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품었던 사명을 이루는 기회 외

[입도수기]

가슴에 품었던 사명을 이루는 기회


박정원(53) / 뉴욕도장 / 144년 음10월 입도

39년 전 제가 13살 되는 해에 제 인생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일을 꼭 해야지 하는…….어느 날 저희 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배운 역사는 잘못된 역사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나 자신은 불현듯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역사가 진실된 대한민국 역사인가?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몇몇 책을 소개해 주셔서 그 길로 서점에 가서 구입을 하여 읽고 난 후에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찬란하고 방대한 우리나라 역사를 왜 우리는 배우지 못할까? 참으로 안타까운 이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반문해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가슴 깊이 제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찾아서 세상에 알려야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직장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분가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몇 년에 걸쳐서 틈틈이 돈을 저축하여 저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주변의 많은 분들께도 감사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산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나라에 유명한 산이라 하면 거의 다 등반을 했었고 책 읽는 것이 취미라 많은 책들도 읽고 토론도 하며 많은 벗들과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좋은 때였고 젊음이 만끽되는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에 근무하면서 해가 거듭할수록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즈음에 단丹 수련을 시작하였습니다. 수련을 통해서 기氣를 느끼고 마음에 평온함을 얻고,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우주의 에너지와 내 몸이 하나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심성수련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자아(신성)를 찾았습니다. 제 자아가 원하는 것은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단학 지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미국 세도나, 그리고 하와이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모순점과 현실에 맞지 않은 부분 때문에 그만두었습니다.

그후 친구의 소개로 외국인 회사에 다니면서 미국의 문화, 풍습, 언어 등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미국 사회의 상류층과 중류층에 속한 많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다 작년 7월말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직장생활로 너무 분주하게 살다 보니 제 인생에 있어서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적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서예도 배우고 틈틈이 책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올봄부터 불현듯 환단고기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상생출판의 『환단고기』 책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 제 가슴에 강한 느낌이 와서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환단고기 책을 열면서 짜릿한 전율이 제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겠구나! 아 이게 얼마만인가! 이 책이 수많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선조님들과 안경전 역주자님의 혈성어린 노력이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39년전 하고 싶었던 일을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이미 다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책을 읽으면서 몇몇 미국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보여 주었더니 친구들이 저에게 영어로 번역된 책이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생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환단고기 책을 영어로 번역을 해 주셨으면 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외국어로도 번역을 해서 세계인들이 앞으로 바른 역사를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상생출판사에 근무하고 계신 분이 많은 서적들을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증산도를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께서 저희 간방에 오셔서 다가오는 가을개벽을 대비하여 수많은 천지공사를 하셨고, 이신사理神事 원리를 통해서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개벽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개벽이 되어 후천 오만년 선경세계가 열리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진리공부와 수행을 통해 증산도에 입도하려고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온갖 번뇌와 고통, 한 많은 인생 속에서 살아온 삶이 결국 저를 바르게 인도하고자 훈련(Trainning)을 시켰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단丹 지도자의 길을 가기 전에는 새로 구입한 승용차가 사고로 망가지더니, 이제는 증산도의 길을 가려고 하니 제 왼쪽 팔꿈치 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39년전 제 가슴에 품었던 사명을 이룰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저희 조상선령님과 천지신명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지구촌을 위하여 많은 영혼을 살리는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4년 11월 15일 New York Hickory Hill에서 올림 ◎

태을주를 읽으니 조상님이 옆에 계셔


김서윤(41) / 부산광안도장/ 145년 음4월 입도

대학교 다닐 때 친구로부터 증산도를 소개받고 처음 증산도 광안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환단고기를 읽었기에 도장에 계신 분과 환단고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증산도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만, 그때는 이것이 이토록 대단한 것인 줄도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크게 없었죠.

저는 성격상 어디서 고개를 잘 숙이지 않는 뻣뻣한 목줄을 가진 사람이라 절에 가서도 법당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이다가 절밥만 먹고 왔고, 기분 좀 내켜서 법당에 들어가더라도 방석에만 앉아 있고 절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첫 발걸음에 증산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에게 예를 다하지 못하는 불경을 범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중국으로 가서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8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본에서 1년 넘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개인적으로 인격수양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내가 왜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 왜 저 사람들이 나의 형제가 되었는지’ 등 많은 의문들을 던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밑바탕이 마련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상제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때 저를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친구와 가끔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가 저에게 책을 주었습니다. 받은 책들 중에서 개벽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읽게 되었지만 그냥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둔 것도 있었습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외국생활을 끝냄과 동시에 직장도 그만두고 2014년에 귀국을 하였습니다.

귀국을 해서 이번에도 저는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만난 한 스님은 저는 사업하면 안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업으로 한번 성공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잘 안됐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알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몇 개월째 계속하다보니 솔직히 많이 힘들고 지쳤습니다. 그때쯤 친구가 2014년 동지대치성이 대전에서 있는데 올 수 있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때 가겠다고 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저는 동지치성에 참석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태을주를 따라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큰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만 보면 아무 말이 없어도 속에서 울컥하는 게 올라왔죠. 부모님과 같이 있다는 것, 같은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하지만 동지대치성을 다녀온 후로는 아버지와 같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무엇인가가 사르르 없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건 그냥 스쳐 지나칠 것이 아니다. 그날로 저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도장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광안도장에서 수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수행 7일째 저는 그날 온몸에 전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옆에 사람이 없는데도 바로 옆에서 이상한 톤의 목소리가 태을주를 같이 읽고 있는 겁니다. 속으로 ‘그래, 이게 말로만 듣던 신령님이 같이 태을주를 읽는 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태을주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정말인지 아닌지 몰라서 포정님과 다른 성도님에게 물어보니, 신령님 목소리의 주파수가 사람과 다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잘 안 간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더욱더 태을주 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mp3 파일을 항상 틀어 놓고 길을 가면서도 화장실에 있으면서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태어나면서 신장이 안 좋았고, 장기간 외국에서의 생활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시다보니 1년 전부터 소변에서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서 거품의 양이 점점 많아졌는데, 지금은 그 거품이 없어진 것입니다. 또 한번은 mp3 파일을 틀어놓고 자는데 제가 잠자는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핸드폰에서는 태사부님께서 태을주를 읽는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태사부님의 목소리가 “네가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하고 야단을 치시는 목소리가 나면서 저는 누운 상태로 엉엉 울면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며 빌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말 정신이 멍했고, 그 멍한 상태에서 지난날의 잘못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너무도 많은 잘못으로 도대체 무엇부터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증산도 기본진리 공부가 거의 끝날 때쯤, 그날도 역시 잠자기 전 도전을 읽고 책을 딱 덮고 핸드폰으로 태을주를 켜놓고 순식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 무렵 화들짝 놀랐습니다. 잠잔다고 누워서 그렇게 놀라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도공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사부님의 성음만이 들려야 하는데 두 사람이 태을주 읽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뜨면 그 목소리가 사라질 것 같아서 눈을 꼭 감고 소리에 더욱 집중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두 목소리였습니다. 그때 ‘아, 조상님이시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제가 잘 때도 태을주를 틀어 놓으니 좋으시죠.^^’ 너무 기뻤고요, 또 바로 옆에 조상님이 계신다는 게 더욱 든든해진 느낌,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답니다.

이제 4월 5일 청명에 저는 상제님의 영광스런 일꾼으로 새로 태어납니다(사실 그날은 저의 생일이라 더 뜻깊은 날이랍니다). 다만 저는 태사부님의 말씀이신 “일심이 죽기보다 어렵느니라”를 매일 생각합니다. 도장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도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증산상제님의 일꾼으로서 더욱 더 막중한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더불어서 제가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만날 수 있도록 60년 공덕으로 저를 보내주신 조상님들, 어쩌면 거의 10년이 되는 외국생활은 제가 상제님의 진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조상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진리를 전해준 성도님, 옆에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준 성도님, 긴 시간 열정적으로 교리를 가르쳐주신 포정님, 그리고 지금의 증산도가 있게 해서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해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은혜에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펼쳐놓으신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잘 받들어 충실한 상제님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30년 고질병이 사라지다


노종섭(56) / 목포옥암도장 / 145년 음2월 입도

저는 1남 2녀를 둔 가장家長입니다. 어려서는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내가 살아가는 목적지가 어디일까?’라는 의문에 답을 찾느라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어떤 종교교리, 어떤 민족이념보다 홍익인간 사상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TV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나의 공부는 남 잘 되게 하는 공부니라”는 상제님 말씀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마음에 상생방송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너희 조상을 중히 여기라”, “환부역조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내용들이 저로 하여금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주1년 이야기를 보면서 저의 의문에 답을 얻게 되었고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1주일간 상생방송에 빠져 보다가 진리에 대한 갈증과 답답함에 도전道典을 요청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받고서 3일간 눈물과 감동으로 날을 새면서 보았습니다. 도전을 보면서 감동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제가 게으른 편인데 상제님 말씀대로 신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제 스스로를 시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아내가 출근을 하자 바로 상을 펴고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가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아침에서 저녁까지 10시간 동안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2시간을 수행하고 쉬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평소에는 허리 디스크로 1시간을 앉아 있기가 어려운데 이상하게 허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오후 3시쯤 몸에 에너지가 내리는 것이 느껴졌고 몸 전체가 시원해지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태을주를 읽었는데 피곤하지도 않고 목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태을주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운전을 할 때는 반드시 태을주를 읽었고 일을 할 때도 태을주를 읽으려고 했습니다.

작년 5월경에 이른 시간에 출근하여 근무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허리와 가슴 쪽에 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하고 찌릿찌릿하며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현상이 10일 정도 지속되더니 30년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가 나았고 가슴 부위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23세 때 사고로 허리를 다쳐 병원도 많이 가고 고생도 많이 하였는데 태을주로 30년 고질병을 털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상제님께서 “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어라” 하셨기에 운전할 때나 일할 때도 태을주를 읽었는데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3월 1일 도장을 방문한 이후 아내와 저녁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꼭 와야 할 곳에 온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은 느낌입니다. 제가 증산도 도장에 오게 된 것은 증조부님이 인도하신 덕분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3살 때 증조부께서 돌아가셨는데 저를 업고 마을을 다니시던 기억이 납니다. 5년 전에 어려운 일이 생겨 죽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에 약초를 심고 계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무엇하려 심으세요?”라는 저의 질문에 “나 따라오너라” 하시며 어느 집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큰 항아리를 주시면서 “약초물이니 다 마시라”하셨습니다. 상당한 양의 항아리 물을 다 마시고 “맛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순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꿈을 깨서 생각해보니 증조부님이셨습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을 말리시려고 오신 듯했습니다.

요즘 상생방송과 증산도 진리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주위에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성당에 나가는 직장 동업자에게 상제님 진리를 소개하였더니 호감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남동생에게 개벽실제상황 책을 전하여 읽게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실천입니다. 제가 도장에 오는 것을 여태 망설인 것은 상제님 말씀대로 실천할 자신이 없어 두려워서였습니다. 도장에 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두 번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제대로 된 신앙을 하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먹고 아내와 함께 신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장으로 나오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면의 눈이 열리고 영상메시지를 받다


김영민(47) / 전주경원도장/ 145년 음3월 입도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보면 모두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나 싶습니다. 결혼 후 저희 부부는 삶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몸도 아프고 심신이 지쳐 아버지 묘소에 가서 자살을 생각하려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가 솟구쳐 입에 넣었던 수면제를 뱉어버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의지를 더욱 다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산의 아나법화연수원에서 묘법연화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정공스님과 정견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12년 전 정견스님(인도자)과 첫 만남 이후로 묘법연화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를 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눈이 틔워지면서 기도를 하게 되면 영상메시지(신도체험)들이 제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 때문에 하루 3시간 수면시간이 생활로 굳어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영상메시지가 나타나고 내면의 소리에서 울림이 일어나는 날이면 장수에 계신 정견스님을 만나러 곧장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상생방송을 보고 증산도를 공부하고 있다 하셨고 또 어느 날에 들르니 증산도에 정식 입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은 저에게 미륵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야기며, 앞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도전 속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태을주를 적어주며 읽고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대구에 돌아가 저는 늘상 태을주를 틀어 놓고 태을주를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읽으니 하얀 도포를 입고 수염이 희고 긴 할아버지가 자꾸 나타나셨고 누에고치도 보였습니다. 스님은 누에가 조선의 모습이고 누에고치 실이 12,000배 나오듯이 앞으로 12,000 도통군자들이 나와서 앞으로 미륵님의 세상을 건설하는 걸 보여준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태을주를 계속 읽자 어느 날 전쟁상황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피비린내가 코를 진동하는 영상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스님을 뵈러 극락사에 가서 스님을 모시고 전주경원도장에 방문였습니다. 수호사님, 포정님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도전, 개벽책, 진리책을 사가지고 가서 집에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오랜 조상님 같으신 분의 영정 3개가 스쳐지나가면서 커다란 고목나무가 보이더니 중앙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매화꽃으로 한반도를 그려주셨습니다. 자꾸 나타나는 영상메시지와 현몽現夢들을 보면서 더 이상 입도를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 빨리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도 날짜를 정해놓고 선몽을 받았습니다. 애 아빠가 집을 샀다며 보여주는데 아주 허름한 초가집이었습니다. 처음에 외관을 보고 실망을 하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겉모습과는 다르게 넓고 깨끗한 집이었습니다. 아마도 증산도의 도세가 겉으로는 사람들이 보기엔 별거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륵부처님의 이상을 구현하는 정말 위대한 진리이고 이미 내면적으로는 탄탄히 구축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같이 입도를 해서 기쁘고 남편과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여 천지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