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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성구]

    이달의 성도 | 천지공사 성문聖門의 수석 성도 김형렬



    ●본관: 선先 안동安東 김씨
    ●족보명: 원회元會
    ●자: 형렬亨烈
    ●호: 태운太雲
    ●출생: 1862년 5월 5일. 김석필金錫弼(부父) 한산이씨韓山李氏(모母)의 12남매 중 장남
    ●순도: 1932년 11월 28일 청도리 구릿골 자택(71세)
    ●가족: 장수 황씨長水 黃氏와의 사이에 3남 3녀, 김호연 성도와의 사이에 3남 4녀

    선先 안동 김씨
    현재 안동 김씨에는 뿌리가 다른 두 개의 성관이 존재한다. 경순왕의 손자인 김숙숭을 시조로 하고 경순왕의 8대손인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선先 안동 김씨와 고려의 개국 공신인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후後 안동 김씨이다. 이 두 김씨는 서로를 일가一家로 여기지 않아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다. 김형렬 성도는 선 안동 김씨이다.

    도문의 식주인 태운 김형렬


    김형렬(金亨烈)의 호(號)는 태운(太雲)이라. 동곡(銅谷)에서 생장(生長)한 후 환평(環坪)에 옮겨 살다가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으로 이사할 때는 부자였으나 갑오년 동학혁명에 참가하여 청주 전투에서 죽을 목숨을 상제님의 은혜로 구원 받아 귀향한 뒤로 동학과 연줄을 끊고 가업에만 종사하다가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게 되매 잠시 용화동(龍華洞)으로 이사하여 사니라. 형렬이 빈곤을 이기지 못하여 내주평을 내왕하면서 농사나 경영할까 하던 중 정유(丁酉 : 道紀 27, 1897)년에 그 마을 정남기(鄭湳綺) 집의 서숙에 가 보니 초립을 쓰신 상제님께서 글을 가르치고 계시거늘 학동들이 부르기를 ‘강 서방’이라 하므로 형렬이 물으니 ‘정씨 집의 취객(娶客)이라.’ 하더라. 서당의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시고 마을 사람들의 사주(四柱)도 보아 주시니 동네에서는 신인(神人)으로 불리시더라. 그 후 형렬이 사정이 있어 내주평에 가지 못하고 상제님께서도 천하유력을 떠나시어 서로 만나지 못하더니 형렬은 가운이 더욱 기울어 하운동 제비창골에 있는 선산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로 이사하니라. (道典 3:7)

    김형렬을 처음 만나신 날


    학봉께서 갑신(甲申 : 道紀 14, 1884)년에 금구 환평(金溝 環坪) 사람 김형렬(金亨烈)을 처음 만나시니라. 형렬은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도(道)에 뜻을 품고 동무를 구하던 차에 ‘고부에 강가(姜哥)로서 신동이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으니라. 하루는 형렬이 ‘내가 한번 그 사람을 만나 보리라.’ 결심하고 고부로 향하는데 날이 저물어 우연히 태인 매당(梅堂) 불출암(佛出庵)으로 발길이 이끌려 들어가니라. 형렬이 암자에 이르매 갑자기 부엉이가 요란하게 울어대거늘 중에게 “부엉이가 어찌 저렇게 우는가요?” 하고 물으니 그 중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예사 사람이 아닌가 보오.” 하니라. 이에 형렬이 “예사 사람이 아니면 내가 허신(虛神)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하니 중이 “어디를 가시는 길에 여기까지 오시었소?” 하고 묻거늘 형렬이 “내가 찾을 곳이 있어 길을 가다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저렇게 부엉이가 울어대는 게 참 이상하오.” 하니라. (1:30:1~8)

    갑사에서 하루 머무르심


    산길을 가시는 중에 어디서 목탁 소리가 들려오거늘 따라가니 곧 계룡산 갑사(甲寺)더라. 증산께서 경내에 들어서시며 “더 가다가는 해를 입으리니 이곳에서 자고 가세.” 하시고 방으로 드시거늘 조금 뒤에 한 중이 와서 아뢰기를 “동학군이 노성(魯城)에 진을 치고 머무르며 도망하는 군사를 붙든다고 합니다.” 하니 필성과 형렬이 크게 근심하는지라 증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에서 쉬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화를 피하려 함이라. 내일 아침에 떠나면 아무 일 없으리니 염려하지 말게.” 하시니라. (1:60:1~4)

    죽어서라도 선생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형렬이 상제님과의 친면(親面)을 잊지 못하고 항시 상제님의 거동이 마음 가운데 은은하던 중에 수년이 지난 뒤 ‘대원사에서 도를 통하셨다.’는 풍문을 들은 후로는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니라. 그러던 차에 임인년 4월 4일 원평 장날에 양식이 떨어져 돈 한 냥을 주선하여 시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마침 꿈에 그리던 상제님을 상봉한지라 형렬이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쌀을 팔아서 가족들을 살릴 마음은 간데없고 문득 생각하기를 ‘이 돈을 노자로 드린다면 가솔(家率)들이 굶을 것이요, 만일 드리지 아니하면 서로 친한 사이에 의리가 아니라.’ 하고 돈 한 냥을 상제님께 노자 하시라고 드리니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노자가 있으니 걱정 말고 배고파하는 가족에게 어서 쌀을 팔아 돌아가게.”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더욱 간곡히 돈을 올리며 “만일 선생님께서 이 돈을 받지 않으시면 저는 이대로 집이고 뭐고 죽어서라도 선생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고 굳게 맹세하니라. 그제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자네가 가족을 남겨 두고 죽겠으니 불가불 받겠네. 그러나 쌀 팔아 오기를 기다리는 자네 가족들은 어쩌겠는가?”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예, 선생님이 돈 한 냥을 받으시면 제 마음이 좋아 생기가 나서 열 냥이 당장에 생기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허허, 그렇다면 받겠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돈인데….” 하고 받으시니라. (3:8:1~10)

    김형렬 집에 찾아오심


    그 후 4월 13일에 형렬이 제비창골 집에 있는데 산 너머 금산사(金山寺) 쪽에서 “형렬아, 형렬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거늘 형렬이 ‘어디서 들리는가?’ 하고 소리나는 곳을 따라 서전재(西殿峙)를 넘어가 보니 상제님께서 금산사 돌무지개문(虹霓門) 위에 앉아서 부르고 계시더라. (3:10:1~3)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 13일에 전주 우림면 하운동(全州 雨林面 夏雲洞) 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이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심회를 푸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말세의 개벽 세상을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隻)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정심 수도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 나는 조화로써 천지운로를 개조(改造)하여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을 열고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에 내려와 천하를 두루 살피고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내려왔나니,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하시고 “시속에 ‘아무 때 먹어도 김가가 먹을 밥’이라는 말이 있나니 대저 무체(無體)면 무용(無用)이라. 서(西)는 금(金)인 고로 김(金)씨에게 주인을 정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형렬의 집에다 식주인(食主人)을 정하고 머무르시면서 도문(道門)을 열어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 주시어 신명(神明)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어명(御命)을 받드는 모습을 참관케 하시니라. 형렬이 모시면서 보니 밤이면 상제님께서 기거하시는 방에서 ‘웅웅웅’ 하고 벌이 나는 듯한 소리가 나더라. (2:15)

    돌무지개문
    돌무지개문은 후백제의 태자 신검이 자신이 아닌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는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쌓은 금산산성의 성문이요 금산사의 대문이다. 태양 빛이 분광分光되어 일곱 가지 색깔로 나타나는 무지개는 곧 칠성七星 도수를 상징하며 동시에 세상을 문명으로서 광명케 하는 칠오화七午火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무지개문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하늘이 쳐다보이는데, 이것은 곧 원십자元十字와 천지의 북방 수기水氣인 임술壬戌의 정신을 상징한다.

    즉 돌무지개문 공사는 천지공사 집행의 토대인 인사의 주인공을 상징하는 수화·일월·용봉水火日月龍鳳 도수를 담고 있으며, 대두목의 상징인 김형렬 성도가 미륵불이신 상제님을 지키는 금산사의 주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전 4:140 관련)
    또한 이곳 돌무지개문은 상제님께서 선천 상극의 모든 불기운을 묻는 화둔火遁 공사를 보신 장소이기도 하다. (도전 5:275)

    세 번 다짐을 받으시고서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나와 더불어 천지공사를 꾀함이 어떠하냐.” 하시거늘 형렬이 대답하여 여쭈기를 “천지공사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니 “현하의 천지대세가 선천은 운(運)을 다하고 후천의 운이 닥쳐오므로 내가 새 하늘을 개벽하고 인물을 개조하여 선경세계를 이루리니 이때는 모름지기 새판이 열리는 시대니라. 이제 천지의 가을운수를 맞아 생명의 문을 다시 짓고 천지의 기틀을 근원으로 되돌려 만방(萬方)에 새기운을 돌리리니 이것이 바로 천지공사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이내 알아듣고 여쭙기를 “새판을 짠다는 것은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때는 천지의 비극적 시운(時運)으로 이름 없는 악질(惡疾)이 창궐하리니 만약 선의(仙醫)가 아니면 만조(萬祖)에 일손(一孫)이라도 건지기 어려우리라.” 하시며 시운(時運)에 대하여 장시간 언급하신 후에 “두 집이 망하고 한 집이 성공하는 공부를 하려는가?” 하시거늘 형렬이 대답하기를 “열 집이 망해도 하겠습니다. 열 집이 망하고라도 한 집만 성공하면 열 집이 다 성공될 것 아닙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자네 말이 옳도다. 그러나 모두 자네 같은가? 어려운 일일세.” 하시고 세 번 다짐을 받으시고서야 방에 들어가 앉으시니라. (3:11)

    김형렬의 수련 공부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4월 15일부터 9월 19일까지 수련을 시키시고 이르시기를 “그만 그칠지어다. 다른 묘법은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시니라.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모든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명이 모이고 흩어짐과 어명을 받드는 모습을 참관케 하시며 풍우를 짓게도 하시고 참관한 공사의 조항을 일일이 물으시어 그 보고 느낀 바가 맞는지를 자세히 시험하기도 하시니라. (3:24)

    형렬의 복을 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


    하루는 형렬에게 글을 써서 보여 주시니 이러하니라.
    無量大福 金亨烈이요 府院君 金亨烈이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형렬의 복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하시니라. (3:93:5~6))

    미륵불교彌勒佛敎
    1915년에 김형렬 성도가 김제 모악산 금강대에서 형성한 교파이다. 1919년에 독립운동을 한다 하여 일본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1921년에는 서울로 올라가서 ‘불교진흥회’를 조직하였다가 1922년 교단 명칭을 ‘미륵불교’로 바꾸고 본부를 모악산 금산사로 옮겼다. 1932년 김형렬 성도가 사망하자 교단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태운장의 신선 도수와 김자현의 의원 도수


    상제님께서 형렬에게는 신선(神仙) 도수를 붙이시고, 자현에게는 의원(醫員) 도수를 붙이시니라. 형렬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애기부처를 조성하고 금산사를 잘 지켜라. 금산사를 지키다 곧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원한 없이 지킬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네가 금산사를 굳게 지켜라.” 하시니라. 또 자현에게 의원 도수를 붙이실 때 말씀하시기를 “너는 천하명의(天下名醫) 말을 듣겠느냐, 조선명의(朝鮮名醫) 말을 듣겠느냐? 응당 천하명의 말을 들을 테지. 부디 살리는 것으로 뜻을 세워 돈은 받지 말고 좋은 일만 하면서 포교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에 형렬은 금산사를 지키면서 포교를 하고 또 자현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치병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살리니라. (3:313:1~6)

    하느님, 살려 주옵소서


    이윽고 번개가 그치자 형렬이 살려 주시기를 애원하니 말씀하시기를 “벼락 맞아 죽은 놈은 까마귀도 뜯지 않고 땅에 묻지도 않는다는데 내가 어찌 살리겠느냐.” 하시니라. 그래도 형렬이 그치지 않고 지성껏 애원하니 “자네 살릴 기술이 있거든 살려 보소.” 하시거늘 형렬이 그제야 허락하신 줄 알고 재빨리 옆방으로 경문을 옮겨 놓고 숯덩이 같은 몸을 주무르며 “하느님, 살려 주옵소서. 하느님, 살려 주옵소서.” 하고 쉴 새 없이 애원하니 이윽고 경문이 다시 살아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허허, 저 사람 보소. 벼락 맞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술이 있었구만. 내가 몰랐네.” 하시며 무수히 칭찬하시고 다시 살아난 경문에게 이르시기를 “청수를 모셔 놓고 ‘천지공사를 어겼사오니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빌라.” 하시니라. (5:245:1~7)

    설경 놀이 공사


    상제님께서는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형렬과 함께 언덕에 오르시어 서로 부둥켜안고 데굴데굴 굴러 언덕 아래까지 내려오기도 하시니라. 호연이 이를 보고 “눈 오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라.” 하니라. (6:13:13~14)

    형렬은 부채를 들고


    또 칼 한 개와 붓 한 자루와 먹 한 개와 부채 한 개를 반석 위에 벌여 놓으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뜻 가는 대로 들게 하시니 찬명(贊明)은 칼을 들고, 형렬(亨烈)은 부채를 들고, 자현(自賢)은 먹을 들고, 한공숙(韓公淑)은 붓을 드니라. (6:112:1~2)

    다 나가거라


    아침에 약방에 계시던 상제님께서 사시(巳時) 경에는 형렬의 사랑방에 누워 계시니 몇몇 성도들은 방안에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더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방안의 성도들에게 “다 나가거라.” 하고 이르시거늘 방안에 있던 성도들이 모두 토방 아래로 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니라. (10:54)

    너희들을 살리려고 갔는데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기침 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 일이냐.”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상제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희 선생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說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 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안 사람 판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판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 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하니 판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 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상제님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10:81)

    [종도사님 도훈]
    김형렬 성도가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 태어났다. 단오가 말[馬]하고 연관이 돼 있다. (도기 134년 6월 20, 21일 조례)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은 거기서 인간 김형렬의 착한 마음과 진실됨을 보신 것이다. 물질을 다 바친다는 건 정신을 그대로 다 바치는 것 아닌가. (도기 129년 7월 4일 7월 종의회 및 제2진 제세핵랑군 발대식)

    [종도사님 도훈]
    김형렬이 상제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와서, 상제님을 모시고 간다. 이것은 미륵불의 수석성도가 미륵님을 모시고 인간 역사에 들어가는, 아주 중요한 예식이다. 도솔천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인존 상제님으로 오셔서, 천지 조화권을 쓰시러 인간 역사에 진군하시는 것이다. (도기 131년 11월 28일 전주 순방군령)

    [종도사님 도훈]
    그는 대두목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두 집, 너하고 나하고 망한다는 건, 모사재천(謀事在天)하시는 상제님과 성사재인(成事在人)하는 마지막 지도자가 망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처절하게 망해야, 뒤에 들어오는 일꾼들이 그것을 본받는다. (도기 129년 7월 4일, 7월 종의회 및 제2진 제세핵랑군 발대식)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 말씀이 떨어지자 갑자기 불칼이 들어와 이경문을 새카맣게 태워 죽인다. 이를 본 김형렬 성도가 너무 놀라 충격을 받고 정신이 반은 돌아버린다. 하지만 본래 김형렬 성도는 그 심성이 어질다. 그래서 상제님께 살려 달라고 애원하여 이경문을 살린다. (도기 129년 10월 7일 춘천 지역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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