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 한 목적, 한 믿음의 나라 세네갈 Senegal

[세계지역문화탐방]
편집부

세네갈은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고 서부아프리카의 지적, 문화적 중심지로 불리는 나라이다. 9세기에 세네갈 강 유역을 중심으로 투쿨로르Tukulor족이 정착하며 세네갈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 세기 동안 여러 민족과 왕조들이 명멸하였고,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프랑스공동체의 일원으로 운신하다가 1960년에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후 여러 정치적 실험과 인종 분규, 내전 등을 겪어 왔으며, 개발도상국형 경제 체제를 운영하면서 어렵고 힘든 여정을 걷고 있다.

하지만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수준 높고 복합적인 문화 역량을 자랑하며 서부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창구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훌륭한 시민 의식을 소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는 비동맹 중립 및 실리주의 외교를 펼치며 우리나라와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다져나가고 있는 세네갈의 저력을 확인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1. 자연환경과 역사


영토와 자연환경
세네갈 공화국Republic of Senegal은 아프리카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다. 현지어(프랑스어)로는 레퓌블리크 뒤 세네갈(Republique du Senegal)이라고 한다. 수도는 인구 약 352만 명 규모의 다카르Dakar이다. 다카르는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으로 서울보다 9시간이 느리다. 세네갈의 총인구는 2016년을 기준으로 약 1,432만 명이며, 국토의 총면적은 196,722㎢로 영국보다 조금 작다. 국토의 대부분은 해발 고도 100m 이하의 평지이다. 남으로는 기니Guinea, 기니-비사우Guinea-Bissau, 동으로는 말리Mali, 북으로는 모리타니Mauritania, 서로는 북대서양과 접한다. 아프리카 대륙을 흔히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여기는데, 그렇게 보면 세네갈은 볼록 나온 뒤통수 해당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도 다카르는 그 중 가장 튀어나온 부분에 위치해 있다. 세네갈 내부에는 대서양으로부터 감비아Gambia 강을 따라 영국의 식민지였던 감비아Gambia가 북부 세네갈과 ‘카자망스Casamance’라 불리는 남부 세네갈을 분리하고 있다. 그런 지형 탓에 세네갈은 마치 감비아를 입에 가득 물고 깔깔거리며 웃는 턱이 네모난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네갈의 국기는 세로로 된 삼색기로 초록색, 금색, 붉은색 순이다. 그리고 중앙에 5개의 가지를 가진 초록색 별이 있다. 초록색은 삼림에서 온 것으로 희망을 의미하며, 금색은 초원(savane)을, 붉은색은 세네갈 투사들이 흘린 피를 각각 상징한다. 중앙에 위치한 별의 다섯 가지는 5대륙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세네갈 국가 문장에서 사자는 힘을 나타내며, 바오밥(Baobab)은 장수를 의미한다. 매년 4월 4일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날로 국경일로 지정되었으며, 세네갈의 국가이념은 한 민족(Un Peuple), 한 목적(un But), 한 믿음(une Foi)이다.

세네갈은 산을 보기 힘든 저지대로 대부분 지역이 평평하다. 전반적으로 해발고도 100m 이하의 평탄지이다. 유일하게 솟아 있는 지역은 남동부에 있는 해발 400m의 푸타잘롱 산악 지대의 줄기이다. 평평한 모래사장으로 덮여 있는 대서양 해변은 길이가 약 500km이고 시네 강, 살룸 강, 카자망스 강 하구의 삼각주는 넓은 맹그로브 숲으로 덮여 있다. 긴 사주, 석호, 소금이 덮인 모래 언덕이 북부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남부를 중심으로 전국토의 54%는 삼림을 이루고 있으나 세네갈 강 유역은 사하라 사막에 접하는 건조 지대로 페를로 사막을 형성한다. 그 밖의 지역은 사바나성性 기후를 나타낸다. 북부 사헬 지역의 가시나무 덤불 사바나에서 독특하고 마디가 있는 바오밥과 빨간 꽃이 피는 플랑부아양 나무가 자라는 건조 사바나를 지나, 케이폭수樹, 야자나무, 유칼립투스, 망고 등으로 이루어진 카자망스의 습윤 사바나 그리고 습윤 삼림 지대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세네갈에는 3개의 강江이 흐른다. 북쪽 모리타니와의 국경을 형성하는 이 나라 최대 강인 세네갈Senegal 강, 극동쪽의 발원지만 제외하고는 감비아에 의해 둘러싸인 중앙의 감비아Gambia 강이 있다. 감비아는 세네갈의 국토로 둘러싸여 세네갈 남부 카자망스 지역을 북부와 남부로 갈라놓고 있다. 또 하나의 강은 인근 지역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고 지역 명칭의 유래가 되기도 했던 남쪽의 카자망스Casamance 강이다. 모두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며 하류는 대형선박의 항행이 가능하다.

국토 북부 전체에 걸친 사막화 현상은 계속 확대되는 문제로, 세네갈 강의 마난탈리 댐만이 부분적으로 이 현상을 저지하고 있는 사정이다. 사하라 사막 남부의 반 건조대인 사헬에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다양함을 보여주는 나라인 세네갈은 550종 이상의 동물군을 자랑한다. 또한 철새들-특히 물새 종류-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매해 겨울 유럽에서 많은 수가 떼를 지어 돌아와 생루이Saint-Louis 북쪽에 있는 세계 주요 조류보호지구 중의 하나인 빠르 나씨오날 오 외주 두 쥬지(Parc National aux Oiseaux du Djoudj)에 머문다. 세네갈은 지반이 안정적인 곳으로 지진 피해는 발생하지 않으며, 태풍 등 천재지변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높은 파도로 인한 해안침식 현상은 어느 해안에서나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기후는 우계(6~11월)와 건계(12~5월)로 나누어지는데 우계에는 사하라 사막 쪽으로 습기가 많은 남동 계절풍이 불며 국토 전역에 비를 몰고 온다. 건계에는 카나리아 한류寒流의 영향으로 북서쪽에서 서늘한 무역풍이 불어와 연안부에서는 기온이 낮아진다. 그러나 내륙에서는 사하라에서 하르마탄이라는 건열풍乾熱風이 불어오므로 기온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mm 미만인데 북부와 북동부는 적은 양의 비가 오는 반면 남부의 카자망스는 최대 2,000mm의 비가 오는 습윤 열대성 기후이다. 또 남부의 우기는 북부보다 현저히 길다. 가장 더운 달은 9월~10월로 기온이 섭씨 30℃~35℃를 보이며, 가장 추운 달은 1월로 섭씨 18℃~26℃를 보인다. 가장 건조한 달은 4월~5월로서 평균 강우량이 1㎜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습한 달은 8월로 평균 강우량이 254㎜를 보인다.

세네갈의 역사
세네갈의 기원
세네갈은 다카르 부근에서 석기 시대의 도끼나 화살촉 등이 발굴되고 있으나 9세기에 세네갈 강 유역에 투쿨로르Tukulor족族이 정착하면서 세네갈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11세기 중엽 북쪽의 베르베르계족의 일파인 제나가족族에 의해 이슬람교가 전파됐다. 이 종족의 이름에서 ‘세네갈’이란 국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나의 배(舟)’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1050년대 말~1140년대 말 무렵 모로코를 중심으로 한 알무라비트 왕조가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그 후 나이저 강 유역의 비非이슬람교도가 강대해지면서 분쟁이 계속되었다. 14세기에는 윌로프Wolof족이 대서양 연안에 왕국을 세웠고, 15세기에는 풀라니Fulani족이 세네갈 강 중류에 왕국을 세웠으나 1444년 포르투갈 항해자가 베르데곶(串)에 내항한 무렵에는 이미 분열되어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
포르투갈은 세네갈 하구河口와 다카르 항 앞바다에 있는 고레 섬 등지에 무역기지와 가톨릭 포교 기지를 건설하였다. 이때 세네갈의 해안 왕국들은 포르투갈 무역상들과 접촉을 하며 나라를 유지했다. 16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도 진출하여 포르투갈 세력을 밀어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을 쫓아내고 미국으로 보낼 노예들을 수합하는 중요 지점인 생루이와 고레 섬(Gorée Island)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1633년 창립된 프랑스의 세네갈 회사가 1659년 생루이에 상관商館을 설치하면서 이곳을 프랑스가 최종적으로 차지하게 됐다. 프랑스는 1677년에는 네덜란드로부터 고레 섬을 빼앗았다. 한편 영국은 감비아 강 유역에 기지를 설치함으로써 17~18세기의 세네갈 지역은 영국·프랑스 간에 쟁탈의 대상이 되었다.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되어 모든 프랑스 기지는 영국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1816년 고레 섬과 생루이가 다시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식민지화에 노력했다. 세네갈은 프랑스의 아프리카에 대한 침략 기지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1854년 L.L.C 패데르브가 총독으로 부임한 후 투쿨로르족의 지도자 오마르 알하디의 저항 전쟁을 제압하는 등 강력한 팽창 정책을 취하여 내륙의 프랑스 식민지화가 추진되었다. 1859년부터 1865년 사이 세네갈 내 각 부족 왕국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말 프랑스는 세네갈 전부를 지배할 수 있었다. 1886년에는 포르투갈령領 기니와, 1904년에는 감비아와의 경계에 관한 협정이 성립되었다. 생루이, 고레 섬, 루피스크 및 다카르는 ‘4개의 코뮌’으로서 1887년 이래 프랑스 본국의 지방자치제와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1895년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가 하나의 통치 단위가 되고 생루이가 수도가 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대한 동화정책同化政策과 침략의 기지로서 세네갈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1902년에 수도를 다카르로 옮겼으며 1908년 도시 건설이 완료되면서 다카르는 서아프리카의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쳐 세네갈은 다른 프랑스령 아프리카 국가와 함께 1946년 프랑스연합 내의 해외 영토가 되었고, 1956년에는 프랑스 공동체 내에서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58년 12월에는 말리Mali, 니제르Niger,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와 연합하여 말리연방(Republic of Mali)을 수립하였다.

독립 이후
1960년 8월 세네갈은 말리 연방에서 탈퇴하여 단독 국가로 독립을 선포하였고, 9월에는 세네갈 사회당(PSS)의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1906~2001)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친 프랑스 온건 개혁 노선을 택하며 1980년까지 장기 집권한 셍고르는 시인이자 문화이론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됐으며,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지식인 중 1명으로 평가된다. 1976년 4월 세네갈은 제한적인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다. 1980년 12월에는 셍고르 대통령이 사임하였고, 이듬해 1월에 압두 디우프Abdou Diouf 수상이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세네갈은 1981년에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다.

1993년 2월에는 디우프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였다. 5월에 실시된 총선에서는 집권 사회당이 총 의석 120석 중 85석을 차지하면서 승리하였고, 1998년 5월 총선에서도 총 의석 140석 중 93석을 획득하여 다시 승리하였다. 1998년 8월에는 1992년에 제정되었던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의 3회 이상 연임 제한을 철폐하였다. 1999년 1월에는 상원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사회당이 압승하였으며, 2월 18일자로 세네갈의 상원이 공식 출범하였다.

2000년 2월에는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실시되었다. 3월에는 대통령 선거 2차 투표가 실시되어 야당 후보인 압둘라예 와데Abdoulaye Wade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와데 대통령은 2000년 4월에 취임하였다. 2001년 1월에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새 헌법을 채택하였으며, 2월에는 새 헌법에 따라 국회가 해산되었다.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여당이 120석 중 89석을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세네갈은 1996년 중국과 단교하였으나 2005년 10월 타이완과의 단교 이후 중국과는 재수교를 단행하였다.

2007년 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와데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6월에는 총선이 실시되어 여당이 하원 160석 중 130석을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009년 3월에는 세네갈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세네갈은 201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4월부터 마키 살Macky SALL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2. 정치 및 행정


정치 제도 및 최근 정세
세네갈은 1960년에 독립을 선포한 이후 1963년 3월에 공포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네갈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각료를 임명하는 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대통령의 서명 없이는 법률이 통과될 수 없으며, 대통령은 특히 외교, 국방, 사법 등의 분야에서 큰 권한을 지니고 있다. 1968년 2월 국민의회 총선거에서는 80의석 전부를 세네갈 진보동맹(UPS)이 독점하면서, 1966년 야당인 아프리카 재편당(PRA)을 통합한 이래 실질적으로는 1당제 국가가 되었다. 1978년에는 UPS를 세네갈 사회당으로 개칭해서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을 표방하였다. 독립 후 줄곧 대통령직을 맡은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가 1980년 사임을 하자 압두 디우프Abdou Diouf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디우프는 3선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2000년 2월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세네갈 민주당(PDS)의 압둘라예 와데Abdoulaye Wade 후보가 디우프를 꺾고 1960년 독립 이후 40년 만에 최초의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며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집권 사회당 체제가 무너졌다. 이에 따라 세네갈은 서부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창구라는 명성을 확인하였다. 2000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이유는, 세네갈 국민들이 사회당의 장기 집권에 따른 부정부패와 여당 내 자리 다툼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실업 문제 등 경제·사회적인 어려움도 정권 교체의 원인이 되었다. 세네갈은 2000년의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정치, 사회적인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차분하게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와데 당선자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선거 공약대로 자신을 지원한 야당연합(Coalition 2000) 참여 인사와 지인들로 정부를 구성하였다.

세네갈은 2001년 1월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압도적인 표차로 개정안을 채택하였다. 헌법 개정안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 부여, 상원 폐지, 여성권리 강화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채택하였고 1998년 폐지되었던 3선 제한이 재도입되었으며 대통령 임기도 7년에서 5년으로 축소되었다. 이어서 와데 대통령은 구 집권당인 사회당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던 국회를 해산하고 2001년 5월 29일에 총선을 실시하였다. 총선 결과 와데 대통령 소속당인 세네갈 민주당을 축으로 한 Sopi연합(coalition Sopi)이 국회 총 의석 120석 중 89석을 획득하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여 개혁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와데 대통령은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식량 자급, 자원 개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한 16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신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로 보건, 교육, 고용 창출을 표명하였다. 또한 당초 2006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2005년 수해복구 예산 확보 등의 이유로 2007년 대선과 통합하여 국회의원 임기를 8개월 연장하였다.

와데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내외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해외순방 등을 통해 해외자본 유치, 개발 프로젝트 구상 등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사회당의 장기집권으로 인해 누적된 실업, 빈곤, 교육, 전기·수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노후화 등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압둘라예 와데 대통령은 집권 1기 기간 동안 경제·사회문제 해결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치러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55.9%의 지지율로 재선되어 집권 2기를 맞았고 그 해 6월에는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한 Sopi 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150석의 의석 중 130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사회문제 해결에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세네갈 국민들의 지지도가 크게 하락하였다. 특히 자신의 아들인 카림 와데Karim Wade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무리한 조치들을 시행한 결과, 국민들의 비판이 가중되었다.

압둘라예 와데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한 결과, 2009년 3월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다카르Dakar, 티에스Thies, 카올라크Kaolack 등 주요 도시 지역에서 패배하였으며, 다카르 Point-E 선거구에 출마한 와데 대통령의 아들 카림 와데가 낙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2009년 10월에는 또 다시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임기가 2012년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부터 7년으로 다시 연장되고 하원의장의 임기는 5년에서 1년으로 축소되는 변화가 발생했다.

결국 2012년 3월 2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투표를 치른 끝에 전 세네갈 총리이자 야당 연합 후보인 마키 살Macky SALL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4월에 취임하였다. 살 대통령은 2012년 9월 상원 폐지 등 개혁을 단행했고 11월에는 전임 와데 대통령 아들(전 장관)의 부정부패 및 비리 수사, 처벌을 위한 특별법정을 설립했다. 하지만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연립 여당이 패배하였다. 2014년 8월에는 제15차 불어권 정상회의가 수도 다카르에서 개최되었으며, 2015년 5월 세네갈은 ECOWAS(서아프리카 경제협력체) 의장국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 1월 세네갈에서는 치안 불안과 함께 테러 위험이 고조되었는데, 카올락 및 뤼피스크 지역에서 테러 용의자가 체포되기도 했다. 2016년 3월에는 개헌안 국민투표가 62.6% 찬성으로 통과되어 대통령 임기가 7년에서 다시 5년으로 축소되고 3선이 금지되었다.

지방행정
세네갈은 수차례의 개편을 거쳐 1984년부터 10개 지역(Region) 단위의 자치단체를 구성하였다. 2012년 현재는 14개의 지역단위 자치단체가 있고 각 지역은 3개 내외의 도(Département)로 구성된다. 각 도는 여러 개의 군(Arrondissement)으로 나뉜다. 지방 정부는 주로 환경 및 천연자원 관리, 보건·인구·복지, 청소년·체육, 문화, 교육, 지역개발, 도시화·주거 등의 분야를 담당한다. 14개 지역은 다카르Dakar, 티에스Thies, 카올라크Kaolack, 디우르벨Diourbel, 생루이Saint-Louis, 콜다Kolda, 파티크Fatick, 루가Louga, 지긴쇼르Ziguinchor, 탐바쿤다Tambacounda, 마탐Matam, 카프린Kaffrine, 케두구Kédougou, 세디우Sédhiou 등이다. 14개의 지역단위 자치단체 아래에는 총 44개의 도(Département) 단위 행정구역이 편재되어 있다.

입법부
세네갈은 1998년 헌법 개정으로 임기 5년의 국회의원 140명으로 구성된 국회(National Assembly)와 임기 5년의 상원의원 60명으로 구성된 상원(Senate: 1999.1.24 선거, 2.18 출범) 등 프랑스식 양원제 의회 제도를 보유하였으나, 와데Wade 정부 출범 직후, 2001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상원을 폐지하여 단원제가 되었으며, 의원내각제 요소가 일부 도입되어 국회가 정부의 정책을 토의하고 불신임 투표를 통하여 내각 사임을 가져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정당을 옮기는 의원은 자동적으로 의석을 상실하도록 하여 당적 이적을 어렵게 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상원은 법률안 입법 권한 없이 자문 기능을 수행하도록 구헌법에 규정된 바, 사회당(PS) 정부 말기 여당 출신 및 디우프Diouf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설립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7년 1월 헌법 개정으로 양원제가 부활되었으나, 2012년 4월 취임한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 따라 2012년 9월 국회 표결로 상원이 재차 폐지되고 단원제로 환원 후, 2012년 7월 총선거에서 총 150명의 국회의원(임기 5년)을 선출, 제12대 국회가 출범했다.

국회는 의장단과 원내 교섭단체 대표 및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구성되며, 국회의원 정원 150명 중 90명은 지역구에서, 60명은 비례대표 방식으로 선출된다. 현재 국회는 연립여당인 희망연대(BBY: BENNO BOKK YAKAAR)가 119석, 세네갈 민주당(PDS) 12석, 무소속이 19석의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의원 중 여성 의원은 64명이 등록되어 있다.

사법부
세네갈의 사법 및 법률 제도는 구 식민 종주국인 프랑스식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1992년에 대법원(Cour Supreme)을 분리, 3개의 기구(Conseil Constitutionnel, Cour de Cassation, Conseil d'Etat)가 최고 법원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1999년 헌법수정으로 감사원(Cour des Comptes)이 창설되었다.

헌법 재판소(Conseil Constitutionnel)는 각종 법률 및 국제법규의 헌법 일치 여부, 행정부와 입법부 간 권한 관련 분쟁, 국가참사관과 대법원 간의 권한 관련 분쟁 및 각종 헌법 일치 여부 심의, 선거 관련 분쟁 판결 등을 수행한다. 최종 법원(Cour de Cassation)은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헌법 일치 여부를 판단하고, 국사원(Conseil d'Etat)은 정부의 각종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 송부 전 사전 심의 및 행정법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밖에 감사원(Cour des Comptes)은 정부 및 국영기업 등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다.

외교정책
세네갈은 1960년에 독립한 이후 비동맹 중립의 외교정책을 펴고 있으며 아프리카단결기구(OAU) 등 지역통합운동 등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프랑스공동체의 구성국이고 프랑스와는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또 아프리카모리셔스공동기구(OCAM)의 가맹국이다. 1982년 2월 감비아를 합병, 세네감비아 국가 연합의 발족을 선포하였으나 1989년 양국은 해체에 합의하였다. UN의 가맹국이며 EC의 로마협정국이다. 세네갈은 프랑스, 일본, 미국, 타이완, 독일,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무상원조를 받는 등 적극적인 경제 실리 추구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세네갈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원칙적으로 남·북한 등거리 외교정책을 표방한다. 한국과는 친선 우호협력관계를 유지 중이며, UN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관계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세네갈은 서구 선진국 중심의 기존 원조 공여국 외에 한국 등 새로운 원조 공여 가능 대상국 개척에도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보이고 있다. 한편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대對 세네갈 관계 강화 노력이 현저한데, 1998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였고, 2005년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 룰루 브라질 대통령 등이 방문하였다. 2005년 중국과 재수교했으며, 대만과는 단교 조치를 단행했다.

3. 경제


경제 특성
세네갈은 서아프리카 불어권 국가 중 코트디부아르 다음으로 국민총생산 2위(149억 달러, 2016년)에 해당하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약 1,067달러(2016)인 최빈 개발도상국으로, 농수산물 및 인산염, 금 등 1차 상품 수출, 재외국민 송금(연간 약 10억 달러 수준) 및 해외 원조 수원 등이 주요 재정 수입원이다.

세네갈은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과 긴밀한 협의 하에 경제구조 조정계획을 추진, 2000년~2013년도 연 평균 약 4~5%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외국 투자 유치, 공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육성 등을 통한 경제 개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 중이다. 정부는 민간 투자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0년 S&P’S 신용등급을 신청하여 B+/B를 처음으로 부여받고 2014년에도 B+/B 등급을 유지하였다.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은 취임 후에 효율적인 공공자금 운영, 정부 규모 축소, 부정 축재 척결 특별재판소(CREI) 부활, 감사원 개혁 등 대대적인 정부 구조개혁에 나서는 한편, 동년 11월 입안한 ‘경제사회개발 국가전략(SNDES)’을 수정 보완해 2035년 개도국 도약을 목표로 ‘세네갈 부흥계획(PSE)’을 수립,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높은 국가채무 비율(2013년 GDP 45%), 비효율적인 공공자금 운영, 만성적 재정적자 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의 유치 및 효율적인 경제개발 추진에 애로가 상존하고 있으며, 가시적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전력 식수 등 사회 인프라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실업률 확대, 식량 부족에 따른 곡물가격 상승, 지속적인 물가 불안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등 세계 경제의 불안, 역내 에볼라 사태의 장기화 등으로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으며, 최근 지역 강수량 급감에 따른 곡물 작황이 감소하면서 식량 안보 문제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에 놓여 있다.

경제구조와 교역
세네갈은 1차 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가전제품과 자동차는 물론 식기, 플라스틱류 등 생활필수품인 공산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형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7년(추정치) 기준 GDP 비중에 의한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농업 16.7%, 제조업 18.9%, 서비스업 64.4%이다.

노동력 비중 기준으로 보면, 약 75%인 절대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업 생산 품목은 땅콩, 진주조, 면화, 쌀 등이 있다. 특히 ‘세네갈의 황금’으로 불리는 땅콩은 프랑스가 식민지 시대에 가지고 들어와 재배를 장려하기도 하였고, 세네갈 총수출액의 25%를 차지하고 있어, 땅콩을 재배하는 농사는 사실상 이 나라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에 독립할 무렵에는 노동 인구의 87%가 종사하는 규모였다. 어업은 참치, 문어, 오징어, 가다랑어, 새우가 중심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수출된다. 광업(인광석)과 공업은 인광석을 원료로 하는 화학 공업과 상호 관계를 가지며, 관광, 서비스업이 주요 산업이다. 세네갈은 세계 10대 인광석(phosphate) 생산 수출국이고, 아프리카 50개 금생산국 중 1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세네갈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천연가스 시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 IMF 기준으로 세네갈의 수출은 25.7억 달러, 수입은 60.5억 달러를 기록하여 극심한 무역수지 적자를 보이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수산물, 땅콩 및 땅콩기름, 석유제품, 비료 등이고, 주요 수출대상국은 말리(19.2%), 프랑스(8.3%), 인도(5.8%), 감비아(5.3%), 스페인(5.1%), 이탈리아(4.9%) 등이다(2006년). 수입품은 사탕·쌀·밀 등의 식료품, 소비재, 석유제품 등이고, 주요 수입대상국은 프랑스(25.1%), 영국(5.2%), 태국(4.8%), 중국(4.5%), 스페인(4.0%) 등 이다(2006년).

경제개발에서는 자금 조달을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미개발 철광산 개발, 다카르 자유무역지대의 설치, 세네갈 강 유역의 개발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또한 인광석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어 땅콩에 편중된 외화수입원의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

교통은 전체길이 906km의 철도, 세네갈 강의 항로, 1만 3,576km의 도로 외에 다카르·카올라크·생루이 등 주요 항구가 있다. 국제공항은 다카르에 있고 공항은 모두 20개이다(2006년). 세네갈 강 유역의 모리타니·말리·기니 등과는 경제협력기구를 구성하고 있고 서아프리카 경제협력체(ECOWAS)의 가맹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4. 사회와 문화


인구 민족 및 언어
세네갈의 인구 규모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중간 정도에 속한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다카르Dakar로 약 352만 명의 인구수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수명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인구 구조 상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을 보인다. 세네갈에는 많은 민족적 그룹이 존재하고, 각각 독자의 역사, 언어,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 그룹 내의 교류, 아프리카 이외의 문화와의 교류 결과, 자신들의 출신에 긍지를 갖는 복합 문화가 국민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은 월로프족(44.3%), 풀라르족(23.8%), 세레르족(14.7%) 등이다. 그밖에 투쿨로르족 디올라족 말링케(만딩고)족 등이 있고, 프랑스인이나 아랍인도 있다. 주민의 73%가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2001년 헌법)이다. 세네갈은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그러나 월로프어, 세렐레어 등 토속어도 사용된다. 종교는 이슬람교도가 전 인구의 94%, 가톨릭을 주로 하는 그리스도교도가 5%, 나머지는 전통적 부족종교를 신봉한다.

세네갈인은 대체로 대가족주의로 친척이나 친구를 중히 여기며 방문자에게도 친절하다. 인터넷 호스트의 수는 199개(2007년)이며, 약 65만 명의 인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2006년). 문맹률은 60.7%(15세 이상, 2002년 추정치)로 높은 편이다. 2004년을 기준으로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는 0.460으로 조사 대상국 177개국 중 156위를 차지하여 아프리카 대륙 저개발국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도 같은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 1미국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빈곤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6%에 달하였다.

복합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 역량
반면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하는 나라다. 각 부족은 흑인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도시에서는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구비 문학은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말리 제국 시대부터 내려온 음유시인 계층인 그리오griot들은 전사의 무용담을 담은 구비 전승시를 낭송한다. 레오폴드 셍고르Leopold Senghor, 부알라Boilat 신부 등 우수한 시인과 작가 그리고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 등의 영화감독들이 많이 배출된 국가다. 특히 1930~1950년대 레오폴드 셍고르는 마르티니크Martinique의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1913~), 기아나Guiana의 레옹 다마스Leon Gontran Damas(1912~1978)와 함께 프랑스의 식민통치와 동화정책에 저항하면서 아프리카의 전통과 아프리카인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정치적 문학 운동인 네그리튀드Negritude 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셍고르의 시는 아프리카의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세네갈의 시인 비라고 디오프Birago Ishmael Diop(1906~1989)는 아프리카인의 삶의 신비를 다룬 시를 쓰는 한편, 월로프족의 전통적인 민담과 전설을 기록하였으며, 다비드 디오프David Diop(1927~1960)는 제국주의 유럽 열강들을 축출하고 아프리카인의 독립과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혁명적 시들을 썼다. 세네갈의 작가들은 일부의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어로 소설, 시, 드라마 등의 작품을 쓴다. 잘 알려진 영화감독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은 서아프리카의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세네갈은 서부아프리카의 지적, 문화적 중심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다카르 대학(약 4만 명 등록)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인데, 문학, 법경제학, 과학, 의학, 언론, 공학, 사서학, 교육학 등 모든 분야가 이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다카르’
세네갈의 음악은 크게 전통 음악과 현대 음악으로 나누어지며, 매년 12월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다카르’가 세네갈 전역의 크고 작은 바나 클럽에서 열리는데 전통 아프리카 음악과 현대 아프리카 음악을 모두 보여준다. 월로프족의 퍼커션Percussion 음악인 음발락스mbalax는 유명한 세네갈 민속 음악이다. 음발락스는 세네갈 출신의 가수이자 ‘더 슈퍼 에뜨왈 밴드’의 리더인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1959~)에 의해서 대중화되었다. 2007년 3월 1일 은두르는 자신의 밴드와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한 바 있다. 사바르Sabar 드럼 연주는 특히 인기가 많다. 사바르는 결혼식 같은 특별한 의식에서 연주된다. 다른 악기로는 타마tama가 있다. 은두르 외에 빠쁘 디우프Pape Diouf, 바바 말Baba Maal(1953~), 시온 섹Thione Seck(1955~) 등도 인기 있는 뮤지션들이다.

이슬람 신앙 문화
세네갈의 종교는 이슬람교가 94%, 개신교 및 천주교가 5%, 토속신앙이 1%를 차지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관계로 이슬람교 공동체(Brotherhood)가 사회 깊숙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마라부Marabout들이 이슬람교도들의 사회·경제생활을 인도하고 있다.

세네갈의 이슬람교 공동체 중 무리드Mouride파의 영향력이 가장 크며, 그 밖에 티자니야Tijaniyya, 니아시야Niassiyya, 카디리야Qadiriyya, 라예네Layenne파 등이 있다. 최근에는 보다 조직적이면서, 종교 및 정치적 입장을 지닌 개혁적인 이슬람 조직들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고 있다.

1990년대 세네갈의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마라부의 지원을 배경으로 정치적 기반을 확대한 적이 있다. 이들 이슬람교 공동체는 지하 경제에 간여하고 있어 세네갈 국가 경제 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함으로써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각종 선거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역대 정부들은 본격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다.

압둘라예 와데Abdoulaye Wade 전前 대통령도 무리드파 이슬람교 공동체 지도자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맺었다. 와데 대통령은 각종 선거 전후에 무리드파의 성지인 투바Touba를 방문하는 등 자신의 정권 유지 기반으로 이슬람교 공동체를 활용하였다. 세네갈의 이슬람화는 442~1050년경 무라비뚠al-Murābiṭūn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슬람은 제2단계(쑤피종단의 확장기)에 이 나라에서 도입되었다. 그 결과 현재 전 인구의 86%가 말리키 법학파에 속하는 무슬림이다. 물활론자들이 4%이고 나머지는 여러 그리스도교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다.

세네갈은 이슬람이 압도적이지만 신정국가는 아니다. 시민법은 프랑스식에 기초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종교적 관용성을 갖고 있다. 강경파라기보다는 생활형 종교에 가까워 사람들이 비교적 순박한 편이다. 라마단Ramaḍān 역시 그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라마단 기간 한 달여 동안 태양이 떠 있을 때는 물을 비롯해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기간에는 문을 여는 레스토랑도 줄어든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현재로는 12월에 해당)에 실시되어 코란이 모하메드에게 전해진 달을 기념하는 이슬람 종교 의례다.

음식, 의복 문화
세네갈인들은 쌀, 기장, 생선, 야채 등을 주식主食으로 삼는다. 사막 지역에서는 갈대나 기장을 저장하는 둥근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에는 거대한 빈민가가 늘어나고 있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의상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남자는 쌀과 기름을 조달하고 여자들은 그 외 식량을 마련한다. 그들의 요리는 매우 다양하다. 음식은 손가락으로 먹는데 오른손은 식사 전에 씻고 나중에 양손을 씻는다. 세네갈 음식은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지방 특식으로는 쁠레poulet 또는 뽀이즌 야사poisson yassa로 양념에 절여 구운 닭고기나 생선 요리, 땅콩을 넣은 스튜인 마페mafe, 야채소스와 생선과 함께 익힌 쌀 요리인 체이부젠ti boudienne등이 있다. 세네갈의 주 음식은 ‘체이부젠’이라 할 수 있는데, 쌀밥에 생선 튀기고 남은 기름, 토마토 소스와 야채를 섞어서 볶은 뒤에 맵게 절인 고치와 튀긴 생선을 얹어 놓은 것이다. 커다란 양재기에 담긴 밥을 둘러앉아 함께 오른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하여 먹을 만큼 모양을 내서 먹는다. 세네갈 맥주도 맛이 좋다. 가젤Gazelle, 플랙Flag 등이 인기 있는 브랜드이다.

수도인 다카르에서는 여느 이슬람 국가들과 달리 여성들의 자유로운 의상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다카르에서 조금만 벗어난 지방으로 가게 되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지내며, 치마는 발까지 덮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방문자들의 옷차림도 매우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하의는 긴 바지나 긴 스커트로 무릎을 가리고, 상의는 민소매를 제외한 반팔 티셔츠면 무방하다. 하지만 티셔츠에 남녀의 그림이 있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5. 한국과 세네갈의 관계


외교 관계
한국과 세네갈은 1962년 10월 19일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주세네갈 한국공관은 1973년 5월 4일에 개설되었다. 2007년 8월에는 주한 세네갈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한국과 세네갈 간에는 1975년 4월 무역협정, 1979년 문화협정·경제기술협력협정, 1984년 투자보장협정, 1997년 청년봉사단 파견협정, 2008년 5월에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기본협정이 각각 체결되었다.

양국 간에는 1979년 4월에 세네갈의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바 있으며, 1982년 8월에는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세네갈을 방문하였다. 1984년 7월에는 압두 디우프Abdou Diouf 대통령이, 2009년 11월에는 압둘라예 와데Abdoulaye Wade 대통령이, 2015년 6월에는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이 한국을 각각 방문하였다.
세네갈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한국과는 1962년 10월 19일, 북한과는 1972년 9월 12일에 각각 수교하였다. 한국의 상주 공관이 설치되어 있고 북한측 상주 공관은 폐쇄하였다가 2013년 7월 재개설하였다.

경제문화 관계
한국과 세네갈 사이에는 최근 8년여 동안 교역량이 4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동원그룹이 세네갈 국영 참치 통조림 공장을 인수하는 등 양국 간 교역 및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세네갈의 대한對韓 수입은 1억 4,618만 달러, 수출은 6,268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어류, 육어류 조제품 등 수산물이 87% 이상을 차지하고, 주요 수입품은 전자제품, 인조섬유, 고무, 유기화학품 및 화장품 등 화학제품, 종이류, 사진용 재료, 인쇄물, 생활 잡화 등이 주를 이룬다.

또한 동원산업, 삼성전자, 미성상사 등의 한국 업체가 세네갈에 진출하여 총 20건에 걸쳐 654만 달러(2015년 누계)의 투자를 하고 있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며, 연해에 풍부한 수산자원으로 우리 원양어선은 물론 우리 교민의 상당수가 수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수산업 분야 외에도 한국 기업들은 가발업, 잡화 및 문구점, 사진업, 요식업, 보석산업 등의 분야에 진출해 있다.

2008년 한국은 세네갈을 무상원조 중점 지원 대상국으로 선정하고 농업, 교육, 수산양식 등의 분야에서 9백만 달러 상당의 총 5개 프로젝트 사업을 지원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봉사단과 전문가들을 파견하고 있으며, 세네갈로부터 연수생을 초청하고 있다. 2015년 5월 기준으로 세네갈에는 한국 교민 약 23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세네갈의 문화 분야 교류는 전통예술단의 방문 공연 정도이다. 체육 분야에서는 세네갈의 아마두 바Amadou Ba 선수가 제24회 서울올림픽(88서울올림픽)에 참가하여 400m 남자 허들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세네갈이 동시에 8강에 진출하여 축구를 통해 양국 국민이 서로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에는 세네갈의 최고 대중 인기 가수인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와 이스마엘 로Ismaël Lô가 방한하여 공연하였다. 한국의 경우 퓨전 국악 실내 악단인 ‘슬기둥’이 세네갈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2008년 5월에 개최된 다카르Dakar 비엔날레에서는 한국 작가 8명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2012년에는 한-세네갈 수교 50주년 기념을 계기로 양국 정상 간 메시지 교환(2012년 1월), 문화행사(2012년 5월, 비보이/퓨전국악 다카르 공연, 2012년 7월 세네갈 민속공연팀 여수 공연), 학술 세미나(2012년 11월, 다카르), 한식 축제, 영화제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북한과의 관계
세네갈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비동맹 중립 외교노선을 견지, 원칙적으로 남·북한 등거리 외교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나, 한국과의 경제 협력을 보다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북한은 1972년 9월 세네갈과 수교하고, 같은 해 11월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1974년 셍고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세네갈은 한때 친북한 경향을 띠기도 했다. 하지만 친서방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98년 2월 북한은 경제 사정으로 인해 주세네갈 상주 대사관을 폐쇄하였다가 2013년 7월에 상주공관을 재개설하였다. 상주 대사관 폐쇄 기간 동안에는 주기니 대사관에서 관련 업무를 겸임하였다. 세네갈은 주일본 대사가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북한의 만수대 해외사업부가 2011년 LSS 국제공항에서 다카르 시내로 진입하는 언덕에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탑’을 건설하여, 세네갈의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다. 2015년 5월 현재 북한은 건축기술협력 대표부 및 만수대 해외사업부 세네갈 지사를 설치, 기술자 및 100명 가량의 노동자를 세네갈에 파견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카르 시내 및 인근에서 각종 건물 신축 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북한과 세네갈 간에는 경제기술 협력 협정(1974), 무역 협정(1974), 혼성위 창설 협정(1986), 정보교류 협력 협정(1994) 등이 체결되어 있다.





모리타니 인종 분규
@1989년 4월 세네갈은 ‘모리타니Mauritanie 인종 분규’ 사건을 겪었다. 인접 국가인 모리타니와 세네갈 간에 방목권 분쟁이 있던 와중에, 모리타니 국경수비대의 무어인(Moor, Arabo-berber)이 세네갈의 소닌케족族 농부 2명을 사살하는 사건으로 인종 분규가 일어났다. 세네갈에서는 분노한 소닌케족을 비롯한 흑인들이 봉기하여 모리타니인들의 상점들을 약탈하고, 무어인들을 추방하였다. 모리타니에서는 마위야 울드 시드 아흐메드 타야Maawiya Ould Sid'Ahmed Taya(1941~) 정권의 비호를 받는 무자비한 무어인 경찰과 테러 집단이 모리타니 남부인 수백 명을 학살하고 강간과 신체 훼손, 폭행, 토지 약탈, 가옥 파괴를 자행하였다. 또, 7만 명 이상의 남부인들을 아무 연고도 없는 세네갈로 강제 추방하였다. 25만 명이 넘는 남부인 난민들은 타야 정권과 무어인의 인종 청소를 피해 세네갈과 말리로 탈출하였다. 8월 모리타니가 국경을 폐쇄하자 세네갈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세네갈 군軍의 정치 불개입 원칙
세네갈은 1960년 독립 이래 단 한 번의 군사 쿠데타도 없이 역대 모든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세네갈의 군대는 정치 활동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치 불개입 원칙‘을 독립 이래 유지하고 있다. 그간 정치적 격변기에도 정부의 결정에 복종하는 전통을 유지하여 왔으며 군사 쿠데타도 발생하지 않았다. 세네갈의 군 장성 출신 인사들은 국방장관, 내무장관 등 내각에 진출하거나 해외 주재 대사로 일부 진출하는 것 외에는 고위직을 차지하는 경우도 드물다. 세네갈은 프랑스와의 방위 협정에 따라 2009년 현재 약 1,200명의 프랑스 병력의 주둔을 허용하였다. 프랑스는 세네갈 군대에 대한 기술 협력 사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공동 군사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미군도 평화 유지 활동 참가를 명분으로 세네갈 군대에 대한 재정 및 기술 협조를 제공하고 있다.

세네갈의 군대는 서부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UN 또는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서아프리카 경제협력체(ECOWAS)의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네갈은 르완다, 캄보디아, 레바논, 라이베리아,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동티모르, 코트디브와르, 부룬디 등에서 평화 유지 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세네갈은 적극적인 평화 유지 활동을 통해 비동맹 중립외교 노선을 주창하고, 서부아프리카 지역 외교 분야에서 주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카자망스 분리 독립 투쟁 문제
1980년대 이후 세네갈에서는 남부 카자망스Casamance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 세력이 정부와 무력 충돌을 벌였다. 기독교 세력이 카자망스 지역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반군인 카자망스민주세력운동(MFDC)를 결성하고 대정부 게릴라전을 개시하면서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1993년 7월 휴전협정이 조인되기도 했으나 곧바로 결렬되었고, 이후 간헐적인 게릴라전과 소탕 작전이 지속되었다. 2000년 12월 카자망스 지역에서 세네갈 정부와 반군(MFDC) 간의 직접 협상 재개 합의가 이루어졌고, 2004년 12월 세네갈 정부는 마침내 남부 카자망스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카자망스 반군과의 평화협정 체결 이후 반군 활동은 거의 종료된 것으로 보이나, 카자망스 지방으로 진입하는 도로상에서는 외국인 등 외래 방문객을 상대로 한 금품 갈취 행위가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은 상황이며, 카자망스 지방 내에서는 대인지뢰 제거 작업도 진행 중이다. 마키 살Macky SALL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2014년 3월 및 2015년 2월에 각각 남부 카자망스 지역을 방문하여 ‘카자망스 개발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지방자치의 완전 실현과 세제혜택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카자망스 통합 정책을 펼침으로써 정세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4월에는 반군(MFDC)측이 휴전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노예무역의 상흔을 간직한 고레Gorée 섬
세네갈은 일 년 내내 관광이 끊이지 않는 나라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항공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서아프리카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대서양에 접하고 남쪽의 카자망스 평원은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이 이어졌는데, 파리에서 출발하는 유명한 자동차레이스 파리-다카르 랠리의 종점이기도 한 나라다. 기후와 거리가 유럽과 비교적 가까우며 역사적 관계도 깊다. 세네갈은 2007년~2008년 시즌에 유럽 등지로부터 약 8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2015년에는 방문 관광객이 총 3백만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네갈에는 대서양 해변을 따라 외국인을 위한 관광 리조트들이 개발되어 있다. 유럽에서 겨울철인 12월~2월 기간에는 따뜻한 기후를 즐기고 싶은 유럽인의 방문이 많다. 이 기간에는 월동을 위해 세네갈에 도래하는 철새도 볼 수 있다. 또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을 선정하고 문화보호 정책과 관광개발 정책 등을 추진함으로써 관광지로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세네갈의 관광산업은 재외국민 송금, 어업과 함께 세네갈의 주요 외화 획득원이며, 각종 레저단지는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세네갈의 주요 관광지로는 고레 섬(노예 수출 기지), 쥬지 국립공원(철새 도래지), 생루이(구 프랑스 식민지 수도), 살리(휴양지)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레 섬은 다카르 동쪽의 3㎞ 앞 바다에 길이 900m, 폭 300m의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이전에는 노예무역의 중계지였다. 지금은 인구 1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는 평화로운 곳으로 아스팔트 길도, 자동차도 없다. 단철로 만든 발코니가 있는 식민지풍 집들, 구 공회당, 멋진 해변, 또 섬과 다카르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는 바위투성이 고원으로 지금은 마리화나 중독자들이 차지한 르 카스텔 등이 있다. 섬 북쪽의 역사박물관은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멋진 그림과 여러 전시물들이 현재에 이르는 세네갈 역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비참한 노예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고레 섬 방문에서 빠질 수 없는 일정은 메종 데 에스끌라브(노예의 집)에 가는 것이다. 노예들이 생활하고 있었던 집으로 노예 무역의 상흔을 간직한 이곳은 1786년 세워졌으며 1990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다시 새롭게 꾸며졌다. 노예의 집과 이에 얽힌 이야기는 그 야만적인 상행위에 세네갈이 연루되었던 참담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기려 그 이름을 붙인 생루이. 한때 세네갈의 수도였던 생루이에는 도시의 중심이기도 한 세네갈 강에 떠 있는 작은 섬을 끼고 우측 본토인 소르지구, 좌측에 랑고 드 바르발리라고 하는 모래톱에 위치한 응다르 투트 등이 있다. 또한 이 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리가 이 세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쥬지 조류공원이 이곳에 있는데 이곳은 수만 마리의 철새들의 휴식처이다. 또한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Saint-Exupéry가 묵던 호텔도 있다.

“살람 말리쿰” 세네갈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인사말이다. ‘안녕하세요.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답례의 말은 “말리쿰 살람”이다. 일찍이 식민지 역사와 내전의 아픔을 겪은 아프리카 서쪽 끝나라 세네갈에도 따뜻한 안정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