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일본역사교과서에 실어 가르치는 임나일본부설

2021.12.27 | 조회 27

 

일본인들이 일본 역사교과서에 실어 가르치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

****그림출처: https://cafe.daum.net/mookto/GUJC/5473

 

현재 일본은 고분시대의 '()' 가 강력한 국가라면서 한반도 남부를 약 200년 간(AD 369-562) 점령했다는 임나 가야설, 임나일본부설의 논리까지 펼치며 이를 현재 일본국사 교과서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지위서 동이전 왜()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木弓.<그 땅에는 소, ,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가 없다. 무기로는 창, 방패 그리고 목궁(木弓)을 사용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일본 열도에는 '()''()'도 없고 소, ,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까지도 없으며, 창과 방패 그리고 나무로 된 활(木弓)을 사용한다고 하여 문화가 매우 뒤쳐져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삼국지』 「 위서 동이전 변진(弁辰)에는 乘駕牛馬... 國出鐵, ··倭皆從取之.<변진(弁辰: 가야 땅)에는 소와 말을 타고 다니며....나라에 철이 생산되는데 한(), (), 왜인(倭人)들이 모두 와서 사 간다>라고 기록하였다.

 

같은 시기에 쓰여진 위지 동이전의 왜()와 변진(弁辰: 가야)의 문화 차이가 이토록 큰 점을 비교하면 변진(弁辰: 가야)의 문화 문명이 왜()보다 훨씬 월등하여 가야가 왜를 지배함이 마땅함에도 일본인들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주장하면서 일본의 임나가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지배했다고 역사에 가르치고 있으며, 그 지도를 지금 일본의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교재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위에 보인 일본 초. . 고등학교 및 대학교 교과서에 실린 임나일본부설과 그 지도를 보면 한국인인 필자로서 통탄스러움과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마땅히 한국 정부와 한국의 역사학자,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 및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일본의 이같은 임나일본부설의 잘못과 허구성을 지적하고 반드시 고치도록 해야 마땅함에도 지금까지 이를 고치지 못하고 계속 일본인들이 초..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임나일본부서를 배우고 이를 신빙하고 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와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위와같은 일본인들의 주장에 대해서 사실이 잘못되었음을 제시하고 이같은 잘못된 역사와 지도표시를 시정할 수 있는 대책을 거의 세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잘못된 임나일본부 지도가 버젓이 일본역사교과서에 실리고 있음을 통탄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의 임나 일본부설(南鮮 經營論)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414

 

일본의 일본 임나일본부설은 다음과 같다.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이라고도 한다.이는 일제가 그들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해 낸 식민사관 중에서,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고대부터 외세의 간섭과 압제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타율성이론의 대표적인 산물의 하나이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도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등의 일본고전을 연구하는 일본 국학자들은 그를 통해 태고 때부터의 일본의 조선 지배를 주장하였다.

 

그 뒤 메이지 연간(明治年間, 18681911)에 문헌고증의 근대 역사학이 성립되면서, 국학연구의 전통을 이어받은 간[菅政友쓰다[津田左右吉이마니시[今西龍아유가이[鮎貝房之進] 등은 일본의 임나 지배를 전제하고 주로 임나관계의 지명 고증작업을 행하였다.이어 스에마쓰[末松保和]대일본사(大日本史)(1933)의 한 편으로 일한관계(日韓關係)를 정리했다가, 2차 세계대전 후에 학문적 체계를 갖춘 남선경영론을 완성시켰으니, 그것이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1949)였다.

 

그의 임나일본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삼국지위서 왜인전 서두의 문구로 보아, 3세기 중엽에 이미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즉 임나가라를 점유하고, 왜왕은 그 중계지를 통해 삼한에 통제력을 미치고 있었다.

 

둘째, 일본서기진쿠황후[神功皇后] 49년조의 7국 및 4읍 평정기사로 보아, 369년 당시 왜는 지금의 경상남북도 대부분을 평정하고,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 일부를 귀복시켜 임나 지배체제를 성립시키고, 백제왕의 조공을 서약받았다.

 

셋째, 광개토왕비문의 기사로 보아, 왜는 400년 전후해서 고구려군과 전쟁을 통해 임나를 공고히 하고 백제에 대한 복속관계를 강화하였다.

 

넷째, 송서(宋書)왜국전에 나오는 왜 5왕의 작호로 보아, 일본은 5세기에 외교적인 수단으로 왜·신라·임나·가라에 대한 영유권을 중국 남조로부터 인정받았으며, 백제의 지배까지 송나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였다.

 

다섯째, 남제서(南齊書)가라국전 및 일본서기게이타이왕[繼體王] 때의 기사들로 보아, 일본은 5세기 후반에 임나에 대한 통제력이 완화되기 시작해 6세기 초반에는 백제에게 전라남북도 일대의 임나땅을 할양해 주기도 하고, 신라에게 남가라(南加羅) 등을 약탈당하기도 하면서 임나가 쇠퇴하였다.

 

여섯째, 일본서기긴메이왕[欽明王] 때의 기사들로 보아, 540년대 이후 백제와 임나일본부는 임나의 부흥을 꾀했으나, 결국 562년에 신라가 임나 관가를 토멸함으로써 임나가 멸망하였다.

 

일곱째, 그 뒤에도 일본은 임나 고지에 대한 연고권을 가져서 646년까지 신라에게 임나의 조(調)를 요구해 받아내었다.

 

, 임나일본부설은 왜왕권이 한반도의 임나지역을 정벌해 현지에 설치한 직할통치기관으로서, 왜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AD 369-562)까지 약 200년간 가야를 비롯해 백제·신라 등의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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