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4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종도사님 말씀]

    동북아 신선문화의 도통과 신선 발귀리의 신교철학 사상 -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중심으로

    道紀 146. 6. 2(목). 세계환단학회 2016 춘계학술대회, 백범김
    우리 문화의 본래 발원지는 어디인가, 동서 인류 문명의 보편성은 어디에 근원을 두는가, 동서 문명은 서로 연결되는가? 오늘 함께 살펴볼 『환단고기』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들어있는 「소도경전본훈蘇塗輕典本訓」은 이런 문제에 대한 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우주 원형문화 역사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소도경전본훈, ‘소도경전의 근본 가르침’은 환국과 배달과 조선의 역사문화 정신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인류 문화역사 창조의 심장부를 우리가 두 글자로 ‘소도’라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 생명의 바다 속에서 살아있는 그 신성, 그것을 받아내리는 어떤 신성한 땅이 있었습니다. 소도는 성스러운 땅, 천지의 아주 성스러운 기운이 솟구치고 그런 기운이 소생하는 터입니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가 있습니다. 이 소도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이 있어서, 거기서 신교 원형문화의 인간관과 신명관, 수행관, 우주관 교육을 했습니다. 「소도경전본훈」에 등장하는 소도경전으로는 환국의 「천부경天符經」이 있고, 그다음에 배달의 커발환 환웅천황이 내려주신 「삼일신고三一神誥」, 단군조선 때의 「참전경參佺經」과 「염표문念標文」이 있습니다.

    우리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 9천 년 국통 맥에서 문화를 창조한 원형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천지부모와 한마음, 한 생명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 생명의 바다에, 바로 그 생명의 존재의 주인인 삼신이 계십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완전히 발현한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불멸의 동방 원형삼도原型三道 정신입니다. 하늘의 조화 신성을 받아내린 것이 바로 전도佺道이고, 어머니 땅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 선도僊道, 신선도神仙道입니다. 그다음에 천지의 원주인인 인간, 인간의 다스림의 도,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의 도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종도倧道가 나왔습니다. 그러고서 불도가 이 전도에서 나오고, 선도, 신선도가 원형 선도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유도가 종도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종교, 철학, 과학 모든 인류 동서고금의 문화역사 정신이 융합되는 때입니다.

    인간은 이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회복해서 우주의 생명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조화생명 자체가 되고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진정한 이 우주의 창조자, 창조의 본체 태극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신선 발귀리가 소도문화, 그 원형의 역사문화 정신을 가지고 노래해 주신 우주 생명관, 신관, 역사관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지향할 통일문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역사관의, 미래 비전의 기초가 된다고 봅니다.

    9천 년 역사문화의 완성이 바로 근대사의 동학, 참동학이며, 이는 인류의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종교가 아닙니다. 앞으로 『환단고기』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앞으로 개벽의 거대한 변혁의 물꼬를, 크고 작은 모든 시련을 태일의 심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천지부모와 크게 한마음이 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인류 원형문화의 정신을 깨쳐야


    우리 문화의 본래 발원지는 어디인가, 인류 문명 즉 동서 문명의 보편 문화정신이 있다면 그 문명의 보편성은 어디에 근원을 두는가, 동서 문명은 서로 연결되는가? 오늘 함께 살펴볼 「소도경전본훈蘇塗輕典本訓」은 이런 문제에 대한 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소도경전본훈」은 소도 경전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문화, 지금도 지구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문화 언어이기도 합니다.

    『환단고기』에서 마지막 편은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1455~1528)이 쓴 『태백일사太白逸史』입니다. 이 『태백일사』에 들어있는 여덟 권 가운데 다섯째가 「소도경전본훈」인데요. 이 『태백일사』의 대의를 깨치면 인류 원형문화의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우주 원형문화의 정신을 깨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구도자, 기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이 관문을 넘어야 비로소 참된 정신을 각득覺得, 깨달아서 천지의 그 뜻을 우리 몸으로 구현하는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큰 틀에서 ‘소도경전’의 진정한 큰 뜻이 무엇인가, 궁극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가 체험한 것을 근본으로 해서, 우리들의 생활문화 언어로 쉽게 한번 표현해 보도록 정성을 쏟겠습니다.

    지금 「소도경전본훈」 원본을 정리해서 편집했는데, 사무실, 자동차에 놓으시고 한번 암송할 수 있도록 해 보세요. 이 속에서 우리 한민족의 시원정신, 역사의 원형정신에 대해서 그 대의를 크게 깨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오늘 제가 서두에서 전할 말씀은 늘 강조하듯이, ‘결론은 역사전쟁’입니다. ‘역사 주권 전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전쟁의 중심 시간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왜 오늘날 70억이 넘는 지구촌 형제자매들의 생사,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접 연관을 맺고 있는가? 그것은 근대사의 첫걸음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근대사의 중심 주제인 개벽, 다른 말로 ‘다시 개벽’의 긴박한 중심 시간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 효창원에는 독립전쟁의 혼백이라 할 수 있는 삼의사三義士 즉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 이봉창李奉昌(1901~1932) 의사, 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의 묘가 있고, 민족의 스승 김구金九(1876~1949)의 묘역도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임정 요원들도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제가 윤봉길 의사의 최후의 모습, 십자가에 팔뚝이 완전히 묶이고 눈을 흰 띠로 가리운 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총살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깊은 감회와 분노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 역사의 근원을 향한 우리들의 대장정은 머지않아서 큰 열매를 거두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유형과 무형의 매도와 음해가 있다 하더라도 굳건히 이겨 나갈 것입니다. 그 어떤 장애에도 굽히지 않은 선열의 도전 정신에 대해서, 우리는 인류 원형문화 정신을 복원하는 이 황금의 시간대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1904~1987)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이라는 책을 잠시 보다가, 우리의 분열된 자아에서 우리의 참모습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이 우주는 왜 존재하고 있는가, 이 우주 만물 존재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 떠올렸어요.

    오늘 백범기념관에서 우리가 함께 체험해 보려는 이 『환단고기』야말로 문화원전 또는 역사 경전, 인류 원형문화의 법전이라고 서슴없이 찬미할 수 있는데요. 우리의 역사, 동서 인류 원형문화의 정신을 들춰내고 또 역사 왜곡 문제를 말할 때 사서와 고고학적인 검증도 중요하지만, 『환단고기』는 우리 모두에게 영혼의 갈급증을 풀어주고, 정말로 알고 싶은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지평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에 매여있는, 어찌 보면 썩어빠진 왜곡된 학문 정신으로 현대역사학을 하는 강단사학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은, 조상을 부정하는 거예요. 단군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역사학 분야를 전공했든지 연구방법론을 총동원해서 ‘단군은 신화’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국·배달·조선은 논의 자체가 되지 않고, 역사학의 주제가 될 수가 없는 것이 주류 역사학계의 실정입니다.

    제가 근래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서 이런 말을 했어요. ‘역사를 아무리 공부해도 결론은 조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게 지금 역사학의 현주소다. 결론이다.’ 이것을 강조해야 된다, 이것을 절규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학의 근본정신과 통일역사관의 원형정신


    김구 선생이 18세에 황해도에서 동학군에 자원해서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동학의 실체, 동학의 근본정신, 동학의 역사문화 주제를 제대로 알 때 우리 시원 역사 근원을 복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고대사의 근원 자체가 송두리째 꺾여 있기 때문에, 제거당했기 때문에 그 악업으로 근대사의 근본 주제, 동학을 천도교로 알고 있고, 시천주侍天主 그 위대한 선언을 인내천人乃天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천도교다’ 삼척동자도 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러나 동학은 교가 아닙니다. 무극대도입니다!

    19세기 후반에 동방 조선 땅에 울려 퍼진 위대한 새 역사 선언은 무엇인가? ‘종교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종교에 대한 사형선고예요. 경주 사람 최수운崔水雲(1824~1864) 대신사가 무극대도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 무극대도를 닦아내면 5만 년 운수를 닦는다’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백범 선생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대한 독립이요,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8.15 광복 이후 몇 세대가 지나가고 있지만, 진실한 역사의 광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분단 역사를 어떻게 해체하면서 새로운 꿈의 역사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역사광복, 위대한 새 역사의 문을 열 수 있는 통일역사관의 원형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역사문화의 중심 주제가, 우주적인 거대한 생명력이 파도치며 들끓고 있는 『환단고기』 「소도경전본훈」을 통해서 우리가 크게, 새롭게 각성하는 한국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암흑물질Dark Natter과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의 신비


    바로 몇 개월 전에 현대 첨단과학계에 아주 놀라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인류는 우주 신비의 문을 열어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력파의 발견입니다. 태양의 30배 전후 되는 거대질량을 가지고 있는 두 블랙홀이 합쳐지면서 거기에서 중력파重力波가 튀어나옵니다. 14개국의 학자 천여 명이 40년 동안 탐구해서 지난 2월에 이 중력파를 탐지했어요. 이것이 왜 진정한 우주의 참모습을 열기 시작한 것인가?

    거대 은하계라든지 어떤 물질 덩어리가 그 속도에 가속을 일으킬 때 중력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우주가 140억 년 전에 폭발할 때부터 또는 그 이후에 수많은 대우주 천체의 생성소멸 과정에서 터져 나온 중력파가 그대로 시간 공간의 궤도에 축적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의 모든 정보를 이 중력파가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우주론에서 우주의 수수께끼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암흑물질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 떠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암흑물질에서 만물이 태어나고 거기에서 중력重力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현상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연법칙 가운데 하나가 중력인데, 이 중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 못 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물이 자기의 존재를 세우고 서로 끌어당기고 수축력을 가지면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중력의 바탕이 바로 암흑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 수축하면서 현상세계 우주 만물을 태어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중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암흑물질입니다. 우주는 이 암흑물질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암흑물질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암흑 에너지가 있습니다. 암흑 에너지는 이 거대우주 은하단, 별들을 밖으로 밀어내어서 우주 공간을 점점 더 크게 만든다고 합니다. 공간 자체가 에너지인 이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자꾸 밖으로 키우면서 무형의 공간을 밀어내는 외현적인 힘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은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두 가지의 신비, 그것을 풀어내는 절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태고의 동방 문화에 주권 사역을 한 대신인大神人들은 어떤 깨달음을 가졌는가? 이 우주 생명의 근원과 우주 현실 세계를 보는 우주관, 신관, 인간관을 근본으로 해서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세계입니다. 현대 우주 첨단과학의 현주소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제가 세 가지로 정리를 해 봤어요.

    첫째는 『환단고기』 출간의 의의와, 인류 원형문화 정신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의 대의를 살펴보고, 둘째는 「소도경전본훈」을 같이 정독해 보고, 셋째는 인류 근대사의 출발점인 동학과 참동학의 개벽에 대한 대의와 핵심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환단고기』 출간 의의와 「소도경전본훈」의 대의


    『환단고기』의 구성과 저자


    ‘『환단고기』는 믿을 수 없다’고 찔러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 명문대학을 다니는 사람에게, 또는 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에게 ‘『환단고기』 좀 본 적 있어요?’ 하고 물으면, ‘그건 안 보죠. 그건 사서의 서열에 낄 수도 없어요. 그게 무슨 역사서예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것은 조작된 책이다. 위서僞書다. 이 아무개라는 양반이 1979년도, 80년대 초에 낸 거야. 한 세대 전에 나온 책을 사서라고 할 수 있어?’ 또는 ‘1911년에 처음으로 그 책이 사서로 나온 거다’라고 하는 말들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정확하고 올바른,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진실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천년 세월에 걸쳐서 이루어진 다섯 권의 사서를 모은 책입니다. 저자가 다른 『삼성기』 상·하와, 『단군세기』, 『북부여기』 그리고 『태백일사』가 그것입니다. 이 다섯 권을 조선왕조가 패망한 다음 해인 1911년 신해년에 조선의 3대 문호의 한 분인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 선생이, 아주 충직한 애제자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를 데리고 책으로 합본하기 전에, 오랫동안 교정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왕조가 망하자 이제 이 책을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할 때라는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운초 선생이 1911년에 합본해서 처음 출간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전에 지속적으로 쓰여져 온 책을 합본해서 출간했는데, 마치 그 책이 그때 처음 기록되어서 출간된 것처럼 일부에서 잘못 말하고 있어요. 또 1979년도에 광호이해사에서 낸 중간본을, 처음 나온 것처럼 왜곡합니다. ‘그 책은 위서다’라는 ‘위서 바이러스’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 번도 『환단고기』 원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임승국林承國 선생은 ‘환은 한이다. 그러니까 『한단고기』다’ 해서 『환단고기』를 『한단고기』라 했습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라고 해야 됩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존재 위격, 그 차별성과 일체성을 환桓·단檀·한韓이라 합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다르잖아요? 인내천人乃天이 아닙니다. 그 본질은 하나지만, 저 하늘과, 만물의 생명 근원인 어머니 땅과, 모든 개별자로서 인간 한 사람은 엄연히 다릅니다. 삶이 다르고 뿌리가 다르고, 존재하는 공간이 다르고 인간관계가 다릅니다. 그건 영원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우주만유가 하나 속에서 나왔다는 그 일체성과 우주 역사의 교향곡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이 책 속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다섯 분은 어떤 분인가? 『삼성기』 상을 쓴 안함로安含老(579~640)라는 분은 불가의 기록 『해동고승전』을 보면 , 도통을 해서 돗자리 하나를 펴서 타고 날아다닌 분입니다. 이 시간 공간을 그냥 호주머니에다 넣고 다닌 분이에요.

    우리가 당나라 때 8대 신선을 보면, 말을 타고 가다가 귀찮으면 말을 종이 휴지 접듯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그런 조화세계, 도통 문화 세계, 영성세계가 동양의 도학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원형문화를 어느 정도까지 인식해야 되는가? 『환단고기』를 볼 때는 영성이라든지, 심법이라든지, 문화정신이라든지, 문화 구성요소에 대해서 최소 어느 정도를 볼 수 있어야 되겠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됩니다.

    안함로는 왕을 만나서 국운을 논한 사람입니다. 신라 27세 선덕여왕에게, 국운의 미래가 안 좋으니까 황룡사 9층탑을 세우자고 건의했습니다.

    『삼성기』 하를 지은 원동중元董仲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한 30년 추적을 했는데 대전 족보박물관을 가보고 원씨 집안 족보를 뒤져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원주原州에 있는 이분의 묘역을 찾아갔어요. 가보니까 사당도 있는데, 이분의 자손들이 할아버지가 쓴 책 여섯 권을, 멸족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무덤에다 넣었다가 불 질렀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 이 양반이 바로 원천석元天錫(1330~?)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춘추시대 진晉나라 때 사관史官으로 동호董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워낙 사리판정을 잘해서 정곡을 찔러대기 때문에 ‘동호직필董狐直筆’이라는 말이 있어요. 원천석은 사물을 아주 예리하게 판정하는 동호의 정신이 좋아서 ‘동중董仲’이라는 필명을 쓴 겁니다. 원천석은 조선왕조 태종 이방원의 스승입니다. 이방원이 왕자 시절에 이 양반한테 교육을 받았어요. 태종이 새 왕조에 봉사해 달라고 하자 이 양반이 숲속에 들어가서 숨어버렸습니다.

    『단군세기』를 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은 고려 말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을 역임했습니다. 이암의 아우 이교李嶠(?~1361)는 태종 이방원의 스승의 스승이고, 이암의 손자 이원李原(1368~1430)은 태종의 아들 세종대왕의 스승이었는데 좌의정까지 지냈어요.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1455~1528) 같은 분은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사관이었는데, 「천부경」을 도통해서 당호를 일십당이라 했습니다. 이맥은 조선왕조 때까지 살아남았던 당시의 사서史書와, 충청북도 괴산槐山에 귀양 가서 들은 내용을 다 정리해서 『태백일사』를 썼어요. ‘일사逸史’라는 것은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지금은 역사의 실체를 말할 수 없는 역사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본질은 일태극과 십무극이라는 우주 본체정신을 통관해서, 우리 9천 년 역사 틀을 바로 세우려 한 것이 『태백일사』 여덟 권에 흐르는 저자의 정신입니다.

    그러니까 『환단고기』의 저자들은 유학한 승려, 도통한 성자, 왕의 사부, 왕의 사관 등으로 당대에 뛰어난 지성들이었습니다.

    『환단고기』 사서의 독보적 가치, 특성


    제가 『환단고기』라는 사서의 근본정신을 우주론 중심으로 인간관, 신관, 역사관을 융합해서 세심하게, 심령의 경계에서 느껴보려고 정성을 쏟는데요. 『환단고기』는 인류 문화의 원형정신의 정수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민족 역사의 국통 맥을 분명히 잡아주고 있어요. 우리 역사는 대한민국에서, 대한제국, 조선왕조, 고려로 해서 남북국 시대 그다음에 고구려·백제·신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는 고주몽이 건국했고 백제는 그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내려와서 세웠습니다. 그러면 신라의 근원은 무엇인가? 신라 왕조의 뿌리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또한 『환단고기』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북과 남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원래 뿌리가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남북 분단의 역사를 뛰어넘는 진정한 통일역사관의 기초를 다지는 중대한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북부여가 있고 그 전에 단군조선이 있었습니다. 지금 형식적으로 단군조선이라는 뿌리 역사를 인정하면서 마지막 왕은 기준箕準(준왕)으로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국 연燕나라 장수 위만衛滿이 붙어있어요. 그래서 ‘위만조선’을 정통 계승 국가라 하는데,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요? 또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평양에 있던 왕검성으로 쳐들어와서 거기다 낙랑 등 식민지 군 몇 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 고구려에서 그걸 무슨 보물단지처럼, 동물원, 식물원처럼 가꿨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식민사학의 족쇄를 깨뜨리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이 쓴 옛 기록, 고서,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덕일李德一 소장님이 쓰신 말씀에서 아주 멋있는 구절이 있잖아요. 『환단고기』 위서론을 주장한 경희대 조 교수를 언급하면서 ‘『환단고기』를 위서로 그냥 단칼에 베는 이유가 뭐냐? 그건 주류 사학자들이 전통으로 연구해 온 역사학의 내용과 어긋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주류 사학에서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통적인 방식’이 바로 식민사학입니다.

    그들은 지구촌 인류의 문화역사의 원형정신을 열어준 환국과 배달과 조선, 이 삼성조 시대를 믿지 못합니다. 위서 바이러스 또는 식민사학에 세뇌를 받아서, 역사유전자가 파괴되어서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역사가 지속될 수 있느냐’ 하고 환국·배달·조선의 일곱 분 환인천제, 열여덟 분 환웅천황, 마흔아홉 분 단군의 역사, 40년 부족한 7천 년 역사를 송두리째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윤내현尹乃鉉 교수가 고발당해서 수사를 받는데 그 앞에 어떤 노학자, 식민사학자가 와서 ‘야, 역사가 오래만 되면 좋으냐?’ 하고 빈정거렸다고 합니다. 그분이 쓴 『우리 고대사 - 상상에서 현실로』를 보면 자신이 정보부 끌려갔을 때, ‘저놈이 중국 제국주의 역사를 끌어다가 우리 역사라 그런다. 저놈 혼 좀 내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덕일 소장이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했는데, 최근 법원에서 1년 형을 때렸어요. ‘임나일본부는 원래 없는 건데 그걸 강변했다’고 말입니다. 1심에서 학문의 자유로 인정해서 무죄판정이 됐는데, 2심에서 뒤집어져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때렸다나요?

    우리는 때로는 분노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누구를 미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스스로 이 역사의 진실을 좀 더 문화론적, 역사론적 시각에서, 지구촌 보편문화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현장을 열심히 다니고 문화원전을 관통해야 합니다. 신명의 경계에서 우리 역사의 진실과 잘못된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소전거사素佺居士라는 분이 존재했기에 오늘날 『환단고기』를 만나게 됐고 9천 년 역사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암李嵒과 이명李茗과 범장范樟 이분들이 결의동맹을 해서 ‘우리 역사를 반드시 되찾자. 이것을 후세에 전해 주자’고 했어요. 소전거사가 천보산天寶山에 굴을 파고 내려오던 비전祕典, 여러 가지 사서를 숨겨놓았다가 이 세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행촌 이암은 나중에 고구려 여섯 왕을 모시며 공민왕 때는 수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에 올랐고 학문이 아주 넓고 깊었어요.

    행촌杏村 이암李嵒의 5세손 이맥李陌과, 이기李沂, 이유립李裕岦(1907~1986) 선생은 고성이씨固城李氏입니다. 제가 늘 가슴속으로 ‘내가 나중에 성공을 하면 큰 궁궐을 지어서 소전거사를 임금님처럼 모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고성이씨 이분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우리 한민족에게 역사광복의 꿈을 성취시켜 주는 하나님 같은 사람이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감사를 보냅니다.

    『환단고기』는 백 년 전에, 천여 년 세월 동안 기록된 다섯 권 사서를 처음 합본하여 출간한 것이지, 그때 처음 책이 기록되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잘못된 이야기 들으시면 아주 똑 부러지게 웃어가면서 한마디로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삼신오제본기」의 핵심 : 삼신오제


    『태백일사』를 보면 첫째로 나오는 것이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입니다. 이암의 현손玄孫인 일십당 이맥은 왕조의 역사 찬수관이니까 적당히 역사를 쓴 분이 아닙니다. 「삼신오제본기」를 첫 권에다 둔 편집 의도는, 이것을 이해해야만 우리 역사문화의 틀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문화시대, 그 삼황오제 사상의 원형이 바로 삼신오제三神五帝입니다. 우리가 삼황을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이라든지 태호복희太皞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중국 한족의 시조 황제헌원黃帝軒轅 이렇게도 말하거든요. 그리고 오제의 끝에 요순시대가 나옵니다.

    원래 우주의 시공 세계, 우주 시간 공간의 바탕은 무엇인가? 바로 삼신三神입니다. 우주의 중심에는 신성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거룩한 신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을 이야기할 때 그냥 신이라 하지 않고 꼭 삼신이라고 합니다. 원형 삼신문화가 다 파괴되었지만 ‘삼신할매, 삼신할머니’라는 말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타내어 주는 조상신, 자손 줄을 열어주는 영적 존재도 삼신입니다.

    왜 신은 삼신인가? 여기에 역사관의 원형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해서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한순간도 쉬지 않고 확장되고 있는가? 여기에 자연 정신의 근본이 다 들어있어요.

    그리고 이 삼신이 동서남북 중앙 다섯 방위로, 시간 공간의 세계로 열렸을 때, 거기에는 각각의 시간 공간의 주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제五帝입니다. 동방 봄이 있으면 여기는 청제靑帝가 있어요. 이 동방의 천지 기운은 목木이고, 남방의 천지 기운, 여름철 기운은 화火인데, 이것은 성령聖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방위에 다섯 성령입니다.

    기독교의 성령문화가 있는데, 아버지의 영과 아들의 영을 성령이라 그래요. 그러나 「계시록」을 보면 그것만이 성령이 아닙니다. 로마에 전도하러 갔다가 거기서 박해를 받아 기름 가마에 들어갔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나서 펫모스 섬에 귀양 간 사도 요한은 백 살 넘게 살면서 기도만 했습니다. 그 요한이 천상에 올라가 궁전에 들어가서 『환단고기』에 있는 삼신상제님을 뵈었습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 있는 ‘오직 성통공완자性通功完者라야 상제님을 조회朝會할 수가 있다’고 한 그 상제님을 가서 뵌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의 보좌 앞에 일곱 성령이 있었어요. 그것을 ‘하나님의 일곱 성령the seven spirits of God’이라 합니다.

    저는 일곱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사람을 못 봤어요. 한국의 목사·신부님도 그래요. 그런데 어떤 신학자가 네덜란드인가 어디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신학교 학장님이 은퇴할 때 발표한 논문을 보니까, ‘일곱 성령님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했어요. 그걸 보고 참으로 감동도 받고 충격도 받았어요. 성령은 일곱 성령입니다. 이것은 『환단고기』의 우주 원형문화에만 있어요.

    ‘9천 년 역사, 환단의 본래의 우주 심법을 전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이맥의 당호 일십당一十堂입니다. 우주와 문명, 또 자연과 역사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 원십자라는 겁니다. 삼신오제, 그리고 우주의 정 동서남북 이것이 우주 원십자가인데요. 십무극十無極과 그 원 중심, 일점 일태극一太極, 바로 이 우주의 본체론적인 시간 공간의 본성을 근본으로 할 때 우리 역사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

    신라 10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표훈表訓이 한 말이 『태백일사』 첫권 「삼신오제본기」의 첫 문장입니다.

    표훈은 어떤 분이냐? 신라의 경덕왕이 이 양반에게 ‘내가 아들이 없는데 자네 천상의 상제님한테도 왔다 갔다 한다고 하니까, 이웃집 드나들듯 한다고 하니까 천상에 올라가서 상제님께, 나에게 아들을 하나 태워달라고 해라’라고 했어요. ‘알겠습니다’ 하고 상제님을 천상 궁전에 가서 뵈옵는데, ‘아들은 안 된다고 해라. 만약 아들을 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해라’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좋습니다라고 아뢰어라’ 해서, 이후 혜공왕이 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표훈은 그런 영력을 가진 분입니다. 표훈表訓이란 ‘하늘의 말씀을 내가 대변해서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이분도 중국에 유학하고, 왕실에서 외교문서를 관장했는데, 유학과 불도를 아주 크게 통한 분입니다. 수명도 길어서 한 백 살 정도를 살았어요.

    ‘표훈천사表訓天詞에 운云 대시大始에 상하사방上下四方이 증미견암흑曾未見暗黑하고’, 대시大始라는 건 우주가 처음 열릴 때, 우주의 존재가 처음 시작될 때입니다. 상하사방 우주의 전 시간 공간에는 아직 어둠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왕금래古徃今來에 지일광명의只一光明矣러라.’ 이 우주라는 것은 영원히 한 광명뿐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다음에 ‘자상계自上界로’, 저 우주의 신도세계, 신명세계로부터 ‘각유삼신却有三神’, 문득 삼신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삼신이라는 것은 자연신이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모든 존재의 근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현실역사에서 지금의 우주 사회, 코스믹 소사이어티라는 구조에서 볼 때는 결국 우주의 문제, 신의 문제, 역사의 문제는 ‘즉일상제卽一上帝’, 우주 역사의 총 주관자 일상제一上帝, 한 분 상제님의 문제입니다. ‘주체즉일신主体則爲一神’, 우주 조화의 궁극의 체 자리는, 주체는 한 분 신이요, ‘비각유신야非各有神也’, 신이 세 분이 각각 있는 게 아닙니다.

    ‘작용즉삼신야作用則三神也’, 그 우주의 조화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은 삼수 원리로 된다, 신은 세 개의 조화의 손길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주 삼신의 성령을 받는 신성한 땅, 소도


    『환단고기』는 우주 원형문화 역사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명을 열어나갈 때 ‘자연 따로 문명 따로’가 아니라 이 우주 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을 살려 했던 황금시절인 환국·배달·조선의 문화 정신, 그것이 전부 소도蘇塗로 귀일되는데요. 이맥이 자기가 모신 주군, 제왕의 역사를 편찬하는 찬수관으로서 기록한 이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속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는가?

    소도경전본훈, ‘소도경전의 근본 가르침’은 환국과 배달과 조선의 역사문화 정신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인류 문화역사 창조의 심장부는 무엇인가? 이집트 문화가 됐든, 기독교 구신약의 근원이 되는 중동문화, 그리스 로마 문화의 원형인 이라크 남부의 수메르 문명이 됐든, 인도 문명이 됐든, 중국이나 일본 신사문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가 됐든지, 모든 인류문화를 창조한 그 중심적 힘은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가 두 글자로 ‘소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화는 소도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인류 역사도, 인류 태고의 왕도王道 문화도 소도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소도를 다 잃어버려서 황폐화되어 가시와 엉겅퀴 잡초만 무성한데, 오늘 이 우주 첨단과학문명 시대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소도문화를 어디에서 복원할 것인가? 우리들의 마음에, 심령 속에 소도문화가 살아 있습니다.

    이 우주 생명의 바다 속에서 살아있는 그 신성, 그것을 받아내리는 어떤 신성한 땅이 있었습니다. 서교로 말하면 지극히 성스러운 공간, 지성소至聖所죠. 지금은 그것이 법당도 되고, 사원도 되고, 도량도 되지만, 천신에게 기도 올리고 천제를 올린 땅제천소도祭天蘇塗라 합니다. ‘제천소도 문화’라는 언어를 쓰고 있어요.

    우리가 ‘기도를 한다, 인간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수행을 한다, 참선을 한다’ 할 때, 전통적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반드시 좌향坐向을 봅니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해서 어떤 산이나 물의 살기를 떨어내는, 공부가 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잖아요. 최수운 대신사가 첫 번째로 기도할 때 공부가 성사되지 않았고, 두 번째 기도처에서도 공부가 안 되었어요. 천성산千聖山 굴 있는 데 올라가다 보면, 지리를 보는 사람들은, 여기는 공부가 될 수 있는 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공부가 되다가 깨지고 만다는 겁니다. 수운 대신사는 자기 친족이 죽고서 거기서 내려왔어요.

    그래서 그 지역에서, 문화의 중심지 수도에서 천문지리적으로 볼 때 산수의 틀이 천연적으로 가장 잘 생긴 곳을 택해서 소도로 삼습니다. 소도는 성스러운 땅, 천지의 아주 성스러운 기운이 솟구치고 그런 기운이 소생하는 터입니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가 있습니다.

    이 소도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이 있어서, 거기서 신교 원형문화의 인간관과 신명관, 수행관, 우주관 교육을 했습니다. 경扃이라는 글자는 공경한다는 경敬 자와 통합니다. 그러니까 ‘공경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집’이라는 뜻이 있고, ‘밝다’는 뜻도 있어요. 아심경경我心扃扃 하면, 내 마음은 밝고 밝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밝은 마음, 본래의 우주광명의 밝은 마음을 열어주는 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소도 제천행사를 보고 찬가를 지은 신선 발귀리


    그러면 신선 발귀리發貴理는 어떤 분인가? 이분은 소도제천 행사, 소도의 천제를 보면서 천지에서 우주광명의 기운이 막 흘러내려 오는 걸 온몸으로 체득하면서 찬가를 불렀는데요. 자, 다 함께 이 서두를 한번 볼까요?

    「소도경전본훈」 서두를 보면, ‘신시지세神市之世에 유신선발귀리有仙人發貴理가 여대호與大皞로 동문수학同門受學하고’라고 했어요.

    우리들이 지금 함께 한마음이 되어서 체험하려고 하는 소도문화의 현장에, 신선 발귀리가 있었는데 이 양반은 4,300년 전 단군의 아사달 시대가 아니라, 그보다도 1,100년 앞선 약 5,400년 전 ‘신시의 세상’에 살았습니다. 발귀리는 우리 대한 사람의 조국의 정신, 문화정신을 상징하는 태극기 팔괘를 그리신 #복희씨와 동문수학#, 한 스승 밑에서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배달국의 5세 환웅의 열두째 왕자님이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인데, 그 양반하고 함께 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배달국 황실에서 친구로 거의 같이 큰 겁니다.

    ‘이도기통而道旣通에 유관호방저풍산지간遊觀乎方渚風山之間하야 파득성화頗得聲華라 급관아사달제천及觀阿斯達祭天하고 예필이잉작송禮畢而仍作頌이라.’

    발귀리는 환국과 배달의 신교문화, 우주광명 문화, 역사문화 정신을 아주 깊이 있게 온몸으로 체득한 분이죠. 그러고 나서 ‘유관호遊觀乎’, 어디에서 놀면서 세상을 둘러봤는냐? ‘방저풍산方渚風山’, 방저와 풍산 사이에서 세상을 쭉 둘러보면서 ‘급관아사달제천及觀阿斯達祭天’, 아사달에 와서 제천행사를 보고 나서, 여기서 ‘예필이잉작송禮畢而仍作頌’, 천제가 끝나고 나서 송가를 불렀다고 되어 있어요.

    이 ‘백두산에 4대 신선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 이유립 선생이 정의를 하신 내용이기도 한데요, 발귀리, 자부선사紫府仙師, 대련大連, 을보륵乙普勒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자부선사는 발귀리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이 자부는 누구냐? 바로 동서방 문화의 신선문화의 원조元祖입니다. 이 자부의 동방 제자가 바로 배달국의 14세 자오지慈烏支 천황 즉 치우 천황입니다. 바로 이 배달국에서 삼사三師 가운데 운사雲師로서 정부 경영진에 참여했던 서방의 헌원軒轅이, 나중에 자부선사가 계시던 삼청궁三淸宮에 와서 도를 받아서 아주 공부가 크게 됐는가 봐요. 심법이 대단했는가 봅니다. 그래서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받아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아, 나도 정통후계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교만 때문에 그랬는지, 하나의 파당 때문에 그랬는지 하여간 그 후 10년 탁록涿鹿 대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전쟁에 대해서는 중국의 『관자管子』나 사마천의 『사기史記』 여기저기에 부분적으로 나와 있고, 중국 현지에 가보면 치우 천황을 모신 능이라든지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어요.

    이렇게 5,400년 전에 발귀리가 계셨고 그다음에 자부선사가 계셨고, 그다음에 대련大連과 소련少連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3년 상을 봐 왔는데, 조선시대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소 옆에 천막을 치고 시묘살이를 하잖아요. 이 전통이 언제부터냐? 2세 부루夫婁 단군 때 대련 소련 형제가 거상居喪을 잘 했는데 그 지극한 효심이 중국 저 서방까지 전부 알려져서 공자가 그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다음 을보륵乙普勒은 3세 단군 때 삼랑三郎이었으니까 삼신을 모시는 예법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아주 정통한 분입니다. 당시 가륵嘉勒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문자를 만들어 보라고 해서, 38로 구성된 한글의 원형 가림토加臨土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을보륵이 신神과 왕王과 종倧이란 무엇이며 전도佺道란 무엇인지 정의를 한 내용도 참 기가 막히죠. 그래서 이 책은 제왕학帝王學의 법전입니다.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의 정의에서, 우리가 참으로 멋진 과거 원형문화 정치 철학을 맛볼 수 있는 데 대해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소도경전의 근본 가르침과 기본 맥


    우리가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소도경전으로 환국의 「천부경天符經」이 있고, 그다음에 배달의 커발환 환웅천황이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내려주셨어요. 「삼일신고」의 내용은 이 우주의 공간의 본성이 무엇이며, 신과 인간은 무엇이며, 우주를 통치하는 일상제, 천상 궁전에 계신 상제님의 세계는 어떤 세계이며, 어떤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서 영원한 삶을 누리느냐, 그리고 인간은 수행을 해야 되는데 우리들의 마음의 구성원리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효元曉나 의상義湘, 이런 분도 불가의 참선법으로 도통을 한 게 아니고 바로 「삼일신고」에 나오는 다섯째 인물人物 장章, 본래의 우주의 참마음의 구성원리를 가지고 공부를 해서 통했습니다. 제가 한 20년 전에 KBS의 어떤 특집프로에서 바로 그 한마디를 본 기억이 납니다.

    단군조선 때 오면 「참전경參佺經」과 「염표문念標文」이 있습니다. 「참전경」은 고구려 을파소乙巴素 때 360조로 정비됐습니다. 그리고 「염표문」에는 9천 년 역사문화의 문화정신, 역사정신 심법 전수가 마지막 열여섯 자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소도경전본훈」 강독


    신선 발귀리의 찬가


    그러면 원본을 한번 볼까요? 우선 PPT를 보면서 아름다운 성우의 목소리로 한번 들어보죠.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니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유만기중有萬其衆이니라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신선 발귀리가 소도 제천행사를 딱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이렇게 찬양하는 시로 지어서 노래로 불렀어요.
    이분의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보고 한번 따라가 보면, 우주관과 인간론, 인간관의 원형,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아주 큰 진리의 깨달음의 틀을 아주 쉽게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구절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대일大一’, 말할 수 없이 큰 하나! 이 대일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의 근원입니다. 그걸 ‘한없이 크고 하나다’라고 하고, 이것을 다시 찬양합니다. 그 대일! 우주만유, 존재하는 것 즉 존재자의 그 존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것, 우주 만유 생명의 어떤 근원 그 지극함이여,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걸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한다. 양良은 양지良知, 양덕良德 할 때 양인데, ‘아름답다, 좋다, 선하다’ 등 좋은 뜻이 참 많아요.

    『환단고기』 첫 페이지, 도통한 승려 안함로가 쓴 『삼성기』 를 보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고 했어요. 우리가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서 나라를 열었는데, 그게 환국이라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우주 광명 인간이 될 때 환국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서 둘째 줄에 ‘승유지기乘遊至氣’, 이 신은 ‘지기至氣’를 타고 노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신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가? 지극한 기운, 지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시 근대사의 출발점 동학에서 위대한 선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가을 우주의 이 여덟 글자에 나타납니다. 선천 팔자 아무리 좋게 타고 났어도 이번 개벽으로 다 무너진다는 겁니다. 후천 팔자, 지기금지원위대강, 지기사상至氣思想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도 중국 중심의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때문에, 우주광명 원형문화의 우주 생명사상이 제대로 해석이 안 되고 있어요.

    발귀리의 송가를 보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그랬어요. ‘무와 유가 섞여 있다,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다, 일체다, 무와 유는 둘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형상, 육신이 있고, 이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잖아요? 공간, 허공은 있지만 이것은 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고, 사물이 이동할 수가 있어요. 이 공간의 실상, 무와 유의 문제인데, 이 무와 유는 일체입니다.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그래서 우리가 무, 유를 하나의 현상세계로 보고 이 무, 유가 존재하는 근거를 허로 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 허조이묘虛粗而妙, 허, 텅 빔. 거기서 나타난 조粗. 조라는 건 조박糟粕 한 것인데, 싹을 깔 때 보면 거친 것, 성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우주의 별자리 세계도 조박한 겁니다.

    증산도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빛이 나는 데로 가자. 빛나는 데로 가자.” 하시고, 상제님이 다시 “눈을 떠라.” 하시니까 구릿골에 있던 집이 조화로 집째 변산 꼭대기에 와 있는 거예요. 거기 있던 여러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고서 하늘의 별을 보는데 “저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이 자갈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저 무수한 은하계가 우리 인간 중심으로 볼 때는 ‘우주 인간’, 자갈과 같고 모래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텅 빈 우주의 공간, 이 허의 실체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바 있지만 ‘모든 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으로 비어 있는 이 ‘텅 빔’ 속에서, 조화의 근원 바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여기서 조粗라는 것은 우주의 무수한 은하계, 이 지구 만물의 생명, 바다의 물고기, 아름다운 푸른 산하에 있는 꽃, 식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허조이묘라, 묘妙라는 건 오묘한 것인데, 이 우주가 나타나 있는 자체가 너무도 오묘하잖아요.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법칙성을 얘기합니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여기서 체용론體用論이 나오고 있어요. 체라는 것은 본체, 용이라는 것은 작용 또는 현상으로도 말합니다. 어떤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실세계로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주의 문제에서 크게 보면, 우주의 어떤 근원이 되는 본체가 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우주가 벌여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본체와 현상, 또는 사물의 어떤 근원세계와 현상세계, 사물의 양극, 근원과 현실, 본체와 작용은 마치 우리 몸으로 보면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습니다. 이 몸통이 있고 여기서 몸짓이 나오잖아요. 수많은 몸짓이 나오는데 그 몸짓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삼은 일을 본체로 삼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일은 삼을 작용으로 삼습니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혼묘일환, 이런 무와 유 그것의 근원이 되는 우주의 텅 빈 허의 조화세계, 무궁한 이 조화의 텅 빈 허의 세계, 거기에서 나오는 조박한 우주의 현상계 허조虛粗. 그러니까 무와 유, 허와 조가 일환一環, 하나로써 일체가 되어 어우러져서 순환합니다. 환環이라는 것은 순환,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체와 용이라는 것은, 구분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갈라지는 게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최근에 보면 서양은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앙하는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체용무기, 체와 용은 둘이 아니고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궁극의 유와 무가 생성되고, 우주 만유가 태어나는 지극히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거기는 누가 있단 말이냐?

    후반으로 들어가서,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허大虛, 장대하게 거대하게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 텅 빔 속에 광명이 열려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 신의 참모습이요.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것은 소도제천 행사를 직접 보면서 대신선이 된 깨달음의 도통 경계를 고백한 거예요. 내가 어떻게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느냐? 어떻게 해야 불멸의 생명, 대신선이 될 수 있는가? 우주 조화의 세계, 그 바다를 걸어다닐 수가 있는가?

    지금 여기서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대허유광大虛有光 시신지상是神之像’, 우리가 이걸 경구로 해석하면 ‘네 마음을 크게 비워라. 그러면 여기에 광명이 열리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신성의 모습이다’ 이겁니다. ‘이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대광명이 네 몸과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 거대한 기운이 영원히 살아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조화다, 신의 손길이다, 신의 집이다, 신의 의존처다, 신의 생명 자체다라는 겁니다! 이 텅 빈 대우주의 허공 그 깊은 속에 누가 있느냐? 바로 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은 광명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유·불·선·기독교의 영성문화라든지 신관이라든지 성령관에서, 또는 불법의 일심법이라든지 참선문화를 보면 아주 대단한 가르침들이 있거든요. 주역의 건곤乾坤이라든지 십익十翼에서 말하는 도교 또는 불가적인 심법, 사유구조를 뜯어다가 해석한 여러 구절도 있습니다. 그 모든 가르침이 여기 보면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다’ 이겁니다. 이 자리는 참된 영원한 생명이 발원하는 바요, 일어나는 곳입니다. 만법萬法이 여기서 생한다는 것입니다.

    만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법사상에 보면 우주 만유, 살아있는 대우주 자체도 법이고, 그것을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이라든지 모든 성자들의 말씀, 삶 그 자체도 법입니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법입니다. 깨달음의 법은 어떻게 우주 생명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주 현상계의 법칙, 그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삶, 삶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의 길, 도통법, 그 모든 법이 시생是生이다! 이것은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예요. 진명소원眞命所源 만법시생萬法是生, 영원한 생명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바요, 그리고 모든 동서고금의 법이 여기서 생합니다.

    그래서 ‘일월지자日月之子오’, 현실세계에서 생명의 근원은 해와 달입니다. 태양이 한순간 멈추면 지구 생명계는 한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소멸됩니다. 바로 이 일월, 생명 현상의 1차 근원인 일월, 일월광명, 일월생명의 씨다, 근원이란 말입니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여기서 신의 문제가 나오는데, 천신天神은 대표적으로 「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하는 대우주의 통치자, 우주정치의 주관자 삼신상제, 일상제를 말합니다. 여기서 천신은 우리가 『환단고기』 또는 우리 동방문화의 정서로 보면 천지신명, 신의 마음자리입니다. 신명의 참마음입니다. 충衷이라는 것은 속마음, 참마음, 우주와 하나 된 일심 자리입니다.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와 삼신


    여기서 전체적으로 한번 대략 묶으면서 끝내야 될 것 같아요. 여기 보면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이조이선, 비춰 주는데 뭘 비춰 주느냐? 이 우주의 조화 바다를 양기良氣라 했고, 그것은 텅 빔의 세계이고, 거기에서 바로 유무가, 우주 현상계가 태어나는데 우리가 텅 빈 그 대허한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서 우주 광명이 열립니다. 그게 바로 신의 존재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가리켜 ‘양기’ 또는 ‘대기大氣’라는 말을 쓰고 있죠. 다른 말로 허조이묘의 ‘허虛’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또는 대허유광大虛有光이라 할 때 ‘대허大虛’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대일기극大一其極’ 할 때 이 우주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 살아있는 것, 존재자, 이 존재자들의 궁극의 근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의 존재 근거, 그 존재 자체, 그것을 ‘대일’, ‘대허’, ‘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우주 생명의 바다 ‘양기’, ‘대기’로도 말하죠. 그런데 그 속에 신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말로 재미있어요. 이게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처음 듣는 깨달음의 담론입니다.

    초월자 신이 이 우주 현상계, 시공간계를 벗어난 초월의 세계에 홀로 있는 게 아닙니다. 서교에는 전통적으로 그 신에게는 외아들이 있어요. 그러고서 그 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다 피조물입니다. 하늘도 땅도, 모든 인간도 피조물입니다. 석가불도 피조물, 공자도 피조물, 모든 동물, 생물은 피조물이다 이겁니다. 그 피조물 가운데서 성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원래 그런 것이 없는데 다 만든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삼일기체三一其軆 일삼기용一三其用’, 삼은 일을 체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 만유라는 것은 반드시 수의 이치로 돼 있어요. 서양 철학에 근원적 영감, 깨달음을 준 ‘서양 문명의 아버지’라는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어머니 아버지가 원래 아폴로 신전에 가서 기도를 해서 낳았다고 합니다. 아폴로 신이 현생을 해서 피타고라스로 왔다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이 그 쓴 글을 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어요.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1861~1947)는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서양문명에 지속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내려준 사람은 피타고라스라 했습니다. 이 피타고라스는 3을 우주의 생성의 중심수라 하고,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구성원리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태호복희씨는 수천 년 내려오는 「천부경」을 완벽하게 도통하고, 태극기 팔괘를 제작한 분인데, 이분이 이 우주의 수가 동서남북 중앙 오방위로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북방에 1, 남방에 2, 동방에 3, 서방에 4, 중앙에 5. 그 5가 근원이 되어서 동서남북의 성수成數가 열리잖아요. 6, 7, 8, 9, 10.

    우리가 모든 생명의 본질을 알려면, 중앙에 있는 5, 10 토를 알아야 되는데 그 5, 10 토의 토성土性을 항상 가슴에 안고 진리를 들여다보고, 자연을 보고, 중력을 해석할 때 우주는 왜 이렇게 조화로운 세계인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의 대서사시는, 이 우주의 본성이 허, 텅 빔이고, 그 속에 무한의 생명이 출렁이고 있는데, 그것과 하나가 되려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그냥 적당히 비워서는 안 되고, 90%, 95%, 99%도 안 되고, 완전히 100%를 비워서, 완전한 허의 경계, 자연과 진정한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이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미국의 철학자 캔 윌버Ken Wilber(1949~ )가 최근에 오랫동안 수행을 했는지, 일본의 어느 대선사에게 ‘불교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에 또는 일본에 도통한 사람이 얼마냐?’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중국 불교사에서 깨달은 사람은 천만 명에 한 명 나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일본은 얼마냐?’ 하니까 ‘Not more than a dozen, 한 여남은 명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겁니다. 궁극의 깨달음을 열기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사가 개벽으로 가는데요. ‘생각을 바꿔야 된다. 방법을 바꿔야 된다. 근원적인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된다’ 이게 동학에서부터 제기되는 ‘다시 개벽 아닐런가’입니다. 이런 영성문화, 수행의 방식을 다 바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우주에는,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 속에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은 삼신입니다. 신이, 궁극의 존재가 이 대우주 생명의 바다, 기의 바다 그 기운을 가지고서 우주 만유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태국을 답사하고 방콕 공항에 가서 보니,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든지 갑자기 가다가 서요. 서서 뭘 보느냐? 거기에 배 모양으로 된 아주 멋있는 신비로운 조각이 있는데, 좌우에 천상의 신인들이 우주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운데에서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가루다(새의 신)를 타고 ‘우주의 우유 바다’를 막 휘젓고 있어요. 그게 우주 대폭발과 같은 겁니다.

    아주 더울 때, 제가 그 유명한 힌두교 사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와트에 간 적이 있어요. 앙코르와트를 가보면 도깨비, 원형 도깨비가 그렇게 많아요. 앙코르와트는 폐허가 되어서 아무도 안 가는데, 거기를 올라가니까 저 산꼭대기를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를 가니까 옛 신전이 있는데 방 위에 입구에 도깨비가 다 있는 겁니다. 힌두교 문화의 근원은 이 우주 조화의 바다 중심에서 우주를 빚어내는 자연의 인격, 자연의 조화신, 도깨비 신입니다. 티베트에도 도깨비 신의 원형이 있어요. 일본에 가보면 박물관, 사찰 같은 데 보면 도깨비 원형이 있는 아주 오래된 신사, 사찰이 있습니다.

    힌두교의 문화의 원형, 그 주제가 도깨비인데 바로 그것이 태고의 원형문화입니다. 거기 도깨비는 밑에 뭐가 있냐 하면, 대부분 일본 같은 데도 그대로 원형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 집안, 신당, 사당, 소도문화의 사신邪神을 멀리 내쫓는 수호신이 있어요. 수놈은 뿔 달린 해태인데 그것이 중동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고 세게 여러 곳에 있어요. 거기 박물관에 가보면 해태를 모르니까 라이온이라 하는데, 종자가 전혀 달라서 라이온이 아니거든요.

    만물의 생명의 본성 일태극수와 암흑물질


    우리가 삼신이라 할 때, 이 신은 그 속성 자체가 조교치造敎治 삼신입니다. 조화·교화·치화, 만물을 짓고, 깨달음을 열어주면서 기르고, 그리고 다스립니다. 조교치 삼신, 이 삼신이 우주 현상계에 자기 존재를 현현selfmanifestation하면 그것이 곧 삼극三極입니다. 「천부경」에서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을 말하고 있어요. 신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일자一者가, 대일大一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 무엇인가? 바로 삼극, 세 가지 존재의 지극함,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일자는 우주 만유의 모든 개별 사물에 보편적으로 다 들어있습니다. 일자에 대해서는 옛날 원효라든지 우리 전통 철학자, 서양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자성어로 집일함삼執一含三, 한마디로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어 있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쉬운 게 아니에요. 하나를 잡을 때 뭘 잡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내가 눈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우주에 충만해 있는 바로 그 에너지죠. 지금 현대과학에서, 우리가 아는 물질세계는 4%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양성자, 중성자, 소립자, 또 충격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입자 몇 개로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4%만 인식, 이해하고, 그 지식으로 이런 문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외계 우주는 자꾸 확장해서 우주 공간이 자꾸 커져요. 무가 커지는 것인데, 무가 커지면서 그 무의 에너지 즉 공간의 에너지도 자꾸 커집니다. 그것이 우주를 밖으로 밀어내는 암흑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 안에서 탄생한 만물은 전부 자기중심을 가지고 각자 은하는 은하대로, 블랙홀은 블랙홀대로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지구대로 9대 행성과 함께 태양을 안고 돌잖아요.

    그것은 중력의 힘입니다. 이 중력이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네 가지의 힘 가운데서 가장 먼저 생성됐고, 이 중력의 신비가 우주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중력이 무엇인가? 현대과학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이 중력의 본질이 뭔지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 현상계를, 계란 두 개를 뉘어 놓은 모습으로 그립니다. 왼쪽에 그린 것은 우주가 생기기 전인데, 그것은 수로 나타내면 영(0)입니다. 그것을 또 ‘무’다, ‘무극’이다 그러는데 여기서 우주가 일어났어요. 힌두교 같은 종교에서는, 우주가 잠에서 막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빅뱅이 되어서, 확 터져서 현상 우주가 생겼어요. 이렇게 유와 무가 있고, 조박한 우주 은하계가 거의 무한의 공간대를 채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암흑물질의 바다에 만물이, 우주 은하계가 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주 만물은 조화롭게 각자의 포지션 좌표를 유지하면서, 서로 끌어당기면서, 서로 회전하면서 조화로운 우주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흑물질 또는 만물의 생명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우주의 본체인 일태극수一太極水입니다.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이라 할 때 우주 만유는 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에서 비롯됐습니다. 암흑물질은 일태극수의 범주에 있는 것인데, 이 물이라는 것은 진공眞空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우리가 태극을 ‘공과 물이다’ 이렇게 정의하거든요. 십이지지로 말할 때는 술戌의 자리라고 하는데, 술오공戌五空, 물이면서 그 자체는 오행으로 말할 때 진공 토土입니다. 그래서 만유는 일태극수 물에서 태어나지만, 그 생명의 본성 자체는 토입니다.

    그래서 암흑물질은 우주의 작은 입자가 뭉친 것으로 봅니다. 궁극으로는 요새 끈이론, 막이론으로 말하는데, 작은 끈들이 덩어리로 뭉치게 해 주는 것이 암흑물질이라는 겁니다. 암흑물질이 있어서 이런 입자들을 뭉칠 수 있게 해서 중력을 가진, 무게와 힘을 가진 하나의 개별적인 물질 덩어리 생명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암흑물질이 바로 태극수의 본성, 토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라는 것을 우리가 아직 다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는 바로 이 우주의 무궁한 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동학 『도전』을 보면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도 자기의 신명이 있습니다. 그 신명이 우리 몸을 영원히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부모, 조상이 천상의 조상신계로 돌아가고, 우리가 그 가신 날을 기리고 제를 올립니다.

    인간의 위격과 역할에 대한 최종 정의


    이제 결론을 보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이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에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삼신이 무궁한 광명을 비춰주고 생명선을 열어줍니다. 그 기운을 받을 때 ‘원각이능圓覺而能’, 원각이 일어납니다. 대원각大圓覺이 일어나서 능한 인간이 됩니다. 옛날 안함로 같은 분은 돗자리를 타고 천지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런 경계에서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삼성기』를 썼어요.

    그리고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이런 기운이 크게 내려서, ‘유만기중有萬其衆’, 온 천하의 천하창생이 번성합니다.

    그러고서 여기서 매듭으로 들어가는데,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원圓이라는 것은 하늘을 상징하니까 삼신이, 신이 우주 현상세계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게 우리 문화의 원형정신이에요. 신이 따로 있고, 현상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사고는 너무도 잘못된 겁니다. 본체 세계의 영혼의 생명계는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처럼, 영원한 것은 저 천상의 이데아로 있고 현실세계는 다 그림자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겁니다. 그런 이원론의 자궁에 구약의 정신이 들어가서,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 정신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 근대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우주론에서 크게 정리되고 극복되고 있어요.

    삼신은 삼극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하늘과 땅, 인간이고, 그것을 수학 언어로 천일·지일·태일입니다. 하늘의 본성은 원만구족圓滿具足이니까 모든 걸 수용합니다. 진리원상眞理原象 자체, 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원圓이라는 것은, 일이고 무극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근본정신은 무극입니다.

    그다음에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어머니 땅의 정신은 방정한데, 모든 생명, 인간이 태어나는 생명의 바탕, 어머니 지구 생명이라는 것은 음입니다. 음의 근원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반극反極이라 했어요. 반反이라는 것은 하늘과 정반대된다는 뜻도 있지만 돌아갈 반反 자로, 하늘의 근원 정신으로 돌아가는, 하늘의 근원 정신과 영원히 일체, 하나 됨의 경계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이런 두 가지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여기서 결론은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각角은 정삼각형을 말합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영원히, 탄생하기 이전이나 탄생되는 순간이나 성장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나, 천일·지일·태일입니다. 우주 궁극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일신 즉 삼신이 현상화되어 나타나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문화원형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할 때 태극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미세의 양자, 소립자 세계를 들어가면, 그 바탕은 진공인데 거기서 쌍입자雙粒子가 태어나서 쌍생쌍멸雙生雙滅한다고 합니다. 매 순간 수억 조, 수수 억조의 입자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이 대우주의 생명의 바탕 자체가 진공이고, 여기서 양자 요동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초프라Deepak Chopra(1946~ ) 같은 사람은 ‘이 우주의 진공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허다. 여기에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무궁한 생명력이 있다’고 했어요. 음양의 생명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동양에서는 태극이라 하고, 그 태극을 정의할 때 물물物物이 태극이라 합니다. 소립자, 원자, 이 우주 은하계에 있는 하나의 사물 그 각자가 다 태극입니다. 그것을 거느린 우주정신 자체가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생명이 요동을 칩니다.

    일본 동경에 가면 미래과학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앞으로 나올 과학의 여러 가지 진귀한 것도 보여주는데, 위로 올라가면 극장이 있습니다. 누워서 보는 거대 화면으로 보는 30분짜리 영화가 있어요. 이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우주의 살아있는 모습인데, 극미의 입자 또는 끈이 막 요동을 치는 겁니다.

    그 마지막을 보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끈이 뭉쳐서 만물이 태어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자, 갑시다. 새로운 소식이 들립니다. 그것은 차원을 넘어야죠’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가 차원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물리적 공간계, 시공 일체의 4차원 공간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행을 해야 됩니다.

    인류 역사문화가 탄생하는 문화 창조의 자궁, 소도제천 행사에서 우주의 천신과 어머니 지구의 영신과 그 주재자인 임금님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천제를 올리고 있는데, 그때 신선 발귀리가 한마음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마음의 경계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소도제천 행사의 솟대입니다. 이 문화가 일본에 가보면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 유명한 그 신사를 잠깐 한번 가볼까요? 스와 신사인데, 스와 호수 남북에 남궁, 북궁 해서 네 개의 신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신사에 네 개씩의 솟대를 세워요. 바로 저기에 스와 호수가 있고 솟대를 저렇게 네 개를 세우고 있는데, 저것도 아주 의도적으로 각도를 맞추고 있어요. 신전 바로 정문 오른쪽에 세우고, 왼쪽에 세우고, 저 뒤쪽에 두 개를 세웠는데 저 마쯔리를 할 때는 참 엄청납니다.

    저걸 산에서 베어서 내려올 때 온바시라 축제, 스와대사 마쯔리를 행합니다. 그때 내는 ‘스와’라는 말이 뭐냐? 스와는 솟대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넘어가서 ‘세와, 세와’ 했는데 그걸 빨리하다 보니까 ‘스와, 스와’가 된 겁니다. 저 마쯔리를 할 때 현장에 가서 보면 수천 명이 저걸 메고 ‘솨, 솨, 솨, 솨’라고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세우라’는 소리예요. ‘세와, 세와, 세와, 세와!’그래서 ‘스와’가 됐어요.

    이 솟대를 세우는 문화를 여기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솟대문화는 북두칠성 문화입니다.

    지금은 문화 융합 시대, 원형문화 정신의 결론 메시지


    오늘 전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우리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 9천 년 국통 맥에서 문화를 창조한 원형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천지부모와 한마음, 한 생명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 생명의 바다에, 바로 그 생명의 존재의 주인인 삼신이 계십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완전히 발현한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불멸의 동방 원형삼도原型三道 정신입니다.

    원형삼도는 삼신이 하늘땅 인간으로, 삼극으로, 삼재로, 천지인 사상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동방의 천지인 삼재 합일 사상의 원형이 바로 삼신이거든요. 우주 삼신, 이것이 우주신학이고 서양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학의 원형입니다. 강단사학자들이 서양에 있는 삼위일체를 뜯어다가 삼신관을 조작했다고, 정말로 잘못된 이야기를 합니다.

    유·불·선·기독교의 원형정신, 유·불·선·기독교의 모체 원형삼도가 있습니다. 하늘의 조화 신성을 받아내린 것이 바로 전도佺道이고, 어머니 땅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 선도僊道, 신선도神仙道입니다. 그다음에 천지의 원주인인 인간, 인간의 다스림의 도,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의 도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종도倧道가 나왔습니다. 그러고서 불도가 이 전도에서 나오고, 선도, 신선도가 원형 선도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유도가 종도에서 나왔어요.

    근대에 와서 이제는 종교 중심 시대도 끝났습니다. 철학 중심 시대도 끝나고, 과학 중심 시대도 끝났어요. 한 가지에만 매달려서 거기에다가 사활을 걸면 성공을 못 하고 패망을 당합니다. 이 개벽기에 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종교, 철학, 과학 모든 인류 동서고금의 문화역사 정신이 융합되는 때입니다.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에 재직했던 박성배 교수님이 예전에 인간 마음 세계를 체험하려고 탄허呑虛 스님 밑에 가서 스님 노릇도 한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불교 철학박사를 따고 뉴욕대학에서 불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을개벽에 대한 우리 『도전』을 축약한 『Autumn Calling』이라는 책에 축사를 좀 써 달라고 부탁하니까 ‘아, 나도 칠성경七星經 주문을 읽고 컸다. 아버지 따라서 한 달씩 수행도 했다’고 말했어요. 그래 그분도 동학, 이 참동학의 후예예요. 그때 대한민국 국민 한 3분의 1 정도는 시천주侍天主 주문 읽고, 칠성경 읽고, 태을주太乙呪를 읽었거든요.

    바로 이 참동학이 동학에서 선언된 무극대도입니다. 동학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니냐’고 했습니다. 앞으로 지구에 인류가 그동안 앓아왔던 병통, 즉 전쟁, 굶주림, 음해, 남을 해코지를 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데서 오는 원한과 그 투쟁과 피의 역사, 거기에 뭉쳐 있는 기운들이 폭발해서 끊임없는 병란이 터집니다.

    서양에서는 기후변화를 말하는데, 이 기후변화와 병란의 문제가 하나가 되어서 옵니다. 제가 40년 동안 상제님의 성적과 역사문화를 답사하는데 최근에 이런 놀라운 개벽 증언이 나와요.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병드는 데 공기가 오염돼서 기에 의해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심법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회복해서 우주의 생명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조화생명 자체가 되고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진정한 이 우주의 창조자, 창조의 본체 태극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신선 발귀리가 소도문화, 그 원형의 역사문화 정신을 가지고 노래해 주신 우주 생명관, 신관, 역사관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지향할 통일문화 시대 열어나가는 역사관의, 미래 비전의 기초가 된다고 봅니다.

    9천 년 역사문화의 완성이 바로 근대사의 이 동학, 참동학입니다. 지금 동학이 천도교로 왜곡되어 있어요. 동학, 참동학은 인류의 새로운 문화운동이에요.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앞으로 『환단고기』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앞으로 개벽의 거대한 변혁의 물꼬를, 크고 작은 모든 시련을 태일의 심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천지부모와 크게 한마음이 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삼신의 신성 그 자체가 되어서 그 신권神權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앞으로 후천개벽, 가을 우주 개벽의 새 역사의 문을 여는 바로 그 주인공이 될 것을 다 함께 서원하면서 오늘 말씀을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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