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때 화폐를 썼으며,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가 아닌 고조선 화폐이다

2021.11.18 | 조회 15

고조선 때 화폐를 썼으며,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가 아닌 고조선 화폐이다

--명도전(明刀錢)은 교과서에 연()나라 화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명도전의 출토량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연의 존속 기간은 기원전323-기원전220으로 기껏 100년 정도에 불과한 연나라의 화폐일 수 없고, 고조선의 화폐일 가능성이 크다는 글이 있어서 일부를 펌했습니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부족하여 우리 고조선 때 화폐를 썼다는 기록이 있고, 명도전도 고조선의 화폐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입니다.

 

https://cafe.daum.net/KYI/dPpJ/58

 

명도전은 고조선에서 통용된 연나라 화폐인가?

(출전:www.coo2.net) 송준희

 

명도전은 1920년대 일본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요령성 부근에서 발굴되어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사관(史觀)에 의해 요령성 일부 및 이북 평양(?)까지 세력을 뻗친 국가의 화폐로 지금까지 인지되어 왔다.

 

고조선의 강역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불분명한 시기를 거쳐 고조선의 강역이 지금 하북성 및 요령성 그리고 동북3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이르렀었다는 이론의 발전이 있는 지금에도 우리는 명도전이 춘추전국시대의 고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왔던 연나라와 제나라의 화폐였다고 알고 있었다.

 

1. 첫째, 고조선의 영역은 어디인가?

일제 식민사학자 주장 이래로 고조선의 영역은 이북 평양 및 요동반도를 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 서북쪽에 위치하였던 연() 나라의 명도전이 고조선의 경제적 물물대체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꾸준이 제기되어 오고 확인된 바로 고조선 강역은 평양 이북으로부터 동북3성 그리고 하북성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연의 영역이 요동까지가 아닐진대 그곳에서 연나라의 화폐인 명도전이 대량으로 발굴되리란 쉽지 않은 사실이며 거짓 가설이다. 즉 연나라는 연() 장성(長城, 현 하북성 서부)까지 넘어오지 못했으므로 연나라가 주체가 되어 명도전을 통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둘째, 시공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타당한 이론인가?

경제의 법칙은 고대나 지금이나 규모와 방식만 달라졌을뿐 물건을 사고파는 데 대체수단으로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고조선에서 연나라의 화폐인 명도전이 사용되었다면 고조선의 경제는 연나라의 경제에 예속되었어야 하고 연나라는 명도전을 찍어내는 일만으로 고조선의 모든 재화를 구매하고 통용시킬 수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만원짜리 화폐의 제작비용이 천원이라고 한다면 천원으로 만원가치의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 연나라와 고조선이 특수관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연나라와 고조선은 자주 전쟁을 치른 나라이고 연나라가 고조선을 지배한 적이 없다.

 

3. 셋째, 청동주조술이 고조선이 주변국에 비해 떨어지는가?

고조선은 대륙에서 제일 오래된 신석기 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홍산문화>의 후예로 추정이 되며 현재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보면 청동기시대의 국가생성설을 뛰어 넘는 나라로 판명되고 있다. 무릇 고조선의 청동기는 기원전 25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한국사학계는 과거부터 한국 청동기의 연대는 기원전 7세기를 넘을 수 없다고 단정하여 왔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평양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기원전 4,000년 까지 올라간다고 보고 되었다. 다뉴세문경의 경우 뿐만 아니라 발견되는 세문경의 무늬는 지금 사람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주조 기술이 동원되었다. 예를 든다면 청동거울의 뒷면에 폭 0.3mm 의 선이 일만 개 이상이 새겨진 주물 거울도 있다. 이러한 기술을 가진 고조선 사회가 명도전이라는 화폐주조 기술이 없었다면 하는 가정은 의미가 없어진다.

 

4. 넷째, 한사군이 고조선지역에 설치되었다면 한나라 화폐인 반량전이 왜 안나오는가?

 

위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나라의 도량형과 화폐구조는 진나라의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한 이후로 그 체제를 답습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가 고조선을 굴복시키고 고조선 지역에 한사군을 수 백 년간 두었다면 왜 평양 일대와 그들이 주장하는 요동성과 동북부에 한나라의 화폐가 보이지 않을까?

 

5. 다섯째, 명도전의 출토량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연의 존속 기간은 기원전323-기원전220으로 기껏 100년이나 될까?

 

연의 존속 기간 동안에 통용되었다고 할 수 없을 무수한 명도전이 동북3성과 요동, 하북에서 가마니로 발굴되어 굴러다닌다. 2,000여 년전 화폐가 기념품 가게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한화로 1000원 정도에 팔렸다. 연나라가 경제대국이 아닌 한 당시 기준 2000여 년 전부터 내려왔던 고조선의 화폐경제를 100년 동안에 바꾸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6. 여섯째, 명도전의 발굴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명도전의 발굴범위는 고조선의 영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평안남도 이북에서 시라무렌강,요하, 천진, 산동 북부까지이다. 이는 러시아학자 부찐이 주장하는 고조선의 강역과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강하구보다는 내륙지방에서 더 많이 발굴 출토된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지나고고학자가 명도전의 연구에 직격탄을 날리는데 중국사화과학원 張博泉 (장보추안)교수가 2004년 후반 <<북방문물>>이라는 학술지에서 그의 논문明刀幣硏究續說 에서 위의 그림과 같은 명도전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라고 발표하였다. 결론은 명도전은 고조선에서 고조선 경제를 위해 만들어 사용한 고조선 화폐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고리가 둥근 형태의 명도전은 중국 연나라 것이 아닌 고조선의 화폐라는 것이지요. 중국의 역사학자는 되도록 이면 자국의 것으로 포함시키려는 유혹이 따르게 마련인데 고조선의 것이라고 했으니 기존의 명도전이 중국 연나라의 화폐라는 학설은 학계에서 검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위 셋째 항목에서 한국의 청동기 연대와 관련하여 기원전 7세기론 운운한 부분은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행 국사 교과서에서 이미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 만주에서는 이보다 앞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명도전과 관련해서 인터넷 자료를 추가로 확인해보니 역사평론가 이덕일도 <<조선일보>>에서 유사한 글을 소개한 적이 있더군요.

 

"현행 국사교과서에 중국 춘추시대에 연나라와 제나라에서 사용한 청동 화폐라고 설명하고 있는 명도전(明刀錢)은 표면에 명()자 비슷한 글씨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칼 모양의 이 화폐는 네이멍구 츠펑(赤峯)에서부터 대릉하 상류의 랴오양(遼陽)은 물론 평북 영변군 세죽리(細竹里), 평북 위원군(渭原郡) 용연동(龍淵洞) 등 한반도 북부에서도 수백·수천 점씩 대규모로 출토된다.

 

만주와 한반도의 명도전은 연나라 세력이 고조선을 공략한 증거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랴오양과 츠펑도 기원전 3세기까지는 고조선 영토라고 보는 러시아의 고조선 연구가 유엠 부찐의 견해에 따르면 의문이 생긴다.

 

이 시기 고조선은 연나라와 수차례 전쟁을 치르는데,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라면 고조선은 적국의 화폐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고조선, 사라진 역사는 이런 모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 성삼제씨는 지린(吉林)대학 역사학과 교수였던 장보취안(張博泉)명도폐연구속설(明刀幣硏究續說)’을 인용해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임을 밝혀냈다. 명도전 손잡이 끝의 구멍이 사각형인 방절식(方切式)은 연나라 화폐지만 원형인 원절식(圓折式)은 고조선 화폐라는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출토된 많은 명도전이 원절식인 이유가 자연스레 이해된다."

 

그러니까 명도전 가운데 구멍의 형태가 사각형인 것을 방절식이라 하고 구멍이 둥근 것을 원절식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원절식의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라는 것입니다.

 

방절식은 "方折式 " 즉 구멍이 모나게 꺾어진 스타일을 말하는 것으로 고리 내부가 네모난 형태의 화폐로 보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위 <<조선일보>> 인용 이덕일의 글에서 방절식의 절()은 절()의 오기로 보입니다.

 

<<고조선 사라진 역사>>(동아일보사)의 저자 성삼제의 글을 찾아서 확인해보니 중국 학자 장보촨(張博泉)의 논문을 인용,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가 아니었을까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동아일보사)

-최근 '고조선'이라는 표지 서체가 개정된 책이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명도전은 고대 연나라의 화폐다.’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 명도전이 고조선의 청동 화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20032월 송호정 교수가 쓴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에서 '명도전 출토 유적의 위치' 그림을 보고나서이다.

명도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는 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선미 연구원이 2000년에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문화와 명도전 유적'에도 나온다. 박 연구원의 논문에서 지도를 보는 순간 필자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명도전 유적 분포와 러시아 학자 부찐이 그린 '고조선의 영역'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발행하는 고고학계 학술지 <북방문물北方文物> 2004년 제4기 논문집에 장박천張博泉교수가 쓴 '명도폐연구속설明刀幣硏究續說'이 실려 있었다. 장 교수는 길림대학 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초기 만주사 연구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출전: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137~157)

그렇다면 중국의 장 교수는 명도전에 대해 뭐라고 발표를 한 것일까요? 먼저 성삼제의 저서에 인용된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만주 지역에는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즉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가 그것이다. 첨수도는 끝이 뾰족한 것이고 원절식은 화폐를 묶기 위해 구멍을 원으로 낸 것, 방절식은 구멍이 사각형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들 화폐 가운데는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고 관련족이고 원절식은 ()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이다."(성삼제의 위 저서, 15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용연동 유적 출토 명도전

<고리의 구멍이 둥근 원절식 명도전>

그런데 원절식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국 고대사 청동기 연대와 명도전의 제조 및 구성 성분에 대한 연구 그리고 고조선 강역에 대한 면밀한 검토 등 과제가 많습니다. 한국 고대 화폐사의 심층 연구도 동반된 연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한국 청동기의 연대가 계속해서 올라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난관이 많지요.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흔히 고조선 연구에 매달리는 이들의 대부분이 재야사학자로 불리는데, 이 책의 저자 성삼제 역시 약력을 보면 역사학 전공자는 아닙니다.


저자 성삼제 -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 재정담당관(46). 연세대 교육학과 졸업, 영국 쉐필드대(Univ. of Sheffield)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학교운영위원회에 관한 연구>(A Study of School Governing Body of England and Wales)로 교육학 석사학위(MEd) 취득. 35회 행정고시 합격후 서울시 교육청, 서울대학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근무.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반 실무반장을 담당.


그러나 재야로 분류되는 이들의 다양한 문제 제기를 우리 사학계가 긍정적으로 검토 활용할 여지는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밀한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제가 보는 견해로는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하여 고조선 강역을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보다 진전이 있어야 결과가 도출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비파형 동검의 출토 유적지와 명도전 출토 유적지의 지도상 표시 부분에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승덕, 적봉, 조양의 트라이앵글 동부쪽의 출토 유적이 상당히 비중있게 밀집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적봉은 명도전의 출토가 많은 곳으로 그 밀집도가 대단히 높으며 조양 일대 역시 밀집도가 높습니다. 이들 지역의 비파형 동검과 명도전 사용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 검토가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습니다.


적봉은 하가점 하층문화의 중심지로 청동기 연대가 기원전 24세기에서 기원전 15세기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기원전 14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로 보이는 하가점 상층문화가 새로이 나타났으므로 주의가 요망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양자의 계승 관계가 보이지 않으므로 다른 문화로 보여지며 따라서 새로운 거주층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과 연계되는 문화의 하나로 위영자 문화가 발굴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가점 하층문화의 주체는 적봉과 북을 오고간 다른 부족일 수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동으로 이동한 고조선의 일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경우 고조선의 기원전 2333년 건국설과 청동기 연대의 기원전 23세기설의 상관성을 고려할 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적봉은 물론이지만 현재의 요령성 요동반도 남단인 대련, 여순 등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발해연안의 요충지로 이 일대의 선박 항해가 빈번했을 것으로 보여지며 인구밀도가 높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명도전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기기 어려운 대목인데 왜냐하면 건너편에 위치한 나라가 바로 강성한 제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으로는 고대 해양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윤명철 교수의 연구를 접합시키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요동반도 남단과 산동반도를 연결하는 해상 루트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요동과 산동을 연결하는 마오[] 군도에 대한 탐색은 앞으로 고고학상의 새로운 발견으로 역사의 비밀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고대의 발해만은 지중해 이상가는 최고의 항해 루트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명도전 관련 논문의 작성자인 중국 역사학자 "張博泉"은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장박천"이며 C.K 시스템(최영애-김용옥 중국어 표기법)으로 표기하면 "- 취앤"(가운데 자의 한국음 표기 상태 불능, 참고 "+ ")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제가 인용한 표기가 인용자에 따라 다르므로 일관된 표기를 위해 C.K 시스템을 예로 제시하였습니다.


또 장 교수의 논문 제목은 한국 한자음으로 <명도폐연구속설>인데, <明刀幣硏究續說>에서 명도(明刀)는 명()자 문양이 새겨진 칼[]이라는 뜻이며, ()는 화폐로 우리의 경우 전에 해당하므로 명도폐는 바로 명도전을 말합니다.


속설도 속설(俗說)이 아닌 기존의 것에 연속, 부가된 주장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어떤 작품의 <속편>이라고 사용할 때의 <속설續說>로 또 명도전연구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학자의 명도전 관련 연구 논문을 입수해서 번역 소개하는 일입니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명도전이 단순히 한 종류만 있지 않았다는 것뿐 아니라 형태를 달리한 원절식 방절식의 두 가지가 사용자 측에 따라 보다 구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장 교수가 언급한 명도전 원절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고조선의 것이라면 <<한서 지리지>>의 기록대로 고조선에서 화폐가 사용되었고 그 화폐는 바로 원절식 명도전이 되는 셈입니다.


참고로 현행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의 법률 8개 조항 가운데 오늘날 전하는 세 가지 조항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도둑질한 자는 종으로 삼는다. 용서를 받으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한다."고 한 대목이 있습니다.


원래 남의 것을 도둑질한 자는 남자의 경우 노()로 여자의 경우 비()로 한다고 했으니 결국 도둑질한 자는 남녀를 노비로 삼는다는 것이고 이를 대속하려면 각 1인당 50()의 가치[]로 한다고 했습니다.

* 출전 및 참고자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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