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이 고조선 문명과 관련있음을 밝히는 기사가 있어 이를 펌한다

2021.11.18 | 조회 13

고인돌이 고조선 문명과 관련있음을 밝히는 기사가 연재되어 이를 펌한다.

 

1. 2020.4.9. :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05

2. 4.10 : 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0

3. 4.12 :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53

4. 4.15 :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95

 

고인돌 루트의 실체I(단군조선과 고인돌)

<전략>

중국 대륙에서 고인돌 자취를 찾다

현 중국대륙에 존재하는 고인돌은 어디에 분포하고 있을까? 아시다시피 고인돌은 중화문화의 묘장제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고대 전통적 묘장법은 흙을 파고 피장자를 묻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중국지역에서 고인돌은 요령지역과 길림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요령지역은 보란점시(普蘭店市)ㆍ와방점시(瓦房店市) 북부와 개주시(盖州市) 남부의 구릉지대와 낮은 산기슭에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길림지역은 합달령(哈達嶺) 남쪽과 장백산지(長山地) 동쪽의 산과 높은 구릉지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는 지역은 요령과 길림의 분수령(分水嶺)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나라시대 동이국가 분포도 (출처: 상생출판 환단고기 역주본)


동북 3()은 말 그대로 고대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동이족의 집단 활동 지역이었다. 그리고 동이족 형성의 기원이 되는 고대사의 3() 인물들은 대륙에서 활동하였던 인물이었으며 과거 중국사에서 전통 지나의 뿌리인 한족이 아닌 동이족의 역사이기에 그동안 신화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홍산문화(bce 7000-bce 1500)의 적극적 발굴과 더불어 3황의 시대를 중국사로 끌어들이며 특히 치우천황과 대적했던 황제헌원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홍산문화 흡수를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도 중국의 주나라 지방정권으로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군조선도 신화로 치부하며 한국사에서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한국사의 주류사학자들이 요동, 만주지역의 홍산문화를 한국사로서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저항 없이 한국의 상고사 지역이 중화문화로 편입된 것이다.


삼황오제 역사무대 (출처 : 상생출판 환단고기 해제본)


자세한 사항은 다음으로 미루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고인돌은 중국문화의 기원인 지나의 문화와는 관련이 없는 묘장제문화로 고대 지나의 한족 문화에서는 없는 묘장제임을 서두에서 밝혔다.


그럼 중국 대륙의 고인돌문화(석붕)은 어디까지 존재하고 있을까? 넓은 대륙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결과는 현재 찾기 어렵기에 각 성() 단위로 유적지를 찾는 수밖에 없다.


독자들을 위해 해당지역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도록 위키백과 지도를 인용하여 화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인돌 분포는 사실상 너무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단순히 동이족의 동북 3성에만 분포 하는 게 아니라 대륙 전반에 걸쳐져 있고 전통적으로 고유한 지나족 영역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중략>

 

정리한다면 중국대륙의 고인돌 분포는 고대 동이족의 분포와 이동경로와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 지역은 모두 동이족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다. 당시 고인돌 묘장제 명품바람이 불어서 널리 분포한다고 한다면 몰라도 동일의 묘장제 문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문화적 동질성이 없다면 결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본격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 아쉽지만 고인돌의 분포지역을 통해 고대 하나의 문화권으로 소통했던 옛 선조들의 역사흔적으로 살펴보게 되어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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