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평은 내몽골 파림좌기이며, 단동이라는 한국사통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2021.11.16 | 조회 20

서안평은 내몽골 파림좌기 지역이며, 단동이라는 한국사통설은 잘못이며 폐기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교용 한국사 교재를 보면 서안평의 위치를 단동으로 표시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한국사학자들의 통설이다. 그러나 서안평이 단동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학설로서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고 수정되어야 한다.

 

서안평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제6대 태조왕(太祖王) 94(AD 147)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秋八月 王遣將 襲漢遼東 西安平縣 殺大方令 掠得樂浪太守妻子>

 

(태조왕 94년 가을 8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서 한의 요동 서안평현을 습격하고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와 아들을 빼앗아 왔다)

 

위의 글을 보면 서안평현은 한나라에 속했던 요동의 서쪽 안평현이거나 요동에 속한 서안평현으로 해석해야 하며, 단동은 요동의 서쪽도 아니고 대방태수가 살고 있는 곳도 아니며, 낙랑태수의 처자가 살고 있는 곳도 아니다.

 

단동은 요동성과 2천리 정도 떨어진 땅이어서 결코 서안평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함에도 한국의 식민 사학자들은 서안평이 단동이라고 역사지도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왜놈들이나 왜놈들의 주장을 추종하는 한국사매국노들이 단동(丹東)을 예전에 안동(安東)이라 하였고, 서안평(西安平)에 안()자가 들어간 지명이 압록강 하류에 있는 안동(安東)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서안평의 위치를 추정하고 비정하였기 때문이다.

 

서안평에 대해서는 15대 미천왕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三年 秋九月 王率兵三萬 侵玄菟郡 虜擭八千人 移之平壤, 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 遼東西安平>

 

(15대 미천왕 3(AD 302) 9월에 왕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범하여 8,000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12(AD 311)에 장수를 보내어 요동의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여기서 나타난 서안평은 역시 요동의 서안평이거나 요동의 서쪽 안평이어서 단동과는 2천리나 떨어진 요동지역이며, 결코 단동이 될 수 없다.

 

또 현도군을 정벌하고 그곳의 주민 8,000명을 평양(平壤)으로 옯겼다고 했는데, 이곳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현도는 당태종의 장수 이세적이 요수(遼水: 지금의 난하)를 건너 바로 공격한 성이 현도성이며, 미천왕은 이곳을 공격하여 사로잡은 8,000명을 태자하 부근의 평양성으로 옮겼던 것이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와 그 무리들이 낙랑은 평양에 있었고 AD 314년 고구려에게 망했다고 했는데, 이보다 3년 전에 현도에서 사로잡은 8,000명을 평양으로 옮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평양성은 지금의 평양이 아닌 요동에 있었던 것이다.

 

이덕일씨는 요사(遼史) 지리지에 파림좌기 지역이 서안평이라고 했다.

https://blog.naver.com/hermeet/222208145350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는 요사(遼史) 지리지에 상경임황부(上京臨滉府)가 한나라 때 요동군 서안평이었다.”고 해서 현재 내몽골의 파림좌기 지역이라 주장하고 있고, 또 서안평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다른 설이 많다. 요동군 서안평현을 공격해서 대방령을 죽이고 또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은 지역이 결코 황해도나 평양 부근이 될 수는 없다.

 

위에 나타난 서안평을 단동이라고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며 반드시 폐기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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