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인간의 율려 창조 - 수행론修行論(1)

[한문화]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

대우주는 영원히 변화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소우주임에도 불구하고 생로병사의 유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도 우주처럼 영원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다행히 고대의 성인들은 인간이 몸과 마음의 성숙을 이루어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법방을 체득하여 인류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간이 성숙을 이루어 대우주와 하나 될 수 있는 법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율려 창조의 법방, 수행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의 생성
태극太極은 우주 만유를 낳고 변화 운동하게 하는 모체입니다. 자연에서 태극의 역할을 하는 것은 씨앗(태太)입니다. 씨앗은 껍질과 식물의 본체인 양핵陽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십간으로 구분하면 껍질은 태갑太甲, 양핵은 태을太乙이라고 합니다. 태극의 순수양핵인 태을을 우주정신宇宙精神, 또는 율려律呂라고 합니다. 씨앗에서 새싹이 탄생하고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다시 새로운 씨앗이 생기는 것처럼 율려도 끊임없이 창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려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기본 요소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우주는 음·중·양의 삼원三元(오행으로는 수·토·화)이 구성되어야 비로소 변화 운동할 수 있습니다. 해(양)와 달(음), 지구(토)로 구성된 태양계는 우주정신을 생성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소주천小周天의 과정에서 정精(음)을 생성하고, 지구가 해를 공전하는 대주천大周天의 과정에서 해가 신神(양)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일월이 생성한 정신에서 토土(중)가 자화되면 토화작용土化作用을 통해 순수정신이 생성됩니다. 그러면 순수정신과 토가 하나로 압축 공약되어 우주정신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월이 발한 정신이 지구로 집중되어 내려오면, 지구에서는 일월에 의해 발생한 열기熱氣와 한기寒氣가 교류하면서 수화水火를 생성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습기濕氣(토)가 화생하여 토화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수·토·화가 구성되면 이들이 하나로 통일되어 만물정신(인간정신)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인간 몸에는 삼원三元 구조가 갖춰져 있어서 스스로 정신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신장腎臟은 월月을 대행하여 수水의 작용을 하고, 심장心臟은 일日을 대행하여 화火의 작용을 합니다. 비장脾臟은 지地를 대행하여 토土의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음식을 먹으면 오장육부에서 기혈氣血을 생성합니다. 그러면 혈血을 바탕으로 정精이 형성되고, 기氣를 바탕으로 신神이 형성됩니다. 즉 인간정신은 일월정신에서 생성된 수화의 운동을 바탕으로 만물정신과 함께 형성됩니다. 동시에 만물정신을 음식의 형태로 섭취하면 오장육부에서 기혈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정신의 한계를 지니고 태어납니다. 첫째, 인간정신은 한기와 열기에서 탄생한 수화水火에서 생성됩니다. 둘째, 부모의 건강과 심리 상태에 의해 율려의 생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셋째, 음식을 섭취하여 생성된 혼탁한 기혈에서 정신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1년 동안 생성하는 율려수는 우주보다 적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칠정육욕과 과로, 정욕으로 인한 정기의 누설, 부족한 영양 섭취 등으로 건강과 수명에 이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동석 선생님은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첫째, 자기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자기 자신의 명령에 잘 부응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셋째, 정욕을 남발하지 않는 수양修養을 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토화작용에 만전을 기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총명도통聰明道通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적인 생활을 하여 정욕을 막기만 한다고 해서 정신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정신에서 음양의 순수핵심인 율려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혼탁함을 제거해서 압축 공약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부족한 율려수를 보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적 우두머리(영장靈長)인 인간에게는 율려를 직접 창조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천상의 신명들이 윤회하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학수고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수행의 4단계
인간정신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일월정신을 바탕으로 생성된 인간정신은 순수음양의 율려가 아닌 혼탁한 정신입니다. 인간이 우주와 합일하기 위해서는 우주정신인 율려로 몸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혼탁한 인간정신에서 순수음양의 핵인 율려를 채취해야 합니다. 그 법방이 바로 수행修行입니다.

인간정신에서 율려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네 단계의 수행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음식을 먹는 걸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벼농사를 지으면 볍씨가 열립니다. 이후 첫 번째 하는 일은 가을에 수확하여 알곡만 추려서 저장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도정을 하여 껍질은 버리고 쌀만 추려 냅니다. 세 번째로는 쌀을 씻어서 밥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한약을 달여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들에서 약초가 자라면 첫 번째로 약초를 캡니다. 두 번째로는 좋은 것을 선별하여 씻어서 말립니다. 세 번째로 약초를 달여서 약을 제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한약을 마시고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생산, 수확, 선별, 제조, 사용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인간정신에서 순수 정수인 율려를 채취하는 과정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정신은 지구의 수화운동을 통해 만물정신과 함께 생성되고, 동시에 만물정신을 음식으로 섭취하면 오장육부의 기혈운동을 통해 생성됩니다. 수행을 하면 첫 번째 단계로 인간정신과 천지기운이 하단전에 집중되어 저장됩니다. 이를 폐기閉氣, 또는 축기蓄氣라고 합니다. 두 번째 단계로 소주천을 통해 인간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소약小藥을 채취하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로 대주천을 통해 대약大藥을 생성합니다. 대약이 바로 순수양핵인 율려입니다. 율려를 생성하면 마지막으로 이를 사용하여 진리의 몸인 도태道胎(성태聖胎)를 만들게 됩니다. 인간정신을 생산하고 수확(저장)하는 것은 기초 단계에 해당하므로, 율려를 본격적으로 생성하고 도태를 형성하는 것은 생장성生長成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고이래로 진시황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불사약과 불로초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불사약과 불로초는 외단의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사약은 내단內丹으로 형성된 소약과 대약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로초는 씨앗의 양핵 속에 자리한 새싹, 즉 대약(율려)에서 생성된 도태道胎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1) 수행은 인체에서 금단金丹을 기르는 내단內丹과 외부에서 금단을 만들어 복용하는 외단外丹으로 나뉜다. 그러나 외단은 내단에 비해 정신을 생성하기에 더 효과적인 고농도의 에너지를 섭취한다는 이점만 있을 뿐이다. 최고의 금단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음식의 형태로 섭취하여 기혈을 생성하고, 기혈에서 인간정신을 형성하여 내단을 만드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세 가지 보물, 정기신
- 율려의 상태 변화
우주 변화의 원동력인 율려는 세 가지의 상태 변화를 합니다. 고체와 액체와 기체가 그것으로, 이를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정기신은 보통 초가 타는 것에 비유합니다. 초는 정精, 불꽃은 기氣,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신神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고체인 초는 정精이 결정화된 사리舍利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精은 불에 의해 녹은 촛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액精液이란 말처럼 정은 액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신에서 말하는 기氣는 열기나 한기와 같은 에너지라기보다 기체氣體의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기는 촛농이 타기 직전의 기체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神은 초의 불꽃과 같습니다. 신은 기(기체)가 더 미세하게 분열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기체가 초고온에서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를 플라스마plasma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은 플라스마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은 신의 광명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순수 생명 에너지인 율려는 고체·액체·기체·플라스마와 에너지로서의 파동 형태까지 포함하여 총 다섯 가지의 상태 변화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선천적인 정기신
정기신은 모두 율려의 변형태로 본래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식물은 수술과 암술이 만나 씨를 맺으면 그 속에 정기신이 양핵의 형태로 통일되어 일체로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배아에 정기신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태아의 몸이 형성되면서 정기신이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배꼽 아래에 있는 하단전下丹田에는 정精이 자리하고, 가슴에 있는 중단전中丹田에는 기氣가 자리하며, 머리에 있는 상단전上丹田에는 신神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태아의 몸에 깃든 정기신은 천지부모가 부여하여 형성된 생명의 근본 뿌리이므로 선천적인 정기신(원정元精·원기元氣·원신元神)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태아가 자궁 속에서 하는 호흡을 태식胎息이라고 합니다.

- 후천적인 정기신
아기가 탄생하면 태식은 ‘으앙’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폐식肺息(폐호흡)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음식을 섭취하면서 기혈운동을 통해 후천적인 정기신, 즉 인간정신이 생성됩니다. 뒤에서 알아보겠지만 이때 본래의 신성인 원신元神의 작용은 미미해지고, 식신識神이 전면에 등장하여 삶을 주도하게 됩니다. 원신과 관련한 선천적인 정기신을 ‘원정·원기·원신’이라고 한 것처럼, 식신과 관련한 후천적인 정기신은 ‘식정識精·식기識氣·식신識神’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2) ‘선천적인 정기신’의 원신은 생명 에너지이고, 식신에 대비되는 원신은 인간에게 내재한 본래의 신성神性이다. 원기도 ‘선천적인 정기신’ 중 하나를 뜻하기도 하고, 율려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의 용어를 용처를 철저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는 데서 개념의 혼동이 발생하고 있다.


- 후천의 정기신
그런데 인간이 태어난 목적은 성숙을 이루어 우주와 합일하는 데 있습니다. 소주천과 대주천을 통해 폐식肺息에서 태식胎息으로 다시 전환되면 후천적인 정기신을 바탕으로 후천의 정기신인 소약과 대약을 채취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약(율려)에서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입수불익入水不溺 입화불분入火不焚) 도태가 형성되어 불로장생하게 됩니다. 수행을 통해 완성된 도태를 부처의 몸인 보신報身, 신선의 몸인 선체仙體, 진리의 몸인 도체道體라고 합니다.

- 정기신의 생장성
사람이 태어나기 전(미생지전未生之前)을 선천적이라고 하고, 사람이 태어난 후(이생지후已生之後)를 후천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받은 정기신은 선천적인 정기신이고, 태어나서 생성된 정기신은 후천적인 정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생은 다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기를 선천先天, 후반기를 후천後天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후천적인 정기신은 다시 음식을 섭취하여 형성된 선천의 정기신과 수행을 통해 생성한 후천의 정기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천적과 후천적(선천·후천)은 모두 사람이 생겨나서 자라고 성숙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정기신도 생장성의 3단계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3) 기존 수행서에서는 ‘선천의 정기신’을 ‘후천적인 정기신’이라고 한다.


후천 정기신과 도태의 형성
- 정기신의 역할
위의 내용에서 정기신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사람의 몸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생:선천적인 정기신은 자궁 속에서 태아의 몸을 만듭니다. 그러면 태아의 몸은 선천적인 정기신을 저장하는 저장소 역할을 합니다.

장: 사람이 태어나면 음식을 섭취하여 선천의 정기신을 생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이용하여 몸을 길러서 선천의 정기신을 저장하게 됩니다.

성: 수행을 통해 후천의 정기신을 생성하면 이를 이용하여 열매의 몸인 도태道胎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도태에 후천의 정기신(율려)을 저장하게 됩니다. 이는 식물이 씨앗의 양핵으로 새싹을 만들고, 영양분을 받아 줄기·잎으로 성장하다가, 진기眞氣를 통일하여 열매(씨)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란 사실조차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력에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즐기다 가는 것이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행을 해서 도를 성취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우주가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목적은 성숙한 열매(씨)를 맺는 데 있습니다. 이는 천지부모가 내린 천명天命입니다. 인간이 천명을 완수하여 천지의 은혜에 보은하는 길은 수행을 통해 후천 정기신(율려)을 창조하여 열매 몸(도체)과 열매 정신(원신)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 율려를 저장하는 최적의 몸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생명 에너지를 가장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몸이 가장 좋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는 액체수소를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수소는 대기 중에서 기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단위 부피당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적습니다. 그래서 수소를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는 특수 용기를 제작해서 액체로 저장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려를 최대한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는 생명 에너지를 정精으로 액화시켜서 저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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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액체수소를 저장하기 위해 특수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특수한 몸으로 바꿔야 합니다. 가장 작은 씨앗에 식물의 양핵이 저장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용기가 단단하기만 해서는 깨져 버립니다.
*4) 정精을 많이 축장하여 인체의 생명 에너지가 강해지면 피의 색깔이 백색으로 변한다.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순교하였는데, 옥리가 그의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럼 어떤 몸이 최적의 몸일까요? 그것은 놀랍게도 새싹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아기의 몸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서 경직된 몸을 인위적으로 풀어 주는 것입니다. 이후 수행이 깊어지면 몸이 아기처럼 윤택이 나고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수행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진리의 몸인 도태가 완성되어 율려를 온전히 저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깨달은 분들이 그토록 아기나 동자童子의 몸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것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원신과 식신
태극(씨앗)에는 만물의 구성요소인 리理·기氣·신神·심心이 일체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아에는 생명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이 깃들게 됩니다. 상단전(송과체)에는 본래 신성인 원신元神이 깃들고, 심장에는 식신識神이 깃드는 것입니다. 원신은 우주와 하나 되어 작용하고, 식신은 개인의 의식 작용을 주관합니다.

凡人投胎時(범인투태시) 元神居方寸(원신거방촌) 而識神則居下心(이식신즉거하심)
사람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올 때에 원신은 이마의 한가운데에 거하고 식신은 그 아래에 있는 심장에 거하게 된다. - 『태을금화종지』

모든 사물에는 보편적 신성으로서 생명 활동의 본성이 되는 비인격적인 원신元神이 있고, 아울러 그 사물을 주재하는 인격신으로서 주신主神이 있습니다. - 『증산도의 진리』 238쪽


애초에 태아는 원신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형성되면서 식신의 영향에 들게 됩니다. 우주와의 일체감이 사라지고 개별적인 자아自我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음식을 먹고 선천의 정기신으로 육체가 성장하면서 식신이 발하는 칠정육욕의 포로가 되어 에고(자아自我)의 삶을 본격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소약과 대약을 채취하여 후천의 정기신(정精)이 다시 창조되면 혼탁한 기운이 맑아져서 성性과 명命이 발현됩니다. 즉 본래의 신성인 원신이 다시 각성되어 본성本性이 온전히 드러나서 천지인 합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氣之炯炯不昧者(기지형형불매자) 乃眞性也(내진성야)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이다. - 『단군세기 서』


식신의 작용
- 육식六識
『우주변화의 원리』 책에서는 의식 작용이 오장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를 오관五官의 관능官能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오관을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다섯 감각기관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유식설에서는 오관에 의意를 합쳐서 육근六根이라고 합니다. 육근에 대응하는 인식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육경六境입니다. 그리고 육근으로 육경을 식별하는 여섯 가지 마음 작용을 육식六識(안신·이신·비신·설신·신신·의식)이라고 합니다. 유식설을 태극도설과 연결하면 아래와 같이 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비간신肺脾肝腎의 기능을 관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의 활동 주체인 심心(토土)은 이와 같은 모든 관능의 도움을 얻음으로써 감각·지각·기억·사고의 순서를 거쳐서 이해, 즉 지智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364쪽


- 욕심慾心
석가모니 성자는 인간이 에고의 삶을 살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근본 원인이 욕심慾心에 의한 집착執着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드러낸 불교의 교리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입니다. 고제苦諦는 현실 세계의 참모습을 설명하는 것으로 현실 세계는 모두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생로병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집제集諦는 이러한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설명한 것으로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에 의해 발생한 집착 때문이라고 합니다. 멸제滅諦는 온갖 괴로움과 무명·번뇌를 멸하면 그것이 해탈이라는 것입니다. 도제道諦는 도의 이상향인 열반에 이르는 수행법으로 팔정도八正道가 있습니다.
*6)

*6) 팔정도 :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그런데 애초에 인간에게 집착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면 삶의 고통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고苦가 발생하는 원초적인 근원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아가 자궁에서 형성될 때에 몸은 솜같이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때는 원신이 주가 되어 자아自我라는 인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체(음)가 정신체인 영혼(양)을 감싼 구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자란다는 것은 음형陰形이 양신陽神을 억눌러서 위축萎縮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식신의 작용이 주가 되어 자아가 형성되고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우주의 선천 봄여름철에는 지축의 경사로 인한 음양의 불균형으로 인해 토화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자의식과 욕심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이란 것은 음형陰形이 양陽을 위축하려는 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 인간이 악한 것은 욕심이 지나칠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욕심은 목적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목적은 형形을 양養하려는 데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282~283쪽

오늘의 인간은 그 본질인 선善을 유지해 내지 못하고 점점 악惡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인간이 타고난 바의 협착狹窄한 형체에 있어서의 토화작용土化作用이 점점 위축하여 가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후천적인 결과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280쪽


유교의 경전인 『중용』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마음의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은 하나일 뿐인데 ‘형기形氣의 사私(개인별 차이)’ 때문에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다름이 생긴다고 합니다. 인심은 인간의 신체적인 기운에서 나타나고, 도심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각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몸을 죄악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선악과를 따 먹게 한 건 여자인 이브입니다. 하지만 육체를 가진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선 선악과와 같은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여기고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체가 얼마나 중요한 무가지보無價之寶인지 모르고 저지르는 단견의 소치입니다. 인간의 몸은 생명 에너지인 정신을 생성하여 간직하는 저장소입니다. 나아가 우주정신인 율려를 창조하는 성배聖杯입니다. 그러므로 정精을 누설하면 육체의 굴레에 갇혀 식신의 명령에 따라 살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지만,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역법逆法을 사용하여 정을 축장하면 진리의 몸으로 거듭나 영원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수행서인 『혜명경』에서는 누진통漏盡通이라고 합니다. 이 경지에 다다르면 원신이 각성되어 태극의 마음인 아뢰야식阿賴耶識(제8식)의 경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공덕功德을 쌓아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루면 무극의 마음인 아마라식阿摩羅識(제9식)에서 노닐며 천지인이 합일하여 만사지萬事知하고 만사여의萬事如意하게 됩니다.

정기正氣가 남자 16세 이후로 꽉 차면 자연적으로 몸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되는데, 수행을 통하여 추호의 새어 나감도 없게 하는 경지를 이루는 것을 여래는 누진漏盡이라고 불렀다. - 『혜명경·집설혜명경』


인간의 몸과 마음
이상을 통해 태극이 음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도 두 가지의 실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래의 나인 진아眞我와 현상적인 나인 자아自我가 그것입니다. 성자와 철인들의 가르침은 대체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진아는 진리와 합일한 참된 실재이고, 자아는 진리와 분리된 가상이므로 자아의 허망함을 깨달아 진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르침의 골자입니다.

人心惟危(인심유위) 道心惟微(도심유미) 惟精惟一(유정유일) 允執厥中(윤집궐중)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精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 - 『서경』 「우서 대우모」


대표적인 예가 불교의 바다와 파도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영원한 진리의 바다(공空)에서 파도처럼 임시로 나타난 가설된 세상(가假)이므로 허망함을 깨달아 본래면목本來面目(중中)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데아Idea의 복사판이자 그림자로 여긴 플라톤의 주장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7)

*7) 니체는 현재의 삶 속에서 가치를 찾고 초인超人(Übermensch)이 되라고 외쳤지만, 삶을 영원회귀를 반복하는 괴로운 것으로 여겼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범부들이 중생으로 거듭나 진리와 하나 되기를 염원했던 그들의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이 설파했던 방편 설교 때문에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범부들이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자신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이승)을 고통과 죄악의 세상, 가짜 세상으로 치부하는 허무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죽어서 가는 저세상(저승)을 진짜 세상, 성스러운 천국으로 동경하고 만 것입니다.
*8)

*8) 홀로그램 우주론에 따르면 현실 세계는 홀로그램의 간섭무늬처럼 무질서한 환영인데, 간섭무늬를 인간의 뇌가 3차원으로 변환시켜서 실재처럼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깊은 차원에는 모든 사물과 물리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본질적인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인간이 우주를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것일 뿐, 이 때문에 현실 세계가 비실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뇌는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대우주의 실상을 모두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이란 살아서 옳은 일을 하고 복을 누려야 옳거늘, 죽어서 극락세계로 간다는 불가(佛家)의 그릇된 가르침을 믿고 일생을 홀로 사는 것은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니라. (도전 2:8:3)

상제님께서 안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 해동조선에 지상천국을 만들리니 지상천국은 천상천하가 따로 없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7:83:7)


이렇게 된 원인은 진아와 자아를 대립적인 관계로 여겨서 위와 같이 잘못된 비유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9)
그럼 인간의 두 가지 실체를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하나의 대안은 음양론에서 말하는 체용體用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조상이 체라면 자손은 용에 해당합니다. 혈통의 보존과 가문의 번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손은 이 세상에서 현실적인 역할을 하고, 조상은 자손이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저세상에서 지도하고 보호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체와 용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진아와 자아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의 나(진아)가 본체라면, 현상으로 드러난 나(자아)는 작용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진아와 자아는 실상과 허상의 관계가 아닌, 성숙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상호 보완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9) 진아眞我는 ‘참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아自我는 이와 반대되는 가아假我로서 가상, 가설(임시), 가짜의 의미로 읽힌다. 그런데 대중들은 가짜(허상)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범하기 쉬운 실수가 진아와 자아를 독립적인 실체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자아는 허상이고 진아만이 실상이므로, 자아가 허상이란 걸 깨달으면 그 즉시 진아를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더해 선천적인 정기신을 회복하면 본래의 신성인 원신이 각성되어 진아를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거 지향적인 발상으로 만물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 사는 연속체라는 걸 무시한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씨앗과 뿌리는 체體, 줄기와 잎은 용用에 해당합니다. 씨앗에서 탄생한 나무는 뿌리를 바탕으로 하여 줄기와 잎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뿌리와 줄기·잎은 독립된 존재가 아닌 일체로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의 목적은 열매를 맺어 다시 씨앗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즉 생장성의 과정을 거쳐 원시반본原始返本함으로써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삼변성도三變成道).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태아일 때는 본래의 신성인 원신元神의 영향 아래에서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무경계에서 노닐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형성되어 성장하면서 식신이 발현되어 나와 너를 분별하는 자아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본래 목적은 진리를 깨달아 성숙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후천의 정기신을 창조하여 열매의 몸인 보신報身을 완성하면 본래의 신성인 원신이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거듭난 원신은 태아일 때의 원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거듭난 원신은 체體로서의 원신의 속성과 속세를 체험하며 만고풍상을 겪은 용用으로서의 식신의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대우주의 본체와 현상, 진眞과 속俗이 모두 진리임을 깨달은 성숙한 열매 원신입니다.
*10)

*10) 켄 윌버의 견해를 빌리면 아我도 ‘전前 자아 → 자아 → 초超 자아’의 생장성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다.




원신이 깃들어 있는 송과체
송과체松果體는 간뇌의 제3 뇌실 뒤 정중상벽에 위치합니다. 대체로 인당과 양 귀의 윗부분이 십자로 만나는 곳입니다. 솔방울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솔방울샘(pineal gland)이라고 합니다. 신체의 리듬을 담당하고 빛을 감지하여 제3의 눈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수행 문화에서는 마음의 눈이라 하여 신성하게 여깁니다.
*5)
그리고 세속에 찌들지 않은 근본적인 눈이라고 여겨 불상의 이마에 또 하나의 눈으로 장식하고, 부처의 머리를 솔방울 모양으로 만듭니다. 힌두문화에서는 사람의 이마에 붉은 점(빈디Bindi)을 찍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상록수인 소나무를 사용하는데, 솔방울은 생명의 원천·영생을 상징합니다. 송과체는 데카르트가 마음과 정신이 만나는 기관이라고 주장한 이후 영혼이 머무는 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에서는 뇌를 신명지부神明之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송과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기억과 행위는 홀로그램hologram의 형태로 송과체에 주로 기록된다고 합니다.
*5) 『태을금화종지』에서는 천목天目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