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제현신사비가 가짜인 사실은 왜 중요한가? 점제현은 평남 용강이 아니라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점제현이 맞다

2021.12.24 | 조회 24

점제현신사비는 가짜인 사실은 왜 중요한가? 점제현은 평남 용강이 아니라 수양제 침략경로에 있는 점제현(煔蟬縣: 또는 점선현)이 맞다.

 

점제현신사비가 가짜인 사실이 왜 중요한가?

점제현 신사비는 1913년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평안남도 용강군(현재는 온천군) 지방을 순시하던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발견하여 이 비석을 연구한 결과 이 비석은 후한 시대의 낙랑군 소속 점제현(秥蟬縣; 낙랑군 휘하에 黏蟬縣이 있었다)에서 세운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비석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 비석의 동남쪽 150m 지점에 있는 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이 낙랑군 점제현(秥蟬縣: 낙랑군 소속에 黏蟬縣이 있었다)이라고 이들은 주장하였다.

 

해방 후 이병도는 그의 저서 한국사대관에 이 점제현(秥蟬縣)의 사진을 올리고 이 점제현 신사비가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점제현(秥蟬縣, 粘蟬縣, 또는 黏蟬縣 등 여러 글자로 쓰임)과 같은 지역이며, 낙랑군에 속해 있고 평안남도 용강군까지 낙랑군의 식민지임이 확실하다는 고증을 해 준 것이다.

 

이병도 이후 이병도는 물론이고 이병도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낙랑군의 점제현은 평안남도 용강군(현재는 온천군)이 확실하고,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남한의 한국사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낙랑군 점제현(秥蟬縣: 점선현으로 읽기도 한다)이 결코 평안남도 용강(현재의 온천군)이 아니고, 수양제가 침략한 우12군의 첫 번째 침략경로임을 밝혀 앞으로 한국사의 점제현 바른 위치가 밝혀지고 또 반도 내 식민사관이 반드시 타파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점제현에 사용되는 한자는 여러 가지이며(秥蟬縣, 粘禪縣, 黏蟬縣 ), 수양제 침략경로 우12군 첫 번째가 점제현이다.

점제현(秥蟬縣: 점선현) 신사비는 비석에 秥蟬(점제, 또는 점선으로도 읽음)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한서(漢書)의 기록이나 후한서(後漢書) 등의 기록에는 粘蟬(점제, 또는 점선) 또는 黏蟬(점제, 또는 점선)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또 삼국사기 영양왕조에는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군 첫 번째 경로에 煔蟬(점제 또는 점선으로도 읽음)이 동일한 명칭으로 나타나므로 이곳이 점제현(秥蟬縣)의 정확한 위치는 바로 이곳일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제(煔蟬: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위에서 볼 수 있드시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십이군 첫 번째 침략경로에 점제(煔蟬: 점선이라고도 읽음)이 있는 것이다. 이곳은 결코 평안남도 용강군이 될 수 없다. 수나라가 침략해 온 요수(지금의 灤河)와 압록수(鴨淥: 지금의 요하) 중간에 점제(秥蟬: 또는 점선으로 읽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래 주소의 기사에 따르면 점제현 신사비가 갈석산 바위에 새겨진 것을 뜯어 온 흔적이 분명히 있다고 하였다.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라는 플러스코리아의 기사 내용을 소개한다.

플러스코리아 2009. 11. 12자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단독]북한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

미래사적으로 일제의 만행에서 벗어남에도 학계는 왜이러나?

http://www.pluskorea.net/13363

 

본지는 북한 국보급 문화재인 점제현신사비(黏蟬縣神祠碑)’가 가짜라는 주장들이 인터넷 상에서 회자되어 그 진위여부를 추적해 보았다.

 

(* 점제현신사비(黏蟬縣神祠碑)는 평안남도 온천군(溫泉郡) 성현리(城峴里)에 있는 낙랑시대 고비(古碑)1913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의 금서룡(今西龍)에 의해 조사된 것으로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16호로 알려짐. 한사군 재 한반도설의 가장 중심되는 유물.)

 

이같은 주장은 1990117일 손보기 박사가 ()한배달과의 대담에서 현재 북한의 국보급 유물인 점제현신사비는 일본인 금서룡(今西龍)1913년에 중국에서 가져와 날조한 날조품이라고 증언한 것이 9월호 한배달 잡지에 실리면서 처음 알려졌다.(* 손보기 : 연세대 석좌교수, 연세대 박물관장, 단국대 박물관장)

 

손보기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파내어 한반도 평남 온천군으로 배로 실어 가져와 한반도내 한사군설을 조작하는데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동경로를 보면 아래와 같다.

(중간 생략)

 

도서출판 중심에서 200143일 발간된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라는 책을 보면 북한 사회과학원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림 생략

북한 사회과학원 논문

해방전 일제 어용사가들은 강점기간 동안 평양인근 100여기의 무덤을 파헤쳐 한의 낙랑유물로 변조하여 한나라 낙랑군 재 평양설을 날조 하였지만, 북한은 이후 30배가 많은 3천여기의 무덤을 발굴 정리한 결과 평양일대 유적은 고조선을 이어 받은 최씨의 낙랑국 유적으로 밝혀졌으며 중국의 유물과는 현저히 다른 아니 오히려 앞선 유물로 판명되었다.“

 

한나라 낙랑군 재평양설은 일본놈들과 반동사가들, 일부 대국주의사가들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수많은 날조의 증거들이 있지만 점제현 신사비를 증빙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생성년대에서는 흑운모를 시료로 하여 핵분렬 흔적법으로 측정한데 의하면 점제비의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29백만 년±13백만 년이고, 온천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4백만 년±12백만 년, 오석산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백만 년±12백만 년, 마영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7백만 년±12백만 년이다.

 

이처럼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온천과 룡강일대의 화강암 생성년대보다 28백만 년~22백만 년이다 더 오래다. 이것은 점제비 화강암이 그 근방의 화강암과는 돌 나이에서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지방의 화강암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중략)

 

이상의 사실은 점제비는 온천과 그 근방의 화강암이 아닌 다른 지방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온천과 그 근방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으며 평양일대에서는 그것을 많이 리용하고 있다.

 

그러면 왜 자기 지방의 석재로 만들지 않은 점제비가 온천 땅에서 나타났는가? 그것은 다른 지방에서 만든 것을 온천지방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상기내용을 종합해보면 중국 하북성에 있었던 비석을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한반도로 가져와 한낙랑군 재평양설을 날조하는데 이용하였으며, 북한학자들은 이미 그것이 날조품이라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는데 우리나라 학자들만 아직도 이 비문을 근거로 한낙랑군 재평양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북한 '점제현신사비'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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