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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STB다시보기 | 역사대담 - 6회 홍산문화와 한일고대사(2)


    사회자: 김철수 중원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대담자: 남창희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역사문제를 넘어 경제보복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일갈등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탐구하는 역사대담에서는 한일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찾아봅니다. [본지 2020년 7월호부터 계속]


    Q 김철수 교수: 지난 시간에 홍산문화와 일본문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도 일본문화는 기마민족의 유산이라고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 부분과도 연결이 되는 것일까요?

    A 남창희 교수: 인하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20여 년간 강의를 해오고 있는데요, 지난 10년은 제가 좀 별나게 융합고고학과 교수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생뚱맞다고 볼 수 있지만 정치외교학과 융합고고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현재 한일관계의 뿌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고대사를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 연구를 계속할수록 참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천부경天符經과 일본 고분의 정합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고학이나 인류학, 역사학을 할 때는 관찰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대만국립대학에 초청교수로 가게 되었을 때 저녁이면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부분을 수십 회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태백일사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상태에서 유물과 유적을 보니 연결되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홍산문화의 우하량 제천단과 일본 고분의 유사성을 제가 연관지을 수 있게 된 것은 태백일사라는 흥미로운 역사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홍산문화와 일본 고분이 어떤 점에서 비슷한지 하나씩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로 홍산문화에는 원형제단이 있고, 방형 무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방후원분에서도 앞에는 네모난 방형의 형태이고, 뒷부분은 원형으로 높게 솟은 형태로 원형과 방형이 모두 우하량 유적과 같이 한 공간에서 연결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원과 방형이 같은 공간에 있는 형태는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하량과 일본의 고분 모두 사람이 묻히면, 천지인을 상징하는 원-방-각이 한 공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점이 홍산문화와 일본 고분의 동일점의 첫 번째 이유가 됩니다.

    두 번째로는 우하량의 제천단을 보면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하량의 원형 제단이 3단으로 되어 있는데요. 역시 일본의 전방후원분도 3단으로 쌓여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이 있는데, 우하량 제천단을 보면 무저형 토기를 원형제단 가장자리에 배열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방후원분의 가장자리도 무저형 토기가 역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토기가 원형으로 배열된 모습이 마치 어깨동무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형상해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면 홍산의 우하량과 일본의 전방후원분 모두 일반 토기가 아닌 밑이 없는 무저형 토기로 가장자리에 배열이 되어 있고, 제단도 모두 3단으로 되어 있는 만큼 홍산문화와 일본의 고분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저형 토기를 왜 세워놨을까? 의문을 가져볼 만한데요. 아마도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마음을 표현한 소통로’로서 통천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2013년에 고베대학에 6개월간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일본 관서지방을 샅샅이 답사하고, 밤에는 고고학책을 보면서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듬해인 2014년 가을에 오사카에서 대한사랑 주최로 열렸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답사 나간 팀으로부터 오사카시 남쪽에서 부여의 의라와 같은 한자어의 의라를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사에 가보게 되었어요.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사를 지키는 궁사에게 시주를 좀 많이 하고서 이 의라 신사의 유래에 대해 물어봤는데요. 너무 놀라운 내용을 듣게 되어 바로 녹음기를 켜고 듣게 되었습니다. 의라라는 사람은 3세기 말에 한반도에서 왔고, 일본에 와서 왕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4년이 지나서 저의 수업을 듣고 있는 제자가 그곳에 가보니 신사를 소개하는 글에 한반도에서 왔다는 내용이 빠져 있다고 하더라구요. 비전사서인 태백일사를 보면 의라 왕자가 일본으로 무리를 이끌고 가서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부여의 의라 왕자가 있었던 지역이 홍산문화의 우하량 지역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서부여의 의라 왕자 혹은 의라왕이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홍산문화의 제의문화를 일본에 가지고 들어오게 되고 제의문화가 현지 세력을 포섭을 하는 문화기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3세기 말부터 야마토 통일정권이 수립되고 홍산문화의 양식이 일본 전역에 퍼져나가게 된 것과 큰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면 한중일 삼국이 다이나믹하게 고대에 교류했던 모습이 연상되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합니다.

    Q 김철수 교수: 교수님께서 아주 자세하게 홍산문화와 일본문화와의 유사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근거만으로도 문화벨트로서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의라 왕자가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일본으로 왔다면 자연스럽게 그 문화도 같이 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전방후원분의 묘제 양식도 이런 문화의 전수과정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남창희 교수: 일본 학자들은 전방후원분 묘제 양식이 대륙에서 들어왔다는 얘기를 절대 하지 않고요. 야요이 시대 말기에 사각형으로 된 분구형 묘제가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원형부와 사각형의 방형부가 결합된 형태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저형 토기의 가장자리 배치형태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일본의 고분문화는 3세기 말 부여계 기마민족 세력이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부여계 문화와 현지 호족들의 문화가 결합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분시대를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볼 때 부장품에서 차이를 보이는데요. 초기 고분시대에는 내부문화와 외부문화가 결합된 부장품이 나오고, 후기 고분시대에는 외부문화 중심의 부장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오늘 서두에 천부경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었는데요. 천부경이 일본 고대문화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이 천부경과 의라왕이 연관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천부경을 고대의 정치사상의 압축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보면 의라가 삼신의 부명符命에 응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의라가 삼신의 부명에 응해서 일본에 가게 되었고 하례를 받고 예식을 치뤘다는 내용인데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삼신의 부명에서 부符 자는 천부경의 부符 자와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고대사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라왕이 일본에 갔을 때 외부 세력이었기 때문에 현지 세력을 규합할 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규합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사상체계 혹은 의례문화를 전면에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는데요. 놀랍게도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도 의라가 의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봤을 때 의라왕이 천부경 사상을 중심으로 한 문화체계를 일본에 전수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선진문화체계로 후진문화체계를 교화하는 목적을 갖고 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하지 않고 야마토 정권의 기초작업을 다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문화가 전수되는 과정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나와 있는 환웅천황이 웅족과 호족을 교화한 방식과 동일합니다. 즉 서부여 세력이 일본에 처음 들어가면서 천부경의 사상을 중심으로 모두를 융합시키는 문화통치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혹자는 부여의 의라왕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응신왕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Q 김철수 교수: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훗날 이 부분이 연구되어 밝혀진다면 한일 고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야마토 왕국이 형성되는 시기가 3세기 말, 4세기로 볼 수 있는데요. 전방후원분 고분도 3세기에서 4세기 고분이고 말씀하신 여러 내용들이 모두 정합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응신應神’이란 말 자체도 『태백일사』의 ‘응삼신부명應三神符命’과 연결이 될 수 있는 걸로 봐서 의라왕을 응신왕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봅니다.

    A 남창희 교수: 네 저도 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야마토 왕국은 매우 수준 높은 철학체계로 통일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러 스토리텔링을 종합해봤을 때 일본 통일의 철학체계는 천부경의 사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마음을 얻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관련된 내용이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마치 의사가 병든 사람을 살리면 그 사람이 의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천부경에는 재생, 부활, 생명의 문제도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의라왕이 천부경을 통해 단순히 종교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즉 천부경의 원형정신 문화체계와 권력을 가지고 현지인들을 평화적으로 포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천부경을 보면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큰 의미를 부여해주는 철학이 있는데요.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란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一)과 땅(二)과 인간(三)을 합하면 생칠팔구, 즉 새로운 우주가 열린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됩니다. 또 천부경에 보면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란 구절이 있는데요. 일본의 전방후원부를 보면 원형부가 하늘을 뜻하는데 3단으로 되어 있고, 방형부는 땅을 뜻하는데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천부경의 정신이 그대로 표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저형 토기는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구절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바닥이 없는 토기는 텅 빈 마음으로 하늘과 땅을 관통하면 천지인 정신을 체현한 태일인간이 된다는 천부경 정신과 정합이 됩니다. 천부경의 정신을 조형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홍산문화와 일본 고분문화는 천부경 사상의 외적 표현물이라 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천부경 철학의 최종 종착점은 강화도의 참성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성단은 땅을 의미하는 방형부가 위에 있고 하늘을 의미하는 원형부가 아래에 있는데요. 이 구조는 정역正易에서 얘기한 지천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의 문화벨트의 완성은 강화도의 참성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김철수 교수: 교수님 말씀에 왜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깊은 연구를 통해 한일 고대사의 친연성에 대해 사상적 친연성까지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태백일사와 천부경 같은 비전사서까지 총동원이 되어 한중일의 사상적 기반을 밝힌다면 한일 갈등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에도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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