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도 | 태을주 율려도수를 받은 경만장 안내성

[이달의 성구]


●본관: 순흥順興 안씨
●족보명: 원주元周
●자: 원여元汝
●도명: 내성乃成
●도호: 경만敬萬(‘경만’에는 후천 오만년 영생불멸의 선맥을 전수한 공덕으로 후세 사람들로부터 성인으로 높이 추앙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안내성 성도는 상제님 도의 핵심인 태을주를 전수하여 전 우주에 선포한 큰 공덕을 쌓았다. - 도전 3:196:5 측주)
●출생: 1867년 10월 25일 경남 함안군 가야면 도음실에서 안성유安成有(부父)와 선녕宣寧 남씨南氏(모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순도: 1949년 10월 25일 김제 청도리 백운동 자택(83세)
●가족: 부인은 모두 8명(팔선관 도수)이고 슬하에 15명 이상의 자녀를 두었다.

경만(敬萬) 안내성의 입문


안내성(安乃成)은 본래 이름이 내선(乃善)으로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라. 내성이 대여섯 살이 되어 부친이 글을 가르치려 하는데 공부는 아니하고 밖으로 다니며 씨름이나 주먹질만 일삼거늘 내성의 조부가 이르기를 “저 아이는 글을 가르칠 아이가 아니니 내버려 두라.” 하니 내성의 부친이 감히 거역하지는 못하나 심중이 심히 편치 못하여 어느 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된지라 내성이 여덟 살 되던 해에 조부가 돌아가시매 아홉 살에 부친을 찾아 집을 떠나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 할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서 돌아다니니라. 그러다가 금강산(金剛山) 어느 절에 들어가 3년 동안 불목하니 노릇을 하며 중들에게 불경을 얻어듣고 하던 차에 하루는 ‘미륵존불이 출세해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 아버지도 찾고 스승도 찾을 겸 다시 길을 떠나 미륵존불을 간절히 염원하며 마음으로 불경을 외우면서 이 소문 저 풍문을 좇아 장돌뱅이로 전국을 안 가본 데 없이 돌아다니더니 나중에는 멀리 청국(淸國) 산천까지 밟으며 십팔기(十八技)를 익히기도 하니라. 이렇게 미륵님을 찾아 천지를 헤매 다니는 중에 한번은 북경(北京)에 이진사(李進士)라는 도통군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갔거늘 그 사람이 북경에 있지 않고 남경(南京)에 갔다 하므로 남경까지 찾아가니 이번에는 그곳에서 도로 북경으로 돌아갔다 하매 내성이 다시 북경으로 가서 마침내 그 사람을 만나니라. 이에 이진사가 말하기를 “천하를 건질 천 선생(天先生)은 조선에서 나오니 공연히 여기서 헤매지 말고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 하거늘 내성이 순간 ‘천하를 건질 천 선생님이라면 출세하신 미륵님이 틀림없다.’ 확신하고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기뻐하며 서둘러 조선으로 돌아오니라. (道典 3:189)

진주 촉석루에서 임천가를 들으니


이후로 내성이 불경을 염송(念誦)하며 반드시 ‘천 선생님’을 찾고야 말겠노라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며 지내더니 하루는 진주(晉州) 촉석루(矗石樓)에 이르러 설핏 낮잠이 드니라. 이 때 홀연 정신이 황홀한 가운데 하늘에서 한 선관의 음성이 들리며 “내선(乃善)아, 네가 이곳에 있을 줄 알았노라. 노래를 받아라.” 하고 낭랑하고 유려한 음률로 임천가(林泉歌)를 들려주는데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아름다운 선율이더라. 이윽고 노래가 그치매 다시 선관이 “석가모니는 지나간 부처니 염불은 그만하고 이제부터 너는 천 선생을 찾아 모시도록 하라.” 하는 말을 남기고 아득히 하늘로 사라지니라. 내성이 문득 깨어 보니 꿈인지라 크게 용기를 얻어 ‘지성이면 감천이다. 내가 틀림없이 천 선생님을 만나겠다.’ 생각하고 내처 길을 떠나 오매불망 아버지와 천 선생님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정미년 여름에 이르러 미륵신앙의 본원지인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에 들어가 며칠 동안 머물면서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와 현신출세 미륵불이신 천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를 미륵불께 지성으로 발원하니라. (3:190)

[종도사님 도훈]
안내성 성도의 심법을 보라. 안내성 성도는 북경 남경으로, 조선 팔도를 미륵불 찾아다니며 고생한 분이라서 다른 성도들과는 심법이 다르다. (도기 129년 11월 14일 서울강남도장)


정읍 새재에서 상제님을 처음 뵌 날


6월 22일에 내성이 금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 선생님’이신 상제님을 만나니라. 내성이 정해(井海)를 지나 정읍 새재를 넘으려는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날이 푹푹 쪄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거늘 ‘새재 입구 주막에 들어 목이나 좀 축이고 갈까.’ 하다가 ‘기왕이면 올라가서 쉬자.’ 하고 옷소매로 땀을 닦고 칡잎을 훨훨 부쳐 가며 허위허위 고갯마루에 올라 나무 그늘을 찾으니 서늘한 돌 위에 패랭이를 쓰신 상제님께서 앉아 계시더라. 내성이 그 곁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는데 문득 지난 시절이 떠올라 회한이 밀려오거늘 ‘내가 아버지와 천 선생님을 찾아 천지 사방을 헤매 다녔건만 여태 소식 한 장 못 듣고, 그리자니 꿈속의 임이로구나. 이번 길에도 못 찾으면 다시 청국에나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품으니 문득 옆에 계신 상제님께서 담배를 재어 한 모금 빠시고 먼 데를 바라보시며 뜬금없이 “참,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하시니라. 내성이 본래 진주, 사천(泗川) 바닥에서 ‘안바람’으로 통하는 이름난 장치기꾼인 데다 일찍이 어디 가서도 싸움에 져 본 적이 없거늘 듣자 하니 손아래인 듯한 젊은이가 시비를 거는 투라 슬슬 심사가 나는데 방금 미륵전에 다녀오는 길인지라 마음을 다스려 점잖게 말하기를 “누구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요?” 하니 상제님께서 대뜸 고개를 돌리시며 “야, 이놈아! 여기에 너밖에 더 있냐!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이 미친놈아!” 하고 불벼락을 치시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목이 메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뻗치는 서기에 그만 기가 꺾여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니라. 이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나도 미친놈이다만 네놈도 단단히 미친놈이로구나. 네 이놈! 너 아버지 찾으러 다니지? 네 아버지 삼월 초열흘날 ○○에서 죽었어. 그 날 제사나 잘 지내라, 이놈아! 그래, 청나라로 가면 네가 큰일을 한번 하겠다. 아주 청나라로 가거라, 이 미친놈아!” 하고 불같이 호통을 치시니 혼이 쑥 빠질 지경이더라. 이 느닷없는 호통에 내성이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듯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마치 손금보듯 속속들이 꿰고 있음에 놀랍기도 하여 ‘혹시 이분이 천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 줄기 섬광처럼 스치는지라 다짜고짜 “선생님! 뵙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상제님께서 “저놈, 저 미친놈! 내가 어째서 네 선생이냐, 이 강도놈아!” 하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거늘 내성이 지금 당장 붙잡지 않으면 다시는 못 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정읍 쪽으로 내려가시는 상제님을 쫓아가매 상제님께서 “이 도둑놈, 청국에나 가라!” 하고 버럭 화를 내시며 길가의 호박돌을 집어 던지시니라. 내성이 이미 미륵전에서 서원을 세운 바가 있어 ‘죽어도 따르리라.’ 마음먹고 그 큰 돌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에 맞으니 순간 눈에서 번쩍 하고 번개가 튀는가 싶은데 상처는커녕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지므로 더욱 상제님께 매달리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놈의 자식, 따라오지 말라는데 뭣 하러 자꾸 성가시게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하시며 내처 더 큰 돌을 던지시거늘 내성이 피하지 않고 머리, 어깨, 가슴, 팔다리 할 것 없이 무수히 맞으며 대흥리까지 따라가니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 던지시고 심지어 베시던 목침까지 던지며 문전박대를 하시니라. 이리하여 내성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상제님을 만나니 이 때 내성의 나이 41세라. 이로부터 내성이 상제님을 추종하거늘 상제님께서는 항상 매정하고 박절하게 대하시니라. (3:191~192)

[종도사님 도훈]
안내성 성도는 도솔천 하나님,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미륵불을 찾는 구도의 행각에 나선 것이다. 상제님 성도로서 진표율사와 같은 구도 행각을 한 이가 바로 안내성 성도이다. (도기 135년 2월 24일 본부 조례)

[종도사님 도훈]
그것이 안씨 지도자 내세워서 지질한 고생을 시키는 도수다. 안내성安乃成 성도가 지도자의 상징이다. 안내성, 즉 안가가 이룬다는 말씀이다. (도기 129년 11월 14일 서울강남도장)

내 방에 와서 자라


그러던 어느 날 공사를 행하실 때 상제님께서 내성에게 명하시기를 “너 오늘 어디 가서 돼지 한 마리 구해 오너라.” 하시거늘 내성이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나 상제님께서 처음으로 내리시는 명인 데다가 비로소 자신을 불러 써 주심에 황감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씀을 받들리라.’ 마음먹고 여러 집을 다니며 사정해 보았으나 아무도 내성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지라 ‘명을 받들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어느 집에 가서 이백 근이 넘는 큰 돼지를 둘러메고 와 상제님께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그 돼지를 삶아 공사를 보신 후에 성도들로 하여금 고기를 나누어 먹게 하시는데 정작 내성은 맛도 못 보게 하시거늘 내성이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밤중에 가만히 부엌에 들어가 돼지 삶은 국물을 솥바닥이 훤하도록 마구 퍼먹으매 배탈이 나서 밤새 뒷간을 들락날락하니라. 이튿날 상제님께서 솥을 열어 보시고는 “아따, 그놈 국량 하나 크다!” 하시고 이어 “저놈 배 터져 죽는다. 돼지고기 삶은 물 먹고 저놈 뒈진다.” 하고 소리를 지르시니 내성이 뱃속에 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버리거늘 몸이 축나기는커녕 오히려 거뜬하더라. 이 공사를 행하신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저놈 불쌍하니까 내 방에 와서 자라고 해라.” 하시더니 이후로는 내성을 부드럽게 대하시니라. (3:194:1~9)

[종도사님 도훈]
이심전심이다. 이것은 상제님이 태을주를 전수하시기 전에, 그동안 세상 돌아다니면서 지은 안내성 성도의 크고 작은 허물과 죄업을 벗겨 주신 것이다. (도기 131년 6월 13일 부산 순방군령)

모두 내성을 경만장이라 부르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 각자 호가 있느냐?” 하시매 모두 자기의 호를 아뢰니 “그러하냐?” 하시고 종이에 글자 두 자를 쓰시어 손으로 가리시고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눈을 감고 보라. 이 글자가 무슨 자냐?” 하시니라. 내성이 본시 글을 모르는 데다 눈까지 감으라 명하시니 알 길이 없어 주저하는데 상제님께서 “얼른 말하라!” 하고 호통을 치시거늘 순간 내성이 자신도 모르게 “공경 경(敬), 일만 만(萬) 두 글자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지라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아따 저놈 ‘무식영웅’이라!” 하시고 손을 떼시니 과연 ‘경만(敬萬)’이란 글자가 쓰여 있더라. 이어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운암강수(雲岩江水)가 만경래(萬頃來)라. 김만경(金萬頃) 뜰을 가지고 천하사 세 번 못하겠느냐.” 하시고 “너희들 내성이한테 ‘경만장, 경만장’ 하면서 세 번씩 외우라.” 하시니 성도들이 모두 명하신 대로 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 존경할 것이다.” 하시니라. (3:196)

내성의 세속 놀이 기운을 거두심


내성이 공부를 하는 중에 지난날 속되게 놀던 가락이 마음속에서 울컥울컥 일어나 그 기운을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거늘 하루는 상제님 몰래 진주 촉석루로 가서 북을 치며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신명나게 노니라. 내성이 한참을 그리하매 더 이상 놀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상제님께서 “놀고 싶은 대로 더 놀고 오지 그랬냐?” 하시니라. 이에 내성이 “한참 그러고 나니 선생님이 보고 싶어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그 뒤로는 그런 기운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니라. (3:199)

태을주를 내려 주신 개벽기 인류구원 대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염제 신농씨에게 제를 지낸 후에 태을주(太乙呪)를 반포하리라.” 하시니라. 그 후에 하루는 안내성의 집에 가시어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너, 오늘 천지에 진지 올려라.” 하시고 “상 세 개를 차리고 내게 폐백 삼백 냥을 올려라.” 하시니라. 내성이 워낙 가난하여 모친에게 걱정하며 말하기를 “어머니, 선생님께서 폐백 삼백 냥을 올리라 하시는데 저는 일 전 한 푼도 없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니 모친이 대답하기를 “우리 형편에 삼백 냥이란 거금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한 닢 두 닢 푼푼이 모아 둔 것이 단지에 있는데 그것이라도 꺼내 보아라.” 하거늘 세어 보니 모두 삼백 닢인지라 상제님께 아뢰기를 “엽전 삼백 닢밖에 없습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삼백 닢을 삼백 냥 대신으로 쓰면 될 것이 아니냐. 어서 가져오너라.” 하시거늘 내성이 가져다 올리매 “삼백 닢어치 술을 사 오라.” 하시는지라 내성이 지게를 지고 가까운 주막에 가서 술을 사 오니 장정 한 사람이 바듯이 져야 할 양이더라. 내성과 모친이 나물과 보리밥으로 상을 차려 올리매 상제님께서 “술을 세 상에 나누어 올리고 절하며 심고하라.” 하시거늘 내성이 상을 향해 절을 올리는데 상제님께서 가운데 상에 앉으시어 진지를 드시니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글 받아라. 천하의 복록과 수명이 이 주문에 들어 있느니라.” 하시고 친히 태을주를 일곱 번 읽어 주시며 따라 읽게 하시니라. (5:263:1~13)

[종도사님 도훈]
태을주 천지공부에는 상제님의 도통맥 전수가 들어 있다. 지금 백운동 가서 증언을 들어보면 아주 노골적인 증언이 나와요. 상제님이 안내성 성도에게 “태을주를 너에게 판다.”고 하셨다고. 태을주의 우주조화 도권道權을 안내성 성도에게 내려 주신 것이다. (도기 144년 2월 16일 전신도 총동원 군령 및 일요치성)

장암에서 금 도수를 보심


상제님께서 군산 바닷가에 이르시어 내성을 옆구리에 끼시고 바다 위를 걸어 서천 장암(長岩)으로 건너가시거늘 수부님과 성도들은 일렬로 상제님의 발자국을 밟으며 뒤를 따르니라. 상제님께서 장암에 이르시어 금 도수(金度數)를 보시니라. (5:303:1~3)

[종도사님 도훈]
금 도수에서 보면 상제님이 안내성 성도를 다른 성도들과 분리하여 옆구리에 끼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징성이 있다. 다른 성도들은 스스로 실수를 할 경우 바다 속에 빠져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지만, 안내성 성도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내성 성도는 금 도수의 근원적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도기 142년 7월 22일 일요치성)

천지의 일등일꾼 출세 공사


무신년 겨울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청수를 모시고 마루에 쪼그려 앉으시어 내성에게 명하시기를 “내 몸을 결박하라.” 하시니 내성이 겁에 질려 아뢰기를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감히 당신님의 몸을 묶을 수 있겠습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하거늘 어찌 망설이느냐! 단단히 결박하라.” 하시니라. 내성이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들어 옥체를 꼭 묶으니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내성아, 큰 몽둥이로 내 몸을 세게 치며 ‘일등방문(一等方文)이 제일이냐, 이등방문이 제일이냐? 일등방문이다!’ 하고 소리쳐라. 도수이니 빨리 쳐라! 만일 이행치 않으면 신명들에 의해 큰 해를 당하리니 사정없이 쳐라!” 하고 호령하시니라. 이에 내성이 어쩔 수 없이 상제님의 몸을 치는데 차마 세게 치지 못하고 때리는 시늉만 하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호통치시며 “너 이놈 죽을 테냐! 뒤꿈치를 딸싹딸싹하며 쳐라. 그렇지 않으면 천지에서 너를 죽일 것이니라.” 하시니라. 내성이 엄명에 눌려 “일등방문이 제일이냐, 이등방문이 제일이냐? 일등방문이 제일이다!” 하고 크게 소리치며 있는 힘껏 옥체를 세 번 내리치니 상제님께서 떼굴떼굴 구르시며 “아이고, 이놈이 나를 죽이네! 이룰 성(成) 자로 이름을 고쳐 줬더니 나를 죽이네!” 하고 비명을 지르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껄껄 웃으시며 “이제 되었다. 이등방문이 넘어가니 일등방문인 네가 낫다.” 하시니라. 다시 내성에게 명하시기를 “담뱃대를 들고 나를 향해 총 쏘는 흉내를 내며 꼭 죽인다는 마음으로 ‘탕탕’ 소리를 내라.” 하시니 내성이 명에 따라 총 쏘는 흉내를 내거늘 이에 한 성도가 여쭈기를 “이제 이등박문을 폐하시는데 어찌 내성을 쓰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안성(安姓)을 썼노라.” 하시니라. (5:341:1~14)

[종도사님 도훈]
5편 341장의 이 공사 내용은 격외도리格外道理(보통의 격식이나 관례를 벗어난, 또는 그것을 넘어선 도리)이다. 이 공사는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 대한 공사이지만, 이건 보통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틀에서 볼 때 상상도 못 하는 것이다. 도를 받은 자가 어떻게 자기의 스승을 치는가? 더군다나 상제님은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몽둥이로 두들긴 것이다. (도기 141년 10월 15일 상제님 성탄치성)

내가 지고 가련다


상제님께서 출행하실 때는 무슨 짐이든지 항상 안내성(安乃成)에게 지우시니라. 하루는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시는데 또 내성에게만 쌀 닷 말을 지게 하시거늘 내성이 은근히 부아가 나서 ‘젊은 사람들은 그냥 가라고 하시면서 나보고만 짐을 지라고 하시네.’ 하며 마음으로 불평을 품으니 문득 상제님께서 내성을 돌아보시며 “네 이놈! 못 지고 가겠으면 그냥 내려놓지 ‘나만 지고 가란다.’고 하냐, 이놈아! 무거우면 거기 내려놔라. 내가 지고 갈란다.” 하시며 벼락처럼 호통을 치시니라. 이에 내성이 크게 놀라 상제님께 엎드려 사죄하고, 이후로는 어떤 궂은일도 시키시는 대로 불평 없이 따르니 아무리 무거운 짐도 오히려 가벼워지니라. 하루는 내성에게 짐을 지우시고 길을 떠나며 말씀하시기를 “내성아! 너는 내가 가는 곳마다 가야 한다. 네가 따라와야 한다.” 하시니라. (6:27:1~7)

안내성에게 전하신 후천선경의 태을주 선맥仙脈


하루는 상제님께서 안내성(安乃成)에게 이르시기를 “내성아! 너는 내 도(道)의 아내요, 나는 너의 남편이니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도의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하느니라. 모악산이 포해지형(胞孩之形) 아니더냐! 아기는 어미젖으로 사는 법이니 너는 창생들에게 태을주를 잘 가르치라. 태을주를 읽는 것은 천지 어머니 젖을 빠는 것과 같아서 태을주를 읽지 않으면 그 누구도 개벽기에 살아남지 못하느니라. 어머니가 있어 자식을 길러내듯 내성이 네가 먼저 태을주를 읽어 내 도의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하느니라.” 하시며 “너는 나중에 어머니 산인 모악산(母岳山)에 가서 내 도를 펴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온갖 것은 다 주어도 감 하나는 안이 주네.” 하시니라. (6:76)

[종도사님 도훈]
안내성 성도는 1변 도운에서 3변 도운을 관통하여 후천 5만년 역사를 여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지도자 도수를 맡은 일꾼으로 쓰셨다. 안내성安乃成 성도의 존명 자체가 제2변, 3변 도운의 틀을 짜는 지도자의 성사재인 도수를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도기 135년 2월 24일 본부 조례)

안내성의 생사를 건 3년 태을주 수행


이 해(경술년, 1910)에 내성이 상제님의 명을 좇아 3년 태을주 수행을 시작하니 온 동네에 밤새도록 이상한 소리가 울리거늘 마치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웅 하는 벌떼 소리 같기도 하고 거세게 몰아치는 큰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황소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더라. 이렇듯 이상한 소리가 나는 데다가 주인집에 병자가 생겨 주인이 점을 쳐보니 인(人) 동티가 났다고 하는지라 이에 내성 모자가 쫓겨 이사하거늘 가는 집마다 항상 병자가 생겨 매번 얼마 살지도 못하고 내쫓기니 여기저기로 이사를 다니다가 가까스로 수통목(水桶木)에 방을 얻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도 병자가 생기매 주인이 나가라 하거늘 내성이 ‘더 이상 이사할 곳도 없다.’ 싶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니라. 하루는 내성이 점심을 먹고 들어와 보니 주인 내외가 보따리를 밖으로 모두 내다놓고 방구들을 파 버렸거늘 내성이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 앉아 태을주만 읽으니 문득 하늘에서 “아이구, 징글징글한 놈. 아이구, 징글징글한 놈.” 하시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니라. (10:92:1~9)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은 먼저 안내성 성도로 하여금 3년 동안 태을주를 읽게 하시고, 성도들과 온 인류가 안내성 성도로부터 태을주를 받아 따라 읽도록 하셨다. 태을주의 뿌리가 안내성 성도다. 말하자면 태을주 도수의 씨를 뿌린 이가 안安씨인데, 안내성安乃成, 곧 안가安哥가 일을 이룬다는 말씀 그대로, 안가가 태을주 사업을 매듭짓는 추수자 일꾼으로 온다는 말씀이다. (도기 131년 7월 24일 8·9기 성녀전사단 교육)

내성이 중앙방주가 되어 도수를 봄


운기가 받은 천지영사에 의해 내성이 중앙방주가 되어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 방주를 두고, 3년을 한 마디로 하여 촌촌(村村) 도수와 명산제사(名山祭祀) 도수, 주문수행(呪文修行) 도수를 보니라. 촌촌 도수는 처음 3년 도수로 경만(敬萬)의 전 신도가 전국 팔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 청수를 모시고 앉은 채로 좌배(坐拜)하고 심고를 드린 후 먹는 것이요 그 다음 3년은 명산제사 도수로 전국의 명산과 사찰(寺刹)을 찾아다니며 대웅전(大雄殿)에 개를 잡아놓고 반천무지(攀天撫地)한 후 제를 지내 망량신 대접을 하는 것이라. 이 때 매번 중들이 기겁을 해 “천벌을 받아 죽으리라!” 하고 크게 소리치며 방해하거늘 그럴 때마다 “죽어도 우리가 죽을 테니 상관없지 않냐!” 하며 태연히 제를 올리니라. 내성의 교단에서 제를 올릴 때는 천지인(天地人)으로 세 상을 놓는데 상과 고기 머리는 반드시 남방으로 놓고 미역국과 머리째 찐 닭을 올리거늘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으니 미역국은 ‘태을주의 잉태’를 뜻함이요, 찐닭은 ‘닭이 봉황(鳳凰) 되어 올라가는 이치’라. 마지막 3년은 주문수행 도수이니 복배(伏拜)하고 태을주, 진액주, 칠성경, 개벽주, 운장주 등을 공부하는데 시천주주만은 ‘차후에 읽을 주문이라.’고 하여 읽지 않으니라. (10:123)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이 안내성 성도에게 붙이신 소위 9년 역사에서 가장 힘든 것이 3년 촌촌 도수라고 한다. 그릇을 메고 전국 팔도, 저 함경도까지 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 밥 얻어다 놓고 청수 떠 놓고 상제님께 심고하고 먹는 것이다. 증언을 들어보면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 촌촌 도수라는 것이 이 세상에 안安씨 기운을 박는 공사다. 안내성 성도의 기운을 천지에다 박는 것이다. 그 제자들, 백운동 신도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그 기운을 뿌리고 다녔다. (도기 134년 5월 14일, 17일 조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