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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탐구]

    원전原典탐구 시리즈 | 원전原典 공부 동학 편 『용담유사』를 펼치다① - 교훈가敎訓歌 -

    왜 『용담유사』를 읽어야 하는가?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와 인문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道典 2:30:15)

    동학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道典 5:4:1)


    시천주는 인간 삶의 궁극의 여정에서 천지의 원주인을 만나는 것, 그 새 진리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 근대 역사의 진정한 출발점은 바로 천주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종도사님 도훈, 개벽문화북콘서트 태전 편)


    『도전』 말씀이나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을 보면 때론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그런지. 그래서 『용담유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용담유사』는 『동경대전』과 더불어 해월 선생의 주도로 편찬된 경전입니다. 이는 ‘상제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을 지어 포덕천하布德天下하라’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최수운 대신사가 쓴 한글가사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도전』에서 인용한 ‘수운가사’는 바로 『용담유사』를 말합니다.

    해월 선생이 1879년부터 본격적으로 동학의 세 가지 원전을 간행하며 1880년대 동학이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강원도를 넘어 충청도, 전라도에 동학이 전파되며 동학혁명의 주역들이 입도하였고, 1894년 동학혁명을 전후로 상제님의 주요 성도들도 동학에 입도해 동학혁명에 참여하였습니다.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道典 2:31:6)


    상제님은 왜 ‘수운가사에 큰 기운이 갊아 있다’고 하셨을까요? 『도전』이 인간의 몸으로 직접 강세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와 『도원기서』는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성령으로 계시면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수운과 문답을 나누며 내려 주신 당신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와 『도원기서』는 상제님의 말씀을 담은 초기 전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상제님의 진리 말씀은 우리들에게 상제님의 분신과도 같아서 너무나 소중합니다. 동학 경전 속에서 상제님의 직접적인 말씀과 상제님의 자취가 느껴지는 말씀을 통해 『도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의 진리 깨달음과 포교의 열정을 더욱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훈가 생각해 보기│Q and A


    1) 『용담유사』에서 「교훈가」를 제일 앞에 실은 이유는?
    「교훈가」를 지은 시기에 대해 언급한 『도원기서』에 따르면, 최수운 대신사가 ‘1860년(庚申)에 도통을 받고 거의 한 해 동안 수련한 다음, 「용담가」를 짓고 또 「처사가」와 「교훈가」를 짓고 「안심가」도 함께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861년 11월 전라도 남원으로 옮긴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행장을 차려내어 수천리를 경영하니 … 너희들을 어찌하고 가잔 말고 … 그러나 할 길 없어 일조분리 되었더라’는 구절을 볼 때, 관의 지목을 피해 급히 경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1861년(辛酉) 겨울에 지은 글입니다.

    『용담유사』는 「교훈가」, 「안심가」, 「용담가」, 「몽중노소문답가」, 「도수사」, 「권학가」, 「도덕가」, 「흥비가」, 「검결」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경대전』은 집필한 시기에 따라 수운 대신사의 글을 차례대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교훈가」는 「안심가」와 「용담가」보다 뒤에 지은 것임에도 편집자들은 「교훈가」를 맨 앞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1881년 6월 여덕규의 집에서 『용담유사』를 편찬할 당시, 해월 선생은 수운가사를 창작 시기에 따라 연대순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어떤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의도를 가지고 가사의 배치 순서를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월 선생의 의도를 논외로 한다고 해도 「교훈가」에는 아홉 편의 가사 전체에서 직접 화법으로 된 상제님의 말씀 분량이 51.4%를 차지할 만큼 상제님의 가르침이 잘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용담유사』의 머리 편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해 보입니다.

    또한 「교훈가」에 담겨 있는 동학의 핵심 키워드인 ‘동귀일체’, ‘무극대도’, ‘정심수도’, ‘포덕천하’, ‘지상신선’ 등을 볼 때, 나머지 다른 가사와 비교해 봐도 동학의 전체 메시지를 가장 잘 담고 있습니다.

    2) 상제님이 칭찬하신 최수운 대신사의 성경신
    ‘흉중에 품은회포’, ‘구미용담 찾아들어 중한맹세 다시하고’, ‘자네사람 백천만사 행할때는 무슨뜻을 그러하며 입산한 그달부터 자호이름 고칠때는 무슨뜻을 그러한고… 복록은 아니빌고 무슨경륜 포부있어 … 불출산외 하는뜻은 … 이말저말 붕등해도 내가알지’


    위 구절에서 볼 때, 수운 대신사는 어린 시절 신분의 한계에도 남다른 뜻을 품고 주유팔로周遊八路를 하며 10년간 세상을 두루 살폈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울산의 집으로 돌아와 초가삼간을 짓고 수행에 들어가게 됩니다.

    『도원기서』에 따르면, 을요(1855)년 어느 날 금강산 유점사의 한 스님으로부터 받은 신교와 기도의 요체를 적은 책의 가르침대로 천성산에 올라 삼단으로 제단을 쌓고 폐백을 올린 다음, 49일 동안 천주님이 강령하시길 축원드리며 천주님의 천명과 신교가 있기를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미산 용담으로 들어와 자를 성묵性默, 호를 수운水雲으로 짓고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쳐 구도의 뜻을 더욱 굳건히 세웠으며, 복록을 구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수운 대신사는 세상을 건지려는 지극한 뜻을 품고 성지우성誠之又誠을 다해 49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낙지이후 처음이로다 착한운수 둘러놓고 포태지수 정해내어’라는 구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최수운이라는 이름 없는 동방 조선의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천지의 가을개벽을 선포하는 선구자로 쓰시기 위해 언제부터 준비를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마테오 리치 신부와 더불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천하를 주유하시면서, 수운 선생이 태어나던 1824년부터 1860년 천명과 신교를 내려 주시는 순간까지 수운의 삶을 하나하나 지켜보시다가, 마지막 절정의 순간에 도통을 내려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논학문」에 있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그 심법의 경계에서 하느님과 한마음으로 소통되며 ‘지위천주지자至爲天主之者’인 수운에게 상제님께서 마침내 도통을 내려 주셨습니다.

    3) 「교훈가」에서 수운 대신사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섬겼는가?

    「교훈가」에서 최수운 대신사는 ‘하늘님’이라는 호칭을 총 8회 언급합니다. 그리고 ‘천생만민’, ‘명내재천’, ‘천은天恩’ 등의 표현에서처럼 수운 대신사는 ‘천天’을 이법적인 ‘하늘’ 또는 인격적인 ‘하늘님’의 뜻으로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늘님이 사람낼때 녹없이는 아니내네’, ‘ … 우리복이 이러할까 하늘님도 하늘님도 … 어찌앞날 지낸고생 그다지 시키신고’에서 하늘님은 천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자 복록과 수명을 관장하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는 『용담유사』 전체에 깔려 있는 초기 유학의 전통적인 하느님관입니다.

    수운 대신사는 이러한 전통적인 하느님관을 수용해서 자신에게 도통을 내려 주신 존재를 ‘하늘님께 아뢰오니’, ‘하늘님 하신 말씀’처럼 동일한 인격적 하느님으로 통합하여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수운과의 천상문답 사건에서 우주의 질서를 주재하시는 통치자로서 수운에게 당신님의 신원을 ‘상제上帝’로 밝혀 주시며 그의 깨달음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동경대전』 「포덕문」과 「논학문」을 보면, 수운 대신사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느님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태고로부터 천지가 춘하추동 하는 사계절의 변화 질서에 따라 어김없이 순환 무궁할 수 있도록 주재하시는 천주님이 계시는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은 비와 이슬이 천주님의 조화가 아닌 저절로 내리는 줄 알고 있다’고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첫 문장은 동학의 제1의 명제이자 절대 명제입니다. 동경대전 「포덕문」의 첫 구절은 구약의 「창세기」 제1장보다 더 놀랍고 위대한 해상도로 진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논어』 「학이편」의 제1장은 물론, 유불선의 어떤 원전에서 어떤 장을 가져와도 「포덕문」의 이 첫 구절이 그려 주는 진리 스케일에 못 미칩니다.

    수운 대신사는 이 우주에는 질서가 있으며 신의 지문과도 같은 천지변화를 다스리는 주인이 있다는 대명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동경대전』을 관통하는 이 제1명제는 『용담유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교훈가」의 ‘부하고 귀한 사람 이전 시절 빈천貧賤이오 빈하고 천한 사람 오는 시절 부귀富貴로세’, ‘천운이 순환하사 무왕불복 하시나니’, ‘순환지리 회복인가 어찌이리 망극한고’,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 ‘낙지이후 처음이로다 착한운수 둘러놓고 포태지수 정해내어’라는 구절을 볼 때, 수운 대신사에게 도통을 전해 주신 하늘님은 천지운수를 질정하시고 주재하시는 통치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교훈가」에서 ‘네 몸에 모셨다’는 말은 시천주인가 인내천인가?
    “나는도시 믿지말고 하늘님을 믿어스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 내역시 바라기는 하늘님만 전혀 믿고”


    『용담유사』에서 시천주侍天主를 언급한 유일한 구절인데 오히려 많은 동학 연구자들은 「교훈가」의 이 구절을 인내천人乃天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인내천은 구한말 수직적인 신분 사회에서 평등 사회로의 이행移行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진리의 안식처가 될 수 있으나,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어젠다agenda는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근대 서구 정신을 상징하는 사유체계에 동학을 구속시킬 뿐입니다. 9천 년을 관통하는 신교문화를 복원한 동학을 독창적인 한국인의 가치관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서양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은 서양 우월주의에 빠져 동학의 본래 가치를 왜곡시킬 뿐입니다.

    인내천은 최수운 대신사가 19세기 동서 문명의 한계를 넘어 인류를 아버지 천주님의 무궁한 진리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 방향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상으로 손병희의 사설일 뿐입니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단편적인 등식으로 보는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인간과 신의 주도권 다툼을 지양하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복원시켜야 합니다.

    인내천이 하늘님의 무궁한 도법을 닦아 인간이 무궁한 창조성을 발현시켜 진리의 표상인 천지부모와 한마음의 경계를 체득한 태일太一 인간을 향해 나아간다는 해석으로 갈음된다면 일부 수용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네 몸에 모셨으니’라는 구절은 모실 시侍 자에 집중해야 합니다. 흔히 쓰는 ‘마음에 모셨다’는 말보다 몸에 모셨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상제님과의 첫 만남이 충격적이었으며 황홀했음을 온몸으로 직접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것은 「안심가」 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논학문」에서는 모실 시侍를 상제님의 성령의 기운을 받고 말씀을 받드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신다는 것은 현실 세계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가 늘 하느님과 소통하며 교감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수운 대신사가 본 세상만사 모든 문제의 본질은 사람들이 천주님과 분리되어 각자위심各自爲心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가올 가을개벽의 괴질운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늘님을 위하고 지극히 모심’으로써 그동안 아버지 하느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자들이 주장하는 인내천의 논리라면 하늘님을 모시고 있는 수운 대신사가 곧 하늘님이신 것이니 ‘해음없는 이것들아 날로믿고 그러하냐’, ‘나는도시 믿지말라’고 하신 전후의 말씀과 논리적으로 충돌이 됩니다.

    수운 대신사는 시천주에 대해 ‘해몽못한 너희들은 서책은 아주폐코 수도하기 힘쓰기는 그도또한 도덕이라 문장이고 도덕이고 귀어허사 될까보다 열세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라고 하시며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는 무궁한 조화법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학처럼 실체가 없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을 멀리서 찾지 말고 천주님을 지극히 모시는 주문인 시천주주侍天主呪 열석 자를 정성으로 읽어 지상신선地上神仙, 현인군자賢人君子로 거듭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동학은 상제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시천주侍天主입니다. 상제님은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동학이니라.’(道典 3:184:12)고 하셨습니다. 수운 대신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해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見月而忘指)을 경계했습니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오직 하늘님만 믿어스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하늘님만 전혀 믿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제님이 최수운 대신사를 통해 온 인류에게 내려주신 시천주 주문은 ‘아버지 천주님을 모시고 조화선경, 조화낙원, 지상천국의 후천개벽 세계를 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수운 대신사가 「교훈가」에서 전한 시천주侍天主의 본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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