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3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한국의 성씨]

    한국의 성씨 | 복卜씨

    면천 복씨


    시조 복지겸

    우리나라 복卜씨의 선계先系는 문헌에 의하면 당唐나라의 학사學士 한 사람이 신라 말기에 오계(다섯 왕조에 걸쳐 문란해진 시대를 일컬음)의 난국을 피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건너와 면천沔川에 정착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면천 복씨의 시조인 복지겸卜智謙 장군(초명 사귀沙貴)은 태봉의 마군장군馬軍將軍이었는데 배현경, 홍유, 신숭겸과 더불어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건국(918년)하였다. 그 공로로 태조 왕건에 의해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 대장군大將軍에 봉하여졌다. 그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환선길桓宣吉과 임춘길林春吉 등의 반역 음모를 적발하여 이를 평정시켰다.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정2품, 재상 반열 벼슬)에 이르렀고 혜성부원군槥城府院君(혜성은 면천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사후에 무공武恭 시호를 받았으며 성종 때 태사太師(정1품 명예직)에 추증되어 태조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황해도 평산 태백산성太白山城의 태사사太師祠와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崇義殿에서 제사를 받들고 있다.

    관향의 역사
    면천 복씨의 관향인 면천沔川은 충청남도 당진군에 속해 있던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지비智非라 부르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혜성군槥城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현종 때는 운주運州(홍성의 옛 지명)에 속하였다. 후에 감무監務(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고, 조선 태종 때 면천군沔川郡으로 고쳤으나 1913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진군에 속한 면천면沔川面이 되었다. 복씨의 본관은 면천을 비롯하여 홍주洪州, 오천烏川, 연주延州(강원도 영월의 옛 이름), 평산平山, 구성龜城 등 9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해지나 면천 복씨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에 대해서는 고증할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
    역사적인 인물로는 고려 때에 무신武臣으로 명성을 떨쳤던 복규卜奎(시조의 12세손)가 충렬왕 17년(서기 1291) 원나라 태종의 둘째 아들 합단哈丹이 침입했을 때 원주原州방호별감防護別監(나라에서 조사, 감독 등의 일로 지방에 보낸 벼슬)으로 이를 격퇴시켜 크게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우 복기卜箕는 지주사知奏事(정3품 장관급 벼슬)를 역임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한편 우부승지右副承旨(고려 때 왕명의 출납을 맡아 보던 밀직사의 정3품 벼슬) 복성진의 아들 복위룡卜渭龍이 공양왕 때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궁중에서 쓸 술에 관한 일을 맡아 본 관아의 벼슬)으로 포은 정몽주, 목은 이 색 등과 함께 친교를 맺어 교유했으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홍주洪州의 여수동麗水洞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 조선 조의 인물로는 복위룡의 손자 복오卜吾가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현달하여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맏아들 복승원卜承元은 남원부사를 거쳐 도승지都承旨(임금의 비서실장)에 올랐으며, 둘째 아들 복승형卜承亨은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정3품 벼슬)에 이르렀고 셋째 아들 복승리卜承利는 제주목사牧使를 역임했다. 막내 복승정卜承貞은 예조참의參議와 황해도 관찰사觀察使에 올랐다.

    현대 인물로는 복중채(대종회 제3대 회장), 복삼규(대종회 회장), 복진홍(대종회 사무국장), 복거일(문화미래포럼 대표, 1987년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 출간), 복기왕(국회의원), 복정안(기초의원), 복진풍(시민청문회 공동대표, 국영기업인), 복남규(가수), 복종규(기업인) 등이 있다.(전 현직 구분 없음)

    면천 은행나무와 진달래 놀이의 유래
    이 은행나무들은 수령이 약 1,100여 년 정도 되었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어 소개한다. 복지겸이 노년에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백약이 무효했다고 한다. 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아미산蛾眉山에 올라 기도를 드렸다. 백일 기도 끝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의 진달래꽃을 따다 안샘(內井) 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네 집 앞에 은행나무를 두 그루 심고 정성을 들이면 나을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정말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한일합병 후 1910년대에 면천초등학교를 건립할 때 터를 닦기 위하여 흙으로 메워져 나무의 높이가 2~3m는 묻혔다고 하며 예전에는 백로가 많이 날아와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그 후 진달래술인 면천 두견주杜鵑酒와 두 그루의 면천 은행나무, 안샘, 아미산, 신선바위 등이 현재 면천 일원에 있어 진달래 민속놀이의 뿌리가 되고 있다. 1999년부터 당진군은 진달래를 군화郡花로 확정하였다.

    〈참고자료〉
    김동익, 『한국성씨대백과 성씨의 고향』, 중앙일보사, 1989
    김태혁, 『한민족 성씨의 역사』, 보문서원, 2015
    〈참고사이트〉
    성씨 정보(http://www.surname.info)
    뿌리를 찾아서(http://www.rootsinfo.co.kr)
    통계청 홈페이지
    위키 백과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2017년 03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