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3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세계지역문화탐방]

    복지와 행복의 선진 부국 덴마크


    덴마크는 북유럽 바이킹 계열의 데인족이 세운 나라이다. 고대 바이킹 시대의 국가 형성 과정을 거쳐 8세기경 역사에 본격 등장한 이후, 덴마크는 여러 왕조를 거치며 부침을 겪다가 19세기 중엽에 입헌군주제를 확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덴마크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입헌군주제를 영위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산업기계 분야와 낙농 분야 등이 우수한 선진국으로서 북유럽 지역과 유럽 본토를 잇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나라이다.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운영 중이고, 높은 시민의식과 함께 사교적이고 낙천적인 국민성을 갖고 있으며, 국민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연 어떤 요인들과 배경이 덴마크를 이와 같은 선진국으로 이끌었는지, 그 탐구의 여정을 떠나 보기로 한다.



    1. 자연환경과 역사


    영토와 자연환경
    덴마크의 공식 명칭은 덴마크 공화국Kingdom of Denmark이다. 덴마크는 단마르크 왕국(덴마크어: Kongeriget Danmark)에서 기원한다. 고대에 덴마크 땅에 데인Dane 족이 살았는데, 덴마크라는 국명은 고대 노르드어로 ‘데인인의 땅(Danernes mark)’이라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G.J.C. Augustus(일명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재위 BCE 27~CE 14)와의 전쟁 때 덴마크에 사는 민족은 왕의 아들 단Dane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승리로 단을 왕으로 모시고 이름을 단마크Danmark로 명명했다는 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평평한 숲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접두사 단dan에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국기國旗는 ‘덴마크의 힘’이란 뜻을 지닌 ‘다네브로그Dannebrog’이다. 다네브로그는 1219년 에스토니아와의 전투가 벌어질 때 덴마크 왕 발데마르Valdemar 2세가 전투 중에 하늘에서 빨간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국기를 봤다는 데서 그려졌다는 설이 있다. 빨간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국기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국기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며, 덴마크 국기와 유사하게 하얀 십자에 파란 십자를 더하여 만든 노르웨이 국기도 등장한다. 아무튼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국가의 국기들 중 덴마크의 국기는 가장 오래된 최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덴마크는 북해와 발틱 해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본토가 스웨덴 남쪽, 독일의 북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윌란Jylland 반도이고, 동쪽으로 퓐Fyn 섬 및 스웨덴 남단 쪽의 셸란Sjaelland 섬을 비롯하여 443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덴마크의 총 면적은 43,094㎢이고,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로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크고 작은 섬들이 많아서일까?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7,314㎞나 될 정도다. 그 외에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북쪽 지방에 그린란드Greenland와 패로Faroe 제도가 있다.

    덴마크의 평균 고도가 해발 30m로 저지대이다. 빙하에 의한 침식으로 인해 모래와 자갈이 많은 서부 윌란드와 비옥한 평야가 있는 동부 윌란드 지역으로 나뉜다. 전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모래나 습지, 평야가 많으며 산이 별로 없는 편이다. 최고 높은 산이라고 불리는 곳은 몰레회이Molleǿj인데, 기껏해야 173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지대가 낮은 까닭에, 우리나라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보이는 동네도 있다고 한다. 수도는 코펜하겐Copenhagen(덴마크어로는 쾨벤하운kǿbehavn)이다. 코펜하겐은 윌란 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셸란 섬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에 외레순Ǿresund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웨덴의 남단 말뫼Malmö와 인접해 있다.

    덴마크 땅이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전국에는 많은 철도와 고속도로 및 포장된 도로가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약 420㎞에 달하는 내륙 수로가 있다. 덴마크 국영철도회사가 운영하는 연락선들이 덴마크 여러 섬들과 유틀란트 반도를 연결하고 있으며,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에도 취항한다. 여러 훌륭한 항구들이 15개의 주요 선박회사들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준다.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약 10㎞ 동남쪽에 있는 카스트로프에 국제 공항이 있다.

    덴마크는 서북지역에서 몰아치는 강한 바람을 맞는 반도 국가이다. 연중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 특색이기 때문에 바람의 나라라 할 수 있다.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서북부 지역의 농지 주변이나 주택 주위에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바람을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어 내는 풍차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덴마크 서북부 지역의 많은 주민들은 좁은 경작지들을 넓히기 위해 윌란 반도 북쪽 습지를 개척하고 메마른 땅을 개간하여 가축의 사료를 많이 재배하면서 목축업에 종사한다. 여기에서 질 좋은 치즈 및 많은 육류와 달걀 등이 많이 산출되어 덴마크는 낙농업 국가로 발돋움하게 됐다.

    덴마크의 기후는 북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온난한 편에 속한다. 북대서양 해류(멕시코 만류) 및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 때문이다. 겨울에는 날씨의 변덕이 좀 심하지만 대체로 온난한 편이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의 1월 평균기온이 0.1℃이다. 전체적으로 기온의 연교차는 적은 편이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이 -1.5℃이고 가장 더운 7월의 평균기온이 17℃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겨울이 습하고 일교차가 적어 체감온도는 춥게 느껴진다.

    덴마크의 역사
    고대 및 국가형성기(바이킹시대)
    현재까지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을 살펴보면, 덴마크 지역에 인간이 활동한 흔적은 1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적어도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가 겹치는 BCE 10000~BCE 1500년 사이에 덴마크의 주민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점차 농사를 지으며 사는 정착생활로 전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CE 500년경에는 농경을 주로 하는 ‘앵글Angles’ 및 ‘주트Jutes’라는 부족이 처음으로 집단부락을 형성했다.

    고트족의 한 역사가는 덴마크인들이 원래 스웨덴 지역에 살던 데인Dane족으로 덴마크로 넘어와 정착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덴마크를 세운 민족은 북유럽 바이킹Viking(고대 노르드어로 Vikingr) 계통의 후손인 데인족이라 볼 수 있다. 북유럽의 바이킹족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덴마크를 더하여 세 나라 민족은 모두 바이킹 계통의 정통 후손이라 볼 수 있다. 바이킹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작은 만’, ‘후미’를 뜻하는 고대 노르드어 “vik”에서 ‘작은 만의 거주자’,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비켄Viken 지역의 거주자란 뜻에서 유래한 것 같다. 노르드어 “비킹르vikingr”라는 단어는 스칸디나비아에 남겨진 고대 금석문에서 많이 발견된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는 바이킹 족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세기경에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떠나 항해하여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해상무역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바이킹은 북유럽과 중앙유럽에서 약탈 및 교역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활보한 바닷사람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덴마크를 세운 데인족의 바이킹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세기경이다. 이민족(해안가의 노르만족, 동남부의 헝가리족, 마자르족, 슬라브족 등)의 침략에 위협을 받고 있었던 프랑크 왕국의 2대 왕 카롤루스 대제Carulus Magnus(일명 샤를마뉴Charlemagne 대왕, 742?~814)는 북진정책을 펴게 되었다. 그때부터 덴마크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792년 카롤루스 대제가 북방의 노달빙기아Nordalbingia를 정복하자 프랑크 왕국의 국경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접경하게 된다. 이 때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던 덴마크족과 핀란드 족은 카롤루스가 정복민을 이상한 종교로 세뇌시킨다는 소문에 분노와 공포감을 품게 됐다. 808년에 덴마크의 고드프리Godfred 왕은 카롤루스 대제의 침략으로부터 덴마크를 보호할 목적으로 장성을 쌓았다. 장성이 다 쌓아질 무렵 덴마크의 해적이 프랑크 왕국의 영토인 프리슬란트와 플랑드르를 습격하고 돌아갔다. 고드프리 왕은 프랑크 족의 보복이 두려워서 프랑크 왕국을 방문했다가 아헨에서 갑자기 살해당하고 만다. 이 시기에 침략을 계획한 카롤루스 대제는 출병계획을 취소하게 된다. 고드프리 왕의 조카이자 계승자인 헤르만 왕은 811년 하순 프랑크 왕국을 방문하여 프랑크 왕국과 아이더 강을 국경으로 하는 힐리겐 조약을 체결한다.

    10세기경에 기독교가 북유럽에 전파되었다. 이때에 덴마크의 옐링 지역을 중심으로 고름Gorm 왕조(936?~958)가 일어났다. 고름 왕조의 1세(고름의 아들)가 되는 하랄Harald 왕조(958~986)는 아버지가 시작한 국가 통일을 완수했고, 덴마크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리고 1016년에 덴마크 출신 크누트Knut(크누드Knud) 왕(995?~1035)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그는 덴마크의 하랄드 블라톤 왕(940~986)의 손자이며 스베인 튜쿠스케 왕의 차남이다. 잉글랜드의 크누트 왕은 1018년에 덴마크 왕을 겸하였으며, 1028년에 노르웨이 왕으로 추대되어 세 나라의 왕을 겸하는 북해 제국(앵글로 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크누트 왕은 재위기간에 잉글랜드와 덴마크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두 나라 간의 문화가 융화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고, 또한 덴마크 문자와 앵글로 색슨 문자가 혼용되어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 출신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 왕이 되었고, 3국의 왕이 된 것은 크누트 대왕뿐이다.

    중세시대
    에스트리스Estrith 왕조(1047~1447년)

    크누트 대왕이 죽자 3국은 분열되었고,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의 조그만 세력으로 전락하였다. 크누트 왕의 조카 스벤(스웨인) 2세Svend(Sweyn) Ⅱ(1020?~1074)는 덴마크를 노르웨이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고, 1047년에 잉글랜드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로마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 덴마크 왕국 건설을 지향하면서 최초의 왕조인 에스트리스Estrith 왕조를 창설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후 몇 번의 왕이 교체되면서 다시 왕권이 약화되었고, 덴마크 교회는 함부르크의 세력 하에 있다가 1104년에 독자적인 국교회를 갖게 된다.

    이후 교회와 국가 내의 분열이 거듭되자 1157년에 크누드 리바르의 둘째아들 발데마르Valdemar den Store 1세(1131~1182)가 일어나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왕은 신성로마 황제에 복종할 것을 맹서하고, 군사력을 증진하고 재편성하여 독일을 견제하면서 발트 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다. 그때 셸란 섬에 구축한 성채가 바로 오늘의 코펜하겐Copenhagen의 기원이 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발데마르 2세(1170~1240)가 즉위하면서 덴마크는 경제적 측면에서 안정이 되었으나 왕과 교회, 귀족 사이의 투쟁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왕국의 힘이 점점 사그라졌다. 12세기 중반부터 전국적으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교회가 확대됨에 따라 국왕, 귀족 및 교회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1282년 국왕에 대한 견제 기능을 보유한 국정 협의 기관으로서 귀족원(다네호프Danehof, 후에 Rigsråd로 개칭)이 설치되기도 했다.

    발데마르 4세가 죽자 외손자인 올라프 2세Olaf Ⅱ세(1376~1387 재위)가 1380년 노르웨이 및 아이슬란드를 합병(1814년까지 지속)했고, 이어 발데마르 4세의 둘째 딸 마르그레테Margrete 1세(1387~1397 재위)가 등장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섭정하다가 1387년에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고, 1389년에 스웨덴 왕을 겸함으로써 3국을 다스렸다. 그럼으로써 1397년 비로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 연합체인 칼마르 동맹Kalmar Union(1397~1523)이 결성되었으며, 마르그레테 1세는 정식으로 3국의 북해 제국을 다스리는 여왕이 되었다.

    올덴부르크Oldenburg 왕조(1448~1863년)

    1448년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1세Christian Ⅰ(1448~1481년 재위)에 의해 창설된 제2의 올덴부르크Oldenburg 왕조(1448~1863년)로 교체되지만 3국 연합국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스웨덴에 독립의 기운이 일어나 연합체의 결성이 약화되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Christian Ⅱ는 스웨덴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의 독립군을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독립조직을 와해시켰지만, 끝내 스웨덴은 봉기를 거듭하여 1523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칼마르 동맹이 해체되었다.

    1526년 즉위한 크리스티안 3세Christian Ⅲ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루터교를 받아들였고, 자치 능력을 상실한 노르웨이를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원로원과 귀족세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켰고, 여러 분야의 학자를 배출하여 나라가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프레데릭 2세Frederik II가 집권하면서 덴마크는 발트 해의 주도권을 놓고 스웨덴과 폴란드, 뤼벡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었고, 후에 노르웨이 왕이면서 덴마크의 왕인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Ⅳ가 등장하여 상공업을 진흥시키고,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1625년 독일과의 전쟁, 1643년 스웨덴과 네덜란드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에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Frederik Ⅲ가 나와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 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 받고 1665년에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했다.

    1788년에 덴마크에서 농노제가 폐지되었다. 덴마크는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을 제정하고, 경제적인 활력에 주력을 가했다. 그러나 유럽의 동맹연합에 대립하여 벌인 나폴레옹 전쟁The Napoleonic Wars(1803~1815)에서 프랑스 편에 서게 된 덴마크는 영국, 러시아, 스웨덴의 동맹국과 싸웠으나 패하게 됐다. 결국 덴마크는 1814년 킬Kiel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와의 연합을 파기하고,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여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 덴마크와 덴마크령 아이슬란드, 패로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정은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1830년 프랑스 혁명 직후 왕권이 크게 약화되면서 1842년에는 덴마크에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에 절대왕정 폐지 및 의회(Rigsdag : 상원 Landsting 및 하원 Folketing으로 구성) 신설을 골자로 하는 최초의 『헌법』이 채택되었고, 마침내 프레데릭 7세Frederik Ⅶ는 왕정을 포기하고 자유주의 헌법을 받아들여 입헌군주제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귀족대표 중심의 상원과 소규모 자본가와 평민대표 중심의 하원간의 주도권 경쟁으로 덴마크의 국내 정국은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근·현대시대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1863년~현재)

    덴마크는 1863년 왕위에 오른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IX(1863~1906년 재위)에 의해 세 번째 왕조인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가 창설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티안 9세가 등극한 1863년 덴마크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킨 뒤에 독일연방에 속해 있던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역을 덴마크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동맹을 맺고 덴마크를 공격하여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를, 홀슈타인은 오스트리아가 통치하기로 합의했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농업의 집단화(협동농장)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1898년 전국 노동자연합과 고용주협회가 구성되는 등 근대사회로의 이행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시기에 근대적 정당으로서 1871년 사회민주당(노동자 중심)과 1880년 자유민주당(농민 중심)이 창당되었고, 이들 두 정당을 주축으로 한 개혁주의자들이 1901년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근대 입헌정치가 개막되었다.

    1914년 6월 28일에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의 후계자가 세르비아의 국민주의자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를 내리면서 1차 세계대전World War Ⅰ(1914~1918)이 발발했다. 덴마크는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는 고초를 겪게 됐다. 1918년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의해 패전하자 전쟁이 끝나고, 1920년 덴마크는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북 슐레스비히를 되찾을 수 있었다. 덴마크는 세계대전 중인 1915년 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선거제도(25세 이상 남·여에게 투표권 부여)가 도입됨으로써 민주제도가 출범하였다. 그 후 사회민주당과 급진 자유당(1905년 창당, 소지주·지식층 중심)의 오랜 연정(1929~1940년)이 지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1940년~현재)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World War Ⅱ(1939~1945)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및 재산을 파괴한 이 전쟁에서 덴마크는 1940년 4월 독일에 의해 점령을 당함으로써 많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 필요한 물자들은 독일군에 빼앗겼고, 덴마크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색출되어 끌려갔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에 의해 종식되자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하게 되었고, 1945년에는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덴마크는 인적·물적 희생이 컸으나, 전후 미국의 대외원조계획인 마샬 플랜Marshall Plan의 혜택으로 파괴된 기간산업시설, 전력부문, 농업분야 등의 복구가 이루어졌다. 전후에 덴마크는 종래의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공동방위를 통한 국가안보 확보 차원에서 스웨덴, 노르웨이와의 방위동맹을 모색하였으나 동 협상이 실패함에 따라 1949년 NATO에 가입하였으며, 그 후 유럽제국과의 경제협력증진을 위해 EFTA(1960), EC(1973)에 각각 가입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유지해 오고 있다.

    덴마크는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가 창설된 이후 크리스티안 9세, 크리스티안 10세, 프레데릭 9세에 이어 현재는 마르그레트 2세Margrethe Ⅱ(1972년 즉위) 여왕이 덴마크의 국가 원수로 위상을 점하고 있다. 마르그레트 여왕은 프레데릭 9세의 장녀이다. 그녀는 영국과 네덜란드 여왕 즉위에 영향을 받아 1953년에 개정된 새로운 헌법에 따라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덴마크 왕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덴마크는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사회복지정책이 비교적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산업기계분야와 낙농분야 등이 우수한 선진국으로서 북유럽 지역과 유럽 본토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정치 및 행정


    정치체제 및 법치구조

    덴마크는 1849년 6월 자유민주주의 헌법 채택에 따라 입헌군주국(Constitutional Monarchy)이 되었다. 사실상의 의회민주제도(내각책임제)는 1901년부터 시행되었으나 법적으로는 현행 헌법이 채택된 1953년 6월부터이다.

    헌법상 3권분립제를 채택하고 있고, 입법권은 국왕과 의회(Folketing)가 공동으로 보유한다. 행정권은 국왕에게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에 의해 행사되고 있으며,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 덴마크 헌법은 루터복음교Evangelical Lutheran Church를 국교(Established Church of Denmark)로 지정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헌법상 국가 원수인 국왕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입법권은 의회에, 행정권은 내각에 속함으로써 국왕은 상징적 존재로 있다. 참고로 국왕은 각료를 통해 최고통치권(Supreme Authority)을 행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1953년 ‘왕위계승법’에 의거하여, 왕위는 18세 이상의 남녀에게 계승된다.

    그러나 2009년에 개정된 왕위계승법에 따르면, 남녀 구분 없이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되어 있다. 국왕은 의회에 대한 법률안 제출권을 보유하며, 비상 시 의회의 소집이 불가능한 경우 헌법에 반하지 않는 한 임시법을 발표할 수 있다. 이 경우 의회 개회 후 승인이 필요하다. 현 여왕(국가원수)은 1972년 즉위한 마그레테 2세H.M. Queen Margrethe Ⅱ이며, 향후 프레데릭Frederik 왕세자(49세)가 왕위를 계승할 예정이다.

    행정부
    덴마크에서는 헌법상 국왕이 국정전반에 걸쳐 최고통치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행정권은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에 의해 행사되며, 내각은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헌법상 국왕에게 총리와 각료를 임명하는 권한이 있지만, 실제로는 국왕이 총선 후 또는 총리 사퇴 시 의회의 각 정당지도자들과 협의를 거쳐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획득이 가능한 인사 또는 적어도 다수가 반대하지 않을 만한 인사를 선정해 총리 후보로 지명한다. 그 후 내각 구성을 위촉하면 총리 후보는 각료 명단을 작성해 국왕에게 제출함으로써 새로운 내각이 구성된다. 내각 구성에 대한 의회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지만 의회는 총리 또는 개별 각료에 대한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

    한편, 총리불신임 의결 시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지 않는 한, 모든 내각이 퇴진해야 한다. 각료는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중에서 임명되는데,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도 임명될 수 있다. 참고로 각료에 임명된 국회의원은 의원 자격을 계속 보유한다. 현재 덴마크 총리는 자유당 소속으로 2015년 6월 취임한 라스 뢰케 라스무센Lars Løkke Rasmussen이다.

    지방행정
    덴마크의 지방 행정은 1660년 코펜하겐 시가 국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1849년 입헌군주제 헌법 채택 이후 본격화되어 관련 법률들이 제정되었으며, 2005년에 주·시·군 지방자치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현재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2007년 이전에 지방 행정은 전국이 14개 주(Amt)와 271개 시·군으로 구성되었으나, 2007년 1월 이를 5개 주(Region)와 98개 시·군(Kommune)으로 축소 조정하였다. 5개 주는 중앙윌란Midtjylland, 북쪽윌란Nordjylland, 셸란Sjælland, 남덴마크Syddanmark, 덴마크수도Hovedstaden 지역이다. 그린란드와 패로제도는 덴마크령으로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고 있다.

    입법부
    덴마크의 의회(Folketing)는 단원제이며 헌법상 전체 의석 179명 가운데 175명은 본토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4명은 그린란드Greenland와 패로Faroe 제도 자치령에서 각 2명씩 선출한다. 의회를 구성하는 의원 선거제도는 전국 10개 대선거구 내에서 다시 92개 소선거구로 구분되며, 175개 의석 중 135석은 각 지역구별로, 나머지 40석은 정당비례대표(Party Supplementary Seats)로 선출된다. 의원의 임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4년이지만 정부는 의원 임기 종료 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수도 있다.

    덴마크의 주요 정당으로는 자유당, 사회민주당, 보수당, 덴마크국민당, 사회국민당, 덴마크 사회자유당, 기독민주당, 적색녹색동맹당, 자유동맹당, 대안당 등이 있다. 1960~1982년까지 사민당과 보수당이 교대로 집권했고 2001년부터는 자유당과 보수당 연합이 집권하기도 했는데, 2015년 6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사민당(47석), 덴마크국민당(37석), 자유당(34석), 적색녹색동맹당(14석), 자유동맹당(13석), 대안당(9석), 사회자유당(8석), 사회국민당(7석), 보수당(6석)의 의석 분포를 보였다.

    덴마크 의회의 주요 권한은 입법권과 행정부 감독권이다. 의회의 영향력은 다수 내각인 경우 행정부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약하고, 소수내각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강하다. 주요 국정 사안들은 주로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의회에서 채택된 법안이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국민투표에 회부되어 투표자 중 30% 이상이 반대할 경우 동 법안은 부결된다. 또한 정부가 국가 주요 정책 및 안건에 대해 의회에 제출하여 의회 과반수 동의를 획득하지 못하면,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실시하거나 총리 스스로 내각에서 물러나야 한다. 물러나지 않을 경우 총리는 특별한 근거가 없어도 언제든지 여왕에게 의회해산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총리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국왕은 재선거 요청을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 그럼에도 덴마크의 의회는 다른 나라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치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용될 수 있었고, 국민들은 정치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들 중의 하나가 덴마크다.

    사법부
    덴마크의 사법부는 대법원(Supreme Court), 고등법원(High Court), 하급법원(Lower Court)으로 구성되는 3심제도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외에 특별법원인 해양·상업법원(Maritime and Commercial Court)과 노동법원(Labor Court)이 있다. 법관은 법무장관의 추천에 의해 국왕이 임명하나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

    최근의 덴마크 정세
    2015년 6월 실시된 덴마크 총선에서 야당 그룹인 Blue bloc(보수 성향)이 단 1석 차이로 승리했다. Blue bloc은 52.3%의 지지를 얻어 덴마크 의회 총 179개 의석 중 90석을 확보하는 한편, 반대 진영 Red bloc(진보 성향)은 47.7%의 지지를 얻어 89석을 확보하였다. Blue bloc은 소속 정당 간 협의를 진행했으나 연정을 이루지 못하고 자유당으로만 구성된 신정부를 출범시켜 자유당 소속인 라스 뢰케 라스무센Lars Løkke Rasmussen 총수가 신임 총리로 취임하였다. 최대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2015년 6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하였으나 Red bloc이 총선에서 패배하여 야당이 되었고, 헬레 토르닝 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 총수(전 총리)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수직을 사임하고 메데 프레데릭슨Mette Frederiksen 전 법무부 장관이 사회민주당의 새로운 총수로 선출되었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자치권 확대 문제는 덴마크가 직면한 주요 정치적 이슈 중 하나이다. 그린란드는 2008년 11월 주민투표(71.96%의 투표율 및 75.54%의 찬성률)를 통해 자치확대안을 채택하였다. 그린란드 정부는 자치확대안 통과를 독립을 향한 중대한 진전으로 자평하고 있으나, 현재 자원개발 수익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덴마크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지역에 주민이 분산 거주하고 있어 사회 인프라 및 정치적 자치 능력이 부족하고, 안보면에서도 덴마크나 미국(2005년부터 Thule에 MD용 조기 경보 레이더 기지 운용 중)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인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린란드의 실질적 독립 달성은 아직은 멀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3. 경제


    경제 구조 및 특성
    덴마크 경제체제는 거의 완전한 자유시장경제와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 모델로 특징지어진다.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자유롭게 해고하고 채용할 수 있는 등 정부의 규제가 거의 없는 동시에, 국가가 실직한 근로자에게 실직 후 2년간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재취업 교육을 제공하며, 국민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북유럽 모델을 시현하고 있다. 덴마크 경제는 2002~2007년간 EU회원국 중 가장 견실한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세계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8~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후 느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덴마크는 에너지 효율 제고 및 재생에너지에 중점을 둔 에너지 정책을 통해 대표적인 녹색 성장 국가로 부상하였다. 자급자족 에너지 공급에서 탈탄소화 및 재생에너지 자원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충분한 에너지 공급을 확보함과 동시에 기후 변화 대응과 그린 기술 및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2050년까지 “화석 연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fossil fuel zero)”는 목표하에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주요 산업과 무역
    덴마크 경제는 산업별 GDP 구성비 분류시 2014년 기준으로 서비스업(공공, 민간서비스)이 76.2%를 차지하며, 제조업 22.5%, 농업 1.4%의 순으로 나타난다. 덴마크의 경제 하면 떠오는 것이 낙농업이다. 덴마크 농업의 국제경쟁력이 높다 보니 흔히 덴마크를 농업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순수 농업종사 인구는 전체 노동력의 2.6%에 불과하다. 그 대신 기계설비, 엔진, 조선, 금속가공, 제약, 화학, 의료기 등 제조업이 활발하며, 여타 금융, 에너지, 건설업 등이 주요 산업이다. 즉 오늘날 덴마크의 경제체제는 서비스업, 제조업, 금융업을 기반으로 한 국영과 민영의 혼합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런 경제 체제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막강한 나라로 올라선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는 천연자원이 빈약한 데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서구의 선진국들에 비견된다. 그래서 덴마크의 국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편이다.

    덴마크는 국가 규모가 작지만, 세계 최대 완구 제조업체 중 하나인 ‘LEGO’사, 세계 4위의 맥주 제조업체 ‘Carlsberg’사, 전 세계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의 50% 가량을 공급하는 ‘Novo Nordisk’사, 해운회사인 ‘A.P Møller Maersk’ 그룹, 세계 3대 명품 도자기 중 하나인 ‘Royal Copenhagen’, 세계 최대의 풍력터빈 생산 업체인 ‘Vestas’, 명품 오디오 기기를 제작하는 ‘Bang & Olufsen’사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어 짧은 노동시간과 고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는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무역량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상회한다. 전체 무역의 3분의 2는 EU국가와 거래되며, EU 역내 주요 무역국은 독일, 스웨덴, 영국 등이고, EU 역외국으로 노르웨이, 미국, 중국 등이 있다. 주요 교역상품은 산업재(76%), 서비스(12.5%), 농업(10%) 등으로 기계류 등 산업재가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류, 농산물가공품, 제약제품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소비재, 중간재, 자본재, 운송수단 등이다. 덴마크는 1987년 이래 무역 및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2014년의 경우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전체 GDP의 3% 수준에 달하고 있다.

    최근 경제 동향 및 향후 전망
    덴마크의 국민 총생산(GNP)은 9957억 크로네DKr이며, 유아에서 연금 수령자에 이르기까지 1인당 국민 소득이 15만 8000크로네(2만 5,500달러)에 이른다. 이는 유럽공동체EC 회원국 중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덴마크는 세계에서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세계에서 국민의 소득 불균등이 낮지만, 최저 임금이 가장 높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국가 경제의 한 특징을 이룬 나라가 덴마크다. 국가 세입은 주로 관세, 국내 물품세, 소득세, 재산세에서 충당한다. 세출은 주로 사회복지사업, 교육, 국방에 쓰이며 나머지는 경제개발에 사용된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덴마크의 경제철학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다. 노동력의 4분의 1 이상이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안정된 생활 기반을 제공한다는 취지하에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아직 큰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의료와 교육제도는 물론 안정된 고용시장까지 추구하려는 덴마크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정책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세금 부담률은 48.1%이다. GDP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자면, 덴마크가 전 세계 1위이다. 25%에 달하는 부가가치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덴마크 사람의 대부분은(70%) 국가가 주는 서비스와 세금이 균형을 이룬다고 만족해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고소득 고세율을 기조로 하는 덴마크 경제 모델은 상대적으로 느린 경제 성장을 초래했다. 하지만 최근 유가하락과 고용증가에 따른 내수 회복(민간소비회복) 및 수출 증가(덴마크 크로네 약세)가 덴마크의 경기 회복을 견인해 나가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던 GDP 성장률이 2014년에는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1.1%)으로 돌아선 이후, 2015년 1.2%를 기록했다. 2016년에도 비슷한 수준인 0.9%의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이보다 약간 높은 1.5%, 1.8%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이 발행한 ‘Doing Business 16/17’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6년 내내 유럽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기업환경평가) 랭킹 1위, 세계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대對덴마크 투자도 (산업별) 금융중개업, 무역 및 운송업(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 머스크Maersk를 비롯해 다수 선주 포진),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제조업의 경우 덴마크는 인건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단순 제조업보다는 비교 우위가 높은 풍력발전 등 녹색 기술(Green Technologies), IT 및 전자통신, 생명 과학 및 의료서비스 부분에 대한 투자가 두드러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IT, 생명과학 등 덴마크가 강점이 있는 산업에 투자 진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4. 사회와 문화


    사회문화적 특성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다.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혜택을 입고 있다. 노인, 불구자, 임산부, 사망자, 환자는 수당을 받는다. 생활수준이 높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보건상태가 우수하다. 덴마크의 국민들은 시민의식이 높고 인종차별을 하지 않으며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아주 훌륭하다.

    덴마크인들은 북유럽인들에 비해서 사교적이고 낙천적인 국민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덴마크인들은 성性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며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여 동성 동반자를 법적으로 인정했고, 2012년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또 덴마크는 마약과 알콜 중독자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의외로 높은 범죄율(경범죄)과 정신질환 발병률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취약층인 홈리스homeless(노숙자)들에 대해서는 덴마크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이를 해결하고 홈리스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 중이다. 집이 없음의 뜻하는 『후스 포비Hus Forbi』라는 잡지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잡지를 홈리스가 판매하여 당당히 돈을 벌 수 있도록 해 안정적인 자활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만족지수가 높다. 택시기사나 식당 종업원, 주부, 고등학생, 대학생, 교사, 교수, 공무원, 언론인, 목사,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덴마크인들에게 삶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그러한 의식과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종, 언어 및 종교
    덴마크인구는 559만 명쯤 되는데, 인종은 아리안계의 노르드족의 한 분파인 데인Dane족 및 고트Goth족이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외국계 이민자(이 가운데 절반이 북유럽 또는 기타 유럽 국가 이민)들로 구성된다. 덴마크인은 오랜 왕정과 농업 사회의 역사 및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 근면하고 협동심이 강하며, 모험을 좋아하는 대외지향적인 국민성을 갖고 있다. 덴마크는 인도유럽어족 북게르만어(노르드어)파에 속하는 덴마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데, 이 언어의 특징은 어미의 변화가 적고 영어와 비슷한 어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덴마크어는 노르웨이, 스웨덴어와 매우 흡사하여 이들 세 나라 언어 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이다. 또한 덴마크어는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와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약 600만 명이 덴마크어를 사용 하는데, 주로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이고,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사는 약 5만여 명도 덴마크어를 사용한다. 현재 덴마크령인 패로 제도와 그린란드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 9세기 이전의 덴마크는 다신교적인 신앙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9세기 무렵 기독교가 전래되었고, 오늘날에는 전 국민의 약 80%가 국교인 덴마크 루터복음교(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Denmark)를 믿고 있다. 이외에 가톨릭, 기타 개신교, 유대교 신도들도 있으며 최근 이민자 중심으로 이슬람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과 언론
    덴마크 정부는 교육 부분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EU 국가들보다 교육 재정에 훨씬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GDP의 7.9%를 교육 재정에 사용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덴마크는 뛰어난 교육 인프라를 갖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성인교육과 재교육에 많은 비중을 할애, 이 부문에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막대한 교육 재정 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학습 능력 평가와 노동자의 지적 수준 저하 문제가 제기되는 등 교육 개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교육제도는 초등교육(7~16세)과 중등교육(16~18세) 및 고등교육으로 단계별 구분이 되어 있다. 초등교육은 9년제 초급학교(Folkeskole,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결합)가 의무교육이고, 10세부터 영어 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며 14세부터는 제2외국어를 학습한다. 중등교육은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3년제 일반 중등학교(Gymnasium)와 2~3년제 직업학교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초등학교 졸업생이 진학한다. 직업학교의 경우 농업, 사회보건, 직업교육연수 등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동 과정을 수료하면 바로 직업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이밖에 고등 상업기술시험을 합격할 경우에도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고등교육은 대학 교육과 성인 교육으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5개의 종합대학이 있으며 대부분 학사 과정(3년)이후 석사 과정(2~3년)에 진학한다. 또한 대부분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정부의 후원 아래 직장인 또는 실업 인구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이러한 성인교육은 덴마크 교육제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덴마크 주요 대학으로는 코펜하겐 대학(University of Copenhagen), 오후스 대학(Aarhus University), 덴마크 공과대학(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 덴마크 남부대학(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 올보 대학(Aalborg University), 로스킬드 대학(Roskilde University), 코펜하겐 비즈니스대학(Copenhagen Business School), 코펜하겐 IT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 등이 있다.

    덴마크에서 전국망을 갖는 TV방송은 Danmarks Radio(DR), TV2, TV3와 TvDanmark 등 4개 방송국의 8개 채널이 있다. 그리고 Danmarks Radio에서는 4개 채널의 라디오 방송을 운영 중이다. 신문의 경우, 대표적인 전국지는 폴리티켄Politiken, 율랜츠 포스텐Jyllands-Posten, 베를링스케 티엔데Berlingske Tidende 등이며 이들 세 곳은 전체 신문 발행부수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보장
    덴마크는 폭넓은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회보장 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한다. 2013년 기준 사회보장(보건, 사회보호, 교육) 정부 지출은 약 7,698억 덴마크 크로네(Danish Krone, DKK)에 달한다. 정부 예산 중 보건, 사회보호, 교육 등 분야에 지출되는 사회보장비용은 71% 이상을 차지하는데, 특히 사회보호 및 복지 지출은 총 정부지출의 43.9%에 달한다. 의료 부문은 2011년 기준 종합병원이 48개로 비교적 높은 의료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덴마크인들은 퇴직 후 9,105~ 15,575 덴마크 크로네 상당의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결혼한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을 시 최소금액을 수령하게 되며, 독거할 경우 최다 금액을 수령하게 된다. 2015년 기준 덴마크의 연금 수혜자는 약 130만 명이다. 이밖에도 미성년 자녀교육, 실업 등 생계비 지원 대상 가정에 대해서는 사회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문학과 예술
    덴마크에는 문학과 예술 등의 분야에서 배출된 걸출한 인물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아동문학의 문호를 꼽으라 하면 단연코 덴마크의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ans Christian Andersen일 것이다. 안데르센은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들로 옛이야기나 요정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유럽 문화에 어린이를 위해 창작한 이야기로서 오늘날 ‘동화’라고 부르는 어린이 문학의 꽃을 피우게 한 ‘동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어 공주』,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 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더불어 덴마크에는 유명한 실존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쇠렌 키에르케고르øren Kierkegaard가 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 『이것이냐 저것이냐』,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등 주옥같은 사상서를 펴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로는 1917년의 헨리크 폰토피단Henrik Pontoppidan과 1944년의 요한네스 V. 옌센Johannes Vilhelm Jensen이 유명하다. 또한 1754년에 세워진 왕립 덴마크 미술협회에서는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트센Bertel Thorvaldsen과 현대건축가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배출되었다. 19세기에 오귀스트 부르농빌August Bournonville이 안무를 맡음으로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던 유명한 덴마크 왕립 발레단도 있다.

    관광명소
    덴마크의 관광명소로는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리 기억할 만한 의미를 던져 주지 못한다. 실은 옐링 고분군Jelling Mounds, 루닉 스톤과 성당Runic Stones and Church, 로스킬드 대성당Roskilde Cathedral이 가 볼 만한 곳이다.

    옐링 고분군은 덴마크의 유틀란드 반도 중부에 위치한 옐링 지역에 있다. 고분군에는 룬 문자가 새겨진 10세기의 비석과 성당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있는 가장 오래된 비석은 최초로 덴마크의 통일을 이룩한 왕으로 여겨지는 고름Gorm 왕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비석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아들인 하랄드Harald 1세의 기념비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정복한 것과 데인족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분군의 비석은 덴마크의 기원을 나타내는 귀중한 문자 자료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로스킬드 대성당은 덴마크의 시란 섬에 위치해 있다. 12~13세기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초기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건축물이다. 벽돌을 주재료로 건설한 이 성당은 15세기부터는 덴마크 왕실의 묘당으로 사용되었는데, 거기에 덴마크 역대 군주가 매장되었다. 1536년의 종교 개혁 이후에는 시란 섬의 주교좌가 되었다. 현관과 측면의 예배당은 19세기 말에 증축되었다. 로스킬드 대성당은 고딕 양식이 북유럽으로 확산되는 데 공헌하였으며, 유럽의 종교 건축이 어떻게 발달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5. 한국과 덴마크의 관계


    외교 관계
    덴마크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 7월 대한제국 전권대신 유기환兪箕煥과 덴마크 전권대신 파블로우巴禹路厚 사이에 한정수호통상조약韓丁修好通商條約이 조인되었다. 이것이 대한제국이 외국과 맺은 마지막 수호조약이었다. 1905년 외교권 박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요에 의해 대한제국과 일본 간에 맺어지면서 우리나라는 덴마크와의 국교가 단절되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교했으나, 이때 덴마크 정부의 기술 지원 덕분에 우리나라는 최초로 전화 가설이 이루어지는 등 덴마크와 경제 교류가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2년 2월에 덴마크는 유엔 정회원국으로 참전하여 야전병원선 유틀란디아호Jutlandia를 파견하여 의료지원에 나섰다.

    한국과 덴마크 간의 정식 외교관계는 1959년 3월에 처음 시작되었다. 덴마크는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1973년 7월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외관상 남북 간 등거리 외교정책을 시행하여 왔다. 그러나 1978년 6월, 한국에 상주대사관을 설치하고 UN 등 국제 무대에서 북한보다는 우리의 입장을 더욱 지지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좀 더 중시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및 1988년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와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덴마크 정치인, 경제인 및 일반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최근에는 양국 간의 인적, 경제, 통상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2016년 10월 25일에는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가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녹색성장동맹 증진 현황을 평가하고, 양국 간의 실질 협력 확대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또한 북한 문제와 기후 변화 대응 등 지역과 국제무대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경제문화 관계
    경제·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덴마크 양국은 기술 협력 및 제휴, 자본 합작 등을 시행하고 있다. 1959년 이래 덴마크는 한국의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지도자들을 매년 10명씩 전액 장학금으로 초청하여 농업 목축 수의 의료 조립식주택 기계공업 핵과학 화학공업 식물병리 등 67개 분야에 걸쳐 교육훈련을 시켜 왔고, 선박용 전자제품과 조립식 주택, 농산물 가공 부문 등에 기술 협력을 제공하였다. 또한 덴마크의 완구제조업체인 레고Lego사와 한국의 우정해운이 1983년 153만 달러를 투자하여 레고코리아Lego Korea를 설립하였고, 1983년 덴마크 BNW엔진사와 현대중공업의 기술 제휴 및 합작이 성사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양국의 교류는 사회·문화 측면에서도 긴밀히 유지되고 있다. 유틀란디아 병원선이 들어왔던 1952년 2월 한·덴마크협회가 조직되어 덴마크와의 친선사업을 펴왔다. 한·덴마크협회는 1975년 5월부터 ‘덴마크의 날’을 기념하여 한국과 덴마크 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정기적으로 덴마크 사진전도 개최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1980년에 덴마크 태권도협회가 조직되어 500여 명의 연수생을 배출했으며, 협회 산하에는 1985년에는 태권도 클럽이 100여 개에 이르고 있었다. 또한 교민단체로는 1973년 한인회가 창설되어 생활 정보를 나누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덴마크에는 6·25전쟁 고아 6,000여 명이 입양되어 갔고, 이들이 자라 가정을 이루며 ‘한·덴마크 우정의 모임’을 만들어 친선 도모에 적극적이다.

    2016년 현재 한국의 대對 덴마크 교역(11월까지의 누계액 기준)은 약 9.55억 달러로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대對 덴마크 수출이 3.12억 달러, 수입은 6.43억 달러를 기록했고,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 기계류, 철강제품, 플라스틱, 전자기기 등이며 주요 수입 품목은 기계류, 의료용품, 전자기기, 광학기기 및 의료기기, 육류 등이었다.

    우리나라의 대 덴마크 수출액은 전체 수출의 70~80%를 차지하는 선박 수출 여부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는데, 선박(조선기자재 포함) 수출 확대에 힘입어 2013년 이후 수출이 급증세를 나타내다가 2016년 이후 선박 인도 물량이 사실상 전무하게 되면서 수출이 다시 급감세로 돌아섰다. 2013년 이후 대 덴마크 수입은 완만하게 증가하는 모습을 나타내다 2016년 들어 기계류 수입이 감소하며 2016년 11월 누계 기준 30%가량 급감했다. 이는 아마도, 한국 조선업 불황에 따라 선박기자재 수입이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재외동포 현황
    덴마크에 거주하는 우리나라의 재외국민은 약 4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참가자 약 100명, 교환 학생 및 유학생 약 70명, 주재원 및 대사관 직원 가족 약 50명, 그린카드 소지자 및 과학인(연구원 및 교수) 가족 약 70명, 기타 국제결혼 등을 합한 인원이다.

    덴마크 지역 한인 단체는 200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한인회와 덴마크 한인과학인 협회가 있고, 한글학교는 덴마크 (코펜하겐) 한글학교와 율랜드지구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덴마크에 입양된 성년 입양인 약 9,000명이 상호 친목과 한국에 관한 정보교환 등을 목적으로 조직한 The Korea Club(Koreaklubben)이라는 단체도 있다. 덴마크 내 친한 단체로는 한-덴마크 협회(Danish-Korean Society)와 유틀란디아 동지회(The Jutlandia Veterans Association), 덴마크 태권도 협회(Danish Taekwondo Federation) 등이 있다.

    북한과의 관계
    덴마크는 NATO 및 EU 회원국으로서 친서방 노선을 대외 정책의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여타 북유럽국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73년 7월 이래 북한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1973년 10월 덴마크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으나 1998년 폐쇄하였다. 현재 주한 덴마크 대사가 북한을 겸임하고, 주스웨덴 북한 대사가 덴마크를 겸임하고 있다. 1976년 10월 덴마크는 북유럽 최초로 마약 및 술, 담배 밀매 혐의로 북한공관원 전원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경제 관계에 있어 덴마크와 북한의 무역 규모는 28만 달러(2013년 기준)로 미미한 수준이며, 북한의 대對덴마크 채무상환 불이행으로 덴마크 대외 수출 보증위원회는 대對북한 수출보증을 허가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덴마크의 옴부즈맨Ombudsman 제도
    덴마크의 의회 운영에 있어 특이한 점은 1953년부터 스웨덴의 영향을 받아 ‘옴부즈맨ombudsman’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독특한 제도인 옴부즈맨은 ‘국정민원조사관’으로 불리는 행정 감찰 전문인이다. 옴부즈맨ombudsman은 대리인, 대변자의 뜻을 가진 스웨덴어 'ombud'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혹자는 이 용어가 “이것저것에 대하여(om) 말하는(bid) 사람”이라는 어원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옴부즈맨 제도는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현재 스웨덴에서는 저스티티 옴부즈맨(Justitieombudsman, 'JO')이라고 불리는 의회가 선출하는 옴부즈맨과, 정부가 임명하는 특수분야 관할 전문 옴부즈맨 등 두 가지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군에 대한 통제와 군인의 법적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 옴부즈맨 제도(Wehrbeauftragter; Defense Commissioner)가 실행되고 있고, 일본은 유럽 방식이 아닌 독자적 옴부즈맨 제도로서 행정상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대중적 옴부즈맨 제도가 특정 분야를 관할하는 특수 옴부즈맨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충민원처리와 부패방지 및 행정심판 기능을 통합하여 수행하는 옴부즈맨 기관으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옴부즈맨 제도는 정부의 권한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덴마크에서 의회에 의해 임면이 되는 옴부즈맨은 법률 및 행정 등 국정에 관한 민원을 조사하고 이의 시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 또는 권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다. 행정 기관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옴부즈맨 제도는 행정 결정의 합법성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행정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행정에 대한 옴부즈맨의 권고 사항은 사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잘못된 것이 있을 경우 해당 부서가 의회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체로 수용되는 편이다.

    1753년에 개정된 덴마크 헌법 제55조는 의회로 하여금 국회의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가의 행정 및 군사 행정을 감독할 수 있는 자를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옴부즈맨 임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 후 옴부즈맨 임명에 관한 법률 제정 시 1명으로 충분하다는 검토 결과에 따라 1955년 초대 옴부즈맨 이래 1명씩만 임명이 되고 있다. 모든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및 소속 공무원은 옴부즈맨의 조사 대상이 되지만, 사법부와 판사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며 교회의 교리와 직·간접으로 연관되는 사항도 제외된다. 조사 대상에 지목된 정부기관 또는 공무원은 옴부즈맨의 조사활동에 자료 제출, 출석 등 필요한 협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옴부즈맨은 각료(또는 전직 각료)의 직무상 행위가 민·형사 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의회에 권고하며, 기타 공무원에 대해서는 범법 또는 불공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검사에게 조사 및 기소를 지시하거나 해당 행정 기관에 징계를 지시할 수 있다. 또한, 옴부즈맨은 법률 또는 행정규정상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의회 및 해당 정부부처에 통보한다. 옴부즈맨은 매년 의회에 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덴마크에는 의회에서 임명되는 옴부즈맨(Legislative Ombudsman)과는 별도로 소비자 옴부즈맨(Ombudsman for Consumer Affairs) 제도가 있다. 소비자 옴부즈맨은 1954년에 도입된 것으로, 소비자가 민간 기업 또는 정부 기관이 선량한 시장 관행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소비자 옴부즈맨에 제소하는 제도이다. 기업도 타 기업이 불공정경쟁을 하는 경우 제소가 가능하다. 소비자 옴부즈맨은 강제 처분 권한이 없으며 가급적 쌍방 간에 타협을 통한 해결책 권고를 모색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도 그런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들 수 있다. 월급의 50% 이상 세금을 내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사는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인들은 의료비 무료, 학교 등록금 무료, 얼마간의 생활비 지급과 실업 보조금 등을 받는다. 본인들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당사자들이고, 자신이 낸 세금이 사회를 위해 정당하게 쓰이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덴마크인들은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덴마크의 정부, 경찰, 사법부,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84%에 육박하여 세계 1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투명한 운영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발표에 의하면 덴마크는 2015년 세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91점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함으로써 가장 부패가 없는 투명하고 깨끗한 나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둘째는 공정한 교육정책이다. 어린아이부터 16세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모두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학교는 대부분 공립으로 무상교육에 장학금까지 지급되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직업교육을 시키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그래서 젊은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1479년에 설립한 코펜하겐대학교를 포함하여 5개의 대학교가 있다. 대학에서의 교육 또한 엘리트 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과 능력 발달을 강조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 수준에 맞추고 있다.

    셋째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다. 덴마크의 사회나 부모가 강요하지는 않지만, 18세가 되면 70% 정도의 청년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부모 곁을 떠난다. 사회적 차별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청소년들의 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해도 걱정이 없다. 학비 무료에 최소 생활비까지 지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덴마크 국민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일정한 기본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밥벌이를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사회에 뛰어들어 실패해도 걱정이 없다. 실직해도 2년 동안 기존 급여의 90% 실업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해고를 당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으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체계적인 재취업 교육을 통해 다음 진로를 여유 있게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어 신문이나 잡지는 검열을 받지 않는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또한 독립 공공기관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시청료를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운영된다.

    넷째는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사회라는 것이다. 청바지 차림으로 일하는 국회 의원, 아들이 열쇠 수리공임을 자랑하는 식당 종업원 아버지, 길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교장 선생님, 회사 사장과 직원의 평등한 관계 등은 덴마크인들의 직업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등한 사회의 직업관은 어려서부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즐거운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 건강한 인생관을 길러 내는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배움을 통해서 덴마크인들은 상호 간의 협동과 연대를 이루고, 각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어 평등하고 건전한 사회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는 만족의 미덕을 들 수 있다. 덴마크인들은 최고가 아니어도 만족하고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충분히 좋아’, ‘나쁘지 않지’, ‘괜찮아’라는 말들이 이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습은 과거 바이킹 시대에 강대한 나라였다가 외부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또한 경제적인 것(돈)에 대해 심하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소득이 아주 적더라도 일단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돈은 만족과 행복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도 인간이 만들어 낸 다양한 사회 중의 하나이다. 행복한 사회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가 덴마크가 아닐까? 거기에는 그들만의 역사와 고유한 특성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지도자가 있었고 함께 따른 국민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행복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갔던 선각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法古創新]”는 조선의 유학자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말을 상기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우리 사회가 행복한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옛것을 돌이켜 미래의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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