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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모든 해답을 道典에서 찾다 외 (김련순, 김은영, 김호성)

    모든 해답을 道典에서 찾다


    김련순(여, 52) / 구미원평도장 / 150년 음력 8월 입도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저는 중국 길림성 장백산 아래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에서 왔습니다. 친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이 만주에 이주해서 사셨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은 공무원이라 아침 일찍 나가셨고, 저는 늘 할머니와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정월 15일이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정성스럽게 제수 준비를 하시면서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네 조상이시니 깍듯이 제사를 잘 지내야 한다.” 하셨고, “사람은 똑바른 행동과 똑바른 말을 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야 한다.” 등의 말씀을 하시며 항상 바른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모든 말, 행동을 하늘이 지켜보니까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할머니께서 “바르고 똑똑하구나.”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저에게는 최상의 칭찬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상도 많이 타 와서 어른들의 칭찬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꿈을 꿨습니다. 꿈에 새 한 마리가 저에게 왔는데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신다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 새를 타고 가 보니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일러 주셨고, 다시 그 새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세상을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항상 노력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께서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음과 모음부터 자모음 조합까지 가르쳐 주셔서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전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외할아버지께서 한글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라 무척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방송국에 취직을 하였는데 PD로 청소년 프로그램을 맡아 일했습니다. 그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공자님의 사상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 후 연길에 있는 불교 협회를 알게 되면서 불교 공부도 할 수 있었는데, 불교 공부를 통해 사람은 항상 선하게 살아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내셨다니...


    2001년쯤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입국 후 1년이 지난 2002년에 혼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조상님이 어렵고 힘든 곳에 살고 계시다며 천도식을 통해 좋은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께서 항상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으므로 그 사람들을 따라갔고, 30만 원을 들여 조상님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린다는 생각으로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뒤 2018년에 불교방송을 찾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불교방송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도전道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하는 도전 2편 40장 6절 말씀을 듣고서는 상제님이 누구신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간 상생방송을 계속 보다 보니 이 말씀이 진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도전을 찾았더니 “증산도 도전 말씀이죠?” 하고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도전을 구입해 와서 읽는데 어려운 낱말들이 나와서 상생방송에 전화를 걸어 도전 내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구미원평도장 전화번호를 알려 주셔서 도장에 전화를 하고 찾아갔습니다.

    따뜻하게 안아 주신 천지부모님


    이후 도장에서 팔관법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수호사님의 교육을 받을 때 제 주변에 난롯불을 피워 놓은 것처럼 따뜻한 훈기가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쯤 꿈을 꿨는데,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갑자기 다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서 웅장한 몸집을 가진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모자를 들고 자신도 모자를 하나 쓴 후, 4개를 나눠 주었는데 저도 한 개를 받았습니다. 모자를 못 받은 사람들은 다 쓰러졌고, 모자를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일꾼관 공부를 하면서 이 장면이 사람 살리는 사명을 암시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장에서 도공 수행을 할 때는 갑자기 상제님 태모님께서 환한 웃음을 지으셨는데, 두 분 다 하얀빛이 났습니다. 그리고 저를 따뜻하게 안아 주시는데 마치 멀리 갔다가 돌아온 아이를 반기는 것처럼 팔을 들어 환영해 주셨습니다. “어서 오너라” 하시는 마음이 느껴지자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왈칵 쏟아져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8관법 교육 과정을 다 마치고 나서 이제 입도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문득 제 남편이 반대를 할까 걱정이 되어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평상시 남편에게 상생방송을 보게 했는데 남편이 상생방송국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같이 갈지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꿈에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오셔서, 함지(동그란 모양의 큰 그릇) 같은 밭을 보여 주시는데 그 밭이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황금빛이 나고 풀이 싱싱하게 자랐는데 그 할아버지가 이 밭에 뭐든지 심으면 잘 날 것이라고 하며 선물로 준다고 하셨답니다. 밭이란 말을 들으니 남편과 함께 대전(太田)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뻤습니다.

    정말로 3차 개벽문화 북콘서트 때 남편과 함께 태을궁에 가게 되었는데, 종도사님께서 말씀을 길게 하셨음에도 성격 급한 남편이 기다려 주는 것을 보면서 조상님께서 도와주고 계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도전과 태을주로 답답함을 날려 버리다


    남편에게 구미에도 도장이 있어서 가 봐야겠다고 얘기를 해도 별말을 안 합니다. 앞으로 남편도 언젠가는 증산도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지금 중국에 있는데 대전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하고 싶습니다. 아들도 증산도 공부를 하여 상제님 일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이것은 엄마로서 큰 소망입니다.

    예전에는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답을 못 찾아 답답해하였는데, 지금은 모든 해답을 도전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을주를 읽으면 답답한 것이 사라지고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이 몸을 많이 쓰는 일인데 예전에는 어지럼증이 와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읽다 보니 태을주 기운으로 에너지가 충전되어 피곤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도 신기해합니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으면 피곤하지 않다고 얘기해 줍니다.

    불교 공부를 할 때 미륵불이 오신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있었는데, 상제님이 미륵불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지금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태을주는 수기 저장 주문이니 병이 범치 못하느니라.”라는 도전 4편 147장 성구가 생각났습니다. 이 사람들이 상제님 진리를 알았다면 병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열심히 도전 공부를 해서 깨달음을 얻고 진정한 도인, 상제님께서 바라시는 일꾼이 되어서 창생들을 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왜곡된 허상을 바로잡은 진리


    김은영(여, 49) / 태전대덕도장 / 150년 음력 9월 입도

    진리 갈급증을 풀어 주지 못한 성경 공부


    저는 많은 시간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 하나님만이 저의 구주시고, 저의 모든 갈급증을 채워 주시는 분이라 굳게 믿고 몸 찬양을 통해 전국 순회와 해외선교를 다니면서 많은 전도와 봉사에 힘썼습니다. 그간 목사님들의 그릇된 행동을 볼 때마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주님만 보고 다니자 하고 마음먹었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제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지며 다녔습니다.

    저는 이해되지 않는 성경 말씀에 늘 갈급했고, 그럴 때마다 갈급함을 풀어 보려고 목사님께 여쭙게 되면 이치에 맞지도 않는 언변을 늘어놓거나 “성경 말씀대로 믿고 따르세요.”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저는 진리 갈급증 해소를 위해 친구의 권유로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성경 공부에 매달려 보기도 했지만, 이 또한 갈급증을 채우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성경 공부라는 것은 그저 구약과 신약을 나름대로 짜 맞추는 식이었고, 이긴 자라는 사람이 와서 흰옷 입은 무리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얼토당토않은 얘기만 늘어놓곤 했습니다. 저는 긴 한숨을 쉬며 “이건 아니다. 참진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경 공부를 그만두려고 하자, 모두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와서 “너 지옥 간다. 이거 믿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흰 무리와 제사장이 될 수 없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그들은 집에 계속 찾아오고 제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이사를 갔다는 말을 전하자 그 뒤로는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귀신 떼기보다 힘들다는 옛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또다시 교회를 나갔지만 목사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더욱 조여 오는 사업적 어려움과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 저는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언론에서 누가 죽었거나 자살했다고 하면 그 기사가 눈에 띄고, “어떻게 죽었을까? 나도 저렇게 죽어 버릴까?” 하는 별의별 생각도 하면서 마음속에는 언제라도 죽어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는 항상 기회만 되면 죽어야겠다는 생각과 우울함뿐이었고, 참진리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으며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른 시작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참진리를 찾기 위해 방황했음을 깨닫고


    그러다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다시 취직을 한 곳이 바로 인도자인 송구현 도생님 회사였습니다. 제가 방황하고 잘못된 모습을 보였는지 송 도생님은 저에게 항상 좋아하는 역사 얘기를 해 주시고, 나중에는 요한계시록 말씀과 진표율사, 금산사, 지금 세계 정세의 대세 등에 대해서도 조금씩 얘기를 해 주셨고 서서히 제 마음속에는 참진리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앞으로 오는 개벽과 태을주라는 구원의 법방 소식과 함께 우리도 살고 남도 살려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죽음만 생각해 왔었던 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살고 있는 나와 내 아이들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송 도생님이 말하는 상제님이 어디 계신가 보자 하며 들었던 결정적인 말씀 한마디는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리라.” 하는 도전 2편 40장 6절 성구였습니다. 상제님의 이 말씀에 마음 한편이 환해지면서 “내가 찾던 참진리가 증산도에 있구나. 지금까지 참진리를 찾기 위해 이렇게 방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고 싶었던 저의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래 증산도가 어디 있는지 가 보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서 송 도생님과 딸 민채까지 이렇게 셋이 10월 8일에 도장 첫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증산도 주문 책을 받고 집으로 오면서 “어떻게든 아이들과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 마음속에서 태을주만이 살길이다.” 이런 생각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태을주를 계속 소리 내어 읽고 다녔습니다.

    나를 위해 60년 기도드린 조상님을 생각하며


    입도식 공부를 하면서 정말 인사로는 할 수 없는 신기하고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아빠의 임종을 보면 나쁜 기운이 들어간다고 목사님께서 보지 못하게 해서, 그 말만 믿고 아빠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절하지 말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죽은 이에게 꽃도 올리지 말라.’ 이러한 기독교 교리에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있기 전에 부모님이 계시고 조상님이 계시는데, 내가 태어나기 위해 조상님들께서 60년을 기도하셨다는데, 정말 왜곡된 기독교 허상을 모두 바로잡고 싶습니다. 지금 예수님 보좌에는 이마두 대성사님께서 앉아 계시는데 이러한 진리를 가족들부터 깨우치게 하고 싶습니다.

    집에 태을주를 종일 틀어 놓으니 아들도 태을주를 읽고 다닙니다. 이 녀석도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곧 청포로 성숙하겠지요?^^ 여동생의 꿈에 엄마가 나오셔서 “나 배고프다”라는 말씀 나오지 않게 엄마 아빠 천도식도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진리를 만났다는 기쁨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상제님의 진리를 이제서야 알았지만 입도 후에 더욱더 진리 공부에 정진하고 태을주와 정성수행으로 씨종자를 추리는 가을개벽기 때 가족을 살리겠습니다. 또 조상 선령신을 구원하고 진리를 많이 전해서 육임을 완수하고 반드시 후천 선경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치성에 꼭 참석하고 사람 많이 살리고 재정 공덕도 많이 쌓아 후천 오만 년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저를 진리로 인도해 주신 송구현 도생님께 감사드리고 팔관법을 통해 모든 이치를 깨우쳐 주신 태전대덕도장 수호사님, 포정님, 포감님들과 그 밖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비교할 수 없는 증산도의 가르침


    김호성(남, 49) / 강진평동도장 / 150년 음력 9월 입도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저는 전남 장흥군청 <목재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나무를 다루는 일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산업공예 목공디자이너’인 목공공예장인입니다.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을 일곱 바퀴 감고 나와서 부모님께서는 저를 나름대로 공들여 키우셨다고 생각하며, 부모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며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낳기 전, 한 번 유산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짚을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가마니를 짜서 어촌 마을을 옮겨 밟으시며 기도하여 낳으신 게 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많이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고 이른 나이에 자취를 해서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사이에 교회에도 가 보고 여호와증인도 만나고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했는데, 맞지 않는 것이 있었는지 더 앞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꿈인 선생과 그림(디자인)을 위해 줄곧 산업디자인을 하다 목공예와 가구디자인에 온 힘을 쏟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단학선원 다니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단학이나 기에 대해 잘 몰랐지만 수련도 하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신명과 천부경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천부경에 대한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태을주를 알기 전 최근까지 거의 20년을 외우고 다녔고 그래픽을 해서 동판이나 나무에 새겨 걸어 두기도 헸습니다.

    기 수련을 할 때는 3년 동안 태안사와 송광사, 선암사와 무등산 일대, 영광 등 새로 나는 도로를 다니며 천부경을 태우고 묻고 외우고 제주도에 가서 쑥도 태워 가며 지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의 힘듦이 찾아와 뿔뿔이 다 흩어지고 헤어지고 마음도 다치고 부모님의 사업까지 망하여,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상황까지 경험하였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소송까지 걸려서 5년 정도를 송사에 휘말리며 아무런 경제적 활동을 못하였습니다. 또한 뇌졸중으로 쓰러져 코피가 나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못하는 빈 주머니가 한스러웠습니다.

    나갔던 대학 강의마저 접고 건어물 새벽 시장에 나가서 아내와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1년을 못 버티고 빚만 늘어나 저희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이대로 차를 박으면 보험금으로 가족들은 잘 살겠지” 하면서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하였지만 조상님과 상제님께서 보호해 주셨는지 매번 어떤 현상이 일어나서 무탈하게 그 순간을 넘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전남 장흥군청 <목재산업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으면서 지역 목공예 발전의 사명을 가지고 10년을 지내 오면서 방송도 타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겨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전과 태을주를 삶 속에 넣고서


    그러던 차에 강진평동도장 김종학 도생님으로부터 『생존의 비밀』이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던 중간에 도장을 방문하여 증산도의 진리 말씀도 듣고 상생방송 유투브도 찾아서 청수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특히 종도사님의 <개벽문화 북콘서트> 병란 편 방송은 다시보기를 여러 차례 보면서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태을주를 하루 종일 저의 삶 속에 넣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증산도 진리와 태을주 수행법을 알고 싶어서 10월 10일부터 퇴근 후 도장에 와서 21일 정성 기간 동안 주문수행과 도공, 그리고 진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답이 없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수가 없는 증산도의 가르침과 진리를, 현실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의 근본 진리를 배우면서 옛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내가 많은 악행을 저질렀구나!” 하는 뉘우침과 참회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단박에 “증산도 도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며 참회하고 깨달아야 할 게 많지만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 선령님을 모시고 천지일꾼으로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조상 선령님께 진실되고 정의로운 구도자, 보은하는 구도자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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