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일사에 나오는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고두막한 동명 및 고주몽 이야기

2021.12.19 | 조회 52

태백일사에 나오는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고두막한 동명 및 고주몽의 고사

북부여(北扶餘)의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은 환기 6959(BC 239) 즉위 하시었다....재위 19(BC 221) 기자조선의 기비(箕丕)가 죽고 아들 준(箕準)이 번조선(番朝鮮) 왕으로 책봉되었다....재위 38(BC 202) 연나라 노관(盧館)이 다시 요동의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동쪽 경계로 삼았다. 패수는 지금의 조하(潮河: 지금의 북경 동쪽과 청진 북쪽을 흐르는 潮白河)이다......

 

북부여 2세 모수리 단군은 재위 3(BC 192) 임금께서 해성(海城)을 평양도(平壤道: 여기서 平壤은 만주 요령성의 海城 부근 지역임을 알 수 있다)에 부속시켜 아우 고진(高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셨다.....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 때 임금이 장수를 보내 위만조선의 우거(右渠)를 토벌하게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고진(高辰)을 발탁하여 서압록(西鴨綠: 고대에는 요하를 압록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삼국유사 순도조려에 遼水는 일명 압록이었는데, 지금은 安民江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에 요하의 상류지역을 서압록으로, 하류지역을 구려하로 부르기도 하였다)을 지키게 하셨다..... 재위 6(BC 115) 임금께서 친히 정예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해성(海城)을 격파하고 계속 추격하여 살수(薩水: 요동반도에 있는 개평현의 州南河, 또는 북한에서는 요동반도에 있는 大洋河라고 함)에 이르셨다. 이로써 구려하(九黎河: 지금의 遼河) 동쪽이 전부 항복하였다.

 

구우루 단군 재위 13(BC 108) ()나라 유철(劉徹: 한무제)이 평나(平那: 지금의 하북성 창려, 昌黎이며, 이곳에 왕검성이 있었다) 침범하여 우거를 멸하더니 4(四郡)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처들어 왔다. 이에 고두막한(東明國 고두막한이며, 고구려의 동명왕을 말함)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들을 격파하였다. 이때 유민들이 사방에서 호응하여 전쟁을 지원하니 군세가 크게 떨쳤다.

 

구우루 단군 재위 34(BC 87) 10월에 동명국(東明國)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니 임금은 여기를 떠나시오라고 하니 임금이 괴로워 하였고,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5세 단군은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이며, 졸본(卒本: 지금의 혼강 유역 환인지역으로 추정함)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호를 동명(東明)이라 하셨다....재위 3년 임금께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 지금의 요하에 대한 옛 이름. 중국고금지며대사전에 遼河조에 보이는 옛 이름은 대요수 이며, 또한 九麗河, 巨流河라고 했다”). 재위 30(BC 79) 고주몽(高朱蒙)이 차릉에서 태어났다(태백일사에서는 동명왕과 고주몽을 다른 인물이라고 하였다)

 

6세 단군은 고무서(高無胥)가 즉위하였으며(BC 59) 이듬해 붕어하셨다. 고주몽이 유명을 받들어 왕위에 올라 대통을 이으셨다. 6세 단군 고무서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공주와 맺어주어 아내를 삼게 하셨다. 이에 이르러 고주몽이 즉위하니 당시 나이 23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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