 위치 비정논문에서도 패수(浿水)는 저강(沮江)이라고도 하였고, 지금의 태자하를 가르킨다고 하였으며, 당시의 고구려 평양성 위치(P)를 지금의 요령성 반금시 부근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병도의 잘못되고 왜곡된 평양 낙랑설과 패수(浿水)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해야 맞다는 해괴한 논리로 패수 청천강 설을 주장했는데, 이병도의 매국노적 주장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위만이 청천강을 건너와서 위만조선을 세운 것이 결코 아니다. 위만은 당시 연나라와 조선의 국경 부근에 있는 패수(浿水)를 건넌 것이므로 지금의 난하이거나 태자하를 건너 조선에 귀순했릏 것이다. 이병도의 청천강 패수설은 폐기되어야 하며, 패수(浿水)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병도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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