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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제대로 찾은 진리의 행복 외 (김보효, 오은성, 신향숙)

    제대로 찾은 진리의 행복


    김보효(남, 60) / 인천주안도장 / 149년 음력 10월 입도

    인생의 허무와 방황 속에서


    저는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20세까지 기독교 신앙을 하였습니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무엇인가 제 자신에 대하여 깊게 생각을 하였고 개인적으로 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종교를 접하며 다녀보았지만 전부 마음에 진정으로 와닿지를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할아버지는 불교, 할머니와 어머니는 기독교를 신앙하십니다. 저는 뭔가를 신앙해야 하는데 진짜 하느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방황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었습니다. 혼자서 수행도 하고 요가도 해 봤으나 허무하고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인생의 가장 힘든 가정생활의 고비를 넘기면서 겪은 이혼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어딘가에 반드시 진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로지 그것만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이라는 특이한 채널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교수님이 강의하는 내용이었는데 별 반응 없이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렸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찾았다!


    그 후 힘든 일을 하고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날, 티브이를 켜면서 이전의 그 상생방송이 자꾸 생각나서 다시 방송을 찾아 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 영상이었습니다. 그동안에 막연하던 우리나라 역사가 진실로 9,000년의 역사라는 확신을 하게 되면서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때부터 상생방송의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콘서트를 여러 번에 걸쳐 모두 다 시청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부경대에서 열린 가야 콘서트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종도사님의 역사를 보는 안목과 막힘이 없이 쏟아지는 역사에 대한 해박함에 존경을 금치 못합니다. 태상종도사님의 말씀과 교육도 너무 감동이었고, 도전봉독, 퀴즈, 어아가, 천부경 등 어느 것이라 할 것 없이 마음속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너무 한국적인 것에 무언가 제대로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무극대도, 주역, 정역, 팔괘, 하도, 낙서 등의 궁금했던 모든 것이 상생방송에서 다 풀렸습니다. 인천주안도장으로 전화를 하여 상담 신청을 하였고 도장에 계신 수호사님께서는 8관법 공부를 시작하자고 하였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느라 시간을 내기가 힘들지만 월요일마다 저녁 7시에 교육을 받았습니다. 여러 강사가 가르쳐 주는 8관법을 공부하면서 점점 진리의 확신을 하게 되어 너무 기뻤고 그렇게 찾던 진리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기쁨과 자부심은 진리의 은혜


    이제 60이 다 되어서 내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났다는 기쁨에 지금도 춤을 추고 싶습니다. 증산도에서 동학에 대하여 정확히 알게 되였습니다. 그동안 대한의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참 억울하고 통곡하고픈 심정입니다. 제가 사는 주위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정신에 대하여 알려 주는 곳도 없고 그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인생으로 보면 분한 생각이 듭니다. 늦게나마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국통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상제님이 내려오신 땅이라 생각하니 자랑스럽고 증산도를 만난 지금이 행복합니다. 이제 상제님 진리를 만나 새롭게 살아가게 되어 정말로 증산도를 이끌고 계신 종도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 생명을 얻은 듯하고 상제님 품 안에 살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이 진리를 만난 은혜를 반드시 사람을 많이 살려 보은하겠습니다. 보은 보은! ◎

    온전한 삶의 길에 서서


    오은성(여, 48) / 제주연동도장 / 149년 음력 10월 입도

    “너는 증산도를 믿어야 해”


    제 몸이 아프게 된 지 어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픔은 저의 욕심과 업장의 결과였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대한 무리한 집착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눈부심으로 아프더니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눈물처럼 눈에 물이 계속 고여 눈 속을 화장지로 계속 닦으면서 지내는 상황이 됐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눈동자가 녹아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눈동자가 안 보이고 눈이 한일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친구에게서 증산도에 대해 한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은성아 너는 증산도를 믿어야 안 아프게 산다.” 이 말 외에 더 이상의 설명이 없었고 저도 감기 한번 안 걸리는 체질이라서 무심히 흘렸으며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지금에야 그 친구가 생각나고 원망도 되고 그렇습니다. 저의 업이 두터워서 아마 지금에야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을주를 전한 마음이 와닿다


    병원 치료가 차도가 없어서 지인을 통해 방도를 알아보던 중에 아픈 환자를 잘 고친다는 사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님과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지 병은 점점 악화되고 청소는 물론 밥 먹는 것도 눈을 감고 해야 할 정도로 심해져서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너무도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을 따라서 길을 나섰는데 순이김치라는 곳에서 인도자인 류명희 도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배가 고프던 때였는데 류 도생님께서 주신 따끈한 찐 감자가 허기를 채워 주었습니다. 눈이 부시고 쑤셔서 감은 채 찐 감자를 먹는 제 모습을 보고 태을주를 읽어 보라고 말씀하시는 류 도생님의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을 느꼈고 두려운 마음이 작아지는 느낌이었지요.

    제가 류명희 도생님을 뵙기 6개월 전에 선몽을 통해 할아버지께서 옥황상제와 태을주를 써서 붙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태을주는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꿈을 꾼 후 집 벽에 ‘옥황상제’ 글자와 ‘태을주’ 이름만 쓰고 태을주를 며칠 읽어 봤지만 아무 변화가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저 증산도에서 나온 태을주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정성수행 중 깨달은 것들


    매일 류명희 도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절에서 청수 모시고 태을주를 읽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선몽으로 나타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니?”라고 하셨습니다. 아파서 일도 못한 채 지내고 있었으니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어디로 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에 일하고 있었던 곳의 장애인 한 분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집에 와서 조금 도와주고 그냥 살면 된다고 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외상 장애인이라서 새벽에도 대소변을 봐 드려야 되는데 눈이 아픈 제가 새벽에 네 번씩 일어나려니 괴로움이 심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얘기는 없었는데 집세도 월별로 얼마씩 내야 된다 하고, 쌀이나 반찬도 자비로 해결해야 된다고도 했습니다. 게다가 산 넘어 산이라고 아래층에 사는 동생 부부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며 빨리 나가 달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일주일 만에 비오는 날 짐 보따리 몇 개를 들고 나와 다행스럽게도 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류명희 도생님은 제 집에 자주 오셔서 태을주를 읽어 주고 몸 전체를 지압해 주기도 하셔서 건강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또한 제 형편이 심히 어려워서 도생님이 오실 때마다 쌀이랑 밑반찬이랑 챙겨 주시고 잘 먹고 힘내야 된다면서 용기를 주십니다.

    지금은 4개월 정도 청수 모시고 배례하고 태을주 수행을 하는 과정입니다. 100일 기도에 들어가서 처음 21일은 하루에 1,000배례를 했었고 22일째부터는 500배례를 하고 태을주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배례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각과 행동, 습성, 인간관계 모두가 잘못됐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비뚤어져 있었으니 내 삶이 온전치가 못했구나, 인간관계나 건강, 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도전』을 읽으면서 이러한 진리 말씀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알고서도 짓고 모르고서도 짓는 죄업을 덜 했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부족한 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눈 속에 물이 고이는 증상은 많이 줄어들었고, 아픈 부분도 조금 좋아졌다 아팠다 하고 있지만 제 정성이 부족한 탓도 있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태을주와 도전에 감사하며


    일요일마다 도장 가서 치성을 드리면서 수행하는 삶이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하루속히 저의 조상님들을 천도해 드려서 상제님이 계신 밝은 곳으로 모셔야 되는데 하는 기원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나서야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은 월급 봉투를 받거나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찌뿌둥해서 일어나기 힘들어도, 반찬 없는 된장국에 밥을 먹을지라도, 오늘 하루도 건강함에 감사하고 주어진 일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고통이 오더라도 그 깊이와 정도가 앝을 것이고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류명희 도생님이 두꺼운 『도전』을 펼쳐 읽어 주시면서 『도전』을 읽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 뵙는 일이라면서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지 그 말씀을 듣고 머릿속과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도전』을 읽으면 눈이 편안해집니다.

    태을주와 『도전』 모두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상제님 진리 말씀을 만나게 해 주신 저의 선령님과 조상님, 류명희 부포감님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아픈 곳도 완쾌되고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상제님 『도전』 말씀과 태을주로 살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할 일을 만난 나의 인생


    신향숙(여, 58) / 수원장안도장 / 149년 음력 10월 입도

    한민족의 긍지를 담은 방송


    저는 중국에서 절에 좀 다녔기에 2007년부터 방학 때면 한국에 방문해서 불교방송을 시청하고 절을 찾아다니면서 불교문화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4년 전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무궁화꽃 모양이 뜬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1980년대 사범대학에 다닐 때 무궁화는 무궁무진한 힘, 뭉치는 힘, 강인함을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국화라는 것을 배웠기에 그때부터 무궁화를 우리 한민족의 긍지로 삼아 왔습니다.

    당시 우리 한문 교수님께서 한국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에 참석하셨는데, 한민족의 국화라는 무궁화 씨앗을 어렵게 통관하여 가져오셔서 처음으로 각 조선족 학교에 분양하여 심도록 하셨습니다. 올케언니도 선생인지라 우리 학교와 저희 집에서 제일 먼저 집 둘레에 심었는데 꽃이 핀 걸 보고 마을 사람들과 길 가던 사람들이 처음 보는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빨리 번식시켜서 온 동네는 물론이고 각 지역 학교, 공원, 길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의 무궁화꽃 모양새를 보니 저도 모르게 친근감이 들어 방송을 시청하다 보니 『도전』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고 “내가 미륵이니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슴벅찬 도전 말씀의 희열


    불자들은 불이 멸도 후 제7대 미륵의 강세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미륵이 강세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웬 말인가 싶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바로 인터넷으로 『도전』을 구입했습니다. 그 당시 읽어 보려고 했지만 방학이 끝나서 중국으로 오가다 보니 어영부영하다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퇴직하여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하면서 방송 채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궁화 상생방송 채널이 궁금했는데 마침 수원 화성행궁에서 열리는 독립운동 100주년 행사를 관람하려고 갔다가 역사 찾기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인도자를 만나 채널을 다시 찾아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6월 23일에 태을궁 대천제에 참석한 후 종도사님의 강력한 도훈이 저의 심령을 크게 울려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도전을 밤낮으로 읽기 시작하여 20일 만에 다 읽게 되었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이 세상과 억조창생을 구제하시려고 인간 세상에 친히 내려오셔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삶을 보고 인간으로서는 하실 수 없는 불후의 업적을 이루신 것에 대해 크나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 『천지성공』, 『개벽실제상황』 등 여러 책을 도장에 와서 구입해 다 읽은 다음에 신앙을 하기 위해 주변 정리를 하고 9월 17일부터 최재학 포정님, 인도자와 함께 정성수행과 팔관법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포정님은 도장 이전 공사로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문화 차이로 이해가 더디고 의혹도 많아 질문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싫증을 내지 않으시고 터득할 때까지 인내성 있게 해석해 주시면서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1개월 넘게 공부하면서 정말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전』 말씀이 더 깊이 이해가 되면서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저는 35년 동안 타향에서 우리 한민족 후대 양성 사업에 아낌없는 노력을 해 왔기에 보람찬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의 섭리도 모르고 살아온 인생에 대해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공부하면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깨닫게 되었고 매일매일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2의 인생을 향한 각오


    진리 공부와 정성수행 와중에 도장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포정님과 타 도장 포정님, 그리고 도생님들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공사 진행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의 노고와 아낌없는 희생정신에 크게 감응되어 저도 한 달 넘게 이전 공사 현장 작업에 동참하였습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가마의 밥을 먹으면서 여러 도생님들과 협력하여 뛰어들다 보니 손발이 척척 맞아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습니다. 퇴직하면 인생이 끝인 줄 알았는데 ‘나도 아직은 쓸모가 있구나. 할 일이 있구나. 사람 살리는 큰 일이 남았구나!’라는 생각에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지금부터 제2의 인생을 향한 발자국을 어렵게 내딛은 만큼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걸어야 할 길도 멀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진 짐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루빨리 진리를 깨우쳐 가을개벽 주역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약속하는 바입니다.

    “天地生人(천지생인)하여 用人(용인)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何可曰人生乎(하가왈인생호)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증산도 道典 2편 23장)


    도전 2편 23장에 있는 상제님의 이 말씀대로 천지일월 부모님의 뜻을 이루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는 잠 적게 자고 진리 공부와 수행 공부, 사람 살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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