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서 함께 일어선 가족신앙 외 (정희정, 박혜숙, 여수연)

[입도수기]

시련에서 함께 일어선 가족신앙


정희정(여, 27) / 서울관악도장 / 150년 음력 10월 입도

즐거웠던 가정신앙, 그리고 찾아온 시련


저희 부모님께서는 증산도 진리를 통해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먼저 진리를 만나셨던 아버지께서 직장 동료로 지내던 어머니의 입도를 도우셨고, 그 직후 연을 맺어 부부가 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머니 태내에 자리 잡던 때부터 태을주를 들려주셨습니다. 갓난쟁이인 저를 데리고 도장에 나가셨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는 하루도 끊이지 않고 정성스럽게 수행 공부를 해 오셨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두 분에게 증산도 진리와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배워 왔습니다. 상제님 진리가 무엇인지, 가을개벽이 왜 오는 것인지, 왜 조상님들께 감사하고 잘 모셔야 하는지. 주문은 어떻게 읽어야 하고,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까지. 부모님께서 들려주시던 수행 체험담이나 진리 이야기는 세상 어떤 동화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철부지의 천진함만 가득하던 그 무렵에는 그저 “아, 우리 가족들은 평생 이렇게 상제님 진리 신앙하며 편안하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여름 무렵. 돌연 아버지께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며 저희 가족에게는 어려움이 찾아들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아도 큰 모자람 없던 형편이 어려워지자 웃음소리 잦던 가족 간에 불화가 생겨나고, 가정의 화목함이 사라지니 신앙에 대한 불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심신이 극에 몰리자 어릴 적부터 귀 닳도록 들어 온 진리마저도 부정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조상님들을 향한 원망도 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이토록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하시느냐고 크게 원망하며 미운 말만 뇌까렸습니다.

수행과 기도의 힘을 체험하며


매일 아침 해가 밝아 오는 일마저 두려운 밤들을 보내던 어느 날, 정말이지 문득 저는 부모님께서 예전에 들려주셨던 체험담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도생분께서 생활이 어렵고 병까지 들어 힘겨우셨던 때에 정성으로 수행하고 기도하였더니 놀랍게도 어려운 생활이 피고 병도 고치셨다는 일화였지요. 갑자기 왜 그 얘기를 떠올렸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다만 저는 부모님께 이 얘기를 말씀드리며 부탁을 드렸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기도해 보자구요. 이렇든 저렇든 죽기밖에 더 하겠느냔 마음으로 매일 수행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전에, 또 조상님들 전에 고하고 또 고하며 심고 올리고 수행을 하다 보니 정말 놀랍게도 어려운 형편이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취직을 바랐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얼마 후 부모님께서는 좋은 조건으로 조그만 가게를 얻으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지 2년 차에 입대한 큰동생을 대신하여 부모님의 장사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쉬며 매일 12시간씩 일하면서도 저와 어머니는 늦은 시간에라도 반드시 수행을 했습니다. 태을주 21독도 간신히 읽는 날이 있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여기면서요. 이 무렵 저는 신기하고 기이한 꿈을 꾸거나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꿈속에서 흰 한복 혹은 현대 복장을 하고 계신 분들이 도방에 앉아 있는 저희 가족들 앞에 마주 앉으셔서는 예쁘다 잘한다 하고 쓰다듬어 주시거나, 부모님 가게에 흰옷 입은 어르신들께서 나타나 손님을 줄 세워 주던 꿈을 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손님이 많아져 줄을 설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한 진리의 길


종점이 없을 것 같던 생활고가 언제 겪은 일이냐는 듯 개선되고 저와 가족들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매사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외면하던 부모님은 이제는 마주 웃고 장난치기가 바쁘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평화로워진 집안 분위기에 저는 내심 ‘아 이제 숨통이 트였으니 부모님께서 다시 도장에 나가고, 그럼 내 어릴 적 하셨던 것 같이 신앙하시겠구나. 그럼 나도 동생들이랑 도장에서 제대로 상제님 진리를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바람과 달리 저희는 감히 면구스럽다는 마음과 바쁜 생업을 핑계 삼아 도장 나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앞서 먹고살기 어려워 도장을 나가지 못해 한스러웠던 것을 그새 잊고, 좀 나아진 형편을 구실 삼아 되레 ‘먹고살기 바쁘니 별수 없다’, ‘그동안 손 놓고 있던 세월이 길어 쪽팔리다’는 변명을 하면서요.

돌이키자면 정말 면구스러울 시간을 정처 없이 보내다 약 한 달 전 즈음,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재확산되며 불안감을 품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꿈으로 체험을 주로 하던 저는 그날 밤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께서 저희 가게 앞에서 손님 한 분을 데려다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년으로 뵈는 그 남성분은 안경을 끼고, 정갈한 차림새를 하고 계셨는데요, 한쪽 옆구리에는 희디흰 책 한 권을 끼고 계셨습니다.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거리낌 없이 가게로 들어오시는 모습에 놀라 깨어났지만 당시에는 무슨 내용의 꿈인지를 몰라 그냥 ‘개꿈인가’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후, 저는 가게로 직접 찾아오신 고승림 수호사님을 뵙자마자 앞서 ‘개꿈’이라고 치부했던 꿈이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생전 처음 뵌 고승림 수호사님의 얼굴과 체격은 모두 앞서 꾼 꿈에서 본 그대로였습니다.

너무 신기한 상황에 얼어 있던 제게 수호사님은 조심스럽게 입도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열심히 신앙하실 때 어린 저와 동생들을 입도시키셨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당시 너무 어린 나이였던지라 입문만 되어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입도 교육을 받고 입도하는 게 어떻겠느냐구요. 꿈속에서 뵈었던 분이 눈앞에 계시니 신기해하기 바쁘던 저는 냉큼 “예!”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후 입도 교육을 받은 첫날은 솔직하게 말해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도장을 다시 찾고 상제님 진리 배우는 일은 늘 기다리고 바랐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덜컥 현실이 될 거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음 날, 다다음 날, 계속 교육을 받으면서는 스스로를 향한 한심함과 열정이 함께 피어났습니다.

천지에서 쓰는 이때에 참예하는 인생을 살아야


저는 앞으로 두 동생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분들께 상제님 진리를 알리고 싶습니다.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때에 참예하지 못한다면 어찌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셨던 상제님 말씀처럼, 마냥 모자란 자손들임에도 마음 본위本位를 바르게 되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조상님들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열심히 태을주 수행을 하고 상제님 진리를 공부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다가오는 대환란의 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상제님의 참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일심一心으로 믿고 행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보은報恩! ◎

시루에 받쳐진 그 미륵불을 신앙하니


박혜숙(여, 79) / 김포북변도장 / 150년 음력 10월 입도

불화를 그리며 미륵불 출세 얘기를 듣다


8년 전 TV를 보며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 화면에 나오는 무궁화가 눈에 들어와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업이 불교의 탱화를 그리는 불모佛母인지라 화면에 나오는 무궁화에 관심이 많이 갔었고 그림으로 직접 그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상생방송을 알게 되어 현재까지 8년 동안을 시청해 왔습니다.

평소에 불화를 그리다 보니 대게 부처님들은 연꽃 위에 모시는데 유독 금산사 미륵부처님은 연꽃이 아닌 시루로 받쳐져 모셔진 것이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불모 생활을 하며 미륵불 출세에 대해 스님들이 얘기를 종종 해 주셔서 듣고 있던 터라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셨다는 내용들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동학 신앙의 집안 이력과 상제님 진리 인연


그리고 어려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모와 작은아버지를 통해 할아버님이 동학을 신앙하셨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는데, 상생방송을 보면서 우리가 원래 상제님과 인연이 있는 집안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상생방송을 시청하며 도장에도 가 보고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대전의 태을궁에도 몇 차례 참여하였고 행사를 마치고 나올 때면 도생들을 배웅해 주시느라 나와 계신 종도사님을 뵙기도 했는데, 어떤 때는 따스하게 손을 잡아 악수를 해 주셔서 감사했었습니다.

종도사님과의 악수는 저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기억입니다. 제가 사는 집의 바로 아래 15층에 ‘여호와의 증인’을 신앙하는 이웃이 있는데, 매주 월요일이면 전도하기 위해 제 집에 방문하여 교리를 전하곤 하였습니다. 그만 오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 찾아와서 마음은 불편하였으나 이웃 주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전날 대전에서 행사를 마치고 종도사님의 따뜻한 악수를 받고 귀가한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여호와의 증인 이웃이 들러서 교리를 전하다 말고 “그만 하고 가야겠다.”는 말을 하고 가더니 그 이후로 다신 오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오는 손님을 마다할 수 없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문제가 해결이 된 터라 종도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생방송 시청이 이끈 입도와 보은 신앙


그렇게 한두 해가 흘러 최근에 들어서는 상생방송을 보다 보니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고자 조상님들께 정성을 올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정에 방문하신 포정님과 입도에 대해 상담을 하였는데, 안내해 주신 대로 먼저 입도부터 성실히 준비하여 조상님들의 염원을 이뤄 드리고, 입도 이후에 정성수행을 해 나가며 조상님 천도식을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항상 많은 시간, 세상을 위해 말씀을 내려 주시는 종도사님께 감사드리며, 진리에 대해 쉽게 정의를 내려 주시는 태상종도사님께도 감사를 올립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늦은 나이로 증산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만 정성을 다해 신앙을 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은. ◎

확신과 중심을 잡게 해 준 증산도


여수연(여, 60) / 대구대명도장 / 150년 음력 10월 입도

늘 공허하고 흔들렸던 신앙의 길


저는 기독교 모태신앙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나무와 자연 속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거나 천상의 그림을 그리며 살거나 나만의 기도공간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지금은 잘 살고 있지만 성격상 불화하면서 많은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대부분의 친구들이 무당이나 철학관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제가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오히려 저의 상담을 받고 마음을 위로받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신앙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가도 안 되고 절을 가도 안 맞고 어떤 직업을 가져도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겉모습은 너무도 밝고 화려한데 항상 뭔가가 채워지지 않아 공허하고 흔들렸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제 삶에 큰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작년에 크게 사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말을 무당이나 철학관에서 자주 듣다 보니 더욱 기도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모님을 인정하지 않는 대순진리회


그러던 중 대순진리회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정말 상제님을 만난 기쁨에 세속의 삶을 끊고 스님처럼 수도의 길을 가고자 하였는데, 또 뭔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서 진리 공부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튜브로 상생방송을 알게 되었고, 점점 증산도의 진리 공부에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유튜브 방송을 보고 대순에 가서 얘기해 주면, 대순 사람들로부터 “여수연 님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증산도 공부를 하면서 대순을 다니던 중 증산도에 가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대순에서는 태모 고수부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고,

둘째, 증산도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찾고 있는 신앙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대순을 다녀오면 안 좋은 꿈을 꾸는데 증산도 도장에 다녀오는 날에는 좋은 꿈을 꾸게 되면서 더욱 증산도로 가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야말로 진정으로 찿던 그 신앙


증산도는 진리도 신앙도 내가 찾던 것이었습니다. 증산도는 모든 방황을 끝맺고 제대로 된 도의 길을 가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증산도에 와서 신앙을 하게 된 이후로 이제 더 이상 잡생각이 안 들고 하느님 앞에 일심으로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중심이 잡혀 가고 있습니다. 매일 꿈을 꾸면서 그날그날 잘못된 것은 꿈속에서 잘못되었음을 보여 주시고 잘하고 있는 것은 꿈에서 또 잘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있습니다.

“석가 예수 공자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다.”는 말씀에서 저는 상제님에 대한 100프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나 영능력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상제님의 이 말씀은 완벽히 이루어졌기에 이제 더 이상 흔들릴 이유도 방황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를 증산도로 인도해 주신 조상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도장의 수호사님 포감님 그리고 팔관법을 가르쳐 주신 모든 포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육임도체를 완수해서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과 조상님께 보은하는 참일꾼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