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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만은 꼭]

    3층 서기실의 암호

    이성호 / 본부도장


    북한 핵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반도에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올 것인가? 이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다양한 주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오랜 세월 살아왔고 북한 권력의 상층부 깊은 곳에서 그들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지켜본 사람의 주장이라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태영호 공사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저자 태영호는 북한의 전 외교관이다. 2016년 8월 17일 한국으로 망명하였다. 지금은 현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직책에 있으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활발히 강연 활동 중이다. 그는 1962년 평양시에서 태어났으며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 후 외교성에 배치돼 덴마크, 스웨덴을 거쳐 영국에서 10년가량 근무한 런던 주재 영국 공사였다. 공사minister는 대사ambassador 다음 서열로 역대 탈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다.

    탈북민 태영호 공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오직 김정은 가문만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제 국가이기에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을 노예 사회에서 해방시키는 노예 해방 혁명이라고 말이다. 북한은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기에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북한 사회를 혁명시키는 거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북한의 주민들이 해방될 때 비핵화도 실현된다는 것이다.

    ■태영호는 왜 망명했나


    태영호는 외국을 들락거리며 서방 세계의 삶을 아는 자로서, 고난의 행군을 통해 북한 인민이 굶어 죽어 가는데 가슴앓이를 숨겨야 했다. 김씨 가문은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외피를 쓰고 인민의 희생 위에 봉건 노예 사회를 건설했다고 책에서 썼다. 김정은은 2014년 고모부 장성택을 기관총으로 처형했고, 2017년 큰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했다. 김정은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불사할 것이다.

    특히 핵무기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보루다. 김씨 가문의 추악한 비리와 백두 혈통의 썩어 빠진 실상은 향후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리라 태영호는 내다본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없게 하는 당국의 조치에 반발해 저자는 영국에서 재직 중 탈북을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더는 살지 말자. 이게 무슨 사람의 삶이냐.”
    “나는 북한 체제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이제 북한을 떠날 때가 됐다.”
    “노예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자식에게만은 소중한 자유를 찾아 주자.”


    ■3층 서기실은 어떤 곳인가


    자기 이름을 건 첫 번째 책이라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좀 낯설다. 북한의 <3층 서기실>이란 어떤 곳일까? 한국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 같은 곳이다. 북한 주민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당 중앙 청사에서 김정은을 근접 보좌하는 부서가 있는 3층은 북한의 모든 정보와 권력이 모이는 곳이며,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막후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중앙당 일꾼들도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금지 구역이지만, 북한 김정은은 2018년 3월 5일 한국대통령특별사절단을 여기서 맞이하면서 처음 공개됐다. (북한 언론 소개로는, 조선노동당 본관)

    ■북한에게 핵 보유는 창과 방패


    북한은 1970년대 중반 김일성 때부터 체제 유지를 위해 핵 보유를 선택하게 된다. ‘조선 반도의 비핵지대화’ 주장이 그것이다. 비핵화 구호를 내세워 미국과 중국의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김일성의 두 번째 전략은 미국으로부터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 불사용 선언’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 같은 두 가지 전략을 설정하고 비밀리에 핵개발에 진력했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에도 감행하지 못했던 노동당 7차 대회를 열면서 ‘위험한 핵 질주’를 가속화했다. 대북 제재가 장기화되면 북한 경제가 입을 피해가 막대할 것이므로 단기간에 핵 무력을 완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2017년까지 국가 핵 무력 건설을 완성하기 위해 북한은 더욱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고, 이 해에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단행하고 두 차례의 ICBM 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보유했다고 선언했다.

    이제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의 시기다. 놀랍게도 지금의 정국과 태 공사의 말이 일치한다.

    ■남북회담 카드의 유효성


    북한이 고립과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꺼내 드는 카드가 남북회담이었다. 1991년 12월 남북한 당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남북공동발표문’을 냈다. 그런데 2018년 현재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2012년 4월 14일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명시하게 된다. 김정은은 2015년을 ‘조국 통일의 대사변의 해’로 만들자고 했고 이 말은 노동신문에도 나왔다. 당 내부 회의와 군대 회의에서도 2015년까지 전쟁 준비를 끝내기로 한다.

    김정은은 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아버지 김정일이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해 오던 핵에 올인하는 것뿐이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성택 처형 사건을 계기로 세계 언론은 김정은의 야만적인 공포통치 스타일을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핵 위기를 고조시켜 인권에 쏠린 여론을 핵 문제로 옮겨가게 했다.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이 부족한 김정은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처단한 마당에 이젠 누구를 처형해도 더 이상의 공포는 줄 수 없는 상태다. 김정은이 카리스마 형성에 실패하게 되면 자신은 물론 체제 자체가 붕괴된다.

    ■북한은 체제 유지 수단이 무너진 상태


    김일성, 김정일 대에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흔들리는 상황이 와도 외부정보 유입 차단, 이동 통제, 세뇌 교육, 정치조직 생활 등으로 체제 유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현재 김정은 대에 와서 다 무너졌다.

    이제는 한국의 인기 드라마나 영화가 DVD나 USB 형태로 몇 주 안에 북한 장마당에 들어온다. 북한 어린이는 영화, 인터넷을 보면서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체제와 김정은을 위협하는 존재는 또 있다. 바로 종교다. 지금은 신앙과 종교 활동은 미약하지만 북한에도 신앙인과 종교 활동이 있다. 북한에서 교회를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목회자와 가짜 교인이 있어야 한다. 태영호 공사는 외부 종교인들의 방문이나 종교 활동을 통해 가짜 신자가 진짜 신을 믿게 되는 현실을 북한 당국이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바티칸 교황의 방북은 아직까지는 성사되기 힘든 이벤트라는 말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의 구성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 외무부에 들어가 공사로 활약하기까지 공무원으로서의 직업 경험을 담았다면, 2부에서는 개인사를 말해 준다. 중국 유학 이야기와 집안의 가족사 이야기는 읽기에 좀 지루했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태씨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후손이며, 고려로 망명해 태씨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온 후, 저자는 남원성 전투에서 사망한 조상님이 계신 만인의총 앞에 서서 민족의 수난을 되새기며 겨레의 통일을 염원했다는 대목에서 필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는 탈북하기 1년 전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받는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지시가 직접 개인에게 내려온 셈인데, 실은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러 오는 김정철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김정철은 김정은의 형이다. 북한 체제에서 ‘백두 혈통’을 보좌하는 일은 <수령의 신변 안전과 관련되는 특별 사항>이기 때문에 그를 수행하는 일은 당사자만 풀 수 있는 암호로써 “매우 은밀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지시가 내려왔고, 공사관 상사上司였던 대사는 물론, 자신의 아내와 가족도 모르게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저자는 책에서 김정철과의 61시간을 상세히 기록했다. 북한 체제를 알 수 있는 스토리라면서,,,

    “런던 로열앨버트 홀에서 에릭 클랩튼 공연이 열린다. 가장 좋은 좌석으로 6장의 티켓을 예매하되, 중앙 쪽으로 4자리, 측면으로 2자리를 구입하라”
    “런던 사보이호텔의 스위트룸 2개를 예약하라”
    “템즈 강이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을 예약하라”
    “런던의 관광 명소 10곳을 선정해 보고하라”
    “영국의 이름난 식당을 추천하라”
    “<더 샤드>에 있는 식당과 스페인 식당을 예약하라”


    표를 구하고, 호텔방을 예약하고, 김정철이 좋아하는 바지를 세탁하기 위해 24시간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아 밤새 런던 시내를 찾아다닌 이야기, 김정철이 좋아하는 기타를 사기 위해 지방 마을을 찾아다닌 이야기 등. 런던 주재 공사였던 자신의 몇 달 치 월급을 하룻밤 숙박비로 쓰는 상전을 3박 4일 동안 뒷바라지한 이야기가 솔직하게 쓰여 있다.

    <김씨 가문과 관련된 이야기는 말해서도 안 되고 물어봐서도 안 된다는 것이 북한 사회의 불문율>이었지만, 김정철의 공연 관람은 현지 기자들에게 들켜서 만천하에 공개되고 만다. 007 못지않은 비밀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던 필자는 얼마나 허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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