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칼럼 | 세상살이가 곤困한 이유와 곤괘困卦

[철학산책]

김재홍(충남대 철학과 교수) / STB상생방송 <소통의 인문학, 주역> 강사

약력: 충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중국철학 전공, 세부전공 : 주역과 정역). 충남대학교 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역임, 목원대, 배재대, 청운대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STB상생방송에서 <주역 계사상·하편> 강의를 완강하였고 현재 <소통의 인문학 주역>을 강의, 방송 중이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인간의 생각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찾아서 권모술수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 결과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자는 『주역』 『계사 하』 편에서 “역에서 이르기를, 돌에 걸려서 因하여 가시덤풀(소인지도)에 의지하고 있음이라. 집에 들어가도 군자를 만나지 못해 흉하다 하니 공자께서 因할 바가 아닌데 因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요, 의지할 곳이 아닌데 의지하고 있으니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워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니 군자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소인지도에 의지하면 장차 죽을 때가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진퇴양난의 곤란을 당해 困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 구절을 살펴보면 먼저, 자신의 아집과 독선으로 困할 바가 아닌데 困하게 되어 반드시 그 이름을 욕되게 하고, 다음으로 의지할 바가 아닌 소인지도에 의지함으로 반드시 그 몸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미 욕되고, 위태로워 죽을 때가 장차 이르게 되어 군자지도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개개인들이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聖人之道를 불신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은 결과로 힘들고 피곤함을 스스로 초래하였다고 말한다.
『周易』의 澤水困卦에서는 고난에 처해있는 군자가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知慧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困卦의 困은 곤할 곤(困) 字로 피곤함, 혹은 고난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택수곤괘澤水困卦


① 困卦의 卦象을 보면 위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아래에 물이 있다. 이것은 연못에 물이 없다는 것으로 연못에 물이 없으니 연못 바닥이 갈라지는 고난과 곤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② 陰효가 陽효를 묶으려 한다. 하지만 陰효가 陽효를 너무 묶으면 陽효가 힘을 못 써서 陰효 자신도 약해져 존재 자체가 부서질 수 있다. 그러기에 중도가 필요하다.

③ 水는 험난함을 얘기하며 澤은 기쁨을 말한다. 즉 곤란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형통하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해마(解魔)를 주장하는 고로 나를 따르는 자는 모든 복마(伏魔)가 발동하나니 복마의 발동을 잘 받아 이겨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시속에 ‘화복(禍福)’이라 이르나니, 이는 복보다 화가 먼저 이름을 말함이로다. 이르는 화를 잘 견디어 받아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좋은 복을 내려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복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2)



困卦에서는 고난을 벗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하여 “困은 형통하고 바르니, 大人이라야 吉하고 허물이 없으니, (실천은 없고) 말만 있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困함에 처했을 때 天道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면 형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天道에 대한 믿음의 신뢰 문제로 인해 困함을 면키 어려우니 大人과 君子처럼 聖人之道를 믿고 따라야 吉하고 허물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老子는 선비의 등급을 上中下로 분류를 했다고 한다. 下等의 선비는 하늘의 소리에 화를 내고, 中等의 선비는 의심을 하며, 上等의 선비는 곧바로 실천한다고 한다. 이 말도 역시 사람들이 困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天道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困卦에서는 “困은 군자지도가 소인지도에 가려짐이니, 외부로는 험하나 내부로는 기쁨이 있다. 困하지만 그 亨通하는 바를 잃지 아니하니, 그 오직 君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라고 하면서 “聖人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不信하여 그 뜻을 깨닫지 못해서 곤궁해진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곤함은 못에 물이 없어서 困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다하여 天命에 순응해야 한다고 한다. 즉 天命에 순종하고 목숨을 다해 하늘의 뜻을 따름으로써 뜻을 이룬다는 것이다.


困卦에서는 “궁둥이가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괴로움을 당한다.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삼년이라도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살펴보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困하여 편치 못함을 말한다. 즉 앉을 자리가 아닌데 앉아 있는 것이다. 소인지도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깊고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 여러 해를 지나도 광명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갔다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앞서서 困의 정도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즉 진퇴양난의 곤경이나 지극히 곤궁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의 욕구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져 밝게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困卦에서는 “돌에 困하여 가시덤불(소인지도)에 걸려 있음이라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군자지도)를 보지 못하니, 凶하다.”라고 한다. 이것은 대표적인 小人의 곤궁함을 말한다. 지금은 반석과 같은 돌에 困하고, 가시덤불(소인지도)에 걸려 있는 곤란한 상황이다. 즉 進退가 곤란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삼가하고 근신해야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聖人之道가 아닌 본인 독선과 아집으로 나아가면 돌부리에 부딪치게 되며, 결국은 가시덤불인 小人之道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聖人之道를 믿지 않아서 正道(군자지도)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진리의 자각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니,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聖人들의 말씀을 믿고 어려움을 견디어 내면 마침내 기쁨의 결과를 가져온다. 즉 정성어린 마음이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 그 결과로서 福도 받는다.


困卦에서 “칡덩굴과 위태함에 곤함이니, 말하기를 ‘움직이면 후회함이 있다.’고 하여 뉘우침이 있으면 나아가서 吉하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칡덩굴에 묶여서 위태롭고 피곤한 상황이지만 후회함이 있으면 벗어날 수 있어 吉함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칡덩굴이 나무를 감아 올라가서 나무를 뒤덮어 결국 나무가 죽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군자지도를 行하면 吉하다는 것이다.

군자는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에 대한 시험이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반성과 노력을 하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小人들은 困境에 처했을 때 스스로 포기하거나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곤경에 처한 군자와 소인의 행동의 차이라고 한다. 지금 혼란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소리가 혹시 공허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하늘과 세상의 소리에 반성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聖人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드러낼 수 있고,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