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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도전 산책 | 천지일심으로 일관된 마음

    유영근 (서울강남도장, 교무도군자)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중 나의 인생을 좌우하는 ‘마음’에 대한 의문이 빠질 수 없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주제는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진리 명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도전산책에서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 이상 던져 보는 질문, 즉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여행해 보겠습니다.


    내 삶의 중심, 마음


    오래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이와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희망은 좋은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주인공인 존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다가 결국 용기를 가지고 탈출에 성공한 뒤 교도소의 비리와 범죄를 알리며 이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고통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극복해 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자유로우면 속박된 몸이라도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마음이 묶여 있다면 자유롭게 산다 해도 구속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어떤 존재이든 그 답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 마음은 내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행복하거나 불행할 때도 항상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깨달아 가는 중대한 관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나’를 지탱해 준다


    세상에서 모두 존경해 온 예수, 석가, 공자와 소크라테스, 간디 등 수많은 성인들을 비롯해 주역 및 기타 경전들은 마음에 관련된 많은 명언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인류의 꿈과 희망이 담긴 인류 문화 경전 「증산도 도전道典」에는 마음이란 단어가 무려 542번이나 나옵니다. 상제님께서는 “오직 네 마음 하나만 닦아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태모님께서도 천상으로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바로 “너희들이 마음만 잘 고치면 선경세계를 보게 되건만…”이었습니다.

    도대체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마음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이토록 상제님 태모님께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언급하신 것일까요? 그리고 우주 가을의 성숙된 열매 진리인 증산도에서 전하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은 다른 종교와 어떻게 다를까요?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을 인생에서 찾아 가다 보면, 결국 ‘마음이 무엇이고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완전한 해답이 찾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마음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힘겨운 고난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밝은 마음속에는 긍지와 희망, 용기, 지혜 등이 자라나고 어두운 마음에는 무지와 좌절, 불평 의식, 헛된 욕망 등이 자라나게 됩니다.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듯이 어두운 마음은 인생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그만큼 내 삶에 영향을 주고,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가족 못지않게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마음이냐 내부의 마음이냐


    증산도 도전 2편 63장을 보면 마음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나옵니다.

    상제님 재세 시 성도였던 김형렬 성도님에게는 으렁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상제님은 으렁이에게도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 끝 간 데가 있더냐? 만리타국을 다녀도 하늘은 그 하늘이요, 끝 간 데가 없느니라.” 하시며 “너도 머슴 산다고 서러워 말고 꼭 진심으로만 마음먹으면 이제 괜찮아지느니라.”라고 용기를 주시자 종 으렁이는 용기를 얻어 마음을 고치겠다고 다짐합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 하고 근심하던 으렁이는 물가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결국 답을 얻지 못한 으렁이가 “선생님! 저물도록 물을 들여다봐야 제 화상만 보이지 마음이 안 닦아집니다.”라고 상제님께 고백을 합니다.

    이에 상제님께서 “허허, 물을 들여다본들 네 마음이 닦이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는 마음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중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습니다.

    마조 스님은 당시 육조 스님의 제자였던 남악 회양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좌선을 했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회양 스님이 하루는 마조 스님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좌선은 해서 무엇 하려는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회양 선사는 그 이튿날부터 마조 스님 앞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조 스님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회양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 벽돌을 갈아 무엇에 쓰시려고 합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자네도 앉아만 있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조 스님이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다시 남악 회양 스님이 마조 스님에게 묻습니다.

    “수레가 움직이지 않을 때 채찍으로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때려서 가게 해야 되겠는가?”


    여기서 수레와 소의 비유는 몸과 마음을 빗댄 것입니다. 만일 마조 스님이 이와 같은 선문답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아마 이 이야기는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마조 스님은 선문답을 알아듣고 후일 널리 알려진 불가의 조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이치와 이어져 있는 마음


    우주 가을의 성숙된 진리가 담긴 책,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나 양자는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닌 태극의 일체로 상호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는 천지의 음양 일체 관계가 소우주인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정신과 육신, 몸과 마음의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산도 우주론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상제님께서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했던 종 으렁이에게 내려 주신 가르침 또한 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진정 한 가지로 먹어라.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루에도 천백번 뒤집어지는 것은 세상이 그렇게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것이니, 한길로 나가야 쉽단 말이다. (도전 2:63:9~10)


    이 말씀은 세상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스스로가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원론적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인간의 마음과 이어져 있다는 마음의 본질을 밝혀 주신 것입니다. 더불어 이것이 곧 자연 그대로의 진리를 따라가는 증산도의 수행법이요 일심법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주의 원리는 그대로 인간의 생명과 창조의 원리가 되며, 이를 밝혀 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 삶의 목적이자, 성공의 요체인 것입니다.

    마음과 몸은 일체 관계


    『증산도의 진리』 1장을 살펴보면 “일심 자리는 천지와 나, 즉 주·객이 하나로 녹아떨어진 조화 경지입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열리는 이 ‘절대 순수의 일심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마음자리입니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일체 관계에 대해 설파한 선각자들은 적지 않습니다. 인도의 디팍 초프라 박사는 『마음의 기적』에서 “우리는 사실 하나의 몸과 하나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몸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노화, 무지, 질병은 몸과 마음을 다른 것으로 보는 편협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체와 정신, 몸과 마음의 본래적 일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증산도의 일심법 공부입니다. 이는 수행과 신앙 그리고 용用공부를 통해 체득됩니다.

    증산도의 태상종도사님께서는 그러한 일심 공부가 일회성 깨달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늘 말씀하셨으며, 후천 5만 년의 주춧돌과 기둥 그리고 터전이 되는 것이 곧 ‘일심’임을 전해 주셨습니다.

    “오직 일심으로 상제님 일에 달라붙어야 된다. 그 사람들이 후천의 기초동량基礎棟樑이다.”

    “증산도 신앙의 사명이라 하는 것은, 천지가 둥글어 가는 이법理法을 인사人事로 집행하는 것이다.”

    “상제님 일은 천지의 일이다. 우리 증산도는 우주원리를 집행하는 단체다.”


    신앙인의 근본 자세와 의식에 대해 일깨워 주시는 이 말씀들은 상제님 일을 집행하는 일꾼들에게 매우 소중한 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아眞我가 되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


    증산도에서는 기성 종교의 일심에 대한 가르침을 포용하면서도 더욱 성숙한 진리의 본질을 전하는 ‘천지일심天地一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크게 먹어라. 큰마음을 가져라.’라고 말하곤 합니다. ‘바다처럼 큰마음’이라는 표현도 자주 씁니다. 제가 살릴 생生 자 포교 활동을 하면서 도를 전하다 보면, ‘천지일심’을 이처럼 하늘과 땅만큼 큰마음을 가지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마음을 크게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천지일심인 도생들과 우리 국민이라면 진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깊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시원 역사와 한민족 창세 역사문화 경전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진리의 뿌리 원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에서 ‘환桓’이란 하늘의 광명을 뜻하고 ‘단檀’이란 땅의 광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류의 시원 문화는 하늘과 땅의 광명을 체험하며 살았던 시기라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 하늘과 땅의 결론인 인간의 내면에 깃든 광명이 바로 우리가 ‘한민족’, ‘한국’이라 말할 때의 ‘한韓’이라고 결론을 내려 주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광명이 인간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천지 역사의 결론입니다.

    “성자性者는 신지근야神之根也, 즉 인간 마음의 바탕 자리는 신이 존재하는 뿌리가 된다.”


    이는 행촌 이암 선생이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에서 전수해 주신 것으로, 마음과 관련된 진리의 핵심을 밝힌 내용입니다.
    또한 신시 시대의 제천가였던 <어아가於阿歌>에도 마음에 대해 노래한 구절이 나옵니다.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 모두 큰 활처럼 하나 되어
    수많은 과녁을 꿰뚫어 버리리라.
    끓어오르는 물 같은 착한 마음속에서
    한 덩이 눈 같은 게 악한 마음이라네.


    이는 우리 민족이 하늘땅으로부터 이어받은 마음 닦음을 생활과 문화의 근본으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개벽기 인류에게 성숙의 진리를 내려 주신 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본질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치(理)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 ······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2:90)


    도전 2편 90장의 이 말씀에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천지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 참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진아眞我’라고 하였으며, 이것을 찾는 것이 바로 인간의 광명을 회복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의 광명을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세상에 펼치는 존재를 다른 말로 태일太一이라 하며, 이러한 ‘태일인간’이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이러한 진리를 공부하는 것을 체體로 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태을주 수행과 함께 진리를 전수하는 용用공부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지일심’ 즉, 하늘과 땅의 마음을 얻어 이를 인간 세상에 널리 펼치는 것이 곧 ‘천지성공天地成功’이며, 이를 성취하는 도법으로 증산도의 지도자이신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께서 ‘천지일심법 공부’로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일심으로 나를 찾으면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 일심으로 믿는 자라야 새 생명을 얻으리라. (2:91:3~4)


    이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시작하시던 때에 전해 주신 말씀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자로서 주무시거나 깨어 계실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성도들의 마음과 언행을 꿰뚫어 보시는 일심 조화의 경계를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상제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늘 마음과 일심의 경계에 대해 주옥같은 말씀들을 내려 주셨습니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나니, 그런고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어일묵(一語一默)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만일 사람이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좋은 대로 언동하고 가볍고 조급하며 천박하게 처세하면 큰 덕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4:95:11~13)


    반딧불은 반드시 제 몸으로 빛을 내나니 너희는 일심으로 고하라. 일심이 없으면 너도 없고 나도 없느니라.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와 신음하는 자가 일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느니라. (8:58:1~3)


    마음먹기가 죽기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지일월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광명이 인간을 통해 완성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굳건한 마음 하나 잘 간직하여 상제님 도법으로 만백성들을 살리는 태일인간이 되는 것이 보은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일심으로 빛을 발하고 혈심으로 제 마음을 움직여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난세와 치세의 두 마음

    禹治九年洪水(우치구년홍수)할새 三過其門而不入(삼과기문이불입)은
    以一身之苦(이일신지고)로 而安天下之民(이안천하지민)이니라
    우(禹)가 구년홍수를 다스릴 적에 세 차례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았음은 제 한 몸의 고달픔으로 천하의 백성을 평안케 하고자 함이었느니라.

    是故(시고)로 治世之人(치세지인)은 餓其體(아기체)하고
    勞其筋(노기근)하여 以活民生(이활민생)하고
    亂世之人(난세지인)은 淫其心(음기심)하고 貪其財(탐기재)하여 以傷民生(이상민생)하나니
    若天理所在(약천리소재)면 功歸於修(공귀어수)하고 禍歸於作(화귀어작)하리라
    그러므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제 몸을 주리고 수고스럽게 하여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은 마음을 방종히 하고 재물을 탐하여 백성의 삶을 상하게 하나니 천리가 있다면 공(功)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화(禍)는 지은 데로 돌아갈 것이니라. (2:50)


    ◆ 하늘은 곧 이치(理)


    하루는 상제님께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者(천자)는 理也(리야)라
    昭昭之天(소소지천)이 合人心之天(합인심지천)하니
    理(리)는 原於天(원어천)하여 具於人心(구어인심)하니라
    하늘은 이치(理)이니라.
    밝고 밝은 하늘이 사람 마음속 하늘과 부합하니 이치(理)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

    若逆理(약역리)면 則自欺此心之天(즉자기차심지천)이니
    此(차)는 欺在天之天(기재천지천)이니라
    禍非自外而來(화비자외이래)요 罪及其身也(죄급기신야)니라
    이치(理)를 거스름은 곧 스스로 마음속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에 있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라.
    화(禍)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죄가 제 몸에 미친 것이니라.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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