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의 침공과 살수대첩 및 을지문덕의 정복지와 요동성 위치

2021.12.21 | 조회 46

수양제의 침공과 살수대첩 및 을지문덕의 정복지 및 요동성 위치

**태백일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안경전 환단고기 581)

 

고구려 제26대 영양무원호태열제(영양왕) 홍무 23(AD 612)에 수나라 군사 130만 명이 바다와 육지로 처들어 왔다. 을지문덕이 출병하여 기묘한 계략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추격하여 살수(薩水: 살수는 요령성 개평현 주남하 요동반도의 대양하 청천강 등이 살수로 불리었는데, 정인보는 주남하라고 함)에 이르러 크게 격파하였다.

 

수나라 군대는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궤멸되어 살아서 요동성(遼東城: 한국사학계에서는 요령성 요양시라 하고, 안경전은 하북성 창려라고 함)으로 돌아간 자가 겨우 2700명이었다.

 

양광(수양제)이 사신을 보내어 구걸하였으나 을지문덕은 듣지 않았고, 태열제(太烈帝: 영양왕)이 또한 추격하도록 엄한 명을 내리셨다.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와 더불어 승리의 기세를 타고 곧바로 몰아붙여 한 갈레는 현도(玄菟: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柳城, 지금의 요령성 朝陽盧龍 사이에 현도가 있었다고 한다)의 길로 태원(太原: 중국 山西省首府가 있는 곳, 석가장 부근)에 이르고,

 

한 갈레는 낙랑(樂浪: 하북성의 진황도시,갈석산 부근)의 길로 나아가 유주(幽州: 중국 하북성 일대를 총괄하던 州名)에 이르러 그곳의 주와 현에 들어가서 다스리고, 떠도는 백성들을 불러모아 안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건안, 건창, 백암, 창려의 제진은 안시(安市)에 속하게 하고 창평, 탁성, 신창, 용도의 제진은 여기(如祈)에 속하게 하고 고노, 평곡, 조양, 누성, 사구을은 상곡(上谷: 朝陽 부근 동쪽에 있다)에 속하게 하고 화룡, 분주, 환주, 풍성, 압록은 임황(臨潢: 서압록 쪽 파림좌기의 땅)에 속하게 했다. 무두 옛 제도에 따라 관리를 두고 다스렸다. 이에 이르러 강한 군사가 백만으로 강토는 더욱 더 커졌다.

 

요동성은 하북성 창려에 있었다(안경전 역 환단고기629-630)

요동성은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이다.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을 말한다. 요수(遼水)는 시대에 따라 백하(白河), 난하(灤河), 대릉하(大陵河) 등으로 바뀌어 국경 하천을 대표해 왔다.

 

그 후 요(: 916-1125)나라 건국 이후에 비로소 대요하(大遼河)로 고정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고구려 당시의 요수(遼水)는 곧 지금의 난하(灤河), 요동성은 요수(난하)의 동쪽인 지금의 창려(昌黎)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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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요동성을 요동반도의 요령성 요양시라고 하고 있어서 그 비정한 위치가 다르다. 앞으로 정확한 요동성의 위치가 구명되어야 할 것이다. 살수(薩水) 역시 지금 한국사학계에서는 청천강이라고 하나, 살수는 요령성 개평현 주남하 요동반도의 대양하 청천강 등이 살수로 불리었는데, 정인보는 주남하라고 이덕수는 대양하라고 비정하기도 하므로 앞으로 정확한 살수의 위치가 비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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