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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주역과 무극대도 | 우레와 바람같이 항구해야 - 주역 서른두 번째, 뇌풍항괘 ䷟


    한태일(인천구월도장, 교무도군자)

    부부는 인도의 시작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가 위에 있고, 바람을 나타내는 손괘(☴)가 아래에 있어 우레[雷]와 바람[風]이 겹쳐 있는 것이 뇌풍항괘雷風恒卦(䷟)입니다. 항괘의 ‘항’은 ‘꾸준하게 변함없는 항恒’ 자로 ‘마음 심忄’ 변에 ‘뻗칠 긍亘’ 자를 썼네요. 또 긍亘 자는 하늘[一]과 땅[一] 사이에 뻗쳐 있는 해[日]로 이루어져 있어 하늘의 해처럼 ‘한결같은 마음씨[一心]가 오래도록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괘명을 보면 궁금한 것이 세상에는 우레와 바람만큼 변하는 것도 없는데 왜 괘 이름을 ‘변하지 않고 꾸준하다는 항恒’이라고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천둥이나 번개나 바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것뿐만이 아니지요. 대자연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이처럼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혀 생긴 변화를 통해 천도天道가 지속되듯 끊임없는 변화만이 항구한 것입니다. 숱한 움직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꾸준하게 한결같은 마음자리가 바로 항괘입니다.

    항괘는 인도人道를 상징하는 주역 하경에서 택산함괘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괘입니다.

    함괘가 처녀 총각이 연애를 하는 괘라면 항괘는 부부의 도리(夫婦之道)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 사이[二]에 있는 해[日]가 항구하게 세상을 비춰주듯 신랑 신부 두 사람[二]이 부부의 연을 한번 맺으면 저 해[日]처럼 변치 말고 초심[忄]을 항구하게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 택산함괘는 자연에서 연못[澤]과 산[山]이 서로 기운을 느끼듯[咸] 인간사에서는 간소남[艮少男,山]과 태소녀[兌少女,澤]가 서로 교감[合德]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뇌풍항괘는 자연에서 우레[雷]와 바람[風]이 숱한 변화 속에서도 서로 거스르지 않고 항구[恒]하듯 인간 세상에서는 진장남震長男[雷]과 손장녀巽長女[風]가 부부로 만나 변치 않고 오랫동안[恒]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인의 주관자이신 상제님께서도 부부에 대해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3부부란 인도人道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니라. (증산도 도전 9:123:1)#}

    또한 주역에서는 청춘 남녀를 상징하는 택산함괘의 ‘느낀다는 함咸은 빠르다(速也)’고 하였으며, 지아비와 지어미를 상징하는 뇌풍항괘의 ‘항구하다는 항恒은 오래 하다(久也)’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말은 처녀 총각이야 서로 필feel만 통하면 순식간[速]에 교감[感]이 이루어져 쉽게 사귀지만, 한번 부부의 연을 맺은 부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항구[恒]하게 오래도록[久]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64괘의 순서를 설명한 서괘전에서도 항괘에 대해 설명하기를 ‘부부의 도리는 오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이런 까닭으로 함괘 다음에 항괘를 받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처녀, 총각이 만나는 함괘(䷞)는 남자(艮少男)가 여자(兌少女) 아래로 내려오지만(男下女), 부부의 도를 나타내는 항괘(䷟)는 지아비(震長男)가 지어미(巽長女) 위에(男上女) 있습니다. 이는 인륜의 근간으로 여기는 오륜五倫의 ‘부부유별夫婦有別’과 중지곤괘에 나오는 ‘선미후득先迷後得(음은 양보다 앞서면 미혹되지만 나중에 하면 이득이 됨)’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함괘(䷞)를 뒤집어 보면 항괘(䷟)가 되고, 이번에는 항괘를 뒤집어 보면 함괘가 되는데 이는 간소남·태소녀[함괘]가 성장하여 진장남·손장녀[항괘]가 되어 결혼해서 항구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천지의 도는 오래 함이니


    괘사를 살펴보겠습니다.

    恒(항)은 亨(형)하여 无咎(무구)하니 利貞(이정)이니 利(이유유왕)有攸往이니라
    항은 형통해서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


    젊은 남녀가 만나 부부로 살아가는 것[恒]은 형통한[亨] 일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듯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이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부부의 연을 맺는 혼인이란 음과 양이 교합하여 삼라만상이 생겨나는 대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으로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順天地之理 合人情之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도 “인존시대를 맞이하여 하늘이 아닌 인간 세상에 함께 오셔서 부부(陰陽同德)로 천륜을 맺고 도적道的 차원에서 천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正陰正陽)에 앉으셨다.”(6:38:2 측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부부란 하늘과 땅의 이치에 부합하여 맺어진 것이기에 단전에서 ‘하늘과 땅의 도는 항구하여 그침이 없다’고 하였듯이 ‘부부 또한 처음처럼 변치 말고 서로 아껴 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3한 남편과 아내가 복으로써 일가를 이룸이 천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 나에게 공경을 다해 고하여 두 사람의 마음을 맹세하고 소망을 기원하며 그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 낳아서 길러 준 공덕에 보답할 것을 서약하여 부부가 되나니 그 부부는 종신終身토록 변치 않느니라. (9:123:2,6,7)#}

    아울러 바르게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어야 합니다. 또한 항괘를 보면 내괘인 지어미[巽卦]는 안에서 공손하고 집안에서 안살림을 하며 부덕婦德을 베풀고 있으며, 외괘인 지아비[震卦]는 밖에 나가 큰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창부수夫唱婦隨하는 미덕으로 서로 믿고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거친 세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이로울 수밖에 없겠지요.

    다음은 괘사를 풀이한 단전입니다

    彖曰(단왈) 恒(항)은 久也(구야)이니 剛上而柔下(강상이유하)하고
    雷風(뇌풍)이 相與(상여)하고
    단전에 이르길 항은 오래 함이니 강한 것이 올라가고 유순한 것이 내려와 우레와 바람이 서로 더불어 하고

    巽而動(손이동)하고 剛柔皆應(강유개응)이 恒(항)이니
    공손하고 움직이고 강한 것과 유순한 것이 모두 서로 응하는 것이 항이니

    恒亨无咎利貞(항형무구이정)은 久於其道也(구어기도야)이니
    항괘의 괘사 ‘항은 형통해서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는 것은 그 도에 오래 함이니

    天地之道(천지지도) 恒久而不已也(항구이불이야)니라
    천지의 도는 항구해서 그치지 않느니라.

    利有攸往(이유유왕)은 終則有始也(종즉유시야)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마친즉 시작함이 있는 것이라.

    日月(일월)이 得天而能久照(득천이능구조)하며 四時(사시)가
    變化而能久成(변화이능구성)하며
    해와 달이 하늘을 얻어 능히 오래도록 비추며 사시가 변화해서 능히 오래도록 이루며

    聖(성인)人이 久於其道而天下(구어기도이천하) 化成(화성)하나니
    성인이 그 도에 오래 해서 천하를 (성인이 바라는 대로) 변화시켜 이루게 되니

    觀其所恒而天地萬物之情(관기소항이천지만물지정)을 可見矣(가견의)리라
    그(일월, 사시, 성인) 항구한 바를 보면 천지만물의 실정을 가히 볼 수 있으리라.


    택산함괘의 간소남 태소녀가 어느덧 성장하여 진장남 손장녀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이 뇌풍항괘입니다. 부부는 서로 믿고 의지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久也). 항恒은 꾸준히 쉼 없이 변하지 않는 항구불변恒久不變의 원리를 말합니다. 항괘는 보는 바와 같이 바깥일 하는 남편을 상징하는 강한 우레괘(☳)는 위[외괘]에 있고, 안살림을 하는 아내를 상징하는 유순한 바람괘(☴)는 아래[내괘]에 있습니다(剛上而柔下). 그래서 옛날에는 부부의 주거 형태도 남편은 바깥사랑채에 거처하고, 아내는 안채에 거주하는 것이 항괘와 무관하지 않네요.

    그리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더불어 있다(雷風相與)고 한 것은 복희팔괘도를 보면 바람괘인 손괘와 우레괘인 진괘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괘에서 아래에 있는 바람괘의 속성은 공손하게 다소곳하며, 위에 있는 우레괘의 성정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려 합니다(巽而動). 그리고 신기하게도 항괘의 육효는 모두 음양응陰陽應(음과 양이 서로 대응)으로 되어 있는데요(剛柔皆應). 진짜 그런지 볼까요? 초육(陰)-구사(陽), 구이(陽)-육오(陰), 구삼(陽)-상육(陰)으로 모두 음효-양효, 양효-음효로 서로 응하고 있습니다. 아마 항괘가 남녀가 혼인하는 괘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한 괘사인 ‘항은 형통해서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는 것은 ‘그 도가 오래 한다’는 것인데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천지의 도道입니다. 그렇지요. 하늘에 있는 저 해와 달은 한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해와 달은 생긴 이래 한순간도 쉼 없이 항구하게 운행하여 왔습니다(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사람도 이 같은 천지의 항구한 성품을 본받아 오래도록 한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해와 달처럼 같은 궤도만을 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종즉유시終則有始가 아닐까요. 즉 종시終始란 단순한 끝이 아니라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으로써 마치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 띠(Möbius strip)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온 천지를 밝혀 주던 태양도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지만 그 어둠도 결국은 새벽이 되면 자리를 양보해 주니까요. 하루의 변화가 어두운 밤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듯, 일 년의 변화도 봄에 싹이 나서 여름엔 자라고 가을엔 여물어서 겨울에는 갈무리하여 또 다른 새봄을 준비합니다. 춘하추동 사계절 변화의 마디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력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죠(四時 變化而能久成). 또한 사람도 부부가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크면 또 아들딸을 낳음으로써 항구해질 수 있죠. 이렇게 자자손손 계승되는 것이 사람의 종시입니다. 성인이 항구한 도를 온 천하에 펼치니 성인이 바라는 대로 천지만물의 실정이 항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인은 창생들에게 항구한 도심道心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죠(聖人 久於其道而天下 化成).

    도심주道心柱를 복중腹中에서 턱밑에까지 단단히 받쳐 놓으면 아무리 요동해도 꿈쩍도 아니하며 도끼로도 못 찍고 짜구로도 못 깍고, 끌로도 못 쪼으며 톱으로도 못 자르고 썩지도 않고 불로도 못 태우고 벼락이라도 못 때릴 터이니 부디 영구장생永久長生하는 도심주를 잘 가지라. (8:51:7~9)


    결론적으로 자연의 변화(일월, 사시 등)와 성인의 가르침인 항구한 도道는 천지 안에 있는 만물의 법칙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군자는 방소를 바꾸지 않는다


    항괘의 괘상을 풀이한 대상전입니다.

    象曰(상왈) 雷風(뇌풍)이 恒(항)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여 立不易方(입불역방)이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바람이 항구함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방소를 바꾸지 않음이라


    우레와 바람은 천지에서 양과 음을 대표하는 상징 요소로써 하늘과 땅의 도道가 항구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천지의 이치가 투영되어 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도 이와 똑같습니다.

    천지의 음양인 우레와 바람이 항구하듯 사람의 음양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가정도 항구해야 하죠. 부부가 지켜야 할 도리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방소를 바꾸지 말라(立不易方)’는 말은 지아비로서 해야 할 역할, 지어미로서 지켜야 할 도리 등을 지켜서 부부간의 신뢰를 깨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레와 바람같이 항구한 천지이법을 본받아 인륜의 도리로 맺어진 부부 또한 항구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육효사를 살펴보겠습니다.

    初六(초육)은 浚恒(준항)이라 貞(정)하여 凶(흉)하니 无攸利(무유리)하리라
    초육은 항상 함을 파느니라. 고집을 부리면 흉하니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象曰(상왈) 浚恒之凶(준항지흉)은 始求深也(시구심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항상 함을 파는 흉함’은 처음에 깊은 것을 구하기 때문이라.


    초육은 바람을 나타내는 손괘(☴)의 맨 밑에 있는 음효(⚋)로 집 안에서 살림하는 아내를 뜻하며, 또한 바람이란 속성은 자꾸 안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초육과 응하는 구사(우레)인 진괘(☳)의 속성은 밖으로 동動하는 것으로 바깥에서 일하는 남편을 뜻합니다. 항괘는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괘로, 부부 관계에 적용시켜 보면 구사(남편)가 바깥에서 딴전을 피우고 있는데 초육(아내)은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제 고집만 부려 착각 속에 살고 있으니 그렇게 하면 흉하고 이로울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남편을 너무 믿어서(처음부터 깊은 것을 구하는 것) 그렇다는 것입니다.

    九二(구이)는 悔亡(회망)이니라
    구이는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象曰(상왈) 九二悔亡(구이회망)은 能久中也(능구중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구이의 뉘우침이 없어진다’는 것은 능히 가운데서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


    구이는 음 자리(二爻)에 양효가 오는 부정위不正位라서 후회스런 일도 있으나 중中을 얻었고 외괘의 육오하고도 음양응이 잘되고 있습니다. 초육의 흉함이 여기 와서 소멸되는 것은 중용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죠.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후회스런 일이 있습니다만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구이(아내)가 심지心志를 굳게 지켰기 때문에 집안이 항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에 점을 처서 이 자리가 나오면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九三(구삼)은 不恒其德(불항기덕)이면 或承之羞(혹승지수)이니 貞(정)이면 吝(인)하리라
    구삼은 그 덕 닦기에 꾸준함이 없으면 혹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으니 고집부리면 인색하리라.

    象曰(상왈) 不恒其德(불항기덕)하니 无所容也(무소용야)이로다
    소상전에 이르길 ‘그 덕 닦기에 꾸준함이 없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구삼은 힘센 양효(⚊)로 중을 얻지 못했고 게다가 내괘에서 외괘로 건너가는 자리이기에 항덕恒德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不恒其德). 즉 부부간에 항상恒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이면 부끄러운 짓까지 할 수 있어 부부간에 틈이 생겨 인색해질 수 있지요. 남편이나 아내는 서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피우면 중용의 덕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나중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구삼효와 관련하여 『논어』 <자로편>을 보면 공자께서 “남쪽 나라 사람들에게 ‘사람이 항심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원 노릇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역경』에 이르길 ‘덕을 닦음에 꾸준함이 없으면 혹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점을 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九四(구사)는 田无禽(전무금)이라
    구사는 사냥하는데 새가 없음이라.

    象曰(상왈) 久非其位(구비기위)이니 安得禽也(안득금야)리오
    소상전에 이르길 그 자리가 아님에도 오래 하니 어찌 새를 잡으리오.


    구사는 양효(⚊)가 음 자리(四爻)에 있으니 제자리도 아니고 또 가운데에 있지도 않으니 이는 마치 사냥터에 나가서 새 한 마리도 못 잡은 꼴처럼, 부부가 가정을 꾸려 가는데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는 남편이 벌어 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아껴서 세간살이도 늘어나야 살림하는 맛이 나는데 집안의 가장인 구사가 가정을 돌보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고 바깥으로만 겉돌고 있으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산이 없다면 항심이 없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꾸준하게 한마음을 견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구사의 교훈은 단순히 가정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사의 화복을 주관하시는 천주님의 대도를 따르는 일꾼들은 아내의 마음을 얻어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부부가 합심하지 못하면 천하사는 이루기 어려우니라. 대인의 도를 닦으려는 자는 먼저 아내의 뜻을 돌려 모든 일에 순종케 하여야 하나니 만일 아무리 하여도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할 때에는 분란을 이루지 말고 더욱 굽혀 예를 갖추어 경배하기를 날마다 일과로 행하라. 그러면 마침내 그 성의에 감동하여 순종하게 되나니 이것이 옛사람의 법이니라. (3:245:7~10)


    멀지 않은 장래에 닥칠 가을개벽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 우리 천하사 일꾼들은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사람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
    봄에 씨(仁)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결실(義)할 것이 없느니라. (8:34:1)


    덕 닦기에 항구해야


    六五(육오)는 恒其德(항기덕)이면 貞(정)하니 婦人(부인)은 吉(길)하고
    夫子(부자)는 凶(흉)하니라
    육오는 그 덕에 항구하면 바르니 부인은 길하고 남편은 흉하니라.

    象曰(상왈) 婦人(부인)은 貞吉(정길)하니 終一而終也(종일이종야)오
    夫子(부자)는 制義(제의)거늘 從婦(종부)하면 凶(흉야)也라
    소상전에 이르길 부인은 정고하고 길하니 하나를 좇아서 마치는 것이오
    남편은 의리를 제어해야 하건만 (그렇지 않고) 부인을 좇으면 흉하니라.


    육오는 힘을 쓰는 양 자리(五爻)에 음효(아내)가 와 있고 또 동적인 진괘(☳)에서 중심을 잡고 있으니 부인이 집안에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인 입장에서 보면 길吉한 것이지만, 남편은 가장의 권위가 서지 않는 흉한 모습입니다. 소상전에서 공자가 말씀하시길 “부인이 바르고 길하다는 것은 여자가 시집와서 한 남편을 만나 살다가 생을 마치기 때문이요(一夫從事). 남편 보고 흉하다고 한 것은 가장으로서 집안에서 중심을 잡고 집안을 다스려야 하는데 부인한테 자리를 빼앗기고 쥐여산다는 것은 보기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를 좇아서 마친다는 것은 시집간 여자가 남편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여필종부女必從夫를 지칭하는 말이요. 남편이 의리를 제어한다 함은 여자처럼 정고하게 산다는 것은 생생지리와 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우주 시간대가 후천 곤도坤道의 시대가 열리는 때라서 여성 위주의 인사人事로 세상일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4:59:4)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 만들어 바라지하고, 자식 낳아 대代 이어 주고, 손님 오면 접대하고, 조상 받들어 제사 모시니 가정 만사 부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만고의 음덕陰德이 부인에게 있나니 부인을 잘 대접하라. 나 또한 경홀치 않느니라. (2:54:1~4)


    上六(상육)은 振恒(진항)이니 凶(흉)하니라
    상육은 항상 함이 흔들리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振恒在上(진항재상)이니 大无功也(대무공야)로다
    소상전에 이르길 항상 함을 흔드는 것이 위에 있으므로 큰 공은 없도다.


    상육은 항괘의 끝자리이며 중中도 얻지 못하였고 움직이는 진괘(☳)의 극단에 있으므로 항상 할 수 없어서 흔들리는 항(振恒)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흉하다고 한 것이지요. 사실 항구하다는 항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함을 유지하는 효가 하나도 없습니다.

    인사적으로 이야기하면 부부가 고생해서 자식들 다 키워 시집 장가를 다 보내 놓고 편히 여생을 즐기며 살아야 할 늘그막에 흉한 일을 겪는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배우자의 사별이나 황혼이혼 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리易理로 말하자면 부모와 자식 간은 불역지리不易之理지만, 부부간은 교역지리交易之理입니다. 그래서 부자지간은 천륜이지만 부부 관계는 깨질 수가 있기에 항상恒常 함이 힘든 것이지요.

    소상전에서 말하는 ‘항상 함을 흔드는 것이 위에 있다’는 것은 상육이 항괘의 맨 윗자리에 있다는 것이며, 인간사에 비유하면 부부 관계가 노후[윗자리, 在上]까지 쭉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큰 공이 없다’고 한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로서 한평생을 백년해로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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