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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도전 산책 | 우주의 열매가 되는 진리 탐험

    전희수 (포항대신도장, 녹사장)

    인도 캘커타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성녀 테레사(Saint Mother Teresa: 1910~1997) 수녀는 한평생을 교류한 가장 가까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과연 신이 있는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둠, 냉랭함,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Time, 2007.08.23.)

    테레사 수녀는 왜 이렇게 절망을 한 것일까요? 천민으로 태어나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신분제도 속에 갇혀 불행하게 일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처절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가혹한 세상사가 펼쳐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를 해결할 방도는 존재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의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테레사 수녀가 직면했던 가장 근원적인 현실 문제는 세상이 너무도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숱하게 접하면서 그녀는 풀 길 없는 인간의 고통 때문에 고뇌하며 절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나 자비, 희생이나 봉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즉, 그 모든 문제는 인간이 타락해서, 마음을 잘못 닦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홍수와 대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 화산이 폭발하는 곳, 물이 고갈되어 사막화가 된 땅, 너무 춥거나 더운 땅에서는 인간이 살 수도 없고 크고 작은 질병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또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살고 마음을 잘 쓰려고 해도 조화가 이뤄지지 못한 자연환경과 자연의 변화가 인간 의식을 분열시키는 쪽으로만 몰고 간다면,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할 경우 몸과 마음이 무너져서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존의 모든 종교와 철인들은 인간의 삶과 생존 문제, 인간의 영성과 선악, 고통의 문제에 대해 원죄나 인과응보, 도덕설 등 인간이나 신 중심으로만 가르침을 폈습니다. 실제로 그 모든 문제는 대부분 생존 환경에서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두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온전한 틀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인간의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이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상제님께서 내리신 진단과 선언


    증산 상제님께서는 성수 31세 되시던 1901년, 20세기 첫 새벽이 밝아 오던 그해 음력 7월 7일 새벽에 대도통문을 활짝 여시고, 석가와 예수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성자와 사상가들에게서는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道典 2:16:1~2)

    *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2:21:5)

    * 천하가 모두 병들어(天下가 皆病) 있느니라. (5:347:7)


    상제님의 이 말씀들은 바로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위기 문제는 ‘병든 하늘과 땅’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온 천하가 큰 병이 들었다! 하늘과 땅이 병들었다!’ 100여 년 전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이 한마디 말씀 속에 오늘날 인류가 안고 있는 식량 부족,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기상이변, 자원 고갈, 지구촌의 크고 작은 전염병의 유행 등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모든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하늘땅이 모두 병들었기 때문에 천지를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진단이요, 처방인 것입니다.

    지금은 바로 이런 혁신적인 진리, ‘천지의 틀’을 바로잡는 성숙한 진리가 나와야 하는 때입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마음을 닦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기도로써 성령과 믿음을 얻으면 모든 것을 이룬다’는 식의 인간에 대한 피상적인 통찰만으로는 결코 끌러질 수가 없습니다. 병든 하늘과 땅이 새로 태어나야만, 즉 ‘천지의 질서가 총체적으로 바뀌어야만 오늘의 인간과 문명이 처한 모든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늘과 땅이란


    그렇다면 왜 상제님께서는 이렇듯 하늘과 땅을 문제 삼으실 수밖에 없었으며, 도대체 하늘과 땅이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상제님께서 여섯 살 되시던 병자丙子(道紀 6, 1876)년에 성부께서 가세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려고 황준재黃俊哉라는 이름 있는 훈장을 구하여 들이셨습니다. 훈장이 어린 상제님께 “도령, 공부해야지?” 하고 하대를 하니, 상제님께서 물끄러미 훈장을 쳐다보시다가 스스로 천자문을 펼치시어 ‘하늘 천天’ 자와 ‘땅 지地’ 자를 집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읽으시고는 책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훈장은 그 신이하신 기운에 눌려 어린 상제님이 노시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공밥을 얻어먹기도 민망하여 훈장이 다시 “도령, 공부하셔야지요?” 하고 조심스레 여쭈었는데, 상제님께서 이에 답하신 내용이 도전에 등장합니다.

    * “하늘 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노시다가 시간이 되면 가시지요.” 하시니라. (1:19:7)


    인생과 진리 공부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신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 천지부모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자 궁극 도달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땅, 천지부모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존재일까요?

    서양 문화에서는 천지를 ‘신의 손길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동양 문화에서는 하늘과 땅을 성령적 존재로 인식합니다. ‘하늘은 생명의 씨와 기운을 내려 주고, 땅은 그것을 받아 인간과 만물을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지가 인간 생명의 ‘큰 부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도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니라”(2:26), “천지 알기를 너희 부모 알 듯이 하라”(11:11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는 인간과 신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만유 생명이 몸담고 살아가는 ‘큰 집’입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는 낙엽이 깔린 숲길을 산책하시던 중에 “인생이란 얼마 살다가 저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인간은 천지의 품에서 태어나 천지 안에서 살다가 그 품속으로 되돌아갑니다. 한마디로 천지는 인간 생명의 큰 부모이자 인생의 무대이기 때문에, 그 품을 벗어나서는 아무도 인생의 목적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명은 천지부모를 망각한 채 뿌리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병든 이유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병들었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며, 하늘과 땅은 왜 이렇게 깊이 병든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증산 상제님은 인류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진단하시고 이제껏 어느 누구도 밝혀 주지 못한, 천하가 병들지 않을 수 없는 ‘때의 문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상제님의 가르침이 담긴 『도전道典』을 보면, 인류가 처한 ‘지금 이때’에 대한 놀라운 선언을 만나게 됩니다.

    *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24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세상 사람이 모르느니라. 시속에 절후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소년으로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노인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아이와 같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2:138:1~3)

    *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7:38:4)


    천지에는 때가 있으며, 지금의 인류는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다고 하십니다. 큰 가을이란 천지의 가을, 우주의 가을을 말합니다. ‘우주의 가을철이 오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 같은 말씀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서양의 어떤 성자나 과학자, 철인들이 오늘날 인간 사회의 문제와 인류 문명의 난국을 총체적인 안목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천지의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격변은 사실상 천지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뀜을 알리는 무언의 몸짓인 것입니다.

    인류 문화사에서 선•후천 우주관은 우주 통치자의 우주론이 담긴 한민족의 문화 원전 『도전』에서 완성되었으며, 그것은 지난 1946년, 증산도의 2변 부흥기 당시 태상종도사님께서 밝혀 주신 우주 1년 도표로부터 비롯됩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밝혀 주신 ‘우주 1년’에 대한 말씀을 바탕으로 때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천지도 목적이 있다. 그래서 질서 정연하게 둥글어 가는 것이지 그냥 그 속에서 생명이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이 뭐냐 하면 지구 1년은 초목농사 짓는 것이고, ‘우주 1년은 사람농사’ 짓는 것이다. 지구 1년이 생장염장하는 것을 보면, 봄에 씨 뿌리고 싹을 내서 여름철에 성장시켜 가을철에 추수를 한다. 그것과 같이 우주 1년은 사람농사를 짓는다.”


    천지는 춘하추동,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법으로 순환 무궁하게 둥글어 가는데, 봄·여름은 선천先天이라 하고 가을·겨울은 후천後天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지는 선후천 운동만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지구 1년은 초목농사를 짓는 것이요, 우주 1년은 사람농사를 짓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큰 가을의 결실을 향하는 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느 때에 살고 있는 것이며, 상제님께서 왜 현대 문명의 병통을 천지병天地病으로 진단하셨는지,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음 도전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7:38:3)

    *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2:17:1~5)


    인간은 누구나 뜨거운 소망과 의지를 가지고 참다운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상극 질서로 운행되는 선천의 역사 과정에서 자신의 뜻대로 살다 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연 환경 자체가 인간 내면의 영성이 온전히 발현될 수 없는 데다가 상극이라는 말 그대로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구도 속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에 약육강식, 우승열패, 억음존양의 환경이 조성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가슴에는 원한이 맺히고 쌓였습니다.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4:32)”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과 같이, 인간은 그 동기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면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고 분통이 터져서 원한을 품게 되고, 그로 인해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부정의 깊은 병에 걸려 죄악과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이 우주의 여름철 말에 살고 있는 인간이 ‘큰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유사 이래 처음으로 천지이법 차원에서 그 병의 근본 원인이 ‘원한寃恨’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원한은 그동안 인간이 천지의 선천 봄·여름철, 상극의 닫힌 우주 다시 말하면 병든 천지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밝혀 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으로 오신 도솔천 천주께서 열어 주신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2:44:2)

    * 후천은 온갖 변화가 통일로 돌아가느니라. (2:19:7)


    가을은 모든 생명이 선천의 천지병을 극복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때입니다. 그것이 대자연의 섭리입니다. 열매는 성숙, 완성을 의미하며 참의 표상입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거짓된 생각이나 기운으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우주의 열매가 되려면


    인간이 열매를 맺는 길, 인간이 우주의 참열매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첫째는, ‘가을의 성숙한 열매 진리’를 만나는 데 있습니다. 즉, 가을의 열매 진리를 선언한 가을우주 무극대도 경전인 도전을 만나야만 가을철 열매 맺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들의 가슴과 영성에서 잃어버린 천지부모를 되찾아야 합니다.

    * ‘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듯이 창생이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落盤四乳)는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는 말이니 ‘천주님을 떠나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니라. 태을주를 읽어야 뿌리를 찾느니라. (7:74:1~5)


    이 도전 성구는 천지부모와 하나 되어 천지병을 극복하고 가을철 열매 인간이 되는 길이 곧 태을주太乙呪에 있다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입니다. 태을주는 내가 천지부모와 하나 되게 하는 주문입니다.

    지금까지 동서 문화사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유교의 사서오경, 불교의 8만 4천 법문, 도교의 도장, 기독교의 신구약, 힌두교의 베다 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민족에게도 고유한 경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한민족 경학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천부경天符經과 그 후대에 나온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 문화의 극적 전환기인 19세기에 한민족의 순수 경전이 또다시 출현했습니다. 바로 최수운 대신사가 창도한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과 김일부 대성사의 『정역正易』입니다. 두 경전의 결론은 ‘앞으로 인류에게 병란과 천지의 큰 변동이 닥친다’, ‘이 천지의 대변혁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주님이신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한민족의 5대 경전을 포함해서 동서양의 수많은 경전에 담겨 전해 내려오는 지식과 지혜의 결실이 바로 증산도의 『도전道典』입니다.

    천지의 틀이 바뀌고 만물이 결실하는 가을철을 맞이하여, 이제까지 있었던 경전 문화로는 각 종교와 민족의 전통 사상의 울타리에 갇혀 수십, 수백 갈래로 나뉘어 버린 인류의 영혼과 마음을 하나로 소통시키는 대통일 문화를 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병든 천지를 뜯어고쳐 ‘전 인류가 한 가족이 되는 후천선경 문명’을 열어 주신,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도의 원전인 『도전』으로써만 이룰 수 있습니다. 『도전』은 장차 온 인류가 함께 누릴 통일 문화를 열어 주는 대경전인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지금의 인류가 이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 꿈의 새 세상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소하시려면, 『도전』 말씀을 중심으로 진리의 대탐험을 해 보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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