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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주역과 무극대도 | 선천 말대의 풍족함의 상징 - 주역 쉰다섯 번째, 뇌화풍괘 ䷶


    한태일(인천구월도장, 교무도군자)

    우레와 번개가 잦으면 풍년 든다


    뇌화풍괘雷火豊卦의 ‘풍豊’은 오곡백과가 풍년豊年이 들었다는 풍豊 자를 써서 ‘풍성豊盛하다’, ‘풍족豐足하다’의 뜻입니다. 豊자는 豆(콩 두) 자와 曲(굽을 곡) 자가 결합된 글자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豆) 위로 禾(벼 화) 자나 丰(풀이 무성한 봉) 자가 그려져 제기 그릇에 곡식이 풍성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뇌화풍괘(䷶)는 번개(火, ☲)가 친 후 우레(雷, ☳)가 울리는 괘상으로 밝음으로써 움직여 나아가 풍대(豊)하다는 것인데요. 왜 우레[雷]와 불[火]이 풍요를 뜻하는 풍[豊]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학창 시절에 배운 ‘질소고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속담에 “천둥 번개가 심한 해 풍년 든다!” 혹은 “뇌우雷雨가 많은 해 풍년 든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질소고정’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질소고정이란 우레(천둥)와 번개의 방전에 의해 대기 중의 질소가스가 질소화합물로 전환한다는 말입니다. 즉 번개는 대기의 질소를 땅으로 환원시키는 질소고정 메커니즘의 중요한 요인이며 번개가 자주 치면 질소가 환원되는 양이 늘어서 지력地力이 올라가기 때문에 풍작을 거둘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금년 농사를 잘되게 하여 백성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리라” 하시고 우레와 번개를 크게 일으키시니 수일이 지나지 않아 충재가 그치고 이 해에 농사가 크게 풍등(豐登)하여 온 들에서 풍년을 노래하더라. (도전 3:58:3~4)

    둘째 우레와 불로 상징되는 현대의 정보통신기술(ICT :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입니다. 우레괘는 천둥이 칠 때 천지가 흔들리듯 모터가 돌아가는 동력動力을 상징하며, 불괘는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전기, 전자를 나타내므로 뇌화풍괘는 현대 ICT 산업사회를 상징합니다. 인류사에서 현대 고도산업사회만큼 수많은 상품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최대의 물질적 풍요를 구가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뇌화풍은 모든 것이 한곳으로 돌아간다는 뇌택귀매괘(雷澤歸妹卦,䷵) 다음에 와서 온갖 물건이 한곳에 모이니 ‘풍성하다’,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괘전에서도 풍괘는 ‘큰 것(豊者는 大也)’이라고 한바 한여름에 무성하게 자란 초목처럼 대량 생산^소비 사회인 현대 물질문명사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잡괘전에서 풍괘는 사건, 사고 등 ‘연고가 많다(豊者는 多故)’고 한 것은 선천 오만 년 동안 쌓여 온 모든 악업과 원한이 넘쳐 나서 난장판이 된 오늘날 난법해원亂法解冤의 시대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해원시대라. 이제 앞으로 모든 참혹한 일이 생겨나느니라. (2:24:1)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4:16:3)


    풍괘는 시간적으로 보면 하루에서는 일중日中인 ‘정오正午’, 일 년에서는 ‘하지夏至’이고, 우주 일 년에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이며 ‘오회중천午會中天’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 55번째 뇌화풍괘는 소강절 선생의 우주 일 년(129,600년)에서는 전·후반기로 갈리는 오회午會[우주년에서 달(月)을 회會라 하며 바로 오회에서 선후천으로 갈라진다(中天)]의 때입니다.

    풍豊은 밝음으로 움직이니


    풍괘의 괘사卦辭를 알아보겠습니다.

    豊(풍)은 亨(형)하니 王(왕)이어야 假之(격지)하나니 勿憂(물우)하지 않아도 宜日中(의일중)이니라
    풍은 형통하니 왕이어야 이르나니 근심하지 않아도 마땅히 해가 가운데 함이라.


    풍괘는 오곡백과가 풍년이 들어 모든 것이 넘쳐 나는 물질문명의 극성기(대중소비사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도 사덕(元亨利貞) 중에서 쑥쑥 자라는 여름의 정신으로 형통亨通하다는 ‘형亨’을 썼습니다(豊亨). 이 같은 우주 여름철의 복잡다단한 상극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제왕의 위치에 있어야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王假之). 그런 분은 단순한 위정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천지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에 능통한 대인大人의 경지에 있는 분이며, 그와 같은 인물이 출현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인이라야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선후천 교역기의 환란을 극복하여 창생들을 새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勿憂 宜日中).

    세상이 바뀔 때에는 대두목이 나오리라. 그래야 우리 일이 되느니라. (11:54:3)


    다음은 괘사를 풀이한 공자의 단전을 보겠습니다.

    彖曰(단왈) 豊(풍)은 大也(대야)니 明以動(명이동)이라
    단전에 이르길 “풍은 큰 것이니 밝음으로써 움직임이라.

    故(고)로 豊(풍)이니 王假之(왕격지)는 尙大也(상대야)오
    그러므로 풍이니 ‘왕이어야 이른다’ 함은 큰것을 숭상함이오

    勿憂宜日中(물우의일중)은 宜照天下也(의조천하야)라
    ‘근심하지 않아도 마땅히 해가 가운데 함’은 마땅히 천하를 비추어 주는 것이다.

    日中則昃하(일중즉측)며 月盈則食(월영즉식)하나니 天地盈虛(천지영허)도 與時消息(여시소식)이어늘
    해가 한가운데 하면 기울어지며 달도 차면 먹혀들어가니 천지는 찼다가 비움이 때와 더불어 줄어졌다 늘어나거늘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며 況於鬼神乎(황어귀신호)여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라고 하였습니다.#]

    풍괘를 서괘전에서 ‘큰 것이다(豊者는 大也)’라고 하듯이 풍성하고 풍부한 것은 크게 마련입니다. 우주 한여름 철의 뜨거운 열기로 만물이 극성極盛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풍괘는 우레괘(雷, ☳)와 불괘(火, ☲)로 이루어져 있어 불괘의 ‘명明(밝음)’과 우레괘의 ‘동動(움직임)’이 풍괘의 괘덕卦德입니다. 밝은 지혜로 잘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풍괘의 덕성인 것입니다(明以動).

    그러므로 뇌화풍의 개명된 세상에서는 모든 행동이 드러나므로 물질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고 중천의 해가 온 천하를 비추듯이 명명백백하게 처신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현대 고도산업사회를 상징하는 풍괘 시대에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수많은 욕구들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를 보더라도 위정자는 국민들의 관심 사안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득표와 관련된 큰 숫자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대중정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王假之 尙大也).

    근심하지 않아도 마땅히 해가 가운데 한다는 것은 해와 달 같은 자연이 때에 맞춰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므로 마음을 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아침에 뜬 해는 정오가 되면 중천에 떠올라 온 세상을 밝혀줍니다(勿憂宜日中 宜照天下也).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울며, 달도 초승달에서 커졌다가 그믐달로 줄어드니 자연의 섭리는 때의 정신을 따라 음양의 순환원리로 되어 있습니다(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그러므로 자연의 일부분일 뿐인 육신이 있는 사람이나 육신이 없는 신명이 어떻게 천지의 이법을 거스릴 수 있겠습니까(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천지개벽도 음양이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2:20:4)


    그럼 이 단전을 상제님의 대도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온갖 재화가 풍족하여 물질적인 풍요는 구가하고 있건만, 보이는 것이 크면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 또한 크듯이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풍요라는 그 이면에는 인간성의 상실과 도덕성의 타락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천 오만 년 동안 쌓인 원한의 살기가 터져 나와 온갖 재앙과 추살개벽의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난법 해원시대와 가을개벽을 목전을 둔 바로 이 시점에, 괘사에서 왕으로 언급한 인사의 두 분 지도자께서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두 분 지도자는 용봉도수龍鳳度數의 주인공으로서 천지의 물의 조화 신성을 나타내는 용龍으로 상징되는 우레괘(☳)의 주인공과 불의 조화 신성을 의미하는 봉鳳으로 상징되는 불괘(☲)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리고 상제님 말씀처럼 “현세의 복희伏羲가 갓 쓴 사람 아래 있으니 박람박식博覽博識”(6:9:6)하셔서 천하무적이신 문명文明(불괘 ☲)과 추진력(우레괘 ☳)을 겸비하신 대인께서 천지도수에 맞춰 창생들을 후천 선경세계로 건너갈 수 있도록 증산도의 놋다리를 굳게 짜고 계십니다. 이것은 상제님의 도수로 집행되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물샐틈없이 짜 놓은 도수이니 죽자 사자 따라가라. (8:112:6)


    해가 한낮을 지나면


    창생들을 새 생명의 길로 판몰이하는 시점은 상제님의 한시漢詩로 그때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日入酉配(일입유배) 亥子難分(해자난분)
    日出寅卯辰(일출인묘진) 事不知(사부지)
    日正巳午未(일정사오미) 開明(개명)
    日中爲市交易退(일중위시교역퇴) 帝出震(제출진)
    해는 유시에 들어가는데 해시와 자시의 변별하기 어려움에 필적하고
    해가 인시, 묘시, 진시에 나오는데 아직 세상일을 알지 못하며
    해가 사시, 오시, 미시에 남중하는 때
    나의 도(道)와 세상일이 환히 드러나느니라.
    해가 정중하여 문명의 장이 서고 교역이 끝나 장이 파하면
    태조가 진방에서 나오시느니라. (5:362:2)


    이처럼 상제님께서 모사재천하시는 천지사업은 일점일획의 오차 없이 그날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일입, 일출, 일정, 일중”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뇌화풍괘의 전체 괘상을 설명하고 있는 대상전을 보면

    象曰(상왈) 雷電皆至(뇌전개지) 豊(풍)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折獄致刑(절옥치형) 하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번개가 다 이르는 것이 풍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옥을 끊고 형벌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뇌화풍괘는 천둥 치는 우레[雷]와 섬광이 번쩍거리는 번개[電]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내리칠 때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울리는 뇌성과 벼락은 하느님께서 치시는 호통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 “벼락신장은 어디 있느냐. 속히 벼락을 치라!” 하고 건물이 흔들리도록 큰 음성으로 칙령을 내리시니라. 순간 창창하던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해처럼 밝은 불덩이가 나타나 번쩍번쩍 세상을 환히 비추고 뇌성벽력과 함께 비가 억수로 쏟아지며 난데없이 하늘로부터 미꾸라지, 메기, 쏘가리, 뿌럭지 들이 수없이 떨어지니라. 이에 모두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벌벌 떨기만 하는데 (5:18:6~9)


    공자는 우레(雷, 외괘)와 번개(火, 내괘)로 된 풍豊괘의 상을 보고 인간 사회의 형벌 제도를 설명하고 있으며, 군자는 이 풍괘를 보고 번뜩이는 명석함[번개괘]으로 엄정하게 옥사獄事를 판단하고, 천둥 같은 위엄[우레괘]으로 형벌을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혹은 전자(우레)와 전기(번개)가 결합된 현대 디지털문명의 어두운 측면, 즉 재화가 풍족한 선천 말대가 되면 물욕이 많아져 죄짓는 이가 많아진다는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풍괘의 육효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初九(초구)는 遇其配主(우기배주)호대 雖旬(수순)이나 无咎(무구)하니 往(왕)하면 有尙(유상)이리라
    초구는 그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나되 비록 동등하게 하여도 허물은 없으니 나아가면 숭상함이있으리라.

    象曰(상왈) 雖旬无咎(수순무구)이나 過旬(과순)이면 災也(재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비록 동등하게 하여도 허물은 없으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재앙이니라”고하였습니다.


    초구는 풍괘의 첫 번째 양효로 강건하고 불괘(내괘)의 명덕明德을 갖고 있으며, 응하고 있는 구사九四(외괘)와 짝이 됩니다(遇其配主). 풍대한 시대에는 상하가 서로 힘이 되어 주어야 하므로 초구와 구사가 평등하게 짝이 되는 것이 허물이 될 수 없으며 서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雖旬 无咎往 有尙).

    하지만 비록 초구와 구사가 같은 양효로 서로 평등하다고는 하나 초구는 초야의 선비요 구사는 중앙 관서의 고위직으로 엄연히 차이가 있는바, 초구가 구사보다 너무 앞서려 하면 불상사가 생긴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過旬災也).

    진리로 들여다보면, 후천개벽의 여명이 떠오르는 선천 말대에 동학東學은 ‘내 마음 안에 한울님(하느님)을 모시고 있다[그 짝이 되는 주인과 동등하게 대우]’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시천주侍天主 한울님 소식을 전해 주었고, 이 동학의 불씨를 조선의 민초들은 온 삼천리강산에 들불처럼 번지게 하였습니다[나아가면 숭상함이 있으리라]. 하지만 시세가 이롭지 못하여 녹두장군 전명숙의 절명시絶命詩처럼 끝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時來天地皆同力(시래천지개동력) 運去英雄不自謀(운거영웅불자모)
    愛民正義我無失(애민정의아무실) 爲國丹心誰有知(위국단심수유지)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을 합치더니
    운이 다하매 영웅도 스스로 도모할 길이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세움에 잘못이야 없건마는 나라를 위한 붉은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랴


    이 땅에 후천 인존시대를 실현시키고자 하였으나 시운이 맞지 않아 좌절된 최초의 천도혁명天道革命인 동학은 그렇게 패망당하였습니다.

    한낮에 칠성七星을 보니


    六二(육이)는 豊其蔀(풍기부)라 日中見斗(일중견두)니
    往(왕)하면 得疑疾(득의질)하리니 有孚發若(유부발약)하면 吉(길)하리라
    육이는 그 큰 포장이 풍대함이라. 한낮에 두성(북두칠성)을 보니 나아가면 의심과 질투를 얻으니 미더움을 두어 발하면 길하리라.

    象曰(상왈) 有孚發若(유부발약)은 信以發志也(신이발지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미더움을 두어 발함은 믿음으로써 뜻을 발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이는 내괘의 가운데 있으며 음陰자리에 음효가 있으므로 중정中正한 자리입니다. 육이는 지위는 낮으나 내괘(불괘)의 중심에서 밝은 지혜를 갖고 있지만, 정작 그와 응하는 육오(군왕)는 음효로 어둡습니다. 얼마나 어두우냐 하면 밤에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보일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운 포장 안에 갇힌 탓에 임금(육오)은 명석한 신하(육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豊其蔀 日中見斗). 그렇다고 육이가 육오를 찾아가면 괜한 의심만 사서 내쳐질 수 있기 때문에 중정의 미더움으로 지켜 나가면 언젠가는 진심을 알게 되어 길하게 됩니다(往 得疑疾 有孚發若 吉). 그 미더움의 바탕에는 바로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품은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信以發志也).

    상제님의 진리로 풀어 보면, 육이 자리는 문명의 꽃이 활짝 피어 물질은 풍요하나 정신은 빈곤한 시대로 사람들의 정신이 분열되고 영성이 퇴화하는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 욕구 충족에만 관심을 갖지, 참진리를 찾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豊其蔀). 인류의 황금시절처럼 위정자(육오)가 생명의 길을 제시해 주지도 못하며 개명된 문명사회라지만 그 이면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밤에 보이는 북두칠성을 한낮에 본다(日中見斗)는 것은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대도진리를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생명의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일중견두日中見斗(한낮에 두성을 봄)’에서 ‘日中(한낮)’이란 선후천 교역기로 물질문명의 극성기인 선천 말대를 뜻하며, ‘見斗(두성을 봄)’는 하느님의 별인 북두칠성(斗星)을 본다는 말로 이는 상제님을 볼 수 있다, 곧 ‘상제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의 한여름에서 ‘가을로 철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상제님께서 오셔서 가을개벽을 준비하시는데 이때 상제님을 꼭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3:89:6)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칠성을 본다는 것은 요즘 같은 과학만능 시대에 교회나 사찰도 아니고 더구나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무속신앙으로 비춰질 수 있는 칠성님(상제님)의 진리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미 백오십 년 전에 오셔서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신 가을개벽 이야기를 해 주어도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 이는 삼생의 인연과 선령님의 음덕이 없으면 만날 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 (2:78)


    그리고 상제님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겠지만 남들이 알아주지도, 잘 믿으려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주위의 곱지 않은 눈초리 등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기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往 得疑疾).

    천하사를 하는 자는 넘어오는 간을 잘 삭여 넘겨야 하느니라.······선지선각(先知先覺)은 훼방을 많이 받나니 천하사를 하는 데 비방과 조소를 많이 받으라. (8:33:1,3)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음은 의혹이 더하는 연고라. 이곳이 곧 선방(仙房)이니라. (8:20:3)


    그렇지만 선령신들의 구원의 희망이자 80억 인류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의통육임 태을랑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천하창생들이 새 생명의 증산도 놋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성경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8:21:2~3)


    일월의 대사부이신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평생불변심을 본받아 일심으로 천하사에 매진하여야 상제님의 천명인 의통성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有孚發若 吉 信以發志也).

    너희들은 일심으로 빌어라. 너희가 비는 대로 천하를 만들어 주리라. (7:47:4)


    육이효는 선천 말대 물질문명의 극기에 오시는 구원의 하느님이신 상제님을 몰라보지만, 삼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이 있는 천하사 일꾼인 상두쟁이는 일심을 다해 천하사에 임하여 마침내 후천 가을 선경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낮에 매성沬星을 보니



    九三(구삼)은 豊其沛(풍기패)라 日中見沬(일중견매)오 折其右肱(절기우굉)이니 无咎(무구)니라
    구삼은 그 깃발이 풍대함이라. 한낮에 작은 별을 봄이오. 그 오른팔을 끊으니 허물할 데가 없느니라.

    象曰(상왈) 豊其沛(풍기패)라 不可大事也(불가대사야)오 折其右肱(절기우굉)이라 終不可用也(종불가용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깃발이 풍대함이란 큰일을 하지 못함이요. ‘그 오른팔을 끊는다는 것’은 마침내 쓰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삼九三은 양효가 양陽자리에 있어 바르고 강건합니다. 하지만 중을 벗어나 있고 응하고 있는 상육은 풍대함이 극한 자리라서 흉하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론 아주 밝은 세상 같지만, 실상을 보면 구삼은 포장으로 덮은 구이九二보다 큰 깃발들로 더 촘촘히 둘러싸여 훨씬 어두워서 북두칠성보다 작은 매성沬星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豊其沛 日中見沬). 즉 구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다 오른팔까지 다쳤으니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습니다(折其右肱 无咎).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여건이라 큰일을 할 수 없을 뿐더러 결국 크게 쓰임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不可大事也 終不可用也).

    상제님 진리로 분석해 보면, 구삼은 내괘(선천)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선천이란 낭떠러지 끝에 꽂혀 있는 나부끼는 깃발들(세속의 욕망 상징)이 시류時流라는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지금이 어느 땐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節不知 인생으로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욕(五慾)으로 뒤섞여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옥추문(玉樞門)을 열 때에 뼈마디가 뒤틀려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7:26:5)


    이렇게 상극의 분열 기운에 휩싸여 정체성 상실과 뿌리 의식의 부재로 이 세상은 혼란 무도無道한 금수禽獸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우리 몸에 깃든 하느님의 신성神聖을 잃어버렸으면 두성보다 더 작은 매성이 보일 정도겠습니까? 매성沬星은 칠성의 새끼 별로 초저녁부터 보이는 북두칠성과 달리 한밤중에나 볼 수 있는 작은 별로 여기서는 칠성님의 일꾼, 일만 이천 도통군자로 대표되는 의통 육임도군들입니다. 즉 ‘매성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개벽상황이 목전에 당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사악해져 하느님 진리를 만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오른팔을 끊었다’는 표현에서도 짐작하겠지만, ‘오른쪽은 후천(左:先天, 右:後天)’을 상징하므로 후천을 건너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오죽하면 동학가사에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도전 3:185:2)라고 했으며, 상제님께서도 “희귀하다는 희(稀) 자가 ‘드물 희’ 자니라.”(7:86:9)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니 천하사처럼 개벽기에 광구창생하는 큰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상제님 진리에 수용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상제님과 태모님의 후천선경 건설에 동참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九四(구사)는 豊其蔀(풍기부)라 日中見斗(일중견두)니 遇其夷主(우기이주)하면 吉(길)하니라
    구사는 그 포장이 풍대함이라. 한낮에 두성(북두칠성)을 보니 그 동등한 주인을 만나면 길하니라.

    象曰(상왈) 豊其蔀(풍기부)는 位不當也(위부당야)일새라 日中見斗(일중견두)는 幽不明也(유불명야)일새요 遇其夷主(우기이주)는 吉行也(길행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포장이 풍대함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오. ‘한낮에 두성을 보는것’은 그윽해서 밝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 동등한 주인을 만나는 것’은 길하게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사 자리 또한 선후천 교역기라서 어둡습니다. 구사는 중앙 관료로서 지위는 있으나 양효가 음陰자리에 있어 제자리가 아닌 데다 우매하여 어둡습니다(日中見斗 幽不明也). 그래서 아래에 있지만 응하고 있는 같은 양효인 초구, 즉 이주夷主의 도움을 받아 신하와 백성이 화합하여 어두운 육오 왕을 보좌하면 풍대한 때를 잘 다스릴 수 있으니 길할 수 있다고 합니다(遇其夷主 吉).

    이야산李也山(1889~1958) 선생은 “이주夷主의 ‘夷’ 자를 ‘弓弓乙乙의 한 분(一弓之人)’이라 하였으며, 36번째 지화명이괘 구오효의 기자箕子로 판단하여 간방艮方의 땅에서 밝음이 쉬지 않는(明不息) 후천개벽의 도수를 맡았다.”고 하였습니다. 기자로 상징되는 인사의 대권자는 ‘오직 상제님의 진리만이 추살개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몽매한 창생들을 상제님의 진리권으로 판몰이하는 데 평생을 바치시는 황극제皇極帝이십니다.

    빛나는 것을 오게 해야


    六五(육오)는 來章(내장)이면 有慶譽(유경예)하야 吉(길)하리라
    육오는 빛나는 것을 오게 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어서 길하리라.

    象曰(상왈) 六五之吉(육오지길)은 有慶也(유경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육오의 길함은 경사가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오는 군왕의 자리이나 유약하고 우매하여 명석한 신하를 등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명민한 신하를 등용하든지, 아니면 직접 육이 신하가 육오 군왕에게 찾아가 발탁된다면 선정을 펼 수 있어 나라에 경사스럽고 명예로운 일이 생겨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세운世運의 지도자(六五)라 할지라도 선천 말대의 풍괘 시대에는 도운道運의 지도자(六二)의 도움을 받아야(來章) 추살개벽을 극복하여 후천 선경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경사스런 일과 명예를 누릴 수 있습니다(有慶譽 吉).

    앞으로 세상이 한바탕 크게 시끄러워지는데 병겁이 돌 때 서신사명(西神司命) 깃대 흔들고 들어가면 세계가 너희를 안다. 그때 사람들이 ‘아, 저 도인들이 진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291:12~13)


    上六(상육)은 豊其屋(풍기옥)하고 蔀其家(부기가)라 闚其戶(규기호)하니 闃其无人(격기무인)하야 三歲(삼세)라도 不覿(부적)이므로 凶(흉)하니라
    상육은 그 집을 풍대히 하고 그 집을 덮음이라.
    그 집을 엿보니 고요하여 그 사람이 없어서 3년이라도 보지 못하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豊其屋(풍기옥)은 天際翔也(천제상야)오 闚其戶闃其无人(규기호격기무인)은 自藏也(자장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집이 풍대함은 하늘 끝까지 오름이오. ‘그 집을 엿보니 고요해서 그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감춤이라.”고 하였습니다.


    상육은 풍대함의 극치에 이른 자리입니다. 즉 세속의 욕심이 극에 달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를 지경입니다. 육이, 구삼, 구사와 비슷한 처지로 어두운 포장에 둘러싸여 어둡습니다.

    마천루 같은 고층 건물로 겉은 화려하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성 상실 등으로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은 늘 어둡고 우울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적막감만 맴도는 풍요 속의 빈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지요.

    상육은 마침내 상극 기운이 폭발하여 추살개벽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병겁으로 3년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되어 드디어 선천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날아 떨어져 인간을 불태우니 십 리를 가도 한 사람 보기가 힘들구나. 방이 열 개 있어도 그 안에 한 사람도 없고, 한 구획을 돌아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구나. (격암유록, 말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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