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상님 모시고 살겠다 외

[입도수기]

나는 조상님 모시고 살겠다!


최명엽(72, 여) / 목포옥암도장 / 도기 145년 음 12월 입도

저는 해방둥이(1945)이며 장녀로 태어나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겨우 혼자 한글을 깨쳐 읽을 정도입니다. 남편과 옷 가게를 운영하며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하였습니다. 남편은 자유분방한 성격이며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상생방송을 보더니 증산도 도장에 다닌다며 저보고도 배울 것이 많으니 상생방송을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 보다가 남편의 강압이 느껴져 거부를 하며 오히려 멀리하였습니다. 남편이 이상한 데 빠졌다며 염려하는 말들이 주위로부터 들려왔습니다. 자녀들도 인터넷을 보고 아버지의 신앙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옳다고 여기면 하는 성격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데, 하루는 “남들이 사이비라 의심하니 한번 와서 보아라. 보면 내가 다니는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로 하면 거짓말이라 하니 구경도 할 겸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곳인지 직접 가서 보면 알 것이므로 본부가 있는 대전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도 마침 궁금하였고 옳지 못하면 말릴 생각으로 본부 태을궁에 따라갔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대천제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태을궁에서 상제님 태모님과 조상님을 모시며 음식을 차려놓는 것이 의미가 있고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자녀들이 교회에 가자고 해도 “나는 조상님 모시고 살겠다”며 버티고 안 간 저였습니다. 남편이 다니는 증산도가 조상님을 받드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마음이 놓이고 저도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목포도장에 종도사님이 오셨을 때 두 번 참석하였는데 몇 시간이고 앉아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상생방송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을 며칠 시청하다 보니 ‘이것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3년 전 봄에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무릎을 완전히 굽히지 못하고 의자에서 생활하는데 도장에서는 앉아 있어야 하고 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장에 나가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도장의 김 수석포감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천도식 이야기를 하며 이제 새해도 되었으니 도장에 나가자고 하여 저도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 21일 정성수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었고 더욱 믿음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수요치성에 참석하여 도공을 하는데 오른쪽 귀 뒤쪽에서부터 지네(기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머리 정수리에 멈추어 한참을 있다가 도공이 끝나고 눈을 뜨니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고 기분이 최고로 좋았습니다. 제가 오른쪽 귀 뒤쪽에서부터 머리 부분에 걸쳐 혈관이 막혔다 트였다 하는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21일 정성수행 기간에 병원 검사를 받았는데 저는 검사 결과에 대해서 아무 염려나 걱정이 없었고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도공으로 혈관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도장에서 교육 시간에 반드시 청수를 모셔야 한다며 청수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어서 청수를 모셔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청수를 모셨습니다. 처음 청수를 모시던 날 밤 꿈에 키가 큰 할머니 한 분이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다짜고짜 “할머니 어찌 혼자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왜 안 오시고?” 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밖에 계신다.”고 답을 하셨고, 그러자 할아버지도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집 앞에 환하게 남포등을 달아 두셨고 가마솥에는 물이 없어 빨갛게 달아올라 있기에 제가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고서 꿈을 깼습니다. 시어머니가 키가 크셨는데 할머니는 시어머니셨고 할아버지는 시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날씨도 춥고 눈도 많이 내려 미끄럽지만 싫은 마음이 없고 수행하고 공부하는 재미에 도장에 오고 가는 것이 기분 좋습니다. 도장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제님 태모님! 우리 조상님을 입도(천도식)시켜주시고 해원시켜주시고, 제가 말문이 트여지게 해주시고, 자식들이 상제님께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올립니다. 자손들이 상제님을 믿도록 항상 기도하며 신앙하겠습니다. 입도하도록 도와주신 수석포감님과 수행을 도와준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결국 돌아서 여기에 왔구나!


나동석(69, 남) / 서울목동도장 / 도기 145년 음 12월 입도

제 스스로 아직 청춘이라 생각하면서도 남들은 나를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기에 이렇게 입도를 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도장의 포정님께서 잘 이끌어주시어 나름대로 진지하고 엄숙하게 입도식을 준비해봅니다.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3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에 조흥은행의 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종도사님께서 집필하신 ‘이것이 개벽이다 상, 하권’을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로 하여금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역사와 민족의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지만, 지금처럼 증산도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서 도장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 개벽 책을 통해 많은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 후로 ‘환단고기’ ‘한국 상고사’ ‘단’ 등의 책들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인지 당시 종교와 역사, 정치 등의 현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간行間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며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하여 생각하고 사고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가지고 사석에서 이야기할 때 여러 모임에서 주목을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80년대 초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런던에 가기 위해 저녁에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고 선생님과 함께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기가 무료해서 인사를 나누고 자기 소개 등의 담소를 나누다 제가 읽었던 개벽 책의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이야기는 뉴욕에서 런던까지 장장 7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이후 저는 진리를 찾지 못하고 10년여의 기간 동안 불교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법화경, 화엄경, 지장경 등의 경전을 서너 번 정도 사경寫經을 하였고 그 중 지장경은 3년 이상 하루도 빠트림 없이 완독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상생방송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종도사님 환단고기 콘서트를 보면서 ‘비로소 내가 찾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이렇게나 돌아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면상에 나오는 종도사님의 풍모와 말씀을 뵙고 개종改宗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도장에 방문했을 때 밤 10시가 넘도록 열강 하는 포정님의 모습을 보면서 ‘종도사님 교육을 받아 그런가? 상제님 신앙을 하면 인생이 저렇게 신명이 나는가?’ 하는 자문을 하며 제 스스로도 저렇게 되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참 진리를 만난 것에 천지일월 하느님과 조상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보은.

도장을 찾으면 옛 정감에 행복해


남양순(62, 여) / 서울목동도장 / 도기 145년 음 12월 입도

어린 시절 저의 어머니가 신경이 예민하셔서 굿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를 다니시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밤 12시에 모시는 등의 정성을 다하셨는데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 제사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족 전부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새벽예배에 빠지면 아프실 정도로 교회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영향인지 저뿐만 아니라 형제 모두가 목사님의 주례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다지 열심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의 고충이 나날이 늘어만 가던 중에 산을 찾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불교에 심취하였지만 저는 답답한 마음에 함께 다녔던 것이었고 이 종교 또한 크게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사람은 기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오던 중 남편을 통해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을주 주문을 방송에서 따라 하며 읽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언가 안정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방송을 천천히 보니 환단고기 강의 등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강의가 매우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아침수행시간에 청수를 모시고 기도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조상님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 뒤로 남편과 함께 상생방송에 심취해서 함께 보면서 목동도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구입해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도장을 찾으면 뭔가 예전의 시절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그런 정감어린 기운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치성에 참석하면서 신단에 계신 상제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문득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예닐곱 살 어렸을 때 충북 청원군에서 저의 할머니가 머리를 깨끗이 빗으시고 장독대에 청수를 모시며 두 손 모아 비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보시고 든든하다는 말씀과 함께 너 같은 딸만 있으면 무슨 걱정이냐고 대견해 하셨습니다. ‘조상님의 음덕이 있어야 나를 만나게 된다.’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제 제사를 꼭 모시려고 합니다. 평소 안 보이는 세계가 더 무섭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제 상제님을 알게 되었으니 마음의 위안과 힘이 됩니다. 앞으로 도전과 도훈 말씀을 잘 받들고 태을주 주문을 많이 외우며 좋은 길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인도하여 다가오는 가을 개벽기를 대비하겠습니다.

꿈 속에서 후천선경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용현(78, 남) / 인천구월도장 / 도기 145년 음 12월 입도

1947년쯤으로 사료됩니다. 그때는 매일같이 산에 가서 땔감을 지게에 한 짐 걸머지고 집으로 오곤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루는 선친께서 “용현아! 이리 와 앉아보아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앞에 정중히 앉으니 “아주 옛날 내가 직접 체험한 경험담을 너에게 말하노라.”며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태어나서 늘 주어진 대로 살면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발전적으로 살면 좋은 일들이 반드시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영원한 세상이 있다. 사방 천지 아무 곳이나 가도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가는 곳마다 과일이요, 계곡마다 물이 흐르고 현생에서 보지 못한 산새들이 하늘을 날며 들짐승들이 낙원을 이루어 평화롭게 살고 있다. 광야는 초목이 바람에 춤을 추는 듯하고 넘실대는 지평선은 끝없이 펼쳐지고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요, 또한 사람들이 입는 옷과 먹거리, 잠자는 것 등 모든 의식주는 자연 그대로만 따라서 영원무궁하게 살아가는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섯 살 때는 아버지께서 “내가 인간 세상으로 올 때 10개의 구슬을 받았다. 학의 등을 타고 내려가면서 학이 악! 하고 소리를 낼 때마다 구슬을 학의 입에 한 개씩 넣어주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학의 입에 아홉 번째 구슬까지 넣어주며 내려오다 마지막 열 번째로 학이 소리를 낼 때는 구슬이 없어 나의 집게손가락을 학의 입에 넣어주어 인간 세상에 오게 되었다.”는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 후 1956년 저의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저는 살길이 막막해 울진 죽변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서 살며 철공소에 나가며 기술을 배웠습니다. 3년의 세월이 지날 무렵 철공소 주인이 강원도 묵호항에 있는 철공소를 소개해주어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저도 아버지와 똑같은 꿈을 꾸곤 하였습니다. 넓은 광야에서 춤을 추며 보지도 못했던 악기 연주를 하고 하늘에서 꽃가루를 내리는 아름다운 선남선녀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놀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황홀한 꿈을 1년 동안 두 번 정도 꾸었습니다. 몇 년 후 군에 입대한 후에도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비행접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영원무궁하게 사는 곳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 과일도 많고 날짐승과 온갖 동물들이 춤을 추었고 선남선녀들은 수양버들의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성들은 흐르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금발 머리에 호화찬란한 모습으로 태평성대의 즐거움에 젖어 마냥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꿈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꿈들을 1963년까지 1년에 한 번 정도 꾸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나면 그 날은 유난히도 하루 일과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생기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2013년 여름철 집에서 TV를 시청하던 중 우연히 증산도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책자를 무료로 보내준다고 하길래 책을 보내달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3일 만에 도착한 책을 읽던 중 증산도 도장을 소개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한번 기회가 되면 찾아가보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3일이 지나 낭랑한 음성으로 도장에 한번 나오시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서야 도장이 인천 경찰청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노인 복지관에서 매일같이 봉사를 다닐 때였습니다. 날마다 경찰청 옆 복지관에 다니면서 도장을 쳐다보곤 하였지만 선뜻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서성거렸습니다. 약 1년 이상 지나다니면서도 도장에 가보려는 마음이 허락되지 않다가, 2014년도 가을 어느 날 마침내 도장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반갑게 맞이하여 준 여성분이 중년도 넘었는데 음성이 그렇게 낭랑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소개해주고 증산도 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제가 꿈속에서 본 광경이 후천세상의 모습을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려운 문제도 말할 수 있는 곳이 증산도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포정님에게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공장 일을 하면서 소음 공해 후유증으로 머리가 심하게 아픈 적이 많았습니다. 아플 때는 기억력도 없고 시야가 흐려지며 말도 잘 안 나오고 육체가 굳어졌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도 병명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하였습니다. 새벽수행을 하면서부터 머리 아픈 것이 조금씩 나아지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이 나아지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진리공부와 수행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 사람들을 많이 살리는 참 신앙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