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산책 | 공귀어수功歸於修 화귀어작禍歸於作

[기고]
박성남 (광주오치도장, 교무도군자)

최근 들어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체로 현세의 삶을 바르게 살아야 내세도 좋은 삶을 누린다는 교훈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번쯤 현세의 삶이 끝나고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오늘은 『도전道典』 속 재미있는 명부 이야기에 대한 일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인 명부의 참모습을 바르게 알아 감으로써 현재의 삶이 더욱 값지고 빛난다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도전』에 있는 일화를 통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하루는 비가 내리니 한 성도가 약방 사랑에서 비를 구경하다 잠이 들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가만히 오라는 손짓을 하시므로 호연이 다가가니 “가만 앉아 봐라. 저거 봐라, 저거! 저 사람 콧구멍에서 나오는 것 좀 봐라.” 하고 속삭이시니라. 호연이 신안이 열려서 보매 꼭 생쥐같이 생긴 것이 콧구멍에서 토방까지 나오더니 빗물에 잘박잘박하며 발을 대 보다가 다시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또 나왔다가 들어가고, 그러기를 계속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것이 사람의 혼이여. 저것이 하나라야 내 본심이고, 둘이면 도둑놈이다. 쥐가 둘이어서 양쪽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마음보가 커서 담장을 넘어 도둑질을 하니 그중 하나를 때려 죽여야지 그냥 놔두면 커서 일을 저지른다.” 하시니라. (도전 4:121:1~7)


이는 상제님께서 사람의 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김호연 성도에게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늘 기운을 내려받은 몸인 유체, 즉 혼과 땅 기운을 내려 받은 몸인 육체, 즉 넋이라는 두 개의 몸이 합쳐진 완성체입니다. 죽음이란 것은 이 혼백이 분리되는 사건입니다.

혼은 천상세계에서 하늘 사람인 신神으로 다시 태어나고 넋은 훗날 윤회에 필요한 에너지인 귀鬼로 바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귀신鬼神이라고 하는 것은 이 신과 귀를 합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 신이 빛과 같이 밝은 광명의 존재이기 때문에 ‘신명神明’이라고 즐겨 부르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2:118:2~4)


생유어사生由於死 사유어생死由於生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임종하신 분께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생명을 받은 하늘과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고,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은 혼은 날아가고 넋이라고 불리는 백이 흩어진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다가 생장염장의 이법에 따라 타고난 명수를 다하고 죽으면, 그 혼과 넋은 분리되어 각기 본래의 고향인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하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4:117:13)”는 말씀으로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서도 밝혀 주셨습니다. 인간인 나는 전생의 내 신명이 죽어서 태어난 것이며, 나의 죽음은 곧 새로운 나의 신명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에서 태어난 날이 생일이듯이 제삿날은 저승에서 태어난 생일이 되는 것입니다.

명부는 천상의 법정


사람의 임종이 가까워 오면 천상에서 명부사자가 그 혼을 데리러 내려옵니다. 이때 모든 망자는 저승을 의미하는 ‘어두울 명冥’ 자, ‘곳집(관청) 부府’ 자인 명부冥府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명부의 존재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명부 공사의 심리審理를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일이 결정되나니, 명부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또한 혼란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명부를 정리整理하여 세상을 바로잡느니라. 전명숙은 조선 명부, 김일부는 청국 명부, 최수운은 일본 명부, 이마두는 서양 명부를 각기 주장케 하여 명부의 정리 공사장整理公事長으로 내리라. (4:4:2~4)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명부는 단순히 죽은 이들만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과 사를 모두 주관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명부의 책임자를 천지인 삼계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임명을 하신다는 것, 마지막으로 명부대왕은 각 지역마다 나라마다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명부는 지상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고 죽은 자의 죄악과 공덕을 심판하는 천상의 법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명부로 인도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명부사자라고 하죠. 도전 9편 213장을 보면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라는 상제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사람의 공덕과 죄업에 따라 명부사자가 명부로 인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부사자, 즉 저승사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동안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봤던 저승사자의 친숙한 이미지는 하얀 얼굴에 검은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일 겁니다. 그리고 요즘 드라마와 영화에선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쓴 현대식 저승사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속에서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군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승사자를 나라의 공무원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명부사자는 몇 분이 오시는 걸까요? 서울, 경기 지방에서 유명한 '서울굿'에 등장하는 명부사자는 사재삼성이라고 해서 천황사자, 지황사자, 인황사자 세 분이 오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강림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3명의 명부사자가 오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대문 앞에 명부사자의 밥 세 그릇을 준비했는데, 이때 망자뿐만 아니라 명부사자도 사후 세계에서 노잣돈이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비로 쓰시라고 동전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태어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를 점지해 주는 세 분의 신령을 대접하기 위해 안방 윗목에 삼신상을 차리고 청수와 밥, 미역국을 각기 세 그릇씩 차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삼신의 인도로 태어나듯 돌아갈 때도 세 분의 명부사자가 와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예로부터 우리 한민족은 이승에서의 삶이 끝났을 뿐, 저승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명 대접을 극진히 했던 한민족


이러한 사실은 『환단고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과 인류 창세문화의 경전인 환단고기에서는 신명으로써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뜻인 이신설교以神設敎, 이신시교以神施敎의 기록이 있고, 또 ‘이삼신설교以三神設敎’라 해서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줄여서 신교神敎라고 합니다.

동방 조선은 본래 신교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라 할 만큼 한민족은 신명세계에 밝았습니다. 그래서 상제님은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다.(2:36: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부의 명을 받고 온 사자가 망자를 데리고 가지 못했다는, 상제님의 조화법신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일화 한 토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루는 자현이 집에 돌아와 있는데 한밤중에 팥정이 주막 주모가 찾아와 삼대독자를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하거늘 급히 주막에 가 보니 명부사자 셋이 지키고 앉았고 아이는 곧 죽게 생겼는지라 자현이 방에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다음 그 아이를 안고 정성껏 주문을 읽으니라. 잠시 후 주모에게 닭을 산 채로 붙잡아 오게 하여 손수 목을 비틀어 문밖으로 휙 집어 던지며 명부사자들에게 “당장 나가라!” 하고 벽력같이 소리치니 명부사자들이 아이를 빼앗으려고 달려들며 자현의 양 어깨를 물어뜯거늘 자현이 아랑곳 않고 계속 주문을 읽다가 날이 밝을 무렵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썩 물러가라.” 하고 호통을 치매 그제야 명부사자들이 돌아가고 주막집 아이가 멀쩡하게 깨어나더라. 이때 자현의 양어깨에 피멍이 들었거늘 이는 명부사자의 이빨 자국이더라. (10:100)


김자현 성도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가졌으면 명부사자가 어깨를 깨물어도 아이를 꼭 안고 있었을까요? 이런 일들에 대해 증산 상제님께서는 “너희들은 명부 내력을 잘 알아 두어라. 속담에 부녀자들이 ‘살고 죽기는 시왕전十王殿에 달렸다.’고 하니 명부를 잘 받들도록 하여라. 명부사자冥府使者에게도 권한이 있어서 명부의 명을 받고 잡으러 왔다가 명부를 잘 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간곡한 사정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느니라. 명부사자가 돌아가서 사실대로 명부전에 고하면 명부에서도 어쩔 수 없느니라.(9:212:2~5)”라고 하셨습니다.

사후 세계를 체험하다


아직도 사후 세계나 명부의 이야기를 전설 속의 이야기로 여기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세상에는 사후 세계를 체험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고 그 사례들을 모아서 분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중에 철학박사이자 의학박사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A. Moody가 쓴 『사후세계』란 책을 보면 빛의 존재가 나타나 자신의 일생을 평가해 보라고 요구하면 망자는 지난 삶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증산도 도생님 중에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천화룡도장에서 신앙하는 최병기 도생님의 신명 체험담을 일부 소개하겠습니다. 최병기 도생님은 일을 하시다가 전기 감전으로 약 6m 정도 되는 높은 곳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순간 숨이 멎고 의식을 잃었는데 다행히 119 소방대원의 심폐소생술 덕분에 호흡을 되찾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지구의 야산 같은 곳이었는데 조그마한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솔길 같은 곳을 따라 오르니 정말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무릉도원 같은 그곳에는 어른 키의 몇 배 되는 굵은 복숭아 나무가 가득했고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피리 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나면서 일반 신명들보다 체격이 2배 정도 큰 명부사자와 흰옷과 흰 모자를 쓴 신명들 열여섯 분이 함께 왔습니다.

명부사자가 본적, 본관, 이름을 물은 뒤 나머지는 같이 온 신명들이 각기 다른 질문을 했고 제가 모르는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명부사자가 제 이름이 없다고 하며 그냥 갔는데 그러다 깨어났습니다.”


명부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살아 돌아오게 되신 최 도생님은 생사의 고비를 겪은 체험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기도와 축원의 기간 49재


북방불교나 도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망자가 49일간 저승에 머무르며 명부시왕 중 일곱 명의 대왕들에게 7일째 되는 날마다 심판을 받다가 49일째에 되는 날 최종 심판을 받고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가나 도가에서는 49일간 망자를 위하여 염불을 하거나 기도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임종 49일이 되는 날에는 49제를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49제에서의 ‘제’ 자는 제사드리는 제祭 자가 아닌 명복을 빌기 위하여 공양을 드린다는 의미의 가져갈 재, 식사 재齋 자입니다. 49재는 49일간 명복을 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은 인도 탄트라의 대가인 파드마 삼바바Padma Sambhava라는 교수가 8세기에 지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망자가 49일간 세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전합니다. 첫 번째 단계가 죽음 직후의 세계, 두 번째 단계가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세계, 마지막에는 환생의 길을 찾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승에 있는 이들이 망자를 위하여 49일간 기도와 축원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증산도에서는 49일간 망자의 명복을 기원하며 칠성경七星經이나 진법주眞法呪를 읽어 주고 있습니다. 칠성경은 북두칠성의 성령의 기운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건강한 몸을 얻게 하는 주문이고, 조상과 신계의 위계질서를 밝혀 놓은 진법주에는 ‘명부시왕응감지위冥府十王應感之位’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명부의 시왕十王께서 응감하셔서 명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도전 속 명부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명부와 관련해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부가 천상의 법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눈과 입과 혀와 몸과 마음으로 지은 모든 죄업과 공덕이 드러나는 곳이란 말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만인경萬人鏡에 비추어 보면 제 죄를 제가 알게 된다.(7:64:1)”고 하셨습니다. 만인경은 업경이라고도 불리는데 충남 서산시 개심사에는 나무로 만든 업경대가 있고, 경남 진주시 청곡사에는 업경전이 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도 망자가 살면서 행했던 일들이 업경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사람마다 각기 주도신晝睹神, 야도신夜睹神을 하나씩 붙여 밤낮으로 그 일거일동을 치부케 하리니 신명들이 공심판, 사심판을 할 때에 무슨 수로 거짓 증언을 하리오.(7:64:4~5)” 하시며 신명들에 의해 모든 이들의 언행이 기록으로 남는다고 밝혀 주셨습니다.

또한 상제님 재세 시 도문 제자 중 한 분이신 백복남 성도님께는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한다. (1;42:3~4)”라며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공은 닦은 데로, 화는 지은 데로


이와 더불어 우리가 꼭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성구가 있습니다.

治世之人(치세지인)은 餓其體(아기체)하고 勞其筋(노기근)하여
以活民生(이활민생)하고
亂世之人(난세지인)은 淫其心(음기심)하고 貪其財(탐기재)하여
以傷民生(이상민생)하나니
若天理所在(약천리소재)면 功歸於修(공귀어수)하고 禍歸於作(화귀어작)하리라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제 몸을 주리고 수고스럽게 하여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은 마음을 방종히 하고 재물을 탐하여 백성의 삶을 상하게 하나니, 천리가 있다면 공功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화禍는 지은 데로 돌아갈 것이니라. (2:50:2)


공귀어수功歸於修 화귀어작禍歸於作. 공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죄도 지은 데로 돌아간다는 우주의 지공무사한 법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봐야겠습니다. 내가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지위에 있든지 모든 사람은 ‘공귀어수 화귀어작’이라는 이 여덟 글자 앞에 평등합니다. 태어났다면 죽음이 있고, 모든 망자는 반드시 명부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창생이 큰 죄를 지으면 천벌을 받고, 작은 죄를 지으면 신벌 혹은 인벌을 받느니라.(9:102:1)”라고 하셨고, “사람은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인데, 사람답게 살다가 죽어야지 사람답지 못하면 차라리 개돼지만도 못한 것이라.(3:274:4)”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죄 가운데서 우리의 명복을 막는 큰 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표적인 죄는 천륜을 끊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죄는 남의 천륜天倫을 끊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느니라.(9:103:1)” 하시며 천륜을 끊다가 죽어서 구렁이가 된 한 인물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천륜을 끊는 죄 중에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떼는 것과 같아 워낙 죄가 크므로 내가 간여치 아니하노라.(9;103:3)” 하시며 엄중히 경계하셨습니다.

또한 “뱃속 살인(낙태)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그 원한이 워낙 크므로 천지가 흔들리느니라.(2:68:2~3)”라고 하셨습니다. 낙태아 신명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길은 본인이 직접 참회하는 마음으로 정성수행을 하고 해원 천도치성을 올려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2:26:1~2)”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여름 우주에서 원시반본이 되는 가을 우주로의 전환점에 와 있기에, 근본 뿌리가 바르고 튼실해야 진실한 열매 종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공덕을 쌓을 때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복록과 수명을 관장하시는 증산 상제님께서는 “배고픈 사람 밥 주고, 옷 없는 사람 옷 주는 내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바른 마음을 일상으로 유지해야 극락을 가는 것이지 줘 놓고도 흠구덕을 하고 ‘나는 아무것을 줬다, 어쨌다.’ 하고 자랑하면 안 준 것만 못하니라.(9:93:4~5)” 하시며 남에게 베푸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태모님께서는 “원형이정에 두 길이 있으니 공功은 닦은 데로 가고 죄罪는 지은 데로 가느니라. 시시時時로 지은 죄는 하늘이 벗기려 해도 못 벗기고, 시시로 닦은 공은 하늘이 뺏으려 해도 못 뺏느니라.(11:198:3,5)” 하시면서 한번 지은 죄와 한번 지은 공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도전 속 명부 이야기를 통해서 죽음 이후의 삶을 바르게 앎으로써 인생에서 성공하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공귀어수 화귀어작!’ 공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죄는 지은 데로 돌아간다는 우주의 지공무사한 법칙을 알았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함께 배워 가는 삶에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