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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3부작 황금의 제국

    1부 골드 오디세이
    2부 황금, 욕망의 지배자
    3부 황금의 귀환


    작은 돌반지부터 금괴에 이르기까지 소유욕을 자극하는 금은 우리에게 특별한 물건입니다. <황금의 제국>은 평범한 금속조각이 인류 역사를 뒤흔드는 위력적인 존재가 되기까지, 황금에 관한 비밀과 진실을 밝히는 다큐입니다. 제작진은 2년여에 걸쳐 아시아, 유럽, 미국, 남아메리카 등 8개국 5만km에 이르는 여정에 올라 황금의 흔적을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 발견한 황금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냈습니다. 황금에 담긴 비밀은 다양하여 생생한 컴퓨터그래픽으로 풀어냈고, 영화배우인 김영철이 내레이션을 맡아 프로그램에 무게를 더했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제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인류역사 속 황금의 여정을 추적하는 한편 십자군 전쟁에서 대항해시대, 그리고 골드러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아는 역사를, 황금을 중심으로 재해석합니다.


    1부 골드 오디세이


    “금은 제우스의 자식이다. 나방도 녹도 그것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이 최고의 소유물에게 먹혀버린다.” -BCE 5세기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

    “황금을 가진 사람은 영혼이 낙원에 가는 것까지도 도와주는 보물을 가진 것이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그대는 황금을 안전하게 만질 수도 있겠지만, 만약 황금이 그대의 손에 붙어 버린다면 황금은 순식간에 상처를 입힌다.” -존 스튜어트 밀


    황금은 인류역사를 관통하며 탐욕과 열정을 불어넣었고, 황금은 황제와 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현자의 돌이었으며 경제와 문명을 꽃피우는 마법의 돌이었다. 황금은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 돌이었다. 불멸과 죽음, 영광과 타락, 번영과 전쟁, 이 모든 모순은 황금에 녹아들었고 황금을 쫒아 인간도 모험에 뛰어들었다. 수천년전 시작된 황금과 인간의 만남. 그것은 골드 오디세이의 시작이었다.

    찬란한 문명을 열었던 황금


    황금을 뜻하는 원소기호 Au는 ‘빛나는 새벽’을 뜻하는 오로라로부터 유래한다. 섭씨 1000℃가 되면 녹고, 3000℃가 되면 끓는 평범한 금속. 그러나 변치 않는 광채는 금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빛나는 새벽을 여는 오로라처럼 황금은 찬란한 문명을 여는 빛이 된다.

    황금은 변하지 않는다. 녹이 슬지도, 불에 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수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광채는 금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사람들은 영원을 약속하는 황금 앞에서 소유욕을 불태웠고 당대 최고의 장인들은 불멸의 황금으로 역사를 새겼다.

    황금은 변한다. 무르고 연한 황금은 어떤 모양으로 다듬을 수 있고 언제든 녹여서 다시 만들 수 있다. 황금은 수천년의 변신을 거듭하며 인류 곁에 머물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황금의 유연성. 우유 한 팩을 채우는 양의 황금이면 만리장성보다 더 긴 금사를 만들 수 있다. 부드러운 금은 두드려서 얇게 펼 수 있다. 3.5L의 황금만 있다면 콜로세움 경기장 바닥 전부를 빛나는 금으로 덮을 수 있다.

    역사 속에서 황금이 끼어들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상과 과학,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우주여행과 무병장수의 꿈속에도 금은 깃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황금이 주는 힘의 비결이다.

    국적, 종교, 성별을 초월해 수많은 이들이 황금에 열광했다. 하지만 금은 단 한번도 인류의 갈망을 채워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류가 캐낸 금은 얼마나 될까? 국제규격의 올림픽 수영장 3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 된다. 인간이 황금 채굴에 바쳐온 열정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한줌에 불과하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철저하게 황금을 기준으로 돌아갔다. 국력과 경제력은 그 나라의 황금보유량과 일치했다. 황금이 돈이고, 무기이고, 신이던 시대였다. 황금을 가진 자 권력을 얻을지니. 이 법칙은 신화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스 신화의 이아손.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그는 황금 양모를 찾아 원정에 오른다. 갖은 시련을 헤치면서 세상 끝에서 황금 양모를 찾아가는 원정대. 그들에게 황금은 왕권을 보장해주는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태양숭배에서 비롯된 황금 예찬


    금을 향한 인간의 구애는 그 역사가 길고도 깊다.

    “금이 점점 많이 발견될수록 금이 부식되지도 않고 또 태양과 같은 빛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금이 태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아름다운 금속이 빛을 내며 하늘의 태양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티모시 그린 「금의 시대」 저자


    고대인들은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을 열정적으로 숭배했다. 그들에게 태양과 같은 빛을 품어내는 황금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금은 태양의 화신. 황금을 소유하면 태양을 갖는 것이라 믿었다. 농업사회에 들어서자 만물의 성장에 필요한 태양은 더욱 위력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 태양신 숭배사상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고대문명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은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었고, 황금이란 단어는 ‘만질 수 있는 태양’을 의미했다. 고대 중국의 추장들은 부락 장막에 태양을 그려놓고 자신을 태양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렀다. 태양신을 위해 피라미드를 쌓은 마야와 아즈텍. 그들은 태양의 흐름에 맞춰 달력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태양신은 아폴론. 이 태양신이 황금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광명과 온기를 전해준다 믿었다.

    태양숭배에서 비롯된 황금 예찬.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닿을 수 없는 태양보다 만질 수 있는 황금이 더 빛을 발한다. 이때부터 황금은 지구 곳곳에 금빛 서사시를 남긴다.

    황금의 역사 (1)메소포타미아


    인류문명의 탄생을 예고한 땅, 황금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첫 장을 연다. 사막 한가운데에 솟은 지구라트는 하늘의 신을 맞이하던 신전. 수메르의 도시마다 지구라트가 들어섰고 문화가 발달한다. 내세보다 현세를 중시한 그들은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학교, 수레바퀴, 사랑노래까지 그들이 남긴 모든 것은 인류 최초가 된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황금장식품을 발견한 곳도 이곳이었다. 수메르인들은 영웅을 기리고 신을 숭배하기 위해 금으로 예술품을 빚었다.

    기원전 2004년 수메르는 멸망한다. 하지만 황금은 살아남아 바빌로니아의 빛이 된다. 함무라비 법전을 남긴 바빌로니아는 당대에는 황금의 나라로 통했다. 수도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세상이 동경한 황금의 도시였다. 고대인들의 꿈이었던 바빌론 성은 성곽에서 도로와 건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금으로 뒤덮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설만 남긴 채 사라졌던 바빌론은 19세기말 세상 앞에 등장한다. 도시의 현관이었던 이슈타르(Ishtar)의 문이 발견되면서 바빌론은 그 실체를 증명해냈다.

    황금의 역사 (2)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물들인 황금은 또 하나의 위대한 문명과 만난다. 수천년 전 이집트와 인접한 누비아 일대에는 엄청난 양의 황금이 매장되어 있었다. 이 황금 때문에 누비아는 금을 차지하기 위한 인류 최초 정복사업에 희생양이 된다. 이집트는 누비아를 정복했고 누비아인들은 노예가 되어 금을 캤다. 그 황금 위에 이집트 문명이 건설되었다. 1922년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투탕카멘의 왕릉이 발견되면서 세상은 마침내 이집트의 빛나는 역사를 목격한다. 19세에 죽은 투탕카멘은 역사에서 유명한 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무덤이 열린 순간 그는 현대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됐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만점. 다양하고 화려한 황금예술품은 인류가 가진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자 국력과 경제력, 정치력의 집합체이다. 고도로 발달한 건축기술과 황금을 배경으로 한 막강한 경제력이 만나 피라미드를 탄생시켰다. 피라미드 시대에 황금 숭배사상도 절정에 달했다. 파라오는 내세를 꿈꾸며 이곳에 황금과 함께 잠들었다. 영원한 황금이 영생불멸의 꿈을 이뤄줄 것이라 믿은 것이다. 금을 향한 이집트인들의 열망은 그 어떤 문명보다 열렬했다. 4천년전 제작된 지도에는 나일강의 금광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황금 머리장식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필수품이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토대는 황금. 그 위에서 이집트인들은 황금보다 더 찬란한 문명을 남겼다.

    황금의 역사 (3)아시아


    초원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유구한 길이다. 이 길에서 황금은 새로운 문명과 만나 찬란한 빛을 발한다. 기원전 8세기부터 남부 러시아 초원지대에서 활약한 기마유목민족 스키타이. 스키타이는 북방 유라시아 대륙을 풍미風靡하며 화려한 유산을 남긴다. 자연을 숭배한 스키타이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숭배대상이 있었다.
    바로 황금. 자연과 황금에 대한 열광은 창의적이고 생생한 미술품으로 거듭났고, 장신구에서 무기까지 수많은 물건을 금으로 장식하기에 이른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황금숭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동과 교역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에게 금은 가장 안전한 재산. 휴대하기도 쉬웠고 어디에서나 거래가 통하는 편리한 화폐였다.

    금을 숭배한 유목민의 문화는 초원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로 전해진다. 문명과 민족을 넘나드는 골드 오디세이. 마침내 황금은 대륙과 만난다. 15세기까지 세계사는 동양의 역사였다. 인구도 경제력도 유럽을 압도한 중국은 당대 최고 문명의 상징으로 통했다. 중국인의 최대 종교는 황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별난 중국의 황금숭배. 그 기원은 3000년 전에 존재한 왕국 고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도의 청동 제련기술을 보여준 고촉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황금이다. 태양 숭배사상이 강했던 중국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다양한 황금 유물을 만들어 태양과 인간을 연결하고자 했다. 고대부터 깃든 황금예찬은 지금도 중국문화의 특징으로 남아있다.

    서기 4세기 황금문화는 마침내 신라에 도착한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뿐 아니라 중국, 인도,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신라의 성장을 국제사회에 당당히 알린다. 당시 신라사회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은 곳은 무덤 속. 신라인들은 넉넉하고 진취적인 자화상을 무덤 속에 그려 넣었다. 황금의 나라로 불린 신라의 실체를 세상에 알린 것도 바로 고분이었다.

    5세기에 축조된 황남대총. 남북으로 2개의 무덤이 연결된 이 왕릉은 남쪽 무덤을 먼저 만들고 뒤이어 북쪽 무덤을 잇대어 만들었다. 그리고 남분에는 왕을, 북분에는 왕비를 묻었다. 거대한 봉분이 열린 순간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찬란한 금빛. 무덤 주인공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4세기 후반 신라인들의 금을 다루는 기술은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신라인의 미감과 최고조의 이른 금공의 기술로 꾸민 거대한 왕릉. 무덤은 권력을 이어받는 공간이었고, 권위를 과시하는 무대였다.

    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신라의 황금제품은 세계적인 황금문화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중 금관은 특히 중요한 유물. 당시 신라는 그들만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그 꿈을 금관에 담았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발견된 금관은 13여점. 이 중 8점이 신라의 것이다. 신라는 세계가 인정한 금관의 나라였고, 황금은 신라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였다.

    『일본서기』는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썼고, 아랍인들은 신라에는 금이 너무 흔해서 개목걸이도 금으로 만들었다고 썼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라는 황금이 지천에 널린 이상향이었다. 동아시아 문명권은 황금문화 속에서 밀접하게 교류했다. 황금은 아시아 고대사를 화려하게 꽃피우게 한 밑거름이었다.

    황금의 역사 (4)마야


    세상 모든 문명은 큰 강에서 시작되었다. 이 역사의 정설은 마야를 만나 깨졌다. 마야문명은 높은 기온과 축축한 공기의 원시림 속에 터를 닦았다. 농사에 있어서 마야인들은 석기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문명에 있어서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고 천문대와 경기장을 남겼으며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황금 유물은 복잡한 공정과 섬세한 가공을 통해 탄생했다.

    서기 300년에서 900년 사이 마야는 황금기를 맞는다. 마야인들은 우주와 시간을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예언을 믿었고 천문학과 역사학이 발달했다. 그 눈부신 역사를 기록한 마야의 그림문자를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악마의 기록으로 몰아 모두 태워버렸다. 마야의 황금시대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사라졌고, 마야문명은 인류역사상 가장 신비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황금의 역사 (5)아즈텍


    아즈텍 사람들은 스스로를 멕시카라고 불렀다. 200년 동안 번영을 누렸지만 스페인에게 멸망당한 아즈텍. 수많은 석조 신전과 도시는 원시림 속에 묻힌 채 버려져 있었다.

    아즈텍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이었다. 햇볕에 말린 1억개의 벽돌을 쌓아 태양의 신전을 만들고 석조문화를 발달시켰다. 전성기의 아즈텍은 인구가 30만에 이르렀고 370여개의 도시가 세금을 바치는 거대 제국이었다. 아즈텍인들은 지쳐서 어둠속에 잠기는 태양이 다음날 아침 살아나게 하려면 피와 심장을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희생 제의는 국왕의 가장 신성한 국무였고 국가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아즈텍은 2미터 크기의 황금 태양을 만들었다.

    “아즈텍에서 금은 특히 피필틴 계급과 같은 엘리트 계층에서만 사용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은 금 판박기술을 이용한 장식품을 옷에 걸거나 귀 덮개로 사용했습니다. 금은 태양을 상징하며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새의 모양을 본뜬 금 장식품은 태양숭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마르고 세르베로, 멕시코국립대학 고고학 교수


    하지만 아즈텍은 건설된 지 200년 만에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 황금유물도 제국의 영광도 확인할 길이 없다. 아즈텍 멸망의 날, 원주민은 한편의 시를 남겼다. ‘우리 앞에 들이닥친 이 모든 불행에 우리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황금의 역사 (6)잉카


    황금이 불러온 인디오 문명의 비극은 잉카에서 한번 더 재현된다. 국왕이 날마다 금으로 짠 옷을 입는 전설 속의 엘도라도. 제국의 이름은 잉카였다. 인디오 말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자신들이 태어났다고 믿은 잉카인. 태양의 아들들은 건축과 공예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금이 풍부한 잉카에서는 일찍부터 금 세공기술이 발달했다. 기원전 500년에 이미 왕관과 귀걸이 팔찌를 금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금은 태양이 준 선물이며, 아름다운 물건이었고, 지도자가 착용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잉카문명에서 아름다운 금 장식품은 태양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늘의 태양을 숭배한 지도자는 태양을 닮은 금을 갖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티모시 그린, 「금의 시대」 저자


    잉카인들은 금을 바쳐 태양을 노래했고, 금을 소유함으로써 태양을 갖고자 했다. 1532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잉카는 멸망한다. 수천년 역사가 담긴 황금유물은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황금과 권력의 역사


    금의 가장 묘한 특징은 언제나 귀했다는 점이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황금을 가질 수 있었고 황금을 많이 가질수록 권력이 강해졌다.

    “금은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왕이나 황제, 혹은 지도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렇게 권력자들만 독점하는 물건이 되면서, 금은 부와 힘을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티모시 그린, 「금의 시대」 저자


    고대 왕들은 황금으로 몸을 치장하고 금으로 장식된 궁전에 살면서 태양처럼 온 세상을 비추는 제왕이 되기를 갈망했다. 황금을 향한 권력자들의 욕망은 진기록을 남겼다. 황금에 대한 최고의 욕망을 보여준 주인공은 이집트의 파라오. 죽어서 황금관에 잠든 그들에게는 살아생전에 필수품이 있었다. 그것은 황금보좌. 100% 황금으로 만든 보좌는 신과 동등한 왕권의 상징이었다. 이집트에 파라오가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솔로몬이 있었다. 솔로몬은 황금방패 500개를 만들고 자신이 사용하는 식기는 모두 황금으로 만들었다. 7년에 걸쳐 지은 성전은 모두 순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전한다.

    황금을 향한 사랑이라면 페르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이란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70년에 걸쳐 제국의 모든 재물을 쏟아부은 궁전은 황금보물로 채워졌다. 황제가 사용하는 물건은 모두 황금. 이와 함께 예법도 엄숙해졌다. 다리우스 왕은 자신의 궁전에서 황금왕관을 쓰고 황금보좌에 앉아 드넓은 제국을 호령했고 황금욕조에서 몸을 씻었다. 조공을 바치러 각국에서 사신이 모여들었고, 페르시아의 황금은 점점 늘어갔다. 황금에 관한 열망은 부전자전이었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정교하고 화려한 대형전차를 만든다. 황금을 향한 권력자들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황금뿐만 아니라 금색도 독점했다. 노란색은 고대 황실의 기본 색채였고 지고지상한 권위를 상징했다. 황금색 기와로 장식한 화려한 지붕은 오직 황궁에만 허락되는 특권이었다. 관료와 백성들은 금색 의상을 입을 수 없었고, 제왕의 색인 황금색은 부의 상징일 뿐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대표하는 색이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황금 보유량이 곧 전투력이었다. 황금만 있으면 군대를 모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적을 매수해 전쟁을 막을 수도 있었다. 용병을 모으고 월급을 주는 황금은 왕의 권력이었다. 여성 권력자들은 일찍이 금의 효능을 간파했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황금 테라피의 시초. 그녀는 밤마다 황금으로 마사지를 했고 중국 청나라 서태후는 황금봉으로 얼굴을 두드리며 젊음을 유지하고자 했다. 권력은 황금을 얻어 강력해졌고 황금은 권력을 얻어 더 고귀해진 것이다. 녹이 슬지도 변색되지도 않는 황금은 가장 신성하면서도 가장 세속적인 것이었다.

    “금은 절대 부식되지 않습니다. 300년 전에 난파된 배에서 금 주화를 발견해도 여전히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5000년 후에 무덤에서 금을 꺼내더라도 역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것이 금이 가진 최고의 매력입니다.” -티모시 그린, 「금의 시대」 저자


    닿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던 태양을 대신해 인류는 황금을 쫒았다. 금의 마력에 눈뜬 순간 태양은 잊혀지고 황금만 남았다. 제국의 운명을 결정한 골드 오디세이 그 찬란했던 여정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영원불멸의 금빛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다음호에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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