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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코드로 문화읽기 | [EBS 창사특집] 5원소, 문명의 기원 물•불•철

    한재욱 / 본부도장

    EBS 창사특집 다큐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위대한 인류문명을 일으킨 다섯 가지의 원소를 동양의 오행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로 보고 나무와 흙과 물과 철과 불에서 그 기원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인류는 다섯 가지 원소의 힘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 문명을 건설했는데, 제작진은 나무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역사, 흙에서는 쟁기와 농업의 역사, 물에서는 상하수도의 역사, 철에서는 제철과 시계·철도의 역사, 불에서는 화약과 대포·도자기의 역사를 담아내었다. 지난 호에서 1부 나무, 2부 흙 편을 다뤘고, 이번 호에서는 3부 물, 4부 철, 5부 불을 정리해본다.


    3부 물, 위대한 순환


    물, 위대한 순환 편은 2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1) 물을 도시에 공급해주는 수로의 발달과 2) 수인성 전염병 콜레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닿는 곳에는 강물이 흐르고, 그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는 모래바람이 붑니다. 인간은 오르지 못하는 아주 높은 곳, 그는 빗방울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를 지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지상의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었습니다. 지구의 모든 연약한 운명들이 물과 함께 살아갑니다. - 다큐 해설


    물을 잃은 바다, 아랄해


    먼저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예로 이 다큐는 아랄해를 소개한다. ‘물을 잃은 항구도시, 아랄스크’라는 말이 와닿는다. 아랄스크는 아랄해의 항구도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다. 구소련이 면화(목화) 농사를 위해 아랄해의 물을 마구 끌어다 썼고 그로 인해 아랄해는 불과 수십 년 만에 10분의 1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와 연관 있는 역사가 소개된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위치한 ‘아랄해’는 과거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가 되어 살던 곳이었다.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고기도 많이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사진처럼 녹슨 배가 메마른 땅 위에 흉물처럼 서있는 곳이 됐다. 아랄스크의 어부들은 배가 아닌 바다를 잃어버렸다.

    물은 고체, 액체, 기체 세 가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끝없이 순환한다. 빙하와 만년설도 차가운 공기를 만나 굳어진 물이다. 잡을 수 없는 수증기와 구름도 모두 물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이 만나는 물은 대부분 액체 상태로 흘러가는 물이다. 물이 흐르는 곳에 비로소 인간은 머물 수 있다. - 다큐 해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물과 함께 있다. 양치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물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씻고 마신다.

    우리는 물속에서 성장합니다. 인체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물입니다. 지구가 물의 행성이라고 불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은 인류에게 진정,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입니다. - 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저자


    이란 사람들의 생명줄, 카나트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류에게 꼭 필요한 자원이었던 물. 때문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마실 물을 찾아 헤맸다. 고대부터 이란 사람들은 ‘카나트’라는 우물을 팠다. 모래는 물을 가둘 수 없었기에 인간은 깊은 땅속까지 들어가야 했다. 구멍을 파고 흙을 퍼 올리는 고된 작업이 필요했다. 카나트는 우물이면서 동시에 수로였다. 사람의 손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일일이 물길을 만든 상상할 수 없는 고된 작업이었다. 구멍 하나의 깊이는 10m, 구멍부터 마을까지는 수십 km였다고 한다. 물을 막고 있는 암반을 찾으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홀로 남아 암반을 파괴하고, 그의 희생으로 얻어낸 물이 마을까지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카나트는 물이 증발하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무더운 반건조 지역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카나트에 대한 장면을 보다가 물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는 못 느낄 절실함이 느껴졌다.

    물의 제국, 로마


    일찍이 수로 시설을 만들었던 또 다른 곳은 로마이다. 로마 제국 도시들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었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물도 로마로 흘러들었다. 로마는 물의 제국이었다.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에 로마인들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혹독한 여름을 견뎌야 했다. 제국이 커질수록 더 많은 물이 필요했다. 수도교가 바로 로마의 물줄기였다. - 다큐 해설


    수 킬로미터가 이어져도 낙차가 고작 몇 미터에 불과할 만큼 정교한 기울기를 유지하는 수도교는 로마 공학의 승리이다. 로마 수도교는 지중해 서쪽 스페인 땅에서도 발견된다. 물을 끌어 올리는 동력은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뛰어난 건축공학을 통해 물을 흐르게 했다. 필요하다면 산을 뚫기도 했고, 사이펀의 원리(기압 차와 중력을 이용한 원리)를 이용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내기도 했다.

    물 공급은 정치적 정통성의 표시이기도 했는데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최초로 수도국을 설치했습니다. 물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저자


    정치적 정통성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물을 저장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단순한 공학 기술이 아니라 강력한 통치 수단이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물을 다스리는 치수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동양의 9년 홍수 사건이 아닐까 한다. 단군왕검 즉위 50년에 단군조선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왕검께서 강화도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고 직접 올라가셔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고 치수를 하셨다. 그로부터 17년 뒤 중국에서 9년 홍수(실제로는 약 20년 동안 지속된 대홍수)로 중국 천하가 물난리가 나고 요순 왕조 정권이 패망당해 무너지는 지경에 처했다. 치수관 곤이 치수에 실패하자 순임금에 의해 우산으로 추방돼 죽고 그 아들 우(후에 하夏나라를 건국)가 치수관이 됐다. 이런 위기에 순임금은 부친의 형제가 있는 단군조선 조정에 치수법을 요청했다. 이때 단군왕검께서 아들 부루태자를 시켜 우에게 전수한 것이 오행치수법이 담긴 ‘홍범구주洪範九疇’이다. 단군왕검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하여 요순堯舜 정권을 구해주었던 것이다. 홍범구주는 국가통치헌법 전문을 말한다. 이로써 국가를 다스리는 핵심 내용이 물을 다스리는 데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에 번영했던 대제국들은 물을 다스려 정통성을 확보하고 번영할 수 있었다. 다큐는 계속해서 로마, 페르시아, 터키, 인도, 그리고 이슬람 알함브라의 물을 정수하고 저장하는 대규모 시설을 만들었던 놀라운 내용을 소개한다. 이렇게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권력의 상징으로 인류와 함께해왔다.

    물이 몰고 온 재앙, 콜레라


    풍부한 석탄, 막강한 군사력,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영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대영제국의 심장, 런던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돌았다. 콜레라! 1831년 런던에서만 6천 명이 죽었고, 1854년까지 3차례 발병,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흑사병이 유럽을 초토화시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공기가 콜레라를 전염시키는 줄로 알았다. 오염된 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오늘날 영국의 하수도와 제방은 1870년대 건설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런던 시내의 오물들은 템즈강으로 바로 흘러 들어갔다. 당시 런던 사람들은 템즈강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의사였던 존 스노우는 콜레라의 원인을 찾아낸다. 그는 콜레라가 발병했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보았다. 공교롭게도 런던 브로드 스테이트에 있는 한 물펌프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병한 것을 알아낸다. 원인은 물이었다. 인류를 풍요롭게 해주는 줄로만 알았던 물. 하지만 물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수인성 전염병의 비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팬데믹은 콜레라일 수도 있다고 예측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순환하는 존재


    다큐에서 인간의 몸은 물이라는 것을 소개했고, 물을 잃었을 때 비극적인 예를 보여줬다. 국가도 제국도 물을 잘 다스릴 때 번영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물에 대해 무지하고 교만해졌을 때 그것은 전염병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문명의 이름으로 물을 통제해왔다. 다큐는 물을 통제하지 않고 물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본 시가현의 하리에 마을을 보여준다. 이 마을은 상수도나 하수도가 없고 카바타Kabata라 불리는 독특한 수도 시스템이 있다. 집집마다 물은 흘러가게 두고서 음식이나 그릇을 씻을 수 있는 정도만 쓰고 음식 찌꺼기는 잉어가 해결한다. 아무도 물을 막거나 모으지 않는다.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모두 순환하는 존재입니다.’

    종도사님께서 쓰신 『관통 증산도』 책에는 “법이란 물이 흘러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대우주의 길인 도인데, 여기서의 물은 태극수가 흘러가는 길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우선 법의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법法이라는 글자는 ‘삼 수(氵)’ 변에 ‘갈 거(去)’ 자를 쓴다. ‘삼 수’ 변은 곧 물 수(水) 자를 말하므로, 한마디로 법이란 ‘물이 흘러가는 길’이며, 이것이 우주 자연의 길인 도道다. 도담道談을 나눌 때 종종 “법이 뭐냐?” 하는 질문을 받는데, 법은 바로 우주가 돌아가는 길, 물이 흘러가는 길(수도水道, 태극수太極水의 창조 원리)을 말하는 것이다. - 관통증산도


    지금은 선천 봄여름의 분열 생장 운동이 극에 달해 생명력의 근원인 수기가 소진된 때이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우주생명이 화火기운과 수水기운 사이에서 극즉반極則反하여 순환하는 원리에 따라, 천지에 고갈된 생명수를 다시 돌리는 공사를 처결하셨다. 또한 “태을주는 수기(水氣) 저장 주문이니라.”(증산도 道典 2:140:8) 하시면서 인간 생명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법방을 알려주셨다. 3부는 한마디로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수기를 저장해 주는 태을주에 대해 각성하게 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4부 철, 인류의 견고한 욕망


    인류는 철鐵을 가지고 싸웠고, 철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지중해를 넘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은 나침반의 작은 철 조각 덕분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것은 철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철의 강인함은 과학으로 설명되고 공학으로 완성되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철! 우리는 지금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 - 다큐 해설


    벨기에 브뤼셀엔 아토미움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있는데 철의 분자구조를 본떠 만든 100m 높이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철 없이 이룰 수 있었을까? 숟가락, 칼, 자동차, 비행기, 기차, 먹고 이동하고 통신하는 모든 것에 철이 있지 않은가. 이 편리한 철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무기로써 사용되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칼과 검


    고대인들이 썼던 철은 운철(철, 니켈 합금 성분이 함유된 운석)이라고 한다. 운철은 중국과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다. 운철은 대기권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열이 발생하고 땅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제련을 마친 철과 다름없다. 운철은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었다. 우주에서 왔기에 오직 신성한 존재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단검은 외계에서 온 운철로 만들어졌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은 구리, 철, 아연 등 수많은 광물들이 묻혀 있었다. 광물의 힘은 곧 인간의 힘이다. 전쟁과 투쟁의 땅 아나톨리아, 금속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서로 싸워야 했다. 아나톨리아의 최강자는 히타이트인들이었다. 이들은 철기를 손에 쥐었다. 히타이트 제국은 철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인도 뉴델리의 쿠투브 미나르 탑 유적이 있는 이 사원의 중앙에 쇠기둥이 서있다. 서기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쇠기둥은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녹이 슬지 않았다. 녹 방지 기술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강철이라고 한다.

    이는 당시 인도가 최고 수준의 제철 기술을 가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기둥은 강철이 아니라 우츠철(wootz steel)로 제작되었고 불에 달군 철을 두드려 만들어졌다. 이는 매우 정교한 물리적 작업이다. 7세기 인도양은 가장 활발한 교역 지역이었다. 당시 인도의 최고의 수출품은 우츠 강철이라는 세계 최고의 강철이었다. 현대의 학자들이 복원과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인도인들이 철과 강철의 혼합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 영웅 살라딘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칼이 있는데 이것이 다마스커스 검이다. 강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날, 아름다운 물결 무늬가 있는 검이다. 이 검은 인도 우츠 강철로 만들어졌다. 우츠 강철을 검으로 만들면 물결 무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한다.

    대만의 가오슝에는 궈창시라는 고대 중국 검 제작 장인이 있는데, 그를 소개하면서 쇠의 종류와 합금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생철, 숙철, 강철이다. 생철은 무쇠, 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쉬운 성질의 철이다. 숙철은 연철로 외부의 힘에 쉽게 구부러지는 성질의 철이다. 생철은 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쉬웠고 숙철은 부드러웠지만 외부의 힘에 쉽게 구부러진다. 이들은 단단한 생철과 부드러운 숙철을 합쳐 더 좋은 철을 만든다. 바로 강철이다. 오늘날의 금속공학자들은 생철, 숙철, 강철을 탄소 함유량의 차이로 설명한다. 동양에서 이런 전통 기술은 유럽인보다 1천 년 이상 앞서 있었다.

    다음은 일본 사무라이 검 장인의 전통 작업을 소개하는데, 달궈진 쇠를 반으로 접어 두드리고 진흙물을 끼얹는다. 두드릴 때 볏짚이 철에 들어가도록 작업을 한다. 접고 때리고 끼얹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일본의 검도 두 가지 철이 사용된다. 저탄소강으로 검의 중심부를 만든 다음 고탄소강으로 그것을 에워싸는 방식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깨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물질을 원했다.

    서양 문명에서 철의 역사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는 크로노미터라는 해상 선박용 정밀 시계가 있다. 먼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양 항해용 시계다. 영국의 존 해리슨이라는 발명가가 만들었다. 이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얇고 긴 철제 스프링이다. 이 시계는 전 세계 항해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7세기까지 유럽의 항구를 떠난 10척의 배 중 2척은 돌아오지 못했다. 동서남북 방향을 말해주는 나침반만으로는 바다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지도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 지구 전체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약속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경도가 탄생한다. 지구 360도 둘레를 24시간으로 등분했다. 적도를 기준으로 1시간의 시차는 약 1,600km의 거리를 의미했다. 만약 10분의 오차가 생긴다면 250km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계 하나에 모든 선원들의 생명이 걸리게 된다. 존 해리슨이 만든 초기 모델은 잉글랜드와 자메이카 사이의 7,500km 구간을 시험 운항했을 때 단 5초의 시차가 있었다. 원양항해 시계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유럽인들에게 통합된 시간을 주고 대항해 시대를 열어준 것은 철과 금속이었다.

    산업혁명의 중심에도 금속, 철이 있었다. 영국 런던의 사이언스 뮤지엄에는 인류의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 기관차 ‘로켓’이 있다. 1.8m 길이의 보일러, 마차용 나무 바퀴에 쇠를 덧댄 바퀴, 볼품없이 올라간 긴 굴뚝. 증기기관차는 본격적인 인류의 근대 세계를 이끌었다. 철로와 바퀴는 정교해졌고, 증기기관차는 역사상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은 철도였다.

    면화와 공장, 석탄과 식민지, 철도는 새로운 부와 가치를 연결했다. 연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철의 진정한 힘이 되었다. 철도 시스템 건설은 인도 대륙에 대한 식민 통치를 굳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사람, 사상, 총, 군대, 상품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은 전쟁의 도구였지만 문명의 도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는 철이 이룩한 세계다.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철광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한 학자는 철은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금속이라고 한다. 철은 우리를 연결하고 뻗어나간다. 우리는 지금 철기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상제님 말씀으로 밝혀진 이마두利瑪竇(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대성사의 공덕이 떠오른다. 이마두 대성사는 동양에서 천국을 건설하려다 실패하고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귀향하여, 학자들에게 그 영적 역량에 맞추어 알음귀를 열어주었고 이로 인해 서양 과학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바로 그 결과물인데 그 중심에 철이 있다.

    다큐에서는 환단고기 문화를 다루지 않았지만 철의 역사에서 우리의 조상 배달국 14세 치우천황은 절대적이다. 치우천황 군대의 무기에 대해 『관자』 「지수地數」에 “갈로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에는 철이 섞여 있다. 치우가 이를 받아 제련하여 칼, 갑옷, 창 등을 만들었다[葛盧之山發而出水,金從之, 蚩尤受而制之, 以爲劍鎧矛戟]”라고 서술하였다. 중국 사서가 이렇게 치우천황의 무기를 세밀히 묘사한 것은, 헌원의 군대는 그만한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시 치우천황은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청동 무기를 썼으며 동북아 금속 문명의 선진 주자였다. 치우천황에 관해 더 많은 내용을 제공하는 『사기정의』는 “치우 군대가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라고 하였다.

    철기 문화도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작되어 중국 지역에 보급되었다. 그것은 철鐵의 옛 글자[古字]가 ‘동이족의 쇠’를 뜻하는 ‘철(銕=金+夷)’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한다. 치우천황이 처음 철을 발굴했기 때문에 이 글자(銕)가 만들어진 것이다. - 환단고기 해제


    5부 불,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


    5부에서는 문명 초기에 인간을 따뜻하게 하고 보호해주던 불을 보여주면서 곧바로 불 속의 다른 힘을 먼저 소개한다. 일본에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은 총 23만여 명의 희생자를 냈다. 섭씨 3,900도의 뜨거운 불에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때 인류는 비로소 불이 인류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불, 화약


    다큐에서는 중국 쓰촨성 충칭시에 있는 다쭈大足 석굴의 불교, 도교, 유교의 사상이 어우러진 암각화들을 소개한다. 여기에서 1985년 특이한 부조가 발견됐는데, 역사학자들은 화약 무기의 한 종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항아리 모양인데,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앞으로 발사되는 구조의 무기 같았다. 이것이 화약 무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초의 화약 배합법이 중국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126년 송나라와 금나라의 전쟁에서 대규모의 화약이 사용되었다. 세계 최초로 육상과 해상에서 화약 무기가 사용된 대규모의 화약전이었다. 송나라는 철과 다른 물질이 혼합되어 터지는 형태의 폭탄을 투석기로 발사했다. 쏘아 올린 폭탄이 성안에서 터졌다.

    영국 옥스퍼드대 도서관에는 1326년으로 추정되는 유럽 최초로 화약 무기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이슬람 국가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화약 기술을 전달했을 거라고 보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화약에 대한 기록에서 다큐는 우리나라 사람도 소개한다. 화약 무기 기술의 전래에 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려의 최무선이 유일하다. 1374년 최무선이 원나라에서 화약 제조법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 최무선은 이 기술로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대포의 시대


    프랑스 100년 전쟁이 남긴 영웅, 프랑스를 구한 성녀, 잔 다르크는 1429년 오를레앙 전투에서 대포를 사용했다. 잉글랜드군에게 7개월 이상 포위되어 있던 오를레앙을 잔 다르크는 단 9일 만에 깨 버린다. 그녀가 나타나면 용이 불을 뿜는다고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그 불은 다름 아닌 대포였다. 잔 다르크는 어렸지만 대포를 배치하는 전술이 뛰어났다. 잔 다르크는 어떤 장군들보다도 화약 무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를레앙 전투에서 잔다르크가 사용한 대포는 단 3대. 그 3대의 대포만으로 백년전쟁의 향방이 바뀌었다.

    15세기 중반 유럽은 바야흐로 대포의 시대였다. 누가 더 큰 대포를 가지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에는 1454년에 제작된 길이 4m, 무게 7톤의 몬스 멕 대포가 있다. 이 대포는 무려 200kg의 포탄을 날릴 수 있었다. 빅건Big Gun의 시대, 초대형 대포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시대가 왔다.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 있던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였다. 남쪽 바다는 물살이 너무 세서 상륙이 불가능했고, 북쪽 바다에는 길이 800m의 쇠사슬 방벽이 있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서쪽 벽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방어벽이었다. 수천 명의 군사만으로도 10만 명의 대군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천년 제국으로 불린 동로마 제국을 지켜 주던 이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이슬람 제국에 무너졌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는 비장의 카드를 쓰는데 그것은 황소 60마리가 끌고 온 초대형 대포 바실리카였다. 600kg 돌덩이를 1.5km 이상 날릴 수 있었다. 5천 발 이상의 포탄이 성벽에 떨어졌고,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됐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백년전쟁의 끝은 모두 대포에 의해서 이뤄졌다. 화약 무기는 점점 우월한 전쟁 무기가 되었다. 중세의 기사는 몰락했다. 총과 대포를 가진 자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화약이라는 새로운 불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중세 시대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도자기


    대항해 시대, 이국적 상품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는 유럽인들이 가질 수는 있지만 만들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도자기였다. 도자기를 굽는 고온의 불 기술이 유럽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영국의 웨지우드가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 본차이나bone china를 만들어낸다. 이는 엄청난 강도와 반투명성을 가진 자기였다.

    영국에는 천 년 넘게 정교한 도자기가 없었습니다. 도자기는 한국, 중국 같은 곳에서 배로 실려왔습니다. 사람들은 반투명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도자기 특히 자기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것을 모방하고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500년 동안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탄생한 본차이나는 국가적 자부심이었습니다. - 마크 미오도닉 영국 UCL 기계공학과 교수


    왜 영국은 유럽의 도자기 강국이 되었을까? 그 답은 석탄에 있다. 석탄은 새로운 불, 새로운 엔진을 영국에 안겨줬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열과 불이다. 웨지우드는 증기 엔진을 이용한 최초의 도자기 제작자였다.

    화약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불이었다. 그리고 그 불은 대포가 되어 다시 아시아로 돌아왔고, 제국주의의 이 강력한 무기 앞에 동양은 위기를 맞았다.

    화약이 아시아의 불이었다면 석탄과 도자기, 대포와 증기기관차는 유럽의 불이었다. 그 불의 경쟁에서 아시아가 패배했던 것이다. - 다큐 해설


    불의 이동이 세계 중심의 이동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불은 문명의 상징이면서 인간의 욕심에 의해 전쟁과 야만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5부는 불에 대해서 다루었다. 그러면서 불의 두 얼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 그것은 불의 얼굴일까, 아니면 우리 인간의 얼굴일까. - 다큐 해설


    증산도 진리에서는 지금이 우주 1년에서 대우주의 태극수太極水가 극한 분열을 하여 화신火神이 크게 득세(火神司命)하는 천지의 여름철 말기이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천지에 고갈된 생명수를 다시 돌리는 공사를 처결하셨다. 불[火]기운을 묻으시는 화둔 공사를 집행하심으로써 선천 여름 우주에서 후천 가을 우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5부는 불의 두 얼굴에 대해 상제님 진리로 볼 때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결론


    이 다큐는 목화토금수 오행이 관념과 정신에만 있는 것이 아닌 물질로서 또 문화로서 인간의 도구로서 직접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은 더 구체적으로 오행의 상극 법칙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말씀을 내려주셨다.

    원시시대에 부족 집단들이 살 때는 부족끼리 싸우는데 무기가 없으니까 흙덩이, 돌을 가지고 싸웠다. 그러고 얼마 살다가 지혜로운 사람이 나와서 몽둥이, 죽창 같은 나무 무기를 만들어 싸웠다. 그게 목극토木克土다. 그것을 짜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이치다. 그렇게 한동안 싸워 내려오다가 어떤 발명가가 쇠붙이로 무기를 만들었다. 철기시대에 철퇴도 나오고 칼도 나오고 도끼도 나오지 않았는가. 금극목金克木이다. 또 얼마 동안 그렇게 투쟁을 하다가 화공火攻이 나왔다. 불 무기, 화극금火克金이다. 지금까지도 불 무기다. 그리고 이제는 수극화水克火로 북방 현무 조화造化가 나온다.

    앞으로는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나온다. 사람마다 신명을 접하고 신명은 사람을 접해서, 신인이 합일을 해서 과학 문명의 이기를 빌리기 전에 내 자신이 먼저 안다. 무슨 도구를 빌려서 아는 것과 내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앞 세상은 증산 상제님의 문화권 속에서 통일문화, 하나인 문화권으로 틀이 바뀐다. - 태상종도사님 도훈(道紀 132.5.9)


    오행에 대한 의미를 기존에는 우주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요소(element) 정도로만 인식해왔는데 종도사님께서는 “목화토금수 자체가 성령이다.”라고 하셨다.

    “삼신께서 다섯 방위의 주재자인 오제를 통솔하여 저마다 그 맡은 바 사명을 두루 펴도록 명령하시고, 오령에게 만물 화육의 조화 작용을 열어서 공덕을 이루게 하셨다” -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환단고기』가 전하는 신교 삼신관에 따르면, 오제五帝가 삼신의 명에 따라 오행을 맡아 다스린다. 오행은 천지 성령의 영묘한 기운이기에 오령五靈이라 불린다. 천지의 다섯 가지 신령한 조화 기운은 순전히 그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삼신과 오제의 주재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행에 태太 자를 붙여 태령太靈이라 불렀다. 태수太水가 북방에 자리 잡아 흑색을, 태화太火가 남방에 자리 잡아 적색을, 태목太木이 동방에 자리 잡아 청색을, 태금太金이 서방에 자리 잡아 백색을, 그리고 태토太土가 중앙에 자리 잡아 황색을 주관한다.

    중국이 단군조선에서 전해진 것을 오행사상으로 썼는데 인문 정신이 희석된 것이고, 본래는 성령문화. 오태령이 있는 것이다. - 종도사님 도훈(도기 151.1.17)


    오행, 오태령은 봄여름철 5만 년의 인간 문명을 성장, 발전시켜왔다. 이제 후천 가을개벽기로 들어가는 이때 10토 자리에 머물고 계신 조화옹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강세하시어 화생토, 토생금의 다리를 놓아 주신 것이 바로 이 증산도다. 다큐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니 보시고, 신교의 음양오행 문화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

    동서양 불의 역사
    서양에서는 불의 발견이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시작으로 하는데 『환단고기』에는 확실한 기록이 있다. 「삼성기 상上」에서 환국의 환인께서 ‘부석발화掊石發火 시교숙식始敎熟食’을 하셨다는 기록과 「신시본기」에서 배달국 초대 환웅의 신하 고시씨가 불을 얻었다는 기록이다.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보내시니, 이에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監群]가 되어 천계天界(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시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부석발화掊石發火하사 시교숙식始敎熟食하시니) 이 나라를 환국桓國(광명의 나라)이라 했다.
    - 환단고기 삼성기전三聖紀全 상上


    인류 태고 문명의 시조인 안파견환인께서 부싯돌과 같은 돌을 부딪쳐 불을 구하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불에 대해 이보다 더 확실한 역사 기록은 없을 것이다.

    환웅천황께 주곡主穀 벼슬을 받은 고시례高矢禮는 불씨[火種]가 없어 걱정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높고 큰 나무가 말라 황량하게 줄기를 드러내고 오래된 나무줄기와 말라버린 가지가 서로 얽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깊이 생각하는데 홀연 거센 바람이 숲 속에 불어닥치니, 땅 위의 온갖 구멍이 성내어 부르짖고[萬竅怒號] 오래된 나무줄기가 서로 마찰하여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번쩍번쩍 빛나며 잠깐 일더니 곧 꺼졌다. 이에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이것이다!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을 얻는 방법이로다” 하고, 오래된 홰나무 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나뭇가지를 마찰하여 불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을 일으키는 방법이 불편하였다. 다음 날 다시 높고 큰 나무가 우거진 곳에 이르러 이리저리 배회하며 깊이 생각하는데, 홀연 줄무늬 호랑이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고시씨高矢氏가 크게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돌을 집어 힘껏 던졌으나 빗나가 바위 귀퉁이에 맞고 불이 번쩍 일어났다. 이에 몹시 기뻐하며 돌아와 다시금 돌을 부딪쳐서 불을 얻었다. 이로부터 백성이 음식을 불에 익혀 먹게 되었다. 쇠를 녹이고 단련하는 기술이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술도 점차 나아지게 되었다. - 환단고기 신시본기


    이것은 배달 개창기의 취화법取火法에 대한 기록이다. 환웅천황의 신하 고시씨가 불을 쉽게 얻는 법을 백성에게 알려주게 되는데, 이로 인해 쇠를 사용하는 기술까지 쓸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 다큐에서는 중국와 유럽 중심의 후대 역사만 다루고 있으나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조상들이 훨씬 오래전에 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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