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영양왕조에 요동은 요동고성과 요동성 2개소가 있었다

2021.12.23 | 조회 45

삼국사기 영양왕 조에 요동은 요동고성과 요동성 2개소가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양왕 24년 정월에 수양제는 조서를 내려 전국의 군사를 징집하여 탁군(涿郡)에 집합시키고, 백성들을 모집하여 효과(驍果: 보급부대로 추정됨)라는 군대를 만들고, 요동고성(遼東古城)을 수리하여 군량을 저장하였다.

(*잠고: 요동 고성은 요동성과 달리 요수<灤河> 부근으로 추정됨.)

 

2월에 수양제는 근신들에게 고구려와 같은 하찮은 것들이 상국을 무시하고 있다.....하면서 고구려를 다시 정벌할 것을 논의하였다.

 

여름 4월에 수양제는 요수(遼水: 지금의 灤河)를 건넜다. 그는 우문술과 양의신으로 하여금 평양까지 진격케 했다(趣平壤: 여기서 말하는 평양은 요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평양으로 보인다)

 

왕인공을 부여도를 경유하여 신성(新城)까지 진군하였다. 이에 고구려군 수만명이 항전하였다. 왕인공이 강한 기마병 일천명으로 아군을 격파하니 아군은 성을 굳게 지켰다. 수양제가 여러 장수들에게 요동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들로 하여금 사태에 따라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적절히 조치하도록 하였다.

(*참고: 수양제가 여러 장수들에게 공격하라고 한 요동성은 요동고성과 위치가 다르다)

 

그들은 비루동(성을 공격하는 무기, 운제(사다리), 지도(땅파는 기구) 등을 이용하여 사면에서 동시에 밤낮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우리도 그때마다 적절히 대응하였기 때문에 20여일 지나도 성이 빼앗기기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양편에 전사자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때마침 수나라에서 양현감이 반역하였다는 보고가 오자 수양제는 두려워하였다....수나라의 병부시랑 곡사정은 본래부터 양현감과 친한 사이였으므로 내심 불안하여 수나라를 탈출하여 우리나라에 도망해 왔다.....

 

수나라 군사가 거의 요수(遼水)에 이르렀다....우리 군사가 따라 가면서 끝까지 공격하여 대략 수천명을 죽였다.

(*참고: 여기에서 말하는 요수(遼水)는 지금의 난하(灤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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