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개벽기에 살고 잘되는 길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 136년 6월 27일, 대둔산 청소년수련장
[말씀요약]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태어났든지, 자기가 사는 시대 상황을 잘 봐서 그 세상에 가장 유리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 시대, 시세를 잘 응용해서 슬기롭게 대처하면 시대적인 영웅도 되는 게고, 잘못하면 패배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천지의 대도라 하는 것은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것이다. 한데 지금은 천지의 질서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가지고서 이번에 사람 씨알을 추린다. 오늘날까지 내려온 역사적인 문화라 하는 것은 이런 알캥이 문화가 나오기 위한 과도기 과정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짓는 것도, 지구년에 초목농사 짓는 것과 같이 가을철에 쓸 씨종자를 추리기 위해서다. 천지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 하면 사람이다. 지구년이 순환무궁해서 자꾸 둥글어 간다고 해도, 사람이 그 때를 놓치고 천시天時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 천시는 있으나마나 하고, 사람도 살 수가 없다. 초목, 비금주수飛禽走獸, 미물곤충 등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짓는데 사람이 생활문화에 필요에 따라 쓰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 짓는 우주년에도 천지 이법에 잘 적응해서 다스리는 주체가 있다. 그분이 바로 불가에서 말한 미륵부처님이요,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이요, 유가, 도가에서 말한 옥황상제님이다. 종교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호칭이 달랐을 뿐이다.

앞으로 유형문화와 무형문화가 하나인 진리권으로 합일이 된 통일문화, 결실문화,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지나간 봄여름 문화는 이런 하나인 문화권이 맺어지기 위한 과도기적 문화다. 또 사람도 쓸 사람만 살아남는다. 이번에는 인종 씨를 추리는 때다. 그래서 신명들이 후천 오만 년 좋은 결실을 매듭짓기 위해, 좋은 자손을 태우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60년씩 기도를 한다. 자손이 잘 살아야 자기네들도 잘 산다. 자기 자손이 살지 못하면 조상 신명도 따라서 없어져 버린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지존지대至尊至大, 지극히 높고 지극히 크고 소중한 것이 뭐냐? 그게 내 자신이다. 그러면 그런 절대적인 귀중한 자기 몸을 낳아준 사람이 누구냐? 제 조상이다. 내 몸이라 하는 것은 처음 조상할아버지의 몸뚱이가 자기에게 와서 앉은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제 몸뚱이는 제 것이 아니라 조상의 것이다. 그러니 하늘 땅,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게 제 조상이다.

상제님 말씀으로 묶어서 “우리 일은 남 죽는 세상에 살고 나 살고 남 산 그 뒤 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남도 살려주고, 남 살고 좋은 세상이 된 다음에는 다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까 우리는 펄펄 뛰는 빨간 피로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사람을 살리러 오신 참 하나님 증산 상제님 진리의 길잡이가 돼서, 사람들을 거기로 천거해야 한다. 시간을 아껴서 많은 사람을 살려라. 그저 다니면서 일깨워 주고, 책도 전해 주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포교를 해라. 참말로 제군들은 우리 상제님 진리를 만나 전도前途가 양양洋洋하고 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참 하나님, 상제님을 잘 신앙해서 다음 세상 지상선경, 현실선경, 조화선경에 혈식천추 도덕군자, 무한한 절대자가 돼서 천지의 큰 복을 받기를 축복을 한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청소년 신도들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정서를 순화시키고, 또한 각 지방 신도들끼리 모여서 교분도 쌓는, 이런 참 뜻 깊은 자리다. 그러기 때문에 이 종도사가 담소談笑, 말씀 담 자, 웃음 소 자, 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서로 화합을 하자는 의미에서 내가 몇 마디 하겠다.

성공을 하려면 그 시대 상황에 적응을 해야


인류 역사를 통해서, 사람은 누구도 하나같이 부귀영화를 꿈꿨다. 했건만 지나간 세상은 그 시운이 상극相克이 사배司配를 했다. 근래 우리 청소년 신도들이 알 수 있는 말로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거와 같이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를 해서 대어大魚는 중어식中魚食하고,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또한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역사가 그렇게 됐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못 했다. 자기 뜻을 펴지 못하고서 남의 억압에 의해서 원혼귀冤魂鬼가 됐다.

그런 역사 가운데서 또한 성공한 사람도 많다. 시운도 잘 타고 나야 하지만,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해놓고서 성공을 하려 할 것 같으면 그 시대 상황에 적응을 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잘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초국말國初國末, 한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창건되는 데에 달라붙으면 공신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개인적으로 창업시조도 될 수가 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남이 장군


시대를 잘못 타고서 출세를 했다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 가운데 하나를 예를 들어서 내가 노래로 표현할 테니 들어 보아라.

‘백두산석은 마도진이요, 두만강수는 음마무라.’

이런 노래가 있다. 이 글을 지은 사람이 남이南怡 장군(1441~1468)이다. 남녘 남南 자 성에 화할 이怡 자. 심방변에 마늘 모 하고 입 구 한 자, 그게 화할 이 자다. 외자 이름인데, 그가 26세에 병조판서를 했다. 그 때 병조판서는 지금의 체제로 국방장관이다. 스물여섯 살, 꽃다운 나이에 병조판서를 했다.

그런데 그가 시를 어떻게 지었느냐 하면 ‘백두산석은 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이요. 흰 백 자, 머리 두 자, 뫼 산 자, 돌 석 자, 갈 마 자, 칼 도 자, 다할 진 자,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서 다했고.’ 전쟁을 하려면 칼을 써야 되는데, 그 칼날을 세우느라고 백두산 돌에다 칼을 갈아서 백두산 돌이 다 소모가 됐다는 말이다.

‘두만강수는 음마무라豆滿江水飮馬無. 팥 두 자, 가득할 만 자, 물 강 자, 물 수 자, 마실 음 자, 말 마 자, 없을 무 자.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붙었다.

남아이십에 미평국이면男兒二十未平國. 사내 남 자, 아이 아 자, 아닐 미 자, 평정할 평 자, 나라 국 자, 사나이가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할 것 같으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뒤 후 자 인간 세 자, 누구 수 자 일컬을 칭 자, 큰 대 자 어른 장 자, 지아비 부 자. 후세에, 뒷세상에 누가 대장부라고 일컫겠느냐.’

과연 당대의 영웅의 기개로 이런 시를 한 수 지었다.

했는데 그 때는 우리나라에 당파싸움이 아주 심할 때다. 당파싸움은 잘 알 것 아닌가.

김효원과 심의겸이라는 사람이 한때 아주 잘났던 사람이다. 한데 한 사람은 동쪽에 살고, 한 사람은 서쪽에 살았다. 서쪽 사람들은 동쪽에 사는 패거리를 보고 ‘동인東人이다.’,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서쪽에 사는 패거리를 보고서는 ‘서인西人이다.’ 했다. 김효원, 심의겸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어 동서에서 파당이 뭉쳐졌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동인, 서인, 남인, 북인, 골북, 육북, 피북, 노론, 소론, 탁론, 청론으로 갈려서 3백여 년 동안 당파싸움만 하다 말았다. 서로 죽이는데, 죽여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다. 아주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시켰다. 뱃속에 있는 애기도, 불알 달린 놈이 태어나면 그건 틀림없이 죽여 버린다. 그 부인은 양반집 종으로 삼아버리고. 예쁘게 잘 생겼으면 소실로 더불고 살기도 하고, 뭐 갖은 못된 짓을 다 했다. 이 민족, 이 나라, 우리 조상들이 그런 짓을 거침없이 했다.

남이 장군 역시 그런 시대에 살던 영웅이 돼서, 병조판서를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은가. 다른 패거리가 만날 남이 장군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 어떻게 남이 장군을 잡아 죽였는지, 그 얘기를 해 줄 테니 들어 보아라.

백두산석은 마도진이요,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다했고, 두만강수는 음마무라,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붙었다. 남아이십에 미평국이면, 사나이가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할 것 같으면 후세수칭대장부랴, 뒷세상에 누가 대장부라고 일컫겠느냐.

이건 흠이 없는 글이다. 여기 있는 우리 증산도 청소년들도 다 읊을 수 있는 명 시구다.

한데 상대편에서 ‘옳거니, 좋은 수가 있다.’ 하고 ‘남아이십에 미평국이면, 사나이가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에서 평정할 평平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쳤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나라를 평정하면 태평세계가 되지 않는가. 그런데 평정할 평 자를 얻을 득 자로 고치면, ‘나라를 얻지 못하면’이 되어 버린다. 나라를 얻으려면 임금을 용상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용상에 앉아야 되지 않는가? 그럼 역적이 아닌가. 나라를 평정하면 충신이 되는 게고, 나라를 얻을 것 같으면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게다. 글자 한 자에 충신도 되고 역적도 된다. 그 세상은 군주주의 세상이 돼서, 역적 소리만 나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죽이지 않을 수가 없다.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내가 쓴 『상생의 문화를 여는 길』 그 책 봤을 것 아닌가? 거기 보면 조광조趙光祖가 모함을 당해 죽은 얘기가 나오잖은가. 달아날 주走 안에 어질 초肖한 자가 조나라 조趙 자다. 한데 상대편에서 달아날 주 자, 어질 초, 두 자를 넣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저 궁궐 후원 활엽수 잎에다가 꿀로 글자를 써놓았다. 그러자 버러지들이 꿀 묻은 곳만 파먹어서 저절로 글자가 생겼다. 주초위왕, 조씨가 왕이 된다고 하니 그 역적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조씨를 죽였다.

남이 장군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도 많이 쌓았건만, 역적이 돼서 참형을 당했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한가? 서울 근처에 남이 장군 묘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자기네 출세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위해서 남을 모함하고 죽이고, 전 가족을 멸망시키고, 그런 짓을 서슴지 않았다. 지나간 세상에는 그렇게 무고히, 왜 죽는지도 모르고, 그냥 하루아침에 끌려 나가서 “네 이놈! 저 역적 놈 베어라!” 하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걸 다 얘기하려면 한이 없다.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우리 신도들은 진리를 알건 모르건, 바라건 안 바라건, 천지 이법에 의해서 자연 후천 오만년 세상에 혈식천추도 되고 도덕군자도 될 것이다. 또한 자기 가문의 시조 할아버지도 될 게고 시조 할머니도 될 게다. 참말로 인간 하나님의 위치에서 후천 오만년 세상에 부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성삼문의 참담한 죽음


내 거기에 덧붙여서 하나 더 얘기해 줄 테니 들어 봐라.

수양대군이 겨우 열두 살 먹은 조카 단종을 삭탈관직을 하고 노산군이라 해서 저 영월 청룡포로 귀양을 보냈는데, 그 때 사육신死六臣, 생육신生六臣이 생겨났다. 사육신이 누구냐 하면 성삼문, 이개,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 하위지이다.

한데 성삼문 아버지가 이길 승 자, 성승成勝이다. 수양대군이 성삼문에게 항복을 받으려고 성삼문 아버지를 잡아다가 대궐 뜰에 묶어놓고, 옷을 벗기고서 참숯불에다가 벌겋게 달군 인두로 등짝이니 장단지를 지져댔다. 그러면 살덩이가 익느라고 지글지글하고, 연기가 풀풀 나고, 고기 익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자, 네가 항복을 하면 네 애비가 이런 악형을 안 당한다. 항복을 해라.”

그걸 본 성삼문이, 마음으로는 안됐지만 눈도 깜짝 안 했다. 그래도 항복을 안 하니까 종국적으로 서너 살 먹은 아들을 잡아다가 성삼문이 보는 데서 자루에다 넣어 대궐 대뜰에다가 냅다 태질을 시켜 깨트려 죽였다. 하니까 성삼문이 눈물을 보였다. 그걸 보고 수양대군이 하는 소리다. “저런 역적 같은 놈 봐라. 아니 지 애비를 인두로 지져도 눈도 깜짝 않더니 제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뵌다.”고.

그러니까 성삼문이 한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왜 죽는 줄을 안다. 그리고 내가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한데 이 아이는 천지에 생생지리로 생겨나 세상에 왔다가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는다. 그래 내 자식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진리의 혼으로, 그 진리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뵌 것이다.”

그런 처절한 사육신의 역사가 있었다. 지나간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그렇게 상극이 사배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성삼문은 죽으러 나가면서 “황천무객점黃泉無客店하니 황천에는 술집도 없다 하는데 금야숙수가今夜宿誰家오, 오늘밤엔 뉘 집에 가서 잘꼬?” 하는 시도 남겼다.

사람은 인간인지라 초목과 더불어 같이 썩어질 수 없잖은가? 또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풍이미從風而靡로, 동풍 불면 서쪽으로 쓰러지고 서풍 불면 동쪽으로 쓰러지고, 그렇게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 그래 무엇인가 값어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허둥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성공은커녕 부귀영화를 누리기 전에 그런 변고, 그런 흉악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게 지나간 인류 역사였다.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태어났든지, 자기가 사는 시대 상황을 잘 봐서 그 세상에 가장 유리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 시대, 시세를 잘 응용해서 슬기로웁게 대처하면 시대적인 영웅도 되는 게고, 잘못하면 패배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물질만 발달된 절름발이 문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바로 천지의 질서가 바꿔지는 때다!

내가 요새 간부들에게 이런 교육도 해 봤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물질문화가 아주 극치에 달했건만 정신문화는 빵점이다. 유형문화와 무형문화가 병행을 해야 되는데 물질문화만 성장되고 정신문화는 빵점이다. 다시 말을 하면 절름발이 문화가 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 가정도 파멸을 당했다.

어떻게 파멸을 당했냐? 한 60대쯤 되는 아버지들이 하는 소리다.

“우리는 자식들한테 버림을 받는 첫 세대다.”

이렇게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공언을 하고 있다. 왜?

지금은 가족제도가 핵가족이다. 정신문화가 빵점이 되다 보니 결혼을 해도 보금자리부터 준비해놓고 결혼식을 하고, 결혼식장에서 신혼여행 떠나는 것이 법칙으로 되어 있다. 또 신혼여행을 갔다 오면 저희들 보금자리로 들어간다. 그러고서 피로회복하고 어미 아비에게 와서 “잘 다녀왔습니다. 행복을 꿈꾸고 왔습니다.” 그게 다다.

하나 예를 들어서, 그렇게 살다가 그 시어머니가 죽었다. 신랑이 우리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니 관습적인 예의에 따라 시어머니 초상을 치르러 갔다. 여러 형제가 모두 와서 ‘아이고’ 하고 우는데, 신부도 같이 따라서 울어야 되는데, 암만 울려고 해도 눈물이 안 나오거든. 왜? 그저 우리 신랑을 낳아서 키웠다고 말로만 들었지, 아니 밥도 한 끼 같이 먹지도 않고, 하루도 같이 생활해 본 사실이 없다. 그래 울 수 있는 심금이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거지로 울려고 해도 되지도 않고. 가정이라 하는 것은 국가의 밑바탕이다. 그러니 장차 국가가 어떻게 되겠는가.

게다가 이 나라는 역사를 안 가르치는 나라다. 세상천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자기네 나라 백성에게 역사를 안 가르치는 나라는 이 나라밖에 없다. 역사를 안 가르치는 건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자식을 낳아놓고서 성을 안 알려 주는 것하고 같다. 자식을 낳으면 ‘너는 박가다, 너는 최가다, 이가다, 김가다.’ 하고 최소한 성은 알려 줘야 될 것 아닌가. 암만 무식한 사람도, 죽인다 해도 성은 안 바꾼다. 그건 혈통이기 때문에 안 바꾼다. 성을 안 가르쳐 주면 혈통도 잃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거 얘깃거리가 안 된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 청소년 신도들은 불의를 뿌리 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상제님 천지사업을 하려고 하는 당당한 일꾼들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것이다.


지금은 상제님이 강세하여 인종 씨 추리는 가을 개벽기


천지의 대도라 하는 것은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그 이상 더도 덜도 없다. 묶어서 일 년 하면 한 번 내고 죽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10년 전에도 내고 죽였고, 백 년 전에도, 천년 전에도 내고 죽였다. 또한 금년도 내고 죽일 게고, 5년, 10년 후도 내고 죽일 게다. 이 천지 이법이라 하는 것은 무슨 타협으로써 바꿔놓을 수도 없는 게고, 틀림없이 그렇게만 되어지는 것이다.

한데 지금은 천지의 질서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가지고서 이번에 사람 씨알을 추린다. 다행이고 불행이고를 떠나서 우리는 그런 시점을 맞이했다.

이 시점을 역사적인 성자들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3천년 전에 석가부처가 자기 아들을 보고서 “내 도는 3천년밖에 못 간다. 3천년 후에는 미륵부처님이 오신다. 너는 미륵부처를 따라라.” 했다.

예수는 앞으로 자기가 오는 게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했고, “나도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했다. 또 사도 요한이 백보좌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유가儒家, 도가道家에서는 옥황상제를 찾았다.


사람이 천지의 주체


천지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 하면 사람이다. 여기 우리 청소년 신도들은 이것부터 배워야 한다. 천지라 하는 것은 수족도 없고, 말도 할 줄 모른다.

천지는 이치로써 하늘과 땅이 일월을 용用으로 해서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개미 쳇바퀴 돌 듯 그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한결같이, 천년도 만년도 10만년도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그런데 알기 쉬웁게 일 년 지구에서 봄철이 되면 사람이 그 시점을 잘 응용을 해서, 그 철을 놓치지 않고서 씨를 뿌린다. 여기 우리 증산도에서 ‘때를 놓치지 말자.’ 하는 거와 같다. 그러면 천지에서 싹을 틔워서 여름철에 길러서 가을철에는 봄에 물건을 내서 여름철에 기른 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결실, 즉 열매, 알캥이를 맺어 놓고 겨울에 폐장을 해서 죽인다. 알캥이를 맺는 게 천지의 목적이다. 사람이 그 천리에 잘 적응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사람이 주체다. 지구년이 순환무궁해서 자꾸 둥글어 간다고 해도, 사람이 그 때를 놓치고 천시天時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 천시는 있으나마나 하고, 사람도 살 수가 없다.

한데 이 지구년이 세세연년歲歲年年 초목농사를 짓는 것은, 천지에서 사람농사 짓는데, 사람이 활용을 하기 위해 짓는 것이다. 초목, 비금주수飛禽走獸, 미물곤충 등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짓는데 사람이 생활문화에 필요에 따라 쓰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 짓는 우주년에도 천지 이법에 잘 적응해서 다스리는 주체가 있다. 그분이 바로 불가에서 말한 미륵부처님이요,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이요, 유가, 도가에서 말한 옥황상제님이다. 종교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호칭이 달랐을 뿐이다.

오늘날까지 내려온 역사적인 문화라 하는 것은 이런 알캥이 문화가 나오기 위한 과도기 과정이다. 열매기 문화, 결실 문화, 알캥이 문화라 하는 것은 가을철에 금풍金風이 소슬해서, 가을철 득신得辛기운이 와야 여물어지는 것이다. 가을에 열매 하나를 맺지 못 하면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있어야 한 푼어치도 필요치 않은 과정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짓는 것도, 지구년에 초목농사 짓는 것과 같이 가을철에 쓸 씨종자를 추리기 위해서다. 지금 천성만본千姓萬本 각색 혈통들이 천지에 가뜩이 찼다. 마치 7,8월에 초목이 만지편야滿地遍野해서 발 들이밀 틈도 없이 무성하듯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꽉 들이찼다.

상제님의 강세를 탄원한 리치 신부


이태리 사람 리치 신부는 결혼도 안 해보고, 일편단심 자기 몸뚱이 끌고 다니면서 중국에 와서 ‘미개한 나라에 문명을 열어주겠다’ 하고 평생을 가톨릭 포교를 했다. 그러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천지의 이법에 의해 늙어 죽어서 중국 땅에 백골을 묻었다.

그런데 육신은 죽어 없어졌어도 심령만은 남아 있다. 그분은 살아서 해결하지 못한 것을 매듭짓기 위해, 딴 별나라로 가서 인간 생활문화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따다가 과학자들에게 알음귀를 붙여주어 좋은 문명을 개발해 주었다. 했지만 인간들이 살기가 편하게 되니까 오히려 더 오만무도해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신성 불보살들을 더불고서 참 하나님이신 우리 상제님께 등장을 해서 “우리의 능력으로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 참 하나님이 친히 인간 세상에 내려가셔서 살기 좋은 세상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애원을 했다. 해서 상제님이 “내가 괴롭기는 하지만 리치 신부가 신성 불보살들을 전부 거느리고 와서 내게 하소연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세상에 친히 스스로 오게 됐다.” 하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이 상제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상제님은 천지농사를 짓는 주체자가 되시기 때문에 천지 이법으로도 오실 분이다.

그렇게 해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앞 세상이 둥글어 갈 틀을 짜놓으셨다.

조상과 자손의 관계


지나간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알캥이가 여무는 때가 아니잖은가. 앞으로 유형문화와 무형문화가 하나인 진리권으로 합일이 된 통일문화, 결실문화, 알캥이 문화가 나온다. 지나간 문화는 이런 하나인 문화권이 맺어지기 위한 과도기적 문화다.

사람도 쓸 사람만 살아남는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제군들의 조상은 남에게 적덕을 하고 정의롭게 산 사람들이다. 나는 궁하지만 이웃 사람이 어렵다고 하면 같이 나눠먹고, 도와주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10대 할아버지, 50대 할아버지가 다 그렇게 산 좋은 혈통들이다. 그래 대대전손代代傳孫하면서 한세상을 같이 살던 신명들이 “아무개한테 나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공을 어떻게 갚아야 되나? 참말로 고마웠다.” 해서 추천을 한 그 자손들이다.

이번에는 인종 씨를 추리는 때다. 그래서 신명들이 후천 오만년 좋은 결실을 매듭짓기 위해, 좋은 자손을 태우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60년씩 기도를 한다. 자손이 잘 살아야 자기네들도 잘 산다. 자기 자손이 살지 못하면 조상 신명도 따라서 없어져 버린다. 조상과 자손이라 하는 것은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지엽과 같은 것이다. 뿌리가 없는데 지엽이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지엽이 없는데 뿌리가 어떻게 호흡을 할 수가 있나.

자손이 없는 조상은 자멸돼 버린다! 천지 이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조상을 섬겨야 하는 이유


내가 조상과 자손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 줄 테니 들어 보아라.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지존지대至尊至大, 지극히 높고 지극히 크고 소중한 것이 뭐냐? 그게 내 자신이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 성도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성스럽고 귀중한 것이 다 각기 자기 자신이다.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얼굴도 못생겼는데? 나는 키도 조그만데? 나는 마음도 나쁜데 어떻게 성스러운 사람이고, 지존지대한 사람이냐? 내가 나보고 물어볼 때 잘난 사람이 아니다?

천만에! 생김새가 어떻든지 마음이 어떻든지, 그걸 떠나서 각기 제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건 무슨 물질로 환산을 할 수가 없다. 어째서 그러냐?

내가 있음으로 하여, 나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하여, 내가 잘 생겼든지 못 생겼든지, 정신세계가 훌륭하든지 못돼먹었든지 어떻든지 간에, 내 몸뚱이가 있음으로써 부모도 있고 형제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우주만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부모, 형제, 국가, 민족, 사회, 우주만유가 있을 수가 있는가. 맞지? (보은!)

사람은 다 각기 제 몸뚱이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제 몸뚱이는 하늘하고도 못 바꾸고 땅하고도 못 바꾼다. 아무리 황금만능인 세상이지만, 물질로 환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절대적인 귀중한 자기 몸을 낳아준 사람이 누구냐? 제 조상이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강도가 됐든, 술주정뱅이가 됐든, 안팎꼽추가 됐든 그걸 따지기 이전에, 가장 귀중한 자기 몸뚱이를 낳아 준 게 저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다. 유전인자라는 것은 절대 바꿀 수 없잖은가?

5천년 전, 6천년 전 처음 조상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자자손손 계계승승해서 내 몸까지 왔다. 내 몸이라 하는 것은 처음 조상할아버지의 몸뚱이가 자기에게 와서 앉은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제 몸뚱이는 제 것이 아니라 조상의 것이다.

그러니 제 조상이 하늘보다도, 땅보다도 더 소중하고, 한 나라의 임금님보다도 더 소중하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게 제 조상이다.

그래서 상제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기 이전에 각기 너희 조상부터 위하고서 다음에 나를 위해라.” 하신 것이다.

우주변화원리를 모르는 안타까운 현실


이 세상에 우주변화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천지가 어떻게 둥글어 가고,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우선 “천지도 일월이 아닐 것 같으면 빈껍데기요, 일월도 사람이 아닐 것 같으면 빈 그림자다.” 이런 것은 참 알기도 쉬웁다. 우주변화원리는 어려우면서도 알기도 쉽다.

그런데 이 세상은 너무 물질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돼서 돈이 안 생기니까 우주변화원리를 교육시키는 데가 없다. 우주변화원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저 아프리카 흑인종까지도 알아야 한다. 이건 무슨 큰 지식도 아니다.

사람들이 우주변화원리를 알면 우리가 상제님 사업을 하는데 오죽이나 쉽겠나? 그저 슬쩍 운만 던져도 ‘옳거니! 지금은 하추교역기, 여름과 가을이 교역이 되는 때, 바로 천지의 질서가 바꿔지는 때로구나.’하고 알아들어서 포교하기가 쉬울 게다.

시간을 아껴서 사람을 많이 살려라


상제님 말씀으로 묶어서 “우리 일은 남 죽는 세상에 살고 나 살고 남 산 그 뒤 세상에는 잘도 되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남도 살려주고, 남 살고 좋은 세상이 된 다음에는 다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는 각자가 알고서 들어오지 않았다. 조상님들이 추천을 해서, 모르고 들어왔는데 들어오고서 보니 참말로 천고에 선택된 사람이 된 것이다. 과연 이 자리는 복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사람들을 살려서 후천 오만년 동안 그 후손들에게 인간 하나님으로 추대 받을 사람들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하니까 우리는 펄펄 뛰는 빨간 피로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사람을 살리러 오신 참 하나님 증산 상제님 진리의 길잡이가 돼서, 사람들을 거기로 천거해야 한다. 이 아까운 시간을 절대로 허비하지 말고, 시간을 아껴서 많은 사람을 살려라. 사람 살리는 일보다 더 값어치 나가는 일이 어디에 있나?

지금은 시청각 교육 시대가 돼서 듣고 보는 것이 전부가 다 교육이다. 안 보려고 해도 눈으로 뵈니 안 볼 수가 없고, 귀로 들리니 안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전부가 다 석사, 박사다. 그러니 나이가 어리다고 못할 게 없다. 상제님 사업을 하는 데는 어리고 장년이고 그런 게 관계없다.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데 연령이 무슨 상관있나?

‘조문도朝聞道면 석사夕死라도 가의可矣라.’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도를 들을 것 같으면 저녁 때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이다. 또 ‘아는 길도 물어가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 손자한테 말을 배운다.’는 말도 있다. 그저 다니면서 일깨워 주고, 책도 전해 주어라. 진리의 길잡이가 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포교를 해라. 이 이상 더 좋은 일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오늘 내가 우리 청소년 신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고 서로 만나 우의友誼를 다지고 화합하는 좋은 자리에 와서, 담소를 한다 하고서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을 너무 뺏었다. 해서 그만 뚜껑을 닫아야 쓰게 생겼다.

내가 반라괭이가 돼서, 열두 살서부터 상제님 사업을 한다고 일본시대에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지금 여든다섯 살 먹도록 했는데 연태도 끝이 안 났다. 그게 왜 그러냐? 상제님 말씀이 “우리 일이 한 나라 일에 그칠 것 같으면 참으로 쉬웁고 시간도 짧을 수도 있지만 이건 원원한 천하사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멀고 더디다.”고 하셨다.

참말로 제군들은 우리 상제님 진리를 만나 전도前途가 양양洋洋하고 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참 하나님, 상제님을 잘 신앙해서 다음 세상 지상선경, 현실선경, 조화선경에 혈식천추 도덕군자, 무한한 절대자가 돼서 천지의 큰 복을 받기를 축복을 한다. 이상!