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에 기록된 동옥저와 개마대산 및 평양왕검성에 대한 기록들(2)

2021.12.04 | 조회 45

 

후한서에 기록된 동옥저와 개마대산 및 평양왕검성 위치에 대한 기록(2)

 

*****내용이 길기 때문에 2회로 나누어 쓴다.

왕험()(王險城) : 하북성 창려(昌黎)

사기에 (위만)조선의 왕험()성은 하북성 창려라는 기록이다.

[원문]

[集解] 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집해] 서광왈 창려유험독현야).

[집해]서광이 말하기를, ‘창려(昌黎)에 험독현(險瀆縣)이 있다.’고 하였다.

***“창려(昌黎) = 험독(險瀆縣) = 왕험성(王險城)”이라는 말이다.

 

[索隱] 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瀆縣. 應昭注 地理志 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색은] 위소운 고읍명. 서광왈 창려유험독현. 응소주 지리지 요동험독현, 조선왕구도. 신찬운 왕험성재락랑군패수지동야)

 

[색은] “위소가 이르길 험독은 (위만조선의) 옛 도읍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서광이 말하길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고 하였으며, 응소는 지리지의 주()에서 요동의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라 하였고, 신찬은 왕험성은 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 위치로 보면 낙랑군, 패수동쪽에 창려, 험독현,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이다. 또 여기에 기록된 패수(浿水)는 하북성 조하(潮河)이다.

 

한서지리지에 험독은 하북성 창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漢書 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한서 권이십팔하 지리지제팔하)

요동군(遼東郡)편에 나오는 험독(險瀆)에 대한 설명부분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 險瀆(응소왈 조선왕만도야 의수험 고왈 험독)

臣瓚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신찬왈 왕험성재악랑군패수지동 차자시험독야)

師古曰 瓚說是也 浿音普大反(사고왈 찬설시야 패음보대반)

 

이를 번역하면,

응소가 이르기를 ‘(험독은) 조선왕 ()만의 도읍지이다. 물이 험한 지역에 의지해 살기 때문에 험독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신찬이 이르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곳은 이로 인하여(또는 이 때부터) 험독이다.’라고 하였다.

 

사고가 이르기를, ()찬이 말한 것이 맞다. (浿)의 음은 (보대반普大反) ‘이다.” **보충설명 : 현재 지나 발음으로 보대(普大)푸따, 푸다이인데 이것을 반절음으로 읽으면 , 파다이, 가 된다.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인 대륙에 현도와 개마, 옥저, 대방, 낙랑 등이 있었고, 이들 지역은 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

 

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좌12군의 진격 경로에 있는 좌124번째의 개마(蓋馬)는 왜색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낭림산맥이 결코 아니다.

128번째의 현도(玄菟)는 왜색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한 압록강 중.상류가 결코 아니다.

1211번째의 옥저(沃沮)는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하는 함경도가 아니다.

또 좌1212번째의 침략경로인 낙랑(樂浪)은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하는 평양이 결코 아니다.

1211번째의 대방(帶方) 역시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와 그 무리들이 말하는 황해도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현도는 난하(遼水)를 건너 바로 현도성이 있었고,

현도에는 개마현이 있었으며, 개마현에는 개마대산이 있었고,

개마대산의 동쪽에 평양 왕검성이 있었다.

평양 왕검성은 앞으로 사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하겠으나, 지금의 창려가 예전의 평양성이며, 고조선의 왕검성이란 기록이 엄연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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