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상 | 오늘날의 철학 2 _ 20세기에 대두한 서양철학(2)

[철학산책]
문계석 / 상생문화연구소 (서양철학부)


4) 변종 존재론 - 하이데거


20세기에 동서양에 걸쳐 너무도 잘 알려진 사상가를 한 분 꼽으라 하면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4)가 단연 선두를 점유할 것이다. 그의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저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념에 대한 조어(造語)로 말미암아 논쟁의 여지가 더러 등장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실존주의자인가 아니면 존재론자인가를 가름할 때, 후대의 사상가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1927년부터 연재되었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만으로 그의 사상을 평가하게 되면, 실존범주의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실존문제에 대한 해석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는 명백히 실존철학자로 불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초지일관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존재란 무엇인가”하는 “존재”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1929년에 출간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Was ist Metaphysik)』에서 다루어지는 핵심주제는 그가 실존철학자라기보다는 존재론자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통적인 의미의 존재론자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마 사상의 핵심주제가 다소 생소하게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존재
고대 서양에서 철학적인 사유가 시작된 이래 탐구의 중심과제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론(Ontology)이었다.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Thales)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역동적으로 생장하는 자연(physis)에 대한 존재를 물었고,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이성에 의한 고도의 추리를 통해 탐구해낸 추상적인 수(數)를 존재로 보았고, 아테네 시대로 접어들면서 철학자들은 문명사적인 규범(nomos), 즉 윤리적인, 정치적(사회적)인 규범에 대한 존재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중세시대에는 신의 존재에 대해 체계적으로 탐구했고, 근대 이후부터는 인간의 삶에 관련된 존재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전통적인 존재론의 역사를 뒤집어 관점의 전환을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도대체 왜 존재자는 있고 오히려 무(無)는 없는가? 이를 묻는 것이 철학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연구과제가 존재에 대한 탐구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어서 그는 유럽전통의 철학이 ‘존재자’에 대한 탐구였지 ‘존재’에 관한 사유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존재론의 역사가 모두 존재망각(存在忘却)의 길을 걸었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존재일반이 자명하고 명석하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존재’에 대한 물음은 한 번도 올바르게 제기된 일이 없었기에 존재망각의 역사 속에 내버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전통적인 존재론을 파괴하고, 존재자체의 의미를 물어 새롭게 밝히려 시도하게 되는데, 우선 “존재(das Sein)”와 “존재자(das Seiende)”를 명백히 구분 짓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존재론은 모두 ‘존재자’에 대한 물음이었지만, 자신이 새롭게 제기하는 존재론은 존재자가 ‘무(無)’ 가운데서 개시되는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서 ‘존재자’는 사물의 현상이나 존재양식을 말하는 것으로, 하늘, 땅, 바다, 책상, 나무, 행위 등,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을 지칭한다. 반면에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것’을 ‘존재’로 규정한다면, ‘존재’는 종래의 철학이 추구했던 전체적인 근원으로서 ‘신(神)’을 말하는 것일까? 하이데거에 의하면 ‘신’도 한낱 ‘존재자’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개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단지 ‘존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고의 존재자인 신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자가 어떻게 참다운 존재자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 즉 존재자의 근원이 되는 의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존재 자체를 묻는 그러한 ‘존재’는, 단순히 객관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거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과 구별되기 때문에, 개념화된 대상으로 객관화될 수 없는 공허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는 언제나 간과되어 왔고 망각의 역사로 떨어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존재망각의 역사를 종식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존재론적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다. ‘존재론적 차이’란 이성적 사유의 영역으로 들어와 개념화된 일상적인 존재자와 근원적인 의미의 존재자체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본질적인 차이를 뜻한다.

현존재(Dasein)의 실존론적 분석
‘존재론적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에서 ‘존재’의 참뜻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존재를 그 자체로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존재자를 찾아낸다. 그런 존재자를 그는 “현존재(Dasein)”라 불렀다. 현존재란 ‘거기(Da)’에 있는 ‘존재(sein)’라는 뜻으로 구체적인 인간을 뜻한다.

인간이라는 현존재는 물론 책상, 집, 고양이, 나무 등과 같은 존재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든 존재자들 중에서 인간만이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어렵지만 어렴풋이나마 조금 알고 있기에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자들은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없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현존재’라 하지 않고 ‘도구적 존재’라 불렀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는 어떤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것은 단순히 주관적이거나 논리적이고 추상적으로 사유하는 그런 보편적인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개별인간을 지칭한다. 개별적인 현존재는 다른 존재자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를 언제나 문제 삼고 그것에 관심을 쏟는다. 이런 현존재를 하이데거는 실존(Existenz)이라 부른다.

존재론의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근본 구조, 즉 인간에 대한 실존론적 분석을 시도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 제시한 ‘존재범주(Category)’에서가 아니라 “실존범주(Existenzialien)”에서 다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재이해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현존재의 존재이해 방식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는 존재이해를 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실존분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현존재의 존재구조를 밝히는 실존분석만이 존재자체의 의미를 밝히는 존재론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고 본 것이 하이데거의 입장이다.

첫째, 실존론적 분석에서 볼 때,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Being-in-the-world)이다. 이는 인간이 세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이 세계에는 다양한 사물들이 존재하고, 인간은 이것들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에 관심을 갖고, 이것들을 유용한 도구(Zeug)로 간주하여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인간은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공동세계존재(Mitweltsein)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방식이 사물에 대한 배려(Besorge)이건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Fürsorge)이건 결국 “관심(Sorge)”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관심”을 세계 내에 있어서의 현존재의 존재방식이라고 규정한다.

둘째,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은 대개의 경우 실존자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적인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속적인 “세상 사람”(das Man)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세상 사람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이 사람 저 사람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상관없는, 어느 누구도 아닌,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데, 대표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고 그저 풍문이나 잡담에 귀를 기울이며, 유행이나 호기심에 사로잡혀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인을 가리킨다. 이런 일상적인 세상 사람으로서의 현존재는 본래적인 자기가 가리워져 있는 존재방식으로 퇴락(頹落)한 사람이다. 퇴락한 사람은 비본래적인 자기로부터 본래적인 자기로의 실존을 회복하여야 하는데, 실존을 회복하거나 비본래적인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죽음에 대한 불안(Angst)이다.

셋째, 불안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공포(恐怖)와 다르다. 공포는 그 대상이 존재하지만 불안은 아무런 대상이 없다. 그럼에도 불안이 생기는 까닭은 현존재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 즉 죽음에의 존재(Sein zum Tode)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외부로부터 현존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현존재에게 붙어 있다. 인간의 생존은 죽음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부서짐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불안은 인간에게 숙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본래적인 세상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소멸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락, 스포츠 등의 즐거움에 탐닉하기 마련이다. 즉 죽음에 대한 불안이 현존재로 하여금 비본래적인 일상의 존재로 타락케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깊이 통찰하지 않고 그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결국 죽는다”고 말할 뿐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회피를 통하여 세상 사람은 불안을 잊어버릴 수 있을지라도 초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넷째, 인생의 시작과 종말은 무(無)에 놓여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Nichts)’에서 수동적으로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Geworfenheit)이다. 출생 이전과 죽음 이후는 완전히 ‘무’이다. 무위에 떠 있는 유한한 존재는 죽음에의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능동적으로 미래를 향해 자신을 설계하는 존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기투”(Entwurf)라 한다. 던져져 있음이 필연적이라면 기투는 미래를 향하여 기획하고 계획하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현존재는 ‘무’에서 그냥 던져진 채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얘기다. 미래를 기획하는 인간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소위 “양심”(Gewissen)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가능하다. 양심이란 세상 사람의 일상성 속에 잊혀져 있던 본래의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부르짖음이다.

다섯째, 현존재는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거나 죽음의 불안을 도피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앞질러 죽음을 결의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죽음의 가능성을 앞당기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그 전체성에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양심의 결단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성을 깨우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와 같이 죽음에의 선구(先驅)와 일상적인 자기의 비본래적인 모습을 버리고 자신의 본래성을 되찾으려는 결단성을 합친 것이 “선구적 결단”(vorlaufende Entschlossenheit)이다. 이러한 태도는 현존재의 근거가 ‘무’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이와 같이 현존재의 실존은 유한성의 자각을 토대로 하여 죽음에의 선구를 결의함으로써 본래적인 자기로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무(無)를 꿰뚫어가는 탈존자(脫存者)
인간을 포함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존재자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엔 ‘무(無)’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실존적인 인간만은 어디론가 사라지게 될 대상이 없는 불안 속에서 마침내 텅 빈 ‘무’와 마주치게 된다. 텅 빈 ‘무’의 상태와 마주한 현존재는 일체의 존재자를 벗어나 초탈(超脫)한 상태일 것이다. ‘무’를 향해 초탈한 현존재의 실존은 스스로 ‘무’ 속으로 함몰해 있다는 의미에서 “탈존자”(Ek-sistenz)라고 할 수 있다. 탈존자는 일체의 존재자에게서 초연(超然)한 상태로 있으면서 존재자의 근원을 묻는 자로 임하게 된다.

존재자의 근원에 대한 탈존자의 물음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신(神)’의 존재로 귀착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마저도 사유를 통해 대상화되는 ‘존재자’에 속하며, 신도 결국 ‘무’에 근원하는 존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존자는 신의 존재 근원에 대해서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이데거는 무신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는 정말 무신론자였을까?

어쨌든 탈존자는 모든 존재자의 근원을 묻는 상태에서 ‘무’를 꿰뚫어나가는 과정에 처할 것이고, 이럴 때 비로소 ‘존재’ 그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무’는 존재자에 대한 무화(無化)로서의 ‘무’이고, 일체의 존재자와 전적으로 상이한 극단적인 타자(他者)를 뜻한다는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면사포”(der Schleier des Sein)라고 표현했다. ‘존재의 면사포’란 탈존자가 ‘무’를 꿰뚫어가는 과정에서 존재가 스스로 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하는 단면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면사포에 감춰진 ‘존재자체’는 대상화될 수도 없을뿐더러 존재자로 규정되는 여하한 개념이나 표상적인 사유에 의해서도 파악될 수 없다. 하지만 ‘존재자체’는 모든 존재자를 근원적으로 밑받침하는 지주(支柱)이며, 만유 속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존재의 의미이다.

존재의 가르침과 부름에 응답하는 철학자
철학이 참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논리학에서처럼 정확성이나 사리(事理)에 일치하는 것만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학문만이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돌이켜 사유하는 “추념”(Andenken)이란 뜻에서 존재의 가르침과 그의 부름에 충실하려는 사유(Denken)를 철학이라고 말한다.

존재의 가르침이나 부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가르침이나 부름을 받는 탈존자는 사유를 전제한다. 탈존자의 사유란 무엇이고, 무엇이 사유하도록 하는 것일까? 사유는 “이성”(Vernunft)이 한다. ‘이성’은 “귀담아듣는다"(Vernehmen)라는 뜻에서 나왔다. 무엇을 귀담아듣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眞理)에 대한 것이다. 진리는 바로 스스로를 은폐하면서도 동시에 살짝 드러내 보이는 존재이다. 따라서 사유는 ‘존재에 대한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역으로 본다면 존재가 그 진리를 이성으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한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사유’는 존재의 가르침과 부름이라는 두 방식으로 구분하여 의미를 해석해볼 수 있다. 전자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사유가 존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에로 귀속될 수밖에 없는 사유이고, 후자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유가 존재에 귀속되어 있으면서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존재가 걸어오는 말에 대한 사유다. 가르침과 부름은 언어를 통한 소통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이나 교제의 수단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존재의 집이다. 존재의 집은 탈존자가 몸담고 있는 집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존재로 하여금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말을 하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탈존자의 사유란 오직 존재의 가르침과 부름에 응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를 경모하는 사유이다. 만일 사유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존재의 말이 일상적인 언어적 표현으로 형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하이데거는 시(詩)의 세계로 접근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독일의 시인 휄더린Friedrich Hoelderin(1770~1843)의 시어(詩語)를 오랫동안 연구하여 다양한 해석을 내리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위대한 시인들 중에서도 휄더린을 동양의 도연명陶淵明(365~427)만큼이나 최고로 위대한 시성(詩聖)으로 여겼고, 휄더린이 존재자체가 걸어오는 말을 가장 순수하게 시어로 표현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


20세기의 사상을 특징지우는 또 다른 하나는 분석철학이다. “분석”(分析, analysis)이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풀어내어 최후로 남는 본래의 요소나 성분을 확실하게 밝힌다는 뜻이다. 이때의 분석은 사상이나 사고가 주로 언어에 의해서 전개되고 표현되는 것이므로 언어분석을 가장 중요한 탐구로 삼는다. 이런 의미에서 분석철학은 종래의 사변적인 철학방법을 거부하고,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과학과 일상적인 지식, 개념, 명제의 진리에 대해 분석적 방법을 거쳐서 엄밀하게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철학이다.

어찌 보면 분석철학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진리탐구를 향한 철학적 활동은 언제나 언어분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하는 물음들에 직면하여 플라톤이 언어분석에서 탐구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들은 실제로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분석해왔고, 진술형식으로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인 오류는 일어난 사건과 말해진 것들을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최고의 존재자는 만유생명의 존재 근거이다”라는 경우들이 그렇다. 분석철학자는 진술의 의미를 논리적인 정신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게 되는데,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적 명제가 문장론적 규칙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각형은 세 선분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이다”와 같은 분석명제이거나 “홍길동은 청바지를 입고 있다”와 같은 종합명제이다. 분석철학에 의하면, 대상을 위한 경험적인 징표나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는 명제, 즉 하이데거가 말한 “무는 무화한다”(Das Nichts nichtet)와 같은 명제는 경험적인 징표도 없고,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진리탐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의 분석철학은 처음에 영국과 독일에서 출범하였으나 오늘날 미국 등 각 지역에서 유행하는 사상이다. 분석철학에서 수행하는 철학적 태도는 탐구에 있어서 먼저 경험주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종래의 관념적인 형이상학적 사유를 배제하고 실증주의 입장을 따른다. 그러면서 개념이나 명제의 논리적 분석을 통하여 문제를 명료하게 하여 그 해결을 꾀하려고 시도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분석철학의 그룹은 참으로 많다. “분석의 케임브리지 학파”(Cambridge School of Analysis), “비엔나 학단”(Wiener Kreis), “일상언어 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 “의미론자”(Semanticist), 그리고 각 국의 많은 과학자 집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분석철학의 효시(嚆矢)라 불리는 무어G. E. Moore(1873~1958)와 논리적 원자론을 제시한 러셀B. Russel(1872~1970), 일상 언어학파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1889~1951), 비엔나 학단의 논리실증주의 철학만을 간단하게 소개해볼 것이다.

분석철학의 효시라 불리는 무어
분석철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철학자는 영국 출신의 무어일 것이다. 그의 철학적 동기는 전통적으로 주장되어온 형이상학적인 명제들, 즉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명제의 오묘한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논리적인 언어분석을 통해서 그 명제들이 터무니없음을 지적하여 시정하고자 함이었다. 그가 헤겔을 비롯하여 관념론의 기본전제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1903년에 발표한 “관념론 반박”(The Refutation of Idealism)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Esse est percipi)라고 말한 버클리G. Berkeley(1685~1753)의 주장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검토해 보자. 이 명제는 논리적으로 말해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그 존재의 ‘의미를 안다’는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지각된다’는 것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버클리는 존재하는 대상을 의식 속에 병합함으로써 대상과 지각을 혼동하고 있다고 무어는 비판한다.

우리가 무엇을 지각한다는 것은 의식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대상이 존재하고 이것을 경험하여 안다는 뜻이다. 이를 무어는 일상적인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요컨대 “이것이 나의 한쪽 손이고, 이것이 또 다른 한쪽 손이다”라는 진술은 직접 경험함으로써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극히 상식에 맞는 명제들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무어는 영국 경험주의 전통에서 관념론을 분석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사료된다.

논리적 원자론을 제창한 러셀
오늘날까지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철학자는 단연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러셀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원래 수학자로서 출발했으나 수학의 근본 원리가 흔들리게 된 후로 새로운 기초 정립에 진력하면서 철학적 문제들을 아주 간명하고 명쾌하게 서술한 자로서 그 명성을 날리게 된 인물이다.

러셀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자연언어는 애매모호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세계의 구조에 대해 추리했을 경우 누구나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언어가 애매할지라도 조심스럽게 분석하면 세계에 대응하는 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러셀의 입장이다.

논리적 분석을 통해 자연언어의 올바른 구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주장은 러셀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것은 자연언어의 구조를 인공(人工)언어로 이루어진 기호논리 체계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러셀은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와 함께 저술하여 1913년에 펴낸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그들은 세계의 본질적인 구조에 대한 파악이 수학적인 논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러셀은 단연코 영국 경험주의 전통을 기저에 깔고서 무어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 사유로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인 것이란 보편적 관념이 아니라 오직 개별적인 “감각사실”(sense-data)들 뿐이다. 이들 각각은 서로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도 없다. 어떤 고정적인 물질이나 절대적인 정신 또는 자아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감각사실만이 존재한다고 여긴 러셀은 흄의 경험론적 입장을 연상시킨다. 이로부터 그는 객관적인 감각세계가 상호 독립적인 원자적 사실들과 그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이에 대응하는 언어체계의 구조를 분석하게 된다.

러셀의 분석철학은 논리적 원자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논리적 원자론의 기본체계는 원자적 사실들과 그 결합이 언어로 진술될 수 있다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언어적 진술의 최소 단위는 “원자적 명제”(atomic Proposition) 혹은 “요소명제”(elementary Proposition)들이다. 원자적 명제는 언어체계이고 원자적 사실은 객관적인 세계인데, 양자는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다는 얘기다. 원자적 사실들의 결합에 대응하는 명제는 복합명제이고, 복합명제는 원자적 명제들이 ‘그리고’, ‘또한’, ‘혹은’ 등의 연결사에 의해 결합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실재의 세계가 서로 대응관계라는 것은, 대상의 세계와 언어세계의 구조가 같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대상의 실재세계가 참인지 거짓인지가 밝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대상의 실재세계가 아무리 복합적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복합명제는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원자명제로 분해될 수 있고, 원자명제의 참과 거짓에 따라 그 진위(眞僞)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일 “홍길동과 손오공은 요술을 부린다”(p·q)는 복합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 명제의 진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원자명제로 분해해야 한다. “홍길동은 요술을 부린다”(p)와 “손오공은 요술을 부린다”(q)라는 원자명제가 그것이다. 원자명제인 “홍길동은 요술을 부린다”(p)와 “손오공은 요술을 부린다”(q)가 모두 참이라면 복합명제의 진술은 참이다. 만일 한쪽만 참일 경우, 즉 “홍길동은 요술을 부린다”(p)는 참이지만 “손오공은 요술을 부린다”(q)가 거짓이든가, 아니면 (p)는 거짓이고 (q)가 참일 경우, 혹은 양쪽 모두가 거짓일 경우에 복합명제의 진술은 거짓이 된다.

러셀에 의하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복잡한 사실들은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원자적 사실들로 환원될 수 있고, 언어적 표현은 최소한의 의미체인 원자적 명제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의 원자적 사실은 원자적 명제로 진술될 수 있다. 따라서 러셀은 철학의 과제가 이러한 원자적 명제들 간의 관계와 구조를 밝힘으로써 이로부터 세계의 본질적인 구조에 대해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일상 언어학파의 대표자 비트겐슈타인
1889년 4월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Wien)의 명문가에서 언어분석철학의 천재가 탄생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2년 동안 베를린에서 기계공학도 공부했다. 그는 1908년에 항공공학 연구소에 잠깐 있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Manchester)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에 엄청나게 어려운 러셀의 『수학의 원리』(1903)를 읽고서 감명을 받아 1911년에 공학을 포기하고 러셀이 교수로 재임하던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에 들어갔다.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운명적인 만남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졌다. 러셀은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배우는 학생의 신분이었다. 고대 아테네시대에 플라톤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소크라테스를 운명적으로 만나 제자가 되었듯이, 러셀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적 모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이라고 극찬할 만큼, 철학의 천재를 제자로 삼게 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을 금방 알아버렸다”고 러셀이 술회했을 정도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천재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수제자로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독일로 건너가 예나(Jena) 대학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그는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였던 프레게F. L. G. Frege(1848~1925)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 프레게는 명제논리와 술어논리의 기호화 및 공리화를 이룩하여 근대 수리철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비트겐슈타인은 조국인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하였고, 이탈리아 군의 포로로 수감되었을 때 그 유명한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를 저술하여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자신은 더 이상 분석철학을 할 것이 없다”고 선언한 후 고향 오스트리아 시골마을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초등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그는 새로운 언어세계를 체득하고, 지금까지 자신의 철학이 오류가 있음을 깨닫게 되자 1929년에 다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그는 1947년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분석철학의 장을 열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후기 사상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1951년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후기 사상은 사후 1953년에 출간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에 집약돼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철학에 대한 논의는 크게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으로 나뉜다. 전기 사상은 그가 전쟁터에서 작성하여 출간한 『논리철학논고』에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스승의 논리적 원자론을 토대로 나온 “언어의 그림이론”(picture theory of language)이 핵심이다. 후기 사상은, 그가 오스트리아 시골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어울리면서 깨달은 것인데, 논리적 원자론을 토대로 하여 전개된 자신의 언어분석철학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언어의 “의미 용도론”(use theory of meaning)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전개되는 “언어게임”(language game) 이론이 핵심이다.

언어의 그림이론 :
러셀의 영향을 받은 비트겐슈타인의 초기사상은, 언어와 세계가 서로 대응하고 있고, 언어의 논리적 구조가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반영한다는 입장에서, 일상 언어 속에 숨어 있는 논리를 밝혀내는 것에 주력한다. 그에 의하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원자적 사실이고, 이를 기술하는 언어는 “원자적 명제”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는 실재세계가 담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실재세계의 논리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고, 언어의 본질은 실재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자신의 논리적 구조 속에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언어의 그림이론”이다.

언어의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림은 어떤 것의 그림이다. 이는 언어의 명제적 그림이 논리적 공간에서 표상하는 상황과 세계가 똑같은 논리적 형식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명제는 대상세계에 대한 그림이고, 그림이 사태와 일치한다는 것은 그림의 구성요소와 실재의 구성요소 사이에 논리적 구조가 같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계에 대한 인식은 언어의 논리적 분석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can be said)만을 말해야 하고, 말해질 수 없는 것(cannot be said)은 침묵해야 한다. 요컨대 존재자체는 말해질 수 없기 때문에 명제화될 수 없다. 분석명제는 동어반복이다. 명제로 표현되는 의사소통은 언어의 명제적 그림이 보여주는 논리적 구조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만일 명제적 그림이 보여주는 구조가 대상의 실재와 일치하게 된다면 참이고, 일치하지 않게 된다면 거짓이 된다. 『논리철학논고』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사상은 진리의 대응설적 입장에서 논리적 원자론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게임 이론 :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시골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논리철학논고』에서 일상 언어 속에 숨겨진 논리적 구조가 있다는 언어관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총체적인 세계가 상호 독립적인 원자적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모든 명제가 원자적 명제로 분석될 수 있고, 원자적 명제들의 복합과 일반화로 학문이 구성될 수 있다고 보았던 초기 사상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적 분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어낸 원자적 명제도, 복합적인 세계가 원자적 사실로 환원되는 것도, 절대로 단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다’, ‘복잡하다’는 뜻은 사태나 사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말해야지, 그 속에 내재된 절대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절대적으로 단순한 사태나 명제를 찾던 논리적 원자론의 사상을 후기에 내놓은 『철학적 탐구』에서 비판적으로 거부하고, 언어의 의미개념도 수정한다.

언어를 그림으로 보는 이론은 언어를 하나의 단일한 사실을 지시하는 기능으로만 보았던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이와 같이 언어의 의미가 사실을 지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시대상의미론은 언어의 기능을 아주 협소하게 제한한 것이다. 우리가 언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그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줄 아느냐’, ‘그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느냐’를 파악한 것이다. 즉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용되는 용법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의미 용도론”이다.

언어가 어떻게 쓰이는가의 의미 용도를 사람들은 어떻게 터득하게 되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용도를 배우는 것이 곧 게임을 배우는 것과 같다(언어 게임론)고 한다. 말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데,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말이 쓰이는 게임이 어느 테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어떻게 사용되고 이해되고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에는 무수하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 축구게임, 바둑게임, 궁도게임, 야구게임에서 축구선수는 공을 가지고, 바둑은 바둑알을 가지고, 궁도는 활[弓]을 가지고, 야구는 공과 방망이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이들 게임의 경우에서 유사점은 있을지언정 공통적인 게임규칙은 없다. 요컨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 호날도C. Ronaldo(1985~)가 규칙에 따라 축구를 잘한다고 해서 같은 규칙에 따라 야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게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누군가 “거시기를 좀 가져다주세요.”라고 했을 경우, ‘거시기’란 말은 다양한 의미에서 적용이 되고 있다. 구덩이를 파는 농부에게서는 ‘거시기’가 삽을 의미할 수 있고, 벽돌을 쌓고 있는 미장이에게는 ‘벽돌’을 의미할 수 있다.

세상에는 각자 규칙과 행동양식을 갖는 무수한 게임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규칙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항상 게임의 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말의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찾아 사용자에게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언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환경까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람의 여러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언어분석철학은 일상 언어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고 이해하려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비엔나 학단의 논리적 실증주의
금세기에 내적으로 단단하게 짜여진 하나의 학파를 이루어 철학적 운동을 새롭게 전개한 단체가 있다. 바로 비엔나 학단의 논리적 실증주의가 그것이다. 이 단체는 1929년 비엔나에서 『과학적 세계관』(Wissenschaftliche Weltanschauung)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일군의 철학자들이 동참하면서 논리적 실증주의가 출범하게 된다. 자칭 비엔나 학단이라 칭하는 이 단체는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 학단의 중심에는 세미나를 주재해가던 저명한 학자 슐리크Moritz Schulick(1882~1936)가 있었다. 슐리크는 독일에서 출생하여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납적 과학철학의 교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비엔나 학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학자는 카르납Rudolf Carnap(1891~1970)이다. 이 학단은 1930년부터 『인식』(Erkenntnis)이라는 정기간행물을 기관지로 삼고 있었지만, 그 간행물은 1938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히틀러 정권 치하로 병합되면서 중단되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비엔나 학파의 저명인사들은 각국으로 흩어져서 활동하게 된다. 카르납은 1931년부터 프라하에 정착하여 그곳의 독일계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난경에 처하자 1935년에 유럽을 떠나 미국 시카고로 이주하여 교수생활을 새로 시작하였다. 1954년 이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생을 마감했다.

비엔나 학단을 중심으로 활동한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적 주요 업무는 어떤 웅장한 이론체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진술되는 사상의 의미를 보다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하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일상 언어라는 것은 다의적이어서 애매하게 표현되어 사유에 많은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 실증주의는 이런 애매한 언어로 표현된 철학적 명제를 논리적으로 정밀한 언어로 환원함으로써 명제의 논리적 구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다.

논리실증주의의 첫 번째 작업은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무의미한 것으로 일언지하에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 우주의 존재 목적, 절대적인 신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 등 초감성적인 영역을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실증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프랑스 출신 꽁트Auguste Comte(1798~1857)는 경험될 수 있는 실증적인 사실들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형이상학적인 명제가 거짓임을 증명하려 했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단숨에 거부한다. 결정적인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주제가 사변적이거나 초경험적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에, 인식론적으로 전혀 무의미하여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다음으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 “정의적인”(emotive) 명제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들에 의하면, 언어로 표현되는 진술이 의미가 있으려면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명제여야 하는데, 이러한 명제는 자연과학에서 추구하는 ‘종합명제’(綜合命題)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다루는 ‘분석명제’(分析命題)뿐이다. 이외의 다른 명제들은 형이상학적인 명제이거나 단순한 정의적인 감정표현에 불과하므로 모두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진술이라는 얘기다.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종합명제와 의미 있는 분석명제이다. “철수는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진술은 종합명제의 예이다. 이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철수가 과연 청바지를 입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다. 분석명제는 그 진술에 사용된 개념의 정의(definition)에 의해서 타당성이 증명될 수 있다. “삼각형은 세 선분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이다”는 진술이 그 예이다. 이 진술의 진위 여부는 ‘삼’, ‘선분’, ‘다각’의 개념 정의로 인식되는 명제이다.

논리실증주의는 종합명제도 아니고 분석명제도 아닌 명제란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한 사이비 진술들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저 여자는 정말 아름답다”와 같은 미학적 진술, “저 여자는 참으로 착하다”와 같은 윤리적 진술, “전지전능한 신은 인류에게 전적으로 자애롭다”와 같은 종교적 진술 등은 모두 그 타당성이 검증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주장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진술은 오직 자연과학의 언어들뿐이다. 그렇다면 철학이 밝혀야 할 탐구주제는 오직 과학적 언어의 용법에 나타나는 개념을 분석하여 명료하게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논리실증주의는 철학이란 단지 과학의 논리학일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카르납은 “과학의 명제 이외에 철학만의 고유한 명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탐구한다는 것은 과학의 개념 및 명제를 논리적 분석을 통하여 명확하게 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한 도구가 새로운 기호 논리학이다.”(『Erkenntnis』)라고 주장한다.

논리실증주의의 두 번째 작업은 검증의 원리(the verification principle)를 확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진술을 안다는 것은 그 진술이 참이 될 조건과 거짓된 조건을 아는 것이며, 그것을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약은 달콤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진술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이를 검증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검증은 바로 경험을 통한 실험 관찰이다. 그러나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진술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검증할 방법이 없다. 경험으로 검증될 수 없는 이러한 명제는 언제 참이고 언제 거짓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 명제는 분석해보면 ‘신’과 ‘존재한다’라는 단순한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논리실증주가 제시하는 의미 있는 진술과 무의미한 진술의 구분,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실험 관찰을 통한 검증원리는 후대의 사상과 학문적 탐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오늘날 철학적 활동에 있어서 검증될 수 없는 주장이란 무의미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는데, 이는 바로 논리실증주의 사고방식에 기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6) 사회철학(Social Philosophy)


“선천에는 수명(壽命) 복록(福祿)이라 하여 수명을 앞세우고 복록을 뒤로하였으나 복록이 없이 수명만 있으면 산송장이라 마찬가지니라. 나는 복록을 먼저 하고 수명은 다음이니 그러므로 후천에는 걸인이 없느니라. 이제는 복록을 먼저 하라. 녹(祿) 떨어지면 죽느니라.” (『道典』 2:25:5~7)

1997년대에 우리는 IMF 관리체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사회 각 부분의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수난을 겪은 바 있다. 최근에는 일터로 뛰어들어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젊은 청년들이 직업난으로 말미암아 또 한 번 고충을 겪고 있다. 외연을 확장해 보면 지구촌에는 인종갈등, 이념의 대립, 산업화에 따른 기술과 무역경쟁 등으로 말미암아 전란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배후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질서와 공정하지 못한 생업활동의 문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의 분과는 사회철학의 범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의 역사를 조망해볼 때 사회철학의 발단은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을 밝혀, 줄기차게 실현하려고 노력해온 한 가지 주제에서 시작한다. 그 주제는 바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궁극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정의로운 인간, 정의로운 사회 혹은 정의로운 국가 건설에서 보는 “정의”이다. 왜냐하면 정의는 어떻게 하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규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에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인간 삶의 생존권 보장, 다양한 인간에게서 표출되는 적절한 욕구충족, 각자에게 부여되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보장받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을 본질적이고도 통합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경제적 가치의 공정한 분배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면 누구나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욕구와 각자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물질적 가치가 기본적으로 확보되어야 하고, 이를 근간으로 해서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얘기다.

경제의 물질적 가치에 대한 분배문제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정책은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대표적인 학자는 사회철학자이자 고전경제학자로 불리는 스미스Adam Smith(1723~1790)이다. 그는 1776년에 출간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최초로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했다. 자유시장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은 각자 사익을 추구하고, 자원 또한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이로부터 사회전체 또한 생산성이 높아져 이익이 증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 사회정책은 결국 ‘가난한 노동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자본가는 더욱 부자가 되는’[貧益貧 富益富] 기형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극단적으로 반대적인 평등주의 사회정책이 출현하게 된다.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이념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정책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회정책도 결국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최근에는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수정자유주의 사회정책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이론가는 롤즈John Rawls(1921~2002)이다. 그는 1971년에 출간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빈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검토되고 있는 편이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사회철학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산업사회에서 노동의 문제와 물질적인 재화의 재분배 문제로 집약된다.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과 관련된 허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마르크스K. Marx(1818~1883)는 “소외疏外”(Entfremdung)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재화의 분배문제를 다룬 롤스는 『정의론』에서 어떻게 하면 공정한 재분배가 실현될 수 있는가를 제기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이 두 인물이 내세운 중심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분석한 마르크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소비의 만능시대다. 자본가는 온갖 종류의 새로운 상품을 창출하여 소비자의 구매를 유혹하고 있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소비자는 원하는 대로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기호 가치를 표현하면서 자유를 누린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상품들은 소비자에게 자아실현의 물질적 조건으로 여겨지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상품소비의 자유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에게만 허용된다. 그런 물질적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자아실현의 추구라고 믿는 소비자는 결국 시장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돈이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아실현의 물질적 조건이 되는 금전의 사익추구는 인간본연의 의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이기심과 탐욕을 더욱 부추기게 되고, 이기심과 탐욕에 물든 인간은 순수한 사랑, 고귀한 명예심, 꺼림칙한 마음을 일으키는 양심, 지극히 존귀한 사람의 가치조차도 오직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 자본가는 경제주의 입장에 충실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인정사정을 두지 않으며, 이윤 증식을 위해서는 무엇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지 않고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한다. 반면에 무한한 물질적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한다고 믿는 소비자는 돈벌이에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가 말하는 인간의 “소외”(疏外)라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소외”란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소원(疏遠)해진 것을 일컫는다. 인간의 소외란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인간의 소외에 대해 헤겔G. W. Hegel(1770~1831)은 대자태(對自態)인 자연으로 외화(外化)된 의식을 말했고, 포이에르바흐L. Feuerbach(1804~1872)는 소외를 종교(宗敎)에서 찾았으며, 프롬E. Fromm(1900~1980)은 인간의 우상숭배에서 소외를 언급했고, 마르크스K. Marx(1813~1883)는 노동자가 겪는 산업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외를 통찰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소외를 일으키는 근원과 그 특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데서 인간의 소외가 비롯된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의 가치는 소유주에게 무한한 힘을 부여하는 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돈의 가치는 모든 가치를 지배하여 전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실을 불성실로 불성실을 성실로 전도시킬 수 있다든가, 미덕을 죄악으로 죄악을 미덕으로 바꿀 수 있다든가, 무지를 지성으로 지성을 무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든가, 노예를 주인으로 주인을 노예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신적인 힘이 바로 돈이라는 얘기다. 이와 같이 가치의 정상에 군림하는 돈의 위력은 인간의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유를 박탈당하며, 비인간화로 전락한다. 이와 같이 돈의 가치에 대한 숭배는 소외의 토대이자 근원이 된다.

둘째로, 임금노동자는 노동의 이윤으로부터 소외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계급은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로 양분될 수 있는데, 자본가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다. 특히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려고 한다면, 임금노동자나 새로운 기계의 도입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만일 임금노동자를 선택하였을 경우 자본가는 생산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노동자에게 지불하고 잉여분을 챙긴다. 임금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노동을 하지만, 잉여가치는 결국 자본가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따라서 임금노동자는 노동을 하면 할수록 이윤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내면적인 가치가 더욱 빈약해지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셋째로, 임금노동 자체가 소외의 원천이 된다. 사실 노동은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행위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임금노동자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고역이고, 자발적으로 행하는 창조적인 노동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기계적이고 즐거움이 없는 반복적인 작업의 연속일 뿐이다. 따라서 노동은 인간에게 자유로움과 보람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러한 강요된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무관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런 노동자는 동물처럼 단지 먹고 마시고 번식하는 기능을 할 때만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넷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산출해낸 상품은 노동자 자신과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려 소비되기 때문에, 임금노동자는 노동자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는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생산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임금노동자는 자기와 같은 종족을 생산해내는 데 필요한 만큼의 임금을 받아 생존해 나갈 뿐이다.

다섯째, 임금노동자는 생산 활동과 자신의 본질로부터 소외되고, 결국엔 본질이 속하는 유적존재(類的存在)로부터 소외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고립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 간의 유대관계를 통해 사회적인 유(類)를 반영하는 유적존재이다. 그러한 인간은 노동을 통한 생산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본질을 실현시키게 되지만,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창조적인 자기 활동성과 자유로운 활동성이 사라지고, 오직 삶을 위한 노동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로부터 소외된다. 결국 그러한 인간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분리되어 사회적 관계인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된다.

여섯째,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동료들로부터 소외된다. 특히 노동의 분업은 노동자들의 소외를 더욱 가속화시키기 마련이다. 즉 노동의 분업으로 인하여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의 이익으로부터 분리되고, 개인들의 관계는 이기적인 타산의 관계로 변질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인간행위로부터 소외되어 결국 인간은 서로서로 이방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방인으로 전락한 인간들 간의 관계는 인격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맺어지게 마련이다.

일곱째, 인간의 소외는 노동자만의 특권이 아니고 노동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가도 마찬가지이다. 임금노동자는 노동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외되고, 자본가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소외된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자기 소외는 결국 인간이 자주성을 상실하는 데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즉 인간은 자유롭고 능동적인 창조활동이나 자기 본질의 표현으로서 노동해야 하는데, 노동으로부터 산출된 상품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인간의 본질이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되어 인간들로부터의 소외가 초래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을 폐기하여 노동자와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류의 정의사회구현은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사회(국가)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일찍이 세심하게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이다. 그는 『국가론』(Politeia)에서 ‘누가 정의로운 사람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정의(正義)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성의 분별력이 달리는 사람은 ‘정의’를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정의를 쉽게 알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플라톤은 우선 덩치가 커서 식별하기 쉬운 정의로운 국가를 논리적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생산자 계급, 무사 계급, 통치자 계급이 맡은 바 업무를 질서 있고 통일적인 조화로서 수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롤스의 정의관은 플라톤의 입장과 다르다. 롤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구현된 정의가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실질적인 기회평등을 보장하여 각자가 최선의 자아실현을 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본 것이다. 그러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의 기본구조가 공정한 원칙에 입각해서 짜여져야 하고, 다음으로는 모든 제도가 공정한 원칙에 따라서 정립돼야 한다고 롤스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는 학자는 사회의 기본구조를 위한 규범을 밝힐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여야 한다. 정의의 원칙이란 규범체계에 있어서 직위와 직책이 규정되고, 그에 대한 책임과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여러 제한사항을 정식화하는 것이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의 원칙은 인간의 삶에 미리 주어져 있다고 보지 않고, 인간이 주체적으로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한 정의사회의 원칙은 원초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로부터 나온다. 즉 정의사회의 원칙은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대표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고 타당성이 있는 공동체의 기본조건을 규정하기 위해 채택하는 원칙들이다. 사회정의의 원칙은 두 측면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 그것이다.

첫째,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란 요컨대 정치적 자유(선거권과 피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사유재산 및 신체의 자유, 그리고 법의 테두리로 규정되어 있는 바 부당한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 등이다. 정의로운 사회의 시민들은 누구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둘째, ‘차등의 원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사회적 내지 경제적 불평들을 규정하는 체계를 말하는데, 소득 및 재산의 분배와 권한, 책임과 명령계통 등에서 차등을 두는 규정이다. 롤스는 첫 번째의 기본적인 자유에 관한 평등의 원칙을 설정하였지만,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분배문제에 있어서는 차등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의 차등은 직위와 직책상의 차별이 아니라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결부되는 특권이나 부, 혹은 과세에 대한 부담, 강제적 봉사 등의 이득과 부담을 달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등이 적용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배분에 있어서 더 많은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차등의 원칙’은 다시 “기회균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으로 세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회균등의 원칙’은 일률적인 분배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에게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정당한 경쟁조건을 마련하여 실질적인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특수한 이익을 가져오는 직책에 오르는 것을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실행될 수 있도록 한다든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함에 있어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불평등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의한 것이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

다음으로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이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균등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원칙에 근거해서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기 힘든 빈민이나 실업자, 노령이나 장애인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역차별적(逆差別的)인 분배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역차별적 분배란 이들에게 무상교육이라든가, 각종 연금을 통한 생계유지라든가, 최대한의 의료보장 등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정의의 원칙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런 원칙들이 요구하는 것 간에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해서 롤스는 충돌을 해결하기에 필요한 우선순위의 규칙을 마련한다.

첫 번째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두 번째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분배에 있어서 ‘차등의 원칙’에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이는 부와 소득의 분배 및 권력의 계층화는 반드시 동등한 시민권의 자유와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한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정의사회 구현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유는 사회적 경제적 이익과 교환될 수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의 ‘차등의 원칙’은 효율성이나 이익의 극대화를 동반하는 어떠한 원칙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또한 ‘차등의 원칙’에서 ‘기회 균등의 원칙’은 ‘최소 수혜자 최대이익의 원칙’에 우선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롤스의 정의론은 평등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 모두가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하여 불공정한 사회문제들이 우후죽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롤스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여 수정자유주의를 옹호하게 됐던 것이다. 특히 사회구성원의 기본적인 자유가 평등하게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국가의 개입을 인정하게 되고, 국가의 업무란 누진세, 상속세, 직접세를 늘려 경제적 자본을 확보하여 이를 사회구성원들의 복리증진에 힘쓰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공정한 정의사회구현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 롤스의 입장이다.



☞ 다음 호 목차
신(神)은 존재하는가 1. 서양의 철학자들은 신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