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동이열전에 기록된 동옥저와 개마대산 및 평양왕검성에 대하여(필독)

2021.11.28 | 조회 39

후한서 동이열전에 기록된 동옥저와 개마대산 및 평양왕검성에 대하여(필독)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기록된 동옥저(東沃沮)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 東 濱 大 海北 與 挹 婁夫 余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 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동옥저(東沃沮)”고구려(高句驪)의 개마대산(蓋馬大山) 동쪽에 있다.동쪽으로 큰 바다(. )에 림하고, 북쪽으로 읍루(挹婁)와 부여(夫余)가 있으며, 남으로 예맥(濊貊)이 접하였다. 그 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사방 가히 천리(千里)이다. 땅은 기름지고 좋으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고, 마땅히 오곡이 있고, 밭농사도 좋다.

 

[] 蓋馬,縣名, 屬玄菟郡. 其山在今平壤城西. 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

 

戶五千 無大君王 世世邑落 各有長帥 其言語與高句麗大同 時時小異 漢初 燕亡人衛滿王朝鮮 沃沮皆屬焉 漢武帝 元封二年 伐朝鮮 殺滿孫右渠 分其地爲四郡 以沃沮城 爲玄菟郡 後爲夷貊所侵 徒郡句麗西北 今所爲玄菟故府是也

 

호수는 5천 호이고 큰 군왕이 없이 대대로 읍락마다 각각 장수(長帥: 우두머리)가 있다. 그 언어는 고구려와 대체로 같으나 때때로 다소 다르기도 하다.

 

한나라 초에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이 조선왕이 되었을 때 옥저는 이에 모두 위만에 속하게 되었다. 한무제가 원봉2년 조선을 쳐서 위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땅을 나누어 4군을 삼았다.

 

옥저성은 현도군으로 삼았는데 후에 이맥(夷貊)이 침입하자 현도(玄菟)는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는데, 지금(후한서 기록 당시) 소위 말하는 현도고부(玄菟故府: 현도라고 말하는 곳)가 바로 이곳이다.

 

沃沮還屬樂浪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嶺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時 沃沮亦皆爲縣)”

 

옥저는 낙랑군에 다시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조선의 토지가 넓고 멀어서 단단대령(單單大嶺)의 동쪽을 나누어 동부도위(東部都尉)를 나누어 설치하고, 치소를 불내성에 두었다. 별도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7현을 두었는데, 이때 옥저 역시 이 7현 중의 하나로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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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느시 개마(蓋馬)에 대한 설명 중에 개마는 현도군(玄菟郡)에 속한 땅일 뿐 아니라 이곳이 곧 평양왕검성(平壤王險城)이라고 했으므로 현도군(玄菟郡)의 위치만 정확히 안다면 평양왕검성의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있다.

 

현도군(玄菟郡)의 정확한 위치는 난하(遼水) 동쪽이며, 압록강지역이 아니다.

앞서 동옥저에 대한 주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蓋馬, 縣名, 屬玄菟郡. 其山在今平壤城西. 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

 

위의 설명에서

(1) 개마(蓋馬)는 현()의 이름이며, 현도군(玄菟郡)에 속해 있다고 하였다. (2) 개마현(蓋馬縣)에 개마대산이 있고, 이 개마대산은 지금의 평양성(후한서 작성 당시의 평양성)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3) 후한서 작성 당시의 평양성(平壤城)은 고조선의 수도이었던 왕검성(王儉城)이라고 하였다.

 

개마현(蓋馬縣)을 관할 한 현도군(玄菟郡)은 어데에 있었는가?

개마현은 현도군(玄菟郡)에 속한 땅일 뿐 아니라 이곳이 곧 평양왕검성(平壤王險城)이라고 했으므로 현도군(玄菟郡)의 위치만 정확히 안다면 평양 왕검성의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있다. 현도군(玄菟郡)의 위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보장왕 3(AD 644) 당태종은 유주와 계주 등지를 순행하면서 고구려 연개소문의 죄를 요동과 갈석에서 묻겠다고 하면서 1차 고구려 정벌계획을 밝힌다. 이듬해(AD 645),

 

“<四年 夏四月 世勣 自通定 濟遼水 至玄菟 我城邑大駭 皆閉門自守....五月城陷 男女八千口沒焉 李世勣 進至遼東城下.> (4년 여름철 4월 이세적은 요수(지금의 灤河)를 건너서 현도에 이르렀다. 고구려의 성읍주민은 크게 놀라 성문을 닫고 수비에 들어 갔다......오월 성이 함락되고 남녀 8천명이 모두 죽었다. 이세적은 더 나아가 요동성 아래에 이르렀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현도는 요수(지금의 灤河)를 건넌 다음 이세적이 바로 고구려의 현도성(玄菟城)에 다다른 것이며, 이후 진군한 요동성(遼東城)과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이다.

 

다시 말해서 요수(遼水: 灤河)와 요동성의 중간에 현도성(玄菟城)이 위치해 있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개마는 현의 이름이고 현도군에 속하며, 그 산은 지금의 평양성 서쪽에 있다. 평양은 곧 고조선의 왕검성이다(蓋馬, 縣名, 屬玄菟郡. 其山在今平壤城西 平壤即王險城也).”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지금의 난하(灤河)인 요수(遼水) 동쪽에 현도군(玄菟郡) 개마현(蓋馬縣)이 있었고, 이 개마현에 개마대산(蓋馬大山)이 있었으며, 개마대산의 동쪽에는 후한서 기록 시의 평양성이 있었고, 이 평양성은 바로 고조선의 왕검성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개마대산은 왜색 식민사학자 이병도무리들이 주장하는 낭림산맥이 아니라, 난하(灤河: 遼水)를 건넌 다음 바로 위치한 높은 산() 또는 산맥(山脈)이 바로 개마대산(蓋馬大山)이다.

 

또 개마현(蓋馬縣)이나 개마대산(蓋馬大山)은 현도군에 소속된 것이므로 요하를 건너 존재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 지도에 표시한 단단대령과 개마대산이 있는데, 개마대산은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고 표시한 곳은 현재의 칠로도산(七盧圖山脈)이고, 개마대산이라 표시된 곳은 노호올산(老虎兀山脈)인데, 개마대산은 칠로도산맥이거나 또는 노호올산맥일 것이다. 본인의 견해로는 칠로도산(七盧圖山脈)을 개마대산(蓋馬大山)으로 보며, 개마대산과 단단대령은 같은 장소로 비정(比定)한다.

 

평양성(고조선의 王儉城)은 어데인가?

평양성(平壤城: 고조선의 王儉城)은 이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고 후한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난하(遼水) 동쪽이 현도군(玄菟郡)이었고, 현도군에 개마현(蓋馬縣)이 있었으며, 개마현에 있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평양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바, 필자는 개마대산을 아래에 표시한 지도에서 단단대령이라고 표시한 현재의 칠로도산(七盧圖山)을 개마대산(蓋馬大山)과 동일지역으로 비정하며, 이곳의 동쪽에 있었다고 비정(比定)한다.

 

왕험()(王險城) : 하북성 창려(昌黎)

사기에 (위만)조선의 왕험()성은 하북성 창려라는 기록이다.

[원문]

[集解] 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집해] 서광왈 창려유험독현야).

[집해]서광이 말하기를, ‘창려(昌黎)에 험독현(險瀆縣)이 있다.’고 하였다.

***“창려(昌黎) = 험독(險瀆縣) = 왕험성(王險城)”이라는 말이다.

 

[索隱] 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瀆縣. 應昭注 地理志 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색은] 위소운 고읍명. 서광왈 창려유험독현. 응소주 지리지 요동험독현, 조선왕구도. 신찬운 왕험성재락랑군패수지동야)

 

[색은] “위소가 이르길 험독은 (위만조선의) 옛 도읍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서광이 말하길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고 하였으며, 응소는 지리지의 주()에서 요동의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라 하였고, 신찬은 왕험성은 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 위치로 보면 낙랑군, 패수동쪽에 창려, 험독현,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이다. 또 여기에 기록된 패수(浿水)는 하북성 조하(潮河)이다.

 

한서지리지에 험독은 하북성 창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漢書 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한서 권이십팔하 지리지제팔하)

요동군(遼東郡)편에 나오는 험독(險瀆)에 대한 설명부분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 險瀆(응소왈 조선왕만도야 의수험 고왈 험독)

臣瓚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신찬왈 왕험성재악랑군패수지동 차자시험독야)

師古曰 瓚說是也 浿音普大反(사고왈 찬설시야 패음보대반)

 

이를 번역하면,

응소가 이르기를 ‘(험독은) 조선왕 ()만의 도읍지이다. 물이 험한 지역에 의지해 살기 때문에 험독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신찬이 이르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곳은 이로 인하여(또는 이 때부터) 험독이다.’라고 하였다.

 

사고가 이르기를, ()찬이 말한 것이 맞다. (浿)의 음은 (보대반普大反) ‘이다.” **보충설명 : 현재 지나 발음으로 보대(普大)푸따, 푸다이인데 이것을 반절음으로 읽으면 , 파다이, 가 된다.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경로인 대륙에 현도와 개마, 옥저, 대방, 낙랑 등이 있었고, 이들 지역은 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

 

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좌12군의 진격 경로에 있는 좌124번째의 개마(蓋馬)는 왜색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낭림산맥이 결코 아니다.

128번째의 현도(玄菟)는 왜색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한 압록강 중.상류가 결코 아니다.

1211번째의 옥저(沃沮)는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하는 함경도가 아니다.

또 좌1212번째의 침략경로인 낙랑(樂浪)은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말하는 평양이 결코 아니다.

1211번째의 대방(帶方) 역시 왜색식민사학자 이병도와 그 무리들이 말하는 황해도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현도는 난하(遼水)를 건너 바로 현도성이 있었고,

현도에는 개마현이 있었으며, 개마현에는 개마대산이 있었고,

개마대산의 동쪽에 평양 왕검성이 있었다.

평양 왕검성은 앞으로 사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하겠으나, 지금의 창려가 예전의 평양성이며, 고조선의 왕검성이란 기록이 엄연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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