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가가도장]

    나눔과 채움의 이름 가정도방(인천구월도장 류종원, 장광주)


    신앙은 절대자와 자신을 매개하는 가치관의 결정체이다. 태상종도사님께서 사람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서 진리에 살다 진리에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대로, 개인의 신념과 가치 기준은 자신의 현재 삶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영적 차원의 신도 세계와도 끈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유와 동기는 각기 다르지만 상제님의 진리를 삶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신앙을 지속하여 온 두 도생이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은 진리와의 귀한 인연 이상으로 소중하고 심층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만혼의 당사자가 신앙을 기반으로 교감을 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그것을 다시 충만한 결과로 되돌리며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경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구성된 순수한 신앙의 영역, 그리고 신뢰와 의지로 연계된 서로의 관계를 이제 도방이라는 이름을 통해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도방은 서로가 부족함을 같이 나누고 다시 함께 채워 나가는 따뜻한 가정 신앙 문화를 만들고 있는 인천구월도장 류종원(남, 48세, 녹사장), 장광주(여, 47세, 교무녹사장) 부부 도생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사인 류 도생은 도장에서 재정 보직을, 주부인 장 도생은 집정 보직을 맡아 봉직 중이며, 이들은 서로 40대 장년이 되어서야 결혼의 연을 맺은 늦깎이 부부이기도 하다. 25년이 훌쩍 넘은 신앙 역사를 가진 이들 부부는 이제 39개월이 된 아들 승겸이와 함께 단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지난 9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취재진은 경기도 김포시 마산동에 위치한 이 부부의 가정도장을 찾아갔다. 아파트 5층 가정도장에 들어서서 류종원, 장광주 도생 부부와 밝은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 승겸이는 어린이집에서 귀가할 시간이 되지 않아서 나중에 부부 도생의 인터뷰가 끝나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귀염둥이 예비 도생과 차분히 대면할 기회가 사라진 대신에 취재진은 집 안팎에서 엄마, 아빠와 원 없이 사진을 찍을 기회를 보장하는 선에서 절충을 했다.

    세 식구가 생활하는 데에는 충분한 공간인 가정도장은 거실 옆에 독립된 방 하나를 도방 전용으로 쓰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주는 기운으로 가득 찬 도방은 정결한 백색의 단 위에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 그리고 태상종도사님 존영과 종도사님 성용, 태을주 액자, 조상선령신위, 천부경, 염표문 액자와 관운장 사진 등이 좌우로 모셔져 있다.

    전체적으로 규모에 비해 널찍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도방에서 예를 표한 후 취재진은 부부 도생과 거실에서 마주 앉아 신앙의 출발과 정착 과정, 신앙의 소명을 직관하게 한 영적 체험, 그리고 장 도생의 본부 봉직에 대한 이야기까지 촘촘한 이야기 소재들을 하나씩 끌러 내 보았다.


    삶의 시련과 의혹을 해소하는 길


    병약한 성장기를 보내고
    류종원 도생은 인천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류 도생은 비교적 무난한 성장기를 보냈으나, 다만 건강 문제가 늘 불편하게 그를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에는 걷지 못해 입원 치료를 받았을 만큼 매우 병약하여 두어 번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아들의 건강을 위해 어머니는 류 도생을 절에 데리고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청년기에 접어들어 대학생이 된 후에는 혈관종이라는 병을 앓기도 했는데 병원 의사로부터 이 병은 하나님이 주신 병으로 약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류 도생은 건강 문제로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체력이 약해 쉬 피로해지고 구내염이 종종 생기며 환절기엔 감기도 자주 걸리곤 해서 건강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평범한 감성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류 도생은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을 객관적으로 접하는 정도였을 뿐 특별히 종교에 심취한 적은 없었다. 대신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기독교와 서양철학, 불교, 한민족의 전통신앙 등에서 말하는 기본 교양에 관한 수업을 재미나게 듣고 학습을 했고,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배우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고 했다.

    인생의 의문을 풀기 위한 학교 공부
    장광주 도생은 부산 출신으로 5녀 1남 중 장녀로 출생했다. 장 도생은 어릴 때부터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고 흘러가는 거지?” 등 근본 문제들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어린 소견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 알 수가 없어서 학교 공부를 하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학교 공부를 항상 재미있게 했다고 한다. 내면의 의문을 풀기 원했던 호기심 많은 소녀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과 수학, 그리고 언어 공부는 보다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했지만 궁극적인 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럴수록 장 도생은 세상이 허무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초코파이를 준다고 해서 교회에 몇 번 갔었고, 중학교(여중) 때는 사귀고 싶은 같은 반 친구가 집 근처 교회에 다닌다기에 그 친구랑 친해지고 싶어서 교회에 다녔다. 중3 때는 고등학교 시험 준비를 하느라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고등학교(여고)에 진학해서는 기독교 모태 신앙을 했던 반 친구가 장 도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교회 가기를 권해서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다녔다. 장 도생을 인도한 친구네 가족은 집사였는데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먼 곳에서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교회 지하에 기도실이 있어서 장 도생은 주말이나 주일에 가서 기도를 드린 적이 종종 있었고, 예배 시간에 통성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밝은 빛의 사람들을 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여름 성경 학교도 다니고 성경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문제는 그 성경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말이 아닌 지명과 인명들이 생소해 입력이 잘 안 되었고 문맥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 등의 좋은 내용은 많이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개벽 책을 읽고 찾은 신앙의 길
    류 도생이 증산도를 신앙하게 된 계기는 인천교육대학(현 경인교육대학교) 재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찾아 읽으면서부터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같은 과 동기생이 증산도학생동아리 입회를 권유한 것이 신앙으로 들어서는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던 많은 도생들과의 도담을 통해 신앙의 당위성과 절대성을 깨닫고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입문 과정을 거쳐 무사히 입도를 하였다. 입도하던 날 과하지는 않았지만 축하주를 마셨는데 도장에서 수행을 하고 나니 씻은 듯이 머리가 개운해지고 술기운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를 통해 들은 진리의 충격
    장 도생의 경우에는 고교 3학년 때 친구를 통해 증산도 진리를 만났다. 열아홉이 된 장 도생은 고3이라는 부담감도 있었고 앞으로의 사회 진출 등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을 때였다. 순수함을 버리고 남들처럼 그냥 직장을 갖고 결혼해서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 친구로부터 “한민족과 증산도”라는 책을 건네받았고, 우리의 역사가 9,000년이 넘는다는 것과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부처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그리고 유교와 도교에서 말하는 상제님이 한 분이신데, 그분이 바로 우리나라 전라도 땅에 직접 오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새롭고 거대한 메시지에 충격을 받은 장 도생은 정신을 가다듬고 곧바로 입문과 입도를 하였다. 하지만, 우주 섭리로 다가올 개벽의 이법과 현실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장 도생에게는 마치 홍역을 앓는 것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로 다가왔다고 한다. 순수한 감성으로 진리를 바라보았기에 느꼈을 당혹감과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장 도생은 종도사님 말씀 테이프를 즐겨 듣곤 했다. 그 말씀을 통해 하추개벽의 시운에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소명을 깨닫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강한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도움으로 만든 신앙의 기틀


    배려와 은혜로 신앙에 안착하다
    류 도생은 신앙 초입 시절은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도생분들의 조력으로 신앙을 지속해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건강이 원활치 못했던 입장에서 수행을 통해 신체 리듬을 조정하고 안정을 찾게 된 것도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 수행에 집중할 때면 신명들이 청수물을 마시는 ‘쪼로록’ 소리를 들은 기억도 있다고 했다. 특히 대학 시절 혈관종으로 아팠을 때는 당시 도장의 도생들과 교정님이 직접 신유 도공을 해 주었는데, 신유를 받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무도 강력한 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찌나 강력한 기운이 올라오던지 당장이라도 달려서 뛰면 길가의 빌딩을 훌쩍 넘어설 것 같았다는 것이다. 류 도생은 그간의 신앙 과정에서 여러 요인들로 인해 크고 작은 신앙의 부침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제껏 신앙을 그런대로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은혜, 그리고 성심껏 돕고 이끌어 준 많은 도생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바꾼 진로
    장 도생의 경우, 1990년 부경대(당시 수산대) 재료공학과에 입학을 하였지만 고3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9천년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 등이 어우러져 학과 공부에는 집중을 하지 못했다. 증산도동아리방과 도장을 오가며 신앙을 다지고 학과 친구들을 포교하는 활동도 하면서 어느덧 졸업을 할 시기가 되었는데, 학점 관계로 바로 졸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에 직장을 구해 도장에 성금 헌성을 하면서 보다 생산적인 신앙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장 도생은 곧바로 진로를 수정했다. 취업 가능성도 고려하고 평소 좋아하던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25세가 되던 1995년 영산대(당시 성심외대) 영어과에 다시 입학을 해서 2년간 공부를 한 다음 그 학교 영어과 조교로 1년을 더 근무하게 되었다.

    축복과 성숙의 기회 본부 봉직


    본부 봉직과 신앙 체험들
    장 도생은 조교로 근무하면서 이런 사무실 일을 할 거면 증산도 태전 본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산에서 천록포감으로 봉직을 하다가 결국 1998년 11월에 본부로 발령을 받았다. 이후 2004년 1월까지 본부 자료부에 봉직하면서 매달 나오는 증산도대학교 자료와 생활영어를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최선을 다해 관련 업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장 도생은 여러 차례 영적인 조력을 체험했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영어 내용을 녹취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이 분명 모르는 단어인데도 알음귀가 열려서 자연스럽게 받아 타이핑을 하게 되는 신기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상적인 경계를 넘어선, 말로만 듣던 작업신의 응감 현상을 직접 체험한 것이었다.

    본부 봉직을 하면서 장 도생은 많은 것들을 얻고 깨달았으며 감화도 받았다고 했다. 평소 손발이 차가운 수족냉증을 갖고 있었지만, 종도사님 신유를 하고 도공을 받는 과정에서 그런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고 지금은 항상 따뜻한 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업무 처리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종도사님께서 새벽까지 일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감명을 받아서 스스로 잠을 줄여 가며 일하고자 노력한 일도 있었다.

    장 도생은 본부 봉직과 관련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당시 본부 봉직을 하면서 사부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도정을 위해 크게 애쓰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제 자신의 신앙도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주로 학교 공부를 진리처럼 해 왔던 터라 과학적인 사고 등에 많이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상제님 태모님의 신도 조화세계에 대한 성구 말씀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수행을 하고, 본부에서 직접 두 분 지도자님의 말씀을 받들고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또 스스로 알아지는 것을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쉽지 않지만 얻는 게 많았던 봉직 생활
    얘기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본부 봉직 생활이 힘든 것 아니냐는 일각의 평가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본부 봉직이 힘들 거라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이 세상에 힘 안 드는 일도 있나요. 힘드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 봐요.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문화사업이라 할 일도 많고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저는 좋았어요. 힘든 만큼 제가 얻는 게 있었거든요. 수시로 도훈을 받들면서 진리에 대한 확신과 깊이를 갖게 되고 거기에서 봉직의 힘을 얻고 신앙의 성숙을 얻었어요. 종도사님의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제 자신의 겁기를 벗기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습니다. 저도 몰랐던 단점이나 보완점을 발견하고 고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값진 소득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능력만큼 힘껏 도정에 열정을 쏟아 낼 수 있는 봉사의 기회가 된 것도 사실이구요. 지금 되돌아보아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지난 일을 회상하던 장 도생은 우주원리 공부한 얘기를 꺼내면서부터는 금세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는 새롭게 배우고 깨닫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평소 한동석 선생이 쓴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그렇게 읽고 싶었지만 어려운 한자에 막혀서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그런데 사부님께서 『우주변화의 원리』 강독 말씀과 더불어 한글로 텍스트 작업을 해 주신 덕분에 지금은 너무도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 일독을 했을 때는 우주를 다 얻은 듯이 기뻤어요.”

    도문에서 맺어진 도가의 인연


    결혼 인연을 이어 준 도생의 조력
    이쯤에서 류 도생과 장 도생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류 도생은 어떤 특별한 이유보다도 교사인 직업이나 신앙 생활에 충실하며 살다 보니 결혼을 생각할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또 장 도생은 특별한 영적 체험을 통해 신앙의 소명을 깨닫게 된 40세까지는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누구를 혼자 짝사랑만 했지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른 상황에 놓여 있던 두 도생을 이어 준 이는 류 도생이 신앙하는 인천구월도장의 이정아 구역포감이었다.

    장 도생의 얘기를 좀 더 옮겨 보면 이렇다. 40세까지 결혼 생각을 하지 못한 장 도생이 40세가 되는 2010년 양력 첫날에 아침 수행을 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니 그제서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선 자리가 들어오거나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짝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상제님 태모님과 조상님께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조상님께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꼭 찾아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장 도생이 직장을 잠시 쉬면서 용인에 있는 조카를 봐 주고 있었는데, 카카오스토리로만 알고 있던 인천도장 도생의 전화를 받았다. 부산에 인도하실 분이 있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시내의 세미나 장소까지 안내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장 도생은 마침 부산이 아니라 용인에 있다고 했더니, 대뜸 그 도생은 미혼이냐고 묻고는 도장에 노총각이 있는데 소개시켜 주겠으니 만나보겠느냐고 했다. 장 도생은 그렇게 하여 류 도생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연애나 남자에 숙맥이었던 장 도생은 용인에 있던 수석포감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조언을 받는 준비도 했다고 한다.

    콩깍지가 씌어 만나 가정을 이루다
    류 도생은 중간에 중매를 선 포감님의 소개를 받고도 지체하고 있다가 사람들로부터 “그러니 장가를 못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장 도생에게 연락을 하고 용인까지 찾아갔다. 류 도생은 장 도생의 첫인상이 수수해 보였고 말씨가 친절했으며 인천에서 찾아간 자신을 배려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다시 보니 장 도생의 얼굴이 훨씬 호감을 느낄 정도로 달라 보였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한다는데, 어쨌든 두 사람은 세 번 만나고서 결혼을 결정했다. 남들처럼 긴 교제 시간을 거친 것이 아니라 사귀면서 바로 결혼한 경우가 되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교제하는 느낌과 분위기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는 친절한 부가 설명도 이어졌다. 비록 늦은 결혼이지만 상제님 신앙의 인연으로 만났고 신도神道에서의 합의로 성사된 결혼이니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도생들의 도움으로 2013년 결혼을 한 두 도생은 다음 해에 귀염둥이 아들 승겸이를 낳았다.

    함께 이루고 기원하는 도방 신앙


    같이 나누며 성숙해 가는 의미를 깨닫고
    두 도생이 장년의 나이에 가정을 이루고 형성한 도방은 그만큼 중량감 있고 성숙한 의미를 담고 있다. 장 도생은 사춘기 때 증산도를 만나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남편인 류 도생을 만나서는 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고민하는 모습들을 나누며 같이 성숙해 가는 큰 의미를 깨닫는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잘 알려면 연애를 해 보라는 말이 세상에 있는데, 사람을 사귀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매일의 생활 속에서 느끼고 반성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감을 차분히 들려주었다.

    여유와 만족이 이끄는 도방의 신앙력
    가정도방은 장 도생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장 도생은 5녀 1남의 장녀로 항상 대식구들과 함께 생활을 해 온 탓에 어릴 때부터 개인 공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 집에서는 마음 놓고 수행하기도 힘든 환경이었다. 다행히 도장에서 매일 수행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가정이 생기고 또한 도방 공간까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요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아침 수행과 배례를 하고 도전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참 좋다고 말을 한다. 도방에서 느끼는 이런 여유와 만족감은 내실 있는 신앙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가정도방의 분위기와 기운도 덩달아 상승하고 안정감도 따라온다. 류 도생은 장 도생을 위해 신경을 쓰며 항상 외조를 한다고 하는데도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한다. 더불어 그러한 자신에게 늘 힘이 되고 도움을 주는 아내 장 도생에게 사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는 말도 남겼다.

    최근 가정도장 신단의 면모를 새롭게 정비한 것도 두 도생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이전에는 도방이라기보다는 개인 신단 같았는데, 도장 도생들의 조언과 함께 잘 운영되고 있는 다른 도방을 비교해 보기도 하면서 좀 더 경건하고 격식을 갖춘 도방의 모습을 마련함으로써, 누가 와도 진리 전달과 포교 수렴의 성소로 부족함이 없도록 도방 천신단을 꾸미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방은 정성을 축적해 개벽을 극복하는 기도처
    류 도생은 결혼 후 가정 천신단을 모시게 된 이유가 개벽 상황을 실제 생활 속에서 준비하면서 가정도장에서 생활신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야 함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부부에게 가정도방은 의통성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정성 기운을 뭉치고 기도 기운을 축적하며 대개벽기의 병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기도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도장에는 항상 봉청수 기도와 수행의 기운이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하는데, 여러 사정으로 시간이 부족할 때는 종도사님의 태을주를 비롯한 주송 테이프와 MP3 등을 켜 놓음으로써 집안 곳곳에서 24시간 주문 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신앙을 위해


    신앙의 감동과 배려가 주는 것들
    류 도생과 장 도생은 모두 풍부한 신앙 감성을 갖고 있다. 류 도생은 신앙하면서 가장 감동 받은 것은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 대한의 역사와 국통맥을 바르게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한민족의 우주 통치 철학과 생활문화의 총체적인 모습을 해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사실이 너무도 감명 깊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장 일요치성과 주말이면 대한사랑의 역사찾기 서명운동에 동참을 하여 중국과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알리고 참 진리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도장에서 각기 보직을 맡아 봉직을 하다 보니 간혹 힘에 부칠 때도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그때마다 도장의 포정님을 비롯한 포감님 등 보직 간부 도생들의 배려로 힘을 덜 수가 있었기에 너무도 감사하다고 했다. 또한 아들 승겸이를 잘 돌보아 주시는 일과 아이에 대한 신앙 교육을 지원해 주고 계신 점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진정한 신앙은 할 일을 하는 신앙
    류 도생은 앞으로의 신앙 계획과 꿈을 묻는 질문에 열매를 맺는 신앙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진리에 어두운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깨닫게 도와주어야 하고, 태을랑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이번 대개벽기의 병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의통성업을 완수하여야 하는데,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움직여서 그러한 신앙의 열매를 맺고 싶다는 것이다.

    장 도생의 꿈은 증산도대학교의 도생으로 온 인류가 바른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 도장에서 많은 도생들이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 요인들 때문에 신앙과 포교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세상이 너무 험하고 진리 속에서 살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열아홉 살 입도한 때부터 지금까지 28년을 신앙하면서 저는 도문에 들어왔다가 신앙이 정체되거나 중단되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각자 여러 가지의 이유로 도문에 발을 끊었지만, 우리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일이며, 제가 죽으면 제 아이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태사부님이 그러하셨고, 사부님이 그래서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역량과 능력이 너무도 빈약함을 느끼며 신앙을 이어 가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실한 것이 많고 정성도 부족하여 매일 반성을 하면서도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도장 도생님들이 다 육임을 짜서 모두가 함께 진정한 증산도대학교의 도생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신앙의 소명을 자각하게 만든 영적 체험
    사랑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갖던 시절
    도방 인터뷰 도중 장 도생은 자신이 신앙을 하는 이유 내지는 소명에 대해 깨달은 체험 얘기를 전해 주었다. 그 스토리의 첫마디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사랑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장 도생은 자랄 때 가정에서 한 번도 어머니 아버지가 다정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때는 어려서인지 모든 것을 부모님의 탓으로 생각을 했고, 자신의 우울한 마음도 부모님 탓을 많이 했었다는 것이다. 감수성도 예민한 편인데,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서 무난하고 원한만 인격의 인간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앙 초기에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도장에서 수행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귀가해서 집에 들어서는 순간, 도장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수행했던 그 마음은 다 사라지고 부모님께 억울하게 느꼈던 마음이 살아나서 다시 화가 나곤 했던 기억을 들려주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직관한 수행 체험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일반인이 된 어느 날, 수행을 하던 장 도생은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입정 상태처럼 집중이 되면서 자신의 10대 모습이 보이고 어릴 때 동네에서 놀던 모습도 보이고 하면서 계속 어릴 적 시간으로 거꾸로 거슬러 들어가더니, 어머니 배 속에서 다시 파이프 같은 관 속을 통과해서 나가게 되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어떤 계약서를 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불현듯이 강력한 영감靈感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내가 상제님 일을 하려고 서약을 하고 이 집안으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동생들을 선택하여 태어났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안 것이 아니었다. 직관적으로 그 전후 경위가 정리된 메시지처럼 선명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거울에 반영된 모습과 같이 그대로 비춰진 것이었다.

    이 영적 체험은 장 도생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자신이 신앙의 소명을 받고서 이 세상에 나왔으며 그 과정과 이유를 안 이상 더욱더 열심히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며 수행을 통해 도력을 길러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뒤로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차츰 사라졌다.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이 증산도 진리를 만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신앙 소명을 자각하는 시간이 장 도생에게는 현실적으로 40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호 가가도장은 생명과 삶의 근본 문제를 구도의 열정으로 풀어 나가며 꾸준한 신앙을 유지해 왔고, 스스로의 부족한 신앙을 서로 채우고 보살펴 주면서 소박한 조화의 도방을 만들어 가고 있는 류종원, 장광주 도생의 도방 이야기를 만나 보았다.

    이 부부는 장년의 나이에 늦은 결혼으로 가정을 구성하고 가정도방을 중심으로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는 선참 신앙인들이다. 이들이 걸어온 신앙 역정을 살펴보면 늘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조율과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도생들과 주고받으면서 20년이 넘도록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쌓인 신앙의 내공은 그래서 깊고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그간의 신앙 체험을 통해 감동과 배려에 대한 감사함을 말하고, 신앙의 소명을 운명처럼 자각한 고백을 토로하고 있으며, 서로 나누며 성숙해 가는 부부 간의 신앙 소통법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장 도생이 증언하는 본부 봉직의 의미와 신앙 체험 이야기는 우리가 지도자의 말씀과 삶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고 느끼며 감화를 받는 일이 신앙의 발전과 성숙에 있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소탈하고 유연한 듯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장 도생의 신앙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재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취재진은 이번 도방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채워 나가는 가운데 찾는 도방에서의 여유와 만족이 신앙력을 배가시키고 안정감을 가져다 줌으로써 결국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코 복잡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신앙의 기본에 충실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듯도 하다.

    이제 이 도방이 지향하는 바처럼 부족함은 함께 나누고 서로의 배려와 정성으로 다시 채워 나감으로써 모든 도생들이 상생의 도방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염원하며, 류종원 장광주 도생의 아름다운 조합이 반드시 신앙의 알찬 성숙으로 결실을 맺기를 상제님과 태모님, 그리고 조상선령신과 천지성신께 크게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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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