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4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가가도장]

    인연으로 모인 가족 화목한 도방을 만들다

    광주오치도장 문일권, 이경숙 도생

    한 가정이 도방을 이루는 것은 진리에 공감하는 일단의 가족이 신앙의 울타리에 통일체로서 자리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정도장은 단순한 모임이나 관계 설정의 성격만으로는 형성되지 않는 본질적이고 신앙 가치적인 성소의 개념을 갖고 있다. 때문에 도방을 구성하는 신앙인들의 면면은 친밀한 가족이라는 범주를 초월하여 뭔가 특별하고 깊은 인연과 영적 감수성이 공유되는 관계로 볼 수 있다.

    신앙의 범주에서 볼 때 가족 구성의 시초인 혼인과 출산은 영적인 끈과 인연이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임의로 결정하고 편의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퍼즐 놀이와는 다르다. 만일 독자 여러분 중에 “나의 가족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는 표현이 생소하게 들린다면, 이번 도방의 사연에 한번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도방은 광주오치도장 문일권(남, 51세, 녹사장), 이경숙(여, 50세, 교무녹사장) 부부 도생과 그 가족의 신앙 이야기다. 두 도생은 슬하에 장남 문규범(남, 17세, 교무종감), 차남 문석준(남, 16세, 교무종감), 장녀 문예원(여, 11세, 사감) 도생과 입문한 막내딸 문예성(여, 6세) 도생까지 2남 2녀를 두고 있고, 문일권 도생의 부모이신 문제삼(남, 78세, 도감), 김연순(여, 72세, 도감) 도생도 따로 신앙을 하고 있는 가족신앙 집안이다.

    지난 3월 둘째 주 목요일 오후 취재진은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에 위치한 이 가족의 가정도장을 찾아갔다. 아파트 3층에 위치한 가정도장에 들어서니 6명의 가족이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아 주었다.

    거실 옆에 독립된 공간으로 마련된 도방은 천신단 상단에 태을주 액자와 상제님 어진, 태모님 진영, 태상종도사님 존영, 태사모님 존영, 조상선령신위 액자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아래쪽에 놓인 청수 단 위에는 백색 자기로 된 청수그릇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규모에 맞는 최적의 조합을 이루고 있다. 천신단에 예를 올리고 나서 여섯 가족과 함께 거실에 마주 앉아 포교로 시작된 가정의 출발과 늘 힘이 되고 삶의 원천이 된다는 가족의 형성 과정과 의미, 그리고 대견함과 애틋함이 함께 묻어나는 네 자녀에 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 보았다.


    삶의 가장 중요한 만남


    친구가 권한 한 권의 책
    문일권 도생은 전남 보성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맏이로 성장하면서 문 도생은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주제들은 명료한 답을 쉬이 얻기가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 그 길을 찾아볼 생각도 했다. 그것은 그에게 독서를 좋아하는 습관이 생긴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문 도생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무협과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던 그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 무릎을 다쳤는데 이로 인해 슬개골이 약해져서 걸을 때면 뼈와 뼈가 부딪치면서 소리가 났고, 청각도 약화되어 신경성 난청으로 잘 듣지 못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문 도생이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만나게 된 계기는 23세 되던 겨울 무렵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 친구를 통해서였다. 평소 책을 읽고 독서 내용을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던 그는 그날도 습관처럼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 당시 화두처럼 여기던 의문, 곧 보이지 않는 세계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대뜸 『증산도의 진리』 책을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을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형식의 답을 기대했던 거와 달리 어떤 책을 읽어 보면 될 거라는 대답은 의외의 반응이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책 제목을 외워 두고 다음 날 바로 그 책을 찾아 나섰는데, 거주지인 광주 시내의 주요 서점을 다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고 작은 책방들까지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서점마다 없단 말인가 하고 궁금해하면서 당시 집 근처인 용봉동 지역의 동네 서점들을 돌아다녔지만 역시 책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전남대학교 후문 쪽의 작은 서점에서 딱 한 권의 『증산도의 진리』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이로움과 충격, 감성과 확신으로 바뀌다
    문 도생은 어렵게 구한 책인 만큼 그 내용이 궁금해서 밤을 새워 읽었는데 너무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우주의 참하느님의 강림에 대한 역대 성인의 예언과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120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왔다 가셨다는 내용을 접한 그는 경이로움과 감동을 넘어서 무척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늘 참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기도를 하며 밤하늘 샛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진리에 대한 갈급증이 크고 깊어만 갔는데, 바로 지금 눈앞에서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을 책을 통해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상제님께서 보신 천지공사 내용과 우리 역사, 그리고 한문화 소식 등을 읽고 나니 마음속에 밀려드는 감동과 함께 가슴이 정화되고 맑아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문 도생에게 있어 진리 책과의 만남은 새로운 지식이 가져다 주는 충족감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다. 고민해 온 삶의 해답을 찾은 정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갈구해 온 진리적 의문과 응어리를 해소한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증산도 진리를 만나 상제님의 가르침과 도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체계를 배우고 깨닫는 일은 인생에 있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문 도생은 그러한 진리적 물결에 자신을 맡기고 이성과 감성을 동원해 온전히 몰입을 했는데, 그 경험담들을 듣다 보니 공감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니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다 보시고 나서 벽을 향해 돌아누워 계시다가 사람을 다 살리고 싶지만 다 살리지 못함을 한하시며 흐느껴 우셨던 모습이 있더군요. 상제님의 그 모습이 생생히 제 가슴에 전달이 되면서 너무도 벅찬 감동과 함께 하염없는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또 저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우주 원리를 잘 모르는 까막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증산도의 진리』 1장의 1절, 2절 내용과 4장 천지개벽의 발생 이유에 대한 내용, 우주 창조 법도에 대한 내용 등이 생소하면서도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잘 모르지만 몇 번 반복해 읽었더니 이해가 됐어요. 우주의 진리 핵심과 그 깨달음을 열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세 소식과 우리 역사와 민족의 뿌리이신 삼성조님 이야기, 그리고 조상님에 대한 상제님의 법언들은 참으로 제게 큰 감동과 은혜를 안겨 주는 말씀이자 성령의 손길이었습니다.”

    문 도생은 인존으로 강세하신 상제님의 진리를 머리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감성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자세로 다가섰다. 어릴 때부터 진리를 애타게 찾아 왔던 과정이 이제야 종착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친구와 함께 교회를 다녀 보고 부모님을 따라 불교도 접해 보고 중학교 때는 친구 따라 신흥종교 성덕도에도 다녀 보았지만 진리와 하나가 된 진정한 깨달음, 참구원의 도를 만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특히 진리 책을 통해 ‘종통’과 ‘구원’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던 점도 문 도생에게는 큰 수확 중 하나였다고 한다.

    “증산도의 진리 책에 있는 상제님의 법언 중에 ‘나는 천지일월’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상제님께서 진리의 전체 모습을 일러 주시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진리의 도맥에 따라 역사 속에 펼쳐지는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의 증산도 진리 종통이 인류를 건지는 참구원의 손길이라 확신했습니다.”

    도생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이렇게 제대로 된 진리의 맛을 본 문 도생은 진리 책 맨 뒷장에 소개된 『이것이 개벽이다』 책 상하권을 사 보았고 증산도 도장 안내 전화번호도 확인했지만 좀 더 자세히 알고 나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는 한편으로 회사에 함께 다니던 친구에게 증산도 진리와 우리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계속하여 증산도 진리 관련 책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확인해야 할 주제와 질문들이 하나 둘 늘어갔지만, 이를 혼자서 온전히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또다시 진리 의문 해결에 목말라하던 차에, 하루는 회사 친구와 광주 시내 중심부에 차를 마시러 갔다가 증산도 진리 홍보 패널 활동을 하고 있던 이용범 도생을 만나게 되었다. 진전된 변화가 필요했던 문 도생은 그분에게 주소와 연락처를 남겼고 이틀 후에 연락이 와서 만남을 가졌다. 문 도생은 이때 이용범 도생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조상의 음덕과 삼생의 인연이 어떤 의미인가, 의통이란 무엇인가, 죄가 많은 자신과 같은 사람도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용범 도생은 세 가지 주제에 관해 성의껏 설명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그 내용은 모두 문 도생의 마음을 열어 주는 데 필요한 답변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분은 문 도생에게 『관통증산도』와 『대도문답』이라는 두 권의 책을 전해 주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상제님 말씀들이 정리가 되었다고 했다.

    문 도생은 당시 『증산도의 진리』 등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을 쓰신 저자가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도 속 시원한 진리 언어와 해석으로 자신의 가슴과 마음과 영혼의 빛이 되어 주었고 정리된 논리와 핵심은 물론이고 그 많은 말씀과 방대한 내용을 하나로 묶어 전해 주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기에 빨리 뵙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문 도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용범 도생을 통해 도장 안내를 받고 수행 공부에도 도움을 받은 끝에 1991년 2월 드디어 도문에 입도를 하게 되었다.

    포교가 이룬 도방의 인연


    오빠에게 닥친 삶의 시련
    이경숙 도생은 대구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지척인 경산에서 성장하며 학업을 마친 후, 전공을 살려 6년간 중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과학 실험 보조원으로 근무를 했다. 입사 당시 곧 결혼을 앞두고 퇴사할 예정이던 선배 언니가 있어 3개월 안에 정직원 발령을 약속받고 근무를 시작하였으나 기회가 올 때마다 재단 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무산이 되면서 결국 퇴사를 하고 말았다. 이후 이 도생은 작은오빠가 있는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고, 대도시인 서울에서 구직에 성공해 직장인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다. 오빠랑 생활한 지 4년이 되던 2000년, 늦장가를 들었던 오빠에게 불행이 닥쳤다.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인해 올케언니와 사별을 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오빠도 부상을 입어 그 이후로도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도생은 다섯 살 위인 작은오빠와는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어릴 적 학교에 등교하면서 이 도생을 자주 업어주곤 했을 정도로 정이 많았던 오빠에게 찾아온 고난은 이 도생에게도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사고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이로 인해 이 도생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가족이 다들 지방에 있던 터라 이 도생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몇 개월간에 걸쳐 사고 처리와 함께 사돈집과의 정리, 집 이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 등으로 몹시 지쳐 있었다.

    채팅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다
    그러던 이 도생에게 큰조카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온라인 채팅을 권했다. 그래서 이 도생은 조카가 알려준 ‘다음 채팅 사이트’에 처음 접속하게 되었다. 평소 컴퓨터로 일상 업무들을 처리한 적은 있었지만 낯선 채팅 사이트에 처음 접속한 이 도생은 모든 게 익숙치 않았다. 첫날 음악을 들으면서 여러 소식을 주고받는 이 채팅방에서 이 도생은 남편인 문 도생을 처음 만났다. 초보였던 이 도생이 채팅방에서 음악이 들리지 않아 공개적으로 문의를 했고, 이에 문 도생이 따로 방법을 알려 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었지만 2개월쯤 되었을 때 이 도생은 성격이나 취향 등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문 도생과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하지만 문 도생은 하루도 빠짐없이 몇 통씩 메일을 보내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얘기하기도 하고 한 편의 시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보고 싶다는 내용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후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저녁, 이 도생은 술에 취한 것도 아닌 맨 정신에 자신도 모르게 집 전화기를 들고 문 도생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여보세요’ 이 한마디를 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왜 먼저 전화를 걸었고 울기만 했는지, 그것도 휴대폰이 아닌 집 전화기를 들고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소위 말하는 귀신이 곡할 노릇을 자신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문 도생은 자주 서울로 올라왔고 만남이 계속 이어졌다.

    결혼이 결정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해 12월에 일어났다. 서울 은평구에서 일산으로 출퇴근을 하던 어느 날 함박눈이 내리긴 했지만 길이 미끄럽거나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신호 대기를 하고 있던 이 도생의 차를 뒤차가 제동 없이 쿵 하고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문 도생은 짐을 싸 들고 온 것도 아닌데 며칠을 내려가지 않고 병상 옆 보호자 침대에서 자면서 간호를 했다. 그사이 문 도생의 부모님과 이 도생의 오빠 간에 연락이 오가더니 퇴원도 하기 전에 상견례 날짜가 잡혔고 만난 지 8개월 만인 2001년 4월, 마침내 두 사람은 운명처럼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결혼 과정에 얽힌 숨은 사연
    문 도생에게 있어 아내인 이 도생은 가정적으로나 신앙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결혼 전 사랑을 키워 나갈 때도 진리로 매개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뢰와 인연의 고리가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작용을 했지만, 결혼 후 신앙의 동반자가 된 다음에도 늘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체면을 세워 주며 음양으로 굳건히 응원을 해 주었고 가정도장의 기틀을 만들어 준 아내에게 문 도생은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 아내와의 결혼 과정에 대해 문 도생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애초에 이 도생은 문 도생이 목포 도장에서 봉직하고 있을 때 포교 대상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여러 명의 인터넷 포교 대상자 중에서 가장 마음이 열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던 이 도생을 포교하기 위해 『이것이 개벽이다』 책과 종도사님 말씀 테이프, 태을주 주문 테이프를 전하며 첫 만남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처음 만나 증산도 진리를 전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이 도생이 부담을 가졌는지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이 도생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연락을 끊었다던 그 대목이었다. 포교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문 도생은 너무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후 문 도생은 칠성경에 간지를 넣어 읽으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날마다 메일을 보냈는데, 49일째 다시 연락이 되었다. 간절한 기도와 주송, 그리고 염원이 결합된 결과는 이 도생이 자기도 모르게 먼저 전화를 걸어 이유 없이 울기만 했던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나타난 셈이었다. 그렇게 하여 다시 만남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운명처럼 인연의 고리로 이어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이성적인 감정이 싹트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목포에서 영광으로 인사 발령을 받으면서 환경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웠고 몸이 약해질 때로 약해져 그만 건강상 이유로 보직 생활을 그만 두게 되었다.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전에 병가 사유서를 내고 광주 용봉동 집으로 내려와 쉬게 되었다. 이때 문 도생의 건강을 염려하신 태상종도사님께서 한약을 지어 보내주셨다고 한다. 문 도생은 그것을 먹고 몸이 많이 좋아졌으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은혜와 기운으로 결혼 후 네 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도정에 다시 복귀를 해야 했지만 문 도생의 마음은 가정사로 늘 편하지 못했다. 두 동생들은 다 결혼을 했는데 34세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는 문 도생 때문에 늘 아버지의 성화가 있었고, 이로 인해 가정에 불화가 생기며 마음고생을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죄송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부모님을 위해 드리고 한평생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문 도생은 천지에 기도를 하고 이 도생과의 이성적 만남을 선택했고, 결혼 후 반드시 아내를 입도시키고 다시 신앙을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 도생은 8개월간의 만남으로 서로의 마음이 확인된 만큼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서로의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자고 설득을 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서로가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운명처럼 만남이 이어졌고, 그것을 계기로 마음이 이끌려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말씀으로 열린 마음, 봉직으로 불태운 열정


    세 번의 심방에 마음을 열고
    이 도생은 남편과의 만남이나 인연이 지속된 것도 모두 증산도 진리에서 비롯되고 결실이 맺어진 것이었지만, 결혼 후에도 바로 입도를 하지 않고 신앙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첫아이를 출산하고 백일 때쯤 입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집에 심방을 했던 곽기영 수호사와 유경훈 도생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세 번째의 심방이 있던 날, 그간 두 차례의 방문에도 귀를 닫고 있었기에 내심 조금은 죄송스런 마음을 갖고 있던 이 도생에게 곽 수호사는 이렇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10년 이상 신앙해 온 문일권 신도의 체면도 생각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평생을 약속한 아내의 도리로서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 도생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 가정을 이룬 인연도 진리로부터 출발했고 가정의 화목과 안정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도 부부가 화합이 돼야 가능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가 부부의 도리를 다하고 지켜 주어야만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남편의 뜻에 따라 입도를 하게 되었다.

    이 도생은 입도 직후의 자신을 진리 공부나 신앙심이 깊지 못하고 오락가락 신앙 흉내만 내는, 소위 무늬만 신도인 수준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매달마다 태전 세종도장에서 진행됐던 본부 교육에는 꼬박꼬박 젖먹이를 데리고 참석했다고 한다. 빽빽이 들어찬 교육실 맨 뒷자리 구석에서 배고파 우는 아기에게 돌아앉아 젖을 먹이면서도 진리 교육을 들으며 귀동냥이라도 했던 그때의 자신이 지금 돌아봐도 스스로 기특할 정도라고 했다. 안 가겠다고 설득하거나 떼를 쓰기라도 했을 법한데, 새벽까지 저린 다리 두드려 가면서, 아기랑 실랑이도 해 가면서 참고 교육을 받았던 것은 지금의 이 도생을 신앙에 안착하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 아마도 겉모습과 달리 가슴 깊은 곳에는 진리에 대한 진한 애정이 숨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도생은 이에 대해 “비록 무늬만 신도이긴 했으나 제가 타고나기를 적극적이고 지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O형이라서 도장의 크고 작은 일에 부지런히 참여했습니다. 본부 교육도 귀라도 열며 들어는 보자라는 마음으로 대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제게 도움이 됐던 거지요.”라고 했다.

    도훈 말씀으로 정한 신앙의 목표
    문 도생은 입도를 한 이후 진리에 관한 한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소화하고자 노력했다.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읽을 때는 당시에 한자투성이인 책을 읽자니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옥편을 찾아 가며 읽었다. 글귀나 내용이 어려워 이해가 안 될 때는 태을주를 집중해서 몇 번 읽고 난 후 다시 읽으면 눈에 글자가 확연히 들어오면서 이해가 되고 머리가 밝아지는 체험도 했다. 입도하고 처음으로 증산도대학교에 갔는데 그때 태상종도사님 도훈 말씀 중 “인간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진리에 살다 진리에 죽는다.”는 말씀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말씀을 받들고 나니 어떻게 하면 바른 가치관을 갖고 진리에 살다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했고, 이를 계기로 상제님 진리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우쳐 봉사를 하고 싶다는 신앙의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10년은 일심으로 신앙을 하자, 그리고 일차적으로 3년 안에 본부에 가서 봉사를 하자’ 이렇게 실천 목표를 정하고 그렇게 성사되기를 상제님과 태모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정말로 이루어져 문 도생은 ‘태전지명 찾기 운동’ 참여를 계기로 본부에 정착하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오래된 일이라 신앙 연륜이 깊은 도생이 아니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 행사이긴 하지만 문 도생은 그것이 자신의 신앙 행로를 좌우한 뜻깊은 일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체험한 활동 과정과 행사의 의미에 대한 소상한 설명도 들었는데,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조금 길지만 참고가 될 듯하여 옮겨 본다.

    “태전 지명 찾기 운동을 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잃어 버린 역사와 문화를 다시 찾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증산도 신앙인으로서의 소명감 사명감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태전 지명 찾기를 하면서 하루에 30리 정도를 걸어 다니며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걸 왜 찾아야 하느냐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고, 먹고살기도 바쁜데 왜 그런 걸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 어떤 분은 수고한다고 쉬어 가며 하라고 먹을 것을 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태상종도사님께서는 태전이 본래 이 한반도의 혈穴 자리라고 하셨고 땅은 그 민족의 혼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태전이 대전으로 그 지명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일까요. 대전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이 만들어 낸 오욕의 이름입니다.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그 내막이 나오는데, 한일병합이 되기 한 해 전인 1909년 1월, 당시 순종 황제를 호종하여 태전을 지나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이곳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이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아랫사람에게 태전太田의 태太 자에서 점을 뺀 대전大田이라 부르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부르게 한 것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금수강산 곳곳의 혈穴 자리에다 쇠말뚝을 박거나 경복궁 앞에 ‘일日’ 자 모양의 조선 총동부 건물을 세운 것과 동일한 맥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일명 한밭과 콩밭이라고 불리던 태전은 그렇게 수많은 일제의 만행 중 가장 시작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태太는 창조의 상징이므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조太祖 등의 뜻이 모든 머리 중 그 으뜸이 된다는 것이며, 성장이 정지된 대大와 달리 무한히 커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또 태황제太皇帝, 태상황太上皇 등의 칭호처럼 더 이상 클 수 없는, 가장 크고 지존至尊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으며, 통일의 중심 자리가 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1992년부터 증산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태전 지명 찾기 서명 운동은 우리 민족의 혼과 역사를 찾는 운동으로 승화되어, 약 75만 명의 시민이 서명에 동참했지요.”

    본부 봉직에 담긴 추억
    이렇게 태전 지명 찾기 운동에 참여하던 중에 문 도생은 본부 소속이 되어 옛 괴정동 본부 지하에 있던 매점을 맡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매점에서 세종문고로 넘어오는 5년의 본부 봉사 과정 동안 도문에서는 많은 일들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도생들이 큰 기운을 받아 천하사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도공 문화를 비롯하여 종도사님의 10개국 도전 번역 작업과 논산 수도원 부지 마련, 월간개벽지 창간 등이 그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입도 과정에서 했던 21일 정성수행으로 어릴 적 허약한 몸으로 뛰어 다니다가 입었던 무릎과 청력 손상이 개선되고 좋아지는 체험을 했고, 광명 체험과 더불어 개벽 상황에서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하고 증산도 진리의 핵심이 개벽이라는 것을 깊이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한 신도神道의 은혜로 큰 발심을 세워가며 신앙을 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새겨져 있다고 했다.

    문 도생은 진리를 만난 후 처음 도장을 방문했을 때 생명을 다 바쳐 상제님의 일을 해 보겠다는 기도를 올렸고 본부에서 일하면서 뼈를 묻으며 봉사하고 싶었지만 결국 건강하지 못한 몸이 발목을 잡았다. 건강 관리를 잘 했더라면 좀 더 많은 봉사와 신앙을 일관되게 하였을 것인데, 5년간의 본부 봉사 후에 몸이 약해져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신앙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집에 내려와 몸을 추스르고 회사를 다니면서 광주각화도장에서 신앙을 이어갔고, 도장에서 보직을 맡아 또 한 걸음씩 내딛으며 열심히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목포도장에 상임포감으로 발령을 받았다가 포정으로 임명받아 보직을 수행하였고, 이후 영광 지역으로 인사 이동을 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결국 보직 생활을 그만 두게 되었다.

    소나무와 같은 영적 충전소, 도방


    몹시도 화목해 보이는 여섯 명의 가족에게 가가도장은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먼저 문 도생은 가정도장이 상제님 진리의 작은 성소라고 했다. 진리와 도덕과 생명이 갱생할 수 있는 곳이며 진리 은혜의 축복으로 마련된 성소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문 도생은 천신단이 모셔진 도방에서 기도를 할 때는 집중해서 오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길게는 1시간이 넘게 할 때도 있다는데,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는 도방에서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해소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 도생은 가정도장이 영적 에너지와 치유 에너지를 모으고 사용하기도 하는 영적 충전소라는 표현을 했다. 이 도생은 도방에서 남편과 가족을 위한 기도를 곧잘 하곤 하는데 칠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감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불어 타 도생들을 위한 보은의 기도와 칠성경 주송을 통한 수행이 응감이 되고 실현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장남인 문규범 도생은 가가도장을 ‘소나무’라 정의했다. 애국가 가사처럼 바람 서리가 몰아쳐도 늘 불변으로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소나무의 품성과 같은 곳이 도방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정도장이 중심이 된 집안의 분위기가 밝은 것이 좋고, 도방의 중심인 부모님이 제대로 된 신앙의 지름길을 걷고 있어 존경스럽다고도 했다.

    차남 문석준 도생은 가정도장이 ‘밥’과 같다고 했다. 늘 필요하면서도 취하지 않으면 힘을 잃는 기력의 원천이라는 독특한 발상을 갖고 있었고, 도방에서 수행을 하게 되면 머리가 맑고 저하된 몸 상태도 호전되는 체험을 하곤 해서 애착이 가는 곳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4학년인 딸 문예원 도생은 가정에서 함께 신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웃음’이 많아지는 것이라 말하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신앙의 봄을 준비하다


    가족의 힘으로 연 신앙의 활로
    문 도생은 이날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지금까지의 생활과 신앙에 대해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저는 늘 몸이 약해 제 자신과 싸우며 살고 있었지만 항상 절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지켜준 사람은 아내 이경숙 도생이었습니다. 제가 증산도 일꾼 신앙으로 보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서도 참아 가면서 저를 지켜보고 힘이 되어 주었지요. 그 힘으로 2015년에는 다시 광주상무도장에서 봉직자로서 일꾼 신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도정 업무와 조직에 최선을 다해 봉사를 했으나, 역시 제가 가지고 있는 지병에 한계를 느끼고 의기가 약해 병가를 내고 말았습니다. 보직을 그만두면서 저는 제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습니다. 나 자신과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고 신앙의 혁신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일심을 못하는 것이 경제적 문제인가, 아니면 심법이나 의기의 문제인가, 진리사상의 문제인가. 모든 것을 돌아보면서 제 자신과 고독한 독백을 통해 새롭게 열매 맺는 신앙의 문을 열어야 했어요. 광주오치도장으로 돌아와 쉬면서 자기 정화와 사색을 통해 자기 반성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신앙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광주오치도장에 새로 포정님이 부임하시고 나서 저 또한 새로운 마음으로 보직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보다 이경숙 도생이 열심히 신앙을 해 주어 큰 힘이 되고 있고 두 아들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천지대세를 여는 진법의 원년을 맞아 공사가 풀리는 지극한 천하사 신앙을 하여야 하기에 마음의 부담도 그만큼 크고 무겁지만, 종도사님의 뜻을 받들어 지방에서 도정 업무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싶습니다. 오늘까지 신앙해 온 지도 28년의 세월이 흘러왔지만 아직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께 일심으로 보은하지 못해 늘 부족한 신앙심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신앙을 대오각성하고 초발심을 다시 회복하여 자기관리와 생활신앙에 최선을 다하는 성숙된 일꾼이 되길 날마다 심고하고 기도합니다.”

    신앙의 돌파구, 세 가지의 체험담
    아울러 문 도생은 신앙의 위기와 힘이 들 때마다 자신을 바로잡아 준 것은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조상님의 신교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오늘날까지 신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의 근원과 생명력은 모두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말씀 기운을 받아 의기를 다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활신앙을 해 오면서 크게 각성한 세 가지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재확인하고 재삼 의기를 다지는 고백과도 같기에 향후의 신앙 계획을 대신할 만한 마무리 내용으로 소개한다.

    “첫째, 과거에 제가 지방에서 일심 포교단으로 활동하면서 쉬지 않고 방문포교를 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너무 지친 나머지 발에 힘이 빠져 걸을 수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태을주와 함께 지금의 도전 8편 87장 있는 ‘하늘이 내리는 고난의 깊은 섭리’에 관한 성구를 읽었고 옛 『다이제스트 개벽』에 있는 태상종도사님의 용안을 보면서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온몸에 기운이 꽉 들어차면서 힘이 솟아나고 즐겁게 포교 활동을 했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확연한 기운이 통했던,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체험이기에 말씀을 드립니다.

    둘째는 태전 지명 찾기를 하고 집에 오는 기차 속에서 한 영적 체험입니다. 앞으로 들어갈 수도원이 아닐까 하는데 커다란 궁전에서 우리 도생들이 도공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모습을 본 겁니다. 어떤 도생이 손바닥으로 기를 불어 넣어 신유하는 모습, 어떤 도생은 주문을 읽어 가면서 손끝으로 가르치며 살리고, 어떤 도생은 수도원 밖에서 도공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성사해야 할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지금도 그 희망으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내가 죽어도 남은 꼭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도하고 신유하면 반드시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과 기도를 일심 정성으로 꾸준히 하면 신도에서 계획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감하여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봉직자 생활에서 외롭고 지쳐 힘이 들 때 도장 신단에 기어가서 심고를 하였는데 마음이 다시 밝아지고 기운이 확 들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체험들도 있었지만 순간의 방심을 하면 척신 마신 복마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여 사심과 사기를 불어넣어 일을 어지럽게 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 성공의 길은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종도사님 조상님을 바르게 모시고 모든 마신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뿐이라는 것과 오직 태을주로 살릴 생生 자 포교를 일심 정성으로 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후천조화선경을 건설할 수 있는 후천 참종자 일꾼이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도방을 이루었지만 외연의 확장을 하여 다시 육기초 육태을랑 조직을 완수해서 천지보은하는 생명력 있는 일꾼신앙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한 제 아이들이 모두 상제님 신앙으로 인사적으로 성공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도방을 잘 이끌어 좀 더 성숙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또한 현재는 힘들지만 다시 발심하고 용맹정진하여 일어설 수 있는 칠전팔기의 정신과 어렵고 힘든 생활이지만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증산도의 혼이 되고 증산도 수호신이 되자, 다 함께 힘내서 사람을 많이 살리자’는 태상종도사님의 말씀과 ‘하면 된다’는 종도사님의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도정 중심, 도장 중심, 도전 도훈 말씀 중심으로 도심주를 바로 하여 도방을 더욱 굳건히 지켜 가며 광주 전남 지역의 도장 개창에 힘이 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신앙의 봄을 맞을 용기를 장착하고
    앞서 아이들에 대한 잔잔한 감성과 사랑을 밝혔던 이 도생도 향후의 신앙 계획을 차분히 밝히며 특유의 유쾌한 표현으로 이번 도방 취재의 마침표를 찍었다.

    “작년부터 도장에서는 부족한 저에게 어린이포교회(어포) 부포감이라는 큰일을 맡겨 주셔서, 저는 해맑은 어포 도생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진리의 동무라 생각하면서 같이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죄스럽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용기 내어 포교 흉내라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도 홍보 활동 등 도장에서의 활동에는 참여를 하였으나, 지인들에게 진리를 전하거나 도장 인도를 권해 보는 일은 용기조차 내지 못했어요. 아직 성과를 내고 있진 못하지만, 어포들과 함께 진리 공부를 하면서 눈높이에 맞는 포교를 할 계획입니다. 제가 하나하나 진리의 돌을 쌓아 가면서 저의 판단이 아닌 조상선령님들과 천지신명님들의 결정에 맡기고 상제님 태모님의 말씀과 태사부님 사부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를 할 생각이에요. 신문 배달을 하는 소년처럼요!

    저는 너무 긴 시간을 웅족의 자손처럼 겨울잠을 자고 있었어요. 벌써 경칩이 지나 봄이 오잖아요. 제 신앙에도 봄을 맞이할 용기를 장착했거든요. ‘뛰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뛰고’ 움직이는 신앙으로 보은하겠습니다. 보은! 보은! 보은!”



    네 아이의 존재와 가족의 의미

    대견함과 애틋함을 가진 아이들
    문 도생과 이 도생 부부 슬하에는 네 아이가 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상제님 진리의 기틀 속에서 잘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굳건한 신앙의 행보를 걷기를 바라고 있다. 문 도생 내외는 아이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부모로서 자식이 신앙인으로 잘 자라 주는 것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로 인해 부모의 마음과 삶이 변화된 사연을 갖고 있다면 이는 주목할 만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이 자녀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네 아이의 출생과 성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첫째와 둘째인 두 아들에 대해서는 대견함이, 셋째와 넷째인 두 딸에 대해서는 애틋함이 조금씩 더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중병으로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두 딸에 대한 연민은 엄마인 이 도생이 ‘조상님의 채찍과 당근’으로 비유할 만큼 진한 의미로 채색이 되어 있다.

    첫째인 규범이는 이 도생이 삼신의 신교 태몽을 꾸고 낳은 아이다. 문 도생은 규범이가 장남임을 시위라도 하듯이 가장 의젓하고 모범적으로 신앙을 해 준 덕분에 동생들이 잘 따라올 수 있었다고 한다. 아빠를 잘 따라 매일 새벽 수행에 참여하면서 4살 때 전 주문을 다 외웠으며, 2013년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있었을 때는 저녁마다 홍보 활동도 하였는데, 저녁이면 밥 먹고 단군세기 서문 외우기를 시도해 3주 만에 암송을 하는 대견함을 보였다. 맏이를 따라 동생들도 덩달아 단군세기 서문을 외우는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문규범 도생은 학교 생활도 우등생으로 잘 해 왔고 올해는 자청해서 광주자동화설비 마이스터고(GAT)에 입학을 했다. 일찍 철이 든 장남은 부모가 경제적인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사회에 먼저 진출하여 가정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자신은 후에 대학 진학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 도생은 신앙적으로 아직은 미숙하지만 지금까지 잘 따라 준 아들을 고맙게 생각하며 이제 스스로 신앙을 즐기며 잘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싶고 앞으로도 신앙을 잘 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둘째인 석준이는 문 도생이 태몽을 꾸었는데 하얀 백마에 달려가니 날개가 펴지면서 하늘로 높이 날아가다 다시 땅으로 급하강을 하더니 세상이 광명해지는 꿈이었다. 문석준 도생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형을 따라 신앙하면서 형보다는 덜 집중하는 것 같이 보였는데, 최근 청포 핵심 일꾼 집중교육 1기 2기에 참여해 수료증도 받고 하더니 신앙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석준 도생은 앞으로 성직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과 함께 사람들을 좀 더 존경하며 태을주 생활화에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셋째의 첫 돌 무렵 암 수술을 받다
    셋째인 딸 예원이는 애틋한 마음을 품게 하는 아이다. 셋째를 낳고서 이 도생은 ‘셋째까지 생겼으니 돈을 벌자’고 설득했고 문 도생은 아내의 뜻에 따라 처형네가 소개해 준 철강 회사에서 주야 교대 근무를 하며 일을 했다. 문 도생의 팔다리 곳곳에 불꽃이 튀어 작은 흉터들이 생길 때마다 이 도생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진리 속에서 기뻐하고 봉직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알았던 남편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면서 느껴지는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결국 1년을 못 채우고 다시 광주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평소 건강이 좋지 않고 속이 쓰리다는 말을 자주 하던 문 도생에게 어머니가 적극적인 권유를 해서 문 도생과 이 도생이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로 시행하는 건강 검진을 받았다. 애초에 문 도생의 상태를 걱정하며 검사를 받았으나 예상외로 이 도생에게 위암 진단이 내려졌다. 초기라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 도생은 ‘암’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죽음까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가 셋째인 딸의 돌잔치를 하고 15일째 되는 날이었다. 딸아이와 떨어져 수술과 요양 등 일련의 과정을 겪는 과정은 이 도생에게 모진 고통을 안겨 주었다. 특히 이제 돌이 지난 어린 딸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웠던 점은 안타깝고 애처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아내의 암 진단으로 큰 충격에 빠졌던 문 도생은 날마다 도장에 나가 기도와 배례 수행을 하면서 상제님 태모님 조상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신유로 치병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신앙심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신유만 기대할 수는 없었던 문 도생은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하고 죄를 참회했다. 하루는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하는데 문득 영이 열리면서 나무 위에서 신명이 환히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체험을 하고 나서야 문 도생은 안도감을 갖고 아내가 죽지는 않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 도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술을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도 이 도생은 위암 완치 판정을 받은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투병 중 가족으로 찾아온 막내 딸
    넷째인 막내딸 예성이는 이 도생이 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기 전에 가족이 되고자 찾아온 아이다. 투병 중에 갖게 된 아이이기에 주변 가족들과 도장 도생들의 걱정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인 이 도생은 담담하고 꿋꿋한 의지로 자신을 찾은 생명을 보듬어 안았다. 배 속의 아이와 교감하면서 건강하게 가족의 일원이 되어 주기를 원했고, 한편으로 도장에 속한 도생으로서 해야 할 일에는 게으름 없이 임하려고 노력했다.

    2013년 3월에 광주에서 처음 열린 ‘환단고기 북콘서트’ 당시 이 도생은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매일 수행 후에 도생들과 함께 아파트 홍보, 길거리 홍보 전단 작업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행사를 이틀 앞두고 도생들이 팀으로 나누어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홍보를 했는데, 4월에 분만 예정이었던 이 도생은 만삭이 된 무거운 몸도 아랑곳 않고 천천히 하면 된다며 작은 아들과 팀이 되어 한 동을 맡아 올라갔다.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엄마가 배가 너무 단단히 뭉쳐서 계단에 앉아 쉬고 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문 도생은 놀란 마음을 안고 급하게 달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정작 아내는 웃으며 배를 쓸며 태을주를 읽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순간 문 도생은 안도감과 함께 짙게 밀려오는 애정과 대견함이 교차했다고 한다. 아내의 신앙심을 걱정하던 마음도 씻은 듯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콘서트 행사는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이 도생은 다음 달 12일에 제왕절개수술로 막내 딸내미를 가족으로 맞았다. 노산에다 낮은 혈액 수치, 그리고 암 완치 판정을 받기 전에 아기까지 거꾸로 들어서 있는 불안정한 상황들을 극복하고 모든 가족과 도생들의 기도 및 도움을 받아 건강한 딸을 얻게 된 것이다. 막내딸은 태을주 속에서 건강히 잘 자라 돌잔치를 도장에서 제물치성으로 올리고 나서 입문을 하였다. 이 도생은 막내가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사배심고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막내라 그런지 가장 목소리가 크고 잘 웃고 애교도 많아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힘이 솟아나곤 한다며 막내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만 바꾼다면 불행하진 않겠구나”
    문 도생과 이 도생에게 네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보물단지와 같다. 무탈하게 성장하며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때로는 부모의 입장을 헤아릴 줄도 알면서 대견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애잔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자식인데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부모에게 희망과 변화를 선물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자녀들과 함께 가정도장을 꾸려가는 문 도생과 이 도생은 가족 각자의 존재가 힘을 주고 의미를 주는 선물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 진리를 성사재인하는 도생으로서의 삶과 함께 서로에게 인연의 끈을 맺어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가치있고 귀중한가를 감사의 마음으로 관조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도생은 넷째가 특히 복덩이인 것 같다고 말한다. 막내딸을 낳고 경제 사정이나 여러 상황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마음의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넷째이기 때문이다.

    “출산 후 바로 알지는 못했지만 막둥이를 얻고 나서부터 도장 일에 다시 적극적이게 되었고 수행이나 기도도 전보다는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 넷 중에 가장 밝고 늘 웃음을 달고 다니는 막둥이를 보면서 작은 깨달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매사를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만 바꾼다면 불행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웃어 주는 딸내미처럼 말이지요.”

    두 번의 채찍과 한 번의 당근
    아이들에 대한 사연을 얘기하던 이 도생은 문득 조상님께서 자신의 불안정한 신앙을 훈육하고 강화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통해 채찍과 당근을 주셨다는 말을 꺼냈다. 첫아이와 연년생으로 둘째를 가졌을 때 구역포감을 처음 맡게 되면서 도장 일에 더 열심히 참여하였으나,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면서 보잘것없는 신앙심이 그나마 해이해질 때쯤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8개월에 접어드는 12월, 이 도생은 도장에서 송년회 모임을 끝내고 계단을 내려가다 아이를 안은 채 넘어졌고 아이를 안 다치게 하려다 발이 접질려 발목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로 철심을 대면 2개월, 그냥 깁스를 하면 3~4개월 지나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깁스를 선택했다. 깁스를 하고도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 말을 지킨다고 어린 아들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서 밥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나름 조심한다고 했으나 4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서야 깁스를 풀 수 있었다. 이는 돌이켜 생각하면 자신의 신앙에 있어 첫 번째로 조상님께서 따끔하게 매질을 하신 것이라고 했다. 셋째 아이 돌이 지난 후에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투병을 했을 때도 그것이 조상님이 행한 또 한 번의 매질임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암 수술까지 받고 완치되기 전에 넷째를 낳게 된 것은 조상님이 주신 세 번째의 메시지였는데, 이번에는 매질이 아니라 당근을 주셨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데 무엇하나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불안한 여건 속에서도 오히려 두 아들과 딸내미까지 나서서 고사리손으로 전단지 접기에 재미를 붙이고 마치 놀이처럼 즐겁게 북콘서트 홍보 활동에 나섰던 것이 넷째 딸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도록 하는 선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를 생각하며
    문 도생에게 부모님은 자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은혜로움과 소중함을 마음에 가득 채운 존재이다. 부모님은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의 은혜로 2013년 7.7 대천제 시 함께 치른 입도식을 통해 입도를 하셨다. 어릴 때부터 문 도생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큰 반대 없이 묵묵히 지켜봐 오셨는데, 문 도생이 부모님이 하시는 농산물유통업을 도와 드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매일 적극적으로 태을주를 안내해 드리고 조상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이야기로 마음을 열어 드렸으며, 본부에서 열린 대천제에 인도함으로써 증산도 신앙 문화를 경험토록 도왔다고 했다. 문 도생네와 따로 살고 있는 부모님은 상제님 태모님 천신단을 모시고 집에서 봉청수와 태을주 수행 및 도공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몸이 좀 불편하셔서 좀처럼 도장 참여는 잘 못하지만 대천제와 큰 행사에는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3년에는 어머니께서 자꾸 꿈에 조상님들이 보인다고 하여 어머니와 함께 직선조와 외선조 보은 천도식을 올려 드렸다고 한다. 문 도생은 “따로 사시면서 자신들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당신님들 건강을 지켜 오시며 마음속으로 최선을 다해 자식 뒷바라지를 해 오신 은혜를 생각하면 가끔 눈물이 나옵니다. 좀 더 열심히 살아서 보은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지만 늘 불초한 제가 자식된 도리가 부족하여 마음이 아프곤 합니다. 살아 생전에 좀 더 편히 모시고 효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대신했다.



    이번 호 가가도장은 참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지닌 한 도생이 인생을 좌우할 증산도 진리를 만나 신앙의 행로를 정하고, 입도 후 포교 과정에서 만난 대상자와의 교류와 신뢰를 통해 결혼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과 이후 가족이 되고자 이 부부를 찾아온 네 아이의 출생과 성장을 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느낀 도방 스토리를 만나 보았다.

    이 부부 신앙인은 2남 2녀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도장을 이루고 있지만, 애초에 생각조차 없었던 운명적인 결혼의 성립과 아내의 입도 계기, 심지가 바르고 일찍 철이 들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아는 두 아들, 암이라는 중병에 맞서 투병하는 과정에 연계된 두 딸의 애달픈 사연, 그리고 부모의 심성을 변화시키고 가정에 충만한 웃음을 채워 주고 있는 막내에 대한 깊은 인연의 흔적 등을 담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도방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이 가족의 도방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잔잔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봄바람처럼 우리의 가슴을 스치는 그 무엇이 뭉클한 무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가족이 내뿜는 사랑과 웃음의 열화에 모두 용해되고 말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 가족이 가정도방을 정의하는 표현에도 위트와 활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여섯 가족 모두가 유쾌한 신앙 공동체를 목표로 인연줄을 타고 모인 것 같다는 상상을 쉬이 하도록 만든다. 여느 도방 취재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도방 당사자 부부 못지 않게 네 아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필요했다. 이는 취재의 본말이 흐트러진 게 아니라 가족의 현재와 그 속에 감춰진 의미를 새겨 보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음을 밝혀 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 역시 애정 어린 변명으로 비치기를 바란다. 기사의 전개와 내용을 읽다 보면 이 가족의 밝은 웃음 뒤에는 가슴 아픈 사연 또한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하면서, 그저 평범하지만 특별한 구석이 많는 한 신앙 가족 이야기에 공감하고 응원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문일권, 이경숙 부부 도생과 문규범, 문석준, 문예원 도생, 그리고 행복 전도사인 막내딸 문예성 입문도생이 함께하는 도방 가족, 나아가 이 가정의 뿌리이신 문제삼, 김연순 어르신 도생의 가정이 더욱 화목하고 활력이 넘치는 도방으로 발전하기를 기원드리고, 올해 바라고 준비하시는 모든 일 또한 상제님 태모님의 성령과 조상선령 및 천지 성신의 가호 속에 크게 성취하시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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