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랑 이야기 | 나의 포교철학 -“살릴 生 자 공부법”-

[일심포교핵랑]
[편집자주] ※이 글은 하민석 포교법사(청주우암도장)의 지난 성직자교육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궁금하신 사항이나 추천기사, 기고할 원고가 있으면 언제든지 본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월간개벽을 사랑해주시는 구독자 여러분께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전체대용


사부님이 강조하신 말씀인데요. 전체대용全體大用. 바탕을 온전하게 하라. 그래야 너의 타고난 창조적 역량을 크게 발휘할 수 있다. 체를 온전히 잡고, 쓰임을 크게 하라는 말씀인데 오늘 서두에서 체를 잡는 이야기. 포교의 개념을 다시 잡고, 말미에서 실제 용用 공부에서 내어 쓸 수 있는 이야기까지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전체대용은 인간의 영성, 교육, 문화, 역사의 주제다. 우리가 도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얻고, 궁극적으로 도통을 하는 핵심 문제도 전체대용이다. 오직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사상신앙으로 온전한 바탕을 가질 때, 일꾼으로서의 역량을 크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도기 131년 3월 28일 전주덕진도장 사부님 도훈 중


Mind & Technic 포교란 무엇인가


포교와 관련해서 체를 잡는다는 것은 포교 마인드의 문제입니다. 포교에 임하는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 심법의 문제. 그다음에 실무적으로 테크닉(기술). 기술이라는 것은 정성이 집약된 것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거든요. 30년, 50년 반복한 그 기술 안에 정성이 녹아있으므로 이것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입니다.

- 포교布敎는 태교胎敎다! _동기감응同氣感應
아이를 복중에서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포교하면서 느꼈다는 건데요. 포교에서 애먹지 않으려면 정말 반듯한 마음, 곧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포교를 하면 할수록,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인연의 절대법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뭡니까? 유유상종입니다. 내 수준에 맞는 사람, 그렇게 끼리끼리 만나게 되어 있거든요. 세상은 결국 동기감응입니다. [2:19] 포교하는 당사자의 의식수준, 신앙의 심법이 그대로 투영된 그 사람을 만나는 거니까. 좋은 사람 만나면 내가 과연 좋은 사람인가, 떳떳하고 당당한가, 그걸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저도 많이 반성하는 부분입니다.

- 포교布敎는 교육敎育이 아니다!
그리고 포교는 교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포교와 교육이 뭐가 어떻게 다른 거냐. 서전서문을 외울 때 제가 익히 새기는 말씀 중에 ‘득기심’의 영역이 있고 ‘명차심’의 영역이 있습니다. 먼저 그 마음을 얻고 나중에 그 연유를 밝힌다.

득기심은 설득하는 거고, 명차심은 설명하는 건데, 우리가 사람을 상대할 때 제가 경계했던 것처럼 ‘설명충’이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맥락을 잡아놓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달라붙는다고 해서 포교가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감정을 흔드는 남다른 설득에 대한 사색을 서두에서 해볼까 합니다.

일왈(一曰) 통(通)이요,
이왈(二曰) 개안(開眼)이요,
삼왈(三曰) 포교(布敎)니라.
(증산도 道典 11:122)


태모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통이라는 건 로고스가 일단 통해야 하는 문제고. 개안이 되면 그 사람의 정곡을 찌를 수 있죠. 파토스의 영역. 전반적인 포교의 결실은 그 사람의 행동을 봐야 돼요. 폭 안 잡히고. 이 사람은 정말 증산도 신앙하고서 더 좋아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바람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종합이 될 때 포교가 된다. 다시 한번 태모님 말씀을 되새겨 봤습니다.

■ 설득의 기술
플레밍의 왼손법칙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웠어요. 설득에 있어서도 3s가 있죠. 이 얘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에요. 로고스와 파토스와 에토스.

첫 번째는 로고스logos예요. 논리적, 합리적이어야 해요. 그래야 ‘엄지 척’ 이렇게 나올 수가 있어요.

두 번째는 파토스pathos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치와 재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똑같은 우주1년을 전하고, 국통맥을 전하고, 태을주를 전하는데 왜 누구는 깨치고 누구는 안 되냐 이거죠. 말하는 사람이 열정적이고 그 기운이 전달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죠? 태을주를 많이 읽으면 파토스가 생겨요. 기운이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뀔 수 있는 에너지가 전달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 더 결정적인 것은 에토스ethos라고 합니다. 에토스는 공신력의 문제예요. 예수님 말씀에도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도마복음서에도 있는 말씀이거든요. 또 VIP신드롬이라고 해서 의사가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오면 치료를 잘 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그러거든요. 우리가 가족들의 폭 잡힘을 능가할 수 있는 큰 국량으로 커나갈 때 그것을 뛰어넘는 에토스가 쌓여 설득시킬 수 있겠죠.

설득되는 것에 비례해서 내가 커간다는 걸 반영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설득에 있어서 로고스로 진리 맥 전하기가 첫 번째로 중요하고, 파토스로 진리를 꽂아내는 힘이 필요하고, 에토스는 카리스마죠. 저 사람이 말하는 건 왠지 믿음이 간다. 그래서 풍기는 덕을 좀 길러야 하겠다. 그 총체가 바로 포교이다.

설득說得의 시작은 질문質問이다


설득의 시작은 질문입니다. 증산도가 뭔지를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이 증산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그 사람이 증산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그다음 대응이 들어가는 거죠. 질문의 질質 자가 바탕 질, 본질(Substance)이죠. 질문을 하면서 그 사람의 내면의 실체, 본질을 찾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변잡기 식의 질문으로 시작해 궁극적인 Big Question으로 들어가면 그게 화두가 돼서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죠,

묻는다 할 때 ‘問’이잖습니까? 질문이란 사람들의 철벽에 문을 다는 행위가 됩니다. 질문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중심가치를 깨닫게 되죠. ‘이 사람은 돈을 중시하는구나, 이 사람은 모양새를 중시하는구나, 이 사람은 본질을 보려 하는구나.’ 그 눈높이에 맞춰서 들어갈 때 첫 단추를 잘 끼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전에 질문이라는 검색에 나오는 성구는 딱 하나 있습니다. 하느님께 던지는 아이의 질문. “그 강아지가 사람이 돼요?” 아주 유쾌한 장면인데. 강성무극상제姜聖无極上帝님의 아들딸로서 후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 도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들여야 하는 시간대를 맞았어요. 우리가 그런 질문들의 세계에 투신해야 한다

사람들한테 답부터 알려주지 말고, 자꾸 질문을 해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오히려 우리 쪽으로 오게 하는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는 거죠. 질문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거든요. 인터뷰를 이끄는 거니까.

- 의심이 해소되면 확신이 된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시작할 첫 단추가 없는데, 차라리 증산도에 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좋다니까요. 대순하고 헷갈리거나, 뭔가 아리송하다고 느끼는, 그런 의심이 있는 사람들이 일꾼이 된다는 겁니다. 그 의심만 풀어주면 확신이 되고, 확신이 들면 뛰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의심이 바로 희망이죠. 현장에서 그 의심의 실체들에 더 많이 귀 기울이고 나만의 응답을, 솔루션들을 무기로 갖고 있을 때, 천 명 포교, 6천 명 군단장으로 우뚝 설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성구는 상제님 어천 후에 김형렬 수석성도님도 방황하시는 대목인데, 상제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죠.

세상 사람들의 고민이나 질문은 보통 3무실이라고 하죠. 오늘 뭐 하지? 점심 뭐 먹지? 지금 몇 시지? 그래서 3무실에 있다가 퇴근을 하는데 우리가 더 큰 문제의식 속으로 끌고 가야 하는 과제가 있어요. 이 실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문제의식이 없어요. 어느 때인지 몰라. 아주 사소한 문제만이 자기의 문제죠. 두 번째 배경지식이 없어요. 배경지식이 없으니까 가르치는 입장에서 요리할 재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배경지식을 깔아주는 겁니다. 그런 연후에야 구슬을 하나로 꿰는 행위, 도담을 통해서 진리의식을 심어주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죠. 바로 이 세 가지. 문제의식, 배경지식, 진리의식을 심는 행위가 설득의 바탕에 깔려있는 일이다. 그러면 만복동萬福童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죠.

- 설득說得은 결국 동기부여動機賦與(motivation)!
포교는 태교인데, 동기감응-같은 동기로 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뛰게 만드는 동기부여에 대한 철학과 테크닉이 필요해요.

이 두 가지 욕구의 실체를 아는 것. 그게 지심대도술이죠. 그럼 우리가 증산도를 포교하고 신앙을 권유할 때 뭘 강조합니까? 회피동기를 강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오래 안 간다는 겁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뭘 얘기하느냐면, 일의 결과가 먼 미래에 나올 때는 접근동기를 자극하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 증산도는 후천을 건설하는 큰 오만 년 비전을 가지고 길게 가야 해요. 어느 때보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 개벽이 가까운 날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마음을 넉넉하게 먹고 접근동기에 입각해서 포교를 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그 사람이 신앙을 진득하게 하지 않나 싶어요.

■ 사람을 움직이는 두 가지 동기
인간의 동기는 크게 두 종류라고 인지심리학자들이 얘기해요. 접근동기랑 회피동기가 있어요. 접근동기는 하고 싶은 거, 회피동기는 피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은 음양의 양면 두 가지 동기를 품고 움직입니다.

▶접근동기▶ 보험회사에서 은퇴설계 보험광고는 접근동기입니다. 고객들에게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 풍요로운 미래의 모습입니다. 애들과 운동하고 여행 가고 좋은 거 먹고. 하고 싶다. Like.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접근동기의 광고이고요.

▶회피동기▶ 이번엔 이빨 아파서 막 아픈 표정 짓고, 불의의 사고가 나서 안타까운 장면이 나와요. ‘이걸 들어놓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회피동기에서 발현되는 감정이 want입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랑 원하는 건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에요

포교布敎의 끝은 교육敎育, Education이다


앞에서는 포교는 교육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포교의 끝이 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도식화해볼 수가 있어요. 생장성으로, ‘포’를 지나서 ‘교’를 지나서 ‘육’으로 가는 거죠. 우리 증산도에서 양육되었다는 건 육기초 신명공부를 하고 있는가, 육임포교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가죠. 육임을 짜는 순간까지 가야 그 사람의 포교가 끝난 거잖아요. 그래서 사부님이 강조하시는 게 홑육임이 아니고, 이제는 맥 뻗는 포교. 맥 뻗는 조직으로 나아가게끔 해야 합니다.

布 - 敎 - 育
1 + 6 = 7
일 곱 칠
제 딸이 7살이 되었을 때 문득 생각을 해봤어요. 7을 일곱이라고 하는데, 일곱이란 말의 뜻을 써놓은 사람이 있더라고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일상에서 언제 ‘곱’이라는 말을 씁니까? 자장면 곱빼기, 곱하기. 6이라는 한자(六)도 사람을 겹친 거예요. 고기 육肉 자도 이렇게 되잖아요. 여섯이란 우리말도 이어서 선 사람. 사람 위에 사람이 서있는 거. 윷도 위에 올라타죠? 육이란 숫자는 단순히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올라타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기 위에 새끼들을 업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곱. 칠성포교라는 것은 글자의 의미 자체에서, 나 하나를 뿌리 삼아서 쭉쭉 뻗어나가는 것이 글자의 원뜻에 들어있다는 거죠. 칠성포교라는 것이, 무한히 내 삶의 판이 아름답게 벌어져있다는 겁니다. 그것까지 갔을 때 포교가 끝나는 거니까 그 사람이 온전히 자립할 때까지 우리가 길러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결국 education인데 교육이란 영어 단어도 educate라는 동사형에서 나온 거지만 원어근은 educe. 이 뜻이 뭐냐면 ‘이끌어내다’ 뭘 집어넣는 게 아닙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천재성, 그 사람 안에 있는 일꾼 능력을 뽑아내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포교가 진짜 교육이 되려면 집어넣는 설명충 교육이 아니라 역량을 뽑아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일꾼이 자기 입으로 로고스와 에토스, 파토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려면 입으로 뱉어내는 입 공부까지 시켜줘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케팅은 짧고 서비스는 길다』 - 진리적으로 보면 마케팅이란 포교입니다. 서비스는 교육이죠. 포교가 짧다면 그 뒤에 AS가 아주 오래 걸립니다. 신앙 초에 AS 계속하면서 그 사람이 궁극의 일꾼으로 설 때까지 책임져줘야 한다는 것이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포교가 밀당을 하는 차원에서 연애에 가깝다면 신앙은 진리와 결혼하는 거죠. 결혼과 함께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거니까 낭만은 짧고 현실은 지난하게 되는 게 사실이죠. 도제가 입도한 이후에 증산도 군사부일체 신앙문화에 잘 착근할 수 있게끔 훈련을, 입도 전부터 백신이나 영양을 충분히 줘야만 살아남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 프랭클린 효과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라 (2:29)
프랭클린 효과라고 아십니까? 프랭클린 플래너, 미국의 위대한 인물이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정치도 했거든요. 어떤 주의 서기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어요. 자기의 정적이 자기를 너무 싫어하는데, 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아주 희귀한 고서를 갖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책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내 책을 알았냐면서 흔쾌히 빌려주게 돼요.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져서 상극이 상생으로 전환되었어요. 사람 심리가 뭐냐면, 베푼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가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나, 다른 사람이 나한테 다가오게 할 때 모두 활용될 수 있는 효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철벽 같은 사람들을 깰 때도 쓸 수 있어요. 우리가 주변 지인들에게 자료를 보내주죠. 자꾸 보내면 우리 마음속에 그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는 거죠. SNS자료를 보내는 행위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안 되면 말지, 이게 아니죠. 꼭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달라지니까요.

저도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면서 늘 겪는 일인데요. 죽어가는 가족을 살려내면 첨에 와서 길길이 날뛰던 사람이 전혀 다른 반응으로 좋아하더라는 거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는 사람이 그렇게 폴더처럼 앞으로 90도 각도로 접히는지 몰랐어요. 도전에서 보면 상제님도 구릿골 약방을 차리실 때 의통법이 제일이라고. 남 고쳐줘서 좋아졌을 때,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고마워한다고 하시죠. 저의 깨달음이 뭐냐면 내 의지를 가지고 살리려고 하는, 그 일꾼의 능동적인 열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프랭클린 효과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선 나한테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돼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살아요. 오기든 측은지심이든 간에 그런 공부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메타인지 나를 찾아라 (11:69)
지금 공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 EBS 프로그램 중에 ‘학교란 무엇인가’ 8부작에 뭐냐면 0.1%의 비밀이라는 테마가 있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의 비결이 뭐냐는 것인데요. 직접적인 영향이 뭐냐면, 내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상위 0.1%의 학생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냐는 것이죠.

태모님도 ‘내 안에 내가 있다, 내 안에 나를 찾아라.’ 단군세기 서문에도 ‘천하만사 선재지야니라.’ 나를 아는 것, 내 능력이 어떤지 아는 것, 지금 천하사하고 있는 우리들도 내 능력을 측정하고 알아야 해요. 내가 한 시간에 태을주 몇 번을 읽을 수 있나. 제가 하루에 3,000독을 읽으려고 계수기를 차고 다니면 병원에 오는 사람이 이게 뭐냐고 다 물어요. 그럼 좋은 생각을 할 때마다 누른다고 해요. 그럼 2,140 좋은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그니까 내가 하루에 절대적으로 읽을 수 있는 수행의 양이 얼마고, 하루에 집중해서 포교할 수 있는 시간도 몇이나 되고, 만날 수 있는, 전화할 수 있는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일을 해야죠. 내가 지금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앞에서 얘기했던 살릴 생 자 공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도 잘합니다. 입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0.1%에 들어가는 겁니다. 증산도의 0.1%도 그런 사람들로 구성이 될 거예요.

포교는 어떻게 하는가?


- 주呪/책冊이 있어야 한다 (道典 9:69)
행법行法 중심! 교법은 행법에 녹아서
진리체계가 체질화되어야 한다
책을 제대로 읽혀야 한다!

포교에 대한 원론과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포교엔 주책이 있어야 한다. 그 주와 책이 뭡니까. 주문과 책이에요. 주문을 전하고, 책을 전하는 게 끝이죠. 주가 앞에 있으니 행법 중심이에요. 행법에 교법을 녹여라, 진리가 체질화가 되게 하라 하신 사부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태을주 전하고 진리서적 전하는 게 포교입니다. 그런데 차를 끓일 때 티백을 우려내듯 책을 전하고 대화 속에서 그걸 우려내야 돼요. 그 사람이 책을 쉽게 읽지 못하거든요. 잘 안 읽히는 목들을 넘겨주는 게 필요해요.

사례1 -블로그 이웃에게
이분은 불교를 하시는 분이셨고, 요가 선생님이셔요. 필담을 계속 나누다가, 제가 1,800일 공부가 시작될 때 이분한테 같이 배례를 해보자고 했어요. 이분은 불교식으로 하셨을 텐데, 105배례를 100일 동안 같이 했어요. 카톡으로 태을주 음성파일을 보내서 수시로 읽으라고 전해줬어요. 이분이 비싼 보이차를 저에게 보내와서 제가 책을 세 권을 보낸 겁니다. 어떤 책부터 읽을까요, 하길래 봄이니까 파란색 책부터 읽으세요. 해서 제가 15세 때 유레카를 외쳤던 책이라고 이렇게 전달된 겁니다. 그 사람 인생에 폭탄이 하나 들어간 거죠. 팡팡팡 터지겠죠. 계속 터지게 하려면 그 폭탄이 계속 점화되게 만들어야 해요.

사례2 -생존비밀을 전하다
이 사람은 경기도 사는 분인데, 『생존의 비밀』 책만 보냈어요. ‘변화의 실상이 소상히 담겨있으니까 인생 설계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하고. 그러니까 우리 책은 인생 설계에 도움되는 책이라고 설명을 해요. 개벽을 모르고 꾸는 꿈은 뭐다? 개꿈이다! 각자 꿈이 많지만 변수가 되는 개벽을 알아야 그 꿈이 이루어지는 거다, 그래서 알려주는 거다, 인생 방정식에서 이 미지수는 알아야 한다고. 그럼 ‘아, 그런 책이야?’ 하면서 읽는 거예요. 읽다 보면 철이 들겠죠. 이 과정에서 조상님들도 응하고 할 테니까요.

사례3 -엄마의 절박한 심정으로
이분은 의사인데, 셋째 아들을 작년에 낳았어요. 아이가 아직 돌이 채 안 지났는데,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이 선천성담도폐쇄. 애가 담도가 폐쇄가 되어 있으니 어떻겠어요. 담즙이 안 내려오고, 얼굴에 황달이 오고 달뜨고 그렇겠죠? 못 살린다고 세 군데에서 통보를 받았습니다. 애를 살려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간이식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이고~ 어머니의 절망!

대화 중에 제가 태을주를 막 읽는 거예요. 저한텐 이게 기독교의 아멘이랑 똑같죠. 여느 태을주를 전할 때와는 시공이 다르잖아요, 상황이. 제가 전할 때에도,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정유생 조○○ 호도구령! 그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을 제가 해드린 거죠. ‘매일매일 태을주 읽겠습니다!’ 엄마의 일심, 그게 모든 걸 바꿉니다, 하고 그날의 대화는 끝났어요.

태을주라는 것이 실제 민생고, 불치병을 가진 아이 엄마들한테 스스럼없이 전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조화가 터지는 것은, 내가 전하는 기운, 받아들이는 사람의 절박함에 있는 것이죠.

이야기는 거의 막바지인데, 지금까지 전체대용에서 체를 잡는 이야기를 해드린 건데, 결국 우리가 실무적인 용 공부, 입 공부에 대해서는 증산도란 무엇인가라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몇 가지 관법별로 제가 꼭 짚고 넘어가는 것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