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매국노 이병도 무리들은 진번군 위치를 황해도라 하여 한국고대사를 말아먹고 있다

2021.11.12 | 조회 33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무리들은 진번군 위치를 황해도라 하여 한국고대사를 말아먹고 있다.

한사군의 설치와 진번군의 소멸

사기 조선열전은 사마천(B.C145~86)이 한 무제(B.C 141~87)의 명으로 기록한 중국 최초의 정사로 원문에 보이는 밑줄 친 글자는 사마천이 기록한 글자이고 집해(集解)는 약 560년 후 송나라때(420 - 479) 배인(裴駰)이 추가로 보충 설명한 내용이다.

 

원문에 표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集解] 眞番, 臨屯, 樂浪, 玄菟也.(1909년 판본)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정벌하여 사군을 삼았다.

[집해] (4군은)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이다."라 했다.(1909년 판본)

 

원문을 보면 사기 조선열전을 집필할 당시 사마천은 사군을 삼았다하였으나, 사마천은 사군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한사군(漢四郡)의 이름을 밝힌 것은 560여 년이 지난 후 송나라 때 배인(裵駰)이 집해(集解)를 통해서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 결과 한사군의 위치는 어느 곳이 정확한 지 제대로 모르는 채 2천 년이 넘도록 게속되고 있는 것이며, 한사군 중에서 다만 낙랑(樂浪)의 위치만은 한반도 평양이라는 설과 중국의 갈석산이 있는 창려현(昌黎縣), 진황도시(秦皇島市) 및 산해관(山海關) 일대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진번, 임둔, 현도, 대방의 위치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왜놈 사학자들이나 식민사학자, 민족사학자 간에 그 위치의 비정이 제각각인 것이다.

 

한사군 중에서도 진번군(眞蕃郡)은 기원전 108년 옥저(沃沮)의 땅에 설치되어 불과 25년 후인 기원전 82년 소멸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이병도란 자는 진번군고(眞蕃郡考)라는 글을 발표하였고, 진번군 지역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이 지역은 황해도라고 하였다.

 

이병도는 요동의 지배자 공손강이 후한 헌제 연간(AD 196-220)에 낙랑군(樂浪郡) 둔유현(屯有縣)의 남쪽 황무지에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하고 대방군은 사마의(司馬懿)에 의해서 연이 멸망한 후 서진(西晉)에 인계되었다는 기록을 이용하여 대방군이 황해도라 주장한 것이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황당한 주장

이병도는 둔유현을 황해도 황주로 비정했는데 그 논리를 보자.

 

산해경에는열구,요동에 있다라고 했지만,국사매국노 이병도는 둔유현을 황해도 황주라고 주장했는데,그의 해괴한 매국노적 논리는

 

고려사 지리지 황주목(黃州牧)조를 보면황주목,본 고구려 동홀(冬忽)’이라고 하고 그 밑의 분주(分註)일운(一云)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 하였다.여기우동어홀의 동어(冬於)와 둔유(屯有)의 음이 서로 근사한데 우리의 주의를 끈다.

 

속히 말하면둔유동어는 즉 같은 말의 이사(異寫:달리 적음)가 아닌가 생각된다. ()는 고구려 지명 위에 흔히 붙는 것으로서 방위의 상(:)을 표시하는 의미의 말이 아닌가 추찰된다.

 

하여튼 둔유현이 지금의 황주(黃州)에 해당하리라고 생각되는 점은 비단 지명상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 지리상으로 보더라도 적중(的中)하다고 믿는 바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라고 극찬했다.

 

이병도란 자는 대방군의 7현이 모두 수양제의 침략 경로에 있었으므로 이들 대방군 7현이 모두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 지역인 대륙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적 양심에서 대방군의 이 지역을 대륙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어야 마땅함에도 이를 숨기고 대방을 황해도로 끌어들여 한사군 한반도내 존치설을 합리화 시키고 한국사 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고 행한 놈이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우동어홀(于冬於忽)이 중국 낙랑군 소속의 둔유(屯有)와 소리가 비슷하다는 해괴한 논리를 끌어들여서 둔유를 황해도 황주가 적중(的中)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남에 대방군(帶方郡)과 소속된 6개 현이 황해도 및 한강 이북에 있었다고 주장한 놈이 바로 이병도이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나아가 낙랑군의 군치소(郡治所)인 조선현(朝鮮縣)이 평양에 있었다고 하여 낙랑과 조선현을 평양으로 보았으며, 수성(遂城)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라고 주장하여 중국의 만리장성 끝을 황해도 수안이라고 한 놈이다.

 

晉書에 나타난 한사군은

낙랑군에 속한 1) 朝鮮조선, 2) 屯有둔유, 3) 渾彌혼미, 4) 遂城수성, 5)鏤方누방, 6) 駟望사망의 6개 현이 있었고

 

둔유(屯有)이남의 황무지에 새로 설치한

1) 帶方대방군 소속의 현에는 2)列口열구, 3) 長岑장잠, 4) 提奚제해, 5) 含資함자. 6) 冥海명해, 7)呑列탄열 6개 현이 있었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가 주장한 대방의 7개 군현은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병도란 자는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그러나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12(左十二軍)1) 누방, 2)장잠, 3)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10)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1)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주장했던 조선현의 위치는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2) 낙랑(樂浪)은 좌12군의 12번째 침략경로에 있었다.

 

3)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4)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2번째에,

 

5) 황해도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3번째에,

 

6)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2번째에,

 

7) 기타 제해(提奚)는 우12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8) 더구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가 함경도 덕원이라고 주장한 동이는 수양제 우12군의 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9) 진번(眞蕃)을 처음 옥저(沃沮) 땅에 두었다가 25년 만에 소멸되었다고 했는데, 옥저(沃沮)는 수양제의 침략경로 좌 1211번째에 있었다.

 

한국사매국노이며, 식민사학자인 이병도를 추종하는 한국사매국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낙랑은 지금의 평양에 있지 않고 수양제 침략경로 좌12군의 12번째에 있었다.

 

낙랑은 만리장성의 시발점이고 그곳에 갈석산이 있다고 했으므로 이 지역은 지금의 창려현, 진황도시, 산해관 지역임이 확실한 것이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 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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