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무극대도 | 간태합덕艮兌合德의 초립동 도수, 주역 서른한 번째, 택산함괘 ䷞

[기고]

한태일(인천구월도장, 녹사장)

산과 못이 서로 사귀니


택산함괘澤山咸卦(䷞)의 위에는 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가, 아래에는 산을 상징하는 간괘艮卦(☶)가 있습니다. 택산함괘는 주역 64괘 중 31번째 괘입니다. 주역은 30괘들로 된 상경上經과 34괘들로 이루어진 하경下經으로 나눕니다. 상경은 선천先天의 천도天道를, 하경은 후천後天의 인도人道를 나타냅니다. 상경은 하늘과 땅이 열리고 해와 달이 순환하는 천지일월의 이법을 밝힌 것이라면, 하경은 태소녀兌少女(처녀)와 간소남艮少男(총각)이 교감하는 택산함괘로 시작하여 인사를 열고 있습니다.

후천 인륜의 시초가 청춘남녀로 시작되므로 ‘태소녀와 간소남이 서로 느낀다’는 함괘가 맨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주역 하경은 처녀 총각이 만나서 인륜의 연을 맺고 진장남震長男과 손장녀巽長女가 가정을 이루어 천륜의 씨를 뿌리니 후천의 인도를 밝힌 것입니다. 아래 <주역 상경과 하경 비교>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왜 못[澤]과 산[山]이 ‘느낀다’는 ‘함咸’이 될까요?

모든 만물은 음양의 합덕으로 생겨납니다. 즉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의 교합으로 생겨난 것이지요. 그럼 하늘과 땅은 어떻게 교감할까요? 하늘 기운은 양의 기운이 뭉쳐서 불뚝 솟아오른 산(山, 陽, ☶, 凸)을 통해 땅으로 내려오고, 땅 기운은 움푹 파인 음습한 못(澤, 陰, ☱, 凹)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 천지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이처럼 산과 못이 사귀는 것을 산택통기山澤通氣라고 하는데요, 『설괘전』에 보면 그 내용이 두 군데 나옵니다. 첫 번째로 “하늘과 땅의 위치가 정함에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며, 물과 불이 서로 쏘지 아니하여, 팔괘가 서로 섞이니(후략)”라는 부분인데요, 이것은 「복희 선천팔괘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또 하나는 “물과 불이 서로 따르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거슬리지 아니하며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한 연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만물을 이루느니라.” 이것은 「문왕 후천팔괘도」를 설명한 것으로 만물이 나오는 것이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지가 산과 못을 통해 사귀어 감응하듯이 사람도 처녀·총각이 서로 느껴서 교감하는 것입니다. 즉 처녀(兌少女,澤,☱)와 총각(艮少男,山,☶)이 교합하니 음양을 느끼는 함咸괘처럼 말이지요.

택산함괘는 후천의 시발을 알리는 후천 인존시대의 머릿괘입니다.

인륜의 시초는 남녀의 교합으로 시작되므로 그만큼 후천 인존시대의 첫 출발점에 있는 태소녀(澤)·간소남(山)의 함咸괘가 중요합니다.

천지대업의 젊은 일꾼, 초립동


상제님께서는 ‘여름의 성장 도수에서 추수하는 가을의 성숙 도수로 들어서는 천지의 대운을 맞아 소남少男 소녀少女의 간태합덕艮兌合德의 원리에 의해 젊은이를 주축으로 새 역사를 개척하게 하신 것(6:58:1 측주)’이며, 이것을 괘로 나타낸 것이 후천 가을의 첫 번째 괘인 택산함괘입니다. 그리고 후천 오만 년의 새 판을 짜는 간태합덕의 주인공이 바로 ‘초립동’입니다. ‘초립동草笠童’이란 초립을 쓰는 나이의 어린이와 젊은이를 말합니다.

* 지금은 포태胞胎의 운이니 어린아이의 세상이니라...나의 도를 천하에 펼 일꾼은 이제 초립동草笠童이니라...상제님께서는 평소 청년들을 무척 사랑하시니라. (6:58:1~4)


종도사님께서는 “복남과 호연은 간소남과 태소녀, 즉 후천 신천지 지상 선경세계 건설의 젊은 동량인 초립동의 음양 기운을 상징한다.(5:75 측주)”라고 하셨습니다.

후천 오만 년 정음정양 시대를 여는 두 주인공으로 정음正陰의 동녀童女, 호연이와 정양正陽의 동남童南, 복남이가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등장했습니다. 즉 복남이와 호연이로 상징되는 간소남·태소녀가 후천 지상 선경세계를 건설하는 제3변 도운 개창의 핵심일꾼, 바로 초립동입니다.

아울러 상제님께서는 ‘가을 우주의 정음정양 도수를 여시는 후천 오만 년 첫 공사로 인륜의 음양 질서를 바로잡는 예식(5:195:1 측주)’을 천지에 질정하셨습니다.

* 상제님께서 “후천 오만년 첫 공사를 행하려 하노니 너는 잘 생각하여 가장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 하시니 공우가 여쭈기를 “선천에는 청춘소부靑春少婦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을 지켜 적막히 늙어 버리는 것이 옳지 않사오니 후천에는 이 폐단을 없애시어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기 가려서 일가와 친구를 모두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예를 갖추어 개가하게 하는 것이 옳을 줄 아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보지 못하겠으므로 네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도다. 이제 결정한 이 공사가 오만 년을 내려가리라” 하시니라. (5:195:1~7)


그럼 함괘의 괘사를 보겠습니다.

咸(함)은 亨(형)이라 利貞(이정)이니 取女(취녀)면 吉(길)하리라
함은 형통함이라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하면 길하리라.


함괘는 형통하다고 합니다[咸亨].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 특히 뜨거운 피가 흐르는 청춘남녀가 서로 필feel이 통하면 불꽃이 튀는 건 당연하지요. 이렇게 서로 호감을 느껴야(咸卦)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것입니다(恒卦). 그래서 함괘와 다음에 오는 항괘 모두 ‘형통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감정을 느껴 사랑을 하거나, 혹은 가정을 잘 꾸린다 해도 바르게 만나야 이롭다고 합니다. 기혼자이건 미혼자이건 자기 짝 이외의 다른 이성을 몰래 만난다면 그건 바른 만남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남녀의 사귐은 올바른 만남[利貞]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를 취한다는 ‘취녀取女’라는 두 글자를 합하면 ‘장가들 취娶’, ‘아내를 맞이할 취娶’ 자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취녀란 단순히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이 아니라, 선천 상극[乾道] 세상을 상징하는 내괘의 총각[山]이 후천 상생[坤道]을 의미하는 외괘의 처녀[澤]에게 장가드는 것[取女]이므로 이는 곧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괘사가 의미하는 것은 선천 상극 세상이 어렵더라도 ‘마음을 굳게 가져[利貞] 후천을 향한 목 넘기기[取女]를 잘 하여(7:17:1)’ 복록을 누리라[吉]는 것입니다.

참고로 ‘혼인’이라는 글자에서 ‘혼婚’은 ‘장가든다’라는 의미이고, ‘인姻’은 ‘시집간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혼인이란 음과 양이 교합하여 삼라만상이 생겨나는 대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으로 예로부터 혼인을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順天地之理 合人情之宜)’이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여 혼인하는 것보다 더 이상 길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혼례를 ‘이성지합二姓之合 만복지원萬福之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택산함괘는 처녀·총각이 교감하는 괘라서 여섯 효 모두 음양 짝으로 감응하고 있는데요. 즉 초효(음)-사효(양), 이효(음)-오효(양), 삼효(양)-상효(음)가 음-양, 혹은 양-음으로 서로 짝이 되어 있습니다. 주역 64괘 중에서 택산함괘처럼 음양 짝이 딱 들어맞는 괘는 7개 괘밖에 없습니다. 이를 열거해 보면 지천태괘地天泰卦, 천지비괘天地否卦, 산택손괘山澤損卦, 풍뢰익괘風雷益卦, 수화기제괘水火旣濟卦,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입니다.

주역 상경은 선천, 하경은 후천이라고 합니다. 하경의 첫 번째 괘가 택산함괘인데요. 그러니까 총각과 처녀의 교감으로 후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간태가 합덕하는 택산함괘를 현실 역사와 연관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8·15 해방 후에 미군들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역을 공부하던 분들은 이 함괘를 거론하며 서방의 태소녀(美國)가 간소남인 우리나라로 시집[艮兌合德]을 오게 되었으니 비로소 후천 시대의 막이 올랐다고 하였답니다. 특히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선생은 대한민국이 수립된 1948년(戊子年)을 후천 원년으로 보았습니다.

이 같은 사건은 이미 상제님께서 간태합덕과 지천태운으로 열리게끔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내용입니다.

* 동방의 청룡靑龍 기운이 동動하면 백호白虎는 물러가느니라. (5:285:8)


동방 청룡은 만물을 생生하는 기운으로 역사의 새 질서를 여는 출발점을 상징합니다(5:285:8 측주). 즉 후천의 시운時運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상제님 말씀대로 일본 사람이 서방 백호 기운을 띠고 왔으므로 후천 기운이 몰려오면 살벌한 제국주의 일본이 물러가고 간태합덕의 원리로 태방兌方의 미국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뜻합니다(5:285:5~8 및 측주).

그리고 지천태의 후천 운이 열리는 구절을 도전에서 찾아보면, 1909년(무신년) 1월경 서울 덕수궁에 가셔서 대공사를 보신 내용이 있습니다.

* 이때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쌀이 솥을 따르느냐, 솥이 쌀을 따르느냐?” 하시니 공우가 “쌀이 솥을 따르지요.” 하고 아뢰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쌀은 미국이고 솥은 조선이니 밥을 하려면 쌀이 솥으로 올 것 아니냐” 하시고 “장차 일본이 나가고 서양이 들어온 연후에 지천태地天泰 운이 열리느니라.” 하시니라. (5:336:4~6)


쌀은 미국으로 서방에 있는 태소녀이며 솥은 조선으로 동북방에 있는 간소남입니다. 이 태소녀가 간소남에게 시집오는 때가 바로 후천이 열리려는 시운, 즉 지천태운이 열리려는 시점이며 이때에 맞춰 왔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괘사를 풀이한 단전을 살펴보겠습니다.

彖曰(단왈) 咸(함)은 感也(감야)니 柔上而剛下(유상이강하)하여
단전에 이르길 함咸은 느끼는 것이니 유순한 것이 올라가고 강한 것이 내려와

二氣感應以相與(이기감응이상여)하여 止而說(지이열)하고 男下女(남하여)라
두 기운이 느껴 응함으로써 서로 더불어 그쳐서 기쁘고 남자가 여자 아래로 내려옴이라.

是以亨利貞取女吉也(시이형이정취녀길야)라
이로써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하면 길하니라.

天地感而萬物(천지감이만물)이 化生(화생)하고 聖人(성인)이
感人心而天下和平(감인심이천하화평)하니
천지가 느껴서 만물이 화생하고 성인이 인심을 느껴서 천하가 화평하니

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관기소감이천지만물지정)을 可見矣(가견의)리라
그 느끼는 바를 보아서 천지만물의 실정을 가히 볼 수 있으리라.


함괘의 함咸은 ‘모두 함’, ‘다 함’이 아니라 ‘느낀다는 감感’이라고 하였습니다[咸感也]. 이팔청춘 남녀가 느끼는 감수성은 민감합니다. 만약 양 기운(간소남)이 위에 있고, 음 기운(태소녀)가 아래에 있다면 음양의 교류가 전혀 일어나지 않지만 함괘는 이와는 반대로 유순한 음 기운(澤)이 위에 있고, 강건한 양 기운(山)은 아래 있어 두 기운이 서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柔上而剛下].

이것은 땅(地,☷)은 위에 하늘(天,☰)은 아래에 있어 천지가 사귀어서 크게 통한다는 지천태괘地天泰卦(䷊)와 일맥상통합니다. 지천태괘가 ‘천지의 상교相交’를 의미한다면 택산함괘는 ‘인간의 교합交合’을 나타냅니다. 구체적으로는 정양의 간소남과 정음의 태소녀가 교감하여 서로 사귀고 있습니다[二氣感應以相與].

그리고 함괘는 남녀가 교감하는 괘이지만 도를 넘어서는 안 되며 산(艮은 止)처럼 후중하게 그칠 땐 그쳐야 하고, 소녀(兌는 說)처럼 기쁠 땐 기뻐하는 등 동정動靜을 적절히 조절해야 올바르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止而說].

그리고 후천은 곤도의 시대로 음도가 앞서는 세상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여성 상위 시대가 되어 ‘남자가 여자 아래로 내려오는[男下女]’ 세상이 되었습니다.

* 예전에는 억음존양이 되면서도 항언에 ‘음양陰陽’이라 하여 양보다 음을 먼저 이르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이 뒤로는 ‘음양’ 그대로 사실을 바로 꾸미리라. (2:52:4~5)


* 이제 내가 길을 양보하였으니 이후에 너희들도 또한 여자에게 길을 양보하라. (2:136:5)


남녀가 교합하면 자식이 생기듯 천지도 서로 상교하여 만물이 생겨납니다[天地感而萬物化生]. 중천건괘 문언전을 보면 무릇 대인이라 함은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지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성인 또한 이와 같아서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인심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니 그야말로 태평성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그러자면 천지만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을 볼 때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말고 올바로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지요[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이와 유사한 표현이 계사전에 있는데, “천지 대도라는 것은 바르게 보는 것(天地之道 貞觀者也)”이라는 구절입니다.

간태합덕과 정역


주역周易을 선천역先天易이라 하고 정역正易을 후천역後天易이라 합니다.

그리고 주역에서 상경은 선천, 하경은 후천을 의미합니다. 하경은 간소남과 태소녀가 만나는 택산함괘로 시작합니다. 간태가 합덕하여 이루는 후천 오만 년 세상의 청사진은 바로 김일부 대성사가 완성한 정역에 담겨 있습니다. 정역은 후천개벽이 오는 이치와 우주 통치자이신 상제님의 지상 강림을 역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다가오는 후천 천지일월의 운행을 노래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 永世花長乾坤位(영세화장건곤위)요 大方日明艮兌宮(대방일명간태궁)이라
영원한 평화의 꽃은 건곤위에서 길이 만발하고
대지 위의 태양은 간태궁을 밝히리라. (5:122:2)


‘영원한 평화의 꽃이 건곤위에서 길이 만발하다’는 것은 건곤이 남북 방향으로 바로 선다는 뜻이며, ‘대지 위의 태양은 간태궁을 밝히리라’는 태양이 정동에서 떠서 정서로 지니 광명이 충만하다는 뜻으로, 즉 후천 정역 시대에는 지축이 정남정북으로 바로 서서 천지일월이 정도正道 운행을 하게 됨을 노래한 것입니다.

정역팔괘도에서 건곤은 남북으로 건북乾北-곤남坤南의 종축縱軸을 이루며, 간艮은 정동正東에 태兌는 정서正西에 있어 간동艮東-태서兌西는 횡축橫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역팔괘도는 건곤의 세로축과 간태의 가로축으로 십자형을 나타냅니다. 남북의 건곤은 체體요, 동서의 간태는 용用입니다. 천지의 축인 곤남건북坤南乾北은 지천태괘(䷊)의 괘상이며 간태의 횡축은 현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용사用事의 중심축입니다. 그래서 간태궁艮兌宮은 후천세계의 문화를 창조하고 조화를 이끌어 갈 정역 변화의 동서궁東西宮입니다(5:122:2 측주).

말에 태워 보신 간태합덕 도수


후천 인존시대의 문을 여는 주인공으로 ‘복남이’와 ‘호연이’라는 초립동이 등장합니다. 복남이와 호연이는 상제님께서 가을개벽의 간태합덕 원리를 인사에 이화시키신 것인데, 호연이는 천지의 제단에 가을 소녀(兌少女)로 바치셨고(5:419:3 측주), 세 살부터 만물의 내면을 환히 꿰뚫어 보던 복남이는 친아들(艮少男)과 같이 사랑해 주셨으며(3:3), 복남이와 호연이를 9년 천지공사에 참관을 시키셨습니다.

* 상제님께서는 종종 형렬, 복남, 호연과 함께 말을 타고 공사를 보러 가시는데 그때마다 말은 항상 세 필을 준비하게 하시어 한 필은 상제님께서 타시고 한 필은 형렬이 타게 하시며, 나머지 한 필은 복남과 호연이 함께 타게 하시는데...호연이 복남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니라. (5:57)


상제님께서 복남이와 호연이를 데리고 공사를 보셨다는 것은 후천 신천지 선경 세계 건설의 젊은 동량인 간소남 복남이와 태소녀 호연이의 그 기운을 우리 일꾼들이 쓸 수 있도록 9년 천지공사에 참관케 하시고 ‘간태합덕’ 도수를 온 천지에 질정質定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 필의 말’에서 ‘세 필’은 천지공사의 최종 결론인 ‘삼변성도三變成道’를 의미합니다. 즉 시·공간이 세 번 바뀌면서 마지막 세 번째 판(상씨름판)에서 선천 판이 종결되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상제님께서 타신 말은 상제님과 음양동덕이신 태모님의 제1변을, 김형렬 성도가 탄 말은 임술壬戌생(김형렬 성도) 대두목을 나타내므로 제2변을, 복남과 호연이 함께 탄 말은 도운 개창의 핵심 일꾼인 초립동이자 이번 상씨름판을 매듭짓고 후천선경 건설의 역군이 되는 태을랑들을 의미하여 제3변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말[馬]’이란 말띠로 오시는 상씨름판의 지도자로 선천 판을 마무리 짓고 후천 오만 년의 새 판을 짜시는 분입니다.

더불어 후천 선경 건설의 푯대, 태봉기太鳳旗를 태전에 꽂으신 공사에서도 ‘제3변 도운의 대세몰이 전위대前衛隊 역할을 하는 것이 간태합덕의 주역 초립동들이다.(5:379:15 측주)’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괘의 형상을 설명한 대상전을 보겠습니다.

象曰(상왈) 山上有澤(산상유택)이 咸(함)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여 虛受人(허수인)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산 위에 못이 있음이 함咸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비움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니라.


함괘의 괘상은 높은 산(☶) 위에 큰 못(☱)이 있는 형상으로 그 모습이 백두산과 닮았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 높은 정상 위에 거대한 담수호인 천지天池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山上有澤]이 신비롭기 그지없지요. 또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드넓은 벌판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不咸’이라 하여 백두산을 불함산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불함이란 ‘밝음’의 또 다른 명칭이며 광명을 숭상하던 동방 문화의 원류로 백두산의 모습(䷬)과 이름(不咸)이 택산함澤山咸괘와 닮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즉 ‘불咸=택산咸=백두산’이란 등식이 성립합니다. 우리나라 산 가운데는 가장 높은 산이나 봉우리를 ‘시루산’이나 ‘시루봉’으로 많이 부릅니다. 이런 연유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도 시루산(증산甑山)으로 불립니다.

또한 환웅천황께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대도를 펴신 곳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신시 배달국神市倍達國(신시를 도읍으로 한 밝은 땅의 나라)이었습니다. 하경 첫머리에 백두산을 상징하는 함괘가 놓인 것을 곰곰이 새겨보면 우리 한韓민족과 역도易道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릇이란 비어야 뭐든 담을 수 있듯 군자 또한 함괘를 본받아 사심邪心이나 욕심을 비우고 도심道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君子以虛受人].

* 器虛則受物(기허즉수물)이요 心虛則受道(심허즉수도)니라
그릇을 비우면 물건을 담을 수 있고
마음을 비우면 도를 받을 수 있느니라. (2:142:2)


천하사 대업을 완수하는 온 인류의 등불, 태을랑 군자들은 욕심 내지 말고 오로지 천하창생을 살려내겠다는 마음으로 꽉 차 있어야 합니다.

* 나의 일은 운수運數 돌아 닿는 대로 될지니 욕심부리지 말라. 욕심이 앞서면 정성이 사무치지 못하느니라. (8:112:3)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우리 일꾼들에게 도통 욕심, 감투 욕심, 돈 욕심 내지 말라고 누누이 경책하셨으며, 복남이와 호연이 같은 초립동의 순수한 영성을 본받아 하늘땅과 함께 성공하는 천하사 일꾼이 될 것을 함괘를 통해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 오로지 일심으로 닦고 혈심으로 일하는 자가 큰 복을 받으리로다. (8:81:4)



자주 자주 가고 오면


다음은 여섯 개의 효사를 살펴보겠습니다.

初六(초육)은 咸其拇(함기무)라
초육은 그 엄지발가락의 느낌이라.

象曰(상왈) 咸其拇(함기무)는 志在外也(지재외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엄지발가락의 느낌’이란 뜻이 밖에 있음이라.


함괘는 청춘 남녀의 교감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발가락(초육) → 장딴지(육이) → 허벅지(구삼) → 심장(구사) → 등짝(구오) → 얼굴(상육). 초육은 맨 아래에 있어 어린 소녀에 해당하며 남자(구사)와 처음 만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咸其拇]으로 초육과 서로 음양으로 감응이 되는 구사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志在外也].

六二(육이)는 咸其腓(함기비)면 凶(흉)하니 居(거)하면 吉(길)하니라
육이는 그 장딴지에 느끼면 흉하니 가만히 있으면 길하니라.

象曰(상왈) 雖凶居吉(수흉거길)은 順(순)하면 不害也(불해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비록 흉하나 가만히 있으면 길하다’는 것은 순하면 해롭지 않음이라.


육이는 중정中正한 자리이고 외괘의 구오와도 음양 감응이 잘 되고 있습니다. 장딴지에서 느낀다는 것은 초육(발가락)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강한 감응을 위해 장딴지(친밀한 관계)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중도를 벗어나게 되므로 흉해진다는 것입니다[咸其腓凶]. 혹은 초육의 사춘기 소녀가 어느덧 장딴지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다 큰 처녀가 되어 자기 짝을 찾으려고 일부러 돌아다니는 것은 흉한 일이므로 이런 때일수록 정숙하게 있는 것이 길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居吉]. 주역은 중도中道를 중시하는 학문으로 그쳐야 할 때 그칠 줄 알아야 하며, 특히 육이는 그친다는 간상련艮上連(☶)의 가운데 효이기 때문에 중도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순하게 중도를 잘 지킨다면 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順不害也].

九三(구삼)은 咸其股(함기고)라 執其隨(집기수)니 往(왕)하면 吝(인)하니라
구삼은 그 허벅지의 느낌이라. 그 따르는 이를 잡고 있는데 가면 인색하리라.

象曰(상왈) 咸其股(함기고)는 亦不處也(역불처야)이니 志在隨人(지재수인)하니 所執下也(소집하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허벅지의 느낌’이라는 것은 또한 가만히 처하지 않는 것이니 뜻이 따르는 사람에 있으니 잡는 바가 아래에 있느니라.


구삼은 내괘(하체)의 끝자리이고, 허벅지에서 느낀다는 것은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咸其股]. 허벅지는 상체에 따라 움직이므로 구삼 남자는 위에 있는 상육 여자와 응해야 정상입니다[執其隨]. 그런데 구삼이 밑에 있는 초육이나 육이 여자에게 애정 공세를 편다면 상육은 마음이 떠나 버리므로 결국 인색한 것이 됩니다[往吝]. 그래서 소상전에서도 쓸데없는 데 마음 쓰지 말고 상육 여인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志在隨人 所執下也].

九四(구사)는 貞(정)이면 吉(길)하여 悔亡(회망)하리니
憧憧往來(동동왕래)면 朋從爾思(붕종이사)리라
구사는 바르면 길해서 뉘우침이 사라지나니 자주 자주 가고 오면 벗이 너의 뜻을 따르니라.

象曰(상왈) 貞吉悔亡(정길회망)은 未感害也(미감해야)라
憧憧往來(동동왕래)는 未光大也(미광대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시에는 해로운 느낌이 없으리라. ‘자주 자주 가고 온다’는 것은 미시에 광대함이라.


구사는 선천(내괘, 육체, 형이하적)에서 후천(외괘, 정신, 형이상적)으로 건너온 자리로 마음자리(심장)에 해당됩니다. 내괘에서 육감적으로 느꼈다면 외괘에서는 마음자리까지 교감할 정도로 진정한 일신일심一身一心이 되는 것이지요. 서로 진정성을 느꼈을 때만 소통이 가능하고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는 법인데[貞吉悔亡] 선천세상에서 속마음까지 완전히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종도사님 말씀대로 선천 문화는 타인의 지식과 문명의 이기에 의존해야 알 수 있는 문화였지만, 후천에는 사람과 신명이 합일되어 모든 사람이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알고 세상 사람과 마음까지 터놓아 상생과 보은이 가능해지는 만사지萬事知 문화가 열립니다(7:1:7 측주).

그러므로 ‘너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간소남, 태소녀)만의 교감이 아니라 후천이 되면 누구나 마음의 문이 열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앎은 물론 세상만사의 이치까지 절로 깨달아지는 만사지 문명이 열린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憧憧往來 朋從爾思].

*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피차 마음을 알아야 인화人和 극락 아닐쏘냐.
깊은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같이 새사람이 될지니라. (11:205, 250)


구사효는 공자가 중요하게 여겨 『계사전』에 별도로 해설을 해 놓았습니다. 특히 소상전은 공자의 비사체秘辭體로 후천 만사지 문명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사라진다’는 말은 미시未時(:후천)의 후천 창생들은 심통心通이 되어 남을 속일 수도 없고 남에게 해코지도 끼칠 수 없음[未感害也]을 뜻하는 것입니다.

* 이 뒤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害를 입으리라. (2:60:6)


‘자주 자주 가고 오면 벗이 너의 뜻을 따른다’는 말은 후천 시대에는 누구나 티 없이 밝은 어린이의 마음(憧=心+童)이 되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도통문화가 크게 빛날 것이라는 뜻입니다[憧憧往來 未光大也].

‘동동왕래 붕종이사’에 대한 공자의 『계사전』 설명입니다.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염려한단 말인가? 천하가 함께 돌아가며 백 가지 생각이 하나로 돌아가니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할 것인가?” 즉 이치는 하나인데 그 방법과 생각은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계시록인 천부경의 처음과 끝 구절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천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神을 궁구하여 조화造化의 경지를 안다”고 한 대목이 나오는데요. 이것을 보면 공자 또한 후천이 되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만사지萬事知 도통道通문화’가 나올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요.

九五(구오)는 咸其脢(함기매)니 无悔(무회)리라
구오는 그 등심에서 느낌이니 뉘우침이 없으리라.

象曰(상왈) 咸其脢(함기매)는 志末也(지말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등심에서 느낀다’는 것은 뜻이 다 된 것이다.


구오는 중정한 자리이고 육이하고도 정응正應이 잘 됩니다. 구오가 등짝에서 느낀다는 것은 등이 보이지 않는 신체 부위로 감성에 이끌리지 않고 욕심이 없는 중정한 자리이기에 후회할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无悔]. 즉 구오는 세속적인 욕정 따위에는 꿈쩍하지 않는 도통한 자리이지요. 그래서 소상전에서 더 이상 교감할 것이 없다[志末也]고 하였습니다.

上六(상육)은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이라
상육은 그 볼과 뺨과 혀로 느끼는 것이라.

象曰(상왈)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은 騰口說也(등구설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볼과 뺨과 혀로 느끼는 것은 구설에 오름이라.


상육은 함괘의 끝자리입니다. 남녀의 교감이 발가락에서 시작하여 장딴지로, 허벅지로, 심장으로, 등짝으로, 그리고 마지막 입까지 올라왔습니다. 늙으면 양기가 입과 혀에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이때는 구설을 조심해야 합니다.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門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했습니다.

인류 구원의 소초동 도수


결론적으로 택산함괘는 간태합덕을 나타내는 초립동 도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천하사를 하는 일꾼들은 간소남과 태소녀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배워야 합니다. 아울러 초립동 도수와 관련하여 꼭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바로 소초동 도수입니다.

우리 일꾼들은 이 소초동 도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성하고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종도사님께서 내려 주신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소초동 도수는 상제님 진리의 분신들이 출세하게 되는 마지막 인류 구원의 놀라운 도수이다. 초립동은 상제님께서 천상에서 불러 내리신 인물로 꾀가 특출하고 용기와 지혜가 비범한 신비로운 인물이다. 상제님과 장기 세 판을 내리 이기고 쓰러뜨린 후 소초동 주막에서 생사를 건 최후의 대결 끝에 상제님을 돌아가시게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우리 일꾼들에게 천주이신 아버지 상제님을 넘어서고 이길 수 있는 천지 일꾼으로서의 열정과 용기, 천지를 뚫어 꿰고 상극의 천지를 상생의 가을 천지로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우주적인 기개를 가지라고 천명하고 계신다.

그리고 초립동들이 완전하게 거듭나신 상제님의 부활의 정신을 본받아, 지난날의 모든 묵은 기운을 과감하게 씻어 내고 도심주道心柱를 크게 열어, 상제님과 태모님의 뜻을 이루고, 선천 수만 년 동안의 천지신명들의 소원과 열망을 완성하는 새 역사 창업의 절대적 존재가 되라고 간절히 서원하시면서 당신의 생명을 다 내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도기 148년 5월 20일, 소초동 도수를 보신 성지로 떠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