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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도장]

    영성과 신앙에 대한 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도방을 만들다 (조용구, 김향숙)


    청주우암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조용구(55세, 종감), 김향숙(46세, 교무녹사장) 도생 부부는 영성에 밝고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이 지극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김 도생은 도장에서 수석포감으로 봉직하고 있고, 조 도생 역시 부포감으로 봉직 중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여정을 거쳐 부부로 만났고 종국에는 상제님 신앙으로 든든한 가정도방을 이루었지만, 진리를 찾기 위해 거쳐 온 삶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비록 세 식구로 이루어진 도방이라고 해도 근본신앙에 대한 자각과 훈련이 가정도장에서 이루어지고 가족애가 층층이 쌓여 가는 기틀이 바로 도방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이 가족들 사이에는 굳게 공유가 되어 있다. 그 원천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구체화되었는지 이번 도방 이야기를 통해 공감해 보시기를 바란다.

    겨울의 중반을 향해 가는 대설大雪을 이틀 앞둔 12월 첫 월요일 저녁, 취재진은 충북 진천의 읍내리에 소재한 조용구, 김향숙 부부 도생의 도방을 찾아갔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의 설화로 유명한 진천은 자연의 순리를 지켜 사계절 특징이 뚜렷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지역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읍내리의 주택가 주소를 확인해 빌라를 찾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 가정도장 입구에 도착했다. 출입문에 마주 서니 겉에 붙여 놓은 태을주 주문과 언청계용신 모습이 보이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시 출입문 안쪽에 태을주와 운장주 주문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거실로 들어서는 입구 왼쪽 신발장 위에는 교육자료집과 도무일지, 도훈노트 등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가지런하고 길게 놓여 있다. 출입을 하는 길목에 늘 함께하고 있는 주문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손길이 닿았을 자료와 노트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처럼 독특한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은 거실 공간을 지나 바로 옆방은 천신단을 모셔 놓은 전용 도방이다. 깔끔한 순백의 벽면 위에 설치한 신단에는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을 모시고 좌측에 태을천상원군님, 우측에 태상종도사님과 부부의 조상선령신 신위를 각각 모셔 놓았는데, 목패로 제작한 신위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부는 외동딸(김소희 도생, 22세)과 함께 단출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세 사람뿐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어떤 가정보다 각별하며, 효심이 깊은 딸은 때때로 부모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는 행복 지수가 높은 도방이다. 주황색 소파 위쪽에 유치원 시절의 귀여운 딸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이 가족의 분위기를 말해 주는 듯하다. 거실에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지나온 신앙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삶에 의혹을 갖던 시절


    진천에서 2남 8녀 중 셋째로 태어난 김향숙 도생은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를 맞아 삶의 근본 문제, 특히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왠지 사는 것이 싫어지면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고 진짜 영혼이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지, 하나님과 부처님은 과연 다른 분인가 하는 여러 의혹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대가 되어 친구를 따라 처음 가 본 곳이 교회였는데 개인적인 정서와 맞지 않아서 몇 번 가다가 그쳤고, 그 다음에 가 본 절은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역시 마음속의 의혹을 풀어 주지 못했다. 답답해서 점집을 가 보기도 했으나 흡족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김 도생은 당시 부평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시골집을 오가곤 했다. 그럴 때면 몇 차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는데, 어느 날 지하철 차량 내부의 광고 공간에서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 안내를 본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서 그냥 지나쳤다.

    상제님 신앙을 만나다


    대순신앙을 하게 된 계기
    그 후 김 도생은 결혼을 하고 신혼 살림을 부천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1994년 봄 무렵의 어느 날 저녁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인상 좋게 생긴 40대 후반의 여성이 집안 기운이 좋다며 물 한 잔만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집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조상님 공덕이 많은데 조상님을 위해 천도식을 올려 보라고 권유했고, 이에 김 도생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천도식을 올려 드리겠다는 생각에 아무 의심 없이 따라 나섰다.

    그날은 마침 친정 식구들이 오기로 한 집들이 날이었는데, 김 도생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따라 나서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신도의 조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도생은 갑작스러운 천도식을 올리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는데, 그제서야 식구들이 도착했다고 한다.

    김 도생은 그때 이후로 청수를 모시면 수많은 조상님들이 오시는 것을 보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런 신도 체험을 자주 하게 되면서 그곳이 진짜 도를 닦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로부터 개벽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듣고서는 신앙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신앙을 하던 중에 아이가 생겼을 때는 태을주를 더 열심히 읽었으며, 아이가 태어나자 갓난아이를 연락소에 맡겨 놓고 포덕을 하러 다녔다.

    그렇게 열성을 다해 신앙을 하던 중 그들로부터 금전적인 요구를 받게 되면서 실망스러운 사건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성금 헌성을 위해 5백만 원을 대출받아 주면 꼭 갚겠다고 하여 그렇게 해 주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그 일로 인해 친정 식구들과 지인들, 시댁에까지 여파가 미쳤고, 궁지에 몰린 김 도생은 집을 나와 연락소에서 1년 동안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피부병이 생겨 몹시 괴로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포덕을 다니는 형편이 되었다.

    심신이 피폐해진 김 도생은 어느 날 포덕을 하던 중 선감에게 전화를 해서 무척 힘이 든다며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선감은 “네가 척이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것은 절박한 심정에 큰 실망을 안겨 주는 말이었다. 김 도생은 너무도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아이와 함께 부천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3년 동안 지속해 오던 신앙을 중단했다. 대순 신앙을 그만둔 것은 이러한 이유 외에도 평소 신앙 과정에서 든 여러 의문들 때문이었다. 신앙의 중심이자 숭배의 대상인 박한경 도전都典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고, 전국에 신도들이 많았는데 한 차례도 같이 모여 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으며, 진리에 대한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었다.

    우연히 참 진리를 만나고
    세월이 흘러 30대 중반이 되었고, 김 도생은 그냥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2004년 어느 날, 우연히 친정집에 다녀오는 길에 진천 구인당 한의원 앞에서 패널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두 분의 도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이 패널을 가리키며 “엄마 이것 봐”라고 하는 말에 쳐다보았더니 태을주 수행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십 년 전 대순진리회 신앙을 하던 때 읽었던 태을주 주문을 보니 관심이 생겨 패널을 보고 있는데 한 분이 말을 걸어 왔다. 그가 증산도 진리로 인도한 최종복 도생이었다.

    “개벽이란 책을 아세요?”라는 질문에 김 도생은 대순진리회에서 공부했던 책이라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분은 그 책이 증산도에서 나온 책이라고 알려 주었다. 김 도생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머리가 멍해졌다. 이제껏 대순진리회에서 쓴 책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집에 돌아온 김 도생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움직인 현장 포교
    이틀 후 전화 연락이 왔지만 받지는 못했다. 만일 이곳도 이상한 단체라면 또 한 번 인생이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김 도생은 성의를 봐서 만나 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구인당 근처 편의점에서 최종복 도생을 만났다. 그날 최 도생은 노트북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조용필의 아리랑 노래가 배경에 깔리면서 전개되는 증산도 소개 영상이었는데 가슴에 뭔가 와 닿으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과거의 잘못된 전철은 밟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김 도생은 인도자와 함께 도장을 방문했다. 도생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모습에 너무도 좋은 느낌을 받았고, 포정님으로부터 듣게 된 우주일년 이야기는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원함을 안겨 주었다. 특히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을 뵈었을 때는 마음이 포근해지고 안정감이 들면서 진짜 진리를 만났다는 감동과 깊은 회한이 함께 밀려들었다고 한다.

    입도와 영적 감응


    김 도생은 그 후 몇 차례 도장에서 교육을 받고 딸과 함께 정식으로 입문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성구 말씀 봉독을 위해 딸에게 도전을 펴 주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엄마, 나 알아” 하면서 제 스스로 도전을 찾아 펼쳤다. 김 도생은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도전을 찾아 읽는 딸의 모습이 대견했고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어 한 달 만인 도기 134년 12월 26일, 김 도생은 딸과 함께 태을궁에서 꿈에 그리던 입도식을 올리게 되었다.

    김 도생은 입도하기 전에 넓은 강당에서 시험을 보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저는 학교도 졸업했는데 무슨 공부를 해요.”라고 말했더니, 조상님으로 생각되는 분이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응답을 하셨다. 김 도생은 입도의 실제 절차를 거치면서 그 꿈이 참 진리를 찾아 증산도 도문에 들어가는 과정을 조상 선령께서 영적으로 보여주신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입도식이 끝나고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훈 말씀을 받들면서 김 도생은 두 분 스승님의 말씀 속에서 깊은 감동과 도기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또 입도 후에 7일에 걸쳐 도전을 정독하였는데, 그때의 재미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고 했다. 상제님께서 도통하실 때의 권능과 도의 가르침을 담은 도전 2편의 말씀과 천지대신문을 열어 신명조화정부를 조직하시고 9년 천지공사를 보신 4편과 5편의 놀라운 말씀들에 깊이 감동을 했고, 어머니 하나님으로서 너무도 힘든 삶을 사신 태모님의 사랑과 도권, 신권이 드러난 11편 내용도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모든 인류의 고난을 몸소 대속하시고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시며 천상으로 떠나신 10편의 말씀들을 읽을 때는 상제님의 심경을 생각하며 눈물을 닦기도 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가족의 형성, 그 숨은 이야기


    아버지에 얽힌 아픈 기억
    도방의 가장인 조용구 도생은 3남 2녀 중 넷째로 천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아 태권도 등 여러 무술을 배웠고 체육대학에 다녔을 정도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기술직 사원으로 국영기업체에 근무하다가 건설업에 종사했으며 지금도 관련 계통의 일을 하고 있다.

    조 도생은 가정적인 사람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여러 가치 중에서도 인도의 근본인 가족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런데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사연을 갖고 있다. 조 도생의 선친께서는 제과공장을 경영하다 어려움을 겪은 후 안성의 큰집을 경유하여 다시 진천에 있는 백곡 배티에 터를 잡고 사셨다. 선친은 가족을 통솔하며 든든한 중심 역할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그만 목 부위에 큰 병이 생기자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집을 나가셨다고 한다. 이후 가족들이 백방으로 찾아 다녔지만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여, 결국 집을 떠나신 날을 기일로 잡아 제사를 모시고 있다.

    조 도생은 아주 어릴 때 일어난 일이라서 관련되는 기억은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가슴 아픈 가정사를 안고 있기에 그는 더욱더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성장기를 보내면서 무언가 근본적인 인간 삶의 문제에 집중하며 관심을 갖는 성향도 갖게 되었다. 30대에는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외울 정도로 불교에 관심을 두었고 실제로 절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나를 따라 줄 수 있겠느냐”
    그러던 즈음 조 도생은 아내가 된 김 도생을 형수님의 소개를 받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어느 레스토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 도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은 첫 인상이 좋았고 말하는 것과 인품도 마음에 들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남편에게 ‘내가 하는 일에 따라 줄 수 있겠느냐’고 했어요. 조금은 직설적인 말이기도 했는데, 남편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개월 동안 교제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나를 따라 줄 수 있겠느냐’는 말은 남성이 여성을 향해 함께할 의향을 물으며 꺼내는 수사에 속한다. 다소의 고충과 역경이 있더라도 내가 실행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니 같이 협심하여 헤쳐 나갈 수 있느냐는 뜻을 묻는 말인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런 취지의 말을 상대로부터 듣고서 긍정의 대답을 했다는 것은 어지간한 호감과 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 도생은 과감히 물었고, 조 도생은 흔쾌히 답을 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인연의 확실한 단서를 잡았고 이해와 협심의 공감대를 안은 채 부부로 맺어졌다. 당시 김 도생은 재혼의 입장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남편을 포교하다
    이렇게 조 도생과 김 도생 그리고 딸 소희까지 세 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김 도생이 딸과 함께 신앙을 했을 뿐 조 도생은 입도하기 전이었다. 김 도생은 남편인 조 도생의 증산도 신앙을 위해 집에서 천신단에 청수를 모시고 정성수행과 기도를 많이 올렸다. 조 도생은 직장이 서울이라서 주말에 가끔 내려오곤 했다. 김 도생은 어느 날 진천읍사무소 앞에 있는 사랑방이라는 대화 공간에서 영화 관람을 핑계로 남편과 함께 인도자인 최종복 도생을 만나 자연스럽게 진리 소개를 시도하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태을주 성물을 보여 주며 태을주를 읽어 보라고 권유하였다.

    또 한 번은 남편이 내려오는 때에 맞춰 사랑방에 남편과 김 도생의 큰언니, 작은언니를 함께 초청하여 도장 포정님의 우주일년 이야기를 듣게 하기도 했으나 그 자리에서의 반응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김 도생의 꾸준한 정성과 노력이 더해진 끝에 조 도생은 드디어 도기 135년 3월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입문 이후 김 도생은 주말에 내려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조 도생에게 진리 도서와 도전道典을 챙겨 주며 꼭 읽으라고 당부를 했다. 그런데 아내의 간절한 당부를 잊지 않았던 조 도생은 몇 달 만에 도전과 책을 다 정독하는 성의로 화답을 했다. 진리를 구체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조 도생은 비로소 증산도의 진리에 공감하게 되었고 아내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얼마 후 조 도생은 김해시 장유로 출장을 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할아버지를 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조 도생이 서 있는 곳에 원을 그리시며 “이곳을 벗어나지 마라. 내가 너를 지켜주마.” 하셨고, 주변의 누군가에게는 “이 요망한 것!” 하며 내쫓아 주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 현몽 체험으로 조상님과의 영적 관계를 다시금 확인한 조 도생은 상제님 진리에 대한 믿음을 굳히고 같은 해 7월 31일에 입도를 함으로써 가족신앙을 완성하게 되었다.

    태을주로 선친을 만나다
    입도를 한 조 도생은 무엇보다 먼저 조상님 천도식을 올려 드리고자 정성수행에 돌입했다. 평소에도 거의 모든 시간을 몰입해 끊임없이 태을주를 읽는 습관을 유지해 온 조 도생은 정성수행의 과정에서도 태을주를 입에 붙여 집중해서 읽는 데에 주력했다. 그렇게 태을주를 읽으며 정성수행을 하던 중 조 도생은 신안이 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게 되었는데, 마치 디지털 텔레비전을 보듯이 선명하고 생생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모시옷을 입고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콩을 떨게 하시며 마루에 앉아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서 너무도 반가웠던 조 도생의 입에서는 “아버지 멀쩡하시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목에 병이 생겨서 식구들에게 폐가 될까 봐 집에서 나가신 후로 생사를 모른 채 안타까운 심정 속에 살아야 했던 가족의 심정을 담아 나온 말이었다고 했다. 어머니께선 아버지를 생각하며 폐백을 자주 해 드렸다고 하는데,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그렇게 만나 뵈었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뻤을지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조 도생은 이어 “제가 천도식 꼭 올려 드릴게요.”라고 말했는데, 아버지께서는 “네가 죽을 수도 있는데.”라고 하셨다. 그래도 꼭 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환히 웃으셨다고 한다.

    태을주를 읽고 선친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한 조 도생과 가족은 조상님 보은 천도식을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올려 드리고 있다. 조 도생과 김 도생의 양가 4선조 해원 천도식을 올려 드리고 여유가 될 때마다 보은 천도식을 올려 드리게 되면 가정에 일이 잘 끌러지고 녹이 잘 붙는 체험을 많이 하며, 하고자 하는 일도 잘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의지가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김 도생은 “너희에게는 선령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하신 상제님 말씀에서 조상님을 얼마나 잘 받들어야 하는지를 자각할 수 있고 뿌리에 대한 소중함을 절감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활 속의 포교 이야기


    포교의 바탕, 신앙력과 간절함
    조 도생의 가족은 도장을 중심으로 신도 5대 수칙을 생활화하고 있고, 패널 활동이나 인터넷포교 활동을 함께 하면서 살릴 생 자 공부를 실천하고 있다. 김 도생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평일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은데, 5일제 근무를 해서 토요일, 일요일은 주로 괴산 산막이길에서 패널 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관광 명소로 알려지면서 산악회, 관광 코스로 많이 찾아오는 곳인데, 패널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상생방송 보고 있어요.”라고 하는 분도 있고, 역사를 이야기하면 “환단고기 콘서트 봤어요.”, “증산도 들어봤어요.”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한다. 진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책을 기증한 후, 진리 말씀을 문자로 보내고 전화도 하면서 친분을 쌓으며 포교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진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연결이 되면 만나서 책과 진리도 전하고 도장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 도생은 작년 2월에 볼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가 길에서 대순 신앙을 하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순수한 성품이 느껴져서 증산도 진리를 이야기한 다음 연락처를 받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두 달 후에 다시 길에서 마주친 후에는 재차 약속을 잡고 조 도생과 함께 셋이서 만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는 수행 생활상의 문제를 주제로 말을 꺼냈다. 대순에서 태을주를 읽을 때 앞머리의 훔치훔치를 처음 한 번만 읽는 문제를 지적하며 주문을 제대로 읽어야 천지기운을 받는다고 이야기해 주고 진리를 전하였더니 그동안 진리를 들어서인지 증산도 신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후 도장으로 인도해 8관법 교육을 받고 입도를 하게 되었다. 이분(도제 박재신 도생)은 태을주를 온전한 그대로 반복해 읽으니 주문의 기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였는데 백회에서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고 온몸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며칠에 걸쳐 도장에서 태을주 수행을 하는 동안 까맣던 얼굴이 하얗게 바뀌고 윤기가 나는 모습으로 변화하자 자신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조 도생과 김 도생 및 도장의 다른 도생들도 놀라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박재신 도생은 본격적인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김 도생은 자신의 도제 두 분을 입도시키는 과정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 스스로가 신앙을 열심히 하면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을 때 그 대상을 만나게 되고 입도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을 집중하는 일심신앙과 정성의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태을주가 약이다
    김 도생은 아직 포교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태을주의 힘을 느낀 사례 한 가지를 덧붙였다. 평소 이웃에 사는 둘째 언니 친구 중 한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한번은 얼굴이 핼쑥하여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식구 셋이서 감기가 들었는데 병원에 가도 낫지를 않고 고통이 심해서 굿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김 도생은 그런 걸로 굿을 하느냐며 태을주 주문을 읽으면 금방 나을 것이니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을 하여 허락을 받았다. 김 도생은 그 집에 가서 청수를 챙기고 꼭 낫는다는 마음으로 태을주를 끊임이 없이 계속 읽으라고 가르쳐 주고 왔다. 이틀 후 전화를 했더니 거의 다 나았다며 고맙다는 응답을 했다. 김 도생은 태을주가 약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며, 상제님 태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가도장이란


    김 도생은 가정도장이 가족신앙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인성교육의 신앙훈련이 이뤄지는 터전이라 무엇보다 소중한 곳이라고 말한다. 세 사람이 가족신앙을 하며 서로 이해와 협력이 잘 될 수 있었고, 딸아이가 예절과 효성이 반듯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성이 바르게 커 준 것은 가정도장에서의 생활신앙이 지속되고 반복되었기 때문이며, 조상님과 천지일월 사체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 도생에게도 가정도장은 소중한 가족 모두가 하나의 가치로 응집하고 삶의 공통된 패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틀이요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안정감을 주고 화목함을 이뤄낼 수 있는 더없이 귀중한 존재이며 없어서는 안 될 곳이라고 말한다.

    김 도생은 대순에서 고생하며 신앙을 하던 때 낳은 딸에 대해 애착이 많다. 김 도생은 딸 소희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함께 증산도 신앙을 시작하였는데, 항상 가정도장이나 지역도장에서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 수행을 하면 같이 잘 따라서 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신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아 온 딸이 이따금 김 도생에게 다가와 “엄마, 열심히 해” 하고 격려를 해 주기도 하는데,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면 신앙의 보람과 의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딸은 현재 대학교 졸업반인데 조기 취업을 하여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매일 아침 천신단에 봉청수와 수행을 하면서 신앙의 근본을 다지고 영감을 얻으며, 신앙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신앙 수칙을 늘 상기하고 생활화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릴 때의 신앙 훈련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곤 한다는 김 도생의 말은 가족의 신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준비하고 이뤄 내는 정유년을 만들 터


    이 부부 도생은 향후의 신앙 계획을 위해서도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청주우암도장의 자체 성소 마련을 위한 제물치성을 1년간 꾸준히 올리고 있는데, 올 한 해 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하여 도장의 수호사님과 여러 포감님, 도생님들과 함께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진천 지역에는 올 3월에 포교소 개창을 앞두고 있어 구역 도생들과 힘을 모아 반드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진천에 포교소가 열리면 지역민 중 인연 있는 사람들을 상제님 진리로 인도하여 많은 가가도장이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의 개인적인 신앙 방향에 대해서도 조 도생과 김 도생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냈다. “신앙에는 따라야 할 대의가 있습니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구촌 형제 자매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살릴 생자 도생이 되겠다는 것은 도문의 도생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이 추구해야 할 성스러운 신앙 과제입니다. 특히 상제님 성탄절 이후 법사시대가 활짝 열려 은혜로운 시간대를 맞이한 것은 우리 가족의 신앙에도 분명한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태을랑 조직에 일심을 다하여 신유술 3년의 시간대에 육태을랑을 꼭 이루겠습니다. 항상 자비로움과 은총으로 저희를 지켜봐 주시는 천지 부모님과 조상 선령님, 그리고 저희 일꾼들과 늘 함께하시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이번 가가도장은 가족신앙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인성교육의 신앙훈련이 이뤄지는 터전이라는 굳건한 믿음 속에 도방을 운영하고 있는 신앙인 가족을 만나 보았다. 이 부부가 만나 신앙의 터전을 이룬 것은 근원적인 인생의 진리 문제를 상제님 신앙을 중심으로 풀어내어 가족 모두가 화목함과 사랑으로 안착하게 되는 과정이자 결론이었다.
    또한 완전하지 못한 신앙을 하던 시절 얻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그것을 효심로 보답하는 딸의 언행을 취재하면서, 가족이 어떤 과정과 마음으로 형성되고 결합하며 의미를 찾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공과 성령 체험 그리고 치유의 은혜에 대하여
    도공과 성령 체험 이야기

    김 도생은 신앙을 하면서 여러 차례의 신도 및 성령 체험을 했다고 한다. 과거에 허리가 많이 아픈 상태로 태을궁 입소교육에 들어갔을 때였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주문을 태상종도사님께서 읽어 주시는 가운데 도공을 하게 되었는데, 도공이 진행되는 도중에 잠깐 속눈을 뜬 순간 환한 광명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몸에 들어왔고 그 순간 허리가 쭉 펴지면서 편안해지는 체험을 하였다. 김 도생은 그때 성령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김 도생은 주로 대치성 때 체험을 많이 하곤 한다. 도공을 하면 상제님께서 수레를 타고 태을궁을 돌아다니시는데, 태을궁 공간이 우주처럼 넓게 보이기도 하고 도생들에게 기운을 주시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때로는 광명이 환히 보이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 가정도장에서 천신단에 제물을 차려 놓고 기도와 태을주 수행을 하면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김 도생은 대학교 2학년인 딸 소희 도생이 혼자 자취를 하는 관계로 떨어져 있어 신앙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점을 걱정하며 딸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동지대치성을 올리고 난 후 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도공 수행을 하는데 딸의 머리 위로 은빛 줄기가 마치 비 오듯이 내리는데 함박꽃처럼 탐스런 보랏빛 꽃이 보였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그 후 2월에 조상님 천도식을 올린 이후부터는 딸이 신앙을 잘 하고 진리를 이야기하면 긍정적으로 잘 들었다고 했다.

    김 도생은 최근 열린 광역 태을궁 집중 수행 때는 조 도생과 함께 참여를 했다. 105배례를 올린 다음 태을주 수행을 하고 도공을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파란색 지구 같은 행성이 보였고 그 다음에 맑은 시냇물이 보였는데 어찌나 투명하던지 물속의 자갈이 투명하게 보였다. 그러다 일본의 마츠리 축제 모습 속에 삼족오가 금빛으로 밝게 보였다고 한다.

    천도식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그 다음 날은 도장에서 다른 도생들의 천도식이 있어서 음식 준비를 도운 후 천도치성에 참여했다. 한 포감님의 영아 해원천도식 신단에서 영아들이 우유를 마시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는데, 위패 봉안 순서가 되자 아기들이 위패에 모셔지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또 한 분의 도생은 아버지의 49제 해원천도식을 봉행했는데, 위패 봉안을 하려고 하자 아버지의 신명이 그 성도님의 뒤로 오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뭉클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 아버지와 김 도생의 눈이 마주쳤는데, 선명하게 보이는 그 눈빛에 아쉬움이 많아 보였고 광명이 환하게 비춰지는 가운데 자손과의 이별을 너무도 아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김 도생은 그것을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도 저런 모습이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정말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김 도생은 그날의 체험을 통해 조상님에 대한 감사함과 해원 천도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에게 내린 치유의 은혜

    조 도생은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고생하시다 11년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한 번 찾아온 임종의 고비 때 기도로써 소생하시게 된 치유 체험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으셨던 어머니께서 증세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 복수가 차는 위중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중환자실로 옮긴 후 가족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의사가 얼마 못 사시니 장례 준비를 하자고 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임종을 기다리고 있던 김 도생은 이대로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한이 될 것 같아 남편 조 도생과 함께 조상님과 천지일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며칠 동안 기도를 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마지막 유언이라며 집에서 돌아가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가족들은 상의를 거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 늘 하던 그대로 기도를 하고 잠이 든 김 도생은 꿈에 성령의 빛이 시어머니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복수의 물이 빠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김 도생은 조 도생에게 “어머니 안 돌아가셔요.” 하며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조 도생 역시도 비슷한 성령 체험을 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역시나 어머니는 위기를 넘겨 회복되셨고 3년을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 당시 소생하신 어머니는 다른 가족 한 분에게 “너희들이 나에게 뭘 먹였기에 내가 안 죽냐?”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기도로써 어머니의 생명을 지킨 큰 체험을 통해 이 부부 도생은 신앙의 의지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부부 도생은 근본신앙을 대하는 자세가 강력하고 일관성을 갖고 있다. 태을주를 집중해서 읽는 근기와 정성도 뛰어났고 진리를 대하는 심법 또한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 태을주 수행과 도공을 통해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고 그것을 신앙의 성숙과 연결시키는 소화력도 눈여겨볼 부분이었다.

    소가족, 핵가족 문화가 보편화된 지금, 이 도생들이 이룬 가정은 비록 드러난 외형에 있어서는 세 명의 작은 단위를 이루고 있지만, 내면의 실상은 큰 가정에 못지 않은 가족문화, 신앙문화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풍족해 보일지라도 삶의 족쇄와 생활의 굴레에 갇혀 뭔가 메마르고 부족한 가정보다는, 확실한 삶의 목표와 방향을 공유하면서 영성을 기르고 느낌이 있는 가족관계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 훨씬 유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앙의 동료이자 각 가정의 한 구성원 자격으로 조용구, 김향숙 도생이 이룬 도방에 성원을 보낸다. 늘 행복하고 화목이 넘치는 가족으로 더욱 진일보하여 올 한 해 신앙과 개인의 목표를 성취하시기 바라며, 천지일월 사체의 축복과 환한 광명의 성령 조화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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