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럽적인 아시아 국가, 싱가포르 Singapore

[세계지역문화탐방]

편집부
싱가포르는 중국 문헌에 3세기경 파라주婆罗洲(Pu Luo Chung)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13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자獅子의 도시라는 뜻의 ‘싱가푸라Singapura’라는 국명을 사용한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 이후 싱가포르는 14세기에 무역도시로 떠올랐으며 16세기에 포르투갈,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들어갔다가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간의 조약에 의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1942년 일본에 의해 강점되기 전까지의 118년과 2차대전 이후부터 1959년 자치정부 수립까지 14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연방을 탈퇴하고 마침내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동안 싱가포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국의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모습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독립 이후 다인종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내린 정부의 결단과 강한 추진력으로 강력한 국가경쟁력을 갖추게 된 싱가포르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자연환경과 역사


영토와 자연환경
싱가포르Republic of Singapore는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도시국가, 경찰국가, 기업국가이다. 북쪽의 조호르Johor 해협과 남쪽의 싱가포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각각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약간 분리되어 위치해 있으며, 싱가포르 섬과 6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3분의 2 가까이가 해발 15m 미만의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고 영토의 2%만이 경작이 가능하나 생산성은 매우 높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르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북쪽은 조호르-싱가포르 코즈웨이Causeway 다리를 통해, 서쪽은 투아스Tuas 제2 연결점에 연결되어 있다. 주롱Jurong 섬, 풀라우 테콩Pulau Tekong, 풀라우 우빈Pulau Ubin, 센토사Sentosa가 주요 섬이며, 가장 높은 산은 부킷 티마 힐Bukit Timah Hill로 해발 166m이다. 본섬의 중심에 위치한 싱가포르 강의 남쪽이 원래 도시의 발단이었으며 현재 이곳은 금융 중심 지역인 다운타운 코어Downtown Core로 불린다. 이전에 그 외 지역은 농장과 열대우림이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도시의 확장과 함께 거주와 쇼핑 그리고 산업 단지로 바뀌었다.

싱가포르는 계속적인 간척 사업으로 1960년대에는 국토 면적이 581.5㎢에서 현재는 719.1㎢로 확장되었다. 이는 서울(605.25㎢)보다 약간 큰 면적이다. 2030년까지 100㎢를 더 확장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은 섬이 본섬과 연결되었는데, 주롱 섬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기후는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연중 무더운 날씨가 지속된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여 매년 11월~1월까지는 북동몬순 시기, 6월~9월까지는 남서몬순 시기이다. 몬순 시기에는 비가 자주 오며 북동몬순 때는 기온이 2℃~3℃ 정도 낮아진다. 연평균 최고 기온은 31.0℃, 최저 기온은 24.1℃이고 연평균 강우량은 2,346㎜, 평균 습도는 오후 2시 기준으로 84.2%이다.

싱가포르는 대체적으로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 재해 등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 체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자연재해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단,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자주 오며 이에 따라 낙뢰로 인한 인명피해가 종종 발생하므로 야외 활동을 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싱가포르의 역사
초기 및 근대 싱가포르

초기 역사
싱가포르에 관한 역사적 기술로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경 중국 문헌의 기록 ‘파라주婆罗洲(Pu Luo Chung)’이다. 이는 ‘반도 끝의 섬’이라는 뜻으로 말레이어의 플라우 우종Pulau Ujong(섬 끝의 땅)에서 음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3세기에 싱가포르 국명에 대한 기록이 중국 문헌에 나오는데, 수마르다 지역 스리위자야 왕국Srivijaya Kingdom의 트리부아나 왕이 표류하여 지금의 싱가포르에 상륙한 후 사자獅子Lion를 목격하고는 싱가푸라Singapura(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고 명명한 것이 싱가포르 국명의 유래이다. 싱가포르의 플러톤 로드에 위치한 관광 명소인 머라이언 공원에 가 보면 머리는 사자, 몸은 물고기 형상을 한 높이 8.6m의 ‘머라이언Merlion’ 동상이 입에서 분수처럼 물을 내뿜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 동상은 싱가포르의 국가적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1365년에는 자바인의 문헌에 싱가포르를 테마섹Temasek(sea town, 항구도시)으로 기록한 것이 나타난다. 테마섹은 다양한 나라의 선박이 기항하면서 중요한 무역도시로 떠올랐으나 14세기경에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14세기 후반경에는 싱가푸라Singapura라는 표현이 통칭적으로 사용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이 말레이반도 서쪽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말라카Malacca를 점령하자 말레이 제독이 싱가푸라로 도망한 후 조호르 라마Johor Lama에 새로운 수도를 세우고 싱가푸라에는 별도의 관헌을 유지했다. 그러다 1587년 포르투갈이 조호르 라마를 멸망시키고 이어 1613년 싱가푸라를 불태워 싱가포르에 관한 모든 자료와 기록이 소실되었다. 이후 싱가포르는 16세기 동안에는 포르투갈Portugal의 지배를 받았으며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는 네덜란드Netherlands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영국식민지 시대(1819~1941)
1818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총독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남서쪽에 있는 벵쿨루Bengkulu 주 부총독인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 경에게 지금의 싱가포르 지역에 무역 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허가했다. 래플스 경은 1819년 조호르Johor 왕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싱가포르를 국제무역항으로 개발했으며, 이때부터 싱가포르는 크게 성장하였다.

1824년 조호르 국왕은 싱가포르를 영국 동인도회사에 영구 할양했고 1826년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서쪽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믈라카Malacca 및 말레이시아 서북부에 있는 항구도시 페낭Penang에 흡수되어 동인도회사 지배하의 해협식민지(The Straits Settlements)를 구성했다. 해협 식민지의 관할권은 1830년 인도의 뱅갈Bengal 총독에게 이전되었다가 1851년 인도 총독의 직속 관할이 되었으나, 이후 싱가포르가 지속 성장함에 따라 인도 총독의 행정력 부족 등으로 인해 1867년 싱가포르의 관할은 영국 식민지청으로 이관되어 정식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Crown Colony)로 편입되었다.

1820년대 이후 싱가포르는 말라야 반도에서 생산되는 고무와 주석의 교역항으로서 발전하였고, 1842년 난징조약 체결로 인한 중국과의 통상 확대,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등을 계기로 싱가포르는 국제무역항으로서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일본 점령 시대(1942~1945)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싱가포르는 ‘동방의 지브롤터Gibraltar’로 불리면서 동남아 주둔 영국군의 주요 교두보 역할을 하였으나, 영국군이 싱가포르 전투(Battle of Sinagpore)에서 패배함에 따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경험하였다.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1942년 중국 국민당을 지원하는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들을 반反일본 성향으로 간주하고, 약 5만~1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학살(숙칭肅淸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자치정부 및 말레이시아 연방시대

자치정부 시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에 따라 싱가포르는 1946년 총독이 지배하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환원되었으며, 영국은 크리스마스Christmas 섬과 코코스Cocos 섬을 관할하였다. 이후 싱가포르 주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태동함에 따라 영국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단계적으로 자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형태의 식민정책으로 전환하였다. 1948년 최초의 선거가 실시되어 22명의 입법 의원 중 6명을 직선제로 선출하였고(나머지는 총독 또는 상업회의소가 임명), 1951년에는 25명의 입법 의원 중 직선 선출 의원 수를 9명으로 증원하였는데 진보 정당(Progressive Party)에서 6명, 노동당(Labour Party)에서 2명, 무소속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55년에는 신헌법을 채택하여 32명의 입법 의원 중 직선 선출 의원 수를 25명으로 선출하기로 결정(코코스 섬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관할권 이전)하였다.

1957년 런던에서 개최된 헌법 회의는 원칙적으로 싱가포르가 독립국가가 된다는 데 동의하고 싱가포르에 대해 완전한 국내 자치권을 인정하되, 외교 국방 및 헌법 정지에 관한 권한만 영국 정부가 보유하기로 결정하였다. 1958년 싱가포르 국가 법(The State of Singapore Act)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싱가포르 국가 성립 및 싱가포르 시민권 부여 등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크리스마스 섬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관할권이 이전되었다. 1959년 5월 30일에는 전체 입법 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어 총 51석 중 인민행동당PAP(People’s Action Party)이 43석을 차지하여 자치 정부를 구성하였고 같은 해 6월 5일에는 8선 국회의원인 리콴유Lee Kuan Yew(李光耀)가 자치 정부의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말레이시아 연방 시대
1961년 5월 27일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man 말레이 총리는 말라야Malaya 연방, 싱가포르Singapore, 사라왁Sarawak, 브루나이Brunei 및 북보르네오北Borneo(현 사바Sabah)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 설립을 제의하였고 싱가포르 정부는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1962년 8월 1일 영국과 말라야 연방은 1962년 8월 말까지 말레이시아 연방을 설립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싱가포르는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1962년 9월 1일에 실시하였다. 투표 결과 73%가 말레이시아 연방 구성원이 되는 데 찬성하여, 1963년 7월 9일 말레이시아 협정 서명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16일에 말레이시아 연방이 성립됨으로써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연방 창설 이후 연방정부와 싱가포르 주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정책에 대해 이견을 보였으며, 1964년에는 인종 문제로 인한 폭동이 싱가포르에서 발생하였다. 결국 싱가포르는 인종 정책에 관한 갈등과 이념적인 차이로 인해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하여 독립국가로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공화국 시대(1965~ 현재)

리콴유 시대(1965~1990)
독립 국가로 재출범하면서 리콴유李光耀 자치정부 총리는 다시 독립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하여 26년간 재임을 했다. 리콴유는 확고한 신념과 냉철한 현실 감각, 그리고 유연한 정치 감각을 갖춘 지도자로서 싱가포르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해 나가는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는 물론 세계 수준의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고, 싱가포르가 세계 최고의 깨끗한 정부로 발돋움하는 데에도 절대적 역할을 한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65년 9월 21일에 국제연합UN(United Nations)에 가입했고 같은 해 10월 15일에는 영국 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에 가입했다. 곧이어 12월 22일에는 헌법을 개정해 국명을 싱가포르공화국(The Republic of Singapore)으로 바꾸고 국가 원수를 대통령으로 개정하여 유소프 빈 이샥Yusof bin Ishak 초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1967년 8월 13일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결성했으며 1968년 4월 13일 총선거를 실시해 인민행동당PAP(People’s Action Party)이 58석 전 의석을 차지했다. 1970년 11월 23일 유소프 빈 이샥 대통령이 사망하고 1971년 1월 2일 벤저민 시어스Benjamin Henry Sheares 제2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1971년 10월 31일 영국 극동사령부가 폐쇄됨에 따라 1972년 9월 2일에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인민행동당이 65석 전全 의석을 차지했다. 이후 1976년과 1980년 총선에서도 인민행동당이 전 의석을 차지함으로서 패권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화하였으며, 1981년 안손Anson 선거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노동자당WP(Workers’s Party) 사무총장인 조슈아 벤저민 제야레트남Joshua Benjamin Jeyaretnam이 당선됨으로서 최초로 야당의원이 원내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1년 5월 12일 벤저민 시어스 대통령이 사망하고 10월 24일 챙가라 비틸 드반 나이르C. V. Devan Nair 제3대 대통령이 취임하였으나 1985년 3월 29일 알코올 중독으로 사임하는 일이 일어났으며, 같은 해 9월 2일 위킴위Wee Kim Wee(黄金辉, 黃金輝) 제4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1986년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외국 언론의 싱가포르 내 배포 부수를 제한하기 위한 ‘언론출판법(Newspaper and Printing Press Act)’ 개정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같은 해 10월, 법무전문직법(Legal Profession Act)을 개정하여 자격정지 전력이 있는 자의 변호사협회 간부직 취임을 제한함으로써 변호사협회 회장인 프란시스 소우Francis Seow(萧添寿)가 자동 해임되었으며, 11월 10일 제야레트남 의원이 노동자당 회계 허위 신고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1987년 5월 21일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가톨릭 활동가, 전문 직업 종사자 등 16명을 공산주의 활동 혐의로 구금했고, 6월에 20명을 추가 구금하였다가 12월까지 순차로 주동자 빈센트 챙Vincent Cheng(鄭海泉)을 제외한 21명을 석방했다. 1988년 5월 7일 싱가포르 정부는 주駐싱가포르 미국 대사관 핸드릭슨E. M. Hendrickson 1등 서기관을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이유로 추방했고, 전날인 5월 6일에는 프랜시스 소우 전前 변호사협회 회장을 핸드릭슨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구금했다. 이어 5월 18일 연대 출마 방식의 집단 선거구 제도에 관한 헌법 및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9월 3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81석 중 인민행동당이 80석을 차지하고 치암시통Chiam See Tong(詹时中) 싱가포르민주당SDP(Singapore Democratic Party) 사무총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고촉통 시대(1991~2004)
1990년 11월 28일 리콴유 총리가 사임하고 고촉통Goh Chok Tong(吳作棟) 부총리가 총리에 취임했다. 1991년 1월 3일 헌법을 개정하여 6년 임기의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고 같은 해 8월 31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81석 중 인민행동당이 77석, 싱가포르민주당 3석, 노동당이 1석을 차지했다. 9월 7일에는 고촉통 총리 내각이 출범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선임장관(Senior Minister)에,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Lee Hsien Loong(李顯龍)은 부총리 겸 통상산업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93년 8월 28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옹텡청Ong Teng Cheong(王鼎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9월 1일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7년 1월 2일 총선거를 실시해 총 83석 중 인민행동당이 81석, 노동자당이 1석, 싱가포르인민당SPP(Singapore People’s Party)이 1석을 차지했다. 1999년 8월 28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셀라판 라마 나단Sellapan Rama Nathan이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9월 1일에 취임했다. 2001년 11월 3일 총선거가 실시되어 총 84석 중 인민행동당 82석, 노동자당 1석, 싱가포르인민당이 1석을 차지했다. 무선거구 의원은 국민단결당NSP(National Solidarity Party)이 1석이고 지명 국회의원은 9석이었다. 2002년 3월 25일 제 10대 국회가 개원하였고 국회의장으로 압둘라 타르무지Abdullah Tarmugi를 선출했다.

2003년 5월 6일 싱가포르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에 서명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4일 말레이시아와 페드라 브랑카Pedra Branca 섬 영유권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ICJ(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공동 회부했다.

리셴룽 시대(2004 ~ 현재)
2004년 8월 12일에는 리셴룽Lee Hsien Loong(李顯龍)이 총리에 취임했다. 리콴유 선임장관(Senior Minister)은 고문장관(Minister Mentor)에, 고촉통 전 총리는 선임장관에 임명되었다. 2005년 8월 18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 나단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2007년 8월 2일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의장국을 수임했고 2009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의장국을 수임해 그해 11월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2011년 5월 실시된 총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이 승리하여(총 87석 중 인민행동당 81석, 노동자당 6석) 5월 20일 리센룽 내각이 출범하였고, 리콴유 고문장관과 고촉통 선임장관은 내각에서 공식 퇴진하였다. 같은 해 8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토니 탄Tony Tan Keng Yam(陳慶炎)이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9월 1일 취임하였다. 이후 2012년과 2013년 실시된 2차례의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인민행동당이 노동자당 후보에게 패배하였고, 2012년 11월 버스노동자 파업, 2013년 2월 정부의 인구정책에 대한 대규모 항의시위가 발생하였다. 가장 최근인 2015년 9월 싱가포르 총선에서는 리센룽 총리의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이 70%에 육박하는 69.9%의 지지율로(2011년 총선보다 10% 포인트 가량 지지율 상승) 89개 의석 중 83개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함으로써 앞으로 5년 동안 더 집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싱가포르 총선 사상 처음으로 야권이 모든 선거구에 입후보하면서 여야간 사상 최대의 접전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야권의 선두두자였던 노동자당WP의 득표율은 지난 선거보다 6.8% 하락한 39.8%를 기록해 6개 의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여당은 독립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던 2011년 때의 득표율(60.1%)을 10% 가까이 회복(69.9%)시키면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정치 및 행정


싱가포르는 영국 의회정치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의회주의식 공화제 정부 구조를 취하고 있는 바, 대통령 직선제하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는 단원제이다.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다가 1991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했으며 의회 의원 선거법 개정을 통해 복수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투표로 의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이고 대통령이 다수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서 임명하는데, 총리는 실질적인 정권을 위임받은 내각의 대표이며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위치에 있다.

정치체제의 특징

싱가포르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인민행동당은 리콴유 전 총리가 “인민행동당은 곧 정부이고, 정부는 곧 싱가포르”라고 언급할 정도로 1959년 이래 의회 내에서 압도적 다수의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장기 집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인민행동당에 대응할 만한 정치적인 대안 세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인민행동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주택, 취업, 사회복지와 같은 일반 대중의 현실적 요구를 적기에 파악해 정책에 반영시키고 있어 전폭적인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인민행동당이 장기 집권을 함으로써 싱가포르는 과도한 정치 과정에 따른 사회적 비용 지출이라는 단점을 해소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한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 구조 및 언론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선거구는 의원 2인 이상 선출의 집단선거구(GRC, Group Representation Constituency) 및 1인 선출의 단독선거구(Single-seat Wards)로 구분되나, 집단선거구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동일 정당에서 1개 집단선거구 선출 의원 수인 5 내지 6명과 동일한 수의 후보자 명단을 제출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군소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언론출판법(Newspaper and Printing Press Act)에 따라 신문 및 방송 분야를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SPH(Singapore Press Holdings) 및 싱가포르 미디어 코퍼레이션MCS(Media Corporation of Singapore)을 통해 정부가 관장함으로써 통제된 언론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행정부

대통령 싱가포르의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지만 상징적이거나 실질적 권한이 없는 직책이었다가, 1991년 헌법 개정에 따라 권한이 대폭 확대되었다. 헌법 제22조를 통해 대법원장 및 대법원 판사, 검찰총장, 군 참모총장, 경찰청장, 부패행위조사국장 등 주요 공직자의 임명에 대한 거부권과 정부의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을 보장받았다. 부패행위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이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고자 총리실 직속의 부서로 설치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직선제로 선출되고 임기는 6년이다. 2017년 8월 현재 싱가포르의 대통령은 2011년 8월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9월 1일에 취임한 토니 탄 켕 얌Tony Tan Keng Yam(陳慶炎)이다. 싱가포르는 2017년 9월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내각 싱가포르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행정부의 구성원인 총리와 각 부처의 구성원들은 의회 의원이어야 한다. 총리는 대통령이 다수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임명하며, 총리는 정치 및 행정 각 분야에 대해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다. 그러나 헌법에는 총리의 자격에 관한 어떠한 조항도 없으며 임무와 권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명시되어있다. 총리는 내각회의를 주재主宰하고, 내각의 어떠한 행정부처의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각은 총리실과 14개 부로 구성되며 장관은 대통령이 총리의 추천에 따라 임명한다. 2017년 현재 싱가포르의 총리는 2004년 8월 12일에 취임한 리셴룽Lee Hsien Loong(李顯龍)이다. 총리실의 기능은 각 부처의 활동과 정부 일반 정책에 대한 조정과 주요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공무원 채용과 임용·보수·교육 훈련 등 공무원 관련 업무와 국기와 국가, 선거 관련 업무도 총리실 관할이다.

지방행정 싱가포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국가여서 별도의 도시 개념보다는 여러 개의 ‘도시계획구역’을 정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행정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라는 하나의 큰 도시 안에서 여러 마을 단위로 분할하여 구역을 나누고 행정을 집행한다고 보면 된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서부, 북부, 북동부, 동부, 중부의 5개 지역으로 나뉘며, 베독Bedok, 주롱웨스트Jurong West, 퀸즈타운Queenstown 등 55개의 도시 계획 구역으로 분할되어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정 여건상 좁은 면적, 적은 인구의 도시국가로서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치 개념이 부재하다. 따라서 시·구청, 동사무소에 해당하는 행정 조직은 없으며,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 과정에서 의견 수렴 등을 목적으로 지역개발 협의회를 설치하여 자치 서비스와 주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종 간 화합과 공동체 의식 고양을 위해 국민협회PA(Peoples Association), 시민 자문위원회CCC(Citizen’s Consultative Committee), 커뮤니티클럽 관리위원회CCMC(Community Club Management Committee) 등과 같은 일선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협회PA는 1800여 개의 민간조직 등에 대한 행정을 지원하며 2010년 6월 현재 의장은 리셴룽李顯龍 총리이다. 시민 자문위원회CCC는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수렴하여 정부에 전달하는 기능을 맡고 있으며, 커뮤니티클럽 관리위원회CCMC는 문화, 스포츠, 교육 등을 관할한다.

입법부

싱가포르의 입법부는 1955년 제정된 랜들헌법(Rendel Constitution)에 따라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는 21세 이상 유권자의 직접 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 임기 5년의 국회의원(현 84석), 무선거구 의원(1석),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기 2년 6개월의 지명 국회의원(9석) 등 총 94명으로 구성된다. 입법부의 기능은 법률안 및 예산안 심의·의결 및 주요 국정을 논의하는 것이며 특징은 장관(Minister), 국무장관(Minister of State), 정무차관(Parliamentary Secretary) 등으로 임명된 국회의원 이외의 의원은 일반 직업의 겸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직위를 가지지 않은 국회의원(backbencher)에게는 수당만 지급한다.

싱가포르 입법부의 특이한 점은 무선거구 의원NCMP(Non-Constituency Member of Parliament) 제도로 야당이 총선에서 3석 미만의 의석을 획득했을 때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한 야당 입후보자를 의원으로 추천하는 제도이다. 싱가포르 입법부는 특권 위원회, 선출 위원회 등 7개의 상임위원회를 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주요 정당은 인민행동당PAP(People’s Action Party), 노동자당WP(The Worker’s Party), 싱가포르인민당(Singapore People’s Party)이다. 인민행동당은 1961년에 창당했으며 2010년 6월 현재 82석을 차지하고 있다. 인민행동당은 평상시에는 활동도 없고 별도의 사무국 조직도 없다. 노동자당은 1961년에 창당했으며 의석은 하나이다. 싱가포르인민당은 1993년에 싱가포르민주당SDP(Singapore Democratic Party)에서 탈퇴하여 창당했으며 마찬가지로 의석은 하나이다.

사법부

싱가포르의 사법부는 대법원과 하급법원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은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이며, 하급법원은 지방법원·치안법원·소년법원·검시법원(Coroners’ Court) ·소액청구사건법원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장은 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여타 대법원 판사는 총리가 대법원장과 협의를 거쳐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외교정책

싱가포르는 ASEAN 국가와의 선린 우호관계 유지를 골자로 하는 중립과 균형의 현실주의 외교를 추구하며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 신뢰성 있고 억지력을 갖춘 국방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세안ASEAN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지역 통합 강화를 통한 대외 발언권을 확보하며, 동남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안보 및 평화로운 환경 조성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 무역체제 구축을 통한 싱가포르의 경제발전과 지속적 번영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 외교정책의 결과로 유엔, 77그룹 등 다자무대에서도 국가 규모를 넘어선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고 유엔에서 소규모 국가그룹인 3G(Global Governance Group)의 리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국제기구에서의 확고한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협력포럼(FEALAC)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국제적 주요 이슈별 의제 설정 시 주도권 확보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소국으로서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경제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다자기구를 통한 경제관계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국제기구 유치 노력을 지속하며 미국,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중국, 인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체결 및 중국의 WTO 가입 지원 등을 통하여 세계의 주요 경제국과의 양자 경제 협력관계 증진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에 유리한 국내 환경을 조성하여 싱가포르가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한 결과 7,000여 개의 다국적 기업이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다(60% 이상이 지역본부 역할). 

3. 경제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 전략

싱가포르는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거의 전무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대외 개방형 경제를 추구함으로써 세계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로 발전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1970년대에 외자를 이용한 수출 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여 높은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전자·기계·제약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제조업과 금융, 물류, 통신 등 제반 서비스가 통합된 국제적 비즈니스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공동 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식 기반 위주의 경제 구조 전환을 추진하여 미래 산업 개척 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며 연구 개발,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허브를 추진하고 있고 복합 리조트 건설을 통한 관광 산업 육성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싱가포르 경제의 주요 특징

싱가포르 경제의 주요한 특징으로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무역 자유화 및 외자 유치를 통한 세계적 비즈니스 센터 수립이다. 싱가포르는 중개 무역항이라는 입지 조건을 활용하기 위해 무역 자유화에 나서는 한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 환경 개선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무역액은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의 3.5배로, 40% 이상이 중개무역이며, 주류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모든 물품이 무관세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교통, 물류, 금융, 원유 거래의 중심지로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총 5개 컨테이너 터미널과 45개 선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항으로 세계 환적량의 5분의 1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2009년에 2,587만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s)의 컨테이너를 처리하여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싱가포르의 창이Changi 공항은 85개 항공사가 주 5,000회 이상의 정기 항공편을 운항하는 세계 항공 허브로서 60개국, 200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외환 거래 및 자산 운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제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다. 2010년 런던 금융 특구 발표에 따르면 세계 제4위를 기록했다. 또한 싱가포르의 외환 시장은 런던, 뉴욕, 취리히, 도쿄에 이은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9년 말을 기준으로 110개 외국 은행이 소재하여 외국 은행 기준으로는 세계 4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자산 운용 규모는 1조 싱가포르 달러(670억 미국 달러) 내외이며, 이슬람 금융 등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확장 전략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뉴욕, 런던에 이은 세계 3대 원유 거래 시장이며, 세계 최대의 선박용 석유(bunkering oil) 거래 시장이고, 아시아 최대의 석유제품 공급 센터(아시아 지역 석유제품 가격 설정 시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셸Shell, 에소Esso, 칼텍스Caltex, 브리티시 페트롤륨BP(British Petroleum), 모빌Mobil 등 세계 메이저 석유 회사가 진출해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의 두 배가 넘는 1,0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대국으로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를 하며 연중 각종 국제회의, 전시·박람회가 개최된다. 의료 허브 및 교육 허브 육성 정책을 통해 외국인 유치를 도모하며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 리조트를 건설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서비스 중심의 산업구조이면서 제조업도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의 68.9%로 산업의 주종을 이루며, 그 외 제조업이 18.2%, 건설업 6.2% 순으로 비중이 높으며, 농림·어업이나 광업은 거의 전무하다. 서비스산업은 싱가포르 경제의 중심이며 정부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자유화 조치 및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비스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제조업은 다국적기업의 유치 및 국내 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며 다국적기업의 판매망 이용 등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석유화학과 전기·전자가 제조업의 중심이었으나 2009년 들어 바이오 허브, 항공 허브 육성에 중점을 두면서 기계류 및 생의학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2009년 총 산출액을 기준으로 한 제조업 업종별 비중을 살펴보면 화학이 27.4%(이 가운데 원유 제품은 14.9%, 화학제품이 12.4%를 차지), 전기·전자 31.5%(이 가운데 반도체가 17.8%를 차지), 생의학 10.0%(이 가운데 제약이 8.5%를 차지), 정밀 기계 9.1%, 운송 기계 13.4%, 일반 기계 8.8%를 차지한다.

네 번째로 국영기업과 다국적기업이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는 정부 투자회사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가 주요 기간산업의 최대 주주이며, 순수 민간 기업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즉, 항만에 싱가포르 항만공사PSA(Port of Singapore Authority), 통신에 싱텔SingTel(Singapore Telecommunications), 항공에 싱가포르 항공(Singapore International Air Line), 금융에 싱가포르 개발은행DBS(Development Bank of Singapore), 방송에 미디어코프MediaCorpia 등 이들 기업의 최대 주주가 테마섹 홀딩스이며 이 기업들은 많은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어 정부 연관 기업GLS(Government Linked Companies)이 1,000여 개가 넘는다. 그러나 정부 연관 기업 등도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고 있으며,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국 자본, 기술, 고급 인력의 유입 정책으로 7,000여 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진출하면서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의 40% 이상이 외국 기업 및 외국인으로부터 발생하고 총 투자의 90% 가까이가 외국인 투자로 구성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최근 경제 동향과 전망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 거품(bubble)과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극심한 부진을 보였던 싱가포르 경제는 2004년 이후 세계 경제 호조에 따른 수출 증대와 각종 서비스 산업의 호조로 상승세를 탔고, 2008년 들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하는 가운데 하반기에 발생한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세계경제 위기로 연결되면서 2008년 성장률이 1.1%로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2009년에도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되었으나 정부의 확대 재정 정책과 세계경제의 회복 추세에 힘입어 하반기에는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하였다. 최근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2014년 3.6%, 2015년 1.9%, 2016년에는 2.0%를 기록했다.

2017년 일사(1/4)분기 중 싱가포르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2.7%로 전前 분기(2.9%)에 이어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반도체 및 반도체 관련 정밀기계, 운수창고업이 수출 증가에 힘입어 호조를 보인 데 주로 기인한 것이다. 산업별로는 건설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였으나, 제조업이 높은 성장을 보이고 서비스업도 다소 회복된 상태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해 미국과 ASEAN 경제 성장률이 내수를 중심으로 상승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2016년보다 다소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반면 중국 경제는 중공업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소폭 둔화되고 유로 지역은 민간소비 부진으로 완만한(modest)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경제는 글로벌 경제 회복에 따른 반도체 수출 증가 등으로 반도체 및 관련 정밀기계 부문과 운수창고업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 반면, 건설업은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노동시장 부진에 따른 민간소비 제약으로 음식 및 소매업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경제성장률인 2.0%를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반反세계화 확산에 따른 글로벌 무역 위축 가능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및 트럼프 미대통령 관련 정치적 불확실성, 긴축적 통화정책 시행에 따른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을 하방리스크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반세계화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경우 글로벌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중국이 금융 부문 레버리지 및 위험 축소를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민간신용(credit)이 급격히 감소할 경우 중국 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6년 싱가포르의 총 교역은 8,702억 달러(싱가포르 달러 기준)로 전년 동기 대비 4.9%가 하락했다. 그중 수출은 4,669억 달러, 수입은 4,033억 달러를 기록했다. 싱가포르는 2017년 일사(1/4)분기 중 수출 및 수입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0% 및 15.6%로서 전 분기(2.1% 및 6.1%)에 비해 크게 상승하였다. 일사분기 중 종합수지 또한 경상수지 흑자 폭이 확대되고 자본수지 적자 폭은 축소되면서 166억 달러 흑자로 전환되었다. 2017년 IMF 기준 싱가포르의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2,919억 달러(US$)로 세계 40위 규모이고, 1인당 GDP는 51,431달러로 세계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4. 사회와 문화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로서의 통합을 위하여 종교(불교, 회교, 기독교, 힌두교)에 따라 상이한 사회 관습을 존중하고 있다. 공동 질서 유지를 위하여 중벌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도시국가, 정원 국가를 표방하며 ‘동남아의 별’로 부르고 있다. 주택 자가 점유율은 2009년 말 88.8%로, 주택의 84%가 공공 아파트HDB(Housing and Development Board)로 구성되어 있다.

민족 구성과 인구
싱가포르는 국민의 74.7%가 중국계이고 말레이계 13.6%, 인도계 8.9%, 기타 2.8%로 이루어져 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로 구성된 복잡 사회인 점을 고려하여 국민을 통합하고자 1991년 ‘공유가치(Shared Values)’에 대한 백서를 발표하여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이라는 생태적 종족 명칭을 쓰기보다 ‘싱가포리언Singaporean’이라는 통합된 의미의 국민 정체성을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2016년 7월 추정치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총 인구는 영주권자와 외국인을 포함하여 약 578만 명이다. 인종 구성은 중국계 74.7%, 말레이계 13.6%, 인도계 8.9%, 기타 2.8%이다. 싱가포르는 1987년 전까지 경쟁력 있는 국가 창출을 위해 고학력·고소득층에 대하여는 출산을 권장하고, 저학력·저소득층에 대하여는 출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1987년 이후 경제력에 따라 세 자녀 이상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출산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자 2000년부터는 자녀 수에 따라 국가에서 장려금을 지급하고 출산휴가를 부여하는 등의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언어와 종교

싱가포르는 헌법으로 각 인종 간 평등주의를 규정하므로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Tamil)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언어 교육을 매우 중시하므로 각 인종의 고유한 언어 외에 영어를 필수 언어로 하여 반드시 2개 언어를 이수해야 하는 2중 언어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1997년 홍콩이 중국 본토로 반환된 뒤로는 중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 표준어 배우기를 권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다민족국가로서 각 인종의 전통적 종교를 존중하면서 인종 간의 화합을 추구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국교는 없으나 각 종교별로 최소한 1개 이상의 법정 공휴일을 지정하고 있으며 전 국민의 85% 정도가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 구성비는 2009년 기준으로 불교·도교가 51%, 이슬람교(주로 말레이계)가 14.9%, 기독교(주로 중국계)가 14.6%, 힌두교(주로 인도계)가 4.0%이다.

문화적 특성

싱가포르는 다민족국가라는 특성상 각 민족의 고유 문화를 존중하며 다양성 속에 조화를 추구하며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각 민족의 문화 행사를 장려하고 있다. 도교, 힌두교, 불교 및 회교 사원이 있으나 역사적인 문화유적은 많지 않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의 유지와 우수한 예술 증진을 위한 환경 조성에 기본 목표를 두고 있으나, 대학에 예술학부가 없는 등 실용주의에 따른 통제, 자제된 예술 정책을 실시해왔다. 그러다 2000년부터 경제 발전과 문화 예술 증진을 연계하여 싱가포르를 경제와 관광, 문화의 국제 중심지로 복합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마련하고 “예술을 위한 글로벌 도시(Global City for the Arts)”, “르네상스 도시(Renaissance City)”, “국제적인 재능을 위한 역동적인 자성磁性(A Vibrant Magnetic for International Talent)” 등 장기적인 비전을 통해 싱가포르를 세계 유수의 문화 도시로 발전시키려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싱가포르의 주요 문화 행사인 싱가포르 예술 축제(Singapore Arts Festival)는 1977년 이후 격년제로, 1999년 이후 연례 국제 예술 행사로 세계의 다양한 예술 단체를 초청하여 공연하고 있다. 그 외에도 중국어 문화 축제(Chinese Cultural Festival), 연극을 담당하는 시어터워크스(TheatreWorks) Ltd., 싱가포르 무용 극장(Singapore Dance Theatre), 싱가포르 교향악단(Singapore Symphony Orchestra),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라(Singapore Chinese Orchestra) 등 다양한 행사, 예술 단체 등이 존재한다.

싱가포르의 주요 문화 시설인 에스플러네이드 해변 예술관(Esplanade-Theatre on the Bay)은 예산이 3억 5000만 미국달러에 달하는 세계적 수준의 복합 공연장으로, 2002년 10월 완공되었다. 그 밖에 공연장으로는 1만 2000석 규모의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Singapore Indoor Stadium), 1만 2600석 규모의 싱가포르 국제 컨벤션 및 전시 센터(Singapore International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 6,000석 규모의 세계무역센터 하버 파빌리온(World Trade Centre Harbour Pavilion), 3,200석 규모의 래플즈 볼룸(Raffles Ballroom), 1,744석 규모의 칼랑 극장(Kallang Theatre), 940석 규모의 빅토리아 콘서트홀(Victoria Concert Hall) 등이 있다.

싱가포르는 오랜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국의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모습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통체제 역시 영국식으로 도로에서 차량은 좌측 운행을 하며 운전석도 차량의 오른쪽에 있다. 뿐만 아니라 Beach Road, South Bridge Road, Coleman Street, Thomson Road 등 오늘날 싱가포르의 주요 도로명은 식민 시절 당시 영국에서 유래한 것이거나 싱가포르를 통치했던 저명한 주지사, 혹은 기타 유명 인사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만으로도 마치 영국 도시의 거리와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언론과 교육

싱가포르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지양하기 위해 언론출판법(Newspapers and Printing Press Act)에 의거, 자유롭지만 책임 있는 기사를 쓰도록 하는 통제된 언론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내 언론의 수준 향상 및 경쟁 도입을 위해 2000년 6월 신문 분야를 관리하는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Singapore Press Holdings)와 방송 분야를 관리하는 싱가포르 미디어 코퍼레이션MCS(Media Corporation of Singapore)이 서로 상대 분야에 진출하여 제한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신문은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Singapore Press Holdings) Ltd.가 싱가포르 내 신문을 전부 소유하여 통합 관리하고 있다. 주요 신문으로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비즈니스 타임스The Business Times, 리엔허 자오빠오Lianhe Zaobao(聯合朝報), 베리타 하리안Berita Harian 등이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싱가포르 미디어 코퍼레이션MCS이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을 통합 관리하고 있는데, 주요 TV 채널은 채널(Channel) 5, 채널 뉴스 아시아(Channel News Asia), 수리아(Suria), 채널(Channel) U 등이 있다. 라디오는 1936년에 방송을 개시한 싱가포르 라디오 코퍼레이션(Radio Corporation of Singapore)이 12개 국내 채널로서 영어 5개, 말레이어 2개, 중국어 3개, 타밀어 1개 등으로 시작했고 3개 국제 채널로는 싱가포르 국내 뉴스, 시사 등을 방송했다. 기타 방송 3개사로는 문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라디퓨전(Radiffusion), 예술 전문 방송인 국가예술위원회NAC(National Arts Counsil) 아트 라디오 스테이션(Arts Radio Station), 일반 뉴스와 국방 및 스포츠 뉴스, 대중가요를 방송하는 사프라 라디오(SAFRA Radio)가 있다.

싱가포르는 1998년 2월 CNBC(Consumer News and Business Channel)와 아시아 비즈니스 뉴스(Asia BusinessNews)가 제휴하여 아시아 지역에 최신 경제 정보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CNBC 아시아를 설립, 싱가포르에 본부를 설치했다. 2010년 현재 CNBC 아시아는 아시아 1,800만 가구에 24시간 텔레비전 경제 정보 등을 전달하고 있다. 그 외 통신사, 신문, 잡지사, 방송사 등 70여 개 외신사에 300여 명의 언론인이 주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로 구성된 복합 사회인 점을 고려하여 교육을 통한 국민 통합 의식 양성을 국가 존립 기반의 근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세계화 및 지식 기반 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실용주의적 교육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교과 과정은 2개 언어와 수리 과목에 치중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과정부터 대학까지 매 과정마다 경쟁을 통해 소수 정예만이 대학 과정을 마칠 수 있는 능력주의 교육을 실시한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 중반부터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제조업 부문이 지속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연차적으로 대학의 이공 계열과 한국의 전문대학 격인 ‘폴리테크닉(Polytechnic)’을 증설하였다. 이후 국민의 소득 수준 향상과 높은 교육열로 인해 대학 진학 실패자들의 외국 유학 선호 현상이 급증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해외로 이주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싱가포르의 학제는 유아교육(유치원)-초등교육(초등학교 6년)-중등교육(중학교 4년~5년)-고등교육[주니어 칼리지(Junior College) 2년, 심화 학교(Centralized Institute) 3년] 또는 한국의 전문대학 격인 폴리테크닉[Polytechnic(3년)]-대학교로 이루어진다. 싱가포르에는 1980년 8월에 싱가포르대학교와 난양Nanyang(南陽)대학교가 합병되어 설립된 국립 싱가포르대학교와 1991년 설립된 난양기술대학교NTU(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南陽理工大學)가 있고, 그 외 싱가포르 경영대학교가 있다.

사회보장 연금제도

싱가포르의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원칙은 ‘자조’로서 일반 국민의 노후 생활, 주택 구입, 의료비 지출 등을 기본적으로 국민 각자의 저축을 통해 대비토록 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부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는 중앙적립기금CPF(Central Provident Fund)으로 근로자 및 고용주가 임금의 일정 비율을 매월 강제 적립하여 정년퇴직 또는 노동 불능 상태가 되었을 경우 지급하거나, 근로자의 주택 구입 등 재산 형성 또는 입원비 등 의료비에 대한 지출을 허용하는 등 노후 연금, 의료비 보조, 재산 형성 저축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싱가포르의 의료저축계좌는 가입자의 입원비 등 의료비 지출을 위한 용도로 쓰이나 고가의 치료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너무 미약하다는 평가에 따라 임의적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실드Medishield 제도를 1990년에 도입했다. 정부가 정한 수가에 따른 진료비에서 기초 비용(일반 병원 등급에서 수술할 경우는 1,000싱가포르 달러)을 공제한 잔액의 80%를 메디실드 계좌에서 보전해주며, 나머지를 수혜 가입자가 부담한다. 이 제도의 장점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봉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저축하게 함으로써 사회 안정과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연금 기금의 파산, 연금률의 정치적 결정 등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지나치게 높은 저축 강제로 소득이 낮은 근로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5. 한국과 싱가포르의 관계


외교 관계

한국은 1970년 11월 5일 주駐싱가포르 통상 대표부를 설치하고 1972년 7월 5일 대표부를 총영사관으로 승격시켰으며 1975년 8월 8일 총영사관을 대사관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싱가포르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어 1978년 11월 9일 당시 도쿄에 주재하던 주한 싱가포르 대사의 신임장을 제정했다. 1990년 10월부터 주한 싱가포르 상주 대사가 부임했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1975년 8월 수교 이래 긴밀한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정상 및 고위 인사가 상호 빈번하게 방문하며 2006년 3월 한국·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발효 이후 양국 간 교역이 매년 약 25% 증가했으며 양국 간 투자도 확대되었다. 양국의 인적 교류를 살펴보면 2009년 기준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한 한국인이 약 27만 2000명, 한국을 방문한 싱가포르인이 약 9만 7000명으로 총 약 37만 명이 교류했다. 양국은 각각 동북아 및 동북아의 중견 국가로서 서로 상대 지역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 및 지역·국제 협력 동반자로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1981년 7월 전두환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방문했으며 2000년 11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국빈 방문 및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Nations)+3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아세안(ASEAN)+3정상회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대한민국, 일본, 중국 3개 국가를 포함시킨 정상회의이다. 이후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으며 2007년 11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세안+3 및 동아시아정상(EAS, East Asia Summit) 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했고, 2010년 6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공식 방문하고 샹그릴라 대화 기조 연설을 하였다. 2015년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 전 총리 장례식에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하였다.

싱가포르 인사의 한국 방문은 1979년 10월 리콴유李光耀 총리의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리콴유 총리는 그 이후 1986년 7월, 1988년 7월에도 한국을 방문했으며 1993년 11월에는 고촉통吳作棟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1999년 6월에는 정상회담을 위해 고촉통 총리가 방한했으며 2000년 10월에 고촉통 총리가 샨무감 자야쿠마르Shanmugam Jayakumar 외무장관과 함께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Asia EuropeMeeting)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2년 4월에는 셀라판 라마 나단Sellapan Rama Nathan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다. 2005년 11월에는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 참석했으며 2009년 6월에는 리셴룽 총리가 한·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 정상회의 참석차 공식 방한했다. 이밖에도 리셴룽 총리는 2010년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참석차, 2012년 3월에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2013년 12월에는 한-싱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1972년 2월 항공 협정을 체결하고 1979년 11월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체결했다. 1981년 5월에는 해운 협정을 체결하고 1982년 11월에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했다. 1995년 8월 예술·문화·체육 협력 협정을 체결했으며 1995년 5월 통신 협력 양해 각서에 서명했다. 1997년 2월 과학·기술 협정을 체결했고 1997년 6월 체육 교류 약정을 맺었다. 2000년 11월 중소기업 협력 약정과 표준 협력 약정을 맺었으며 2006년 3월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을 체결했다.

2010년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수는 약 1만 6000명으로 이 가운데 시민권 및 영주권자가 2,000명이며 6개월 이상 장기 체류자가 1만 4000명이다. 2010년 4월 기준으로 싱가포르 내에 있는 한국 기관 및 지·상사는 정부 유관 기관 5개, 금융 회사 10개, 해운·조선 10개, 종합상사 7개, 항공 2개, 건설·중공업 6개, 정유 4개, 전자·전기 7개, 일반 무역 및 기타 9개이다. 싱가포르 내 동포 단체로는 동포 사회 특성상 지·상사 주재원이 다수 회원으로 있으며 1963년에 창립된 ‘재싱가포르 한인회’, 1997년 10월 한국경제인협회가 창립한 뒤 2002년 9월 싱가포르 한국상공회의소로 개편한 ‘싱가포르 한국상공회의소’가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학교는 1993년 3월 개교하였다.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1973년에 설립된 부설 토요한글학교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 현재 학생 수는 1학년~6학년까지 108명이고 토요한글학교의 학생 수는 초등 270명, 중등 40명으로 총 310명, 한국어 강좌 수강생 수는 180명이다.

경제문화 관계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동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동남아의 교역 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한국은 싱가포르와 교역, 투자, 건설 부문에서 긴밀한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對싱가포르 수출은 150억 달러, 수입은 79억 달러로 전년 대비 각각 36.8%, 29.7% 줄어들어 그동안 꾸준히 증가했던 전체 교역규모가 34.5% 축소되었다. 우리나라의 對싱가포르 주요 수출 품목은 석유, 직접회로반도체, 선박류이고 주요 수입 품목은 직접회로반도체, 석유화학중간원료,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이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전문한 부존자원을 타계하고 지역적 이점을 활용하여 개방경제정책을 지향해 왔으며, 이에 따라 안정되고 일관된 정부 정책, 친기업 정책을 펼침으로써 글로벌 기업들을 싱가포르로 유치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2015년 기준 기업하기 좋은 국가 1위인 싱가포르는 경제개발청EDB(Economic Development Board)을 중심으로 외국 기업 유인 수단으로서 우수한 비즈니스 인프라를 건설하는 등 친기업 정책뿐만 아니라, 원활한 기업 활동 여건을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해 왔다. 외국자본을 자국자본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안정적인 투자처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동에 제한이 없어 외국인 투자가의 송금이 자유롭다. 평균 3일 이내에 법인 설립이 가능하고, 최소 자본금 1싱가포르 달러, 현지 거주 이사 최소 1인 등 설립 요건이 최소화되어 있는 것도 장점이다. 고급인력이 풍부하며 탄력적인 인사가 가능한 동시에 노사 분규가 적어 안정적인 노동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싱가포르 투자 진출 규모는 1968년부터 2015년 누적 기준 총 76.4억 달러(US$)로 투자 진출국 11위 규모에 해당한다. 연도별 투자금액은 2012년부터 매년 크게 증가해 2015년 약 14억 달러(US$)로 최대 투자규모를 기록했다. 일반 종합상사 분야에서는 삼성물산, LG상사, 현대상사, 포스코대우, 건설 분야에서는 현대건설, 쌍용건설, GS건설, 선박 분야에서는 SK해운, 한진해운, 현대상선, 정유 분야에서는 SK에너지, GS칼텍스, S오일, 식품 분야에서는 CJ 등이 진출해 대기업 대다수가 여러 분야에 걸쳐 진출해 있다.

북한과의 관계
북한은 싱가포르의 독립 초기부터 적극적인 진출 외교를 전개해 한국보다 앞선 1968년 1월 주駐싱가포르 통상대표부를 설치하고, 1969년 12월 총영사관으로 승격시켰다. 이어 1975년 11월 싱가포르-북한 수교 합의에 따른 상주 공관을 개설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현재까지 북한에 상주 공관을 개설하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함에 따라 대북 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으나, 2006년 이후 장관급 인사가 상호 방문하면서 교역이 늘어나기도 했다. 북한 측은 주駐싱가포르대사관, 무역참사부(대사관 내)를 비롯하여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15여 개 각급 무역상사 및 선박 회사들이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 북한 측은 싱가포르가 무역, 물류의 중심지이고 무사증 입국이 가능(입국 시1개월 체류 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주요 원자재, 부품의 공급지 및 중동·서남아시아 지역 물자 수송 및 인원 이동의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2009년 현재 북한과 싱가포르의 교역을 살펴보면 싱가포르의 대북 수출액은 5,620만 달러, 수입액은 190만 달러이다. 싱가포르의 대북 수출품은 주로 담배 원료와 신문 용지이며 대북 수입품은 수산물과 인삼 제품이 주를 이룬다.

북한은 2016년 1월에 제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월에는 장거리 로켓(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2016년 3월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는데, 이 제재 결의의 이행 수단으로 싱가포르는 북한을 2016년 10월 1일부터 비자 면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싱가포르는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감비아, 아이티, 키르기스스탄,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등과 함께 북한 국적자가 비자 없이 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으나, 이 조치로 모든 북한 주민은 입국 비자를 받아야만 싱가포르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싱가포르 법원은 북한에 불법무기를 운송해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자국 국적의 '진포해운'에 대해 지난 2016년 1월 벌금형을 내린 바 있다.




싱가포르의 관광 산업
싱가포르는 관광산업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센토사Sentosa와 마리나 베이Marina Bay 두 지역의 카지노를 개발하여 관광 수입으로 연결시키려는 정책과 함께 특별한 경험을 강조하는 싱가포르의 관광 슬로건 ‘유니클리 싱가포르(Uniquely Singapore)’를 2010년 ‘당신의 싱가포르(Your Singapore)’로 변경하고 수요자 위주의 관광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기존의 센토사Sentosa 관광 단지에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포함하여 카지노, 호텔, 쇼핑몰 및 레스토랑 등을 갖춘 복합 관광 시설 ‘리조트 월드 센토사Resort World Sentosa’를 건설하여 2010년 2월 14일 개장했다. 2010년 4월에는 마리나 베이Marina Bay에 카지노, 컨벤션 센터, 극장, 박물관을 포함한 복합 관광 단지인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를 개장했다. 두 리조트의 개장은 더 많은 관광객 수 증가와 카지노를 통한 관광 수입의 증대를 가져올 것은 물론 다른 호텔에도 다양한 비즈니스를 창출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밖에도 싱가포르에는 다양한 관광 명소들이 산재해 있는데, 랜드마크로 꼽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스카이파크Marina Bay Sands Skypark와 머라이언 공원Merlion Park, 싱가포르 플라이어Singapore Flyer, 슈퍼트리 그로브Supertree Grove 등과 역사적인 장소로서 에머랄드 힐Emerald Hill, 뎀시 힐Dempsey Hill, 선 얏 센 난양 기념관Sun Yat Sen Nanyang Memorial Hall, 창이 비치Changi Beach 등도 눈길을 끄는 장소이다. 또한 도시의 명물로 회자되는 헬릭스 브리지Helix Bridge, 카베나 브리지Cavenagh Bridge, 헨더슨 웨이브 브리지Henderson Waves Bridge, 엘진 브리지Elgin Bridge 등의 교량도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