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방송의 우주변화원리로 열린 대도의 길 외 (김주영, 유형주, 조수호, 김정목, 이용금)

[입도수기]

상생방송의 우주변화 원리로 열린 대도의 길


김주영(남, 68) / 서울영등포도장 / 146년 음 11월 입도

저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산의 신양이라는 곳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근대사 민족의 최대 비극인 6.25 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남로당 박헌영 씨가 신양면 신양리 333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은 제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때는 1950년 8월 11일(음력)인데, 이때는 인민군들이 이미 예산 땅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산후조리 중인 어머니와 당고모만 남기고 가까운 곳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당고모께서 무서워 문고리를 잡고 있을 때 앞마당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잠시 후 인민군들이 방으로 쳐들어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니까 온 집안을 샅샅이 찾아보고 안 계시니 그냥 가 버렸다고 합니다. 제 성격이 조금은 유별난 면이 있는데, 어머니께서는 “너를 낳을 때 인민군들이 봐서 부정이 들어 그렇다.”고 종종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민군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는 할아버지께서 해방 직후 창설된 예산군 ‘민족청년단’ 단장이셨고, 아버지께서는 단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청년단’은 초대 국무총리이신 이범석 장군께서 창설한 국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군대 조직이었기에 인민군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저희 집안의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뼈아픈 상처가 되살아나서 더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결국 어머니께서는 여성의 몸으로 어린 자식들을 혼자서 키우셔야 했습니다. 제가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지는 못했어도 건실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큰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금세 눈물이 나서 감정조절이 잘 안됩니다. 살아 계실 때 조금만 더 효도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를 하지만, 그때에는 마땅히 취할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증산도와 인연이 되어서 천도식을 하면 어머니의 은혜를 만분지일이라도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삼게 됩니다.

진리 세계와의 인연은 우연찮게 ‘주역周易’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는데 조금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사시는 아저씨가 여름에 뜸부기 사냥을 하던 중, 소낙비가 와서 저희 집에서 잠시 비를 피하실 때였습니다. 집에서 찐빵을 쪄서 나누어 먹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빵을 만들 때 밀이 몇 번 빻아졌는지 아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가 없어 머뭇거리니까, 빵 반죽을 하면 이스트로 인해 밀가루 부피가 커지면서 어느 정도는 몇 번 빻아졌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제에게 이런 질문을 한 그분은 범상치 않았던 분으로 시골에서는 만물박사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때 뜬금없이 주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는 커서 주역을 공부하라고 당부하기도 하셨으므로 저는 언젠가는 주역을 공부를 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한편 외할아버지께서는 당대에 예산, 홍성에서 최고의 훈장이셨습니다. 저의 의식 DNA 속에 외할아버지의 DNA가 있어서 주역을 공부할 생각이 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공산주의자이며, 이것은 6.25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개인적 원한 관계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우리 국조이신 단군을 마귀라고 하는 일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저는 역사와 뿌리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극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KBS 사극 대조영을 재미있게 보던 중, 문득 고대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체 단련 수련법을 찾아 몇몇 곳에서 수련을 하기도 했으며, 천서天書인 천부경을 만난 이후로는 그동안 허전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과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인해서 피해가 많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2016년 10월 말에 시끄러운 세상이 싫증이 나서 어디 좋은 프로그램이 있나 하고 방송국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STB상생방송을 발견하게 되었고, 방송 프로그램 중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강의를 만났습니다. 평소에 우주, 진리, 도道, 자연이란 단어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어라, 좋은데 한번 시청해 보자’ 하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찾던 우주에 관한 주제이고 강사님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하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강사님이 말씀 중에 『도전道典』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도전을 사서 공부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대형문고에 가면 살 수 있었겠지만, 도장에서 구입하면 증산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증산도 안내전화 1577-1691로 문의한 후 서울 영등포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수호사님과 이런 저런 도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정식으로 증산도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상생방송에 나온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말씀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고 그 다음은 자신을 있게 하여 주신 조상님들이다.”라는 말씀이 저의 뒤통수를 큰 망치로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조상님들께 등한시한 것은 아니만 왠지 그날은 이상하게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보다 먼저 조상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의 우선순위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을 잊고 ‘도통道通’이란 단어에 매여 있는 자신을 보면서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잘못된 생각이라고 깊게 반성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조상님을 해원시켜 드리는 천도식을 거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증산도 신앙을 열심히 하여 제 자신이 도체가 되는 수행을 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증산도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 그리고 일선에서 헌신하시는 성직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큰 사랑에 감동을 하고


유형주(여, 33) / 서울잠실도장 / 146년 음 11월 입도

제가 증산도 신앙을 하는 것은 우선 어머니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그늘진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늘 담대하고 확신에 차고 의롭게 행동하시면서 저희에게는 부모에 효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그리고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정의로운 삶을 살라면서 평소에 늘 엄한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저에게 참된 삶의 목표와 이상, 그리고 올바른 인생의 가치관의 형성을 제시해 주신 스승님과 같은 어머니입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게 색다른 종교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여태껏 그런 일이 없었는데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는가 하면, 물을 떠 놓고 절을 수없이 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남들은 시청하지도 않는 방송을 틀어 놓고 진지한 모습으로 시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달라진, 이상한 모습을 보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엄마가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엄마를 그 수렁에서 건져낼까 하면서 고민과 걱정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 우려와 걱정을 가지고 있었던 저는 어머니의 권유로 어머니와 함께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태상종도사님의 도훈 말씀과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콘서트를 비롯하여 다양한 프로를 보면서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태상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은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 진한 감동은 하루 종일 저의 가슴속에 살아 남아 심장의 큰 고동으로 물결쳤습니다.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사건들에 대하여 세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는데 머릿속에 쏙쏙 꽂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전해 주시는 정보는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놀라우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어머니의 기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남매의 앞날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상제님께 용서를 빌며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에 감전된 듯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큰 사랑 앞에 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없이 엄마에게 짜증내고 푸념하며 실망시켰던 저의 지난날이 후회스럽게 느껴지면서 엄마한테 잘해 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하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며, 언제 어디서라도 태을주를 송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생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TV를 같이 보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지구촌 개벽소식과 연관시켜 분석을 해 보기도 하고, 인류의 앞날과 저의 미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익한 토론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우주의 가을 개벽에 상제님의 천명을 받들어 인류를 구원하는 증산도에 입도를 하여 부끄럽지 않은 신앙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인도로 도장을 방문하여 진리교육과 정성공부를 계속하면서 증산도 신앙인으로서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도를 하면 도전 속 상제님, 태모님의 생명 말씀을 실천하는 진리의 화신이 되어 천지일월 사체 하느님의 천명을 꼭 받들어 육임을 완수하는 태을핵랑이 되겠습니다. 천지와 더불어 성공하는, 실패하지 않는 모범적인 신앙을 하겠습니다. 열심히 신앙하여 후천 선경세계 새 세상을 건설하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자랑스런 수족과 같은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입도하기까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저를 진리교육을 통해 크게 일깨워 주신 수호사님과 포정님을 비롯하여 모든 잠실도장 성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참된 신앙으로 보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은! 보은! 보은!◎

[인도자 수기] 사무치는 기도와 원력으로 딸을 인도했어요


조수호(여, 59) / 서울잠실도장, 도감

가족포교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리를 전했을 때 거부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자식들에게 도를 전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말에 비하여 신앙에 관한 상제님의 진리를 전하려니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딸 형주를 상제님 대도진리로 인도하여, 함께 신앙하는 것이 제일 큰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우선 하늘에 사무치는 기도와 원력, 그리고 정성기운으로 딸의 마음을 일깨워 도문에 인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마다 집에서 청수 올리고 수행(신유술 천일 정성공부)을 할 때마다 자식들이 상제님 진리를 만나 오만년 운수의 길로 인도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태을주와 칠성경을 입도 이후 계속 송주하였습니다. 또한 상생방송을 매일 틈나는 대로 같이 보았습니다. 태상종도사님의 대도말씀이나,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개벽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를 시청하고 있은데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딸 형주는 태상종도사님의 대도말씀을 받들면서 큰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착하고 참을성도 많았던 딸과 요즘은 의지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증산도 진리의 길로 접어든 이후, 삶의 목표와 가치가 정리되었습니다. 저희 모녀는 매일 집에서 같이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딸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영적으로 성숙됨을 느끼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지구촌 개벽뉴스를 들으면서 향후 인류의 미래와 우리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도 하고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 시청과 함께 매일 집에서 함께 수행하고 태을주 송주를 하면서 딸은 증산도의 신앙 정신을 서서히 깨닫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딸은 인류구원의 법방에 대하여 큰 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신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엄마와 함께 증산도 신앙을 하는 것이 효를 실천하는 길도 된다면서 입도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척 기뻤습니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면서 공을 들였던 딸의 증산도 입도 결심을 얻게 되다니 눈물겹도록 기뻤습니다. 자손을 후천 5만년 운수의 길로 인도해 주신 조상선령님께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 딸은 도장 방문 이후 진리교육은 물론 증산도 도생으로서의 기본소양에 대한 교육과 도공 수행 등을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딸의 입도를 계기로 더욱 열심히 신앙을 하겠습니다. 저와 딸이 태을핵랑이 되도록 육임을 완수하여 확실하게 한 판을 빨리 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 군 복무 중인 아들 동엽이도 누나인 형주처럼 꼭 증산도 신앙인으로 만들어 보은하는 삶을 사는 가족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제 딸의 진리교육과 입도를 위해 힘써주신 수호사님과 포정님 외 잠실도장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보은! ◎

상생방송과 함께 이어진 신앙의 인연


김정목(남, 56) / 김해내외도장 / 146년 음 11월 입도

2015년 3월 우연히 인터넷에서 방영하는 STB 상생방송을 시청하던 중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종도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한민족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우리 역사가 제가 알던 반만 년이 아니라 근 일만 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태상종도사님의 우주 일년 도표와 생장염장의 도훈을 들었을 땐 정말 지구 일년처럼 우주 일년이 있을까란 의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증산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서적 및 『도전道典』도 알게 되었고 그 옛날 부엌에서 조그마한 종지에 물을 떠 놓고 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리게 되었으며 우연히 격암유록을 한글로 풀이한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아주 열심히 읽었고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게 되었는데 ‘천우지마天牛地馬 건우곤마乾牛坤馬’ 이 글귀가 뚜렷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책상에 적어 놓고 외우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STB에서 오전 6시경에 상제님 태모님 전에 청수를 올리며 배례하는 것을 보며 저도 같이 청수를 올리며 배례하고 태을주 및 오주도 따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6개월 정도 할 무렵 꿈에 갓을 쓴 노인분이 나타나셔서 가부좌를 하신 채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분이 누구신지 의문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에 하늘에서 불이 무수히 떨어지는데 엄청 큰 두꺼비 여러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신기하였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수행도 하고 치성도 하며 생활하던 중 ‘증산도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일어나 저의 뇌리에 계속 박히면서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여기저기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9월 초에 증산도를 안내하는 개인 블로그를 접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본부 교육부에 봉직하시는 김창익 수호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천지성공 및 월간개벽, 지금은 가을개벽기, 환단고기 가이드북 등의 책자를 공급받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또 문자로 도전 성구 메시지를 잘 받아 읽었습니다.

11월 초에는 김 수호사님이 김해내외도장에 직접 오시어 표영무 포정님과 같이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제님, 태모님에 대한 말씀과 배례 및 수행법, 도장에서 생활하는 예의와 방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 일요일 치성에 참석하여 포정님 이하 포감님, 도생님들과 즐겁게 도담도 나누고 지금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동지 치성에 교육관에서 김 수호사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맞이하며 저의 손을 이끌고 세종문고에 가서 기어코 『증산도의 진리』 책과 도훈 노트를 손에 쥐어 주시는 겁니다. 수호사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꼭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에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상제님 신앙을 하도록 인연줄을 내려주신 조상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생활하고 내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포교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여 꼭 도를 성취하겠습니다. ◎

어릴 적 봉청수의 정성으로 진짜 진리를 만나다


이용금(여, 60) / 전주경원도장 / 146년 음 11월 입도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늘 동네 우물에서 새벽에 깨끗한 물을 길어다 조왕에 정한수를 올리며 하루하루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가 12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어머니가 누구든 제일 먼저 일어난 사람이 가서 새벽의 첫 물을 길어다 조왕에 올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다른 동네 사람 누구보다 먼저 깨끗한 정성을 올리려고 제일 일찍 일어나 정한수를 길어 왔던 기억이 납니다. 증산도에 와서 공부를 해 보니 어릴 적의 이런 봉청수 문화가 모두 상제님을 만나기 위해 정성을 들여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평생 넉넉지 않은 가정 살림으로 인해 저는 배움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탓에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평생의 한이 남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 후 낳은 두 아들을 어떻게든 배우고 싶은 만큼 가르쳐야지 싶어서 남편과 함께 이를 악물고 농사를 짓고 장사도 하며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한 전쟁 속에서도 늘상 저희 부부는 ‘삶의 궁극의 목적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개척교회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것이 최선일까 하고 몇 년 동안 남편과 개척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목사가 돈을 사사로이 쓰는 것을 알게 되어 ‘이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저희 부부는 교회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다 대순진리회도 알게 되어 남편을 따라 같이 그곳에서 밥도 해 주고 봉사를 하며 도를 닦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국수를 끓여다 줬는데 선감이라는 사람이 국수를 이 정도밖에 못 끓여 오냐며 타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곳의 사람들은 자기 사욕으로 도를 닦지 마음을 닦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곳도 발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상생방송을 통해 증산도를 알게 되어 공부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전주경원도장에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저를 새벽 시장에 데려다 주고 남편은 매일 도장에 나가서 수행하고 진리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여보, 이곳 증산도는 진짜 같아, 참이 맞는 것 같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장에서 가지고 온 말씀 테이프를 시장에 장사하러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같이 들으면서 저도 나름대로 증산도 진리에 대해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려 갔습니다. 그리고 상생방송을 통해 진리 말씀을 가끔 들으면서 조상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조상이 첫 번째 하느님이라는 증산도의 가르침이야말로 지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채시장이 쉬는 겨울 농한기 동안 진리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 보기로 하고 도장에 와서 포정님으로부터 팔관법 진리를 배웠습니다. 하루하루 공부를 하면서 증산도의 진리가 위대하다는 걸 가슴 깊이 느꼈고 이곳이 백 퍼센트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명세계의 힘이 작용하면서 이 세상이 움직여 가고 인간의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았습니다. 조상님들이 자리를 잡아야 이번에 자손이 잘되고 열매를 맺기에 저는 이번 일요치성에 입도를 하면서 동시에 조상님들의 천도식을 위한 정성공부 입공치성을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봐도 이제는 개벽의 때도 임박해 오고 사람을 살리는 증산도의 사명을 분명히 이제는 실천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너무 배움이 짧아서 공부를 할 때 어려운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진리 공부 내용이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새벽 수행 때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상제님, 태모님, 조상님, 부디 이 멍청한 머리를 깨우쳐 주어 제대로 진리를 깨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진리를 제대로 깨쳐 가며 세상 사람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삶을 살겠으니 입도를 허락하여 주시면 힘닿는 대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