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도 | 상제님의 비서실장, 김갑칠

[이달의 성구]

●본관: 안동
●본명: 판식判植
●족보명: 용회龍會
●출생: 1881년 전북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부 기윤과 모 황씨 사이의 차남)
●순도: 1942년
●입도: 1902년 4월(22세)

김형렬 성도의 종제(4촌)이며 김준상 성도의 동생이다. 김형렬 성도와는 19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수염도 얼마 나지 않은 용모였다. 첫째 부인을 일찍 상처하고 하운동의 둘째 부인을 얻었다. 입문 이후 형렬과 함께 많은 공사에 수종을 들었다. 상제님의 곁에서 천지공사 시 일등 비서 역할을 하였다. 어천 시에도 행장을 챙겼으며, 어천 후 교단 생활은 하지 않고 개인 신앙을 했다. 아들인 태일泰一도 죽을 때까지 상제님을 지극히 믿었다.

김갑칠의 입문


김갑칠은 본래 이름이 판식(判植)으로 형렬과 사촌간이라. 상제님께서 자현의 고질병을 고쳐 주심을 보고 그 신이하신 권능에 감복하여 상제님을 따르니 이 때 나이 22세라. 이후 상제님께서 이름을 갑칠(甲七)로 고쳐 주시니 상제님께서 외처로 출행하실 때 담뱃대 등 행장을 들고 따르면서 일등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공사에 수종 드니라. (도전 3:17:1~4)

갑칠은 무식똑똑이라


갑칠이 비록 배우지는 못했으나 말을 잘하고 경위가 발라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평소 상제님을 수종 들 때 눈치 빠르게 일 처리를 잘 하거늘 하루는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그놈 참 똠발똠발 하니 무식똑똑이로구나." 하시니라 갑칠이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수틀리면 해 붙이는 불같은 성미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갑칠을 ‘와가리’라 부르며 두려워하니라. (3:97:7~10)

이놈아, 육갑인데 너는 어찌 칠갑이냐


하루는 갑칠이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네가 갑칠이냐?” 하고 물으시매 갑칠이 “예, 갑칠입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놈아, 육갑(六甲)인데 너는 어찌 칠갑이냐? 옳지, 너를 합치니 칠갑이로구나. 그 문서 매우 어렵구나. 그래도 칠 자(七字)가 팔 자(八字)보다 나으리라.” 하시니라. (3:252:1~2)

네 몸에 천지공사를 띠고 가는 연고


5월에 상제님께서 밤재에 계실 때 김갑칠이 구릿골에서 와 뵙거늘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요즘 농사짓는 형편이 어떠하더냐?” 하시니 갑칠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가뭄이 심하여 이종(移種)을 못하므로 민심이 소란합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를 빌러 왔도다. 네게 우사(雨師)를 붙이나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맞을지라도 피하지 말라. 이는 네 몸에 천지공사를 띠고 가는 연고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발병이 있어 주저하며 돌아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재촉하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구제함에 어찌 일각을 지체하랴.” 하시니 갑칠이 명을 받들어 돌아가는데 청도원에 이르러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삽시간에 냇물이 넘치는지라. 이로부터 물이 풍족하게 되어 며칠 동안에 모심기를 마치니라. 상제님께서 이후로도 종종 갑칠에게 우사 신명을 붙여 비를 부리시니 어천하신 후에 사람들이 그를 우사장(雨師丈)이라 부르니라. (4:40)

내 발자국만 보고 따라오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갑칠을 데리고 서울을 가시는데 걸어서 싸리재를 넘어 금구 둔산(屯山)쯤에 이르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쏟아지거늘 금세 두월천(斗月川) 물이 불어 사람들이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더라. 상제님께서 갑칠에게 “너 여기 건너가겄냐, 못 건너가겄냐?” 하시거늘 갑칠이 “물살이 빠른 데다가 물이 한 길이 넘는데 어떻게 건너가겠습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못 건너겠습니다.” 하니 “너는 내 허리춤을 잡고 꼭 내 발자국만 딛고 따라 와라잉. 한눈팔았다간 빠져 죽는다.” 하시며 성큼성큼 냇물로 들어가시니라. 이에 갑칠이 말씀을 따르니 마치 얕은 물을 건널 때와 같이 종아리까지만 물이 차는지라 삐적삐적 땀을 흘리며 뒤를 따르니라. 내를 건너고 보니 상제님의 미투리는 바닥께만 젖고 자신은 무릎까지 젖어 있더라. (3:157:1~7)

남조선배 도수 공사


을사년 10월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익산 배산(舟山) 부근에 있는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深)의 집에 가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성도 여덟 명을 뽑아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기 두 사람씩 보내시며 명하시기를 “술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라.” 하시니 동은 익산(益山), 서는 만경 입석(萬頃 立石), 남은 김제(金堤), 북은 함열(咸悅)이더라.

이에 중옷(僧服) 한 벌을 지어오게 하시어 벽에 걸어 두시고 7일 동안 불을 때지 않은 냉방에서 사명당(四明堂)을 외우시며 “산하대운(山河大運)을 돌려 남조선배 도수를 돌리리라.” 하시니라. 이어 춘심에게 명하시어 선제(船祭)에 쓸 소머리 한 개를 푹 삶아 문 앞에 놓게 하신 뒤에 “배질을 하여 보리라.” 하시더니 정성백(鄭成伯)에게 명하시기를 “마르지 않은 나무 한 짐을 가져다 부엌에서 중옷을 불사르되 그 연기가 기선 연통처럼 피어오르게 하라.” 하시니라. 성백이 그대로 행하매 문득 큰 소리로 “닻을 올렸으니 이제 배를 띄우리라!” 하고 외치시거늘 갑자기 번개가 치고 뇌성이 뱃고동 소리와 같이 크게 울리며 석탄 연기가 코를 찌르고

가옥 전체가 크게 진동하여 흡사 큰 풍랑에 흔들리는 배와 같은지라. 마당에 덕석이 날아다니고 닭들이 날다 떨어지며 개가 짖다가 나동그라져 죽고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꾸러지고 토하며 정신을 잃고 나뒹구니 온 집 안에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 이 때 참석한 사람은 김형렬, 김자현(金自賢), 김갑칠(金甲七), 김광찬(金光贊), 소진섭(蘇鎭燮), 김보경(金甫京)과 그의 아들 김덕유(金德有), 정춘심과 그 아들 정성백과 가족들로 그 중 덕유는 하사(下瀉)까지 하며 문밖에서 쓰러지고, 춘심의 권솔들은 집 안 여기저기에서 혼도하니라.

한편 갑칠은 인사불성이 되어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져 있거늘 상제님께서 갑칠의 입에 청수를 흘려 넣으신 후 귀에다 대고 작은 음성으로 “갑칠아~.” 하고 길게 부르시니 갑칠도 역시 작은 음성으로 “예~.” 하고 길게 대답하매 즉시 회복되니라. 상제님께서 차례로 청수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시고 혹 먹이기도 하시니 모두 정신을 차리거늘 “역사(役事)하느라고 애들 썼으니 밥이나 제때에 먹어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갑칠에게 주시며 “부엌에서 사르라.” 하시니라. 이에 갑칠이 부엌에 들어가니 성백의 아내가 기절하여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지라 갑칠이 급히 글을 사르니 곧 회생하여 밥을 지어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비벼 여럿이 함께 먹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불사약이니라.” 하시거늘 모든 사람이 그 밥을 먹은 뒤에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을 완전히 회복하니 덕유는 말기에 이르렀던 폐병까지 완쾌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조선배가 떠나오니 어떠하냐? 이 일이 우리들의 기초니라.” 하시거늘 모두 일어나 절하며 아뢰기를 “참 무섭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다 죽겠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어찌 일을 재촉하느냐. 육정육갑(六丁六甲) 쓸어들이고 갑을청룡이 내달릴 때는 살아날 놈이 없으리라. 이처럼 급할 때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한동안 상제님께서 만중리 주막에 머무르시니 이 때 김성화(金聖化)와 그의 아들 윤칠(允七), 김광찬과 그의 조카 김병선, 김보경 부자가 함께 모시고, 그 경비는 정춘심이 부담하니라. (5:112~113)

대개벽기 49일 대공사


상제님께서 오의관에게 받은 돈 가운데 오백 냥을 갑칠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백 냥은 만경(萬頃)의 김광찬에게 전하고, 남은 것으로 구릿골에 가서 형렬, 성백과 더불어 49일 동안 날마다 종이등(燈) 한 개씩을 만들고 각기 짚신 한 켤레씩을 삼아 두라. 그 신으로 천하 사람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구릿골로 돌아와 명하신 대로 행하매 그 뒤에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짚신은 원평장에다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 두 글자를 쓰신 뒤에 다 불사르시고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라.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은행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종형에게 두 개가 있음을 알고 가져다 올리니 종이등을 사른 재 속에 은행을 넣으시고 다시 갑칠에게 명하시어 “그 재를 모아 앞 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보내며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이에 갑칠이 명하신 대로 하며 하늘을 우러러보니, 재가 물에 떨어져 흩어지는 것처럼 구름이 무디무디 피어나더라. 공사가 끝난 뒤에 은행은 갑칠이 간직하여 두니라. (5:135)

인류 구원의 남은 조선 사람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6:60)

갱생주를 읽게 하심


상제님께서 어느 날 저녁에 갑칠을 불러 갱생주(更生呪)를 읽어 주시며 “용화동(龍華洞)에 가서 사람을 만나거든 읽어 주고 오라.” 하시니 갑칠이 명을 받고 용화동에 갔으나 어찌된 일인지 밤늦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하거늘 하는 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갱생주를 읽으니라. 갑칠이 돌아와 상제님께 사실대로 아뢰니 “잘 하였다.” 하시며 칭찬하시니라. (9:185:1~3)

육임도꾼 지도자 출세 공사


이 때 문득 공우가 여쭈기를 “누구를 큰아들로 세우시렵니까?” 하매 상제님께서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말씀하시기를 “형렬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형렬에게 빈정대듯 농을 던지기를 “형님이요, 아우요?” 하니 상제님께서 “공우야, 너는 왜 그러냐?” 하시니라. 공우가 “저는 막고 품는 것을 좋아허요!” 하더니 다시 여쭈기를 “그럼 막내아들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갑칠(甲七)이니라. 갑칠이가 갑오갑자(甲午甲子)꼬리니라.” 하시니라. 공우가 잠시 후에 “그럼 큰아들 주신(主神)은 누구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진묵(震?)이니라.” 하시거늘 이에 공우가 “막내아들 주신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강감찬(姜邯贊)이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을 모두 마치신 후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치성을 준비케 하시되 모두 입을 봉하게 하시고 모든 제수는 날것으로 올리되 칼을 쓰지 못하게 하시니라. 이후 수부님께서 막내 도수를 붙인 갑칠에게 스스럼없이 자주 심부름을 시키시니라. (5:337:1~10)

상제님 어천 후 일화


상제님 어천 후에 하루는 김갑칠이 남원에서 교단을 열고 있는 김광찬을 찾아가니라. 광찬이 갑칠을 반갑게 맞아 지난날을 떠올리며 도담을 나누다가 시간이 흘러 갑칠이 돌아가려 하매 광찬이 갑칠에게 여비로 얼마간의 돈을 쥐어 주며 “증산은 누구이고, 나는 누군가. 죽은 증산 믿지 말고 나를 믿게.” 하거늘 순간 갑칠이 안색이 달라지며 “에이, 산벼락 맞아 죽을 놈!” 하며 광찬의 얼굴에 그 돈을 집어던지고는 돌아와 버리니라. (10:102)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께서 이 제비창골을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 사람들이 삼을 치고 있다. 그런데 상제님이 김갑칠 성도에게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여기 석 다발, 김갑칠 성도의 이름에서 삼신 칠성도수가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기 139년 8월 26일 의통성업군령 16호)


[종도사님 도훈]

김형렬 성도와 김갑칠 성도가 음양 짝이다. 김형렬 성도는 신명계에서 상제님의 큰아들이고 김갑칠 성도는 막내아들이다. 하나님의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음양 짝이 되어 제3변 도운에서 역사를 한다. (도기 135년 6월 4일 증산도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