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을 채워 준 증산도 진리 외 (전미경, 손옥남, 김수식, 정금희)

[입도수기]

허무함을 채워 준 증산도 진리


전미경(여, 56) / 계룡도장 / 149년 음력 3월 입도

신앙 속에 숨은 허전함과 불안감


어린 시절에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열심히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성경』의 「요한계시록」 예언처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갔지만 항상 허전함과 불안함이 몰려오는 시기가 되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벌써 교회를 안 나간지가 10년 이상 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이모님을 따라 절에 가서 사천왕들을 보면서 나와는 맞지 않는 종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에 익숙해졌고 교회에서 영성 수련 프로그램도 참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나름대로 갱년기 증상의 한 단면이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의욕 저하로 이어지고 가정 경제의 어려움과 겹치면서 우울증까지 나타났습니다.

숭고하게 다가온 『도전』말씀


그러던 중 계룡 지역으로 이사를 왔고 여기서 알게 된 귀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지인의 지도 하에 불교 참선으로 내면의 불안정을 떨쳐 내고 채우는 수행을 따라 했습니다. 그런데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지인은 열정과 애정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자꾸 이리 빼고 저리 빼는 것처럼 저의 나쁜 습관을 바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지인은 지쳐서 지도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하였는데 제가 꽉 붙잡았습니다. 이 팔을 놓지 말고 더 지도해 달라고...

지인의 인도로 지난해 <군산 개벽콘서트>에 참석했었고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인은 불교 수행을 못 하겠으면 증산도 수행 교육을 받아 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사실 종교적 색채가 있는 것은 꺼렸는데 일단 수행 훈련의 한 방법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 중순부터 도장에서 수행과 진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바로 상제님이라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기독교의 여호와는 서양 하느님이고 우리나라가 본래 신교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선조들이 장독대에 청수를 떠 놓고 비는 칠성신이 신교문화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점차 진리 공부를 하면서 선령신의 궁극적 뿌리가 상제님이시라는 것을 『도전』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전』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숭고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 문화에 길들여 있어서 팔관법 교리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룡도장 포정님이 또다시 쉽게 얘기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계속 애정 어린 지도를 해 주셔서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월부터는 아침 수행을 집에서 실행하면서 제 자신의 허무한 공간을 채워 나갔습니다. 21일 정성수행을 마치고도 계속 습관을 들여서 아침수행을 지켜 나갔습니다. 도장 천도식에 참석하여 정성스럽게 선령신을 모시고 해원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 집안에서 시아버님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천도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륜의 소중함을 진리로 깨닫다


사실 저는 친정어머니와의 관계가 힘든 상태입니다. 저에게 ‘엄마’는 부담되고 만나면 싸우게 되는 관계라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기둥이나 뒷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엄마에 대해 무한한 힘을 얻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때문에 결혼하고서는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고 기대게 되었습니다. 저는 친정아버지와도 막역한 관계가 아니라서 부부간의 정을 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시어머님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습니다. 자애로우신 시어머님이라서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증산도 진리를 공부하면서 궁극적인 내 위로의 뒷배는 결국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힘겨운 엄마와의 관계를 회피하고자 이렇게 멀리 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끊어질 수 없는 것이 천륜의 관계인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진리 공부를 통해 천륜, 선령신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이니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도전』을 열심히 읽고 수행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가족과 친척 등 주변 사람들에게 증산도 진리를 전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

시련의 삶을 바꿔 준 증산도 진리


손옥남(여, 60) / 경주노서도장 / 149년 음력 3월 입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의 삶


저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홀로되시어 4살 된 아들과 더불어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때우시며 힘겹게 살고 게셨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행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를 임신한 지 8개월 상태라 다리 수술도 못하시고 대충 깁스를 해서 두신 채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제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가려워서 조금만 코를 만져도 쉽게 코피가 났는데 20대까지 고생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낳고 나서 더욱 먹고살기 힘들어 산 밑에서 자거나 남의 헛간에서 자기도 하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께 재가를 하라고 많은 중매를 섰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을 생각해서 둘째 부인으로는 절대 안 들어가겠다고 해서 재혼이 미뤄지다가 총각이라고 만난 사람과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본처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어 쫓아 버리고 재혼을 한 집이었습니다. 너무 가난한 집에 들어가 4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자녀 양육 문제로 어머니와 많이 다투는 상황이 생겨서, 저는 남의 집 식모살이로 나가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그러지 말고 빨리 시집을 가라고 해서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지만 시댁이 너무 가난한 집일 뿐 아니라 남편도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술을 먹으면 자주 구타를 해서 병원 응급실을 제 안방처럼 드나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친정 오빠가 참지 못하고 이혼을 시켜서 전 남편과의 인연을 끝내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 알고 지내던 지금의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갑기도 하고 위안도 되고 해서 자주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저도 혼자 살고 있고 지금의 남편도 한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병상련의 정으로 다시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만나 같은 직장 생활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듯했지만 직장 내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어느 날부터 저에게 사납게 대할 뿐 아니라 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고 다녀서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마저 좋지 못한 상황이 되자 남편과 상의를 한 끝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고생 끝에 만난 진리의 기쁨


그러던 와중에 남편이 가끔씩 말하던 ‘상제님 진리 이야기’를 하면서 도장에 가 보자고 했습니다. 당시에 남편도 직장 동료 간의 갈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으며 건강이 나빠지고 성격이 너무 날카로워져서 말만 걸어도 싸울 것 같이 얼굴이 많이 굳어져 있어 서로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증산도 도장에 몇 번 다니고 집에서 태을주 수행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밝아지고 예전과는 달리 얼굴도 확연히 달라지고 너무도 편안해진 것을 본 터라 저도 같이 도장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도장에 갔을 때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포정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모두 사리에 맞는 얘기였고 말씀을 듣다 보니 예전부터 어머니께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결혼한 이후 신이 내려서 무속의 길을 가게 되셨는데 산에 기도를 하러 많이 가셨습니다. 그때 기도 중에 천지신명 할배가 해 주신 많은 말씀들 중에 “앞으로는 산도 들도 불로 뒤집어지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인간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다시 생각나면서 증산도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주 상생방송을 보면서 이 공부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편과 더불어 집에서 태을주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도장에서 진리 공부를 하게 되면서 생활 속에서 늘 태을주를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많은 고생 끝에 상제님 진리를 만나서 더욱 기쁜 만큼 앞으로 남편과 함께 진리 공부도 더 많이 하고 태을주 수행을 통해 더욱 건강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제님 신앙의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은^^ ◎

조부님의 신앙을 따르며


김수식(남, 81) / 전주덕진도장 / 149년 음력 3월 입도

조부이신 김형렬 성도


저는 상제님의 첫 종도이자 조부이신 김형렬 성도의 둘째 아들인 김완수 성도의 막내아들입니다. 인도자인 한복철 포정은 형님이신 김충식 성도의 아내, 저로서는 형수의 막내 여동생의 막내아들이니 저와는 사돈지간입니다.

사돈이 그동안 명절 때나 제사 시에 수십 년간 저에게 주었던 소책자, CD, 테이프 등을 건네받으면서 증산도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12월 중에 큰집 조카들이 조부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증산도 신앙을 하고 있는 사돈에게 도움을 청하여 이장과 화장을 못 하도록 고모인 송옥순 도생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증산도와 사돈 및 고모들의 도움 등으로 산소 문제가 급진전되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전주덕진도장 서용선 수호사와 고모 송옥순 도생의 도움으로 동지치성 때 태을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중풍으로 좋지 않았지만 태을궁에 참석하여 전국 도장의 여러 도생님들의 정성스런 신앙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년 12월 30일에 전주덕진도장에서 열린 전북 지역 송년치성에 참여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전주경원도장에도 치성에 참석했으며, 현재까지 전주덕진도장에 여러 번 치성 참석을 했습니다. 몇 달 전부터는 매일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개인적으로 청수를 모시며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종가 진리에 입도를 하다


3월경에 전주경원도장 김현주 법사와 한복철 사돈이 직접 찾아와서 신앙의 대의와 조부인 김형렬 종도의 신앙 내력과 자손을 위한 바람 등을 강력하게 전해 주어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4월 1일에 한복철 사돈이 고모 송옥순 도생을 차에 태우고 직접 어진 등과 다섯 신위, 다섯 개 청수그릇을 가지고 저희 집에 와서 다섯 신단(상제님, 태모님, 태을천 상원군님, 태상종도사님, 조상님)을 설치하고 청수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전주덕진도장에 나가 치성에 참석하고 성금 헌성도 했습니다. 이제는 입도를 하고자 합니다. 입도를 허락하여 주심에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조상님 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정성으로 맺어진 진리와의 인연


정금희(여, 45) / 속초조양도장 / 149년 음력 3월 입도

진심과 조력으로 이어진 도장 방문


작년에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공개수업을 갔었는데 그때 인도자인 김선정 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친한 동생을 통해서 소개받았는데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셨습니다. 학부모들과 학교급식도 함께 먹고 나와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며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김선정 님이 직업을 말씀하셨는데 무속인이라고 했습니다. 간단하게 제 점을 봐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잘 맞추어서 김선정 님의 연락처를 받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제가 김선정 님한테 안부 문자를 보냈고, 그분은 반갑게 답장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김선정 님과 가끔씩 통화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2월에 친정 오빠가 많이 아프셔서(신장 투석) 김선정 님한테 도와 달라고 애원을 하면서 말씀을 드렸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선정 님이 “너 자신을 위해서 도장에 가 보자.”고 하기에 저는 단순히 그분이 모시는 신당에 가는 줄 알고 와 보니 증산도였습니다.

정성수행으로 가족의 우환을 극복하다


이날 김선정 님이 21일 정성수행을 하라고 하여 다음 날부터 오전이나 오후에 와서 태을주 수행을 하였고 바쁜 날에는 저녁에 와서라도 수행하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21일 정성수행을 마쳤습니다.

수행 다음 날부터 오빠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남편도 부드러워지고 사춘기인 아들 또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가끔씩 수행 후에 교육도 받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도장 도생님들과 친해졌습니다.

정성수행을 마치고 3월 말에 입도하기로 하였으나 남편의 반대로 입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도 제가 도장에서 태을주 정성수행을 하면서 가정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는지 “입도는 하지 말고 정성수행만 하러 다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요치성만 참여하였는데 입도도 하지 않고 정성수행도 하지 않아서인지 가정에 다시 우환이 생겨 입도를 4월 21일에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4월 4일 속초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시어머님이 사시던 시댁 집이 다 타 버렸습니다. 너무 힘들어 망연자실로 지내고 있을 때 김선정 도생님이 큰 위로를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김선정 도생님이 입도를 앞당기자고 하여 도장으로 같이 가서 포정님과 상담한 후 4월 7일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입도식 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증산도를 만나 입도하게 해 준 김선정 도생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21일 정성수행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와주신 최명숙 수호사님께도 감사드리고 입도를 도와주신 여러 도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