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 책만은 꼭]

1945년 을유년 8월 15일,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의 마수에서 해방되었다. 그로부터 광복 70주년이 되는 오늘, 대한민국은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는가? 정신은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는 역사학歷史學이 일제와 조선총독부, 그 산하단체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낸 식민사학의 저주에 아직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학계의 이완용’ 이병도와 그 제자들은 학문권력을 내세워 식민사학을 아메바처럼 무한 증식, 역사와 관련된 분야에는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제 그들의 추악한 가면을 벗길 때가 되었다.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으로 대한민국 식민사학계를 향해 거침없는 포문을 열었다. 국사학계(여기에서의 國이 과연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일본국이나 중국인지 지은이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식민사학계와 총성 없는 독립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 책은 지은이의 여러 책 중 가장 날선 비판과 거칠며 격앙된 어조, 그리고 식민사학자들의 실명 거론 등 우리 시대의 ‘문제작’이 될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다. 이제 식민사학을 해체하는 역사전쟁의 종장終章을 찍을 때가 되었다.

두 가지 사관史觀의 충돌


식민사관이란 우선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한 역사관이다. ‘식민사학’이란 점령지에 이주한 본국 사람들이 식민지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즉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 사람들(植民)의 시각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식민사관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우리가 우리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남의 시선 그것도 우리를 영구 지배해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왜곡·축소·날조된 작업들이 학문이란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되어 지금까지도 그 망령이 살아있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은 둘이다. 하나는 소위 ‘한사군 한반도설’로 이는 고조선 한반도설과 같은 논리로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즉 고조선 영역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래서 소위 한사군은 한반도 서북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1차 사료 분석만으로도 그 허구성이 드러나는 진정한 “썰”에 불과한 것이다. 또 하나는 임나일본부설로 구체적으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다.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식민 지배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강력한 국가를 형성한 백제, 신라의 『삼국사기』 기록은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백제 초기 수도로 비정하는 풍납토성의 고고학적 자료마저도 감추거나 폐기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4장 식민사관의 생존비법→5.풍납토성 발굴결과 뒤집기).

이 두 가지 견해를 보면 우리나라는 초기부터 주체적인 국가 건설은 없고, 중국의 한사군, 일본의 임나일본부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았던, 태생부터 식민지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능력도 없고, 서로 당파 싸움이나 일삼는 한심한 민족(소위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으로 식민사학계가 총론에서만 비판하는 식민사학의 내용)이기 때문에 앞선(?)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너희들은 원래 식민 지배를 받던 노예들이니-발전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 당연히 청산되어야 할 식민사학이 청산은커녕 그들이 심어놓은 사관을 추종하는 매사賣史, 매국적賣國賊들이 이병도(서울대), 신석호(고려대)를 위시한 학연으로 엮인 카르텔을 형성(이른바 사피아=사학 마피아)해 한국 사학계 및 주류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조선총독부의 교묘한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우리 역사 축소·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양에서 내려온 오랜 역사학의 전통과 방법론, 『조선왕조실록』으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사관들의 학문 실력과 날선 비판 의식, 기개 등은 ‘근대 역사학’이란 미명으로 서양의 일개 학설에 불과한 실증주의를 들먹이며 무시되고, 전근대적이라고 사장되었다. 이런 우리 국사 죽이기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된 국적만 조선인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하기까지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병도 같은 이를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일본의 주장을 일본인이 하는 것보다 같은 조선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하면 훨씬 잘 먹히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 않을까?

식민사관vs독립운동가 관점 이 책의 백미白眉는 대한민국 현 사학계의 소위 실증사학을 비판한 박양식의 논문으로, 여기에서 그는 중요한 경험을 전달해 주었다. 독일의 랑케나 프랑스의 미슐레, 미국의 터너처럼 자국의 관점에서 자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들이 일류 역사학자 대접을 받는데 한국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이들이 일류 학자 대접을 받는다고. 한국에서는 자국의 관점에서 자국사를 바라보면 온갖 매도를 당하고 학계에서 추방되고 이들의 농간에 놀아난 언론들은 한국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면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비난하는 투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205쪽). 이에 지은이는 자국사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악의적으로 ‘민족주의’라고 비난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고, 우리의 민족주의는 일본 민족주의처럼 침략적 극우 민족주의가 아니라 침략에 저항했던 민족주의라고 역설하고 있다(81쪽).

그렇기에 지은이는 고대사는 현대사이고 고대사 연구 자체가 독립전쟁의 최전선 사상전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선총독부 관점(노예의 역사관=우리 안의 식민사관)vs독립운동가 관점(주인의 역사관)’으로 나눠 식민사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한번식하고 있는 현실을 낱낱이 밝히고, 그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식민사학 해체의 길


이 책은 총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전쟁 중인 두 사관은 독립운동가 사관과 조선총독부 사관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식민사학의 계보와 그들의 추악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나라를 잃은 이후 일어난 역사관의 혁명을 다룬 민족주의 사관 부분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2장 동북아역사재단이 던진 질문은 2012년 여름 경기도 교육청 자료집에 대한 동북아역사재단이 제기한 의문을 분석하면서 과연 이 단체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단체인지에 대해 의문 제기와 함께 철저한 사료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서양사에서 본 실증사학 비판은 주류 사학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가슴 후련한 논문이었다.

이어진 3장 한국 고대사는 늘 현대사였다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식민사학을 재생산하는 기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2014년 3월 19일에 발족한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사이에서 벌어진 역사전쟁의 내막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한국 고대사인데 단군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가고, 초기 삼국시대 대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가야와 삼한을 넣은 결기를 보여줘 한국사를 일본과 중국에 갖다 바쳐서 화해를 이룬 놀라운 책이다, 212쪽 이후 참조)을 발간했다. 이 충격적인 책들은 자국사에 대한 테러를 벌여놓은 놀라운 사건으로 우리는 그 전말을 통해 아직도 살아 있는 식민사학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의 공개토론 제의를 거부하는 그들의 비겁함과 학문적 직무유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국가기관과 이른바 주류라 불리는 각 대학 사학과들이야 말로 현 시점에서 망령처럼 존재하는 식민사학의 서식지라는 점을 재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의 생존 비법을 알아보자.

4장 식민사관의 생존 비법은 그들이 진정 학자들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 할 것이다. 아마 2, 3장을 읽은 정상적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미 피가 역류하는 경험을 몇 번은 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의 생존비법을 보면서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살아남는 법을 보면 현재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을 바탕으로 식민사학 카르텔을 형성해서, 일단 학계에서 정리가 끝났다고 우기기, 1차 사료를 왜곡하고 사료 가치를 폄하하고, 엉뚱한 사료를 인용하는 등 1차적인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어 그들의 정설定說이라는 걸 지키기 위해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란 변형 이론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재야다’, ‘표절이다’, ‘북한연구를 인용했으니 친북 공산주의라는 반공 매카시즘으로 몰아 부치기’, ‘전공자가 아니다’ 등으로 무시하고 억압해 왔다. 이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함께 이 책에서는 식민사관의 구조와 내용, 그 인맥을 비판하는 연구자들에게 모욕과 시련을 가한 그들의 비열한 행태가 잘 나와 있다.

5장 식민사관 해체의 길은 이 책을 읽은 우리들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개개인에 묻고 있는 듯하다. 제대로 이 사실을 알고, 널리 알리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가야할 길


사대부 유학자로서 민족사관을 주창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인식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대로 문벌이 높아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 서울의 우당 이회영 6형제 일가와 경상도 안동의 행촌 이암 선생님 후손 석주 이상룡 선생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노론이 일제가 주는 은사금에 환호할 때 집단 망명을 선택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국망國亡의 원인을 깊게 분석한 결과 중화사대주의 사상을 버리고 민족주체 사관으로 거듭났다. 이는 역사관의 혁명이었다(89~98쪽).

우리는 조선총독부 관점(노예의 역사관=우리 안의 식민사관)vs독립운동가 관점(주인의 역사관)’이라는 충돌하는 두 가지 관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역사를 읽는데 위와 같은 두 가지 관점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고, 이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박은식(1859-1925)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은 “국사, 국어는 혼魂”이라고 말했다. 지사志士의 학문인 역사에 해박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은 다음과 같은 시구 하나를 전하며 지사의 결기가 묻어나는 민족사학의 전통을 보여 주었다. 이런 정신이 우리역사학의 전통이 되었다면 하는 가슴 아픈 아쉬움이 든다.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될 수는 없도다.此頭寧可斫/此膝不可奴”

아직까지 우리는 우리의 혼을 되찾지 못한 얼빠진 민족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여전히 식민사학을 한다는 의미는 몸은 해방됐지만 정신은 여전히 노예라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그 혼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그래야 진정한 홍익인간 제세이화하는 대한大韓의 나라가 되지 않을까? 정리 / 이해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